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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삭제판 이다 플레이
이다 글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사람은 자신의 창작물에 자기자신을 투영하기 마련입니다. 흔하게는 공책에 하게 되는 낙서부터, 작가의 경우 자신이 쓰는 글로, 화가의 경우 그림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물론 뭉크 같은 경우가 없지야 않지만 일기의 경우라도 공개하기 위한 것일 경우 솔직하지만 어느 정도 미화된 자신의 모습이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여기 솔직 과감한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이 있습니다. 본인은 그것도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덧칠을 하고 그런 '척'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처음 본 순간에는 사실 좀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캐릭터가 일단 나체인데다가 귀엽지도 않고 말도 지나칠 정도로 과감한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27살의 여성이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도 전공은 신학이고 자라는 것을 거부하는 것만 같은 인물. 검은 피부에 그림이라 그렇지 실제로는 별로라는 머리형, 그림에 올 인 했는데 나중에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 게 되면 어쩌나 하는 사람. 이렇게 속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은 캐릭터라 신선함 반, 놀라움 반 이었습니다.
거기에 낙서를 방불케하는 글과 그림의 상태라니 더 놀랍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그림의 표현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글이 그야말로 빽빽하고 두서없는 데가 있어서 예전 친구와 하던 낙서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구요. 사람의 인생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는 기분이라서요. 직설적인 화법에 속이 후련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저렇게 과격하게 말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많겠다는 생각이 걱정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자신의 일상을 담고 있기도 하고 주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합니다. 일상의 경우 사랑니를 뺐는데 그 뺀 자리에 하필 옥수수가 끼고 아무리 해도 뺄 수가 없더라는 이야기, 쌀에 벌레가 생겨서 약을 썼는데 그 약이 벌레 뿐만 아니라 사람도 죽이겠더라는 이야기가 있구요.
주변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서는 요새 88만원 세대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보통은 88만원 세대가 될 까봐 두려워하는 이야기를 말하는데 오히려 88만원이라도 정기적으로 들어오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림을 그려봤자 한 달에 10만원 남짓 벌고 대부분은 엄마에게 기대야 하는 자신에 대한 한탄과 한 달에 쓰는 돈이 80만원이니 그 만큼이라도 안정적으로 들어오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과 함께요. 우울한 고민에 대한 공감이랄까요.
읽다보면 점차 공감대가 생기더군요. 특히 앞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현실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구요. 신문사에서 그림을 청탁하면서 정작 그 그림에 대한 대가를 달라고 하니 불쾌해 하더라는 부분에서는 같이 울컥하게 됐습니다. 광고가 되니 도움이 될 테고 그러니 무료로 해달라는 게 무슨 억지인가 싶어서요. 먹고 살자면 돈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억만금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정당한 돈을 요구하자 '예술가가 돈을 밝히다니 타락했다'하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황당했네요.
그 외에 자신은 애교를 떨지 못하는데 애교를 잘 떠는 후배가 친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나 일거리가 들어오면 기쁘면서도 일부러 바쁜 척하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네요.
누구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어렵기 마련인데 자신의 고민에 대한 그리고 일상에 대한 꾸밈없는 이야기라 신선했어요. 더구나 그림이나 글이 물에 번진 것 같은 부분도 꽤 돼서 다른 사람의 일기장이나 낙서장을 그대로 집어 들어서 읽는 기분이 들었구요.
유쾌하게 읽게 되고 속이 시원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한 '무삭제판 이다 플레이'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분의 상상력이나 표현력이 놀라웠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