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을 삼킨 책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 신혜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책이 인류 최고의 보물이며 발명품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문자가 없으면야 책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도 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지식을 다음 세대로 전하는데는 책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야 컴퓨터가 대세가 되서 많은 정보를 저장하게 되었지만 전기가 없다면 컴퓨터는 가동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안에 들은 수많은 정보들은 전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지요.
결국 전기가 없어졌을 때를 생각하면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책 만한 것이 없을 겁니다. 그런 사실을 빼고서라도 손에 만져지는 감촉과 향기를 생각한다면 지식의 보고인 책을 더 선호하게 되지만요.
책을 좋아하는 터라 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편입니다. 어느 날 들었던 생각은 책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세계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살짝 훔쳐보는 것이구요.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이었지 책 한 권이 세상을 삼킬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해보았습니다.
이 책 '세상을 삼킨 책'은 독특한 내용을 담은 소설입니다. 철학과 종교를 말하는 책 같기도 하고 역사소설 같기도 하며 여러 살인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스릴러 소설 같기도 합니다. 제목만 해도 아주 독특한 편입니다. 종이와 잉크로 이루어진 책, 그 안의 지식의 깊이가 아무리 깊다해도 어찌 책이 세상을 삼킬 수 있나 하는 생각을 가져 오게 하구요. 허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의사인 니콜라이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하나의 사건에 말려듭니다. 의학을 공부하고 아버지의 부름에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병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할 기회를 얻습니다. 영주 앞에서 궁정의사의 의견에 반박을 한 것이었는데요. 나름 일리가 있던 그의 말은 오히려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그는 할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로 갑니다. 그 도시에서 그는 시의 보건의를 하는 사람에게 고용되어 보조의사 역할을 하는데요.
어느 추운 밤, 그 곳에서 위세가 대단한 귀족이 위중하니 당장 왕진을 와달라는 전갈을 받습니다. 보건의를 대신해서 말이지요. 그는 날이 추워서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그 곳에 당도합니다. 그런데 바로 환자에게 그를 데려다 주어야 할 고용인들이 그에게 의외의 이야기를 합니다. 환자가 방에 틀어박혀 있고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으니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시종, 약사는 환자의 상태를 걱정해서 들어가자 했지만 재산관리인은 명령을 어길 수 없다면서 문을 억지로 여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니콜라이는 난감했지만 묘안을 내는데요. 음식물이 들어가는 곳으로 사람이 아니라 개를 들여보내고 상태를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개를 들여보내기도 전에 문 앞에서 개가 난동을 피웠구요. 반대를 하던 재산관리인은 사라진 후였습니다. 그리고 시종의 주도로 강제로 문을 열자 그 곳에 있는 것은 알도르프 백작의 시신 이었습니다.
이것이 니콜라이가 마주하게 된 사건의 본격적 시작이었구요. 기묘하게 살해된 백작, 그리고 그를 감염시킨 정체 불명의 독, 어둠 속에 암약하는 단체와 수사를 개시한 대법원의 고문관까지 이야기는 치밀하게 물고 물리며 흘러갑니다.
이야기는 점차 예측하지 못한 쪽으로 흘러가구요. 고문관과 함께 수사를 하던 니콜라이는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선택은 그가 진실에 접근하도록 합니다. 덕분에 더 위험해지지만요.
철학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하는 터라 이야기가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흘러가는 주요 전개가 아주 독특해서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어요. 주인공이 의사라 신체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의술을 더 낫게 하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지적으로 아주 뛰어난 인물이라 그의 사고를 따라가는 게 흥미롭기도 했구요.
결국 마지막에 그가 마주하게 된 진실은 이게 그럴 수도 있는 가하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하지만 일단 감탄스러웠구요. 말 그대로 세상을 삼킨 책이라는 제목이 맞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실감을 못할 때도 많은데요. 책의 위력에 대해서 그 안에 들은 지식이 미칠 수 있는 여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철학과 역사가 함께 하는 지적 미스터리 '세상을 삼킨 책' 재밌게 읽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