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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블루 - 그녀가 행복해지는 법 101
송추향 지음 / 갤리온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행복이라는 것은 꽤나 애매모호한 개념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저 개인이 주관적으로 행복하다 그렇지 않다를 나누게 됩니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엔 부러울 것이 없는 부자도 불행하고 가난해서 먹고 살기에 바쁜데도 행복한 경우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이 책 '메이드 인 블루'가 더 궁금했습니다. 소제목이 '그녀가 행복해지는 법 101'이라서요. 제목만 보고서 대충 행복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도 그리 틀린 것은 아니지만 파란색의 딱딱한 표지의 책을 넘기면 각 주제에 맞춰서 사진과 글이 짤막하게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독특하면서 인상적인 데가 있습니다. 이 책은 대충 행복은 이러한 것이다를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너무나 주관적인 그리고 너무나 개인적인 내용의 행복과 생각이 담겨있고 저자가 말하는 행복은 어둠 속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꽃이라는 느낌이 있어서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라 일명 '그녀'의 이야기에서 책이 시작됩니다. 시작하는 이야기 '이미 당신은 충분히 행복하다'의 첫 줄은 이렇습니다. '여기, 결혼 생활 내내 남편에게 욕설과 위압적인 태도에 시달리다가 문자 그대로 '하루아침에' 오른쪽 귀가 멀고, 아이 낳은 지 석 달 만에 살이 30킬로그램 넘게 빠져버려 배만 볼록 나오고 엉덩이는 하나도 없는 난민 같은 몸으로 한 팔에는 젖먹이 아이를 달래고, 한 팔로는 끼니때마다 위장이 상한 남편 먹일 죽을 달이며 지내는 한 여인, '그녀'가 있다.' 이 한 문장을 읽고 순간 멍해졌습니다.
책의 내용이 예상과 많이 달랐던 탓도 있지만 이 한 문장이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라는 점이지요. 심지어 바로 이 '그녀'가 저자라는 점이 가장 충격이었구요. 너무 잔혹하고 너무 슬퍼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남편의 연이은 폭력을 참다가 더 이상 몸이 견디질 못해서 한 쪽 귀가 멀어버리고 어느 날 이혼을 결심했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아이를 위해 못 할일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고 나이 마흔에 월세라 한탄하기도 하지만 그녀가 홀로서는 모습이 오히려 기쁘게 느껴졌구요. 아무리 그 때보다 못하랴 싶어서요.
그리고 시어머니가 도리어 너랑만 있다 오면 아이가 아프다고 한다는 부분이나 아이를 두고 나오지 않으면 이혼해주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은 전남편의 이야기 부분에서는 울컥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 책은 감정을 이입하게 하는 책은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쏟아놓은 것 같은 책이라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그 감정을 흘려버리게 되거든요. 그 감정과 생각 속에 파묻혀 있다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하고 자신이 가진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도 저자가 처한 상황이 극단적인데가 있어서 어느 정도는 동조를 하게 하더군요.
사실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여성, 그것도 본인의 이야기를 전면에 배치하고 그 제목을 '이미 당신은 충분히 행복하다'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데가 있습니다. 상대적 행복이랄까요. 극단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보다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형적이라는 것은 대체로 효과가 있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자신의 행복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에는 딱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자신의 불행을 계속 되뇌는 책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불행했던 순간에서 시작했지만 그 와중에 낳은 딸을 가장 잘한 일이라고 단언하기도 하고 소소하게 사는 즐거움을 말하기도 합니다. 힘들지만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들, 여러 가지 생각이 한 장의 사진과 어우러져서 흘러가는 것은 꽤 마음에 들었구요.
행복도 모호하지만 이 책도 모호한 데가 있습니다. 자기계발서처럼 딱 잘라 어느 부분을 지적하지도 않고 글 자체도 이것이 산문인지 시인지 모호하구요. 그저 흘러가는 순간의 단상을 담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반적 분위기는 우울했지만 그 와중에 말하는 행복이 더 빛나보였습니다. 행복에 대한 짧은 단상 '메이드 인 블루' 인상적이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