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이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바보상자라고 불리는 텔레비전, 많은 죄악과 고통이 날아가고 상자 속에 희망만이 남았다는 신화 속의 판도라의 상자. 상자라는 것은 보통 닫혀있어서 그런지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편이에요. 판도라는 호기심으로 상자를 열었고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못 가본 곳을 보여주거나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보게 만들구요.

여기 또 다른 상자가 하나 있어요. 이 상자야 말로 다른 상자 같이 호기심을 채워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들을 일도 없고 마음 한 구석까지 채워주는 맛이 있네요. 텔레비전 계속 보면 허송세월하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고 판도라의 경우 상자를 열어서 아직도 비난의 대상이지요. 허나 이 책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는 그럴 걱정이 없어요.

일단 책이라는 매체의 이점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씩 읽어도 좋고 단숨에 읽은 후 그 기분을 음미해도 좋은데요. 책에는 64가지 질문과 일본 대표시인이라는 다니카와 슌타로의 답변이 실려 있어요. 책의 겉감이 맨질맨질한 것이 아니라 따뜻한 종이 느낌이 나는 터라 상당히 마음에 들었구요. 책 크기 반 정도 되는 큼직한 띠지를 벗기면 왠 곰이 다니카와에게 보낼 편지를 들고 서 있네요.

책 표지의 일러스트도 좋지만 책 중간중간에 일러스트가 등장해요. 6가지 주제명인 새벽녁 플랫폼, 떠들썩한 깊은 숲, 운동장의 아이들, 친구들에게 온 편지, 해질녁 해변, 출구의 점원들 사이사이에 등장하기도 하고 질문이나 답변에 때때로 붙어 있기도 하구요. 이걸 보는 게 또 다른 숨은 재미네요.

이 책의 진짜 즐거움이야 당연히 제목에서 보여주듯 '무엇이든 대답해준다'는 부분에 있지만요. 가령 가장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 중에 하나인 아이가 죽기 싫다라고 했을 때 어떻게 말해줘야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네요. 그럴 때는 엄마도 죽기 싫다고 말하면서 아이를 안고 같이 울라는 거지요. 그 다음에 같이 차를 마시라면서요. 모든 질문에 말로 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마음으로 답해주라는 설명이 부연되어 있네요.

이 부분을 읽고 많이 감탄했어요. 자신도 모르는 죽음을 아이에게 설명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리고 어떤 질문에 대해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답하라는 부분에서 또 다시 감탄했구요. 너무 머리로만 살아온 게 아닌가하는 반성도 하게 됐네요.

책의 저자가 시인이라서 그런지 책의 전반적으로 감도는 기운은 여유와 상상력이에요. 재치있는 부분도 많아서 웃게 되기도 하구요. 가령 스물 여섯살인 사람의 질문이 '왜 매일 목욕해야 하나요' 였을 때 '스물 여섯이나 돼서 아직도 그런 질문을 하냐는 한탄과 나는 매일 목욕 안 한다'는 답변을 보고는 한참을 웃었어요.

처음 책을 들고는 책 날개부터 읽어서 책의 저자의 이력에 놀랐었는데요. 지금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저자가 생각하는 방식에 놀라게 되네요. 통근길에 힘들다는 사람에게 상상으로 지구를 떠나 은하계로 가보라는 답변을 하는 사람이라니 신선하게 느껴졌구요.

책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아요. 페이지도 이백페이지가 안 되고 중간중간 일러스트가 들어가며 질문도 대답도 대부분 짤막하거든요. 하지만 대답이 짧다고 생각이 짧은 건 아니라서요. 짧은 말 속에 담긴 깊은 생각으로 인해서 여운이 긴 책이고 상당히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또 질문자의 이름도 나와 있는데 중반부에는 일본 내 연예인의 질문도 꽤 되더라구요. 잘 모르는 연예인이었는데 그 연예인 이름 밑에 설명이 쓰여 있어서 알았어요. 이렇게 이름과 나이를 보고 아, 이런 사람은 이게 궁금했구나 할 때가 있고, 나도 그런데 하면서 수긍하게 될 때도 있구요.

짧아서 오히려 더 깊고, 질문자의 독특한 질문에 독특함을 넘어서 새로운 발상과 여유로 받아치는 답변이 인상적인 책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일러스트가 좋기도 했지만 발상이 신선했기에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네요. 상당히 마음에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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