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티 잡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사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렇다. 일단 검은 후드가 달린 망토를 덮어쓰고 있어야 하며 그 얼굴은 눌러 쓴 후드에 가려서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한 손에는 거대한 검은 낫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 낫을 들고있는 손은 물론 하얗고 앙상한 손가락뼈여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 책 '더티 잡'은 기이한 소재의 소설이다. 표지는 신사복을 입은 남성이 유모차를 몰고 있는데 그 안에 익숙한 이미지의 꼬마 사신이 누워 있다. 다만 아이의 머리를 덮는 것은 망토에 달린 후드가 아니라 빨간 리본이다. 더구나 유모차의 장식은 해골모양으로 되어있고 아이의 손에 들린 낫이 반짝하고 빛을 낸다. 은근히 익살스럽고 영혼 수거인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유쾌하게 읽게 되는 소설, 표지를 안 보고 제목만 들은 경우 경찰이 주인공인 줄 착각하게 하는 소설 '더티 잡'.

책의 쪽수는 오백페이지가 넘는데 다행히도 꽤 재밌는 편이라 두툼한 페이지가 흐뭇했지 고역스럽지는 않았다. 주인공 찰리 애셔는 중고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레이첼이라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는 남자다.

이야기는 찰리의 부인 레이첼이 귀여운 딸을 낳으며 시작되는데 이 책 첫머리만 읽어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 찰리는 사실 약간 특이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초음파사진의 탯줄을 아이의 꼬리라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를 찾으려고도 하고 아이의 손가락이 11개라면서 주위사람들의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기야 부인이 아이를 낳는 극심한 환경변화와 장시간의 수면부족을 감안하면 그래도 정상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수준이기는 하다.

그런 그의 인생이 뒤집힌 것은 초록색 옷을 입고 아내 레이첼의 병실에 서있는 남자를 발견하고서부터다. 그 이상한 작자의 말에 따르면 그가 자신을 보는 일은 불가능하다는데, 보이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 이상한 일 직후 레이첼은 숨을 거두고 찰리와 딸 소피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찰리가 남자를 목격했다고 주장했지만 감시카메라 판독결과 그런 장면은 찍혀 있지 않았으므로 찰리에게 항우울제와 진정제를 처방하는 정도로 일단락이 된 것이다.

세상에 잘난 남자를 제외한 부류라는 베타남성에 속하는 찰리는 한참동안을 슬픔 속에 부유하다가, 자신의 딸 소피에게 애정을 느끼면서 원래의 일상 속으로 돌아가려한다. 원래의 일상이라고는 하지만 아이에게 애정을 느낀 순간 집안 전체 모서리란 모서리는 고무로 덧붙여 버리는 안전과 청결 과민증 아버지이기는 하다. 그래도 일단 좋은 아버지인 것은 맞으니 주인공 찰리의 행동이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귀여운 딸과 함께 일상 속으로의 귀환을 바라던 찰리의 앞을 막아선 것은 자신이 정체불명의 직업을 가져야하는 선택받은 자라는 사실이다. 바로 영혼 수거인으로 누군가가 죽으면 그 영혼이 깃든 물건을 수거해다가 다른 사람에게 판매해서 그 영혼의 원활한 다음 생을 돕는 일이었다. 듣다보면 어이없는 내용이지만 제대로 이행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 큰 위험을 초래한다고 한다.

물론 위의 사실을 주인공 찰리가 알아내고 그것을 받아들이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로인해서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시작점도 모든일의 해결점도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이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던 책이었다. 또한 죽음에 대한 유머라고 할지 삶에 대한 유머라고 할지 읽다보면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실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점이 있었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흘러가고 후에는 어디로 달려갈지 모르는 내용이라 읽는 재미는 꽤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 찰리를 서술할 때 계속 '베타남성'이라는 생소한 개념이 사용되는데 그가 꼭 어디가 부족하다기보다 뛰어난 남성이라는 '알파남성'과 대비되는 정도이다. 지나친 상상력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죽음과 관련한 특이한 직업을 유유자적 받아들이는 찰리도 그런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의심하는 점원, 고트족 아르바이트생 소녀, 귀엽지만 어떤 의미로는 최강자인 딸 소피, 동성연애자인 누나 제인처럼 일상 속에 있을 법하지만 어딘가 굉장히 특이하고 생기 넘치는 인물들이 등장해 더 특색 있는 소설이었다.

특이한 소재의 소설을 좋아하고 팀 버튼의 상상력을 반기는 사람이라면 반색을 할 소설 '더티 잡' 매우 인상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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