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 1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재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황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처구니 없게도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준다는 이야기 였어요. 혹은 큰 새라는 애매모호한 이미지였구요. 이 책 '황새'는 황새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네요. 물론 위의 모호하거나 동화적 이미지와 상관없이 육식조류이고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며 오히려 정작 사건의 핵심에서 멀어지게 하는 존재구요.

히치콕 감독의 '새'를 본 입장에서 큰 새는 좀 무서운 편인데요. 이 책의 황새는 그런 점을 가중시키면서 동시에 폭력으로 버무려진 이야기를 완화시키는 이중적 존재에요.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던 주인공 '루이 앙트오슈'가 어느 날 삶의 염증을 느끼고 아르바이트에 응하면서 시작됩니다. 루이는 직업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 때 양부모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일단 지인에게 소개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해주고 몇 달 후에 직장을 잡아주겠다는 것이었지요.

처음 이 양부모의 제의에 양부모가 아주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정작 루이는 양부모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었구요. 후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루이는 양부모가 거액의 돈을 주기도 하고 방이 6개나 되는 아파트를 사주기도 해서 한량처럼 살고 있었지만 양부모와 만난 횟수는 5번 남짓이었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묘한 이야기지요. 거액을 후원하고 보호자를 자처하면서도 서른 살이 넘도록 양아들과 5번 정도 밖에 안 만났다니...

어쨌든 루이는 일단 호기심에 아르바이트에 응합니다. 허나 아르바이트의 내용은 기이한 것이었습니다. 스위스의 유명 조류학자이자 괴짜로도 불리는 막스 뵘이 자신의 연구대상인 황새가 갑자기 돌아오지 않기 시작했다면서 유럽에서 아프리카를 횡단하여 그 원인을 파악해달라는 것이었구요. 보수가 거액이기도 했지만 지금도 부유하게 사는 루이의 입장에서는 돈보다 일에 흥미가 생겨서 황새떼를 추적하고 파악하는 이 아르바이트를 맡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요청했던 막스 뵘은 일이 시작하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맙니다. 그 시체를 제일 먼저 발견한 루이는 큰 충격에 휩싸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뵘은 황새둥지에서 사망했는데, 황새는 어디까지나 '육식조류' 였으니까요. 시체의 상태는 매우 끔찍한 것이었고 루이는 일단 경찰에 신고는 하지만 아르바이트는 없던 일로 하고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원래 생활로 복귀하려 합니다.

하지만 루이가 거짓말을 한 것을 안 스위스 경찰 뒤마는 이색적 제안을 합니다. 수상한 인물이었던 뵘의 흔적을 좇을 겸해서 황새를 추적하라는 것이었지요. 그 때 이미 흐름에 휘말렸던 루이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원래의 아르바이트 내용대로 황새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야 뵘이 예정해뒀던 대로 조력자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 흐르자 조력자 수명이 이미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도 심장이 적출된 상태로 끔찍하게 살해된 것이었구요. 더 끔찍했던 것은 살인자가 피해자를 마취도 하지 않고 심장을 꺼내갔다는 점이었습니다.

점차 짙어지는 음모의 구름에 루이가 멍해하는 사이, 루이 자신도 위협을 받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살인자, 심장이 적출된 시체, 막스 뵘의 시체에 있었던 심장이식의 흔적 그리고 사라지는 황새. 이 때부터 사건은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갑니다. 수많은 피를 뿌려가면서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절대악,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음모, 이에 휘말리고 만 주인공 루이의 이야기 '황새'는 세 가지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황새의 실종'이구요. 일정 경로로 이동했다가 돌아오는 황새가 사라진다는 건 기이한 이야기 입니다. 습성에 안 맞기도 하고 막스 뵘이 키우고 표시로 고리를 달아둔 황새만 사라진다는 게 더 특이했구요. 이 부분은 이스라엘에서 만난 여인 사라가 문제는 하늘이 아니라 땅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풀려나가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는 '심장이 적출되는 시체' 입니다. 뵘의 조력자였던 사람들은 루이가 그 곳에 도착하기 전에 살해당해있습니다. 대부분 짐승의 소행으로 위장되어 있고 그 행위는 잔악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지요. 루이를 죽이려는 살인자가 심장을 가져가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살인자가 또 있는 것인지 복잡하면서도 오싹하게 진행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루이가 뵘 그리고 피그미족 소녀에 대해 파고들면서 풀려나갑니다.

세 번째는 바로 주인공 '루이의 존재 자체' 입니다. 아무 이유없이 이 사건에 휘말린 것으로 보였던 루이는 수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는 끔찍한 참극에서 가족 전부를 잃고 혼자 살아남았으며 그 사건에서 양손이 불구가 된 것으로 나옵니다. 손에는 감각이 없고 지문도 없지요. 양부모는 그에게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소개받은 아르바이트도 조류학자가 아닌 그에게 소개되었다는 점이 미심쩍기만 합니다. 또한 루이는 6살 이전의 기억이 없습니다. 큰 사건으로 인한 기억상실이라고 하지만 그의 진짜 정체가 사실 이 책 '황새'를 관통하는 진짜 미스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엉키고 설키면서 전개되는 미스테리 스릴러 '황새', 잔혹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 분위기를 잘 살린 것도 그렇고 긴박하게 전개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결국 가장 사악한 것은 인간이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구요. 첫 시작에서는 두렵기만 했고 어둠의 상징 같았던 황새가 이야기의 마무리에서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자유의 상징 같이 느껴졌어요. 스릴러 소설 답게 뒷부분에서 모든 의문이 풀려갈 즈음의 통쾌함과 감탄은 최고였구요. 매우 재밌게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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