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답을 알고 있다 - 물이 전하는 놀라운 메시지
에모토 마사루 지음, 양억관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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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착한 분에게 선물을 받아 단숨에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책을 선물하신 분은 '이 책이 말하는 것처럼 앞으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물을 대할 때 정성스런 마음가짐으로 하라'면서 애정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 분이 특별히 내게 이 책을 선물해 주신 뜻이 무엇인지 잘 알겠기에 그 분의 마음은 일단 감사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게 책을 선물하신 그 분과도 같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에 감동받은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격찬하는 상황은 자칫 위험한 듯 보인다. 최소한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순진하게 받아들일 성질의 것은 아니다. 책이 말하는 표면적인 주제들 즉,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갈 것, 가시적인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경외, 우주와 생명에 대한 신비감 등등의 이면에는 독자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은연중에 받아들이게 되는 더 큰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표면적인 주제와는 정반대로 비춰진다. 그래서 난 솔직히 이 책이 약간은 무섭다. 그리고 이 책이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많은 이들의 인식에 파고드는 상황이 두렵고 걱정스럽다.

무엇보다도 먼저 짚고 넘어갈 사실은 이 책이 과학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당수 독자들은 이 책에 실린 물의 결정 사진을 보고 각각의 특수한 조건 하에서 물의 결정 모양이 달라지는 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인 후 여기에다 의미를 덧붙여 감탄하게 되는데, 이 결정 사진들은 과학적인 기준으로 보건대, 사실이 아니다. 즉 엄밀히 말해 거짓이다. 이는 저자도 책 말미에서 뚜렷이 밝히고 있다. 저자는 특정한 조건 하에서 물의 결정이 늘 이 책에 실린 것과 같은 한 가지 모양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고백한다.

물론 저자가 가설로 제시한 물의 결정 변화는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가능성과 의미를 인정할 수는 있겠다. 식물의 성장에 인간의 애정, 특정장르의 음악 등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일정 정도 과학적으로 인정받은 것처럼 물의 결정 역시 그러한 외부 조건의 영향으로 모양이 변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의 마음가짐이 '생명'에 있어 그다지도 중요하다는 사실은 현대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매우 고무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나의 문제의식은 이 책이 과학적이냐 비과학적이냐는데 있지 않다. 나의 의문은 이 책이 표방하고 있는 세계관과 철학에 있다.표면적으로 저자는 인간의 의식이 물의 결정을 변화시키듯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의식이 물질과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이 메시지에 많은 독자들이 감동한다. 개신교 신학대학, 천주교회 등등 종교인들에게 이 책이 특히 인기있는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물질 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현실에서, 신이 외면당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부재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이 과학자는 이렇듯 아름답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고 있구나... 하고.

하지만 그의 논리에 따르면 그러한 힘을 가진 인간의 의식은 바로 다른 것이 아닌 물질에서부터 온다. 표면적으로 그는 의식이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하지만 이는 오히려 정반대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이 물로 이루어져 있기에 물에 다름 아니며 인간 생명을 비롯한 지구 생명이 우주의 물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라고 추켜세우는 듯한 인간의 의식은 우주의 물에서 기원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그는 책에서 물이 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물도 인간도 동일하게 우주에서 왔고 동일한 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이 물의 의식과 통교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인간의 의식에 따라 물의 결정이 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사상이자 주제이다. 이 책에 열광하는 순진한 그리스도교인들, 과연 이 책이 당신들의 종교에 부합하는 사상일까... 당신들의 종교가 지금껏, 그리고 아직도 이단시하는 사상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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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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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담배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 했는데, 그렇다면 그는 성공한 셈이다. 그의 소설은 정말 그가 말하는 담배같다. '유독하고 매캐한, 조금은 중독성이 있는, 읽는 자들의...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호흡을 곤란하게 하며 다소는 몽롱하게 만든 후, 탈색된 채로 뱉어져 주위에 피해를 끼치는...' 그의 소설은 너무나도 담배 같아 그의 소설관이 이러저러해 이런 소설을 썼다기보다는 쓰고 나니 꼭 담배 같이 느껴져 나중에 붙인 이름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왔지만 아직 대다수 작가들의 신체 연령에 못미치기 때문인지 작가들에게서 '동시대성'을 느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서야 김영하라는 작가에게서 동시대성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소설에서 동시대성, 동감, 동질의식 등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러나 단지 작가와 내가 비슷한 연령대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까닭은 그의 소설이 담배같기 때문이 아닐까. 내 주변에도 널려 있는 듯한 친근함, 그리하여 그것에 서서히 빠져들어감, 잘난체 하지 않음, 똑똑하거나 선한 것에 약간 비껴있음 등등의 요소가 그의 글을 매력있게 만든다.

이 단편집에 첫번째로 실린 '사진관 살인사건'은 방송 단막극으로 제작된 것을 원작도 모른채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단막극은 그의 글을 거의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었고 그 탁월한 스토리는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한 편의 소설이 별다른 변형 없이 티비 드라마로 제작되어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점은 그의 소설이 지닌 장점을 역설하는 좋은 근거일런지도 모른다. 이 역시 그의 소설이 담배같기 때문은 아닐까. 모든 이를 빨아들이고 즐기게 하는, 그러나 내 일상의 한 단면을 파고들어 나를 알지 못할 불편함에 이르게 하는. 때로는 금연론자들의 얼굴에 담배 연기 한 모금을 훅~ 내뿜어대고 싶듯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려는 새로운 도발을 꿈꾸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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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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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단숨에 읽힌다는 것, 한 번 잡으면 쉬 놓기 힘들다는 건 분명 좋은 책의 미덕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그 역의 명제, 그리고 이의 명제가 성립하는 건 아니다. 쉽게 읽힌다고 해서 모두 좋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고 좋은 책 모두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들은 빠른 시간에 읽을 수 있지만 그 책들에서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 소위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은 얼마나 읽기가 힘들고 읽는 일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가.

하지만 어떻든, 단숨에 읽히는 책과 그러한 서사 능력을 지닌 작가를 만나기 힘든 현실에서-아무리 천천히 읽더라도-불과 서너시간만에 읽을 수 있고 읽고 난 후 많은 기쁨을 주는 이 책은 소중한 보석처럼 느껴진다. 난 이 책을 단 하루, 출퇴근 시간을 빌어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통렬하다. 아마존의 원시적인 자연의 힘에 대비시켜 '백인'으로 표상되는 미국 자본주의 체제와 아울러 소위 '문명' 자체를 비판하고자 하는 소설의 메시지는 혹 새로운 것은 아닐지 몰라도 생생한 에피소드들에 자연스럽게 얽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문체와 구성 만큼이나 그 메시지는 박진감있고 생명력이 넘친다.

번역자가 언급했듯 이 책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자의 말처럼 헤밍웨이의 노인이 자기와의 싸움을 위해 죽을 힘을 썼다면 이 책의 노인은 생명의 근원, 본원적 힘을 찾기 위한 싸움에 나선 것이다. 이러할 때 이 두 투쟁의 목적과 양상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견될 만하다. 주체를 찾는 근대적 인간상에게는 자연을 비롯한 모든 외부 환경이 정복과 투쟁의 대상일 뿐이지만 새로운 시간이 요구하는 인간상은 자연과 문명의 공존을 이루는 생태지향적인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과연 그러한 메시지가 명확히 드러났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우리는 과연 '노인이 왜 살쾡이와 사투를 벌여야만 했는가. 무엇을 얻기 위해서? 그 투쟁은 이후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었나?'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하나둘씩 툭툭 던져지다 종래에 가서는 살쾡이와의 사투 부분으로 모든 이야기가 집결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쉽게 소설에 흡인될 수 있고 이야기가 집약되는 종결 부분에서 에피소드들의 완성을 바라보며 흐뭇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어쩌면 결말은 너무나 뻔해지고 주제의식은 희석되는 것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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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낚시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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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김영하의 한 친구는 '죽었다 깨나도 저런 걸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엄습해와야 예술 작품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 역시 하나의 작품을 굳이 예술이냐, 아니냐로 따질 때 그런 잣대를 대곤 한다. 하지만 그 잣대는 '나도 제발 저런 걸 만들 수 있었으면'하는 마음의 투사로 바뀌곤 한다.

김영하의 영화 에세이 <굴비낚시>를 읽으면서 느낀 점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그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으므로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느낌은 글 하나 굉장히 깔끔하군, 쌈박하군, 지적이군, 모던하군 등등... 종횡무진 자유자재로 자신의 생각을 펴대는 그가 부러웠다.

그가 일컫듯 그의 작업이 '굴비낚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암튼 그는 무한히 자유롭고 똑똑한 반항아 같아 보였다. '공식' 영화비평가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걸 보면 비평가들을 끊임없이 의식하던가 영화 문법에 맞는 소리를 하기 위해 조바심을 내고 있다던가 하기 마련인데 그는 달랐다.

그는 제일 먼저 '오! 수정'을 들어 홍상수의 작품을 리얼리즘이라고 분류하는 일련의 비평을 타당하게 뒤짚어 놓는 것에서부터그의 굴비 낚시를 시작한다. 누구나 인식론적 문제에 빠지게 되는 '매트리스'를 보고는 잡탕이라고 단순하게 규정짓고 '쉘 위 댄스'에서는 춤으로 표현된 인간의 욕망과 이를 억압하는 사회기제들을 맹렬히 비판한다.

게다가 지저분한 현실을 드러내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들에 빗대어 '미학적 마조히즘'이라 명명한 건 또 얼마나 기발한 발상인지. '대부 2'를 서정과 정치라는 씨줄과 날줄로 분석한 것은 똑같은 내용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골치아프게 적어 놓은 영화평들을 일거에 날려버린다.

그의 영화 에세이는 영화 문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나만의 느낌과 생각을 찾아내려 하지 않고 영화 비평가들의 목소리에 기대어 이를 이식하려 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앞에 두고 일어나는 '죽었다 깨나도 나는 저런 걸 못 만들거야'라는 감정과 '죽었다 깨어나 제발 나도 저런 걸 만들고 싶다'라는 양가적인 감정... 오랜만에 만난 매력적인 작가 앞에서 나도 이제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만의 것으로 꿰어 묵는 '굴비 낚시'를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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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결혼이다
우애령 지음 / 하늘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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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뛰어난 독자서평을 보고 책을 구입했다. 그러나 곧 실망. 책보다 나은 독자서평에 속았다고나 할까. 책에 관한 호평은 아마도 책 자체에 그 이유가 있기보다는 평소의 문제의식을 이 책을 통해 재발견한데 있는 듯 했다. 결혼이라는 주제에 관련한 훌륭한 책들도 많은데 우연히, 그리고 하필 이 책과 만나게 됐고 감동하게 된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저자의 견해가 건강하고, 포용력 있으며, 지혜롭다는 것 물론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저자 세대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그런 것일뿐, 최소한 20,30대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생각들의 나열에 불과했다. 결혼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 젊은이들이 어디있겠는가. 하지만 이 책은 본인이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것을 뭐 대단한 일인양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외국생활과 사회생활로 좀 깨어있고 열려있는, 고상한 중년부인의 자기 만족적인 글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글쓰기 방식도 그러하다. 상담가들이 내놓은 대부분의 책이 그러하듯이 이 책 역시 에세이라는 본연의 글쓰기 작업에서 벗어나 이리저리 인용해온 얘기들로 가득한 데에는 정말 지루함이 묻어났다. 영화, 문학, 그외 책들에서 빌려온 수많은 이야기들은 나름대로 빛나는 해석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이, 자주 인용되어서 글의 흐름을 방해했고 밑천이 딸리는 지식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이러한 글쓰기 방법을 왜 저자같이 능력있는 이가 비판없이 사용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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