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책이 단숨에 읽힌다는 것, 한 번 잡으면 쉬 놓기 힘들다는 건 분명 좋은 책의 미덕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그 역의 명제, 그리고 이의 명제가 성립하는 건 아니다. 쉽게 읽힌다고 해서 모두 좋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고 좋은 책 모두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들은 빠른 시간에 읽을 수 있지만 그 책들에서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 소위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은 얼마나 읽기가 힘들고 읽는 일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가.

하지만 어떻든, 단숨에 읽히는 책과 그러한 서사 능력을 지닌 작가를 만나기 힘든 현실에서-아무리 천천히 읽더라도-불과 서너시간만에 읽을 수 있고 읽고 난 후 많은 기쁨을 주는 이 책은 소중한 보석처럼 느껴진다. 난 이 책을 단 하루, 출퇴근 시간을 빌어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통렬하다. 아마존의 원시적인 자연의 힘에 대비시켜 '백인'으로 표상되는 미국 자본주의 체제와 아울러 소위 '문명' 자체를 비판하고자 하는 소설의 메시지는 혹 새로운 것은 아닐지 몰라도 생생한 에피소드들에 자연스럽게 얽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문체와 구성 만큼이나 그 메시지는 박진감있고 생명력이 넘친다.

번역자가 언급했듯 이 책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자의 말처럼 헤밍웨이의 노인이 자기와의 싸움을 위해 죽을 힘을 썼다면 이 책의 노인은 생명의 근원, 본원적 힘을 찾기 위한 싸움에 나선 것이다. 이러할 때 이 두 투쟁의 목적과 양상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견될 만하다. 주체를 찾는 근대적 인간상에게는 자연을 비롯한 모든 외부 환경이 정복과 투쟁의 대상일 뿐이지만 새로운 시간이 요구하는 인간상은 자연과 문명의 공존을 이루는 생태지향적인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과연 그러한 메시지가 명확히 드러났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우리는 과연 '노인이 왜 살쾡이와 사투를 벌여야만 했는가. 무엇을 얻기 위해서? 그 투쟁은 이후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었나?'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하나둘씩 툭툭 던져지다 종래에 가서는 살쾡이와의 사투 부분으로 모든 이야기가 집결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쉽게 소설에 흡인될 수 있고 이야기가 집약되는 종결 부분에서 에피소드들의 완성을 바라보며 흐뭇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어쩌면 결말은 너무나 뻔해지고 주제의식은 희석되는 것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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