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낚시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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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김영하의 한 친구는 '죽었다 깨나도 저런 걸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엄습해와야 예술 작품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 역시 하나의 작품을 굳이 예술이냐, 아니냐로 따질 때 그런 잣대를 대곤 한다. 하지만 그 잣대는 '나도 제발 저런 걸 만들 수 있었으면'하는 마음의 투사로 바뀌곤 한다.

김영하의 영화 에세이 <굴비낚시>를 읽으면서 느낀 점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그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으므로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느낌은 글 하나 굉장히 깔끔하군, 쌈박하군, 지적이군, 모던하군 등등... 종횡무진 자유자재로 자신의 생각을 펴대는 그가 부러웠다.

그가 일컫듯 그의 작업이 '굴비낚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암튼 그는 무한히 자유롭고 똑똑한 반항아 같아 보였다. '공식' 영화비평가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걸 보면 비평가들을 끊임없이 의식하던가 영화 문법에 맞는 소리를 하기 위해 조바심을 내고 있다던가 하기 마련인데 그는 달랐다.

그는 제일 먼저 '오! 수정'을 들어 홍상수의 작품을 리얼리즘이라고 분류하는 일련의 비평을 타당하게 뒤짚어 놓는 것에서부터그의 굴비 낚시를 시작한다. 누구나 인식론적 문제에 빠지게 되는 '매트리스'를 보고는 잡탕이라고 단순하게 규정짓고 '쉘 위 댄스'에서는 춤으로 표현된 인간의 욕망과 이를 억압하는 사회기제들을 맹렬히 비판한다.

게다가 지저분한 현실을 드러내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들에 빗대어 '미학적 마조히즘'이라 명명한 건 또 얼마나 기발한 발상인지. '대부 2'를 서정과 정치라는 씨줄과 날줄로 분석한 것은 똑같은 내용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골치아프게 적어 놓은 영화평들을 일거에 날려버린다.

그의 영화 에세이는 영화 문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나만의 느낌과 생각을 찾아내려 하지 않고 영화 비평가들의 목소리에 기대어 이를 이식하려 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앞에 두고 일어나는 '죽었다 깨나도 나는 저런 걸 못 만들거야'라는 감정과 '죽었다 깨어나 제발 나도 저런 걸 만들고 싶다'라는 양가적인 감정... 오랜만에 만난 매력적인 작가 앞에서 나도 이제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만의 것으로 꿰어 묵는 '굴비 낚시'를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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