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늦게 퇴근하면서 애들 얼굴도 제대로 못보는 날이 많은 요즘 형편에 20일로 예정되었던 종은이 유치원의 <아빠와 함께하는 기차여행>에 참석하기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다. 11월 중순 까지는 휴일출근도 당연하게 생각돼 있는 상황에서 프로젝트원 개인이 아니라 특정부분을 책임지고 있다보니 하루를 뺀다는게 심리적으로 부담이 컸다.
그렇다고 종은이 입장에선 1년에 단한번 있는 아빠랑 행사에 유치원 친구들은 다 아빠랑 온다는데 혼자만 못갈까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현관입구에 '아빠 기차여행 같이 가요'라고 커다랗게 써놓기도 하고 책상위에 딴에는 이쁘게 카드도 만들어 두기도 했다. 거기에 기차여행의 목적지가 현충사라서 이순신장군에 대한 퀴즈를 맞춰야 상품을 받는다고 공부하라는 독촉전화도 가끔씩 내게 했었다.
겨우겨우 토요일 시간을 만들고 금요일 저녁 일을 다음날로 미루지 않으려고 늦게까지 회의하고 있는데 10시 30분쯤 핸드폰 벨이 울렸다. 가뜩이나 짜증나는 사유로 4시부터 시작된 회의가 끝나고 있지않아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종은이녀석이 기껏 물어온 이야기가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 때 처음 싸운 곳이 어딘줄 알아요?'였다. 상태가 안좋은 내가 좋은 대답을 할리는 만무하고 '몰라. 지금 바쁘니까 끊어.'라고 답하고 계속 회의를 했다.
늦게 회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며 녀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직도 제대로 아빠노릇하기는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있는 이순신장군관련 아이들 책을 찾아서 답이 옥포해전이란 걸 확인하고야 잠자리에 들었다.
추운 날씨에 떠난 기차여행이 바쁘고 생활에 지친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또하루의 시간이긴 했지만 참석한 아빠들 모두가 아이들의 맑고 밝은 얼굴에서 그간의 힘들고 어려운 일상을 잊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애들엄마가 뭐가 제일 재미있었느냐는 물음에 종은이가 아빠랑 같이 뛰고 놀았던 걸 답하는 걸 듣고 나름 뿌듯한 느낌도 들었다.
오늘 하루는 힘든 휴일 출근으로 보내겠지만 그래도 커다란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