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로 황진이가 방영된지 얼마 안됐는데 또다른 버젼의 영화 황진이가 나왔다. 기존의 예기 황진이가 아닌 새로운 모습의 황진이를 보여준다고 공언했고 홍석중의 원작 소설을 <접속>의 감독으로 알려졌지만 <파업전야>의 감독이기도한 장윤현감독이 오랜만에 연출을 맡은 작품이라 기대가 컸다.


TV 드라마를 보진 못했지만 드라마가 황진이의 예술적 면모와 사랑을 다루었다면 영화 황진이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여성의 당당한 삶을 소재로 했다. 황진이와 벽계수, 서화담 등과 얽힌 이야기 하나쯤은 다들 알고 있지만 반상의 구별이 뚜렷했던 시대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황진이의 모습은 요즘 같은 시대에 잘 어울릴 듯 했다.
그런데 과한건 모자람만 못하다 했던가? 계급의 모순 속에서 위선적이고 백성들의 고혈을 빠는 양반과 거기에 기생하는 아전들을 비판하고 놈이와 개똥이처럼 이름없는 민초들의 삶을 강조하고 그속에서 빚어지는 황진이와 놈이의 애정이야기가 강하다보니 시대의 굴레을 깨뜨려 나가는 여성 황진이의 모습이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옅어진 느낌이었다.

자신의 신분을 알게된 후 절름발이 양반 기생으로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송도 제일의 기생이 되어 오로지 효자문과 위신을 위해 자신을 버린 가문과 도덕과 학문을 내세우면서도 욕망에 굴복하는 벽계수와 같은 양반들을 비웃으며 백성들과 함께 시대의 아픔을 같이하는 황진이의 모습이라면 충분했을텐데 지나치게 많은 얘기들을 담아내려다보니 2시간 20분이라는 짧지 않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구조가 허술하고 부족한 느낌이었다. 황진이가 고난을 겪는 과정도 부족하고 화적이 돼서 백성들을 보살피는 놈이와의 교감 부분도 부족하다.
양반과 지배층들의 부도덕과 탐욕을 보여주며 진정 백성들이 원하는 세상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좋았고 무척 소중한 시도였지만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엔 스토리가 빈약했다. <다모>나 다른 사극에서 보여줬던 화려한 액션으로 볼거리를 제공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뒤에 감춰진 민초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다 보니 황진이와 놈이의 관계가 남녀간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도 아니고 시대의 굴레에 맞서 함께 싸우는 동지적 모습도 아닌 어정쩡하게 서로를 바라만 보는 모습이었다.
송혜교가 새로운 모델이 황진이를 보여주기에는 아직 부족해 보였다. 이제 겨우 두번째 작품을 끝낸 그녀에게서 스크린을 가득 채워주는 존재감을 요구하기엔 지나친 기대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순풍산부인과의 막내딸이나 가을동화의 은서에서 느껴지던 것보다는 조금은 성장한 모습이지 않나 싶다. 심은하가 초반 청승가련-절대 청순가련이 아니다.-한 모습만 보여주다 어느정도 연륜이 쌓이며 <미술관옆 동물원> 이후 진정한 연기자로써의 모습을 보여줬던 것처럼 앞으로 그녀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성장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기대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