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8일(헐 벌써 한 달이 다 지난..) 부산 국제신문사 대강당에서 조국 강연회가 있었다. 조국 트위터에서 보고선 달력에 표시까지 해두고 손꼽아 기다리다가 갔다. 강연 1시간 전부터는 사인회가 있었는데 살면서 줄까지 서서 사인 받기도 처음. 정작 당사자는 누구한테 해줬는지도 모르는 그런 사인, 받는 거 별로 좋아라하지 않지만. 그래도 조국 사인은 꼭 받고 싶었다.ㅎ
<진보집권플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두 권 다 챙겨서 일찍 도착. 국제신문사는 옛날에 휴학했던 2년 간 아르바이트했던 곳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대강당이 4층이라서 엘리베이터 탈 생각은 아예 안 하고 바로 계단으로 직행했는데, 비상구 으스스하고 허접한 건 여전하구나 싶고.
올라갔더니 로비에 사람들이 두 줄로 서 있다. 하나는 책 판매하는 줄이고 하나는 사인 받는 줄. 일찍 가서 그런지 줄이 짧았는데 나중에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강연 시작이 좀 늦어졌다. 앞줄이 점점 짧아지고 한 명 남았을 때 은근 긴장.ㅎㅎ
안녕하세요. 저 두 권이에요. 하며 책을 슥 내밀었더니 아이고, 하시며 이름을 물어보신다. 땡땡땡요. 내 이름은 끝자를 숙으로 잘못 듣는 사람들이 많아서, 받침 없이 그냥 수에요. 했더니 날 올려다 보시며 허공에 ㅜ자를 그리신다. 수.요. 네^^ 서명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손목에 약간의 경련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조국이 트위터에 인용했었던 도종환의 시 <담쟁이>가 좋아서, 서명 문구로 "담쟁이처럼" 써달라고 하고 싶었는데(예스24인가에서 한정판 친필서명본에 저 문구가 들어간 걸 봤었다) 입 속으로만 꿍얼거리다 왠지 떨려서 말 못했다.ㅋ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강당으로 휙... 좀 아쉽다. 하지만 내겐 정말 말 그대로 "건승"이 필요한 때이긴 해서, 네 건승할게요. 이 책 꽂힌 책장 볼 때마다 속으로 대답한다. 하하하.
강연은 두 권의 책에서 읽은 내용이 압축된 것이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꼭 동의하진 않더라도 대체로 다 납득하고 수긍할만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들. (책도 읽고 강연 메모도 해왔는데 이제사 다시 정리해서 쓰려니 참 번거로운 걸..;)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다보니 쉽게 얘기하시려는 모습이 역력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것도 모르게 몰입도가 좋았고 재미도 있었고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던 것도 좋았다. 준비된 강의보다는 즉석에서 오고가는 이런 말들이 더 흥미로우니까. 많이 웃었다.ㅋ
본인의 언행 하나하나가 당을 대표하는 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어서 당적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심히 공감하며 감동했고, 주변에 이민가고 싶다는 분들이 많은데 그럼 안돼죠 버텨야죠 할 때, 폴리페서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앙가주망의 길을 지켜갈 것이라고 할 때, 그리고 또, 여러 번,,, 마음에 물결이 일었다. 이런 어른이 있다는 것이 참 든든하구나. 개인적인 출세만 보고 달리자면 꼭대기까지 오르고도 남을 분이 단호한 표정으로 양심을 말하고 따뜻한 눈으로 공동체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렇게 감명을 주는구나. 차후 계획중이시라는 시민운동에 뜨거운 지지를 보내며.
어느 날 오후에는, 너무 졸려서 정신 좀 차릴 겸 <아침의 문>을 집어 들었다. 올해 수상작이 나오고 나서야 작년 책을 펼쳐든다. 매번 이렇게 한 템포씩 늦는 나를 또 깨닫고. 크게 또는 작게 나는 항상 이렇게 늦다. 인생의 큰 줄기에서도 그렇고 아주 사소한, 이런 책 한 권 읽는 일에서도 그렇고, 이러다 죽는 것도 늦어지는 거 아닌가 싶다. 아 그건 좀 싫은데.
암튼 단순히 잠 깨려던 목적은 완전 초과달성. 시작 좀 지나자마자 온 몸에 한기가 돌았고 그대로 얼어붙은 채 손가락으로 책장만 넘겼다. 이 짧은 소설을 받아내던 그 짧은 시간이, 가만가만 돌이키고 있으려니 몹시도 길게 느껴진다.
너무 서늘하고, 슬프다. 직선적이고, 노골적이고, 그래서 너무나도 생생하게 피부에 와닿는,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딱 소설같은" 이야기일 것이나 엄연히 내가 살아가는 이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꿈같은 현실. 극도의 아이러니가 충돌하는 디스토피아를 본다. 한쪽에서는 아이를 낳으라 하고, 한쪽에서는 아이를 죽이려한다. 한쪽에서는 인생은 60부터라며 멋진 노년의 삶을 그리고, 한쪽에서는 고작 스무살도 너무 힘들어 스스로 삶을 놓아버린다.
세상은 점점 살기 좋아지는 것 같은데, 모두가 살기 좋아지는 세상은 아닌가보다. 아니, 이미 누군가에겐, 살기 힘들어지는 수준을 넘어 죽기 좋아지는 세상인지 오래. 경제가 발전하고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평균수명도 점점 늘어나는데 그 경제발전의 이면에서, 과학이 발달한 뒷편에서, 생활수준이 높아진 그늘에서, 늘어난 평균수명만큼 또 늘어나는 죽음들. 늘어난 만큼 줄어드니, 그러면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목숨의 양에는 변화가 없는 걸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새삼, 높아지는 평균수명의 수치가 참 많은 비밀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삶과 죽음이 정면으로 맞닥뜨리던 마지막 순간엔 심장이 얼었다. "적어도 콘크리트보다는 따뜻한 인간이, 하물며 울지 말라고 속삭일" 때는 좀 뜨겁게 웃었다. 덕분에 심장도 녹아내렸지만.
아 정말, 세상, 좀, 힘들어도 괜찮은데 좀 그만그만하게 살만하게만 힘들었으면 좋겠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을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면 기사를 보면 세상 정말 요지경이라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이게 뭐냐고. 왜 귀한 목숨들이 이런 식의 문을 통해 만나야 하냐고... 어휴.
그리고 어제는... 예약주문했던 <지식e> 6권이 도착해서 바로 읽었다. 선명한 주황색 바탕에 박힌 보라색 로고가 예뻤다. 이번 테마는 "사람". 眞진실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善선한 마음을 잃지 않으며 美아름답게 살다 간, 살고 있는 사람들.
<의사 장기려>에서 툭. 울컥. 줄줄. “제가 뒷문을 열어 줄테니 어서 나가요” 돈이 없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의사. 못 먹어서 병이 난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주라고 처방한 의사... 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알래스카에 매료된 사진작가는 곰에게 편지를 쓴다. <언젠가 너를 만나고 싶었어>. 그리고 무방비 상태로 출사 야영을 하다가 그토록 사랑했던 곰의 습격을 받으며 죽어간다. 그게, 안타깝다기보다는... 최소한의 보호장비조차 갖출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온 마음을 다해 알래스카를 사랑한 사진작가가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조금이라도 내게 해가 될까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닌 거라는 거...
<새끼 양과 산책하는 사자 리틀타이크>를 보면서도 줄줄. 약하고, 여리고, 착하고, 그러면서 의롭고 그런 것들이 주는 감동은 어찌할 수 없는 거 같다. 특히 짐승들의 그것은 사람에 비교할 수 없이 가슴을 울린다. 야성의 본능을 거부하는 사자. 우유와 곡물로만 식사를 하고, 우유에 조금이라도 핏방울이 섞이면 모조리 토해내버리는 사자. 화상을 입었을 때 내내 곁에서 상처를 핥아주고 옆을 지켜준 고양이를 누군가가 데려간 후 몇 달간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했던 사자. 그런 사자. 사자의 반려자였던 부부는 말한다. "우리의 고민은 이 아이가 사람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 아이에게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자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집 안에 사자가 있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땐가 야생동물은 야생에서 살아가도록 두는 것이 동물들에게도 좋은 거라는 걸 알고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마음을 접었다(어차피 실현되기도 힘든 일이어서 접는다 어쩐다는 게 웃기긴 하지만). 역시 생태계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게 옳은 일이기도 하겠고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사자를 반려동물로 삼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혹시 이미 있을까?) 꿈은 꿈으로만 남게 되겠지..만. 어쨌거나 어린 시절 꿈꾸던 일을 실화로 보게 되어 행복했던 순간.
아인슈타인, 패러데이, 월리스, 루이스 칸의 이야기도 감동적이었고 안나 폴리트코프스키야와 마지막 밥말리를 보면서도 글썽거렸다. 하지만 확실히 예전같지는 않은 것 같다. 전달하고자하는 객관적인 사실만큼이나 주관적인 메세지들이 주는 감동도 꽤 컸었는데, 그저 사실 자체가 주는 감흥 이외에 지식e만의 그 압축된 멘트에 실려있는 에너지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내가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실제로 지식e의 힘이 약해진 건지... 그러나 여전히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요즘엔 계속 입에 달고 있는 노래가 모두 이들의 곡이다. 툭 하면,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웅얼웅얼한다.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 이건 너무나 평범해서 더 뻔한 노래
어쩌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듣는다 해도 서로 모른 채 지나치는 사람들처럼
그 때 그 때의 사소한 기분 같은 건 기억조차 나지 않았을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슬퍼 사실 아니라고 해도 난 아직 믿고 싶어 너는
이 노래를 듣고서 그 때의 마음을 기억할까 조금은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 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때, 그 때의 그대
-보편적인 노래
사랑 노래 이별 노래를 들으면 다 자기 얘기 같고 뭐 그런 건데, 특별히 이렇다 할 경험이 없는 내게는 어차피 모든 노래가 보편적인 노래라서 이 노래가 아주 이질적으로 들린다. 애초부터 보편적인 노래가 될 노래가 없고 보편적인 날들이 될 날들이 없으니깐.
그러고보면 나 참 재미없이 살았다 싶은데, 당시에는 전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이성에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다 바보같고 멍청해보이거나 너무 단순무식해보여서 혐오스럽기까지 했으니까. 게다가 난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혼자 살아가는 것도 버겁다는 생각에 짓눌려 있었고, 그래서 누군가를 받아들일 여력이 조금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냥 쉽게 사귀는 성격이 절대 못 되는 건 그렇다쳐도 그렇게까지 벽을 쌓고 살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모든 노래가 보편적인 노래인 인생. 나쁠 건 없지만 가끔은 좀 암울한 것도 사실이라. 훔.
설명하려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
그렇지만 그게 왜인건지 내가 이상한 것 같아
나의 말들은 자꾸 줄거나 또 다시 늘어나
마음 속에서만 어떤 경우라도 넌 알지 못하는 진짜 마음이 닿을 수가 있게
꼭 맞는 만큼만 말하고 싶어
이해하려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있어
그렇지만 욕심 많은 그들은 모두 미쳐버린 것 같아
말도 안 되는 말을 늘어놔 거짓말처럼
사실 아닌 말로 속이려고 해도 넌 알지 못하는 그런건가 봐 생각이 있다면
좀 말같은 말을 들어보고 싶어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나도.. 점점 자꾸 말이 줄거나 또 다시 늘어난다. 표현력도 떨어지고 어떨 땐 내 생각 자체가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다기보단 꼭 부연설명을 해야 상대방이 아.. 하게되는 그런. 암튼 얘기하다보면 막 부족한 표현으로 말하려니 아예 말이 잘 안 나오거나 오히려 이것저것 늘어놓으며 말이 많아진다. 결론은 알맹이도 없고 혼자 횡설수설하는 인간이 되어버리고. 증상은 나날이 심해지는 거 같은데, 뭔가 해결방도가 없다.; 근본적으로 나 자신을 일반적인 기준에 맞게 리뉴얼하지 않는 이상. 그렇다고 뭔가 아주 독특한 생각을 한다는 게 아니고 단순히 어떤 규정된 주류적인 정서로부터 자꾸자꾸 멀어지는 것 같은 거다. 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2절은 조곤조곤하지만 은근 후련하다. 이렇게 착하게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욕심 많고 미친 그들.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졸업식
처음 들었을 때 좀 울었다. 졸업을 앞두고 꽃망울처럼 설레야할 마음이 이미 초라한 절망과 위로로 누더기가 되어버린 이십대 청춘. 축하해. 가 아니라 행복해야해. 잊지 않을게. 라고 인사를 하는 광경이 하나의 흑백사진처럼 쓸쓸하게 떠올랐다. 이 곡의 어디가 문제라서 방송불가판정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아니 사실 어떤 단어가 귀에 거슬려서 그러는 건지 눈에 다 보이지만, 이런 노래나 금지하는 유치해빠진 어른들이 좌지우지하는 나라에 사는 젊은 그들이 가여워, 미치겠다.
울지마
네가 울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작은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세상이 원래 그런 거라는 말은 할 수가 없고
아니라고 하면 왜 거짓말같지
울지마
네가 울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뭐라도 힘이 될 수 있게 말해주고 싶은데
모두 다 잘 될 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 뿐이지 그렇지 않니
그래도
울지 마
-울지마
대체로 뜬구름잡는 말들이 많았지. 괜찮아 잘 될거야, 박카스 한 병 먹으면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 같고 You're gonna shine 이라고 끊임없이 되뇌이면 정말 밝은 날이 올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런 막연하고 달콤한 말들에 많은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런 노래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그래, 그건 말일 뿐이지. 구체적으로 뭐가 잘 된다는 건데.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근데 사서 할만한 고생이 있고 굳이 내가 안 해도 될 고생이 있더라. 돌도 씹어먹을 나이. 그래도 돌은 못 씹겠더라. 그리고 씹으니 병 나더라.
브로콜리 너마저의 가사가 참 좋다. 진짜를 건드리고 꺼내주는 이 기분이 상쾌하다. 내 안의 틈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맑게 채워주는 이 기분이. 입으로 되뇌일수록 가슴엔 잔잔한 통증같은 게 느껴지는 이 싸한 기분이.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아니 그래서 더 예리하고 차가운, 평이해 보이지만 몹시도 많은 생각을 하고 쓴 것 같은, 쉽고도 깊은 노랫말.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