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롱이 19990823-20170319

 

2주 전 일요일 아침에 다롱이가 하늘나라로 갔다. 2월 말에 갑자기 호흡이 불안정해서 병원 다녀오고 또 3월 중순에도 병원에 갔다오면서 이제 정말 마지막인가 싶었다. 그러면서도, 몇 년 전 전신마비가 심하게 와서 죽을 뻔했을 때 잘 이겨냈던 기억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늘어지면서 이번에도 괜찮아질 거라고 기대를 하고 있었나보다. 막상 떠난 자리가 너무 먹먹해서 아직도 툭하면 눈물바람.. 일상을 회복하지 못 하고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작년 8월 또 다시 심하게 마비증상이 왔을 때부터 내내 불안했다. 치료받고 괜찮아지긴 했지만 언제 또 쓰러질지 몰랐다. 햇수로 19년이니 이제 정말 나이도 너무 많았고, 하루하루 기력이 다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까만 눈망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꼭 끌어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언제까지 너를 이렇게 안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너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까, 니가 없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2월 말에 병원에 갔을 때는 기어이 원장님 앞에서 펑펑 울었다. 몇 년 전에는 그렇게 온몸이 뒤틀린 걸 보고도 막연히 살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갈 것 같다고 마치 지금 죽기라도 한 듯이 거의 통곡;을 했다. 마음의 준비라는 게 슬픔을 덜어주는 일이 아니라 결국 그 기간만큼 더 길게 슬퍼하는 일이더라.

 

숨을 거둔다,는 게 무엇인지 눈으로 봤다. 떠나기 전 며칠은 움직이질 못 해 기저귀를 차고 있었고 주사기로 물과 약을 조금씩 흘려넣어 먹이고 있었다. 그 날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물을 먹이려고 주사기를 갖다댔는데 깡, 소리를 내며 거부하더니 방석 모서리에 고개를 걸친 채로 숨을 몹시 가쁘게 내쉬었다. 동공까지 흔들리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가쁘던 호흡이 천천히 느려졌고, 멈췄나 싶은 순간 움찔하면서 다시 숨을 쉬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숨을 쉬듯 한 번, 또 한 번, 길게 내뱉고는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 짧은 시간이었다. 내가 쏟은 눈물에 젖어 축축한 다롱이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다롱이는 일찌감치 이별의 인사를 했던 것 같다. 떠나기 이틀 전 병원에 다녀오고 상태가 좀 좋아져 잠깐 걸어다닐 때, 거실로 천천히 나가길래 화장실 가나 하고 지켜봤다. 그런데 패드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거실 한가운데로 가더니 마치 집안을 훑듯이 여기저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가만히 서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너무 짠해서 또 울컥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그게 우리 가족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였구나 싶었다. 엄마와 둘이 사는 집에 언니나 동생이 오면 여기저기 방을 왔다갔다하느라 거실을 빨빨거리고 돌아다녔었는데, 가족들이 모두 있었던 때를 기억하면서 그렇게 한 명 한 명에게 작별인사를 했던 것 같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이었다. 아무리 죽을 고비를 잘 넘겼어도 자연수명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어서 결국엔 이렇게 이별을 맞고야 말았다. 태어나면 죽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고, 평균수명을 훨씬 넘겼으니 천수를 누린 것이고, 자연이기에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머리로는 수없이 되뇌어도 마음은 전혀 그렇지가 못 하다. 똘망똘망한 까만 눈동자를 보고 싶고, 보드라운 등줄기를 어루만지고 싶고, 코끝을 비비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데 눈앞이 허하고 손이 허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문득문득 방에 들어설 때마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다롱이가 있던 곳에 시선이 박힌다. 아무 것도 없지만 아무 것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텅 빈 공간들. 왜 강아지는 수명이 이렇게 짧은 것인지 부질없는 원망마저 하는 사이에 벌써 2주가 지났다. 2주 전이 너무 아득하고 앞으로도 이 아득함을 어떻게 감당해낼 지 모르겠다. 여파가 작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데미지가 너무 크다...

 

다롱아. 우리한테 와줘서 정말 고맙고 너무너무 많이 행복했고... 너를 마지막까지 지켜볼 수 있었던 것 또한 슬프지만 큰 행복이라고 생각해. 네 덕분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따뜻한 것이 되었는지 가늠도 할 수 없어. 너도 우리와 함께 한 시간동안 부디 행복했기를 바라고, 우리 잊지 말고 나중에 꼭 마중나와야 돼... 그 때까지 안녕. 안녕 다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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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4-02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저도 울고 있네요. 그래도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사랑과 보살핌을 많이 받고 갔다고 생각하고 위안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다롱이 안녕...

건조기후 2017-04-02 23:49   좋아요 0 | URL
네... 끝까지 할만큼 했고 다롱이도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별은 늘 힘들고 아프지만 이 이별은 차원이 다르네요 ㅜㅜ

다락방 2017-04-0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건조기후님 ㅜㅜ


다롱아, 안녕.

건조기후 2017-04-02 23:50   좋아요 0 | URL
안녕...

rosa 2017-04-03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다롱이도 행복하게 잘 지내다 갔을 거라 생각합니다.
슬프고 아픈 마음 잘 다독이시길 바래요.

건조기후 2017-04-03 12:44   좋아요 0 | URL
나이 먹을수록 애틋해서 마냥 애지중지였지만 예전엔 짜증내고 귀찮아한 적도 많아요 ㅜ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갔기를...

단발머리 2017-04-0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조기후님... 힘드셨겠어요. ㅠㅠ
마음 잘 추스리시기 바랍니다.
다롱아.... 안녕...

건조기후 2017-04-03 12:45   좋아요 0 | URL
2주면 꽤 시간이 지난 건데 아직도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 않아요 에혀.. ㅜㅜ

치니 2017-04-03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롱이 무지개 다리 저 편에서 건조기후 님을 기다리고 있겠지요. 저도 저희 두리가 벌써 만으로 11살이 되니 늘 마음 한 켠 각오를 다지게 됩니다. ㅠㅠ 그래도 다롱이, 많이 힘들게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건조기후 님도 물론 그런 생각을 하시겠지만, 지금은 너무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을 따름이겠죠. ㅠㅠ

건조기후 2017-04-04 09:35   좋아요 0 | URL
네.. 숨이 가빠 힘들었겠지만 너무 고통스럽게 시달리다 가지는 않아서 저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끝까지 병원에 다니면서 좋아질 거라고 기대를 하긴 했지만, 그래서 더 오래 살기를 원했다기보다는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거든요... 마지막을 그래도 좀 편하게 맞게 해준 것 같아서 마음에 조금은 위안이 돼요.

스윗듀 2017-12-21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건조기후님 서재에 들어왔다가(사실은 다락방님 서재로부터~~ㅋㅋㅋㅋ) 첫글이 다롱이와의 이별이야기라서 얼마나 눈물을 쏟았는지 몰라요 ㅠㅠ 저는 아직 만 1살도 되지 않은 루피랑 함께 산지 이제 막 6개월이 되려고 하는 신삥(?)인데도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똘망똘망한 까만 눈동자와 내 눈이 마주칠 때 샘솟는 애정과, 보드라운 등줄기를 어루만지고, 코끝을 비비며 사랑한다고 말할 때 우리들의 마음이 모두 같기 때문이겠죠. 건조기후님의 아픈 마음과 아득함에 저도 너무 마음이 아프고, 그리고 아직 멀지만 저에게도 이런 날이 올것임을 알기에 한바탕 눈물을 쏟은 다음에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와서 댓글 남겨요;) 이제는 건조기후님의 슬픔이 조금은 옅어져 행복한 곳에서 기다릴 다롱이를 생각하며 간간히 웃고계시기를 바라며...이제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도 써주셔요!ㅎㅎ

건조기후 2017-12-22 15:01   좋아요 0 | URL
아아 네 오래 전 페이퍼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만 한 살이라니 정말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행복하시겠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함께 하시길 빌어요. ^^

다롱이가 살만큼 살고 갔고 벌써 9개월쯤..이나 지났는데도 슬픔이 잘 가시지 않아요. 에휴... 너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