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4주

요샌 그냥 아무 생각없이 웃는 게 좋아서 영화도 그런 것만 찾게 된다. 최근에 제일 재미있게 본 영화는 단연 <조선명탐정>. 벌써 개봉한 지 한 달이나 됐고 평도 좋아서, 이번 주말엔 어떤 영화를 볼까..같은 덴 적당하지 않은 거 같지만 ; 영화가 정말 재밌고 좋았어서 1순위로 꼽고 싶다.

딱 마노아님 리뷰 제목처럼 "깨알같은 재미"가 최고인 영화. 아직도 생각만하면 웃음이 터져나오는 장면들이 많다. 김명민이 목소리 굵은 관원(?) 따라서 얘기하던 장면이나 오달수가 그 코끼리만한 개들이 훈련이 안 됐다며 기다려. 기다려. 하던 장면같은 것들.ㅋㅋㅋㅋㅋ  

오달수의 감초 연기도 재미있었지만 한결 산뜻하고 가벼워진 김명민이 정말 최고였다. 주책맞고 경망스럽지만 언뜻언뜻 정색 모드로 돌변해(이것조차도 웃겼지만) 적당히 중심을 잡아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 포스터를 보니까 "딱 적당한 깨방정" 표정이다 싶다. 이미지 변신한다고 너무 막나갔으면 역효과였을텐데 물론 김명민이 무리하게 앞서가려고도 하지 않았겠지만.. 정말 이 정도가 딱이라고 심하게 감탄했던지라.

마당의 흙이 흐트러진 흔적을 보고 종을 때려 가둔 걸 추측하는 장면같은 건 신선했고, 예상가능한 반전이나 스토리의 헐렁한 짜임새같은 것도 그냥 그것대로 좋았다. 흠을 잡으려면 잡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별로 흠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기분 좋고 유쾌한 영화였다. 각시투구꽃의 비밀도 따뜻해서 좋았고. 

<평양성>은 가볍게 보면 그런대로 괜찮은데 보기가 영 편하지는 않았다. 백제(전라)-신라(경상)-고구려(북한) 구도 속에서 지역적 특성이랄까 그 지역민들의 습성같은 것을 비꼬는 방식이 좀 짜증났고 그것이 풍자가 아니라 그냥 비난에 인신공격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막 웃으며 잘 보던데... 나는 솔직히 좀 졸았다. 황정민이 상스럽게 내뱉는 사투리도 전혀 웃기지 않았다. 웃으려고 보러 갔구만... ;;

<황산벌>은 무지 재미있게 봤었는데. 포스터의 카피도 황산벌 쪽이 "아쌀하다". 황산벌처럼 아쌀하게 거시기 해불고 말 것이지 괜히 햇볕정책이며 이것저것 끌어들여서... 개운한 맛이 없다. 백제군인들 마구잡이로 살상하던 갱상도 출신 문디도 자꾸 누가 떠올라 기분 나쁘고. 내가 너무 억지스럽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본 탓인지도.. ; 어쨌든 오오, 연개소문의 막내아들 남산으로 나온 강하늘 군 눈에 확 들어옴.ㅎ 

<웰컴 투 동막골> 이 영화를 본 게 5년 전이던가 6년 전이던가. 극장에서 나와서도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멧돼지 잡는 장면이랑 옥수수가 팝콘되어 눈처럼 내리던 장면이 압권이었던. 슬로우 모션으로 돼지와 사투를 벌이던 장면에서 진짜 숨 넘어가게 웃었었다.ㅋㅋㅋㅋㅋㅋ 그 돼지로 바베큐 파티하면서 서로 마음을 열어가던 남한군과 북한군, 미군, 그리고 마을 사람들. 그저 사람인, 사람들.  

웃은만큼 좀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 이거 갑자기 너무 다시 보고 싶네... 이 영화로 유행어가 된 "마이 아파"는 그냥 귀여운 강원도 사투리가 아니라 모든 걸 함축하는 진짜 명대사다. <평양성>에서도 거시기가 울분을 토하지만, 전쟁이라는 거 입으로 하는 사람 따로 있고 진짜 목숨 걸고 몸뚱이로 싸우는 사람 따로 있는 거 아닌가. 오래 전 찰리 채플린도 이런 말을 했단다. "전쟁은 40대 이상만 가라.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전쟁에 안 가니까 쉽게 결정해서 젊은 사람들만 죽게 만든다"  니들은 전혀 아프지 않지. 근데 우리는 마이 아파. 쫌 아프면 병신되고 마이 아프면 죽어.   

 

코믹 시대극이라고 하기엔 좀 짬뽕인 영화지만 시원한 액션과 경쾌한 음악이 좋았던 <전우치>. 여러가지 특수효과들이 볼 만하고 출연 배우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김윤석의 묵직한 카리스마와 유해진의 유쾌한 카리스마가 서로 어울려 빛나고  

매사에 자신만만 휘적휘적 까불거리고 다니는 전우치 역의 강동원도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일상적인 캐릭터보다는 이렇게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훨씬 잘 어울리고 그게 또 역으로 현실감을 주는 배우. 확실히 TV드라마의 친근함보다는 스크린에 채워지는 말 그대로의 "영화 속 캐릭터" 같은 거리감, 신비감이 압도적이다. 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고 강동원의 팬이 됐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그다웠던 캐릭터는 전우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의 <초능력자>에서의 초인도 캐릭터상으로는 어울렸지만 영화 자체가 영.. ;

<전우치>도 스토리 전개에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저 가볍게 재미있기엔 부족함이 없는 영화다. 어차피 눈으로 즐기라고 만든 영화니까. 강동원이라서 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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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2-2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플린 이야기가 인상적이에요. 어휴... 마이 아파요...
강동원 캐릭터 얘기도 설득력 있어요. 강동원은 정말 비현실적 느낌이 커요.
전우치 같은 영화 더 했으면 좋겠어요. 무척 재밌었어요.^^

건조기후 2011-02-28 13:00   좋아요 0 | URL
채플린의 말은 조국 강연회에서 들었어요. 엉망이 된 대북관계와 전쟁불사론자들을 비판하면서요.
강동원 좋아요ㅠㅠ 으으으^^
마노아님 보니까 버터링쿠키가 생각나요. 헤헤. 지금 사은품으로 주더라구요.
읽지도 않을(것이 분명한-_-) 책 또 질러야하나 고민하면서 장바구니는 이미 채웠어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