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터넷 가상공간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와서 유니텔,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등의 인터넷 통신이 유행했었고, 난 그 중 생긴지 얼마 안된 유니텔에 들어가서 놀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사이버 공간의 채팅방은 건전했다. 요새는 순수한 의도의 채팅방들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학교홈을 찾아 가입을 했고, 거기서 놀았으며, 록 동호회와 철학 동호회에도 기웃거렸다.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에 비해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았고 소수의 사람들끼리의 친밀함은 더욱 따스했다. 주로 학교홈에서 활동을 하던 어느날 처음으로 벙개 라는 것을 했고, 5-6명이 모인 그 자리는 정말 편안했다. 이곳에 우리학교 사람은 아니지만 자기 오빠가 우리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우리 학교홈에 가입해 놀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얼굴을 모른 채 평소 그녀가 쓰는 글을 읽고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약간 엽기적인 면도 있는 듯 하고, 생각이 깊은 것 같고, 외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두운 면도 있어 보이는 그녀를 나는 좋아했었나보다.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참을 만나지 못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사이버 상에서 대화를 하고 서로의 글을 읽었다.

 그러다 언제나와같이 학교홈에서 벙개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그녀가 처음으로 나왔다. 학교 근처의 어느 한 호프집에서의 만남. 겨울이었다. 털스웨터같은 것을 입고 앉아있는 그녀를 난 처음 봤지만 한순간에 알았다. 글로 접했던 채팅으로 접했던 그녀의 이미지와 일치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이미 학교홈에 있는 다른 선배가 있었고, 나는 먼 발치에서 마냥 볼 수 밖에 없었다. 남친이 있음에도 그녀와 나는 가상공간에서는 여전히 대화를 나누었고, 문자질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그 선배와 깨졌고, 내게 전화했다.

 "뭐하니?"

 한살 어리지만 항상 내게 반말이었다.

 "어 동아리 방에서 애들이랑 드럼치구 기타치구 해"

 전화속 목소리에서 약간 우울함을 느꼈다. 그리고 말했다.

 "영화보여줄까?"

 "그래 좋아"

 그리곤 단 둘이 처음 만남을 갖었고, 아마도 그때 영화 '가위'를 봤을 것이다.

 이후 잦은 만남이 있었고, 햇빛 내리쬐는 날 서울대공원에 놀러가기도 했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깊숙히 공원안으로 들어왔을 때 비가 내렸다. 소나기였다. 쏴아쏴아. 이런! 난 우산이 없었다. 그녀는 우산을 가지고 있었다. 우산을 펴고 내가 손에 쥐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다 사라졌다. 저어기 멀리 정자에 피해있었다. 우리는 우산을 가지고 느긋하게 내려왔다. 천천히. 갑자기 내린 소나기는 바닥에 흥건히 빗물을 고이게 만들었고, 신발이고 양말이고 바지고 다 젖었다. 우산을 받쳐 든 나는 그녀가 비를 맞을까봐 그쪽으로 기울였고, 내 오른쪽 어깨는 죄 젖었다. 그녀가 내쪽으로 다시 기울이면 난 다시 그녀쪽으로 기울이고. 천천히 내려와 정자에 도달했다. 우리는 앉아 비를 피했고 젖은 내 어깨를 손수건으로 닦아줬다.

 아마도 그때였지 싶다. 서로 눈이 맞은 것이. 그리곤 다음에 만났을 때 여의도 공원에서 한참을 돌아댕기다가 난 어렵게 아주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앉아서 한 세시간은 보냈을 것이다. 사귀자고. 조건이 있단다. 집에는 알리지 말자고 한다. 집에서 남자친구 사귀는거 안좋아한다고. 그러자고 했다. 또 두 가지인가 더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두 다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사귀었다. 여의도 공원을 떠나 집으로 향하는 길.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리고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약 3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우린 헤어졌다. 어느날 밤 걸려온 전화.

 "우리 헤어지자"

 "... "

 난 울먹이며 말했다.

 "왜...."

 "오빠를 좋아하는거 같지만 사랑하는거 같진 않아"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순간 머리 속에 이 생각이 떠올랐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면 될 거 같았다. 하지만 답은 내 머리 속에 없었다. 가슴 속에도 없었다.

 "... "

 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음날 우린 만났다. 전에 그녀가 종로를 지나가다 이쁘다고 했던 목걸이를 난 어젯밤 그녀의 전화를 받기 전에 준비해놨었다. 돈이 없어 그때 당시 사주지 못했지만 점심 굶고 용돈 모아 목걸이를 샀고, 다음에 만나면 주려고 했는데... 주기전에 이별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목걸이인 것을. 헤어지는 마당에 난 그거을 전해주었다. 목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날 안아줬다. 그녀의 집으로 바래다주었다. 그게 끝이었다.

 다시 시간이 많이 흘러 일년쯤 지나고, 난 군에 입대했고, 100일 휴가를 앞두고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에게서. 그녀가 내게 메일을 보냈노라고. 난 내 홈페이지와 메일계정을 동생에게 맡기고 갔다. 동생이 알려준 것이다.

 "보고싶다. 100일 휴가 나온다며? 만나자... "

 기뻤다. 하지만 순간이었다. 또 다시 우리가 만난 날은 세차게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왜 만나기만 하면 비가 오는건지. 이번에도 옷이 죄다 젖었다. 커피숍.

 "우리 다시 사귀자"

 내가 말했다.

 "아냐. 그건 아닌거 같아."

 그녀가 말했다.

 부대 복귀. 몇 차례 편지를 보냈고, 전화를 했지만 다시 연락이 끊겼고 그게 다였다. 나와는 달리 인터넷 공간을 별로 안좋아하던 그녀는 다음메일도 쓰지 않았고, 싸이도 안했으며, 그 어느 곳에도 터를 만들지 않았다. 절대 찾을 수 없다. 집도 이사갔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제대했고, 졸업했으며, 돈벌이에 나섰다. 그리고 한 사람을 다시 만났다. 함께 면접을 봤고, 함께 교육을 받았고, 함께 일했다. 함께 밥을 먹었으며,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며 손을 잡았고, 우린 사귀자는 말 없이 사귀었다. 서로 열정적으로. 시간이 흘렀고 난 다른 곳에 갔고 만날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난 바빴고 이것저것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그녀를 만나는 동안에도 다른 생각이 항상 머리 속을 채우고 있었다. 잠깐 헤어졌고, 다시 만났으며, 또다시 헤어졌다.

 "헤어지자"

 내가 말했다.

 "그래"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순간 냉정히 돌아서버린 내 모습에 적잖이 충격받은 듯 했고, 실망한 듯 했으며, 배신감을 느낀 듯 했다. 당연했다. 정말 한순간이었으니까. 나도 놀랐을 정도로. 나도 이유를 모를 정도로. 다만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었고, 현존하는 나의 마음, 실존하는 나의 마음은 이미 멀어졌다는 것이었으니깐. 난 그것만 믿고 돌아섰다.

 욕도 많이 먹었다. 난 침묵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으므로. 다시 시작하자는 말도 들었다. 이번에도 침묵했다. 내 마음은 이미 돌아섰으므로.

 그토록 짧은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사랑한 적도 처음이었고, 짧은 시간 동안 여러곳을 돌아다니고, 서로의 주변 사람들을 소개받고 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녀 때문에 밤을 샌 것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던 것도 처음이었다. 이전의 사람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좋은 사람이었다.

 

 본래 이런 주제로 글을 쓰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연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처음에 내가 쓰려던 것은 가상공간에서의 집짓기였는데...

 

 첫번째 그녀가 헤어짐의 이유로 든 말.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 를 나는 아직 모른다. 좋아함이 깊어지면 사랑하는거 아냐? 난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두번째 그녀와 헤어지게 된 원인. 그것은 어쩌면 나의 현실도피였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현실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사랑을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 그러나 헤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미안하다. 처음의 그녀 YS에게도, 나로 인해 상처받은 그녀 MA에게도. 난 부족하고 미숙한 사람이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이드 2005-07-2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제목도 연애면서. 그나저나 그나이에 100일 넘는 연애를 못한다는건 정말 충격이에요.

이잘코군 2005-07-26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러게나 말이에요. 그냥 만난 사람은 많은데... 제가 별로 사람들간의 접촉이 없어서 그런가. 맨날 왕따놀이하느라.

책속에 책 2005-07-2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쩐지 마음아픈 얘기네요..연애도 사랑도 어려워요..@.@

이매지 2005-07-2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그 미묘한 차이는 저도 아직은 모르겠어요-
인간 관계는 어려워요 어려워.

릴케 현상 2005-07-2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런 경험 해 본 적 없어서 신기한 느낌이에요^^

이잘코군 2005-07-2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드리머님 / 네... 연애도 사랑도 어렵습니다. 어릴때나 조금 나이 먹었을 때나...
이매지님 /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요. 정도의 차이같은데.
산책님 / ^^ 사랑의 경험은 누구나 다 다르겠죠. 산책님에겐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경험들이 있을테고...
나침반님 / 첫방문 감사합니다. 저도 제가 행복하기 위해 연애도 사랑도 했던거 같은데요. 몇년을 하루처럼 만난다는 것...
 


  슬슬 대박의 기미가 보인다. 예고편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며 관객들의 이목을 끌던 <아일랜드>가 개봉했다. 극장마다 이 영화를 빼놓은 곳이 없고, 심지어 내가 이 영화를 봤던 극장에서는 <아일랜드>만 8개 상영관 중 4개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박.조.짐.

<나쁜녀석들> <더록> <아마게돈> <진주만> 등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마이클 베이 감독. 그리고 말 해 더 무엇하랴 <트레인 스포팅> <필로우북>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벨벳 골드마인><물랑루즈><스타워즈><블랙호크다운><영아담> 등을 통해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모두 한가닥씩 한 영화들이고, 뭐하나 빼놓을만한 작품이 없다. 최근 그가 상영관에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스타워즈 3 : 시스의 복수>를 통해서인데 이 영화 막 내린지 얼마 안된 지금 <아일랜드>라는 영화로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난 사실 그에게 별다른 매력은 못느끼겠지만 많은 여성들이 그를 좋아라 하는 것 같다. 도대체 너의 매력이 뭐니.

<아일랜드>의 또다른 주연인 스칼렛 요한슨. 그녀의 이름은 솔직히 처음 들어본다. 이 여자 84년생 이라고 하는데 헐. 나보다 나이 많아보이던데?? 84년이면 몇 살이지? 22살? 22살 치고는 이 여자 경력이 꽤 화려하다. <나홀로 집에 3> <베이브는 외출중> <프릭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의 영화들에 출연했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난 모른다. 그 중 내가 본 영화는 <나홀로 집에 3> 와 <프릭스> 정도인데 거기서 누구로 나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주위에 이미 <아일랜드>를 본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가는 기대만큼은 아니고 그냥 볼만한 영화 라는 평이 다수를 이룬다. <우주전쟁>을 볼 때도 주위 사람들의 혹독한 평가에도 꿋꿋하게 영화를 보고 나 역시 그들의 의견에 합류했다. <아일랜드>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관람후 소감이 다 거기서 거기인듯 하다. 나 역시도 그다지 확 사로잡는 그런 뭔가를 느끼지는 못했고, 최고의 영화다 라고도 말 못하겠고, 그냥 그럭저럭 괜찮았던 영화라는 정도로 소감을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 조던 2 - 델타로 나오는 스칼렛 요한슨. 리얼세계에서 그녀는 모델이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후 인간복제는 현실화 되었고, 사람들은 조금 더 오래토록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욕심으로 일종의 보험을 들어놓는다. 자신의 복제인간을 배양하여 나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그들을 이용해 보완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장기가 파손되어 긴급히 내 몸에 맞는 장기를 대체해야한다면 그 누구보다 나의 유전자로 복제된 복제인간의 그것을 가져오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또,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면 내 남편의 정자를 복제인간에게 수정시켜 대신 아이를 낳게 할 수도 있다. 담배를 많이 피워 폐암에 걸렸다면, 술을 많이 마셔 위암에 걸렸다면, 복제인간의 폐와 위를 내것으로 새롭게 가져올 수가 있다. 절대 건강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막지대의 땅 속에 묻혀있는 또다른 삶. 그곳에는 진짜 세계의 사람들의 복제인간들이 모여 살고 있다. 그들은 그곳 이외의 공간의 존재는 전혀 모른다. 우리들은 지구환경오염으로부터 생존한 인간들이며, 이곳에서 오직 아일랜드라는 환상세계, 꿈의 세계로 가는 희망을 간직한 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통제받는 사회. 일어나자마자 스케줄을 알려주는 전광판, 방금 본 소변에서 나트륨이 과다 검출됐다는 등, 잠자는 동안 꾼 꿈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으니 검진을 받아보라는 등의 메세지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먹을 것도 마음대로 못먹고 몸의 영향분을 조절하여 필요한 영향소만 주입하도록 되어있고, 남녀간의 사랑도 금물이며, 신체 접촉도 당연히 금지된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또다른 이상세계 지상낙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일랜드로 가기를 희망한다. 매일같이 무작위 추첨을 통해서 아일랜드로 갈 사람들이 뽑힌다. 그러나 그들이 상상하고 희망하는 아일랜드는 말 그대로 상상이고 희망일 뿐이다. 실제 그런 곳이란 없다. 아일랜드는 오히려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 사회다. 곧 바로 죽음과 직면하게 되니깐. 리얼 세계에서 건강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은 때가 되면 보험처럼 들어놨던 복제인간을 통해 신체 일부분을 이식받게 된다. 피부, 눈, 심장, 콩팥, 위, 폐 등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

복제인간 링컨 6 -에코는 여기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 그는 통제된 구역의 리얼인간과 접촉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지구상에 멸종했어야 할 생명체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한밤중에 통제구역의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리얼 세계로. 그곳에서 이미 아일랜드로 갔어야 할 동료들의 죽음을 엿보게 되고, 충격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날 밤 추첨에 당첨된 절친한 동료 조던 2- 델타를 구하기 위해 금남의 구역으로 들어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뛰쳐나온다.



* 복제인간의 배양 모습.

영화 <아일랜드>는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복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복제양 둘리가 체세포 분열을 통해 자라났고, 지금은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배양에 힘쓰고 있다. 복제에 관한 인류의 기술을 날로 발전해가고, 함께 영화를 본 동물생명자원학과의 친구에 말에 따르면 그렇더라도 인간을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은 하지만, 나는 왠지 무섭다. 영화 속의 모습이 단지 영화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의도로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 필요할 때 그들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해서 아마도 감독은 "그렇지 않다. 그들도 생명이고 인간이다." 라는 대답을 내놓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다수의 관객들이 그와 같은 감독의 의도에 공감을 할테고.

함께 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쟤네 둘이 도망칠 때 빨리 잡혀들어가야되는데 라고 생각했어."

"클론은 클론일 뿐이야. 클론이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어."

"인간이 자신의 생명이나 건강을 위해서 지금도 온갖 동물들을 이용해서 실험하고 있는데, 차라리 그러면 같은 종족을 대상으로 그런 실험을 해야된다고 생각해.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관점에서 인간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적 인권이 있다고 하고, 동물은 그렇지 않다고 하고. 그럴바에야 차라리 같은 종족인 클론을 만들어서 그들을 대상으로 실험하고 이용하면 되는거지."

순간 뒷통수를 팡~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구나. 하하. 나도 인간이 자신들의 미적 욕구와 건강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다른 종족인 동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우리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화장품, 식품, 약 등의 모든 것은 동물을 대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라는 결과가 도출된 다음에야 인간에게 적용되고 있다. 즉 인간은 동물을 이용하여 자기이익을 꽤하고 있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지구를 지배한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인간만이 가장 우월하고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적인 인권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 정말 무섭다. 이건 도덕책에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인간이 더 우월하다고. 쩝. 그래서 난 도덕책이 싫어.

하지만 그렇다면 다른 종족이 아닌 같은 종족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야한다. 좋다 여기까지는. 그런데! 왜  하필 클론을 만들어 그들을 이용한단 말인가. 같은 종족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 온전히 태어난 리얼 인간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숨쉬고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존재들이다. 분명 아파 누워있는 식물인간 상태의 리얼인간보다 그들이 훨씬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복제된 상품으로 취급한다. 영화 속에서도 그들이 도망 칠 때 리얼인가은 말한다. "제품이 도망치고 있다" 라고. 하하하. 물건이 도망치다니. 이런.

만약 인간의 신체가 복제 가능하다면 나는 클론을 만들 것 아니라 신체의 일부만을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필요한 부분만 말이다. 콩팥이 필요하십니까? 그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심장? 폐? 눈? 피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생명체로서의 클론을 만들어 그들을 이용하고 폐기처분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걔들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생산된 제품일지는 모르지만 완성된 제품으로 출고되었을 때 그것은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다. 살아있고 느끼고 생각하는 인간. 리얼인간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친구는 인간복제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지금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점차 기술이 발전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보완점을 찾아낼 것이고, 결국 영화와 같이 우리는 완전한 형태의 복제인간을 만들어 낼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들을 인간 취급할 것인지, 상품 취급할 것인지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리얼인간들에게 달려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릴케 현상 2005-07-26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보셨군요...
신체의 일부만을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영화 내용에 나오잖아요^^ 그러면 부작용이 크다고

책속에 책 2005-07-26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월광천녀'라는 만화 보셨어요? 전 이 영화 내용 듣고는 바로 그 만화가 떠오르던데...얼개가 비슷하거든요...각국의 지도자급의 자녀들의 클론을 만들어 외딴섬에서 격리시켜 키우다가 신체일부를 적출해가는 것까지....그 이후엔 알수없는 우주와 신 혹은 힘에 의해 줄거리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로 꾸며지지만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original 인간보다 클론이 더 강하게 성장해요..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이렇게 추상적으로 쓰지만..아무튼 자신이 클론이라는 사실에 대한 분노, 살고 싶다는 열망, 원망등이 클론을 더 강한 개체로 만들지요..
과학이 인간의 신체를 정복할 수는 있지만 결국 인간의 정신 또는 혼이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다고나 할까요...소름끼치도록 오싹해지는 만화지만 꼭 한 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히나 2005-07-26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동물도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보험상품'으로 학대하는 게 가능할까요? 그래서 우리는 외계인을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리잖아요.. 암튼 마이클 베이 감독에게 큰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스칼렛 요한슨은 괜히 나왔다 싶더군요.. ^^;

이잘코군 2005-07-26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 그랬었나요? 그런 말이 나왔나..? 왜 기억이 안날까. 훕...
데이드리머님 / 만화 제목은 들어본거 같은데 보진 못했어요. 흠 내용이 거의 흡사한가봐요. 이 영화에서도 클론과 리얼인간이 만났을 때 클론이 더 뛰어나보이죠. 링컨.
스노드롭님 / 그러게나 말입니다. 겉으로는 똑같죠. 그런데 사람들은 상품취급하잖아요. 흠. 먼 미래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 35선
현진건 외 지음 / 타임기획 / 1993년 5월
평점 :
절판


 

 이 소설로 오늘 수업하고 왔다. 철학연구소에서. 흠. 연구소가 자꾸만 일반 논술학원이나 학교 국어시간으로 변질되어 가는거 같아서 요즘 수업을 하면서도 별로 마음에 안든다. 책 선정하는 것도 그렇고, 교재도 그렇고. 어쨌든 오늘은 중학교 1학년과 현진건의 또다른 작품 <B사감과 러브레터>라는 소설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 짧은 소설을 전부 다 읽은건 이번이 처음인거 같다. 분명 이 소설 중고등학교 책에도 나왔던거 같은데 -전문은 아니지만- 왜 다 읽진 않았을까. 부분적으로만 기억이 나고 전체는 생소한 걸로 봐서 난 이 책을 처음 본게 틀림없다. 예전에 최인훈의 <광장>과 <회색인>을 읽을 때도 그러더니. 중고등학교 정규 국어 수업을 제대로 받았다고 하는 - 난 모범생이었으니깐 날 표준으로 보아도 좋아 (퍼퍼퍽) - 내가 이 소설을 비롯해 한국 근대 소설들이 생소하다면 우리네 학교교육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현진건의 작품으로는 <빈처><운수좋은날><B사감과 러브레터><무영탑><적도> 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나마 친숙한게 며칠전 읽은 <운수좋은 날> 뿐.

 <B사감과 러브레터>는 <운수좋은날>보다도 더 짧다. 10분도 안걸린다. 정말이지. 과거엔 왜 이렇게 짧은 단편들이 많았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한국 근대 소설에는 대부분 이와 같은 짧은 단편들 뿐이다. 지금 우리네 소설계는 적어도 최소한 400쪽 정도 두께의 한권짜리 소설이 제일 짧은거 아닌가? 누구 내게 이 의문점을 해소해주오.

 <B사감과 러브레터>. 등장인물. 여학생 셋. B사감. 남학생. 끝.

  여학교 기숙사를 담당하는 B사감. 절대 그녀의 손에 들어오는 러브레터는 온전치 못하다. 뜯어서 내용파악까지 다 하고 해당 여학생을 불러낸다. 이 남학생 어디서 만났어! 밖에서 행실치 온전치 못했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냐?! 등등등. 그 못생기고 주름진 얼굴에 안경위로 째려보는 그녀의 눈을 감당할  여학생은 없다. 그런데 어느날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여학생 셋 방에서 나와 소리나는 곳으로 조용히 걸어간다. 어이쿠. 이게 뭐냐. B사감의 문을 살짝 열어보니 이 노처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네. 웃찾사 동수를 불러다 내어 안고 애정행각을 하는 것인가. 허공에다 대고 뭔짓이래.

 그녀들의 반응이란,

 "저게 웬일이야"

 "아마 미쳤나 보아"

 "에그 불쌍해"

 세 여학생의 이 각양각색의 반응들. 첫번째의 놀라움과 두번째의 사실감과 세번째의 안쓰러움이 한데 엮여 전달되는 반응. 그랬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못생기고 늙어서 남자가 여태 없었지. 그리고 자기가 없으니깐 질투심에 여학생들에게도 남자들이 접근 못하게 하려고 했던게지. 그리고는 밤에 혼자 이상한 짓거리를 하며 가슴 속에 억눌린 욕망을 어떻게든 풀어보려 했던게지.

 인간의 욕망을 부정할 수는 없다. B사감이 학생들 앞에서 보여준 겉모습과 그녀들이 잠든 야밤의 B사감의 진실된 모습은 극명하게 다를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녀도 여자다. 흙. 그녀도 인간이다. 어찌 욕망이 없을소냐.

 도덕적 엄숙주의가 우리네 과거를 지배했다면 지금은 이것으로부터 많이 해방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의 마음을 해방시킨다. 욕망을 발산시킨다. 그렇담 이제 문제는 없는걸까. 또다른 의문이 생겨난다. 나의 마음 속에서.

 모순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B사감. 누구나 모순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나도 이를 부정하지 않겠다. 나 역시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분명 같지는 않다. 단정적으로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같지는 않다. 나에게도 나의 내면에 타인에게 섣불리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즈마리 2005-07-2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근래에 현진건 작품을 새로 발견하게 되었는데...
인간 심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면이 여느 근대소설과 좀 다르게 보이더라구요.
빈처 등에서 지식인에 대한 자의식과 반성도 엿보이고..일본 사소설의 영향을 받은 듯도 보이고. 여튼 근대 소설에서 현진건은 분명 특수한 위치에 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잘코군 2005-07-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일어나셨네요? ^^ 좋은 아침입니다. 근데 덥네요. 현진건 말고도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읽어볼 생각이에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접하던 그 느낌이 아닌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고 있는 중이거든요.

로즈마리 2005-07-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그렇담, 이인직의 <혈의 누>도 추천해요. 친일파인 걸 의식하면서 보면 재미가 더 쏠쏠하답니다. 전 중고등학교 때, 지루한 책인 줄 알고 안 봤었는데, 최근 보니까, 그냥 드라마같은 책이더라구요. 문학적인 가치보다는 시대적인 가치가 더 높지만, 분명 새로운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얼마 전에 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유학와서 <혈의 누>를 가지고 논문 쓴다는 얘길 들었는데, 호오~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잘코군 2005-07-2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네 ^^ <혈의 누> 영화도 있는데. 전혀 다른거죠? ㅋㅋ
 
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 35선
현진건 외 지음 / 타임기획 / 1993년 5월
평점 :
절판


 

 상품화된 '책'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한국단편 35선'이라고 하면 타임기획에서 나온 책 말고도 지금껏 수십권을 나왔겠다. 그 책을 보나 이 책을 보나 다 똑같다. 내용은 모두 같단 말이다. 단지 어느 작가의 작품을 어떤 순서로 실었느냐 하는 것의 차이일 뿐. 그래서 한국단편을 이야기할 때는 상품이 되어 출간된 책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난 이 책에 담긴 35개의 단편 각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읽은 소설은 현진건의 '운수좋은날' 

 내가 작가 현진건을 접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국어 시간이 아니었나싶다. 중학교에서 접한 것 같지는 않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진건, 이상, 황순원, 최인훈 등의 작가들을 중 고등학교 국어  시간이 아닌 다른 기회를 통해 접하기는 힘들 것이다. 달리 이 책들을 소개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께서 미리 추천을 해줬다면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내가 국어시간에 접했던 현진건과 지금 접한 현진건은 다르다. 물론 동일인물이다. 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그때 난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을 비롯한 여러 소설과 수필을 껍질을 까발리고 회를 뜨고 내장을 뜯어내고 이건 무슨 효과네 저건 뒤에 나올 뭐시기를 위한 복선이네, 이 단어의 의미는 뭐네 하면서 철저히 까발리고 분석하고 뜯어 널었다. 우리나라 국어 교육이란게 이렇다. 오늘날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연히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의 그 묘미가 들어올리가 없지. 국어만 이런게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도덕도 마찬가지다. 난 도덕 교과서를 없애고 싶다.

 대학을 졸업한 나이가 되어 접한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은 내게 꽤나 놀라움과 감동을 주었다. 그 내용에서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짧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에 감동을 받았다는 말이다. 소설의 내용이 아닌 현진건이란 작가에게. 이런 탁월한 놈.

 현진건은 1900년에서 1943년까지 살았다고 하며,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국내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했다고 한다. 사실 이것도 그렇다니깐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거지 내가 그가 국내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전문가들이 그렇다고 하니깐 그런가보다 하는거다.

 현진건을 분류하기로는 사실주의 작가로 뽑는데, 그들에 의하면, 사실주의라는 것은,

 "객관적 현실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재현, 묘사하려는 태도, 창작방식을 말한다. 작가의 주관적 요소보다 객관적 현실을 중시하는 리얼리즘은 반리얼리즘적 조류(이상주의, 공상적 낭만주의, 형식주의)와 함께 예술의 발생 이래 양대 조류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리얼리즘은 자연발생적인 것이며 반리얼리즘적인 여러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리얼리즘은 근대 시민사회에 들어와 비판적 리얼리즘으로 확립되었다."

 라고 한다. 그렇구나. 끄덕. 내래 알길이 있다. 그렇다니깐 그런가부다 하지.

 현진건이 이 소설에서 드러낸 그 아이러니함. 그건 정말이지 탁월했다. 이 짧은 소설 안에서,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아이러니를 그토록 극명하게 드러낸 작가가 있던가. (하긴 내가 뭐 소설을 많이 읽어봤어야 나의 이러한 감상이 일반적으로 먹혀드는 거지. 난 소설을 잘 안읽는다.)

 예전에 일기랍시고 쓴 나의 글에는 '운수좋은 날'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어 아이러니를 표현하려고 했던 글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쓴 글인데. 음. 1999년 혹은 2000년 쯤. 지금보니 그다지 효과적으로 표현한거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땐 정말 나도 현진건과 같은 탁월한 아이러니를 표현하고자 했었다.

 한편으로 운수 대박 터진 날이건만 한편으로 극도로 슬픈 날이구나. 치워라 치워라. 발로 팍팍 차보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꿈쩍도 안하는 아내. 어쩐지 오늘 운수가 좋더니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전에 한번 봤던 영화이지만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자 다시 봤다. 다시보니 감동만 남고 내용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마치 처음 보는 영화같았다.

 <제리맥과이어>는 내가 좋아하는 탐크루즈와 르네 젤위거가 주인공인 영화이다.

 발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높은 고층 빌딩들. 이 동네를 거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성공한 사람이다. 제리 맥과이어는 성공한 스포츠 에이전트이다. SMI 라는 거대한 에이전트 회사에서 일하며 수십(?)명의 스포츠 선수들을 관리하는 인정받고 돈 많이 버는 에이전트다. 그러나 그는 어느날 새벽 집에서 필받아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이른바 '제안서'. 25쪽의 소논문 분량의 제안서를 쓰고나서는 110부를 복사해 다음 날 아침 회사 간부들의 우편함(?)에 집어넣는다. 사.고.예.감.

 그의 제안서를 읽어본 회사 사람들 모두가 박수를 치며 그를 환영하지만 한쪽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간다.
 
 "얼마나 갈까?"
 "길어야 한달? 다음주면 짤릴지도 모르지"
 (정확한 대사 아님)
 
 아니 도대체 무슨 내용의 제안서길래?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직업은 뛰어난 기량을 가진 스포츠 선수들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직업이다. 광고를 따주고, 연봉협상을 벌이면서 선수들에게 최대한의 수익이 돌아가도록 하고, 그 자신 또한 거기에 따르는 커미션을 얻어냄으로써 생계를 유지한다. 많은 연봉을 따내고, 많은 광고를 따낼수록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도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에이전트라는 직업은, 스포츠 선수들을 상품화시킴으로써만 가능한 것이고, 까놓고 얘기하면 상품이 된 선수들을 얼마나 비싼 값에 팔아넘기느냐 하는 문제가 그들의 주된 관심사인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활약하던 안정환이 프랑스리그로 팔려간 것은 그의 에이전트의 노력의 결과이다.

 에이전트는 자신이 관리하는 선수를 어쩔 수 없이 상품으로 취급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맥과이어는 여기에 딴지를 걸었다. 그들을 상품으로만 취급하고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것인가를 고민하지말고 수익 중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그들을 좀더 인간적으로 대우해야한다는 내용의 제안서를 회사에 뿌린 것이다. 당연히 회사의 경영철학과 반대되는 이야기임은 말 할 것도 없다. 이긍 짤렸지 머.

 회사 후배이자 또다른 에이전트로부터 해고통보를 받게 되고 한순간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제리. 하지만 그를 따라 나선 이가 있으니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경리 도로시다. 아이 딸린 26살난 유부녀 도로시. 그는 제리 맥과이어의 제안서에 감동했고, 그의 영혼에 반했다.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는 도로시, 멋도 모르고 회사를 나와버렸으니 어쩐다?

 제리는 그가 관리하던 선수들에게 연락해봤지만 이미 다른 동료가 선수친지 오래다. 남은 한명이 미식축구선수 로드 티드웰. 하루종일 수다를 떨어대며 남을 비방하고 자신이 최고인줄 아는 로드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꽤나 피곤하겠다. 경기는 잘하지만 몸집이 작고 매너가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로드. 하지만 제리는 그를 위해 백방으로 뛴다. 이 둘은 더이상 이전의 에이전트와 선수의 관계가 아닌 인간적인 유대감으로 맺어진 친구이다. 친구가 친구를 위해 일하고, 친구는 친구를 끝까지 믿는다. 영화의 결과야 당연히 두 사람의 성공으로 끝난다.

 

 사회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린다. 물건을 사고 팔아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물건을 구입하고 소비하지만 한편으로 나 자신이 구입되고 소비되는 또다른 상품인 것이다. 회사에 어렵게 들어가 뼈빠지게 일했다. 수당도 없이 야근에 야근을 거듭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었다. 이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퇴출당했다. 수십년간 일했던 직장에서 쫓겨난 자의 기분이 어떨까? 나는 지금껏 회사의 소모품이었고 건전지가 다 되자 버림받았네.

 흔히 사회는 냉정하다 라는 말을 자주하는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며 지금 나의 친구, 나의 동료라고 할지라도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지금 너의 친구가 후일 너의 적으로 바뀔 수도 있느니라. 영화 속에서 제리가 처한 상황이 딱 그것이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해고통보에도 끄덕없이, 아무런 변화없이 그들의 삶을 진행시키고 있고, 나는 그들에게 잊혀져야할 존재인 것이다. 이 냉정함. 이 살벌함.

 제리는 자신은 내쫓겼지만 자신의 철학대로 업무에 있어 고객이 되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고객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대해줬고, 그에 따른 어려움과 고난도 많이 겪었지만, 결국 그들의 신뢰를 얻었고, 함께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존재인가? 나는 제리같은 존재인가? 생각해보면 나 또한 냉정한 사회 속에서 함께 냉정해지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동료를 대함에 있어서, 학생들을 대함에 있어서, 난 그들과 부대끼지 못했고 그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언제나 외따로 놀았다. 그건 나의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언제까지나 성격만을 탓할 수는 없다. 나의 노력으로 바꿔야지.

 영화속에서 제리를 외면했던 동료들도 제리의 철학에는 동의했을지도 모른다. 제안서를 읽어보고 박수를 치던 동료들과 해고된 이후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동료들은 같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당신과 함께 싸워줄 만한 여력은 없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 사회생활을 하는 누구나 친구 같은 인간관계를 원할 것이고, 냉정하기보다 따뜻하고 정감있는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일하기를 원할 것이다. 단지 사회는 냉정하기 때문에 나 또한 냉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것일 뿐. 눈치보지 말구 모두가 나의 마음을 열고 일을 한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오늘부터라도 좀더 열린 자세를 취해보자.

 

 

* 르웰 젤위거의 입술은 정말 매력적이다. ^^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수검객 2005-07-23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how me the money..전 제리 맥과이어만 떠올리면 이 대사가 기억난다는..^^;;..탐크루즈,르네 젤위거의 연기가 돋보이는 멋진 영화라고 생각해요..

이잘코군 2005-07-2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ㅎ 로드가 이치던 그거군요. 쇼미더머니 ㅋㅋㅋㅋ 엄청 수다를 떨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