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 - 다큐멘터리 만화 시즌 1 다큐멘터리 만화 1
최규석.최호철.이경석.박인하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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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만화는 역사의 가장 절실한 순간을 찾아간다. 오늘 우리에게서 벌어지는 일이건, 아니면 과거에 벌어진 일이건 간에 영상보다 더 본질적으로 진지하게 내용의 힘을 담아낼 수 있다. 그리 많지 않은 다큐멘터리 만화들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이유다.(박인하)-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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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머리가 아닌 말과 몸으로 쓴 책. 그는 사람을 만나며 그들이 이야기를 하도록 했고, 그들이 증언자가 되도록 했으며, 자신이 증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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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품절


우리에게 삶은 향유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과정이 되었다. -17쪽

더 이상 보호해야 할 사회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던, 적어도 나를 보호해주리라고 여겼던 사회는 오히려 나를 배제하고 추방하겠다고 위협한다. 법은 사회의 규범이나 기준이 아니라 가진 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원이 되어버렸다. 교육은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아니라 추방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우리에게 지혜를 전수해줄 어른도 이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삶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우리라 믿었던 동료들은 모두 경쟁자로 탈바꿈했다. 우리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초라해졌다. -19-20쪽

베짱이도 성공해야 한다. 현재를 즐기면 된다는 베짱이의 시간은 미래 어느 시점의 ‘성공’을 전제한다. 개미들이 ‘하면 된다’라는 명제를 절대화했다면 베짱이에게는 이 명제가 ‘놀면 된다’롤 바뀌었을 뿐이다. 성공한 베짱이만이 베짱이로 대접받을 수 있다. 성공하지 못한 베짱이는 베짱이로도 제대로 살지 못한 것이 된다. 오히려 그런 ‘낭비와 쾌락’의 순간조차 생산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그저 놀고 싶어서 놀아서는 안 된다. ‘열심히 놀면 성공한다!’라는 말처럼 열심히 놀아야 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놀아야 한다. -41쪽

분노와 격노는 다르다. 분노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래서 분노가 치밀 때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노를 억누르며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것이 과연 그의 잘못인지 나의 잘못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곰곰 생각한다. 분노에는 성찰과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분노는 자기반성을 거쳐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로 향하는 힘이 있다. -56쪽

격노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다. 격노는 즉자적이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향해 분출된다. 격노하게 된 원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원인을 잘 안다고 해도 원인을 옆에 있는 사람이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57쪽

인생은 우리가 알고 꿈꾸던 것처럼 기-승-전-결로 흘러가는 내러티브가 아니라 무엇을 꿈꾸건 기-승-전-병(병신 같은 맛)으로 흘러간다.-59쪽

우리가 알던 삶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였다면 기대가 무너진 시대의 삶은 이렇게 바꿔 불러야 한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고 나중은 그보다 더 비참한 병맛이리라.’-59쪽

희망은 고사하고 자기에게 배분되기로 약속된 기대마저도 제대로 충족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회가 우리에게 약속한 것을 기대하면 할수록 우리는 격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냉소한다.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에 어떤 기대를 하느냐고 물으면 냉소적인 답변만이 돌아온다. 기대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기대하면 할수록 배신만 당해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65쪽

모욕은 ‘자존심이 손상되었다고 생각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되는 행동이나 조건’(마갈릿)-79쪽

제도적 모욕이 인간에게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은 모욕이 제도적으로 정당화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79-80쪽

구시대의 처벌은 피해자의 고통을 숨기기보다는 공개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구경거리로 삼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에 대한 다른 사람의 연민이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처벌은 범죄자를 대중으로부터 숨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감옥을 경험하지 않는 한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에 절대 공감할 수가 없게 되었다. -80쪽

살아 있는 존재가 스스로를 유령이라고 취급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모욕이 아닌가. 마갈릿은 이것을 "사람이 간과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81쪽

공부의 최종 목적지는 지식도 아니고 정보도 아니다. 공부를 향한 내 몸의 변화다. 한 시인이 머릿속에 아무리 시상이 많아도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쓰는 것이라고 일갈했듯이 내 입으로 말해야 하고, 내 입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깨달아야 한다. 이런 깨달음이 있을 때 비로소 경험은 경험이 된다. -96쪽

한 마디로 경험이란 떠들 수 있게 된 체험이다. 다른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게 이야기로 전환된 체험을 우리는 경험이라고 부른다. -103쪽

경험은 강제로는 전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요로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수할 사람의 마음을 살살 꼬드길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 지혜를 가진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른다. -105쪽

꼰대는 애새끼들이 계속 애새끼로 남아 있어야 꼰대로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애새끼들도 마찬가지다. 꼰대가 계속 꼰대로 남아 있어야 자신이 성장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커봤자 저 지경인데 뭣 하러 꼰대로 변태해야 하는가. 그냥 애새끼로 남아 있을 알리바이가 바로 꼰대다. 가르치는 데 관심이 없고 배우는 데 냉소적인 사회에 경험 따위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경험은 죽었다. -106쪽

체험은 경험을 소비로 전락시켰다. -116쪽

경험의 시간은 긴박함이 아니라 충실함과 기쁨의 시간이다. 사유와 교훈의 시간이다. ‘지금 여기’에 충실할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삶 자체, 그리고 산다는 것의 의미이지 사건 자체가 아니다. 그렇기에 경험의 시간은 실천의 시간이다. -118쪽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이자크 디네센)-138쪽

우울증이 오로지 정신의 허약함만을 드러내어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라면, 비극은 고통받은 타인의 자리에 우리들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즉 타인의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자기 고통을 초월하고 극복한다. 이것이 카타르시스다. -138쪽

나는 공부를 하는 목적은 동시대성을 깨닫고 당대에 대하여 나와 인식을 같이 하는 사람과 동료를 맺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41쪽

준법은 피통치자가 법의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치는 반대로 통치자가 법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166쪽

분노하고 행동할 때는 여럿이 함께 하는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때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적이 너무 거대할 때, 내 주변에서 나의 분노를 공유할 사람이 없을 때 사람은 ‘분노’하기보다는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혼자라도 살겠다는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그래서 아예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하거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 -177쪽

누군가가 자신의 언어로 자기 삶을 이야기하며 ‘사회를 폭로하고 사람을 옹호하는 연습’을 하는 곳이 나에게는 교실이다. 나는 누구도 자신의 언어와 생각, 경험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언어와 생각과 경험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삶은 부끄러움의 연속이다. -203쪽

관계를 만드는 것은 의미가 아니라 의례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의미의 공동체가 아니라 의례의 공동체, 몸의 공동체가 더 오래간다. 삶은 의미가 아니라 무의미 안에서 의례처럼 반복된다. -228쪽

스승의 역할은 "말을 듣는 자가 어떤 순간에 타자의 담론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상황에 놓이도록 만드는 것"이다.(푸코)-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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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쯤하면 편집자가 하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돌멩이를 주고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오라고 하는데 그게 되니?" 본래 다이아몬드를 주고, 그걸 가지고 아름다운 보석을 만들라고 해야 맞다. 그러나 대리석쯤 주고 다이아몬드를 만들으라면 이것도 불가능하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해 애써보긴 하겠다.

 

  그는 매번(?) 내 인내심의 한계치를 측정한다. 어제 이른 저녁 뜨거워진 머리와 가슴이 자고 일어난 지금도 식지 않는다. 과열 상태다. 문제의 원인이 저자들에게 있음이 분명한데, 이들은 그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써먹지도 못할 원고를 줘놓고 그쯤하면 편집자가 해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눈을 뜨고 확인해 본다. 그는 가면을 쓰지도 않았고, 고개를 숙이고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정면을 주시하며 말한다. "그쯤하면 편집자가 하는 거예요." 아, 혹시 피부가 남들보다 좀 더 두꺼운 걸까. 이건 혹시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교과서 편집자다. 지금은 교과서 작업이 한참 진행 중이다. 저자는 십여 명이지만 그 중 나오는 사람들은 절반 수준이다. 절반 정도는 그래도 성실한 축이고, 그 중 실력 있는 분은 몇 안 된다. 문제의 발언을 한 사람은, 계약서에 도장 찍고 계약금을 받은 후 수개월 나오라 나오라 메일 보내고 문자하고 전화해도 나오지 않던 사람이다. 나온지 얼마 안 됐다. 지금은 시기상 아주 급한 시점이다. 그는 자신이 빛을 발하는 시점을 안다. 사실 빛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시급한 시점에 자신이 맡은 원고를 어설프게나마 써서 가지고 나오면 편집자로서는 초큼 기쁘기는 하다.

 

  그는 이제 초고를 썼다. 엉망이다. 써먹지도 못한다. 그는 능력은 초큼 있어 보여서 의견을 주고 어떻게 어떻게 수정하라고 하면 알아서 수정은 할 것 같다. 문제는 다른 분이다. 검토를 한답시고 하루 종일 앉아서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내 정신은 허공에 가 닿아 있다. 이 의견이 쓸모가 있을까. 시간은 없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붙들고 앉아 되지도 않는 저자에게 원고를 고쳐 오라고 의견을 주는 것이 의미 있을까. 부정적이다. 문제의 저자도 알고, 문제의 발언을 한 이도 안다. 문제의 발언자는 그래서 그렇게 말을 내뱉은 것이다. 문제의 저자가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집필진이 이렇게 구성될 때부터 나는 예고했다. 경고했다. 조언했다. 집필진 일부 교체하고, 보강하라고. 아무도 듣지 않았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내가 그렸던 시나리오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의 끝은, 부정적이다. 수차례 경고하고, 간곡히 청했지만 안 먹혔다. 능력은 조금 부족해도 성실하신 분들께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능력이 부족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분들은 좀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리고 집필자가 부족한 만큼 편집자가 더 고생을 해야 하지만, 그 분들께 불만은 없다.

 

  교과서 편집자는 영화 감독이다. 영화 감독의 역할은 배우들이 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고, 그들이 잘못하면 잘 되도록 지적하고, 주어진 스케쥴에 맞추어 작품을 찍어 내는 것이다. 감독은 영화를 찍는 배우뿐만 아니라 카메라, 조명, 소품, 장소, 의상 담당 등 촬영 스텝들을 모두 챙겨야 한다. 그들의 능력과 성격을 파악하고, 좋은 영화를 찍기 위해 그들이 조화를 이루고, 능력이 발휘되도록 전체를 총괄하는 이가 감독이다. 그런데 배우가 정해진 촬영 날짜에 나타나지 않는 날이 십여 번이고, 뒤늦게 나타나 촬영분을 찍는데 연기가 안 돼 지적을 하니, 감독에게 "내가 이쯤하면 됐지. 당신이 찍어."라고 말한다면, ...

 

   감독은 감독의 일을 해야 하고, 배우는 배우의 일을 해야 하고, 카메라 감독은 카메라 감독의 일을 해야 하고, 소품 담당은 소품 담당의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영화가 작품이 되는 건 둘째치고, 완성은 될 수 있다. 그 작품이 100만 관객이 들지, 1000만 관객이 들지는 그 다음의 문제다. 영화는 일단 완성되어 나와야 상영관에 걸리고, 관객은 수많은 영화 중 해당 작품을 선택한다.

 

  이미 처음부터 감독은 배우가 찍어야 할 촬영 분의 일부를 찍고 있었다. 감독이 연기에 재능이 있어 그마나 찍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작사와 계약한 배우가 남은 자신의 촬영분까지 엔지만 내다가 감독에게 찍으라고 한다. 거기에 배우가 배우의 일을 안하겠다면서, 배우라는 직함은 가지겠고, 영화 포스터에서 자신의 이름은 빼지 않을 것이며, 영화 흥행 정도에 따라 수익금도 모두 가져가겠다고 한다면, 이 배우를 어찌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그 배우는 제작사에서 정해준 이라 감독이 자를 수 없는 형편이다.

 

  불성실, 무책임, 뻔뻔함, 몰염치, 무능력. 다섯 가지 잣대로 그들을 바라본다. 다섯 가지 모두 갖춘 사람도 있고, 다섯 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대개 불성실한 사람은 무책임하고, 염치가 없기도 하다. 다만 어쩌다 그 중 능력을 초큼 갖춘 경우도 있는데, 이 사람과 함께 하기보다는 능력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과 함께 할 만하다. 불성실하고 무책임하며 몰염치하고 무능력하고 뻔뻔함까지 갖춘 사람은 그 중 최악인데, 그 뻔뻔함은 감당하기 어렵다. 경험해본 바 몰염치와 뻔뻔함을 갖춘 이는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이보다 더 상태가 심각하다. 그와는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나 피할 수 없는 경우 그 괴로움의 강도는 극에 달한다.

 

  매번 편집자가 하라는 대로 하는 성실한 몇몇 분들 모시고 여기까지 왔다. 그들과는 능력 여부를 떠나 끝까지 함께 할 만하다. 이 성실한 분들 또한 위의 불성실, 무책임, 뻔뻔함, 몰염치를 갖춘, 나아가 무능력까지 갖춘 이들에게 불만이 많다. 소수는 분노가 극에 달했고 소수는 마음은 뜨겁지만 말은 못한다. 감독은 불성실하고 무책임하고 뻔뻔하고 몰염치한 배우에게 화가 나 능력 있고 성실한 배우를 다독여가며 촬영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가 다른 배우의 촬영분까지 찍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찍는다고 한다면 영화는 이미 제 시나리오를 잃고, 완성하는 것만이 목표가 될 뿐이다. 감독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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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동 작업의 인세 배분
    from 자유, 그리고 자유 2012-01-08 14:26 
         공동 저작물의 인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 이 일을 하면서 부당하고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오늘은 인세 문제를 얘기하겠다. 지난 번에 이어 앞으로 계속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말을 꺼내려 한다. 드러나지 않은 일들은 수면 위로 끄집어 내어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합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
 
 
마립간 2012-01-0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께는 격려를 보내드리고 저 스스로는 반성을 합니다. 저는 감독도 되어 봤고, 성실한 배우와 (강제로 끌려 배역을 맡은 고로) 불성실한 배우도 맡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입장이던지, 의견이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절벽같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많습니다.

마늘빵 2012-01-03 14:18   좋아요 0 | URL
이런 글을 쓰면 제 스스로 괜찮은 편집자인지 되물어보곤 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제 역할 이상을 넘어서서 집필까지 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괜찮은 편집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능력 여부를 떠나 책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편집자에 대한 신뢰와 자기 역할에 대한 충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결여된 이들에게는 '저자'라는 직함을 떼어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네요.

비로그인 2012-01-0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위에 떡하니 보이는, (하필이면) 인문학의 미래.
그와 함께 나타나는 `이쯤하면'으로 시작하여 `괴롭다'로 끝날 수 밖에 없는 페이퍼가 나오는 상황.

마늘빵 2012-01-03 14:19   좋아요 0 | URL
인문학의 미래도, 교육의 미래도, 출판의 미래도 암울합니다. 새해 첫 페이퍼가 이러네요. 쩝. 제게 새해는 이 작업을 마무리하는 시점이에요. ^^

비로그인 2012-01-0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저 5관왕에 빛나는 선수들의 경우, 무슨 재주를 타고났는지, 여기저기 다른 출판사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며 편집자들을 괴롭힌다는 거죠. "다른 데선 이 정도면 편집자들이 알아서 다 하던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말이죠.
새해 벽두부터 골치 아픈 선수들 때문에 맘고생하시는군요. 그래도 올해 꼭 멋진 시나리오로 개념 있는 제작자와 뛰어난 배우들 그리고 헌신적인 스태프와 함께 빛나는 작품 만드시길 빌어드리겠습니다^^

마늘빵 2012-01-03 14:21   좋아요 0 | URL
첫 문장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두고 "정치를 잘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윗분들과는 전화도 하고, 인사도 하고, 친하게 지내죠. 그런데 실무쪽에서 바라보는 그 분들과 윗분들이 바라보는 그분들의 모습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니 문제입니다. 위에서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텐데, 실상은 바닥을 치니 말여요. 응원 감사합니다. 열악한 현실은 바꾸라고 있는 거지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기필코 바꾸어놓겠습니다.

북극곰 2012-01-03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회사에도 교과서 개발팀이 있어서 간접으로 겪긴 하는데, 그 고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듯 해요. 교과서는 특히나 일정 등등등등의 문제로 너무 힘들게 작업하는 것 같아요. 기필코 바꾸어 놓으시겠다는 아프님, 화이팅이에요. (안녕하세요, 인사는 첨이죠? 수 년간 즐찾이었는데. ^^)

마늘빵 2012-01-03 20:00   좋아요 0 | URL
아, 교과서 팀이 있다니 그 분들 지금 서서히 발동걸릴 시점인데 앞으로 몇 달 고생하시겠네요. 교과서가 힘들죠. 얽혀 있는 인간관계도 많고, 그 중 한쪽이라도 부실하면 그대로 꼬꾸라지는 작업이라서. 그래도 전 이 일이 좋습니다. 내 능력의 한계치를 시험해볼 수도 있고, 제가 팀을 만들어서 꾸려나가는 재미도 있고요. 반갑습니다. ^^

하늘바람 2012-01-0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창 바쁘시겠어요
날마다 야근 아니세요?
님 몸 살피시며 하셔요

마늘빵 2012-01-03 18:31   좋아요 0 | URL
날마다는 아니지만 앞으로 그리 될 거 같아요. 지금 문제가 해결된다는 전제 하에.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2-01-03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편집자는 아니지만, 아프님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고 또 이해합니다.
자신이 제대로 연기하지 않고도, 수익을 받으려 하고 또 이름을 버젓이 올리는 배우들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자기가 어떤 배우인지는 잘 알겠지요.

한창 바쁜 시기시네요. 부디 몸 챙겨가면서 일 하시길 바랍니다.

마늘빵 2012-01-03 18:32   좋아요 0 | URL
저는 단행본 편집자이신 줄 알았어요. 어디서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는데.

그들 스스로 자신이 어떤 배우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화가 나기도 하고, 안쓰럽습니다. 감사합니다.

BRINY 2012-01-04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나 있습니다. '정치만 잘하는 사람'. '정치를 잘 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나이들어가면서 통감하고 있습니다만, '정치만 잘하는 사람'이 마치 능력인인양 대우받는 세상은 역시나 부조리합니다. 무척 스트레스 받으시겠어요. 풀면서 사세요.

마늘빵 2012-01-04 17:35   좋아요 0 | URL
정치 잘하는 건 뭐라 안 하겠는데, 정치만 잘하니 참 문제입니다. 그것만 잘 해도 아무것도 없어도 여기저기 건수를 잘 만들더라고요.
 
청소년을 위한 철학 에세이 - 개정판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강영계 지음 / 해냄 / 2009년 2월
구판절판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고민은 각자가 짊어지고 있으므로 우리가 조금만 눈을 뜨면 괴로운 마음을 서로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조금씩 남의 짐과 나의 짐을 덜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뛰쳐나와 넓은 연못을 마음껏 헤엄칠 때 개구리는 비로소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26쪽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고유한 삶을 계획하고 결단한다. -109쪽

자신의 노예로 사는 사람은 늘 속박의 그늘에서 신음하므로 부자유스럽고 개성도 없다. 그런 사람은 한없는 세월을 노예로 살거나 아니면 자신의 노예 상태를 용감하게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개성을 가진 인간은 누구인가? 그는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109-110쪽

참다운 인간상은 개성에서 성립한다. 개성을 바탕으로 한 사람됨(인격)은 자유롭게 자신의 고유한 삶을 창조할 수 있다. 창조적인 삶만이 세계를 조화롭게 구성할 수 있다. 왜냐하면 참다운 인간상은 인간 내면의 창조적 힘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110쪽

남들이 학원에 다니니까 나도 다니고, 남들이 대학에 가니까 부모가 가라고 하니까 대학에 가고, 남들일 장가가고 시집가니까 나도 장가가고 시집가고…….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남이 내 인생을 살아가므로 결국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가 바람직한 삶을 희망하며 옳고 훌륭한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아직도 우리가 돈이나 기계가 절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무력이나 권력 또는 돈이나 기계가 지금보다 인간의 자유와 결단을 더 빼앗아 버린다면 우리의 삶은 황폐한 사막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유롭기에 자신을 반성할 줄 알며, 새로운 삶을 힘차게 추구하고 또한 삶과 세계의 근원을 찾는다.
자유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풍요로운 삶의 힘이다. -118-119쪽

언어는 인간을 다른 존재들로부터 구분해 줄 뿐만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게끔 한다. -134쪽

언어는 우선 우리가 감각에 의해 지각할 수 있는 기호이며, 다음으로 필연적으로 사고 작용을 동반하며, 마지막으로 대상이나 사태를 직접 또는 간접으로 지시한다. -135쪽

사람이란 말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이다. 사람은 각자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너’에게 말로 표현한다. 이때 말은 이미 ‘관계’이다. 관계로서의 말은 대화이며 토론이다.
대화의 관계에 의해 드러나는 현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감이다. 공감이란 대화 참가자들의 일체감을 말한다. -145쪽

대화의 본질은 자기반성이며 자기반성은 바로 세계 원리를 표현한다. 자기반성은 소우주로서의 ‘나’를 대우주로서의 ‘세계’로 확장시킨다. 지껄임의 가면을 벗으면 그것은 나와 너 사이의 말로 상승하며 이것이 자기반성에 도달할 때 우리는 세계 원리의 표현인 대화를 체험한다.
잘못된 의견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날 때 비로소 자기반성을 향한 문이 열린다. 즉 부분적이며 피상적인 생각이 내면성과 전체성을 향해 눈을 뜰 때 삶과 세계의 의미가 드러난다. 그런데도 우리는 삶이 실로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음을 보고 놀라게 된다. -147쪽

우리는 대상을 앎으로써 대상을 특정한 그물(언어라는 틀)에 넣어 표현하고 따라서 대상을 전체적으로 체험한다. 이런 체험은 세계 구성이다. 세계 구성은 표현에 의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전달되어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150쪽

예술은 무한한 공간과 시간을, 학문은 영원한 진리를 그리고 종교는 초월적인 믿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인간은 유한성 안에서 유한성을 극복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188쪽

자발성과 자기 결단이 없다면 철학은 불가능하다. -226쪽

철학이 기초 학문일 수 있는 까닭은 근본적인 자기비판이 바로 철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철학사는 철학을 하기 위한 재료의 역할을 행한다. 자기비판과 자기반성은 철학의 핵심이며, 철학사는 철학을 하기 위해 요구되는 재료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은 플라톤이나 칸트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 자체를 비판함으로써 창조적인 세계를 구성하려고 한다. -242쪽

지혜란 앎과 선과 아름다움의 통일이다. -246쪽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앎과 선과 아름다움의 통일인 지혜를 소유해야 한다. 그러나 지혜를 가지기 위해서는 또한 참답게 알아야 하고, 선하게 행동해야 하며 아름다움을 판단할 줄 알아야만 한다. -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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