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품절


우리에게 삶은 향유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과정이 되었다. -17쪽

더 이상 보호해야 할 사회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던, 적어도 나를 보호해주리라고 여겼던 사회는 오히려 나를 배제하고 추방하겠다고 위협한다. 법은 사회의 규범이나 기준이 아니라 가진 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원이 되어버렸다. 교육은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아니라 추방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우리에게 지혜를 전수해줄 어른도 이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삶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우리라 믿었던 동료들은 모두 경쟁자로 탈바꿈했다. 우리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초라해졌다. -19-20쪽

베짱이도 성공해야 한다. 현재를 즐기면 된다는 베짱이의 시간은 미래 어느 시점의 ‘성공’을 전제한다. 개미들이 ‘하면 된다’라는 명제를 절대화했다면 베짱이에게는 이 명제가 ‘놀면 된다’롤 바뀌었을 뿐이다. 성공한 베짱이만이 베짱이로 대접받을 수 있다. 성공하지 못한 베짱이는 베짱이로도 제대로 살지 못한 것이 된다. 오히려 그런 ‘낭비와 쾌락’의 순간조차 생산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그저 놀고 싶어서 놀아서는 안 된다. ‘열심히 놀면 성공한다!’라는 말처럼 열심히 놀아야 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놀아야 한다. -41쪽

분노와 격노는 다르다. 분노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래서 분노가 치밀 때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노를 억누르며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것이 과연 그의 잘못인지 나의 잘못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곰곰 생각한다. 분노에는 성찰과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분노는 자기반성을 거쳐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로 향하는 힘이 있다. -56쪽

격노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다. 격노는 즉자적이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향해 분출된다. 격노하게 된 원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원인을 잘 안다고 해도 원인을 옆에 있는 사람이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57쪽

인생은 우리가 알고 꿈꾸던 것처럼 기-승-전-결로 흘러가는 내러티브가 아니라 무엇을 꿈꾸건 기-승-전-병(병신 같은 맛)으로 흘러간다.-59쪽

우리가 알던 삶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였다면 기대가 무너진 시대의 삶은 이렇게 바꿔 불러야 한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고 나중은 그보다 더 비참한 병맛이리라.’-59쪽

희망은 고사하고 자기에게 배분되기로 약속된 기대마저도 제대로 충족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회가 우리에게 약속한 것을 기대하면 할수록 우리는 격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냉소한다.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에 어떤 기대를 하느냐고 물으면 냉소적인 답변만이 돌아온다. 기대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기대하면 할수록 배신만 당해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65쪽

모욕은 ‘자존심이 손상되었다고 생각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되는 행동이나 조건’(마갈릿)-79쪽

제도적 모욕이 인간에게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은 모욕이 제도적으로 정당화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79-80쪽

구시대의 처벌은 피해자의 고통을 숨기기보다는 공개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구경거리로 삼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에 대한 다른 사람의 연민이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처벌은 범죄자를 대중으로부터 숨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감옥을 경험하지 않는 한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에 절대 공감할 수가 없게 되었다. -80쪽

살아 있는 존재가 스스로를 유령이라고 취급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모욕이 아닌가. 마갈릿은 이것을 "사람이 간과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81쪽

공부의 최종 목적지는 지식도 아니고 정보도 아니다. 공부를 향한 내 몸의 변화다. 한 시인이 머릿속에 아무리 시상이 많아도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쓰는 것이라고 일갈했듯이 내 입으로 말해야 하고, 내 입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깨달아야 한다. 이런 깨달음이 있을 때 비로소 경험은 경험이 된다. -96쪽

한 마디로 경험이란 떠들 수 있게 된 체험이다. 다른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게 이야기로 전환된 체험을 우리는 경험이라고 부른다. -103쪽

경험은 강제로는 전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요로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수할 사람의 마음을 살살 꼬드길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 지혜를 가진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른다. -105쪽

꼰대는 애새끼들이 계속 애새끼로 남아 있어야 꼰대로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애새끼들도 마찬가지다. 꼰대가 계속 꼰대로 남아 있어야 자신이 성장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커봤자 저 지경인데 뭣 하러 꼰대로 변태해야 하는가. 그냥 애새끼로 남아 있을 알리바이가 바로 꼰대다. 가르치는 데 관심이 없고 배우는 데 냉소적인 사회에 경험 따위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경험은 죽었다. -106쪽

체험은 경험을 소비로 전락시켰다. -116쪽

경험의 시간은 긴박함이 아니라 충실함과 기쁨의 시간이다. 사유와 교훈의 시간이다. ‘지금 여기’에 충실할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삶 자체, 그리고 산다는 것의 의미이지 사건 자체가 아니다. 그렇기에 경험의 시간은 실천의 시간이다. -118쪽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이자크 디네센)-138쪽

우울증이 오로지 정신의 허약함만을 드러내어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라면, 비극은 고통받은 타인의 자리에 우리들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즉 타인의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자기 고통을 초월하고 극복한다. 이것이 카타르시스다. -138쪽

나는 공부를 하는 목적은 동시대성을 깨닫고 당대에 대하여 나와 인식을 같이 하는 사람과 동료를 맺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41쪽

준법은 피통치자가 법의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치는 반대로 통치자가 법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166쪽

분노하고 행동할 때는 여럿이 함께 하는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때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적이 너무 거대할 때, 내 주변에서 나의 분노를 공유할 사람이 없을 때 사람은 ‘분노’하기보다는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혼자라도 살겠다는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그래서 아예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하거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 -177쪽

누군가가 자신의 언어로 자기 삶을 이야기하며 ‘사회를 폭로하고 사람을 옹호하는 연습’을 하는 곳이 나에게는 교실이다. 나는 누구도 자신의 언어와 생각, 경험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언어와 생각과 경험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삶은 부끄러움의 연속이다. -203쪽

관계를 만드는 것은 의미가 아니라 의례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의미의 공동체가 아니라 의례의 공동체, 몸의 공동체가 더 오래간다. 삶은 의미가 아니라 무의미 안에서 의례처럼 반복된다. -228쪽

스승의 역할은 "말을 듣는 자가 어떤 순간에 타자의 담론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상황에 놓이도록 만드는 것"이다.(푸코)-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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