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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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매일 호숫가를 찾았다는 나르키소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결국 호수에 빠져 죽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수선화(나르키소스)라고 불렀다."-13쪽

"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대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대로 세상을 보는 거지.' "-73쪽

"새로운 세계는 텅 빈 시장의 모습을 하고 그의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광장이 삶의 활기로 가득 차 있던 순간을 이미 보았고, 그 살아 숨쉬던 광경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단검을 떠올렸다. 잠시 바라보기만 하는 데에도 너무도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그것은 그가 그때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76쪽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95쪽

마크툽
- 대개 종교적인 의미로 쓰이는 아랍어로 '그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씌여있는 말이다'라는 의미. '어차피 그렇게 될 일 이다' 정도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옮긴이 주)-100쪽

"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 "-142쪽

" '시간이 그 운행을 빨리하면 사람들의 행렬 또한 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법이지' "-148쪽

"연금술사는 병을 열더니 손님의 컵에 붉은 액체를 따랐다. 포도주였다. 청년이 그때까지 마셔 본 것 중 가장 좋은 포도주였다. 하지만 포도주는 알라의 율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악이 아니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악일세."
연금술사가 술을 권하며 말했다." -190쪽

"어째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야영 채비를 하면서 그가 물었다.
"그대의 마음이 가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기 때문이지."
"제 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꿈을 꾸는 듯하다가도 동요하고, 이제는 사막의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녀 생각에 빠져 있을 때면, 마음은 이것저것 물어대며 숱한 밤을 잠 못 들게 합니다."
"좋아. 그건 그대의 마음이 살아있다는 증거라네. 마음이 그대에게 말하려는 것에 귀를 기울이게."

...중략...

"제 마음은 참으로 간사합니다."
말들을 쉬게 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섰을 때, 그가 연금술사에게 말했다.
"마음은 제가 이대로 계속 가는 걸 원치 않아요."
"바로 그걸세. 그건 그대의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세. 그대가 마침내 얻어낸 모든 것들을 한낱 꿈과 맞바꾸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제가 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거죠?"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없기 때문이네. 아무리 그대가 듣지 않는 척해도, 마음은 그대의 가슴속에 자리할 것이고 운명과 세상에 대해 쉴새없이 되풀이해서 들려줄 것이네."
"제 마음이 이토록 저를 거역하는데도요?"
"거역이란 그대가 예기치 못한 충격이겠지. 만일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대의 마음도 그대를 그렇게 놀라게 하지는 않을 걸세. 왜냐하면 그대는 마음도 그대의 꿈과 소원을 잘알고, 그것들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도 알 것이기 때문이네. 아무도 자기 마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는 없어. 그러니 마음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편이 낫네.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 그대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대를 덮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210쪽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랑이나 잘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도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 속에 묻혀버린 보물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받을 테니까."-212쪽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212-213쪽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산티아고는 자기 고향의 오랜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뜨기 직전'이라는. -216쪽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네. 왜인줄 아는가? 사람들이 보물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지." -218쪽

"진정한 연금술사들을 나는 알고 있네. 그들은 실험실에 틀어박힌 채 자신들도 마치 금처럼 진화하고자 노력했지. 그래서 발견해낸 게 '철학자의 돌'이야. 어떤 한 가지 사물이 진화할 때 그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도 더불어 진화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걸세."-223쪽

'사랑은 매가 너의 모래땅 위를 나는 것과 같은 거야. 매에게는 네가 푸른 초원이지. 너의 그 푸른 초원에서 매는 늘 먹이를 얻어 돌아가지. 매는 너의 바위들과 모래언덕들, 너의 산들을 알고 있고, 너는 늘 매에게 관대하지.'

'그래. 매의 부리는 언제나 나의 조각들을 떼어가. 몇 년에 걸쳐 나는 매의 먹이들을 길러내고, 내가 가진 조금뿐인 물을 나누어주고, 어느 곳에 먹이가 있는지 보여준 셈이야. 내가 나의 모래 땅에서 기른 생명들에 저이라도 들라치면 정말 귀신처럼 하늘에서 쏜살같이 내려와 싹 낚아채버린단 말이야.'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네가 그 생명들을 기른 거잖아. 매에게 먹이로 주려고. 그럼 매는 사람의 먹이가 되고 또 사람은 언젠가 네 모래의 먹이가 되는 거지. 그럼 거기서 또다시 매의 먹이가 태어나는 거고. 만물은 그렇게 순환하는 거야.'-234쪽

'그게 바로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납은 세상이 더 이상 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납의 역할을 다 하고, 마침내는 금으로 변하는 거야.'-241쪽

"연금술사에는 세 부류가 있네."
스승의 대답이었다.
"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그럼 세번째 부류는요?"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일세."

(작가의 말 중)-271쪽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일은 곧 우리 각자에게 예정된 진정한 보물을 찾아내는 일일 것이고, 코엘료는 그것이 바로 삶의 연금술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역자 후기 중)-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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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브라더스> 코미디인가 가슴찡한 드라마인가.

 영화배우 이범수가 출연하는 영화는 조금씩 코믹한 냄새도 풍기면서 가슴찡한 드라마도 된다. 그가 출연했던 영화 <안녕 유에프오>도 그랬고, <슈퍼스타 감사용>도 그랬으며, <정글쥬스>, <싱글즈>도 다 그랬다. 이범수는 다소 코믹하면서 어딘가 가슴아린 그런 배역이 잘 어울린다. 어떤 배우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가 대부분 그 배우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그건 아마도 배우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 풍기는 사람내음이 담겨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양동근과 이나영이 순진하면서 어딘가 어눌하고 어설퍼 보이는 내면에 상처를 지닌 역할이 잘 어울리고, 장동건은 남성적이고 선굵은 책임감있는 역할이 어울리며, 엄정화는 약간 발랑까진듯 하면서 속깊은 여자의 역할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범수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이들이 다른 캐릭터를 잘 소화할 수 있음에도 계속 비슷비슷한 이미지의 역할만을 담당해왔을 수도 있지만 인터뷰하는 장면이나 아침마당 등 스크린 속의 그들이 아닌 하나의 개인으로서 마주할 때조차도 그들의 이미지는 그대로 살아있었다.

 사실 이 영화의 주연은 이정재와 이범수이지만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이범수의 역할이 크다. 비록 얼굴만 삭아버린 12살 짜리 어린아이로 나오지만 그의 형으로 나오는 이정재보다 이범수의 연기가 영화를 강하게 주도하고 있다. 이정재는 연기를 못한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이정재의 연기에 별 하나를 매기곤 하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연기를 못하진 않은 듯 하다. 그런대로 제 역할은 해줬지만 아무래도 이범수에 비해 딸리는 것은 사실.

 이정재는 불륜사진을 찍어 그들에게 원치 않는 기념품을 전해줌으로써 돈을 받아먹고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동생의 험악한 인상을 이용해 남의 돈을 받아챙겨 일당을 먹고 산다. 뭐 남이 빌려간 돈 받아내 주인에게 돌려주니까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나쁜건가?- 이래저래 겁을 주고 험한 짓 보이며 받아낸다는 점에서 방법면에서 그다지 칭찬해줄만 하지는 않다. 이렇게 못된(?) 짓만 하고 다니는 이들에게 사람을 찾아달라는 이가 있다. 처음엔 그냥 돈만 받아챙기려 하지만 결국엔 그 가족의 사연을 통해 이정재는 동생 이범수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며, 자신에게 빚만 떠넘긴 아버지를 용서하고 그리워하고 마음으로 잘못을 빌게 된다.

 '돈 찾아줍니다'에서는 이범수의 각종 행동으로 웃음을 불러오지만 마지막 아버지가 남긴 피묻은 8만원을 놓고 대화하는 형과 동생으로 인해 가슴찡하게 끝난다.  코미디의 드라마로의 승화(?)라고 보기는 어렵고 전형적인 한국식 결말을 내놓음으로써 관객에게 제대로 어필하는 거라고 말하면 적당할 듯 하다.
 
 이범수의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 그렇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다.

 참 오히려 주연배우 이정재보다는 단골 조연 이문식의 연기가 인상깊었다. 그는 이미 <달마야 서울가자><범죄의 재구성><황산벌>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관객에게 제대로 각인시킨 단골 조연배우다. 어느 주연배두 못지 않은, 오히려 어느 주연보다도 빛나는 조연이라고 할 수 있다. 난 그의 연기가 좋다. 비록 잘생기지도 않았고 인기도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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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2-19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문식 좋아해요^^

마늘빵 2005-02-19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좀전에 케이블 트니 <달마야 서울가자> 하더군요. 이건 재미없네요. 1편보다

세실 2005-03-19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이 영화 보고 이범수의 연기가 참 좋았습니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 오래전에 힛트치고 이제는 좀 거품이 빠져버린 베스트셀러다. 물론 여전히 잘 팔리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역시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이 힛트를 치고나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더불어 동반상승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는 출판사와 작가의 명예와 돈방석으로 연결된다. 물론 '돈방석'까지 연결되려면 적어도 이문열이나 최인호, 김훈 정도의 인기는 누려야 할 것이다. 인문/사회과학 류의 서적들은 쓰기도 어렵고 내기도 어렵고 인기를 누리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또한 인기를 누려도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점에서(기껏해야 인문사회과학은 3천부 정도 팔리면 만족한다고 한다) '돈방석'과는 거리가 멀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이라는 책으로 인기를 얻었고, 그의 다른 저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11분>까지도 더불어 동반상승해서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는 결과를 얻어냈다. 아마도 그의 전작들이 더 있었다면 그것도 함께 팔려 돈을 더 벌 수 있었을텐데 그로서는 아쉽겠다.

  내가 파울로 코엘료를 접한 것은 어느 한 일간지의 서평란을 통해서였고 당시 그다지 유심히 읽지는 않았다. 이후 그의 저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내리는 것은 봤지만 역시 관심 밖이었다. 인문/사회과학에 비해 소설류는 나의 관심밖이다. 물론 소설도 관심있긴 하지만 집에 켜켜히 쌓아둔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을 읽으려면 다른 분야는 일단 뒤로 미루어야한다. 버스에서 전철에서 서점에서 그의 이름과 책 제목을 무수히 많이 접했다.

 그.럼.에.도. 나는 얼마전까지 그를 경영/실용서적의 저자로 알고 있었다. 왜냐면 <11분> <연금술사>라는 제목이 어쩐히 11분안에 또 뭐 끝내기, 기존의 것으로 새로운 것 창조해내기 정도로 치부해버려 아예 무시했기 때문이다. 난 실용서적에 대해서는 약간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 책들이 책의 내용에 비해서 지나치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이내 못마땅하고 XX열풍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뽑아져나오는 책들은 책으로도 생각지 않았다. 출판사 입장에서야 출판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냈다고 하겠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좀 힘들더라도 아무 책이나 내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다. 어쨌든 나는 코엘료를 코엘류 감독 동생쯤으로-헉 이건 아니다- 생각하거나 실용서 저자로 알고 있었고, 그가 소설가라는 것을 안 것은 얼마전이다. 동생 방에-동생은 책을 잘 안읽는 나보다 더 안읽는데 요즘 얘가 책을 좀 사고 있다- 있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출생의 나이 지긋한 수염잘 뽑아진 아저씨(그의 사진에서 풍기는 그 고풍스러움이 마음에 든다. 수염도 한몫했을 것이다. 난 이런 수염을 좋아한다.)가 쓴 소설로 죽음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그의 생의 경험. 세 차례나 정신 병원에 입원하고 록밴드를 결성하고 극단에서도 활동했던 그런 경험을 토대로 씌여진 소설이라 생각한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일상을 살던 베로니카라는 이름의 한 여성이 열정이 없는 일상에 비관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이런 여기는 정신병원. 그녀는 곧 죽게된다는 의사의 말에 올히려 조금씩 생의 의지가 생겨나는데...

 그녀가 죽은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젊음이 가고 나면 너무 뻔한 내리막길 인생이 눈에 선했고, 남는 것은 노쇠와 질병들 뿐. 살수록 오히려 고통만 더해질 뿐이었다. 두번째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나쁜 일들을 그녀라는 개인이 막을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뿐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녀를 따라 자살해야한다. 어느 인간에게나 남은 것은 노쇠와 질병뿐이요, 한 개인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악한 일들을 막을 힘이 없다. 무기려한 인간. 하지만 모두가 다 똑같이 느끼지만 모두가 다 똑같은 결과를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이와 같은 본인의 모습을 느끼지만 다른 곳에서 생의 의지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이는 베로니카와 같이 자살을 결심한다.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 어렵다. 고시에 매달리다 입사시험준비하다 나이먹고 나이제한에 걸려 그나마도 하던 짓 못하고,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한다. 또 다른 직업 알아보자니 그 방면엔 내가 아는 바가 없고 능력도 없다. 장사를 하자니 장사는 아무나 하나. 너나 할 것 없이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가 세월보내고 어느 덧 나이는 40. 아 내가 뭐하는건가. 이 나이먹도록 뭐했나. 곧 지천명이라는 50살인데, 그러다 60, 70 죽음을 맞이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내 주관이 없이 남들 사는대로 따라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자기 주관이 있는 사람은 내가 뭘 할지는 몰라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알고 있다. 베로니카는 이와 같은 무기력한 남의 인생을 따라가려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같은 나이를 먹어도 인생을 활기차게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무기력하다. 그저 하루하루 세끼 밥먹고 시간보내며 밤이되면 자고 아침부터 다시 반복되는 생활을 할 뿐이다. 그러다 일년, 이년 시간 보내고 아 나이먹다 늙어 죽는 거다. 차라리 병에 걸려 죽을지언정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며 죽기를 기다리며 살기는 싫다. 그런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아 내가 너무 인생을 낭비하며 인생을 재미없게 살았구나 하고 깨우치겠지. 죽을 때 생에 대한 의지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서 생이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

 의자는 베로니카에게 뻥쳤다. 베로니카는 수면제를 과다복용하긴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깨어나 있던 곳의 정신병원 의사는 그녀에게 당신은 4-5일안에 죽습니다 라고 말한다. 어이쿠. 그럼 날 왜 깨운거야? 그냥 죽게 하지? 의사로서 도리있나? 죽겠다는 사람도 살려야 의사지. 난 아무 잘못 없소. 의사는 잘못없다. 그가 잘못이 있다면 베로니카가 멀쩡한데도 4-5일 안에 죽는다고 말한 것일 뿐. 하지만 오히려 베로니카는 그 때문에 4-5일 안에 생에 대한 의지를 살려냈다. 멋지다 의사양반.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언젠가 자신도 죽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막연한 미래의 일일 뿐 우리는 죽음을, 달리 말하면 삶의 진가를 잊고 산다.

 역자 이상해씨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래 차이는 이것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건 알지만 죽음을 실감하진 못한다. 그래서 죽을 때가 되어서야 죽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이때 써먹어도 되는건가? 철학을 헛공부한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사르트르의 이 말을 이 책의 부제로 달고 싶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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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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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죽겠다는 그녀의 결정은 아주 단순한 두 가지 이유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쪽지를 남긴다면,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이유가 명확했으므로.
첫번째 이유, 그녀의 삶은 이제 모든 것이 너무 뻔했다. 젊음이 가고 나면 그 다음엔 내리막길이다. 어김없이 찾아와서는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노쇠와 질병들, 그리고 사라져가는 친구들. 이 이상 산다고 해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고통의 위험만 커질 뿐이었다.
두번째 이유는 보다 철학적인 것이었다. 신문과 텔레비젼을 통해 그녀는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그러한 상황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17-18쪽

" '솔직히 난 믿지 않지만,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인간의 이해력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이해해야만 해. 불의, 탐욕, 비참함, 고독일 뿐인 이러한 혼돈을 창조한 건 바로 신 자신이잖아. 신의 의도는 훌륭한 것이었겠지만 결과는 형편없어.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보다 일찍 이 세상을 떠나기를 갈망한 피조물들에게 관대함을 보여야 해. 아니, 오히려 우리가 이 땅을 거쳐가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할지도 몰라' "-19쪽

"누군가 말한 것처럼, '통제된 광기'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저 위에서 자신의 정신이 그 모든 어려움을 비웃고 있다는 걸 잊어버리지만 않는다면, 그녀는 세상의 모든 정상적인 인간들처럼 울 수도, 근심에 빠질 수도, 화를 낼 수도 있었다."-82쪽

각주
원어는 Amertume. 일차적인 의미로는 '쓴맛'을, 은유적으로는 '회한, 쓰라림, 슬픔' 등을 뜻한다. 여기에서 이 단어는 독의 한 종류로, 그 형용사형인 아메르 Amer는 그독에 중독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130쪽

각주
Lunatique. 달의 영향으로 정신이상이 된 사람, 달이 뜨면 몽환에 빠지는 사람. -187쪽

각주
coprophagie. 배설물에서 성적 쾌락을 얻는 병적 성향.
coprolalie. 배설물에 관한 말을 함으로써 성적 쾌락을 얻는 병적 성향.-204쪽

"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언젠가 자신도 죽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막연한 미래의 일일뿐 우리는 죽음을, 달리 말하면 삶의 진가를 잊고 산다."
(옮긴이의 말)-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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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곧 SF영화를 보게 된다.

 미국 의회가 2010년까지 지상전투차량과 적진침투용 군용기의 3분의 1가량을 로봇으로 대체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우리가 영화로만 보던 그 화려한 미래전쟁 장면들이 고스란히 우리의 눈 앞에서 펼쳐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조차도 로봇은 홀로 싸우지는 않았다. 적을 향해 맞서싸우는 시온의 남은 사람들은 로봇에 올라타거나 안에 들어가 조정을 했지 로봇이 스스로 싸우지는 않았다. 지금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것은 영화 속 미래보다도 훨씬 더 진화한 단계인 것이다.

 1920년 러시아 출생으로 미국에 이주해 칼럼비아대학에서 화학박사를 수료하고 보스턴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아이작 아시모프는 51년 파운데이션을 출간하고, 57년 그의 로봇 시리즈의 첫작품 <벌거벗은 태양>을 출간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의 소설에서 로봇의 3대 수칙을 정했다.

 첫째,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
 둘째, 수칙 1을 위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인간에게 복종한다.
 셋째, 수칙 1과 2를 위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자신을 지킨다.

 그런데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전쟁로봇은 적을 살상하는, 다시말해 인간을 살상하는 로봇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첫번째 수칙을 위반한 것이다. 첫번째 수칙이 무너진다면 두번째 수칙 또한 온전히 먹혀들지 의문이다.
 
 기술이 얼마나 발달해 로봇이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며 살상을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구분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로봇이 인간을 살상한다는 윤리적인 문제가 부각된다. 그리고 구분이 불가능하다면 이제 로봇은 인간이라면 닥치는 대로 죽이는 살인기계가 되어버릴 뿐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에 인간이 죽어가는 장면을 우리는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 오래된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처럼 말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죄악이다. 단지 정치적 이유로 적군과 아군이 되어버린 두 인간이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닌 다른 인간을 살상하려고 눈에 불을 켜는 모습은 끔찍하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한 법인데 이들은 결국 자신을 죽이려고 안달하고 있다. 사형이라는 형벌이 문제시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점이다.

 그런데 이제 로봇이 인간을 죽인다. 이건 어떤 발상인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죄악이므로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인간과 다른 로봇을 내세운다는 것인가? 그건 아닌 듯 싶다. 미국이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는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함이다. 아군 병사 한명이 죽으면 죽은 병사의 가족에게 위로금을 전달해야한다. 죽지 않더라도 퇴역한 군인에게는 퇴역 위로 지원금이 지급된다. 6530억 달러 규모라고 한다. 당연히 미국으로서는 로봇을 개발함으로써 그 많은 돈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고, 아군 병사가 전장에서 죽어나감으로써 자국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이 죽을까봐 전쟁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는 일은 없을 거란 말이다.

 이제 우리는 로봇이 우리를 언제쯤 죽이게될까를 고민해봐야하는 시기를 맞이하는 것인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생명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고 심지어 신약의 개발로 영생을 누릴 수도 있다는 기사도 가끔 신문에 등장하고 있다. 영생까지는 아니더라도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명을 현격히 늘려줄 거란 말은 믿어도 될 듯 싶다. 하지만 인간은 조심해야 한다. 이제 또다른 과학기술의 발달로 로봇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늙어죽느냐 살해당하느냐의 기로에서 우리는 살해를 택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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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2-1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K. 딕의 <두번째 변종>이란 단편소설을 보면 살상무기로 제작되어 인류를 멸망시키는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요. 인간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을 가졌던 아시모프 할아버지는 지나치게 희망을 품었던 듯. 그래서 디스토피아를 그린 SF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마늘빵 2005-02-1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는 이쪽 소설들은 잘 몰라서 접해본게 없어요. 이제라도 관심을 좀 가져봐야지. 괜찮은 소설 있음 추천해주세요.

하얀마녀 2005-02-17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래는 점점 암울한 쪽으로만 치닫는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런 망할...

마늘빵 2005-02-17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기술이 우리네 생활을 풍요롭게 해줄지는 몰라요 정신을 풍요롭게 하기는 커녕 더욱 황폐화시킨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에 치중한 정신을 살찌우는 인문/사회과학이나 문학에는 신경을 덜 쓰잖아요. 두가지 다 만족시키기는 어렵겠죠. 요즘은 어느 하나만 하기도 힘든 세상에. 하지만 각각 두 분야에 치중하는 사람들이 양적으로 반반만 되더라도 어느 정도 질적인 동등함을 유지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깍두기 2005-02-1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을 권합니다. 제가 말한 <두번째 변종>도 들어 있구요. 읽어보시면 위의 기사가 걱정하고 있는 이야기를 극대화시켜서 소설로 표현한 절묘함에 놀라시게 될 거예요.

제 서재의 마이리스트를 보면 <SF의 바다에 빠졌지>란 허접한 리스트가 있으니 한 번 보세요^^

신화나 종교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젤라즈니의 작품을, 철학도이신 것 같은데 르귄의 작품도 생각할 거리가 많으니 권합니다. SF란 것이 읽다보면 예상 외로 철학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저는 좋아해요^^


깍두기 2005-02-1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어디서 퍼온 글인줄 알았는데 직접 쓰신 페이퍼네요. 훌륭합니다. 추천!
로봇의 3원칙을 아시는 분이 어인 겸손의 말씀을. 괜히 잘난 척 했네요^^;;;

LAYLA 2005-02-1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지요 깍두기님? 아프락사스이 글을 참 잘쓰셔요 *^^*

마늘빵 2005-02-17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컥.. 저 잠시 짜파게티 먹고 오는 동안 이런 부담스런 칭찬을 해주시면 ㅡㅡ; 숨을 데가 없는데. 깍두기님이 이 글 퍼가셨더라구요. 24시간 브리핑에 보니깐 갑자기 깍두기님 이름으로 제 글 제목이 떠서 놀랐습니다.

라일라님 / 그런 칭찬은 알라딘동네에 있는 다른 분들에께서 보시면 저 욕먹어요. 그것도 글이라고 쓰냐? 라고요. 컥...

마늘빵 2005-02-17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깍두기님 님의 서재에서 그 리스트 참조할게요~ ^^; 아휴 근데 관심분야는 자꾸만 많아지는데 게을러터져서 어디 읽어야지말이죠.

릴케 현상 2005-03-0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이나 합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