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곧 SF영화를 보게 된다.
미국 의회가 2010년까지 지상전투차량과 적진침투용 군용기의 3분의 1가량을 로봇으로 대체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우리가 영화로만 보던 그 화려한 미래전쟁 장면들이 고스란히 우리의 눈 앞에서 펼쳐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조차도 로봇은 홀로 싸우지는 않았다. 적을 향해 맞서싸우는 시온의 남은 사람들은 로봇에 올라타거나 안에 들어가 조정을 했지 로봇이 스스로 싸우지는 않았다. 지금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것은 영화 속 미래보다도 훨씬 더 진화한 단계인 것이다.
1920년 러시아 출생으로 미국에 이주해 칼럼비아대학에서 화학박사를 수료하고 보스턴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아이작 아시모프는 51년 파운데이션을 출간하고, 57년 그의 로봇 시리즈의 첫작품 <벌거벗은 태양>을 출간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의 소설에서 로봇의 3대 수칙을 정했다.
첫째,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
둘째, 수칙 1을 위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인간에게 복종한다.
셋째, 수칙 1과 2를 위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자신을 지킨다.
그런데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전쟁로봇은 적을 살상하는, 다시말해 인간을 살상하는 로봇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첫번째 수칙을 위반한 것이다. 첫번째 수칙이 무너진다면 두번째 수칙 또한 온전히 먹혀들지 의문이다.
기술이 얼마나 발달해 로봇이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며 살상을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구분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로봇이 인간을 살상한다는 윤리적인 문제가 부각된다. 그리고 구분이 불가능하다면 이제 로봇은 인간이라면 닥치는 대로 죽이는 살인기계가 되어버릴 뿐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에 인간이 죽어가는 장면을 우리는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 오래된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처럼 말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죄악이다. 단지 정치적 이유로 적군과 아군이 되어버린 두 인간이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닌 다른 인간을 살상하려고 눈에 불을 켜는 모습은 끔찍하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한 법인데 이들은 결국 자신을 죽이려고 안달하고 있다. 사형이라는 형벌이 문제시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점이다.
그런데 이제 로봇이 인간을 죽인다. 이건 어떤 발상인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죄악이므로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인간과 다른 로봇을 내세운다는 것인가? 그건 아닌 듯 싶다. 미국이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는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함이다. 아군 병사 한명이 죽으면 죽은 병사의 가족에게 위로금을 전달해야한다. 죽지 않더라도 퇴역한 군인에게는 퇴역 위로 지원금이 지급된다. 6530억 달러 규모라고 한다. 당연히 미국으로서는 로봇을 개발함으로써 그 많은 돈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고, 아군 병사가 전장에서 죽어나감으로써 자국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이 죽을까봐 전쟁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는 일은 없을 거란 말이다.
이제 우리는 로봇이 우리를 언제쯤 죽이게될까를 고민해봐야하는 시기를 맞이하는 것인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생명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고 심지어 신약의 개발로 영생을 누릴 수도 있다는 기사도 가끔 신문에 등장하고 있다. 영생까지는 아니더라도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명을 현격히 늘려줄 거란 말은 믿어도 될 듯 싶다. 하지만 인간은 조심해야 한다. 이제 또다른 과학기술의 발달로 로봇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늙어죽느냐 살해당하느냐의 기로에서 우리는 살해를 택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