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신정아 교수의 학위위조사건을 시작으로 웃지 못할 학력 커밍아웃이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다. 굿모닝 팝스 진행자였던 이지영씨가 자발적으로 더이상 양심을 속이기 싫다며 가짜임을 밝혔고, 만화가 이현세씨도 자신의 데뷔 첫 인터뷰 이후 좀 있어보이려고 대학 중퇴라고 거짓말을 해왔다고 이제는 진실을 말하겠노라고 밝혔다. 오늘 본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는 주변에 학력이나 경력을 과대 포장한 사람을 알고 있으면 제보를 달라고 메세지를 내보내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면, 이 파문이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다음번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을 기대해봐야겠다.

  무엇이 가짜이고, 무엇이 진짜인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방법은 쉽다. 거짓말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없던 일을 있었다고 말하면 그것이 거짓말이고 가짜일 것이요, 있는 일을 그대로 있다고 말하면 그것이 진실이고 진짜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사회의 문제이고, 한국은 가짜가 쉽게 대학 교수가 될 수 있는 국가라는 것도 문제이다. 실력도 없는 가짜가 감히 대학 교수가 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아니라, 검증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은밀한 뒷공간에서 진행되는 무언가가 난무한다는 문제점. 동국대는 나름대로 자체적으로 검증을 했다고 하지만 이렇게 학력위조가 사실임이 들통나버렸고, 이 과정을 조사한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채 사건을 자체적으로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다. 가짜를 교수로 임용한 동국대나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밝히지 않고 마무리짓는 동국대는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학력위조사건의 핵심은 '학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참에 전에 사두었던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학벌사회>를 읽어볼까 하는데, 당장 공부해야할 것들이 많아서, 읽게될지는 모르겠다. 서울대 졸업, 혹은 외국유명대학 석박사학위라면 껌뻑 죽는 대한민국. 인정하자.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타이틀이라면 다 통한다. 학계뿐 아니라 정치계, 문학계, 예술계 나아가 장사를 하더라도, 연예인을 하더라도, 밤무대를 서더라도, 청소부가 되더라도, 버스기사가 되더라도, 서울대 간판은 어디든 통한다. 서울대 졸업생이 버스기사가 되었다는 기사를 오래전 접한 기억이 있고, 티비에서는 그를 추적해 그가 서울대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기사가 된 이유를 인터뷰를 통해 전달한 바도 있다. 그만큼 '서울대'는 많은 관심을 받는다. 연예인을 해도 서울대 라는 간판은 그를 스타로 올려놓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사례는 김OO.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이참에 아예 온 국민이 학력위조를 해서 '서울대 졸업생' 혹은 '외국유명대학 졸업생' 임을 자처해보는건 어떨까 생각도 해본다. 모두가 서울대 및 외국유명대학 졸업생 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본다면 과연 어떻게 실력자를 가려내려할까. 일전에 정부에서 이력서에 학력란을 없앤다 어쩐다 이야기나 나온 적이 있었는데 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결국은 졸업장이 모든 것을 판가름할 터.

  신정아의 사기극을 보면서 신정아는 그저 한국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제반조건들을 잘 읽어냈고 적절히 활용한 능력이 뛰어난 사기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동시에 진짜로 실력이 있는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한국사회에서 대학교수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능력있는 여성이다. 교수직 뿐 아니라 머머 비엔날레, 어디 미술관(?) 등의 직위까지도 역임할 수 있는 다방면에 걸쳐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열정을 지닌 위인이며, 각 계의 권위자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뛰어난 화술과 친화력 또한 지닌 위인이다. 이 정도면 그녀에게 교수직과 기타 다른 중요한 직위를 주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_- 지금껏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결국 지금의 학력위조사건과 학력 커밍아웃은 대한민국 사회의 웃지 못할 뛰어난 코미디 한 편으로 결론내려진다. 사실상 학력과 학벌은 대한민국이란 테두리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대학을 가지도 않았을 때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출신대학과 학벌이 나를 옭아매고 -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모든 선생님들이 내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학력과 학벌을 물어왔다 -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는 서울대서부터 수능점수에 의해 구분지어진 대학서열순위를 자연스럽게 외우고 다녔으며, 대학에 왜 가야할까, 라는 의문은 가져봤어도, 수능점수 상위권 대학을 왜 가야할까, 라는 질문은 생각지도 못하며 졸업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의 졸업장은 나의 진로에 영향을 미쳤고, 아마도 결혼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 내가 상대여성의 학벌과 학력을 따지지 않더라도 만나는 여성들은 나의 그것을 따질 것이란게 일반적인 생각 - 앞으로도 나의 인생 전반에 관한 부분에 걸쳐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비단 나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국민들에게. 

  학력이 무엇이길래, 학벌이 무엇이길래, 그 사람의 취직과 결혼과 기타 등등의 인생의 모든 것들을 재단하고 결정하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을 4년제와 3년제, 2년제로 구분하고, 각각의 4,3,2년제 대학에 1부터 번호를 매겨 표기한 후, 매년 재추첨하여 다시 번호를 매기면 어떨까. 정말 진지하게 건의하고 싶다.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를 여기서 마치기 위해서.

  능력이 있으면서도 학력을 위조하지 않은 사람은 낮게 평가되고, 능력이 없으면서 학력을 위조한 사람은 높게 평가되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로 인해 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사기를 치고 싶은 작은 욕망쯤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다. 다만 용기(?)있는 자만이 행동으로 표출할 뿐. 언제쯤 위조하지 않은 학력과 학벌로 정정당당하게 평가받을 날이 올런지 모르겠다. 아마도 불가능하리라 본다. 

 p.s. 굿모닝 팝스 진행자인 이지영씨의 고백(?) 이후, 네티즌들의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어쩐지 발음이 이상하더라, 가짜인거 티나지 않았냐 나만 그렇게 생각했나, 세상 무섭다 등등. 이지영씨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지영씨 괜한 고백하셨습니다. 그냥 그대로 가시지. 들통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댓글 단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무서운건 이지영과 같은 가짜가 아니라 우리 사회라고.

 
참고기사 :
진짜가 무능하니 가짜가 득세
실력이 당신의 간판, 토종 실력파 박사 외국대서 러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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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7-22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처럼 솔직하게 까발렸을 때 그 후폭풍이 대단한 나라도 드물꺼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일단 무조건 아니라고 부인하는 건지도 몰라요..ㅋㅋ

turnleft 2007-07-22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가타카> 한국판 버젼 같죠. 물론 영화보다는 훨씬 속물적이고 유치찬란한 -_-

비로그인 2007-07-22 11:31   좋아요 0 | URL
우아- 가타카 불후의 명작이죠.
겁나게 좋아하는 영화랍니다 :)

마늘빵 2007-07-22 11:43   좋아요 0 | URL
체셔님 저도 겁나게 좋아하는 영화에요. 애들 보여줬는데 보는 애들이 서넛밖에 안돼서 공포물로 바꿨어요. -_- 쩝.

마늘빵 2007-07-22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 네. 정치인들이 정치인인 이유가 다 있는거겠죠? :) 정치란게 교묘히 누군가를 속이거나 시기를 맞춰 물타기 해놓고 치고 빠지는 거라면, 한국의 정치인들은 이 분야에 아주 탁월한 솜씨를 발휘합니다.

정아무개님 / 님 말을 들으니 이 기사가 떠오르는군요. 지방사립대 - 아마도 한남대로 기억 - 4년 연속 장학금에 과톱 임에도 불구하고 취업이 안되고 있다며 현수막을 걸고 우리의 피를 줄테니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뛸테니 제발 취직을 시켜달라고 헌혈운동하던 그들. 현실입니다. 학력, 학벌에 있어 우리 사회가 변하리란 기대는 하기 힘들거 같습니다. 지금의 대학입시체제과 대학교육으로는.

턴레프트님 / 가타카. 재밌는 영화죠. 현실성있고. 유전자를 속이느냐 학력과 학벌을 속이느냐의 차이. 다시 보고싶어지는군요 가타카. :)

Heⓔ 2007-07-2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의 실력이 그만한 학력자들과도 맞먹을 정도로 뛰어났던 건지...
학벌의 영향력이 실력이 없는 사람도 뽑게 만들 만큼 강력한 건지...@_@

마늘빵 2007-07-22 12:39   좋아요 0 | URL
히님 그쵸? 헷갈리죠? 저도 헷갈립니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강할 것이고, 실력과 능력은 누가 봐도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지위를 보존시켰겠죠. 그래도, 의심할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을 보여줬다면 능력도 뛰어난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도 @.@

2007-07-22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7-22 13:05   좋아요 0 | URL
속닥님 / 학력을 위조하고 속이기가 생각보다 쉬운가 봅니다. 저도 사실 머머대학 철학과를 졸업했지만 그 안에서 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그나마도 저처럼 꾸준히 학교를 잘 다닌 사람의 경우나 그렇지 잘 나오지 않는 학생들은 더더욱 동문들도 기억하기 힘들죠. 그러니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봐도 아웃사이더였음을 주장하면서 말하면 누가 의심이나 하겠습니까. 굿모닝팝스 듣진 않지만 꽤 오랫동안 잘 운영해왔고 팬들도 많은거 같던데 안타깝습니다.

다락방 2007-07-22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ee님과 아프락사스님의 말씀처럼 그정도의 능력을 보여줬다면 학력이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재미있는 사회예요.

마늘빵 2007-07-22 16:14   좋아요 0 | URL
그쵸? 실제로 학위가 있냐 없냐를 떠나서 학생들 가르치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다른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었다면, 충분히 '한국사회에서' 교수될 능력이 있다고 봐야죠. 그 능력이 어디서부터 나오든. (아마도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문제가 없었던건 대학 교수들이 수업 때 설렁설렁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익숙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그래서 신정아 또한 아무런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도 해봅니다)

2007-07-23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7-23 00:21   좋아요 0 | URL
아 속닥님 학생들의 선택의 폭을 강제로 좁힌다니 그분들 너무합니다. 선택의 권리는 본인에게 있고,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고, 주의를 해야하는지 정도만을 언급해주면 그분들로서는 해야할 도리를 다 한것일텐데. 결국 프랭카드가 관건이군요. 풉. 학벌 문제에 관해선 또 따로 페이퍼를 작성할 예정이지만 - 언젠가 - 고등학교 정문에 붙이는 그 플랭카드 없애야한다고 봅니다. 그게 대학 서열화를 조장해요.

이런. 그러고보니 또 졸업한 고등학교의 출입구에 붙어있는 년도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등의 합격자 숫자와 대표적인 졸업생의 이름이 써있는 간판이 떠오르는군요. 이런 줵일.
 


  가수 싸이가 병역법 위반으로 내달 다시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싸이는 처음에 잘못했다면 잘못한것에 대해서 응당 처벌을 받을 것이며, 법원의 명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현재 행정소송을 준비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아래는 싸이가 자신의 홈피에 올린 장문의 글 중 핵심적인 부분을 언론이 발췌 기사로 내보낸 것이다.

  "저는 죄인이 아닙니다", "감히 행정기관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상상 조차 무서웠다. 목숨보다 소중한 제 콘서트의 절반, 형제들을 잃을까봐 무서웠다. 죄를 짓지 않아도 죄인이 돼버리는 이 모든 일련의 상황들이 죽기보다 무서웠다",  "합법적으로 취득한 자격증으로, 합법적으로 병역특례 업체에 편입해, 9시간씩 3년 동안 출퇴근 시간 한 번 안 어기고, 시키는 대로 성실히 근무했다", "철원의 6사단에서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사단장 표창까지 받으며 잘 마쳤고, 이에 3년 동안 관리감독했던 서울지방병무청으로부터 복무만료처분과 소집해제를 명 받았다", "3년간 제게 '이상무'라고 말했던 같은 곳에서 갑자기 '이상'이라고 다시 가라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누구보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담당 기관에서 그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법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가족들의 상처를 덜어주고 싶었고, 벌써 몸도 잘 못 가누는 예비 쌍둥이 엄마의 눈물도 마르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응할 생각을 하니 무서웠다."

  이상의 발언은 서술 내용의 진실과 거짓 여부를 떠나 모두 싸이의 진심일 것이다.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국가의 명령과 언론, 국민의 시선이 두려웠던 것일게고, 따라서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생각하니 너무 억울해 다시 말을 바꾼 것이리라. 충분히 이해가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싸이의 행정소송 기사 아래 댓글을 달면서 병무청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는 싸이를 욕하고 있으나, 몇몇 네티즌들은 싸이의 잘못을 지적함과 동시에 병무청의 잘못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싸이가 부정적인 방법으로 병역특례를 얻어냈는지, 그가 출퇴근 시간을 지켰는지, 업무를 성실히 했는지 등은 모른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떤 과정과 경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병무청은 상세히 밝혀야 한다. 이런 점에서 네가 잘못을 저질렀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내용은 생략된 채 싸이가 부실근무를 했고 병역법을 어겼다라는 결과만이 주어졌고, 네티즌들은 싸이에게 달려들고 있다.  

  내용이 밝혀지고 그것이 사실이라하더라도, 이 시점에서 왜 싸이인가, 라는 의문을 가져봐야한다. 수많은 병역비리자들 중에서 싸이가 표적으로 선택된 이유는 무엇인가. 높으신 양반들의 자제분들은 돈과 지위, 권력을 이용한 온갖 방법으로 그물을 빠져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만한 연예인 하나 족침으로써 끝내려하는건 아닌가. 우리 병무청이 이렇게 열심히 검증해내고 있으니 국민여러분은, 특히나 앞으로 군대 가실 남성분들은, 걱정 마시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병역의무를 공평하게 수행하고 있다, 라는 메세지를 흘리는건 아닐까. 의문을 제기하자.

  사기꾼 하나, 사기꾼 둘, 사기꾼 셋.... 사기꾼 백만스물둘. 만일 싸이의 잘못이 명확한 것이라면, 잘못에 대해서 응당 처벌을 받아야하나, "3년 동안 관리감독했던 서울지방병무청으로부터 복무만료처분과 소집해제를 명 받았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면, 병무청의 명령 번복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할 것이다. 이미 성실한 근무를 했다고 검증한 전역한 병사에게 군복무기간 동안 정규일과 시간을 지키지 않고 피엑스에 가서 몰래 땡 돌려먹은 일과 부대 RCT 훈련 중 주머니에 건빵을 집어넣고 까먹던 일, 훈련 중 방독면을 벗어제끼고 홀로 편히 쉬었던 일,  해안소초에서 경계근무를 열심히 서지 않고 졸았다고 하여 날짜를 계산해 그만큼 다시 군복무를 하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싸이를 무조건 옹호해주자는 것이 아니다. 왜 싸이이고, 병무청은 이 사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지금처럼 모든 총구가 싸이에게만 집중되어있는건, 아니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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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7-07-22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문제나, 군가산점 문제 같은 군대 관련 일련의 논란들을 보면서 군대라는 제도가 어떻게 개개인의 의식체계를 주조하는가라는 문제에 관심이 가더군요. 님이 지적하신대로 싸이에 분노하면서도 병무청에 대해서는 무덤덤하고, 군가산점 폐지에 광분하면서도 정작 실질적인 군인 처우 개선 문제는 아예 관심 밖인 현상 말이에요. 군대에서 온갖 불합리한 예산/인력 낭비를 목도하면서도 제대 후에는 그저 무용담 정도로만 가끔 입에 올릴뿐 아무도 그 문제를 고치고자 안하죠. 복종이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된건지, 아니면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라라는 일종의 보상심리인지.. 암튼 그런 쪽으로 고민이 되고 있습니다.

조만간 <나치 시대의 일상사>를 읽을 생각인데, 뭔가 좀 힌트를 얻었으면 하네요.

Mephistopheles 2007-07-22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이가 욕을 먹는 이유는 무언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경솔하게 앞선 말을 했다면 그것이 잘못이겠으나 그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할 듯 싶군요.
왜 하필 싸이인가...에서는 그의 배경이 기타 연예인들보다 좋으면 좋았지 결코 나쁘지
않기에 의문스럽긴 합니다. 아울러 그의 방위산업체 복무 또한 의문스럽기도 합니다. 그의 집안의 재력과 권력을 이용한 결과물이라는 기사도 나왔었고요 재미있는 사실은 싸이의 일련의 이러한 행동과 사건진행과정동안에 그와 관련된 기사나 내용은 잠수함을 타버렸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앞뒤가 안맞어요 제가 그때 봤던 싸이의 기자인터뷰 내용은 어떠한 처분도 달게 받겠다..군복무도 다시 하라면 하겠다는 언급낒; 했는데 왜 하필 이제와서..가족과 정의를 내세우며 재판까지 끌고 갈려는 진짜 이유도 궁금합니다.이러한 법적공방이 지루하게 진행된다면 일단은 소집해제까지 갈 가능성도 높을 껍니다. 병무청과 군관련기관의 비합리적인 처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여태까지 이런 병역비리가 터졌을 땐 대표적인 연예인들이 주목을 받았지 병무청 관련인사의 처벌이나 문책은 공개된 적이 없었죠..지독히 폐쇄적인 집단이며 이건 아마도 과거 두번에 걸친 군사쿠데타와 정권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군인공제회의 재테크도 다른 기관에 비해 월등한 이윤을 남긴다고 하더군요..^^ 아 오늘 박여사가 516혁명은 구국의 혁명이였다라는 기사를 보고 신문을 굉장히 거칠게 내팽개쳤던 기억도 나는군요..

마늘빵 2007-07-2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턴레프트님 / 저도 역시 님과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과거 2년2개월에서 3년까지, 현재는 2년 정도의 군생활은 개인의 의식체계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습득되는, 자연스럽게 의식의 한편에 자리잡는 것이 더 무섭죠. 군대 다녀온 남성들이 군관련 문제에 내놓는 의견은 대부분 사회에 나온 뒤의 자신의 무엇과 연결이 되죠. 직접 목도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나와 관련없는 일이니 말하지 않는 것이고. 님께서 고민하고 있는 방향과 제 그것이 거의 일치합니다. <나치 시대의 일상사>는 처음 듣는 책이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그 책에서 님께서 뭔가를 얻으셨다면 저도 읽어봐야 할 듯 하군요.

메피님 / 싸이의 집안 배경이 좋은 것이 타겟이 된 근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연예인으로 보지않고 한 재력가 집안의 자제로 바라봐야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다른 놈들 놔두고 싸이가 표적이 된건 아무래도 의심스럽습니다. 재력가라기엔 그다지 '큰' 재벌이 아닌 듯 하고, '재력가의 자제'보다는 사회비판적 메세지를 내보내고 자유로운 '연예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훨씬 강하죠.

병무청과 군관련 인사들의 비리와 비합리적 처사 또한 이 기회에 언급하여 함께 끌고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폐쇄적인 집단인 군은 - 자신에 대한 비판은 절대 접수하지 않는 - 비판에 있어 성역이죠. (사례로 부대 내에서는 한겨레는 결코 볼 수가 없죠. 부대마다 좀 다르게 적용하는거 같지만 육군은 특히나.) 세력도 막강하고 국가의 안보문제와 직결되어있어 누구도 비판하지 않습니다. 예비역 장성인 표명렬씨가 예비역 집단에서 축출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그분을 존경합니다. 제가 직접 겪은 문제만 해도 언급하려면 기억을 더음어 한참을 서술해야 할겁니다.


Heⓔ 2007-07-2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랄까 싸이가 타깃이 된 데는..본인이 노출된 것 또한 있으리라 봅니다.
본인이 의도했건 언론이 타깃으로 삼았건 간에..
일단 같이 묶여서 터졌던 강모씨나 이모씨같은 유명 가수들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 데 반해..
싸이의 이야기는 메인으로 등장하곤 했죠..
거기에는 본인 스스로 인정하는 듯한 그런 발언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봅니다.
뭐 유 모씨가 병역기피의 아이콘이 된 것도..
가겠다는 식으로 몰아가다 말을 바꾼 배신감이 컸던 것처럼...
싸이도 달게 받겠다는 식으로 몰아가다가 말을 바꾼 데 대한 반감도 큰 것 같습니다.

암튼 싸이를 옹호하진 않지만...싸이의 말도 틀린 건 없다고 봅니다..
병무청의 하는 짓은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병무청이라면 나름 국가기관이고 군인을 관리하는 곳인데..
일처리를 그따위로 하는 것은 참... =_=....

마늘빵 2007-07-22 12:52   좋아요 0 | URL
"싸이를 옹호하진 않지만" 제가 싸이의 입장이라 할지라도 화가 치밀 것 같군요. 다 됐다고 인정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다시 가라니. 군대를 다시 가라고 하는건 죽기보다 싫은 저는 정말 거부하고 감옥에 갈지도 모릅니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싸이가 스스로 일을 크게 만든 것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언론을 제대로 가지고 놀 줄 몰랐던거죠. 평소의 솔직한 발언이 이때는 지금과 같은 파장을 일으키는군요. 고로 도출되는 결론 하나는, 연예인은 솔직해선 안되고 거짓말을 잘해야 한다. 그나저나 싸이 말고 다른 이들은 누굽니까 저도 첫 기사에서 다른 이들도 언급됐단 사실을 까먹고 있었군요. -_-

Heⓔ 2007-07-22 13:07   좋아요 0 | URL
인기 댄스 그룹 젝모그룹으로 활동하던 멤버들 중 강 모씨와 이 모씨입니다.
제가 알기로 그 둘도 싸이와 같은 처분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싸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0=;;;;;

마늘빵 2007-07-22 13:15   좋아요 0 | URL
정보가 참 빠르십니다. 싸이 말고는 전혀 언론을 통해 들어본 바가 없는데. 인기그룹의 강모씨면 혹시 강타인가. -_-

책읽기는즐거움 2007-07-22 16:52   좋아요 0 | URL
젝모그룹이라고 하셨으니 아무래도 강성훈과 이재진인듯 하네요ㅋ 강타는 안칠현이라는 아름다운 본명이 있는데 '강'을 성으로 하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마늘빵 2007-07-22 16:16   좋아요 0 | URL
방금 네이버에 기사가 떴네요. 아니 우리가 궁금해하는거 어떻게 알고. 기자도 참 용치. :) 강현수와 이재진이라고 하는군요. 쟤네 홈피에도 네티즌들 - 특히 남성네티즌들 - 주루룩 몰려가겠군요.

책읽기는즐거움 2007-07-22 16:53   좋아요 0 | URL
강현수는 젝스키스가 아니지 않나요? 음,,, 저도 한번 기사를 찾아봐야 하겠네요^^ㅋ

마늘빵 2007-07-22 16:58   좋아요 0 | URL
모르겠어요. 제가 소녀팬이 아닌지라 재키 멤버가 누가 있는지는 모릅니다. 크흣. 일단 네이버에는 강현수라고 나와있네요.

Heⓔ 2007-07-23 09:10   좋아요 0 | URL
기왕 이름 다 떴으니 밝히자면..
젝키의 강성훈,이재진, 브이원으로 활동했던 강현수, 싸이로 활동했던 박재상.
같은 혐의로 같은 처분 받고 같은 반응을 보이는 동료들입니다~

가넷 2007-07-22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현수는 브이원인가 뭔가로 나왔던 사람아닌가요? 예전에 쿠데타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불렀던 것 같기도하고...

마늘빵 2007-07-22 23:09   좋아요 0 | URL
검색들어갑니다. :)

마늘빵 2007-07-22 23:40   좋아요 0 | URL
뒷조사 결과 맞습니다. :) 저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2007-07-23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7-23 08:52   좋아요 0 | URL
아 속닥님 증인이시군요 :) 네 일단 싸이가 부실근무를 했다는게 명백한 사실이라 하더라도, 병무청 또한 벗어날 수 없음을 이 글을 통해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부실근무가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한게 아니니깐요. 아마도 대부분의 - 연예인뿐 아니라 - 병특들은 '부실근무'라는 죄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을 겁니다.

비로그인 2007-07-23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나름의 의견을 내놓지 않고 동조만 한다고 말하기가 껄그러운 오늘이지만, 위에 메피님 말씀에 심히 공감합니다. 저도 박여사 말듣고, 왜? 유신헌법얘기는 안하는데? (그것까지 감쌌다간 대선은 건너간거지만) 했거든요.

마늘빵 2007-07-23 20:13   좋아요 0 | URL
저도 싸이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진 않습니다. 죄값을 치뤄야죠. 근데 이게 너는 이미 되었다, 고 땅땅땅 치고 난 뒤의 일인지라 억울하겠죠. 무사히 다 통과했는데 왜 이제와서 응응? 이거죠. 오늘 검찰이 병무청은 당시 강제처벌권(?)이 없었고, 순찰(?)시 걸리지 않았던 것이지 싸이 니가 잘못이 없다는건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 이제와서 검찰이 조사를 해서 잘못이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냐, 고 말했지만 - 좀 복잡한가요? - 이것도 검찰과 병무청의 말장난이죠. 병특이 아닌 현역에게도 이렇게 말 할 수 있나 물어보고 싶군요.
 
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2007. 7. 18 예스24

http://movie.yes24.com/movie/movie_memwr/view.aspx?s_code=SUB_MEMWR&page=1&no=16349&ref=77&m_type=1




* 스포일러 경고

   분명 다시 확인해봐도 영화 장르는 애정/멜로/로맨스를 벗어날 수 없는데, 영화를 보면 한 가지 장르를 추가해야 할 듯 하다. 미스테리. 이 영화를 보고서 관객이 충격받지 않도록 하려면 장르 명칭을 제대로 붙여야 한다. 멜로/로맨스로 알고 기대했던 영화를 보고 의외의 충격을 받는 관객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싶다. 미스테리 로맨스.

  영화를 무작정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이 영화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잘나가는 일본의 미스테리/추리물 작가의 동일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번역된 책에 달려있는 별의 갯수와 평가는 영화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별의 갯수가 중요한건 아니고, 그것이 영화를 평가하는 객관적인 척도도 될 수는 없겠지만, 책을 읽은, 영화를 본 많은 독자와 관객들의 주관적인 평가가 한데 모인 이 결과물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영화 <변신>은 높아진 관객의 기대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고, 소설의 미스테리/추리도, 영화가 추구하려했던 멜로/로맨스도 모두 잡지 못했다.




  * 나루세 준이치(타마키 히로시). 메구미를 사랑했고, 사랑하지 않는건, 내가 다른 사람의 뇌를 이식받았기 때문인가.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건, 달라진건, 내가 다른 사람의 뇌를 이식받았기 때문인가. 생각을 전환하자. 영화를 달리 보자. 주어진 그대로를 바라보지 말자. 뇌이식은 잊어라.

  "타인의 뇌를 이식한 나는 본래의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영화는 어색한 멜로/로맨스의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면서도 끝까지 이 물음을 놓지 않고 있다. 총에 맞아 뇌의 일부가 다쳤고, 마침 십 만 분의 일이라는 확률에 나올까 말까한 나의 뇌에 딱 들어맞는 뇌가 있다고 하자. 수술대에 올라간 나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딱 들어맞는 뇌의 일부를 이식받았고, 몇날며칠을 잠을 잔 끝에 깨어났다. 뇌를 이식받기 전의 나와 이식받은 이후의 나는 동일인물인가. 의학적으로 일부의 뇌만을 이식하고 그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뇌 기증자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의 행동습관을 무의식중에 따라하게 된다는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의 진리 관계를 떠나 애초의 물음에서 좀 더 나아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인식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뇌이식을 받기 이전의 나루세 준이치는 메구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하고 수줍고 착한 사랑스러운 남자였다. 하지만 뇌이식을 받은 이후의 준이치는 메구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귀찮을 따름이고, 그 누구로부터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심지어 옆방에서 떠드는 소리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식칼을 손에 쥐는 등의 살인충동까지 느낀다. 뇌이식을 전후해서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A의 뇌를 B의 뇌로 바꾼다면 A는 B가 될 수 있단 말일까.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인식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심리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은 '통 속의 뇌'라는 걸 가정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라는 책의 '완전한 은둔자' 부분에도 '통 속의 뇌'를 언급하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어떤 사악한 과학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한 사람의 뇌를 육체에서 분리하여 이 뇌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줄 영양액이 담긴 통 속에 옮겨 담았다. 뇌의 각 신경 조직은 초과학적 컴퓨터에 연결되고, 이 컴퓨터는 뇌에 전기적 자극을 주어 우리의 감각 경험과 똑같은 질적 정보를 준다. 그 사람(뇌)의 입장에선 환경, 각종 사물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존재하고 또한 완벽히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모든 것은 컴퓨터와 신경 세포 간의 전기적 자극의 결과일 뿐이다."

  통 속에 담긴 뇌가 컴퓨터의 전기적 자극에 의해 무엇인가를 인식한다면, 누군가가 피자를 먹고 있을 때 피자 맛이 나도록 전기 자극을 주고, 손을 들었다고 착각하도록 전기적 자극을 줄 수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지금 가정하고 의심하고 있는 "어떤 사악한 과학자가 사람들의 뇌를 떼어내 뇌를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할 영양분이 담긴 통 속에 집어넣고 이런저런 조작을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 모두의 뇌는 각기 다른 통 속에 들어있고 각각의 뇌는 각각의 전기적 자극을 통해서 대화한다고 느끼고, 숨을 쉰다고 느끼고, 생각을 한다고 느낄 수 있다. 지금 자판을 치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나 또한 통 속의 뇌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가. 나 자신에게 몸이 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두 팔과 두 다리가 두 눈이 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심지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내가 바라보고 인식하는 모든 것들, 참이라 알고 있는 것들을 확신할 수 있는가. 힐러리 퍼트넘의 '통 속의 뇌'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도록 만든다.  결국 '통 속의 뇌' 개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현대적 검증이라 할 수 있다.



* 멜로/로맨스라 해서 눈물 쏙 빼겠다 싶었던 영화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으로 관객을 몰고간다. <변신>은 울고 싶지만 웃긴 영화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 여자, 메구미(아오이 유우). 결국 그녀가 받아들여야할 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었다. 준이치의 말과 행동과 마음이 달라졌다고 그녀의 준이치에 대한  사랑이 변하는건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준이치를 사랑했다.

  영화를 보면 수술대에서 회복 중이던 준이치가 일어나 병원의 다른 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뇌와 기증자의 뇌가 통 속에 담긴 것을 보고 구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잘려진 나의 뇌와 잘려진 기증자의 뇌는 모두 투명한 통 속에 잘 보존되어있었다. 그로부터 지금 나는 내 뇌의 일부와 기증자의 뇌 일부를 가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잘려진 일부의 뇌와 잘려진 일부의 뇌가 내 머리 속에 들어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아니다. 단지 그렇다고 추리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어느 것도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통 속에 담긴 두 개의 뇌를 봤고 구토를 했다는 것은 확실한가. 그것도 믿을 수 없다. 투명한 통 속에 담긴 뇌는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고, 통에 붙여진 N.J. 라는 알파벳 약자를 통해 '나루세 준이치'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 조차도 또 거짓. 

  힐러리 퍼트넘의 '통 속의 뇌' 이론을 적용시켜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나루세 준이치의 뇌를 가졌을 때 사물을 인식하는 법과 기증자의 뇌를 가졌을 때 사물을 인식하는 법은 다르다고. 그 또한 조작된 것이라고. 결국 나루세 준이치가 자신의 뇌를 가졌을 때 보였던 행동양식과 가치관이 기증자의 뇌를 가졌을 때 보였던 그것과 다르다고 말 할 수도 없다. 전기적 자극에 의해 조작된 것일 수도 있으니까.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메구미를 향한 준이치의 사랑도, 준이치에 대한 메구미의 사랑도. 

  뇌를 바꾸면 그 사람의 특성도 바뀌는지, 그 사람의 정체성도 바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우리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애초의 물음 "타인의 뇌를 이식한 나는 본래의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에 대해서 그렇다, 아니다, 라는 확실한 답을 내리려하진 말자. 행동의 급격한 변화를 보인 뇌이식 이전의 나루세와 이후의 나루세 뿐 아니라, 뇌이식을 받지 않은 우리 모두 또한 변화하고 있다. '뇌이식'은 잊고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다고 말할 수 있는가?" "1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의심하라. 내가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자기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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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신기루 2007-07-1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뇌만을 꺼내놓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통 속의 뇌'는 <매트릭스>와 비슷하네요
인간의 신체를 움직이는 데 사용될 에너지를 기계에 사용하는 대신 가만히 누워있게 만든 인간에게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을 머릿속으로만 인식하도록 하는 거 잖아요
만약 우리가 정말 매트릭스 안에 사는 거라면, 가상현실 속에서 뇌수술 따위를 하고 그로 인해 인격이 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거겠죠??(이 질문은 약간 생뚱맞은 듯.)
뇌이식에 대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정말 많은데 정리가 안돼요ㅠ_ㅠ

마늘빵 2007-07-19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 다른 식을 전개해나가다가 바꾸지 못한 흔적이 그렇게 남을 줄이야. -_- 수정했습니다.
신기루님 / 모든 것이 의심스럽죠? :) 인간들은 어쩌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 나오는 수많은 개미들 중 하나 일 수도 있어요. ㅋㅋ

마늘빵 2007-07-19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데도 하긴하는데, 활동은 잘 안하고 주요 글만 올립니다. 알라딘에서만 '놀아'요.
근데 <변신> 영화 영 아닙니다. -_-
 
비평 15 - 2007. 여름
비평이론학회 엮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5월
품절


어느 쪽이 낫다 못하다를 떠나서, 만약 우리가 고교생들에게 미국 방식의 에세이를 쓰게 한다면 어찌될까? 어림도 없는 얘기다. 학생들이 소질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는 우선 학생들의 소질을 북돋아 줄 방법이 없고, 이미 사회에 만연한 상호불신과 반교육적 '에토스'가 그런 자발성의 교육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대학으로서 당장 그 제출된 에세이가 학생이 제 손으로 쓴 것인지 누가 대신 써준 것인지 판별할 길이 없다. 미국 방식의 자유논술 같은 것은 "학생 에세이는 절대로 타인이 써주지 않는다"는 규칙과 명령의 교육적 준엄성이 사회적으로 존중되고 학교, 사교육장, 학부모, 학생이 모두 그 규칙을 준수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잘 쓴'혹은 '잘 썼다'는 에세이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시장이 즐비하고 대신 써줄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데가 대한민국이고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규칙을 제 혼자 지키려는 자는 바보가 된다. 학생들은 바보이고 싶지 않다. 부모들도 바보이고자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대학에 붙고 보자"는 명령이 다른 모든 명령들을 압도하는 상황에서는 수단방법을 가리고 규칙을 따질 겨를이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어야 하기 때문에 그 '무슨 수'들이 아무리 부당하고 불법적이고 비교육적인 것이라 해도 일단 대학에 붙기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속임수를 포함해서 '무슨수' 이건 쓸 줄 아는 것이 오히려 '경쟁력'이다. 고교생 독서이력철 같은 제도가 시행되어도 대학으로선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난감한 문제에 봉착한다.

(경쟁력, 수월성, 창의성의 비극 - 도정일)-27-28쪽

대학입시 경쟁에서 91점을 받은 학생은 입학하고 90점을 받은 학생이 탈락하는 것은 개인의 실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학과정원 수에 의해, 30명 정원일 경우 30등을 한 91점 학생은 입학이 가능하고 31등을 한 91점 학생은 탈락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기에 91점과 90점 간의 차이 1점은 결코 인간의 능력이 실력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점으로 겨우 붙은 학생은 실력 있는 학생처럼 사회적으로 대우 받는 반면 90점으로 탈락한 학생은 열등생으로 낙인 받게 된다. 이것이 입시 위주 한국 교육의 병폐인 동시에 한국 교육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다.

(교육 붕괴와 교육의 민주화 - 한준상)-32쪽

이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 어른들에게뿐만 아니라 곁 사람에게, 세상에,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게 버르장머리가 없다. 사람대접은 보고 배운 적도, 따로 익힌 적도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가끔 도저히 눈뜨고 볼 수가 없어서 불러 야단치면 "왜요?"하고 눈부터 치켜뜨고 대든다. 사회의 소수자나 약자는 고사하고 도대체 남을 배려하는 일엔 손방이다. 하기는 이들이 누구에게 뭘 보고 배워 그걸 알겠는가? 무엇보다도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에 기대 함부로 악담으로 대거리로 마녀사냥을 일삼는 이들의 버르장머리 없음과 배려 없음은 등골이 서늘할 지경이다. 또 디지털 세대로서 어른들보다 월등한 핵심역량으로 어른세대의 위선과 모순에 앙갚음하는 서슬 또한 무섭기 짝이 없다. 아이들을 이렇게 죽음과 죽임의 나락으로 내몬 어르신들은 과연 어떠신가?

그토록 교육이라면 맹신하다 못해 광신하는 세상에서 정작 교육을 맡은 교사들부터 헌신짝 취급이다. 그림자도 밟지 않도록 모시고 기리던 스승의 자취는 어느 새 간 데 없고, 스승의 날이면 교문 닫아걸고 손사래 치며 대접은커녕 손가락질이나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처지다. 그깟 세상이야 뭐라던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아이들 잘 가르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 뿐이다. 내가 아는 어느 초등교사가 울먹이며 한탄하듯이 아이들은 숫자나 글자는 죄 배워갖고 오면서, 정작 싸가지는 하나도 배워먹지 못하고 학교에 들어온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에서는 퍼져 자기나 하다가 행여 이름이라도 부르면 눈을 부릎뜬다. 나무라거나 꾸지람 할라지면 핸드폰으로 호시탐탐 동영상 찍어 신고할 건수나 노린다. 부모들은 이제 교사 알기를 우습게 알고 아무 때나 달려들고, 걸핏하면 팔 걷어붙이고 나선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두렵다고, 부모들이 무섭다고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른다.

(교육, 마지막 식민지 - 정유성)-106-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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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공화국의 종말 - 인재와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대한민국이 산다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6월
절판


주어진 문제를 틀리지 않고 정답을 골라야 하는 자아의 정신과 의식은 완전히 해체되어 문제를 출제하는 외부자의 일부분, 아니 외부자의 일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몰 주체화 과정이자 몰 개성화 과정이다. 즉 개인의 주체성과 개성을 부정하고 말살해버리는 과정이다. 이처럼 대학 입시에 점령당한, 대학 입시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한국의 교육은 근대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의 인간 유형을 양산하고 있다. 근대사회는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개인들과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 위에 존립한다.-38-39쪽

사실 체벌은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몸은 더 이상 규율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은 정신과 더불어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의 인격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나의 인격은 너의 인격과 마찬가지로 존엄하고 신성불가침한 것이다. 거기에는 그 어떠한 물리적이 강제력이나 폭력도 가해서는 안된다. 체벌은 다른 사람의 인격에 강제력과 폭력을 행사해도 괜찮다고 가르치는 꼴이다. 따라서 교육이나 훈육이 필요하다면 체벌이 아닌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밑줄그은이 주 :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현실에서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간혹 발생한다. 명백히 누가 봐도 - 잘못을 저지른 본인을 포함 - 잘못인 것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을 경우, 다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통하지 않는다면, 해당 학생을 포기해버리거나 신체에 폭력을 가하더라도 잘못을 뉘우치도록 하는 두 가지 길 밖에 남지 않는다. 포기할 수 없으니 후자를 택할 밖에)-50쪽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일선 교사들이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한다. 가르친 사람이 그 결과를 평가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유기적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가르치는 사람 따로 있고, 평가하는 사람 따로 있다. 후자는 전자를 철저히 무시하고, 전자가 소유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문화자본'을 가지고 전자가 가르친 학생들을 시험한다. 마치 자신의 지적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를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한국의 대학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비유기적으로 분리시키고 괴리시키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사회집단이다.-68-69쪽

그러나 민사고에서 10등은 어디까지나 10등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고, 일반고의 1등은 어디까지나 1등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신이란 학생들이 동일한 환경과 여건에서 경쟁을 해서 나타난 결과를 점수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신은 학생들이 주어진 조건에서 얼마만큼 학업을 성취했는가를 따지는 제도인 관계로 서로 조건이 다른 고등학교의 내신을 비교해서는 안된다. 민사고 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어디까지나 다른 민사고 학생들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써 의미를 지닌다. 특목고의 경우도 그렇고 일반고의 경우도 그렇다. 서로 다른 학교의 내신은 상호 비교할 수도 없고 비교해서도 안 된다. 바로 이러한 근거로 일반고에서 1등은 민사고나 특목고에서 1등과 동일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108-109쪽

내가 보기엔 내신 그 자체가 말이 안된다. 즉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학업 성취도에 따라서 줄을 세운다는 발상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와 행위를 객관화하고 계량화하고 그 결과에 근거해 상호 비교할 수 있다는 생각의 발로이다. 여기서 인간은 객체화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주체성과 자율성 그리고 인격은 부정되고 무화된다. 남는 것은 산술적 논리일 뿐이다. -109쪽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 시험의 경우 내가 받은 90점은 네가 받은 95점과 당연히 비교된다. 정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시험에 정답이 없다면 나의 A학점과 너의 B학점은 단순히 비교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너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 중략 ... 그러므로 굳이 내신을 반영해야 한다면,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를 해야한다. 즉 단순히 기계적으로 누가 몇 등급에 속하므로 몇 점을 받는다고 평가해서는 안되고, 그가 주어진 여건에서 어느 정도의 학업 성취도를 보여주었는가를, 그리고 그가 지원하는 대학에서 어느 정도의 학업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평가해야 한다.-109-110쪽

한국인들은 외국의 언론사들이 실시하는 대학의 서열화 작업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대학들이 고등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그렇게 되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른바 세계적인 대학들은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고 뛰어난 연구 업적을 쌓으며 질높은 교육을 시키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오늘날의 발전을 이룩하고 명성을 획득한 것이지, '쩨쩨하게' 고등학교에 기대고 힘입어 그리된 것이 아니다.-112쪽

최소한 동일한 조건인 경우에는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열악한 환경과 조건에서 공부한 학생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큼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대학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잠재력과 창의성이지 결코 고등학교에서의 학업 성취도를 계량화하고 지수화한 점수가 아니다. -114쪽

요즈음에는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공교육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고등학교들이 제법 눈에 띈다. 그러나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하나 있으니, 이러한 학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사교육으로 왜곡된 학교 교육을 바로잡아 전인 교육이나 인성 교육을 시키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다만 학생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고 학교에서 대학 입시 준비를 시킨다는 점에서 다르다면 다를 뿐이다. -142쪽

(밑줄그은이 주 : 음주 문화와 와인의 이해 등의 실용적인(?) 과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물론 대학은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뒤처져 고리타분한 '상아탑주의'로 남아서는 안된다. 글로벌화와 글로벌 시대는 대학 사회에도 커다란 도전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글로벌 에티켓'을 가르치는 것에 대학의 역할이나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은 오히려 글로벌 에티켓을 글로벌 시대의 구성요소로서 연구 대상으로 삼아 분석하고 설명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인 토론을 전개해야 한다. 즉 글로벌 시대는 대학에게 인식의 대상이지 예의범절의 대상이 아니다. 예의범절로서 글로벌 시대는 시민회관이나 백화점의 문화센터에서 배우도록 하라-162쪽

대학에서는 단 한두 명 밖에 수강생이 없더라도 칸트, 하이데거에 대한 강좌를, 성리학에 대한 강좌를 개설해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토론식과 논술식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대학이외의 그 어떠한 사회문화적 조직이나 공간에 의해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이를 대체할 수 있다면 대학은 굳이 존재할 근거나 의미가 없다. 역으로 만일 대학이 상품을 생산하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면 기업의 존재 근거와 의미는 퇴색하거나 없어질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시민 교양 수준의 강좌는 폐지해야 한다. 설령 수백명이 몰린다고 해도 말이다. 물론 대학 밖의 어디서 그런 강좌가 열리는지 홍보하는 포스터나 책자는 학생들을 위해서 비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말이다. 대학생에게는 교양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추구할 곳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대학 밖 어딘가에-162-163쪽

시험에서도 고등학교와 대학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되고 전도된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대는 2008학년도 논술 고사의 시험시간을 5시간으로 결정했다. 문항은 인문계가 3개, 자연계가 4개를 각각 출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다른 대학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술 고사를 거쳐서 들어간 대학에서 치르는 시험은 어떠한가? 대략 한 시간 정도에 걸쳐 2-3문제를 푸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도 말이 주관식 서술형이지 강의 시간에 배운 것을 착실히 암기해 충실히 답안을 채우는 방식이 주종을 이룬다. 결국 변형된 객관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험으로 학생들을 측정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논술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182-183쪽

독일의 대학에서 진행되는 세미나식 수업 방식의 구조와 과정은 다음과 같이 기술해 볼 수 있겠다. 우선 담당 교수는 한 학기 동안 진행할 세미나의 주제, 목표 및 세부적인 주제를 제시한다. 물론 구체적인 사항들을 학생들과 의논해서 결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또는 그룹에 속해서 담당 교수가 제시한 또는 공동으로 결정한 세미나 주제 중에서 특정한 것에 대해서 발제함으로써, 참석자들에게 토론의 실마리와 자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어느 발제가 좋았느냐, 아니면 나빴느냐에 대한 기준은 얼마나 발제자가 혼자서 많은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느냐에 달려 있다. 세미나에서 발제한 내용은 이후에 글로 써서 제출해야 하는데 저학년 세미나에서는 주로 발제 내용의 정리 수준에 머문다면, 고학년 세미나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작은 논문 형식을 취하게 된다. 한편 담당 교수는 제출된 글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해당 학생들과 직접 면담하고 토론을 하는데, 그는 여기에서 학생의 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후에 점수를 주게 된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서 비로소 한 과목의 이수가 끝나게 되는 것이다.-217-218쪽

한국에서 엘리트는 명문대 출신과 동일시되는 명목상의 엘리트이다. 엘리트다운 능력을 겸비하지 못한 명목상의 엘리트는 당연히 허약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엘리트가 허약하다는 명제는 무엇보다도 엘리트 집단은 획일적이며 정답을 찾아 헤매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통해 입증된다. 그리고 이처럼 허약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사회는 당연히 허약할 수 밖에 없다.-229쪽

객관식 시험은 언제나 정답과 오답을 구분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도록 강요함으로써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범주화하는 흑백논리를 키우기 수비다. 한국 사회에서는 '빨갱이'이니 '이단'이니 하는 흑백논리를 아주 쉽게 접한다. 물론 이 둘은 한국 사회의 독특한 정치적 경험과 종교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빨갱이'와 '이단'과 같은 흑백논리의 형성에 교육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 또는 우리, 즉 '정답'을 고른 개인이나 집단은 너 또는 너희, 즉 '오답'을 고른 개인이나 집단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정답'은 선한 것이요, '오답'은 악한 것이다. 둘이 왜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 둘 사이에 접점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정답'과 '오답'은 논의나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객관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찾지 못한 개인이나 집단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273쪽

언젠가 도덕시험에 '다음 중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5개의 지문이 주어졌단다. 그러자 그 학생은 자신이 볼 때 중학생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문항을 골랐다. 그는 나름대로 '주관적 정답' - 물론 표현이 좀 어색하지만 - 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답으로 처리되었다. 그래서 교사에게 항의했더니, 교사가 제시한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교과서 어딘가에 중학생이 되면 하는 일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이 정답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을 교과서에서 규정할 수 있다는건가. 그리고 학교와 교사는 교과서의 내용을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참고 자료로 이용할 수 있지, 어떻게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아니 신주 모시듯이 하면서 무성찰적이고 무비판적으로 학생 평가 자료로 이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객관식 시험을 통해서 말이다. 섬뜩한 기분이 든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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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7-2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점점 찌들어버렸던 불행했던 학창시절이 생각나네요. 언제쯤 학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곳이 될까요.

마늘빵 2007-07-2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르치는 저도 힘겹습니다. 읽기만 해도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해야한다는게 - 그렇다고 따로 뭔가를 만들어 수업할 능력도 안되고 - 답답합니다. 사고를 강요하는 교과서는 바뀌어야합니다. 특히나 마지막 밑줄긋기 부분에서 볼 수 있듯 도덕교과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옳고 그름을 재단하고, 사고의 틀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코미디죠. 저런걸 가르치는 저나, 시험보기 위해 외우고 있는 학생들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