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구판절판


오후 네 시였다. 그러나 사실 시계는 그런 데 관심이 없다. 시계는 일부터 십이까지 움직일 뿐이고, 나머지는 그저 인간의 정신 속에 있는 관념일 뿐이다. -170쪽

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80쪽

사람들이 흔히 눈이 멀었다고 표현하는 사랑도 그 나름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217쪽

남자들은 연민과 동정심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패배했다. 여자들의 분노는 정당했다. 여자들은 각자의 교양, 사회적 배경, 개인적 기질에 따라 남자들을 신둥부러진 놈, 기둥서방, 기생충, 흡혈귀, 착취자, 뚜쟁이 등으로 불러댔다. 어떤 여자들은 그동안 순전히 관용과 동정심 때문에 불행에 처한 동반자들의 성적인 제의를 수락해 왔는데, 이제 그 일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주었는데도 이제 여자들을 최악의 운명으로 몰아넣으려 하는 이 배은망덕한 행동을 보라는 것이었다. -235쪽

여자들은 남자들과의 말싸움에서 재치로 승리를 거두는 것이 그 뒤에 불가피하게 따르게 되는 패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른 병실들에서 벌어진 논쟁도 이와 똑같았을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의 이성과 비이성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것 아닌가. -237쪽

여자들은 귀가 멀고,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된 채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앞에 있는 여자의 손을 놓치지 않을 만큼의 의지력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올 때와는 달리 어깨가 아닌 손을 서로 잡았다. 누가 왜 돌아갈 때는 손을 잡고 가느냐고 물어도, 여자들 가운데 누구도 대답을 못했을 것이다. -255쪽

눈 먼 사람에게 말하라, 너는 자유다.-305쪽

도시의 미로에서는 기억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란 어떤 장소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것뿐이지, 우리가 그 장소에 이르는 길을 생각나게 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05쪽

그들은 자기가 돌이 된 꿈을 꾸고 있었다. 돌이 얼마나 깊은 잠을 자는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일이다. 시골에 나가 산책만 해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돌들은 땅을 반쯤 묻힌 채 누워 잠을 자면서 깰 때를 기다리고 있다. 돌이 깨어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누가 알겠냐만. 그러나 먹을 것이라는 말은, 특히 굶주림이 심할 때는 마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언어를 모르는, 눈물을 핥아주는 개도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런 본능적인 행동을 하다가 개는 젖은 개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을 힘차게 흔들어 사방으로 물을 튀기는 행동이다. 개들에게는 그것이 쉬운 일이다. 그들은 외투를 입듯이 털가죽을 입고 있으니까.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 가장 효험 좋은 성수(聖水)가 개의 몸에서 튀자, 돌이 사람으로 변하는 것도 빨라졌다. -331-332쪽

딱딱한 빵 한 조각의 냄새는, 숭고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삶 자체의 본질과 다름없었다고 할 수 있다. -332쪽

사모님은 우리의 복수를 하려고 죽인 거예요. 여자의 복수는 여자만이 해줄 수 있어요, 복수도 정의롭기만 하면 인간적인 거예요, 부정한 방법으로 피해를 준 사람에 대해 피해자가 아무런 권리도 가질 수 없다면 정의도 있을 수 없어요. -359쪽

자연스러운 지도자지, 장님의 나라에서는 눈을 가진 사람이 왕이니까.-360쪽

눈물을 핥아주는 개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식과 자신이 보호하던 인간이 떠난다는 깨달음 사이에서 아주 짧은 순간 망설이더니, 즉시 부드러운 땅을 발로 긁기 시작했다. -363쪽

그녀의 멀어버린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계속 살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답이란 필요하다고 해서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유일한 답은 답을 기다려보는 것일 경우가 많다. -367쪽

우리는 모든 모욕의 단계를 내려갔죠. 그걸 다 내려가서 마침내 완전한 타락에 이르렀어요. -387쪽

우리는 모욕의 모든 단계를 내려갔죠. 그걸 다 내려가서 마침내 완전한 타락에 이르렀어요, 방식은 다를지라도 여기서도 똑같은 일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도 그곳에서는 그런 타락이 다른 사람들 탓이라고 핑계댈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게 안 돼요,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는 묻지 말아주세요, 눈먼 것이 드문 일이었을 때 우리는 늘 선과 악을 알고 행동했어요,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해요. -387-388쪽

말이란 것이 그렇다. 말이란 속이는 것이니까, 과장하는 것이니까. 사실 말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디나 세 마디나 네 마디 말,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흥분한다. 그 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살갗을 뚫고, 눈을 뚫고 겉으로 튀어나와 우리 감정의 평정을 흩트려놓는 것을 보며 흥분한다. 때로는 신경마저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돌파당하고 만다. 사실 신경은 많은 것을 견딘다. 모든 것을 견딘다. 갑옷을 입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의사의 아내의 신경은 강철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이런 단순한 문법적 범주들 때문에, 단순한 부호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두 여자, 부정(不定)대명사로 표현하자면 다른 사람들, 그들 역시 울고 있다. 그들은 온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여자를 끌어안는다. 쏟아지는 비 아래 미의 세 여신이다. -395-396쪽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 -419쪽

사물의 질서가 뒤집혀 있어요, 늘 죽음을 나타내던 상징이 삶의 상징이 되어버렸어요. -428쪽

그러나 지금은 말의 음악밖에 없다. 이런 말의 음악이란, 특히 책 속에 나오는 말의 음악이란 두드러지지 않다. 그래서 설사 이 건물에 사는 누군가가 호기심에 이들의 문간에 귀를 대어보았다 해도, 한 사람이 웅얼거리는 소리, 무한으로 뻗어나가는 긴 실 같은 소리밖에 못 들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책이란, 그것을 다 합쳤을 때는, 사람들이 우주를 두고 하는 말처럼, 무한한 것이다. -4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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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2월
구판절판


"예술에서 혁신은 내용도 아니고 형식도 아니고, 기술에서 나온다."(발터 베냐민)-7쪽

영화는 정신적 지각의 대상을 제작하는 행위에서 점차 신체적 체험을 연출하는 행위로 변해가고 있다.

"기술을 통해 인류에게 하나의 자연이 조직되고 있다."(발터 베냐민)-9쪽

렌즈는 소수를 전지한 간수로 만들면서 다수를 무력한 수인으로 만든다. -10쪽

디지털 시대는 새로운 상형문자의 시대다. 윈도 창문의 아이콘처럼 오늘날 이미지와 텍스트는 하나가 되고 있다. 문맹 대중에게 의미를 그림으로 보여주어야 했던 시대에는 해석의 다의석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원주의 시대에 지성적 몽타주의 해석적 모호함은 외려 미적 매력이 될 수 있다. 디지털은 영화로 하여금 제 언어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29쪽

글쓰기는 청각을 시각으로 바꾸어놓는다. 하지만 글자를 피부에 쓸 때, 글쓰기는 촉각이 된다. 그리고 그 종이의 냄새를 맡을 때 글쓰기는 후각이 된다. "종이 냄새는 모두 좋았다. 모두 살갗 냄새 같았다."(<필로우북>) 청각과 시각이 후각과 촉각이 될 때, 글쓰기는 섹슈얼리티로 연결된다. -35쪽

19세기까지의 주요한 이미지는 회화나 그래픽처럼 손으로 직접 그리는 ‘원작 이미지’였다. 20세기의 이미지는 장치로 찍은 그림, 즉 사진이나 영화와 같은 ‘복제 이미지’였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것은 ‘생성 이미지’. 여기서 앞의 두 이미지는 하나가 된다. 원작 이미지는 없는 것도 그릴 수 있으나 묘사한 생생함이 떨어진다. 복제 이미지는 사실성은 뛰어나나 피사체를 요구한다. 그런데 생성 이미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진적 사실성을 가지고 생생하게 나타난다.
‘컴퓨터그래픽’이란 결국 만화와 사진의 결합이다. 만화는 맥루언식으로 표현하면 정세도(해상도)가 떨어지는 전형적인 ‘쿨미디어’다. 하지만 그래픽이 컴퓨터를 만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컴퓨터는 그래픽을 뜨겁게 달군다. 디지털 기술은 그래픽의 환상적 이미지에 사진보다 더 실감나는 고해상의 하이퍼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이때 환상은 관객의 눈앞에 사실보다 더 실감나는 현실로 나타난다. 환상이 고해상의 실재가 되어 나타나는 것. 이것이 오늘날 대중이 겪는 새로운 이미지 체험이다. -41쪽

(unheinlich(uncanny, 不氣味)에서 오는 섬뜩함에 관하여)
시체의 표정과 좀비의 동작을 닮은 휴머노이드가 불쑥 ‘죽음’을 연상시키기 때문(사망 가설)이라고 한다. 다른 가설에 따르면 뭔가 결함이 있어 보이는 존재가 종족의 유전자 풀에 섞여 들어오는 것에 생명체가 본능적 거부반응을 보이기 때문(진화 미학적 가설)이라고 한다.아무튼 인간-기계의 관계는 원래 1인칭-3인칭의 관계이나, 그것을 1인칭-2인칭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는 분명히 어떤 섬뜩함이 있는 게 사실이다. -53-54쪽

50년대 미디어 철학자 권터 안더스는 <인간의 골동성>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나, 인간의 자연적 신체와 정신은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그 격차로 인해 날로 새로워지는 테크놀로지 앞에서 인간이 ‘골동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얘기. 미디어가 새로워지고 신체는 고루해진다. -97쪽

‘사이보그’라는 낱말은 그 사이에 ‘심보그(symborg)’라는 신조어로 진화했다. 'symbios'와 ‘organization'의 합성어인 심보그는 한마디로 인간과 동물, 신체와 기계, 가상과 현실의 공생관계 위에서 살아가는 유기체를 가리킨다.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이 진화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생명 자체가 실은 다른 생명체와의 공생을 통해서만 탄생하고 존속할 수 있다는 얘기. 이 자연현상을 인공적으로 수행하는 존재가 바로 ’심보그‘다.
사이보그가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이식된 타자에 대한 자아의 지배를 의미한다면, 심보그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평등한 공존을 함축한다. 어느 퍼포먼스에서 스텔락은 여러 개의 낚싯바늘로 제 몸을 공중에 띄웠다. 인포머틱과 로보틱스를 결합한 이 퍼포먼스에서 그는 네티즌들로 하여금 인터넷을 통해 원격으로 크레인을 조종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그의 신체는 더 이상 그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와 공존하는 어떤 것이 된다. (계속)-100쪽

(이어서) 그 타자가 굳이 기계나 기관처럼 물질성을 띨 필요는 없다. 오늘날 누구나 사이버공간에서 자기의 ID를 갖고 있고, 어떤 이들은 ‘아바타’라는 이름으로 제 자신의 화신을 갖고 있다. 숙주가 돈을 들여 아바타를 먹여주고 입혀주면, 아바타는 그 대가로 숙주에게 삶의 보람과 기쁨을 선사한다. 심보그는 자아가 사이버공간의 이 도플갱어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게 된 어떤 상황을 가리킨다.
-100쪽

"국가와 전쟁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아는 문제는, 지각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본성을 갖는다."(메를로 퐁티)-162쪽

문화적 기억은 한 사회의 대부분의 성원에게 공유된다. 하지만 기억을 수정하고픈 사람들도 있게 마련. 가령 <조선일보>가 건국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우리 헌법에 기입된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 사제(私製) 대한민국의 법통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승만 독재는 4.19 민주이념에, 박정희의 친일은 3.1운동에 배치된다는 점에서, <조선일보>의 옆차기는 가망없는 위헌적 망동에 불과하다.
최근 박근혜 대표는 5.16을 "구국혁명"이라 불렀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쿠데타의 정의 자체가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그의 견해는 집단의 문화적 기억이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의 사제 기억에 머물 뿐이다. -272-273쪽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당시에 <조선일보>의 김대중 전 주필은 광주 시민을 '폭도'라 불렀고, 실제로 광주 시민은 오랫동안 공식적 기억 속에서 '폭도'로 지내야 했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강요한 그 기억은 그저 단기기억에 불과했다. 오랜 싸움 끝에, 광주의 시민군은 오늘날 장기기억 속에 민주화 유공자로 기입됐다. 심지어 한나라당의 정치인들도 이제는 광주를 참배하는 것으로 정치일정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인터넷에 모인 '전사모' 회원이 1만 4천 명이라 한다. 하지만 어느 사회나 제 분량의 또라이를 갖고 있게 마련이다. 독일사회에도 그 정도 분량의 네오 나치는 서식하고 있다. 문제는 이 소수의 얼빠진 이들이 아니다. 광주의 빛을 바래게 하는 것은 그 기억을 현실 정치에서 정략의 수단으로 써먹는 이들이다. -275-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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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9-01-1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기술미학으로 영화를 읽어나가니 확실히 여타의 영화 평문들과는 다르더군요. 읽고 있는 책 반가워서 댓글 남기고 갑니다.

마늘빵 2009-01-11 23:03   좋아요 0 | URL
^^ 재밌는데 조금 어렵더라고요. 잘 모르는 영화 기술적 개념들이 많이 나와서요. 근데 계속 읽다보면 또 중복되는 부분이 있더군요.

2009-01-11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1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1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1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2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2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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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도덕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 중의 하나다. 수치심은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상처를 받거나 배가 고프거나 궁핍함으로 인한 모욕감 때문에 심신이 괴롭다면, 나는 고통을 느낀다. 나 아닌 다른 인간에게 가해진 고통을 바라볼 때도 나는 나의 의식 속에서 얼마간 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로 말미암아 내 안에 연민의 감정이 생겨나고, 도와주고 싶은 연대감이 발동하며, 동시에 수치심을 느낀다. 이렇게 되면 내 안에서는 행동하라는 부추김이 일어나게 된다.
나는 직관적으로 이성의 작용에 의해서 혹은 도덕적인 의무감에서 모든 인간은 일할 권리, 먹을 권리, 건강을 돌볼 권리, 배울 권리, 자유를 누릴 권리, 행복해질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안다.
인간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세계화 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자들을 포함한 인간들에게 깃들어 있다면,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처럼 인류를 황폐하게 만드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 추구 욕구마저도 그토록 냉소적이고 잔인하며 교활한 방식으로 깔아뭉갤 수 있단 말인가? (계속)-13-14쪽

(이어서) 그들은 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부자가 되고 싶고, 시장을 지배하고 싶으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거나 세계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모순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상대로 경제전쟁이라는 이름의 계엄령을 내렸다. 인간 누구에게나 공통으로 적용되는 도덕을 비껴갈 수 있는 예외적인 체제를 마련했다는 말이다. 새로운 체제 안에서 그들은 기본적인 인권을 외면하고(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인권 보장을 지지한다), 도덕적인 원칙을 무시하며(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도덕적인 원칙이 보장된다), 평범하고 상식적인 감정(이들은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한테만 이 같은 감정을 허용한다)을 억누른다. (계속)-13-14쪽

(이어서) 내가 타인에게 연민의 감정을 표하거나 연대감을 보인다면, 나의 경쟁 상대는 그 즉시 이를 나의 약점으로 여겨서 이용하려 들 것이다. 나의 경쟁 상대는 나를 무너뜨리려고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수치심(이런 경우 억눌러야 한다)을 느끼는 나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24시간 밤이든 낮이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최대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그 이익을 축적하고 최단 시간에 최저 비용으로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이른바 경제전쟁은, 다른 모든 전쟁들이 그렇듯 전쟁이 지속되는 한 영원토록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이 전쟁은 끝없이 계속되도록 프로그래밍된 듯하다. -13-14쪽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임무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 (레지 드브레-프랑스 출신 철학자, 교수, 기자, 볼리비아에서 체 게바라의 혁명 동지)-17쪽

"특정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다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기아에 허덕이게 만들 때, 자유란 한낱 허울뿐인 유령에 불과하다. 부자가 독점을 통해서 동시대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장악할 때, 평등이란 한낱 허울 좋은 유령에 불과하다. 혁명의 반동 세력이 나날이 곡식의 가격을 쥐고 흔들어 시민들의 4분의 3이 눈물 없이는 식량을 조달할 수 없을 때 공화국은 한낱 유령에 불과하다."(자크 루-사제)-24쪽

"자유란 먹고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나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루이 드 생쥐스트)-25쪽

유토피아는 다른 것에 대한 욕망을 의미한다. 유토피아는 지상에서의 짧은 생애 동안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유토피아는 요구 가능한 정의까지도 내포한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의식이 미리 예견할 수 있는 자유와 연대의식, 나누어 갖는 행복의 도래를 표현한다. 유토피아는 결핍인 동시에 욕구로서 전 세계적인 사회정의를 위한 인간들의 모든 행동의 가장 내밀한 원천이 된다. 이러한 정의 없이는 우리들 그 누구에게도 행복이란 불가능하다. -28쪽

"죽음의 순간에 우리들 각자는 생을 마감하기 위해서 더 많은 생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임종의 고통 속에 놓인 순간에, 우리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리 자신, 즉 우리의 자아를 다른 사람, 즉 우리보다 뒤에 살 수입억 명의 사람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미완성으로 끝나는 우리의 삶을 완성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에른스트 블로흐)-29쪽

"자기 눈앞에 펼쳐진 지평선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실용주의만 고집하며 일단 손에 쥔 것만 가지고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은 절대로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들, 지평선 너머로 펼쳐져 있을 세계를 보는 사람들만이 실재론자들입니다. 이 사람들만이 세상을 바꾸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지평선 너머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분석적인 이성으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바꾸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도래할 것, 우리가 원하는 것,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은 내면의 눈, 즉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유토피아를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르페브르)-30-31쪽

"나는 나를 이루고 있으면서 당신들 앞에서 말을 하는 이 먼지 덩어리를 경멸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처형하여 이 먼지 덩어리의 입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몇 세기가 지난 다음, 아니면 하늘나라에서라도 나한테서 나만의 독자적인 삶을 앗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보십시오."(생쥐스트가 판정관들인 파리 공안위원회 위원들 앞에서 한 말)-31쪽

부채를 얻고, 그 부채를 갚기 위해 이자를 지불하고 원금을 상환하는 일련의 과정은 봉건시대에 유행하던 충성 서약의 가시화된 표현과 다르지 않다.
노예는 국제통과기금으로부터 협정서 혹은 구조조정 합의서를 받을 때마다 무릎을 꿇는다. 무릎을 꿇지 않고 서 있는 노예는 비록 목이나 손목, 발목에 무거운 쇠사슬을 칭칭 동여매고 있더라도 위한한 노예다. -104쪽

"계급에 대한 편견은 심지어 노동자들 자신의 마음과 정신으로도 파고들어, 우리 스스로에게 역사의 주체로서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는 정부를 구성하고 있을 뿐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대통령 한 사람이나 의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중들이 나서야 한다."(룰라-브라질 대통령)-208-209쪽

부채로 인해서 야기될 수 있는 결과 또한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첫째, 한 나라가 대외적으로 허약해지며,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아진다. 둘째, 외화로 갚아야 할 돈의 액수가 점점 증가하며(오늘보다 내일 갚아야 할 돈이 많아진다), 따라서 한 국가의 젊은 세대들의 발전을 저해한다. [......] 넷째, 주권을 상실하게 되며 국제금융 시장의 전략과 세계열강의 위력에 복종해야 한다. 다섯째, 부채를 들여와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에는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다가 상환을 해야 하는 무거운 의무만 짊어진 무방비 상태의 소시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239쪽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정의에 대한 사랑의 토대를 이룬다. 정의감이란 이성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의해서도 형성되기 때문이다."(장 폴 마라)-331쪽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소수, 즉 대체로 별다른 의식 없이 사는 백인들의 편의를 위해 언제까지고 대다수가 가난과 절망, 착취, 기아 속에서 신음해야 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인간의 이성 속에 희망은 깃들어 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는 도덕적인 요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그것을 흔들어 깨우고,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북돋우며,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나는 타인이며 동시에 타인은 나다. 타인에게 가하는 비인간적인 행동은 내 안에 깃들어 있는 인간성을 말살시킨다.
카를 마르크스는 "혁명가는 한 포기 풀이 자라나는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342-343쪽

"당신들은 구호를 받는 가난한 자들을 원하지만, 나는 가난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빅토르 위고)

"그들은 꽃이란 꽃은 모조리 꺾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코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파블로 네루다)-344쪽

얼마 전, 아프리카에서 상당히 오랜 동안 일을 한 경력이 있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이와 같이 일하던 현지 직원 한 명이 어느 날 눈물을 펑펑 쏟고 있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뇌염 예방주사를 맞히지 못해 자녀가 죽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중략) 가난과 부채가 빚어내는 비극을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롤 듣지 말자. 내 직장 동료, 내 이웃이 겪는 아픔에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앞으로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해보자. 혁명은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혁명가이고, 또 혁명가이고 싶다. -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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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1-09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욕의 시대 읽고 싶네요.

마늘빵 2009-01-09 09:11   좋아요 0 | URL
서론, 결론 격인 부분엔 위에 밑줄그은 것과 같은 인용구와 가치 서술이 많고, 그보다 훨씬 많은 본문은 빈곤국가의 실상(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거대 기업의 횡포와 비리 등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
 
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12월
구판절판


뉴라이트 역사관의 근본적 문제는 무엇보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는 데 있다. (중략)
다른 요인을 일절 돌아보지 않고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면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자유방임의 신자유주의가 옳은 길이다. 환율 정책, 제세 정책, 경제 운용을 모두 가진 자, 힘 있는 자 위주로 하면 된다. 덜 가진 자, 못 가진 자들의 불만은 공안 입법과 공권력의 무절제한 행사를 통해 틀어막으면 된다.
강자가 군림하는 사회를 뉴라이트는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사회이기도 하다. 식민지 시대부터 독재 시대까지 내내 겪어온 것이니까. 그런데 식민지 시대에도 독재 시대에도 현실에서는 강자가 군림할지언정, 말은 다르게 했었다. 군림당하는 자들에게 희망이라도 줘야 체제를 끌고 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0-11쪽

근년 교과서를 비롯한 역사학계 주류의 서술 기조가 민족주의와 민중주의 등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묶여왔다는 뉴라이트 측의 지적에 나는 동의한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데도 일부 세력의 항일운동에 절대적 비중을 두는 대신 대다수 한국인이 처해 있던 현실 상황에 더 주목하자는 그들의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뉴라이트 쪽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실증’을 내세우는 데는 역사 개발의 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뜻이 보인다. 그 실증이란 것이 역사학자들보다 숫자놀음에 익숙하다는 이점을 활용해 유사 과학의 특성을 강화하는 방향이라면 그 한계는 뻔하다. 인간 자체의 이해 노력을 외면하는 유사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배척하면서 또 하나의 다른 이데올로기에 복무할 뿐이다. 기존 역사관이 민족과 민중에 복무하는 것이라면 뉴라이트 역사관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사사 수준으로 물러서는 것이다. -174쪽

‘승리’를 곧 ‘성공’으로 풀이하는 뉴라이트 세계관은 역사를 보는 눈만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도 한쪽으로만 열어준다. 진보 진영의 선거 패배는 곧 그들의 실패라고 뉴라이트는 본다. 패배자들이 했던 모든 일을 승리자가 뒤집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도, 지금 ‘강부자’도 뉴라이트의 눈에는 승리자들이며, 따라서 성공한 자들이다. 성공했다는 것은 목표가 올바르고 노력이 충분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친일파 비판은 실패한 자들의 시기심일 뿐이며,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려는 종합부동산세는 "잘못된 세금 체계"인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종합부동산세의 타당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성공한 자들을 대접해주기는커녕 부담을 지우려들다니, 올바른 세금 체계일 수 없다는 것이다. -186-187쪽

2008년 10월 6일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과 금성출판사 교과서 저자 김한종 교수 사이에 이런 말이 오갔다.

정두언 (또 말을 끊으며) (북한의) 지침 때문에 쓴 것인가, 아니면 본인 소신인가?
김한종 어떤 부분인지(어떤 부분이 북한 책과 똑같은지) 말해달라.
정두언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북한 역사관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김한종 ......
정두언 교과부의 수정 요구안에 대해서 응하지 않으면 교과서가 폐지될 수 있다. 어떤 일이 전개될지 알 수 있을 텐데...... 마음의 준비를 하라. -200쪽

뉴라이트를 앞세운 현 정권의 공세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민주 시민들은 수구집단의 현실적 위협으로부터 민주, 평화, 진실, 정의, 자유의 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투,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분투, 노력의 과정 속에서 그 가치들은 자라날 수 있다. 지키는 노력 속에 이 가치들의 성장 기회가 있는 것이다. -221-222쪽

역사학이란 인간성을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성이 어떤 범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인지, 과거의 사실에 비추어 더듬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기적 존재"란 독단적 명제를 선험적으로 정해놓고 이에 과거의 사실을 끼워 맞추려고 드는 것은 역사학의 기본 문법에 벗어나는 오류다. 게다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너도나도 모두 이기적 존재'란 관념을 주입하려 든다는 것은 교육의 기본 의미를 망가뜨리는 짓이다.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는 극우 정당의 수련 교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 교과서를 바라볼 물건은 아니다.-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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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1-05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 징글징글할 거 같애서 못 보고 있습니다. ㅠㅜ
지금 이책 읽음... 혈압이 넘 오를 듯...

바람돌이 2009-01-05 00:57   좋아요 0 | URL
아뇨? 오히려 전 희망이 보이는듯하던데요. ^^ 뉴라이트 너 얼마 못가겠구나 하는.... ^^ 이 책 쓰신분이 굳이 이념적으로 나누자면 중도보수정도? 근데 이런 분도 설득시키지 못하는 뉴라이트라니 싶더라구요.

마늘빵 2009-01-05 09:20   좋아요 0 | URL
^^ 바람돌이님은 읽으셨군요! 저도 몇 장 안남았습니다. 근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방향이 달랐어요. 바람돌이님 리뷰 읽어보고 싶네요. 글샘님 생각보다 화가 많이 안날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아니 왜 이 정도밖에 비판을 못해, 하면서 답답해 하실지도...

무해한모리군 2009-01-05 10:14   좋아요 0 | URL
너무 쉽고 간단하게 쓰셔서 오히려 아쉬울 정도입니다 ^^

Jade 2009-01-0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 알라딘 한줄광고에 "이 모든게 뉴라이트 때문이다"라고 뜨는거에서 어이상실했어요 ㅋㅋ 서점가서 뒤적뒤적 해보니 뭔가 한이 맺힌듯 느껴지던데 ㅎㅎ

마늘빵 2009-01-08 09:23   좋아요 0 | URL
'한줄광고'는 뭐지? 음, 제목이 뉴라이트 비판인 만큼 뉴라이트 비판에 촛점을 맞추고는 있는데, 그렇게 세진 않은데.

2009-01-08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8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때로 나와 멀리 떨어진 것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분노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 아픔을 덜어주고자 노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와 관련된 사람들 - 예를 들면, 가족, 친구 - 의 아픔에만 관심을 갖고, 그 아픔에만 공감하며, 그 아픔에만 분노한다. 이런 이분법적 나눔은 위험할 수 있는데, 전자는 대개 정치적으로 왼쪽을 바라보며, 후자는 대개 정치적으로 오른쪽을 바라보지 않나 싶다. 혹은, 정치적으로 왼쪽이기에 전자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정치적으로 오른쪽이기에 후자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 먼저고, 어떤 것이 나중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자와 왼쪽이, 후자와 오른쪽이 대개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나는 정치적으로 오른쪽이며, 어떤 사람이 보기에 나는 정치적으로 왼쪽이다 못해 '빨갱이'다. 지금까지의 나를 돌이켜봤을 때, 나의 분노는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멀리 있는 것까지 모두 포함한다.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로 규정하며, 에릭 홉스봄을 좋아한다는 어떤 지인은, 또 한편으로 스스로 '극우'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정말 그의 언행을 봤을 때는 극우가 맞다. 근현대사 교과서 논란이 일었을 때 -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몇몇 출판사의 저자들이 모여 못 고치겠다고 언론에 나와 입장을 밝힐 때, 그는 그 저자들에게 욕을 날렸다. 그는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에 공감하면서, 세계화나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도 있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아직 덜 성숙해서인지, 아니면 아직 젊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그 사람에게 정이 있기 때문인지 - 정답은 모두일수도 -, 나는 그 모순을 지적해 주고 싶었다. 대놓고 뭐라 하지 않았다. 질문을 던졌다. 장하준이 비판하고자 하는 것과 당신이 옹호하는 신자유주의가 같은 게 아니냐, 당신의 생각은 마르크스와도, 에릭 홉스봄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가? 나는 그가 스스로에게 붙인 마르크주의자 딱지를 떼기를 바랐다. 아니면 그가 현실에서 내뱉는 극우적 발언을 거두거나. 나는 마르크스 주의자가 아니며,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주장하는 바가 마르크스와는 다른 노선임을 명백히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모순된 발언을 내뱉는 그가 못마땅했다.

  새초롬너구리님이 2008년의 마지막 날 서재를 다시 여셨다. 갑자기 사라져서 한동안 다른 닉네임으로 활동을 하시나 싶어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어떤 이유에서 닫으셨다 다시 여셨는지는 모른다. 나는 새초롬너구리님이 속닥글로 내게 던져주는 질문이 좋았다. 내가 잘 아는 분야건 모르는 분야건 마구 질문을 던져주시는데, 그 질문들은 종종 지적인 자극을 주곤 한다. '새초롬'님께서 전에 내가 했던 말을 상기시켜주셨다. "자기 모순을 줄여나가려 노력한다"는 그 말을. 그랬다. 지금도 그렇고. 모순을 줄여나가려 했고 그러고 있다. 그래야 나의 삶과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이 일치 할 것이고, 부끄럼없는 삶을 살았다 말할 수 있을테니까. 모순 없는 삶이 곧 부끄럼 없는 삶은 아니지만, 그 조건은 될 수 있다.

  모순이라고까지 말할 순 없겠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근현대사 교과서 논란이나, 미친소 수입,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 현 정부의 대한민국 국민의 계급화 등에 화를 내면서, 왜 주변의 작은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궁금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부정의나 부도덕, 비상식적인 언행에 대해서는 왜 지적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대상에는 쉽게 화를 표현할 수 있지만,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대상에는 쉽게 화를 표현하지 않거나 침묵하고, 오히려 그 대상을 옹호해주기까지 하면서 관련된 다른 상처입은 자들을 못 본 척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런 사례를 많이 봤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교사들 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기간제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 있었고, 여교사는 가해자와의 일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나 비난받은 것은 계약 관계가 끝나 이미 학교를 떠난 여교사였다. 남교사는 전교조의 일원이었고, 전교조에서조차 그를 옹호하려는 이들이 더 많았다. 재직하던 학교의 선생들은 물론이고. 여교사는 남교사와 합의를 보고, 미국으로 떠났고, 남교사는 남아있었다. 재직학교의 교사들 일부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그를 구명하기 위한 종이를 돌리며 서명을 했다.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 남은 자와 떠난 자, 그동안 더 오래 부대낀 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 대한 태도는 이렇게 달랐다.

  직접 관련된 일도 아니었고,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소식을 듣고 화가 났다. 그러나 이미 사건은 종료되었고, 상처받은 자는 떠났다. 대개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된다. 고발자나 상처받은 자는 홀로 방치된다. 다수의 침묵 속에. 그런 거 들춰서 뭐하냐, 좋게 좋게 넘어가자, 별 일도 아닌 걸 가지고, 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회적인 사건이건, 주변의 일상의 일이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마땅히 지적을 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지적을 하고, 마땅히 화를 내야 할 것에 대해서는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로 그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지리한 공방이 오가기도 하고,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작년 5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가 9월까지 이어지자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그것이었다. 이제 됐다, 그만해라. 뭐 별 것도 아니걸 가지고들 나와서 촛불 들고 교통을 방해해. 장사도 안되니까 얼른 얘네들 좀 그만하게 해라. 그리고 그렇게 촛불은 꺼졌다. 사람들이 많이 지친 탓도 있었겠지만, 이명박이 끝까지 귀를 닫고 비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동안, 사람들은 촛불을 지겨워했다. 당신 때문에 상처 받은 사람이 있다고, 당신 때문에 화가 난 사람들이 있다고,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어디 마음대로 해봐라. 10만명이건, 100만명이건 마음대로 모아서 와봐라. 물대포와 소화기가 등장했고, 곤봉이 촛불의 몸을 갈겼다. 다친 사람은 많은데, 누가 다쳤냐고 한다. 화난 사람은 많은데, 그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란다. 그렇게 2008년은 갔다.   

  좌와 우를 떠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겠지만, 좌에 위치해 있거나, 좌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멀리 있는 것에는 쉽게 화를 내면서, 내 주변에 무심한 경우를 많이 본다. 어제 읽은 목수정의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대의를 위해 자아를 희생하거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인 지향과 욕망에 충실한 선택으로서의 좌파, 자유롭고 당당한 생활 좌파가 많을수록 미래가 밝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정확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지칭한 문장은 아니지만, 이 문장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내포한다. 멀리 있는 큰 것보다는 가까이 있는 작은 것에, 멀리 있는 사람보다는 생활 속에 있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자.

  2009년 새해가 하루 지났다. 나는 올해도 자기 모순을 없애려 노력할 것이고, 나와 관계없어 보이는 멀리 있는 사건부터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이르기까지 똑같이 화를 낼 것이다. 화를 내면, 그 감정이 고스란히 나에게 남는다고 한다. 마치 적당히 땀을 흘리지 않아 노폐물이 축적된 것처럼. 그러나 그 정도를 감수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감수하련다. 마땅히 화를 내야 할 것에 대해 화를 내련다. 부정의가 시정되고, 비상식이 상식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그래야 하지 않을까. 또 상처받을까봐 상처입고 차마 말 못하는 이들을 위해, 그래야 하지 않겠나.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은 많이 있다. 아니 이미 있다. 우리가 그들을 보지 않으려하거나 못볼 뿐. 언덕 하나만 넘어오면 마음 아파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2009년이구나. 올해는 2008년과 같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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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1-0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2009년엔 맷집을 키우는 한 해가 되시길..^^ 아울러 예리한 카운터 펀치도 연마하세요..^^

하날리 2009-01-02 13:00   좋아요 0 | URL
맷집 = 허리둘레?

마늘빵 2009-01-02 13:03   좋아요 0 | URL
허리둘레는 이미 제가 허락(?)할 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했는데. 빼야해요! 메피님과 같이 10킬로그램 다이어트를? 10킬로그램을 빼면 -_- 해골될거 같고, 저는 딱 5킬로그램만!

Jade 2009-01-02 22:57   좋아요 0 | URL
에이 아프님 그게 최대치라니, 본인의 기준을 너무 낮게(!) 잡으셨다~ ㅋㅋㅋ

서른 넘으면 허리둘레 늘어나는거 순식간이래요~ ㅋㅋ

마늘빵 2009-01-03 11:06   좋아요 0 | URL
제이드으으! 흥! -_- 2년전 허리로 내가 바꿔놓을테닷. 올 봄까지.

멜기세덱 2009-01-0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색이, "2008년을 돌아보며"인데, 우째, 내 얘기 한마디가 없어요 그래! ㅠㅠ;;

마늘빵 2009-01-03 11:07   좋아요 0 | URL
아 멜기님 요새 여기저기 사랑 나눠주고 다녀서 안되겠어요. 앤을 바꿔야겠어. ( '')

Kir 2009-01-0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면에서 2008년 같지 않은 2009년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늘빵 2009-01-03 11:08   좋아요 0 | URL
넵! 여러 면에서 꼭 전혀 다른 올해였으면 합니다.

2009-01-03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3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3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3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조기후 2009-01-0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바라보는 각도를 똑같이 맞춰놓고 살아야하는데 주변의 정리에 휩쓸리다보면 사실상 쉽지 않죠.. 쉽지 않으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쉽지 않아도 해야하는 것이지만. 새해 체중은 줄이시고 복은 많이 받으시길. ^^

마늘빵 2009-01-03 14:1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각도를 똑같이 맞추고 봐야하는데, 거대한 것에 대해선 쉽게 화를 내면서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무심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쉽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것이고, 주변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해야하는데, 못 본 척하거나 못 보죠. 참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