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역사관의 근본적 문제는 무엇보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는 데 있다. (중략) 다른 요인을 일절 돌아보지 않고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면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자유방임의 신자유주의가 옳은 길이다. 환율 정책, 제세 정책, 경제 운용을 모두 가진 자, 힘 있는 자 위주로 하면 된다. 덜 가진 자, 못 가진 자들의 불만은 공안 입법과 공권력의 무절제한 행사를 통해 틀어막으면 된다. 강자가 군림하는 사회를 뉴라이트는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사회이기도 하다. 식민지 시대부터 독재 시대까지 내내 겪어온 것이니까. 그런데 식민지 시대에도 독재 시대에도 현실에서는 강자가 군림할지언정, 말은 다르게 했었다. 군림당하는 자들에게 희망이라도 줘야 체제를 끌고 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0-11쪽
근년 교과서를 비롯한 역사학계 주류의 서술 기조가 민족주의와 민중주의 등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묶여왔다는 뉴라이트 측의 지적에 나는 동의한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데도 일부 세력의 항일운동에 절대적 비중을 두는 대신 대다수 한국인이 처해 있던 현실 상황에 더 주목하자는 그들의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뉴라이트 쪽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실증’을 내세우는 데는 역사 개발의 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뜻이 보인다. 그 실증이란 것이 역사학자들보다 숫자놀음에 익숙하다는 이점을 활용해 유사 과학의 특성을 강화하는 방향이라면 그 한계는 뻔하다. 인간 자체의 이해 노력을 외면하는 유사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배척하면서 또 하나의 다른 이데올로기에 복무할 뿐이다. 기존 역사관이 민족과 민중에 복무하는 것이라면 뉴라이트 역사관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사사 수준으로 물러서는 것이다. -174쪽
‘승리’를 곧 ‘성공’으로 풀이하는 뉴라이트 세계관은 역사를 보는 눈만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도 한쪽으로만 열어준다. 진보 진영의 선거 패배는 곧 그들의 실패라고 뉴라이트는 본다. 패배자들이 했던 모든 일을 승리자가 뒤집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도, 지금 ‘강부자’도 뉴라이트의 눈에는 승리자들이며, 따라서 성공한 자들이다. 성공했다는 것은 목표가 올바르고 노력이 충분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친일파 비판은 실패한 자들의 시기심일 뿐이며,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려는 종합부동산세는 "잘못된 세금 체계"인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종합부동산세의 타당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성공한 자들을 대접해주기는커녕 부담을 지우려들다니, 올바른 세금 체계일 수 없다는 것이다. -186-187쪽
2008년 10월 6일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과 금성출판사 교과서 저자 김한종 교수 사이에 이런 말이 오갔다.
정두언 (또 말을 끊으며) (북한의) 지침 때문에 쓴 것인가, 아니면 본인 소신인가? 김한종 어떤 부분인지(어떤 부분이 북한 책과 똑같은지) 말해달라. 정두언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북한 역사관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김한종 ...... 정두언 교과부의 수정 요구안에 대해서 응하지 않으면 교과서가 폐지될 수 있다. 어떤 일이 전개될지 알 수 있을 텐데...... 마음의 준비를 하라. -200쪽
뉴라이트를 앞세운 현 정권의 공세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민주 시민들은 수구집단의 현실적 위협으로부터 민주, 평화, 진실, 정의, 자유의 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투,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분투, 노력의 과정 속에서 그 가치들은 자라날 수 있다. 지키는 노력 속에 이 가치들의 성장 기회가 있는 것이다. -221-222쪽
역사학이란 인간성을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성이 어떤 범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인지, 과거의 사실에 비추어 더듬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기적 존재"란 독단적 명제를 선험적으로 정해놓고 이에 과거의 사실을 끼워 맞추려고 드는 것은 역사학의 기본 문법에 벗어나는 오류다. 게다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너도나도 모두 이기적 존재'란 관념을 주입하려 든다는 것은 교육의 기본 의미를 망가뜨리는 짓이다.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는 극우 정당의 수련 교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 교과서를 바라볼 물건은 아니다.-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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