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알랭 드 보통 그리고 <동물원에 가기>에 대한 잡설

  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었던가. 그가 어서 책을 쓰기를, 그의 책이 어서 번역되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의 짧은 에세이 묶음집을 접한건,  아직 번역되지 않은 <행복의 구조(?)> 를 읽고픈 - 사실 영어가 되면 원서를 보면 되는데 난 영어문맹이라 - 그에 대한 나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었다.

  생각보다 매우 가볍고 짧은 글이었지만 그래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보고 싶었어요 보통씨.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동물원에 가기>는 2005년에 나온 원서 을 번역한 책이다. 왜 이렇게 늦은게야. 나는 나온 즉 바로바로 번역된 책을 읽고 싶다고. 번역서와 원서의 동시출간은 꿈도 못 꿀 터이니 그런건 바라지도 않아. 한 가지 불평을 늘어놓자면, 왜 원서 제목을 자꾸만 맘대로 바꾸는거야. 난 원제가 붙어있는 책을 보고 싶다고. 그럼 원서로 봐! 라고 하면 나는 역시나 나는 영어문맹이잖아 라고 대답할 밖에. -_-

  왜 출판사가 번역서의 제목을 <동물원에 가기>로 붙여놨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이 책 안에 담겨있는 아홉개의 에세이들 중 한 가지로부터 제목을 달았다고는 하지만 이 제목이 독자들에게 그다지 끌리는 제목은 아니라는 생각. 또한 그렇다고 이 제목이 이 책을 대변해줄 수도 없다는 생각. 그.래.도. 우얏건 그의 책이 너무나 기다려졌고, 기대됐고, 단숨에 읽었고, 너무나 좋았던 것은 사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내게 주는 효과. 게으르고 지루해진 책읽기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지난번에도 그랬다. 한참 <우리는 사랑일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등등 그의 책들을 해치우던(?) 그 때에 '독서침체증상'은 사라졌다. 역시나 이번에도 게으른 나의 책읽기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이 책 안에 언급된 온갖 철학자들과 화가와 작가들의 책들을 더불어 읽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고 다음 주문목록에 올려놓은 것만 해도 수두룩. 일단 플로베르의 책들, <부바르와 페퀴셰>, <통상관념사전>, <마담 보바리>, 또 에드워드 호퍼의 사진집, 레너드 코헨의 음반들. 보통씨가 좋아하는 음악, 영화, 그림, 책이라면 나도 좋아 정도의 수준 쯤이면 심각한 보통 사랑 아닌가. 내가 그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객관적인 평가를 넘어서 별 다섯개를 모두 주고 만족스러워하는 것은 아닐런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그만큼 그가 좋다.

 - 본 리뷰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적이지 않다. 이런 범주에 드는 다른 분야의 예술가로는 레디오헤드나 신해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중심 주제는 삶이다. 보통의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괴로움과 슬픔을 안고 있다. 그들은 헤어진 남자친구를 기억에서 되살리며 이미 지나간 과거의 슬픔과 그리움을 떠올리기도 하며, 어떤 남자는 맘에 드는 여자에게 "말 한마디 붙여볼 기회도" 갖지 못하고, "사과 주스 팩과 내 머리 속의 결혼 계획만 뒤에 남겨놓은 채 다음 역에서 내려버린 여자 때문에 며칠씩 마음아파" 한다. (<슬픔이 주는 기쁨> 도입부 문장 구조를 고대로 가져다 씀)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여러가지 면에서 철학적이다. 첫째, 연애소설이건 에세이건 장르를 가리지 않고 - 사실 그의 글은 장르구분하기가 힘들다 - 그가 알고 있는 온갖 다양한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연애소설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마르크스가 등장하며, 스탕달, 세네카, 니체, 헤겔,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콩트, 스피노자, 데카르트, 몽테뉴, 파스칼, 에피쿠로스, 쇼펜하우어  등등 등장철학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나열하면 몇 줄이다. 둘째, 그의 글은 매우 철학적이다. 아주 조그마한 사건들, 사물들을 관찰함에 있어서도 그의 시선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가 매우 익숙해하는 침대, 기차, 터널, 사과 주스 등등의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에서 그는 많은 생각을 펼친다. 그의 머리 속엔 흰 구름 둥둥 떠다니며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그 무엇도 알랭 드 보통을 통하면 쉽게 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철학적이다.

  그러나. 그의 글은 철학적이지 않다. 왜냐면, 그의 글은 너무나 쉽다. 대개의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이라는 것은 용어조차 쉽게 해석되지 않는, 자기들끼리의 언어세계를 가지고 있는 듯한, 어려운 말로 쓰여진 사색의 흔적들이다. 저 멀리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에서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푸코와 데리다,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도통 이해하기 쉽지 않다. 라깡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라깡만이 사용한 언어를 가지고 사전을 냈을 정도니깐. 그런데 보통의 글은 온갖 철학자들을 뒤집어 까놓고 버무리고 으깨지만 너무나 쉽다.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 그의 책 첫문장을 읽는 순간 우리는 마법에 걸린 채 책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마지막 장을 덮어버린다. 왜 재밌으니까, 또 쉬우니까. 고로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서들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고로 철학적이지 않다. 맛배기 하나.

 "어쩌면 침묵과 어줍음은 욕망의 애처로운 증거로서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 솜씨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어줍게 유혹하는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확한 말을 의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p48)(<진정성>中)

 "여자들은 홀로 있는 남자들의 절망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충서와 이타심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로맨스라는 면에서 잘나가는 유형의 남자들을 의심할 만한 이유도 되겠다. 그런 남자들은 넘치는 매력 때문에 내가 겪었던 이런 희비극적 과정을 알지 못한다. 말 한마디 붙여볼 기회도 주지 않고, 사과 주스 팩과 내 머릿속의 결혼 계획만 뒤에 남겨놓은 채 다음 역에서 내려버린 여자 때문에 며칠씩 마음 아파하는 그 과정을. "(p99-100)(<독신남> 中)

   <슬픔이 주는 기쁨> <공항에 가기> <진정성> <일과 행복> <동물원에 가기> <독신남> <따분한 장소의 매력> <글쓰기와 송어> <희극> 의 아홉개의 에세이들은 모두 각각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껏 우리가 접해왔던 알랭 드 보통의 여러 책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고루 분배되어있어 일종의 종합판이라 말할 수 있다. 어떤 글은 그의 로맨스 3부작을 보는 듯 하고, 어떤 글은 <불안>을 연상시키며, 어떤 글은 <여행의 기술>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나머지 다른 글들 또한 어떤 특정한 전작을 떠올리게 하지 않더라도, 모두 지극히 '보통스럽다'. 보통은 첫 글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 "에드워드 호퍼적인"이란 말을 쓰는데, 같은 차원에서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읽다보면 지극히 "보통적인" "보통스러운" 뭔가를 감지하게 된다. 내 머리에 돋아난 촉수가 그를 자연스럽게 알아본다고나 할까. 추상적인 것에 대해  혹은 사소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 다 톡 까놓고 얘기하자 하고, 한편으로 이런 저런 인용구와 비유를 들어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안착한다.

  보통의 저서들이 줄줄히 번역되어 출간된지 시간이 꽤 흐른 지금, 그의 인기가 사그라들었다고 생각하면 이는 착각. 여전히 나와 같이 보통을 짝사랑하는 이들은 도처에 널려있으며 이 책이 그들의 사랑을 받을 것임은 '사.실.' 혹여 아직도 그를 모르는 이가 있다면 이 책 하나로 보통의 매력에 푹 빠질 기회가 다시 왔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 것. 꽝은 절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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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채 2006-08-2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도 알랭 드 보통 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프락사스 님과 밑에 하이드님에 견줄 정도가 못되네요 ㅠㅠ.. 사실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혼자보기아까운, 아니 그래서 아무한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그런 작가이거든요. 제가 너무 이기적이죠? ㅋㅋㅋ

마늘빵 2006-08-2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반갑습니다. 저도 사실 그렇습니다. 꼭꼭 숨겨놓고 보고픈 작가인데 너무 많이 알려져서 이제 그런거 포기했습니다. -_- 제가 숨겨도 다 드러나는데요 뭐. 아 정말 맘에 드는 작가입니다. 통독하고선 또 곱씹어서 다시 보고 들춰보고픈 책들이에요.

이매지 2006-08-2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봤는데 엄청 얇고, 엄청 가볍더군요. 하이드님과 아프락사스님의 보통씨 사랑은 정말 ^^;

마늘빵 2006-08-26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이 내거에요 건들지마세욧. -_-+

하이드 2006-08-27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나온 건축.에 관한책도 완전 재미있는데 =3=3

안나채 2006-08-27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은 벌써 원서로 읽으셨네요. 저도 며칠 전에 <행복의 건축>주문했어요. 번역본이 나올때까지 못기다리겠더라구요.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사볼껄. 기다리다 결국 ㅠ,ㅠ

마늘빵 2006-08-2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 막 약올리고 가시네. -_- 번역되면 후딱 사봐야지.
지젤님 / 옷 님두. ㅠ_ㅡ

안나채 2006-08-28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 아프락사스님- 본이 아니게 그런 셈이 되었네요. 죄송/ >_ㅠ]
저도 아직 술술 읽을 정도의 실력은 못되서, 영어 공부도 할겸. 겸사겸사루ㅋㅋㅋ

마늘빵 2006-08-2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구판절판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걸.
(세네카)-8쪽

열차야, 나를 너와 함께 데려가다오!
배야, 나를 여기서 몰래 빼내다오!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이곳의 진흙은 우리 눈물로 만들어졌구나!
(보들레르)-28쪽

이 모든 소란과 안달은 왜일까?
왜 이리도 절박하고 어수선하고 번민하고 고군분투하는 걸까?
그런 하찮은 것이 왜 이다지도 중요해진 걸까?
(쇼펜하우어)-42쪽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자신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상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은 유혹에 필수적인 무관심에 방해가 된다. 또 상대에게 느끼는 매력은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함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진정성> 中)-43쪽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하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고,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하면 구제불능일 정도로 따분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이 분명해지기 때문이었다.
(<진정성> 中)-48쪽

어쩌면 침묵과 어줍음은 욕망의 애처로운 증거로서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 솜씨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어줍게 유혹하는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확한 말을 의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진정성>中)-48쪽

그녁 연인에게서 원하는 것에 대한 나의 추측은 꼭 끼는 양복에 비유할 수 있고, 나의 진짜 자아는 뚱뚱한 남자에 비유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은 뚱뚱한 남자가 자신에게는 너무 작은 양복을 입으려고 기를 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재단한 직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부푼 살을 접어 넣고, 바지가 뜯어지지 않도록 숨을 멈추고 배를 집어넣었다. 내 태도가 내 마음에 들 만큼 자연스럽지 않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양복을 입은 뚱뚱한 남자가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옷이 뜯어질까 두려워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앉아, 무사히 저녁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랑 때문에 불구가 되었다.
(<진정성> 中)-56-57쪽

피하기 위한 거짓말과 사랑받기 위한 거짓말. 유혹 과정의 거짓말은 다른 영역의 거짓말과 매우 다른 면이 있었다. 내가 경찰에게 자동차 속도를 거짓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이유 때문이다. 벌금이나 체포를 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받기 위한 거짓말에는 괴상한 가정이 수반된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개인적(따라서 다른 사람과 다른)특징을 비워버려야만 상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의 진짜 자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완벽성과 화해 불가능한 갈등 관계에 있다고 (따라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태도다.
(<진정성> 中)-60-61쪽

유혹이란 일종의 연기와 같아, 자연스러운 행동에서 청중에 의해 결정되는 행동으로 옮겨가게 된다. 배우가 관객의 기대를 어느 정도 파악해야 하듯이, 유혹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알아야 한다. 따라서 사랑받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주자을 결정적으로 반박하려면, 연애의 경우에는 배우가 관객이 무엇에 감동을 받을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을 들이대면 된다. 연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자연스러운 행동과 비교할 때 그것이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진정성> 中)-62쪽

유혹의 어느 시점에서 배우는 관객을 잃을 위험을 무릎써야 한다. 유혹하는 자아는 연기로 환심을 사려고 시도하지만, 게임은 결국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상황을 규정할 것을 요구하며,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위험을 무릎써야 한다. 키스는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린다. 두 살갗이 접촉하게 되면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가, 암호화된 말의 교환은 끝이 나고 드디어 이면의 의미들을 인정하게 될 터였다. 그러나 리버풀로드 23a번지의 문 앞으로 다가가면서 나는 기호들을 오독했을 위험에 겁을 집어먹고, 비유적인 커피 한 잔을 제안할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진정성> 中) -65쪽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가장 위대한 결실과
가장 위대한 기쁨을 수확하는 비결은, 위태롭게 사는 것이다.
너의 도시들을 배수비오 산기슭에다 세우라!
(니체)-70쪽

윌리엄 제임스는 행복과 기대의 관계에 관하여 예리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우리가 노력을 기울이는 모든 영역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해서 반드시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어떤 일을 못했다고 해서 늘 수치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일의 성취에 자존심과 가치를 투자했을 때에만 그 일을 하지 못했을 때 수치감을 느낀다. 우리가 무엇을 승리로 해석하고 무엇을 실패로 여기는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라는 이야기다.
(<일과 행복> 中)-77쪽

이런 감정적인 반응을 보면 작업장에 두 가지 요구가 공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사업의 일차적 목적은 이윤의 실현이라고 규정하는 경제적 요구다. 또 하나는 경제적 안정, 존중, 종신직, 나아가 형편이 좋을 때는 재미까지도 갈망하는 피고용자의 인간적 요구다. 이 두 가지 요구가 오랜 기간 이렇다 할 마찰 없이 공존할 수도 있지만, 이 둘 사이에서 진지하게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상업적 체제의 논리에 따라 언제나 경제적 요구가 선택된다.
(<일과 행복> 中)-81쪽

나는 사람이다.
인간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치고 나에게 낯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테렌티누스)-86쪽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 없이 식사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96쪽

여자들은 홀로 있는 남자들의 절망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충서와 이타심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로맨스라는 면에서 잘나가는 유형의 남자들을 의심할 만한 이유도 되겠다. 그런 남자들은 넘치는 매력 때문에 내가 겪었던 이런 희비극적 과정을 알지 못한다. 말 한마디 붙여볼 기회도 주지 않고, 사과 주스 팩과 내 머릿속의 결혼 계획만 뒤에 남겨놓은 채 다음 역에서 내려버린 여자 때문에 며칠씩 마음 아파하는 그 과정을.
(<독신남> 中)-99-100쪽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파스칼)-104쪽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독자가 결코 자신에게서
경험하지 못햇을 무언가를 분별해낼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기구일 뿐이다. 따라서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은 진실하다고 입증된다.
(프루스트)
-122쪽

그러나 위대한 책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이들을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
(<글쓰기와 송어> 中)-126쪽

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 있지만
그래봐야 내 엉덩이 위일 뿐이다.
(몽테뉴)-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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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카리브 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
이우일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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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되면 삽화계에 있어서 하나의 권력이라 칭할 수도 있을만 하다.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69년생의 이 남자는 아직 젊은 나이에 많은 저서를 가지고 있다. 그 수많은 책들을 다 직접 글까지 쓴 건 아니지만 글과 그림을 함께 한 순수한 저서도 꽤 있고, 본업인 그림만 그려 본 책에 삽입한 '순수하지 않은' 저서로 치면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일단 그가 그림을 그린 수많은 노빈손 시리즈부터 시작해 만화가들이 모여 인권문제를 그린 <십시일반>, 또 한창 잘 나가는 소설가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 또 글과 그림을 함께 한 순수한 저서 <신혼여행일기> 시리즈, 여행담 <이우일, 카리브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철학 대중서 <도덕을 위한 철학 통조림>, <도날드 닭>, <호메로스가 간다>, <삼인삼색 미학오딧세이> 등등 일일히 다 제목을 대기 힘들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다양한 작업을 하는 만화가다. 순수한 연재만화에서, 아동용 서적, 여행기, 인권만화, 철학대중서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분야를 넘나든다. 몇몇 저서들의 제목에 그의 이름 '이우일'이 들어간 것은 그가 그만큼 이름만 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음을 증명하고 있다. 대개 책 제목에 이름을 집어넣는 경우는 책의 내용과 상태를 점검하지 않더라도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상업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된 경우이기 때문.

  <이우일, 카리브 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는 그가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아내와 딸과 함께 멕시코의 메시코시티와 칸쿤, 쿠바의 아바나를 여행한 일종의 여행일기다. 요즘 여행일기가 붐이다. 너도 나도 여행을 다녀와 여행기를  쓰고 책으로 낸다. 여행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누가 써도 재밌게만 쓰면 되기 때문. 여행기를 쓰는데 있어서는 특별한 전공지식이나 대단한 사유와 성찰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이 보고 즐긴 것을 재밌게, 독자가 이 곳에 가보고 싶게끔 쓰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기에는 전문가란 없다. 또 그렇기에 각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여행기를 쓸 수 있고, 각 분야에 종사하는 그들 나름의 독특한 냄새가 짙게 풍겨나오는 것이다.

  이우일의 여행기 또한 그렇다. 본업이 만화가인 점을 특징으로 삼아 책을 구성했다. 실제로 보고 만지고 체험한 것들을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중간중간 귀엽고 깜찍한 만화와 풍선글귀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아내와 딸 과의 황당하지만 재미난 대화도 하나의 에피소드 삼아 집어넣고,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것 뿐 아니라 여행을 하며 경험한 크고 작은 실수까지도 넣어줌으로써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그의 책은 만화와 사진이 많아 그 누가 읽어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다 큰 어른이 읽어도, 청소년이 읽어도, 또 그의 딸 나이의 조그마한 아이가 읽어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모든 연령대의 독자층에 닿아있다.

  이 책은 자기자신에게는 일기가 될 것이요, 함께 여행한 아내와 딸에게는 오래도록 남을 지난날의 추억이 될 것이고, 독자에게는 여행에 앞서 살펴볼만한 괜찮은 책이 될 것이다. 자신의 본업을 살려 여행도 하고 추억거리도 만들고 돈도 버는, 일석삼조의 제대로 된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우일이 그림을 그린 다른 책들도 모두 보고싶어졌으니 이를 어쩌랴. 특히나 그의 303일간의 신혼여행기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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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6-08-22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있나봐요. 살까말까 계속 망설이게 돼요. 알라딘에선 혹했다가 교보에 가서 직접 책을 보니 왠지 덜 끌리는 거 있죠. -_-a 아프락사스님의 리뷰에 혹해서 다시 보관함으로! ^^

마늘빵 2006-08-22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여행기인지라 한번 보면 다시 보게 되지 않는 책이긴 하지만 재밌어요. ^^

BRINY 2006-08-22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보게 되지 않는. 그래서 여행기는 늘 구입이 망설여져요.

마늘빵 2006-08-2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저도 제돈 주고 산 건 아니에요. -_- 증정으로 받았어요.

이리스 2006-08-2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우일씨 홈피도 꽤 재밌다. ㅋㅋ 근데 이우일을 아직도 만화가라 칭하나??

마늘빵 2006-08-23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뭐라고 칭해야되남... -_- 작가?

daytripper 2006-08-24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것에 대한 괜한 딴죽이지만요..
"그가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부분은 오류라서.. 이우일씨가 직장을 다니지 않는 프리랜서 작가니까요..;;
좋은 리뷰에서 괜한 것만 집어내서 죄송합니다.. 꾸벅..
<동경여행기>도 그랬고 <신혼여행기>도 그렇고,
같은 장소를 가도 특별한 시선으로 보는 능력이랄까 그런 것이 참 부럽고 대단했어요.. 그리하여 아프락님께도 <신혼여행기> 추천합니다.. 10여 년 전 이야기지만 다시 읽어도 신선하거든요.. 두꺼운 책 두 권이지만..

마늘빵 2006-08-24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푸른거리님 / 이 사람 원래 직장 다녔었다고 나와있던데요. -_- 언제 때려친건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하고 얼마 안되 때려친거 같은데. 저도 다른 작품들 관심가요. 책을 재밌게 쓰는 것도 재주인거 같아요.

daytripper 2006-08-24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긴 하죠.. 광고회사였나를 잠깐 다녔다고 어디엔가에 있었어요.. <옥수수빵파랑>이었나.. 그 시점이랑 멕시코 여행 시점은 한참 차이가 나서.. 아무튼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까요..^^ 죄송..
 
N.P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현재 번역되어 있는 모든 - 실제 저서는 모두 번역된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녀의 책을 읽기를 시도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모든 책을 한꺼번에 접하기보다 띄엄띄엄 텀을 두고 손에 쥐고 있어 모든 책을 읽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 책 말고 아직 한 권이 더 남았다. <암리타>. 는 그녀의 책 중에서 많은 이들이 괜찮다, 좋다 라고 평가내리고 있는, 또한 누군가는 이 책이 그녀가 이전까지 낸 모든 책들의 집대성이라고 말하지만, 쉽게 고개를 까닥이기 어렵다.

  그녀의 소설은 매우 친절하다. 그녀의 작자 후기에 따르면 - 사실 작자 후기를 넣는 작가는 요시모토 바나나 말고는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 자신이 지금까지 써온 테마 전부 (레즈비언, 근친간의 사랑, 텔레파시와 심퍼시, 오컬트, 종교 등등)을 가능한한 적은 등장 인물과 조그만 동네 안에 쏟아 부었다고 말한다. 이전의 소설도 그러했고, 이 소설 또한 이전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비주류인들의 아픔을 한데 묶어 그들의 아픔을 살펴주고, 상처를 보듬어준다. 그녀의 소설은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다른 등장인물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언제나 이야기 구조는 똑같다. 줄거리의 결말은 그녀의 소설 첫부분을 읽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다 알고 있으면서 우리가 그녀의 소설을 읽는 까닭은, 언젠가 내가 다른 리뷰에 썼듯이,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상처들을 치유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처가 치유됐건 그렇지않건간에. 적어도 우리는 그런 작은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그녀를 접한다.

  그녀의 소설이 매우 친절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언제나 그녀는 어둡고 아픈 그늘진 인생들을 그려내지만 그들에게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준다. 살아야한다. 나는 살아야한다, 는 그런 생에의 의지를 심어준다. 그대들을 향해 살포시 미소 지어주며 자 이리와봐. 내 어깨에 기대, 내 무릎에 누워 잠들어봐, 라며 기꺼이 나를 의지할 수 있게, 충분히 그들이 마음편히 기댈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의 그 친절한 미소는 이제 너무나 가식적으로 보인다. 숱하게 반복되는 '아픔-치유-희망'의 구조는 이제 더이상 내 영혼의, 내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기엔 '지나치게' 친절하다. 아무런 대가 없이 베푸는 친절함은 인간의 본성의 선함을 증명해주는 듯 하지만, 때로는 그것의 반복이 무섭고 두렵기도 하다.  

 일장일단이 있겠지. 그녀의 모든 책이 아닌 어느 단 한권의 책을 손에 쥐었다면 그 친절함은 솔직하고 담백하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똑같은 친절함의 반복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제 그 친절함이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오지도 '친절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쩌면 반복된 친절은 나에게 무감각함을 선물해주었는지도. 뻔히 드러다보이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인기작가의 순정만화를 보는 듯한 기대감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같은 의미에서 더이상의 기대감을 저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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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06-08-22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리타'를 마지막으로 읽은 후론 바나나에 대한 관심을 뚝 끊었지요. 실망이 컸는지 기대가 컸었는 지 내용도 기억하지 못하겠고, 누가 물으면 재미없다 딱 잘라 말해 버려요. 그러고보면 책을 읽는 이란 참으로 잔혹한 구석이 있는 듯.

마늘빵 2006-08-2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님/ 제가 현재 <암리타>만 남겨둔 상태인데... 이런. -_- 꽤 두껍던데요 이건.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 무엇인가가, 그 누군가가 나의 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꿈틀거리면서 말을 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탄생은 어떤 단순한 독서, 어떤 짤막한 대화 한마디만으로도 한 젊은이에게서는 촉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펼쳐놓은 책에서 한 개의 문장이 유난히 두드러져보이고 한 개의 어휘가 아직도 방 안으로 울리고 있다. 문득 적절한 말, 정확한 지적을 에워싸고 모순이 풀려 질서를 찾게 되고 무질서가 멈춰버린다. 그와 동시에 벌써 그 완벽한 언어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수줍고 더욱 어색한 하나의 노래가 존재의 어둠 속에서 날개를 푸득거린다."

  장 그르니에의 <섬>의 내용보다 솔직히 알베르 카뮈의 이 책을 읽은 후의 느낌에 대한 저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섬>이라는 책을 읽은 후의 느낌에 대해 이보다 더 정확하고 깔끔하게 서술한 문장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스승보다 더 뛰어났던('유명해진'이라는 문구가 더 적합할 듯 싶으나 그 느낌을 '뛰어났던'으로 표현하고 싶다) 제자인 알베르 카뮈는 어린시절, 대략 고등학생즈음, 장 그르니에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장 그르니에의 <섬>에서의 '섬'은 인간의 깊숙한 어떤 곳에 있는 내면을 말한다. '섬'이라는 제목으로 묶여있는 여러편의 에세이들은 그르니에의 마음 속의 정적인 고독과 사색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의 글들은 매우 짧고 간결한 하나의 일기이다. 그가 평소에 써놓은 일기 중에서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듯한 느낌이다. 그의 글들은 나의 눈을 어지럽히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조용하고 어두운 좁은 공간에서 한 문장 한 문장 차분히 읽어나가야 할 것만 같다. 에세이 혹은 일기라고 볼 수 있지만 결코 쉬운 글은 아니다. 짧고 간결하지만 결코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다. 천천히 사색하며 읽고 또 읽고 다시 꺼내어 또다시 읽으며 느껴야만 하는 글이다.

  나는 타인의 존재에 의해서, 타인과 마주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깨닫지만, 한편으로 나의 내면의 존재와 마주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느끼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껴 살아가지만 그저 나 또한 수많은 군중들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에서 '섬'이다. 또한 현실 속에 살아가는 물리적 존재인 나는 나의 내면에 잠들어있는 또다른 존재와 떨어져있는 '섬'이다. 나는 누군가와 관계함으로써 나를 느낀다. 그 누군가는 타자일 수도, 사물일 수도, 그리고 지금 생각하는 나일 수도 있다.

  그저 멍하니 정신 잃고 누워있다 책장에서 문득 끄집어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천천히 소리내어 읽어보고프다. 나는 그르니에와 마주함으로써 그르니에의 내면을, 그리고 나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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