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 무엇인가가, 그 누군가가 나의 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꿈틀거리면서 말을 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탄생은 어떤 단순한 독서, 어떤 짤막한 대화 한마디만으로도 한 젊은이에게서는 촉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펼쳐놓은 책에서 한 개의 문장이 유난히 두드러져보이고 한 개의 어휘가 아직도 방 안으로 울리고 있다. 문득 적절한 말, 정확한 지적을 에워싸고 모순이 풀려 질서를 찾게 되고 무질서가 멈춰버린다. 그와 동시에 벌써 그 완벽한 언어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수줍고 더욱 어색한 하나의 노래가 존재의 어둠 속에서 날개를 푸득거린다."

  장 그르니에의 <섬>의 내용보다 솔직히 알베르 카뮈의 이 책을 읽은 후의 느낌에 대한 저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섬>이라는 책을 읽은 후의 느낌에 대해 이보다 더 정확하고 깔끔하게 서술한 문장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스승보다 더 뛰어났던('유명해진'이라는 문구가 더 적합할 듯 싶으나 그 느낌을 '뛰어났던'으로 표현하고 싶다) 제자인 알베르 카뮈는 어린시절, 대략 고등학생즈음, 장 그르니에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장 그르니에의 <섬>에서의 '섬'은 인간의 깊숙한 어떤 곳에 있는 내면을 말한다. '섬'이라는 제목으로 묶여있는 여러편의 에세이들은 그르니에의 마음 속의 정적인 고독과 사색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의 글들은 매우 짧고 간결한 하나의 일기이다. 그가 평소에 써놓은 일기 중에서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듯한 느낌이다. 그의 글들은 나의 눈을 어지럽히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조용하고 어두운 좁은 공간에서 한 문장 한 문장 차분히 읽어나가야 할 것만 같다. 에세이 혹은 일기라고 볼 수 있지만 결코 쉬운 글은 아니다. 짧고 간결하지만 결코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다. 천천히 사색하며 읽고 또 읽고 다시 꺼내어 또다시 읽으며 느껴야만 하는 글이다.

  나는 타인의 존재에 의해서, 타인과 마주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깨닫지만, 한편으로 나의 내면의 존재와 마주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느끼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껴 살아가지만 그저 나 또한 수많은 군중들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에서 '섬'이다. 또한 현실 속에 살아가는 물리적 존재인 나는 나의 내면에 잠들어있는 또다른 존재와 떨어져있는 '섬'이다. 나는 누군가와 관계함으로써 나를 느낀다. 그 누군가는 타자일 수도, 사물일 수도, 그리고 지금 생각하는 나일 수도 있다.

  그저 멍하니 정신 잃고 누워있다 책장에서 문득 끄집어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천천히 소리내어 읽어보고프다. 나는 그르니에와 마주함으로써 그르니에의 내면을, 그리고 나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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