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위한 변명 - '보신탕'과 '동물 권리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남유철 지음 / (주)유미디어(유미디어드림) / 2005년 4월
품절


미국의 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철학', 즉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당면 문제에서 출발하는 철학을 제안한 바 있다. 과거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철학 논리에서 시작하여 시대의 구체적인 쟁점에 다가가겠다는 상아탑의 철학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철학이라고 부르면서, 드워킨은 그러한 접근을 특별한 체형의 사람이 기성복 가게에서 맞는 옷을 고르는 것처럼 부질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16쪽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괜찮지만 보신탕은 안된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 이면에는 "개는 가축이 아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개고기를 먹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개의 생물학적 특징 때문이 아니라 개가 인간과 함께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인간에게 유용한 역할을 해 온 개에 대해, 우리가 최소한의 애정과 예의는 보여야 한다는 보신탕 비판자들의 논리는 그래서 지극히 인간적이다. -52쪽

"A라는 행위는 문화적 전통이다" 따라서 "A는 도덕적이고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모든 전통적 행위는 도덕적이고 합법적이어야 한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고유 문화나 전통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도덕적, 실정법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문화적 전통이 도덕적이고 합법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62쪽

미국 철학자 제임스 레이첼스는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핵심 가치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공동체의 성립 및 유지를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에 대한 부정은 모든 문화적 공동체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가치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을 보살펴야 한다거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살인은 안된다는 등의 가치는 공동체의 성립 및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동시에 인류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가치라는 것이다. -81-82쪽

물론, 도덕적 논의는 수학 문제처럼 답이 딱 떨어지는 정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보다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행동이 무엇인가를 고뇌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상대주의는 보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를 지향하기 위한 인간의 이성적 판단 자체를 의미 없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모든 상황이 최선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부조리로 귀결된다. -85쪽

문화상대주의의 논리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문화가 다르면 가치도 다르다는 '사실'을 하나의 '당위'로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 다양하고 상이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왜 그러한 가치가 지속되고 옹호되어야 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결국, 문화상대주의는 현재의 상황을 무조건 정당화하는 자기 모순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85쪽

물론, 하나의 행위가 '전통'으로 지속되어 온 데에는 분명히 어떤 역사적 문화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덕적 관점에서 성찰할 때는, 그것이 과연 오늘의 시점에서도 정당한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어떤 행위가 특정 문화권의 전통이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비교 평가할 수 없다면, 지구 공동체 공통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만다. -86쪽

"균등의 원칙을 우리 자신의 종을 넘어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의 요지는 간단하다. 너무 간단해서 이해 관계의 균등한 고려 원칙을 이해하는 이상의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원칙이 개인의 생김새나 능력에 무관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바로 이 원칙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종의 생명들을 착취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다.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차별 대우해서는 안되듯이, 우리와 종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의 이해 관계를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피터 싱어)-120쪽

단지 동물이기 때문에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동일한 이해 관계에 대해 균등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가 옳다고 믿고 있는 이해 관계의 균등한 고려 원칙에 어긋난다고 싱어는 주장한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도덕적 원칙에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동물이 말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우리에게 항의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을 하는 이들에게도 그들의 행위가 잘못됐다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싱어는 지적하고 있다. -122쪽

싱어는 그의 저서에서, 날개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좁은 닭장 안에 갇혀서 사육되는 닭의 고통을 예로 들면서 농장 동물의 고통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자유롭게, 고통 없이 사육된 닭이 있다면 공리주의 원칙상 그 닭으로부터 생산된 달걀은 먹어도 괜찮다고 그는 말한다. 반대로 날개도 펼 수 없는 좁은 닭장에서 키운 닭으로부터 나온 달걀은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다. 그러한 계란을 소비하는 것은 그러한 사육 방식을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143쪽

미국 러트거스 대학의 법철학 교수인 프란시온은 동물에 가해지는 고통을 종식시키고 그들의 인간에 대한 노예적 상태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동물에게 인간의 재산으로 취급되지 않을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의 현 예속 상태가 부도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종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물을 단순한 재산으로 취급하는 법을 폐기하고 동물에게 재산으로 취급되지 않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151-152쪽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 하더라도, 저술 하나로 사람들의 생각이나 관습과 제도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변화를 위한 사회 정치적 노력과 행동을 동반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설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리 있고 설득력 이쓴 '생각'이 먼저 제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만으로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생각의 조형은 새로운 변화를 위한 운동의 가장 중요한 기초로서 필요하다. -161-162쪽

"일부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통일된 심리적 실재'라는 미스터리를 이 세계에 부여한다.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들 역시 다양한 감성적, 논리적, 능동적, 의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보고 들으며, 욕망과 믿음,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다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자신들의 의지를 실현코자 한다. 우리 인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 동물에게 있어서도 자신들의 운명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육체적인 즐거움과 고통도,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다. 나아가서 동물들은 우리처럼 공포와 만족, 분노와 외로움, 좌절과 충족감을 느낀다. 동물들 역시 때로는 교활하게 행동하며 몰염치하기조차 하다. 여기서 열거한 그리고 열거하지 못한 다양한 심리적 상태와 특징들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때, 우리 인간과 동물은 (나의 용어를 빌리자면) 모두 정신적, 심리적 삶을 살아가는 '삶의 주체'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행복을 저해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삶의 주체'들이 자신의 생명과 삶을 소중하게 취급받을 최소한의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93년 톰 리건)-164-165쪽

리건은, 육식은 (의식 있는 동물인) 가축의 '본원적 가치'인 생명 그 자체를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빼앗는 행위이므로 결코 도덕적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고통의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는 무조건 육식을 회피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동물은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일방적으로 빼앗기지 않을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175쪽

리건은 권리론이 주장하는 채식주의가 싱어와 같은 공리주의자들의 채식주의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싱어의 공리주의에 따르면, 만약 채식주의가 동물에 가해지는 고통을 줄이지 못한다면 그 채식주의는 도덕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리건은 반박한다. (그 이유는 그 채식주의가 공리를 생산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건은 그래서, 싱어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한 개인이 채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얼마나 많은 타인들이 채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리건이 말하는 권리론의 채식은 다르다. 권리론의 채식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채식을 하느냐, 혹은 그러한 윤리적 채식주의가 실제 효과가 있느냐는 사실과 관계없이, 한 개인이 무조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177-178쪽

"상황에 관련된 모든 개체를 존중한다는 전제 아래 그리고 특수한 고려를 배제한다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모든 개체는 더욱 불리한 경우에 처해지는 상황을 피해 갈 권리가 있다. 설혹 그러한 행위가 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또 다른 개체에게 피해를 준다 하더라도." (톰 리건)-179쪽

"권리가 있다."고 주자榜?것은 이미 주어졌어야 할 것이 박탈당해 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이는 현재 없는 것을 새로이 달라고 주장하기보다 - 왜냐면, 새로운 것을 달라고 할 때는 그 이유를 적극적으로 충분히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미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현재 주어져 있지 않다는 식의 논리로서, 왜 그것이 없는지를 도리어 상대에게 설명하게 하는 수사학적 기교라고 할 수 있다. 리건이 내세운 동물의 권리론도 이러한 시류를 편승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의무를 강제할 수 없는 권리, 즉 법률적 권리처럼 강제성을 전혀 갇지 못하는 도덕적 권리에 불과하다면, 진정한 의미의 권리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면, 그 때의 권리란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상징적 언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0-201쪽

우리가 동물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도덕적 질문의 앞에는, 우주와 지구 환경을 공유하는 하나의 생물체로서 인간과 다른 생물체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우리의 철학적 명상은 결국 삶에 대한 성찰과 세계관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 점에서 볼 때 보신탕 논란의 진정한 요체는 그것이 혐오 식품이냐 아니냐, 민족 고유의 음식이냐 아니냐, 개가 가축으로 분류되어야 하느냐 아니냐, 외국 동물 애호가들의 시비에 굴복해야 하느냐 아니면 고유 음식 풍속에 대한 민족 자존심을 지켜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보신탕에 대한 논란은 고래나 돌고래 사냥에 대한 논란이나 영국의 여우 사냥 금지 혹은 야생 동물에 대한 보호 여부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는 지구 환경을 공유하고 있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선택의 문제이고 현실적으로는 동물에 대한 각기 다른 정서를 가진 사회 구성원들 간의 경제적, 정치적 갈등에 대한 조정 그리고 법률적 접근 방식의 문제이다.
-209-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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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건의 생각은 '대자대비' 부처님의 생각과 유사하군요..

'보신(생존이 아닌)'을 위해 타생명체의 생명력을 이용하는 인간의 저열함에
자괴감을 느끼곤 합니다.
'한의사'들의 논리?!.. 녹용과 웅담과 기타 등등..
우주의 기(氣)를 내 몸속으로 끌어들이는 무서운 요기들, 도사들..
도저한 인간의 이기심을 봅니다.... 아프락사스님.


마늘빵 2007-06-04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리건은 부처의 생각과 비슷합니다. 거의 같다고 봐야죠. 여기서도 저자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저자는 리건의 논리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비판을 가하더군요.

2007-08-14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8-14 18:20   좋아요 0 | URL
<시귀>라는건 소설인가요, 한번 검색해봐야겠네. 그쵸. 우리가 당하는 입장이라면 또 다를 겁니다. 언제나 우리는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육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육식했는데... ;;;

2007-08-14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8-14 18:22   좋아요 0 | URL
하하. 그쵸 이런건 모순이 아니고 고민 아닌가요. :) 참 큼지막한 주제 여러개를 꺼내셨는데,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님과 같은 '고민과정'에 있습니다. 모순은 나의 어떤 행위가 다른 행위와 충돌을 일으킬 때를 일컫는거니, 이런 고민과정엔 해당사항 없을 듯 합니다. 요새 고민 많으신가봅니다. :) 좋은 현상(?)이에요. 크크.

2007-08-15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8-15 23:24   좋아요 0 | URL
남들이 사서 고민한다는 그런 고민들, 어쩌면 삶을 참 불편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전 개개인의 그런 사서하는 고민들로 인해 세상이 좀 더 나아진다고 믿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나아진 세상에 사실상 얹혀살고 있는 셈이지요.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

2007-08-16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8-16 10:5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데서 블로그 하는 재미를 느낍니다. 재미보다 좀 더 나아간 무엇이지만. 이렇게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으니 저도 더 생각해보게 되고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이에 대한 지지, 반박으로 구성된 리스트. 그 외 생물학적 결정론, 사회생물학 등등 이와 관련된 책들을 묶어봤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지배하는 개체로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이 주장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2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 우리의 사고를 바꾼 과학자
앨런 그래펀 지음, 마크 리들리 엮음,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3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7년 04월 01일에 저장
절판

'이기적 유전자'로 논쟁의 시작이 된 리처드 도킨스 개인에 대한 회상이나 그가 미친 사회적 영향, 그리고 비판과 분석을 엮어낸 책이다.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지음, 박영목 옮김 / 한길사 / 1994년 4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07년 02월 17일에 저장
품절
이 모든 논의의 가장 근원에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존재한다. 당시 다윈의 진화론이 기독교계에 미친 파장은 아직까지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회생물학 논쟁
프란츠 부케티츠 지음, 김영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999년 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7년 02월 17일에 저장
절판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인가, 문화인가? 에드워드 윌슨이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통해서 시작된 발언으로부터 이후 진행된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논쟁들을 다룬다.
사회생물학과 윤리- 반양장
피터 싱어 지음 / 인간사랑 / 1999년 11월
12,000원 → 11,400원(5%할인) / 마일리지 350원(3% 적립)
2007년 02월 17일에 저장
구판절판
피터싱어는 프린스턴대 생명윤리 교수로 있는 세계적인 윤리학자이다.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사회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윤리적인 관점에서 살펴본다.


2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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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뫼 2007-04-19 0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이 많이 들어 있네요. ^^ 천천히 접해봐야겠습니다.
<이기적인 유전자란 무엇인가> 전파과학사. 이 책도 참 재미있더군요.

마늘빵 2007-04-3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댓글을 언제. 여긴 브리핑이 안되서 잘 못봐요. 그 책도 보관함에 넣어야겠군요. ^^

비오는날오후 2007-12-2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이기적 유전자>를 보고, 참고할 만한 책이 없나하고 찾아보고 있었는데...
아프락사스님이 만들어놓으신 목록들 참고 좀 해야겠습니다.^^

마늘빵 2007-12-27 18:25   좋아요 0 | URL
넵! 저도 관련 책 중에 아직 못 읽은게 꽤 많답니다.
 

97년인가부터 소설가 복거일씨에 의해서 시작된 영어공용화 찬반 논쟁은 지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진 않지만, 여전히 중요한 주제거리로 남아있다. 국제어 시대에 영어를 받아들이고, 제2의 모국어로서 역할을 하게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같이 제1외국어로서 유지를 할 것인가?


1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영어, 미국화, 세계화 사이의 숨은 그림 찾기
문강형준 지음 / 뜨인돌 / 2009년 3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09년 06월 04일에 저장
절판

감염된 언어-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개정판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8년 10월 04일에 저장
품절

영어공용화 논쟁에 있어서 빠뜨려서는 안되는 책이다. 직접 논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고종석은 <감염된 언어>의 '우리는 그리스인이다'를 통해 영어공용화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꽤 길게. 복거일은 이후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에서 그를 자주 인용한다.
언어의 종말
앤드류 달비 지음, 오영나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10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08년 10월 04일에 저장
절판
나는 왜 영어 공용어론을 주장하는가
후나바시 요이치 지음, 홍성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3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07년 12월 04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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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밥상
제인 구달 외 지음, 김은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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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면 세계의 기아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유전자 변형으로 자양분이 고갈된 토양을 되살리고, 식량을 증산시킬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몬산토, 뒤퐁, 다우, 기타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의 종자 공급을 장악해 가고 있는 속도로 볼 때, 유전자 변형의 가장 큰 동기는 금전적인 탐욕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의 식량 공급을 특허권으로 통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한편, 자연 자원을 고갈시킬 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농법이 저개발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저개발 국가의 지도자들은 세계은행이나 국제 통화 기금 등으로부터 다국적 기업과 협조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저개발 국가들을 대상으로 자사의 농경 기술을 팔기 위한 시장을 개척하는 한편, 낮은 비용으로 식품을 생산(종종 노예의 노동력을 동원하기도 한다)함으로써 저개발 국가에 곡물을 팔아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다. 결국 저개발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식민지 착취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셈이다. -102-103쪽

세계의 기아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구를 해 본 사람이라면 지금 지구 어디선가 8억 명의 사람들이 굶고 매일 3만 명의 어린이들이 굶어 죽는 이유가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정치 불안, 불안정한 식량 유통 체계, 정부(지방 정부든 중앙 정부든)의 부패, 인구 과밀 또는 과도한 방목으로 인한 토양의 황폐화, 거대 기업의 농토 장악으로 지역적 특색에 맞는 농경이 불가능해진 점,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수단을 잃어버리고 도시로 떠나는 이농 현상 등 그 이유는 다양하다. 이농 현상의 경우 농업으로 생계를 잇던 농부들이 그 수단을 빼앗김으로써 점점 더 가난해지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마저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욱더 비극적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농부들은 대대로 물려받으며 농사를 짓던 땅을 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지만 도시에서 찾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시는 이미 대량 실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자리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때 자부심을 갖고 농사를 짓던 농부들이 굶주림에 지쳐 거지가 되어간다. -103-104쪽

해바라기 씨앗을 수확한 여인네들은 가까운 곳에는 그 씨앗을 내다 팔 만한 시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종묘 회사에서 웨일웨일에서 수확한 해바라기 씨앗을 되사겠다고 했다. 그러나 농사를 지은 여인네들에게는 전혀 이익이 남지 않을 만큼 턱없이 낮은 가격이었다. 게다가 더 분통 터지는 일이 있었다. 농부들이 다음에는 더 큰 수확을 거두기를 바라며 거두어들인 해바라기 씨앗 중 일부를 새로 뿌리기 위해 남겨 두었다. 그러나 곧 종묘 회사에서 그들에게 판 씨앗은 열매를 맺지 않는 불임 씨앗임이 밝혀졌다. '터미네이터 종자'라고도 부르는 이런 씨앗은 유전자를 변형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제 자신의 배아를 죽여 재생산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종자다. 종묘 회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 파종할 해바라기 씨앗을 전보다 더 비싼 값에 팔아먹는 파렴치한 횡포를 저질렀다. -109-110쪽

문제는 '그들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나 '그들도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그들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이다. (제레미 벤담) -123쪽

2004년 봄의 어느 날, 로스는 실수로 왼손 가운데 손가락을 칼에 베었다. 상처는 정상적인 경우라면 오래가지 않고 금방 아물만한 정도였다. 그러나 로스의 상처는 크게 부풀어 올라 골프공만 한 크기가 되었다. 로스를 치료했던 의사는 로스의 상처가 항생제 내성이 강한 박테리아에 감염되었으며, 이 박테리아는 공장의 닭으로부터 감염된 것이라고 믿는다. 몇 개월 동안이나 항생제로 치료했지만 감염은 치료되지 않았고 감염에 의해 곪아 버린 손가락을 절단해야했다. 손가락을 절단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로스의 극단적인 반응과 항생제에 대한 무기력한 반응이 새로운 공중 보건의 연구를 시작하게 하는 촉진제가 되었고, 이 연구에 따라 체사피크 만 지역의 닭가공 공장 근로자들이 항생제 내성 검사를 받았다. -155쪽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동물을 대하는 방법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 나는 저항력이 없는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인간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마하트마 간디)

-167쪽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육식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첫째, 인간의 몸은 해부학적으로 많은 양의 고기를 자주 섭취하는데 적당치 않다.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은 장의 길이부터가 다르다. 육식 동물의 장은 짧아서 (제 몸 길이 정도) 먹이 중에서 소화되지 않는 것도 부패하기 전에 재빨리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되어 있다. 초식 동물은 식물성 먹이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장의 길이가 길다. (보통 자기 몸의 네 배 정도) 인간의 장도 길이가 길다. 따라서 육식을 하면 고기 찌꺼기가 장에 너무 오래 머무르게 된다. 다른 측면에서 보아도 인간은 육식에 적합한 신체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고기를 찢거나 베어내기 적합한 이빨도 없고 발톱도 없다. 마지막으로, 유기농 축산물을 섭취하지 않는 한 육식을 하면 공장식 사육장에서 가축을 사육할 때 사용한 항생제와 호르몬이 사람의 몸까지 오염시킨다. -225-226쪽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곡물의 3분의 1에서 거의 절반가량이 사람이 먹을 가축을 살찌우기 위한 사료로 쓰인다는 통계가 있다. 미국에서도 농지의 56퍼센트가 고스란히 쇠고기를 생산하는데 쓰인다. 영국에서는 70퍼센트의 농지가 가축의 사료를 재배하는데 쓰인다. 유럽과 일본에서도 그와 비슷한 정도의 가축들이 식용으로 사육된다. 많은 선진국들이 자기 나라에서 소비될 가축을 자기 영토 안에서 모두 기를 수 없다. 유럽에서 식용으로 쓰일 가축 모두에게 먹일 풀과 곡물을 재배하려면 유럽 연합 전체 면적의 일곱 배에 해당하는 토지가 필요하다. -232-233쪽

1헥타르의 토지에 감자를 심으면 스물 두 명이 1년을 사 수 있다. 같은 면적에 벼를 심으면 열아홉 명, 곡물을 심지 않고 소나 양을 길러 쇠고기와 양고기를 생산하면 단 한 명 내지 두 명 만이 그 고기로 1년을 살 수 있다. 물론 사람이 1년 내내 감자가 옥수수만 먹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육류의 생산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굶주린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수치로 알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속도로 육류를 소비하기 위해 지구상의 농지를 파괴해야 한다면 더욱더 그러하다. 육류의 생산을 늘리는 것보다는 육류의 소비가 심한 음식 문화에 변화를 꾀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235-236쪽

희망을 잃는다면 삶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생명력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존재할 용기,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질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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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7-05-2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 할 내용이 정말 많은 책이죠... ^^
 
인간복제 무엇이 문제인가 - 인간 복제의 윤리학
스티븐 제이 굴드 외 지음, 그레고리 E. 펜스 엮음, 박찬구 외 옮김 / 울력 / 2002년 2월
품절


우리가 인간 복제의 전망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것은, 이러한 일의 생경함과 진기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즉각적으로 아무런 논증 없이 알고 느끼는 것으로서, 우리가 정당하고 친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혐오감은, 지나친 인간의 작위에 대한 반감이며, 말할 수 없이 심오한 것들을 범하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사실상,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우리의 타고난 본성은 더 이상 존경받지 못하고 우리의 몸 또한 우리의 자율적, 이성적 의지의 단순한 도구로 여겨지는 이 시대에, 혐오감은 우리 인간성의 핵심을 보호하기 위해 외치도록 남겨진 유일한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전율을 잊어버린 영혼은 경박하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47쪽

무성 생식은 자기 보존 활동의 지속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유기체가 두 개로 자라거나 분화되기 시작하면 원래의 것은 (이중으로) 보존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 이에 비해 성은 소멸을 의미하며, 대체에 이바지한다. 하나를 낳기 위해 모인 둘은 곧 죽게 된다. 성적 욕망은 인간에게든 동물에게든 자기 보존적인 개체에게 부분적으로는 감추어져 있고 궁극적으로는 모순이 되는 목적을 위한 것이다. 인식하든 않든 간에 성행위를 하면서 우리는 성기를 우리 자신의 소멸을 위해 사용한다. 알을 낳고 죽기 위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는 보편적인 진리를 이야기해준다. 즉 성은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생식에 부분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55쪽

아이의 동의를 상정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에 관한 반대 의견은 복제 인간이 나중에 질문을 받을 때 결국 복제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화를 낼 것이라는 명백하고도 충분한 점을 간과하기까지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익과 손해가 아니라 적절한 (비록 시간적으로 지난 것이라 하여도) 동의를 하는데 필요한 독립성, 즉 단지 선택할 자유만이 아니라 자유롭고 바르게 선택할 성향과 능력이 과연 있겠는가 하는 점에 있다. 과연 복제 인간이 어느 정도로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만한 주체가 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복제 자체에 있어서 그리고 복제 인간을 복제된 자로 키우는 사실 자체에서 복제를 시행한 인간이 복제된 아이의 독립을 박탈한다. 이 독립은 그 아이가 한 인간의 인위적 기획에 의해 고안된 결과물이 아니라 세상에 나온 예상치 못한 놀라움, 하나의 산물이라는 사실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57-58쪽

그러나 복제의 경우에 있어서는 오직 하나의 '부모'만이 있을 뿐이다. "편부모 가정의 아이"가 처한 일반적인 슬픈 상황이 이 경우에는 고의적으로 그리고 악의를 가지고 계획된 것이다. 자기 복제의 경우 "후손"은 또한 자신의 쌍둥이다. 그래서 결국 근친상간의 무서운 결과가, 즉 자신의 형제의 부모가 되는 사태가 실제로 전혀 성교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모든 인척 관계 또한 복잡해진다. 아버지, 할아버지, 아줌마, 조카, 누이 등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누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아버지나 어머니의 한쪽 가계가 필연적으로 배제된 한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은 어떤 것인가?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하고 있는 이혼, 재혼, 양자, 미혼모 등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로 인해 집단 혈통이 어지럽혀지고 친척 관계와 아이(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변명이 될 수는 없다. 물론 누군가가 이런 현상이 어린아이에게 더 나은 상황을 마련해 준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61-62쪽

낳는 것(출산)은 만드는 것(제조)과 어떻게 다른가? 자연적인 생식에서 인간 존재는 우리와 같은 다른 인간 존재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상호 보완적인 남자와 여자로서 결합한다. 즉 살아가고, 그래서 소멸하고, 그래서 열정적으로 성애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복제를 통한 생식의 경우 그리고 이 복제에서 발전된 좀더 세련된 형태의 생식의 경우에는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의도와 계획에 따라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이 만드는 모든 물건들과 마찬가지 그것이 아무리 뛰어난 물건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이 주인이 된다. 제작자는 동등한 위치가 아니라 군림하는 자로서 자신의 의지와 창조적 솜씨로 인해 그 제품을 능가한다. 동물을 복제한 과학자는 자신의 도구 제작에 관여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동물은 처음부터 이성적인 인간의 목적에 수단으로 사용되도록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인간 복제의 경우에는 과학자들과 장래의 "부모들"이 동물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기술 관료적 심리 상태를 인간 아이에게도 적용한다. 인간의 아이들 역시 그들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62-63쪽

마지막으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일 것인데, 세포핵 이식을 통한 인간 복제의 관행 - 예상되는 모든 다른 미래 세대의 유전 공학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 은 아이를 가지는 일과 부모 자식 관계의 의미에 대해 심각하고도 해로운 오해를 야기하고 악화시킨다. 부부가 아이를 낳고자 결심하는 것은 새로운 신생아의 출현을 긍정하는 것인데, 이것은 단순히 아이를 가지는 것뿐 아니라 암묵적으로는 그 아이가 어떤 아이든지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우리를 대체하는 존재를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암암리에 우리의 통제 영역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자연에서는 흔히 통하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즉 생식을 통해 미래를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 생명과 인간 종의 불멸에 일정 부분 참여하는 행위를 통해 바로 우리의 통제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63-64쪽

복제의 옹호자들은 복제의 불법적인 사용과 구분되는 합법적인 사용이 있다고 믿고자 한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 내세우는 원칙 때문에 그러한 경계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그런 경계를 강제로 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복제 옹호자들이 이해한 생식의 자유는 (아이에게 육체적 손상을 가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한) 예비 부모들의 주관적 소원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아이 없는 부부들이 감상적인 호소를 하는 경우와 유명하고 재능 있는 사람 - 그들이 살았건 죽었건 간에 - 을 복제하고 싶어하는 (혼인여부와 무관한) 개인의 경우는 구분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들이 내세우는 원칙들은 복제 뿐 아니라 사실상 "완전한" 아기를 창조(제조)하려는 미래의 모든 인위적인 시도들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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