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양동근을 믿고 봤지만 좀 어설프고 많이 부족한 영화. 자본의 힘의 부족 때문인가. 한맥영화사라는 처음 듣는 영화사와 이항배 신인 감독, CF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화로는 신인이라 볼 수 있는 김성수와 윤지민. 양동근 이라는 걸출한 배우를 제외하고는 뭐 하나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영화였다. 물론 영화와 관련된 모든 프로필이 딸린다고 영화도 딸리는 건 아니지만 - 이건 <웰컴 투 동막골>을 통해 검증 - 이 영화의 어설픔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단지 감독의 자질 문제라고 본다면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모든 요인들이 복잡적으로 얽혀 지금의 어설픔을 창조(?)해냈다는 생각.

  대한민국 국민에게서 조금씩의 돈을 인출해 거대한 펀드를 조성한다는 프로젝트. 1% 비밀클럽의 짱인 존은 계획적으로 카이스트 출신의 손재주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호에게 접근해 그를 유혹하고 자신에게 매료되도록 만든다. 다 있지만 마지막 작업 각 은행의 계좌에 연결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존은 경호가 이 일의 적임자라 판단했던 것이다. 값비싼 액션 피규어를 모아 대화하며 하루를 보내는 순박하고 순진한 청년 경호는 존에 대한 믿음 하나로 그의 프로젝트에 가담하고, 결국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듯 존은 경호를 배신한다. 경호와 존을 따라다니는 여인 앨리만이 경찰에 넘겨지고... 




  영화 <모노폴리>의 존, 경호, 앨리에 적합한 캐릭터는 일단 잘 선택한 듯 하다. 김성수는 꽤나 귀티났으며 냉혹하기도 신비스럽기도 했다. 자신의 카리스마로 상대를 제압하고 매료시키는 그는 결국 자신이 계획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천재이지만 유약하고 순수한 어리버리 경호를 연기한 양동근도 제격. 시시껄렁하지만 쥐뿔 아무 것도 없고 인생 포기한 사람인양 살아가는 이미지만으로 양동근을 기억하기엔 그의 재능은 너무나 아깝다. 기존의 이미지에서 약간 벗어난 듯한, 하지만 그러면서도 기존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경호는 그에게 딱이다. 하지만 캐릭터가 양동근의 능력을 제한시킨 듯 하다는 생각도 든다. 양동근은 그이상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팜프파탈적 이미지를 내뿜는 앨리. 전혀 알 수 없는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여인 앨리. 존을 따르지만 경호에게 '그를 믿지 말라'는 메세지를 보내는 앨리. 그녀는 과연 누구. 이 영화에서의 수영복 씬은 영화 개봉전 그녀를 검색어 1위에 오르게 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폼잡다가 지나치게 뭔가 있어보이려다 영화 자체가 존재의 이유를 상실해버린 영화가 아닐까 싶다. 1% 클럽의 부유함을 통해 이들의 프로젝트의 거대함을 보여주려했던 감독의 의도는 그것 말고 영화를 뒷받침해주는 뭔가를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무너져버렸다. 앨리와 경호가 존을 옹호하는 이유도, 존이 이같은 범죄를 계획한 이유도 보이지 않는다. 범죄만 있고 목적이 없다. 영화는 반전을 꿈꾸지만 반전은 그다지 설득력있지도 현실감있지도 않다. 영화는 허무감을 안겨준 채 관객을 떠난다.



* 인터넷 화제의 사진. 유감없이 착한 몸매를 보여준 윤지민. 슈퍼모델 출신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연 2006-06-0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어째 윤지민의 몸매가 가장 눈에 띈다는...ㅜㅜ;;

마늘빵 2006-06-0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영화를 봐도 그래요. 윤지민 몸매에 눈이 많이 간다는. ^^

비연 2006-06-0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님, 언제 이렇게 영화를 많이 보시는 검까? 부럽슴다...흑~
(극장 가서 영화 본 지 한달도 넘은 비연...ㅠㅠ)

마늘빵 2006-06-0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새 제가 미쳤나봐요. 5월달 극장에서만 본 영화만 8편입니다. 9편인가. 음.

가넷 2006-06-04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매가 너무 멋지네요... 흠.^^

마늘빵 2006-06-04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좀더 크게 올릴걸 그랬나? 난 큰 사진 가지구 있는데.
 



* 스포일러 경고

  포세이돈. 삼지창을 들고 있는 그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이며, 제우스와 하데스의 형제. 제우스, 하데스, 포에이돈이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그는 바다의 왕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 '포세이돈'은 거대한 호화 유람선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 유람선을 덮쳐버린 파도를 지칭할 수도 있다. 개봉 전부터 예고편을 통해 오래전 본 <타이타닉>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 나로서는 그다지 기대를 가지고 볼 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지금, 기대를 가질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재난영화에 있어서는 또 하나의 작품을 건졌다는 생각이다. <타이타닉>이 장장 세시간 반에 걸쳐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재현과 로맨틱 스토리, 그리고 어마어마한 볼거리를 선사했다면, <포세이돈>은 한 시간 반에 걸쳐 깔끔하게 꼭 보여주어야 할 부분만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포세이돈>엔 '재난' 그것 외에 다른 부분은 없다. 허무하고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깔끔해서 더 좋다.  



* 화이브, 포, 쓰리, 투, 원, 제로! 해피 뉴 이어!! 폭죽과 풍선의 향연은 여기서 끝.



 * 바로 이어지는 태평양 저 편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 달빛 아래 바다는 노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새해. 그들은 거대한 호화 유람선 포세이돈 안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지만 어느 순간 태평양 저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거대한 파도 속에 배는 기우뚱. 결국 한바퀴 회전하여 거꾸로 뒤집히는 상황을 맞이한다. 해피 뉴 이어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대신 공포와 죽음을 선사했다. 이 배는 거꾸로 뒤집혔더라도 안전하다는 누군가의 말은 그의 '진심'이었을지 모르나 '사실'은 아니었다.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뒤집힌 선체의 꼭대기로 향하는 반항아들(?)은 그들의 목숨을 보전할 기회는 갖게 되었다. 소방관 출신 전 뉴욕시장이었던 로버트, 그리고 그의 아리따운 딸 제니퍼, 그녀의 애인, 한 여자와 그녀의 아이, 프로도박사 딜런, 할아버지, 뉴욕에 가기 위해 몰래 탑승한 한 여인. 정말 다양한 연령과 이력과 성격을 가진 이들의 목표는 뒤집힌 배의 꼭대로 올라가 프로펠러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것.



* 생존을 위한 투쟁. 나이가 많고 적고, 돈이 많고 적고, 여자고 남자고, 이기적이건 이타적이건 상관없이 지금 당장 살아야한다는 생각만이 그들의 머리와 가슴을 지배하고 있다.


  타이타닉 처럼 차라리 배가 쪼개졌다면 바다로 뛰어들기 위해 그냥 뛰어내리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배가 뒤집힌 탓에 어디로든 나가는 것이 생존목표가 되었다.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들의 최고의 목표는 생존이겠지만, 이를 위해 일단 배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구출되고 말고는 그 다음 문제다. 쉽지 않다. 배의 꼭대기로 향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헤엄쳐 물을 건너 불길 피해 가스 피해 낭떠러지 피해, 바다 한 가운데에서 재난을 당했다고 하나 물만이 문제는 아니다. 물은 그들이 마주쳐야 할 공포 중 한가지일 뿐이었다. 나의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여야만 했던 그들, 모두 다 살기 위해 한번 할 거 두번 해야 했던 이들, 결국 도착지에 이른 이들은 출발지에 모였던 이들보다 둘이 부족했다. 하지만 대단한 성공이었다.

  정말 대단한 볼거리를 선사해준 영화였다. 볼프강 페터슨의 전작 <트로이>나 <퍼펙트 스톰>에서 보여주었던 스펙터클함과 세밀한 묘사는 여기에서도 빛났다. 그는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물'에서 떠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81년 <특전 U보트>와 2000년 <퍼펙트 스톰>에 이어 물을 다룬 영화로는 세번째 작품인 셈이다. 물이 주는 공포와 엄습감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목표는 <포세이돈>을 통해 달성되었다고 봐야겠다. 또 주목해서 볼 인물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얼마전 <드리머>를 통해 본 다정다감한 아버지 커트러셀, 영화에서 스스로 소방관 출신이라고 말하는 그는 불을 다룬 또다른 재난 영화 <분노의 역류>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의 인상에서 느껴지는 푸근함과 인간미는 역시 이 영화에서도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한명 더. 에미 로섬. 그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만 얼굴이 익숙했다는 것 밖에. 역시나 또다른 재난 영화 <투머로우>의 로라였다.

  원작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새롭게 만든 이 영화는 원작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비교할 수 없지만, 어떤 이의 말에 따르면, '포세이돈'만 있고 '어드벤처'는 없다는 평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에 말했듯 어쩌면 '재난영화'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 <포세이돈>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단순한, 지극히 '재난'에 충실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이거에 저거붙이고, 저거에 이거붙이고 하며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 보다야 지금의 선택이 훨씬 낫다. 영화의 스펙터클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비디오 출시를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극장으로 향하는 편이 좋다.  

 

** 영화 보며 느낀 것 하나를 빼먹었다 싶었는데 야클님 덕에 기억났다.
    딸의 행동 하나하나에 간섭하는 아빠의 모습이 <아마게돈>의 블루스 윌리스와 넘 닮았다. 아빠도. 딸도.
    결국 <아마게돈>의 결말에 따라 아빠의 희생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되는 두 사람.
    이것이 바로 아빠의 사랑이란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연 2006-06-0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세이돈 어드벤쳐는 멋지기도 했지만, 재난 상황에서 빚어지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미세한 감정들을 잘 묘사하고 있었지요. 제가 진 해크먼 팬이라 더욱 좋아하는 영화이구요. 흠...이번 영화는 어떤가 모르겠네요. 원작도 보시라고 추천!

마늘빵 2006-06-04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전작 디비디로 출시된거 같던데, 전 아직 원작을 못봐서 이 영화와 뭐라 비교하질 못하겠어요. 이 영화는 그보다는 재난에 맞서는 몸부림에 촛점을 맞춘 듯 합니다. 거기에서 보여지는 스펙터클한 장면들의 연출에.

책방마니아 2006-06-04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 포세이돈이 리메이크 영화였군. 어쩐지 오래 전에 비슷한 영화를 본 것 같더니마는 ...

마늘빵 2006-06-0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은 언제적 건지 모르겠네. 아직 거기까지 뒷조사는 못들어갔음.

마태우스 2006-06-05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감사합니다. 신속하게 영화 정보를 주셔서요. 제가 님의 글은 100% 신뢰하지 않습니까.^^

마늘빵 2006-06-05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 제가 좀 영화개봉한지 얼마 안되서 금방 보기는 하죠? ^^ 극장서 영화보기를 넘 좋아해요. 전 집에서 비디오로 보는 건 별로에요. 극장서 보자면 돈이 좀 많이 들긴 하지만요. 지난달에 영화비로 넘 많이 써서 보더라도 좀 서둘러 조조로 봐야겠어요.
 
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따뜻하고 넉넉한 글이었다. 비록 내 나이 얼마 먹지 않아 이 책에 등장하는 그런 가옥들에 산 경험은 없다만 어릴 적 내가 살던 그 막다른 골목의 셋방집. 방 두칸에 부엌도 없고, 화장실은 밖에 마당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 곳을 다녀야만 했던 그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지금도 우리집은 극빈층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화장실은 집안에 있지 않은가.

 어떤 분은 책 제목에 저자의 이름이 들어간 책은 오로지 책 하나만으로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저자의 유명세를 빌려 팔아보려는 속셈이라고 하나, 또 나 역시 이에 일부 공감하나, 이 책에 저자의 이름이 들어간 것을 두고 이에 적용시키기는 어렵다. 저자는 이름 내세운다고 아무나 다 아는 그런 유명인물도 아니니 말이다. 이지누. 그는 사진 작가이자 기록문학가이다. 길 위에서 직접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며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여 글로 써낸다.  <이지누의 집 이야기>는 이런 그의 오랜 노력과 작업의 성과이다. 

  그는 집을 해부하고 곳곳에 대해 경험하고 보고 느낀 바를 서술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집의 개념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집이란 건물 그 자체만이 아닌 건물이 속해 있는 마을 입구부터 시작된다. 맨처음으로 골목이 나오는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집이 위치해있는, 우리가 어릴적 노닐었던 그 골목도 우리의 집이다. 그는 골목이야기, 대문이야기, 울타리이야기, 변소이야기, 마당이야기, 지붕이야기, 우물이야기, 부엌이야기, 마루이야기,  창문이야기, 구들이야기, 방이야기 순으로 집에 대해 말한다. 목차에서 볼 수 있듯 우리가 집을 떠올리고 해부할 때의 그런 개념이 아니다. 마당, 울타리, 대문, 지붕, 우물 등 집이라고 했을 때 쉽게 떠오르지 않는, 우리의 상상 속에서 소외된 부분들에 대해 다룬다. 집은 우리가 먹고 자는 그 공간만을 가르키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고, 자신이 본 것을 떠올리고, 좋은 옛 글귀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머리 속에서 집을 찾아간다. 그 따뜻하고 푸근했던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는 비록 허름하고 불편했지만 정겨웠던 우리의 옛 집과 오늘날의 콘크리트 건물 아파트 빌라를 비교하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집은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다. 집에는 철학이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집이란 목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 탓인지 집은 주인의 생각을 빼다 박은 닮은 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서로 서걱대지 않고 물 흐르듯이 집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P7)

 "요즈음에는 공동주택 중에서도 원룸이라는 주거형태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곳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한다. 이는 공간을 지배하지 못하고 공간에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주어지지 않던 혼자만의 공간을 다스릴 힘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외로워지는 것이다.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꿋꿋하게 견디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과거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사고방식과 조금씩 달라졌음을 고백하곤 한다. 사는 공간이 달라진다는 것은 사고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P49)

  사람이 공간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살아야 하는데, 오늘날엔 집의 구조에 의해, 집의 공간에 의해 사람이 다스림을 받는다는 그의 말은 매우 가깝게 다가왔다. 사람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생각이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태어나 자라는 그 환경에 의해 지배를 받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요즈음의 집들은 독립된 공간으로 이루어져있고, 사람들과의 왕래가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칸칸 구획이 나누어져있지 않고 부엌과 거실, 마루가 함께, 때로는 방도 함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독립되어있지만, 안에서는 뭉뚱그려져있는 것이다. 이는 타인에 대한 내 마음을 닫아버리는 결과와 함께 내 안의 편리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상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내가 사는 집은 나를 지배한다.

  <이지누의 집 이야기>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옛 집의 구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부터, 자신의 경험, 그리고 오늘날의 집과 옛 집의 비교, 또 집에 들어있는 철학에 이르기까지. 집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많은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해준다. 이 글을 읽고 난 뒤에는 내가 사는 집이 그저 먹고 자는 공간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어도 읽어도 실망시키지 않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모든 작품이 다 비슷비슷한 감성을 전달해주고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아직 읽지 않은 새로운 작품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펼쳐져있을까 궁금하게 만든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에는 중독성이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어거지'와 '인내'가 필요했지만,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한권을 읽고 나면 다른 한권에 또 손이 간다. 아주 자연스럽게도. 그것이 요시모토 바나나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엔 <티티새>다. 소설 속에서 '티티새'는 '츠구미'를 의미한다. 개똥지빠귀라고 하며 또 백개의 혀를 가지고 수다를 떤다하여 백설조(百舌鳥)라고도 한다. 개똥지빠귀는 참새목 딱새과의 한 종류로서 시베리아 북부지역의 평지나 산지 숲에서 서식하는 새이다. 한국에서는 10월에 찾아와 겨울을 난다. 먹이로서는 식물의 열매를 따다먹으며 벌레도 먹는다. 티티새의 특징으로 봤을 때 사람에 비유하자면 수다스러운 사람을 말할 듯 한데, 소설 속의 츠구미와 어떻게 연관시켜할지는 잘 모르겠다. 츠구미는 말이 많은 아이도 아니도 단지 좀 삐딱하고 엉뚱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아이였으니까.



  <티티새>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초기작이다. 89년도 작품으로 처음으로 쓴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그녀의 책을접할 때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목록을 보며 각각 다른 이야기일까, 아니면 이어진 한편의 이야기지만 제목을 나눠놓을 것일까 하는 부분이다. 이번에도 다른 이야기이겠지 하고 읽어나갔지만 앞의 이야기와 뒤의 이야기는 같은 선에 연결되어 있었다. 줄거리가 하나인 것과 별도로 하나건 두개건 상관없이 그녀의 소설은 책으로 엮여진 작품 하나에서 하나의 주제를 뽑아낼 수 있다. 대개는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보듬음을 담고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츠구미라는 조금은 유별나고 자기밖에 모르는 또 때로는 엉뚱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의 삶에 관한. 또 사랑에 관한. 그녀는 자기 밖에 모르는 병든 아이다.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며, 관심도 없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의 그런 까칠한 행동들은 타인을 사랑하기 위한 자기 자신만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억울한 것에 분노하고 처절하게(?) 복수하는 그녀를 통해 섬뜩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법이다. 나 여기있어.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그녀는 확실하게 주변인들에게 자신을 인지시킨다. 나의 존재를. 그런 츠구미가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들, 그리고 그녀가 남긴 편지들. 그녀는 분명 그들을 사랑했다.

  '도깨비 우편함'에서부터 '츠구미에게서 온 편지'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매우 잘 짜여져있다. 각각의 장들이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연결되는 잘 쓰여진 작품이다. 읽는 내내 요시모토 바나나의 치유를 받으며, 감성을 울리고, 푸근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녀의 소설은 늘 편안하다. 부담없고 담담하다. 특별히 무엇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냥 책을 집어들고 읽고 덮는다. 다시 또 그녀의 책을 들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처음과 같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레져 2006-05-31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속의 새가 티티새?
친절하셔라~ ㅊㅊ!

마늘빵 2006-05-31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쟤가 티티새래요. 표지에 드러난 얼굴이랑 똑같아요.
 
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장바구니담기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서, 서로에게 끌린 나름의 확실한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외모가 비슷하다든가, 생활태도나 옷을 입는 취향 등이 비슷하다든가, 겉 보기에는 조화롭지 못한 커플이라도 오래 함께 하다보면 '음, 사귈 만해.' 하고 수긍이 가는 부분이 생기는 법이다. 그러나 내가 그날, 츠구미와 쿄이치에게서 순간적으로 감지한 것은 보다 한결 강한 것이었다. 그렇다. 아까 그 츠구미란 이름을 말했을 때, 내 안에서 그와 츠구미가 완전히 하나로 포개져서 빛났다.-97쪽

"사랑이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빠져있는 거야. 나이가 몇이든. 그러나. 끝이 보이는 사랑하고 끝이 안보이는 사랑은 전혀 다르지. 그건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 수 있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즉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야. 지금 우리 마누라를 처음 알았을 때, 갑자기 내 미래가 무한해지는 듯한 느낌이었어. 그러니까, 꼭 합치지 않아도 상관없었을지도 모르지."-121-122쪽

"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저 말이죠. 지금까지는, 뭐가 어떻게 되든, 그러니까 상대바에 눈앞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도, 아무리 좋아하는 남자가 손을 잡게 해달라느니 만지게 해달라느니 해도,뭐랄까...... 강 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이었어요. 강 건너에 불이 났는데, 이쪽 어두운 강가에서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언제 불이 꺼질지 뻔히 보이니까, 졸리고 따분했거든요. 그런건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니까요. 사람들은 연애에서 뭘 추구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이 나이에."

"그야 그렇지. 사람이란, 자기가 준 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는 법이니까."-12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