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청아출판사 / 2000년 7월
구판절판


"사형을 언도받은 죄수가 형 집행 바로 직전에 어쩌면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집행유예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집행유예의 환상 중)-31쪽

"강제수용소에서 살았던 우리들은 막사 앞을 지나가던 죄수가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던진다든가,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빵조각까지도 주고 가던 광경을 아직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한 가지 만족할만한 확증을 제시하고 있다. 즉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주어진 어떠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자기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112쪽

"모든 개인을 구별하고 개인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특이성과 유일성은 인간에게 베푸는 사랑 못지 않게 창조적인 작용을 나타내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책임과 계속 살아 남아야 할 책임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한 사람이 그를 지극한 애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인간에게나 완성되지 않은 작업에 대해 지고 있는 책임감을 의식하게 된다면 그는 결코 자기의 삶을 내던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는 그가 실존해야 할 '이유'를 알고 있으며, 어떠한 곤경에도 참고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134쪽

"모든 일이 꿈속에서 느끼는 것처럼 실제 같지도 않고 비슷하지도 않게 보인다. 우리는 자유가 진실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흘러간 몇 년간 우리들은 꿈속에서 얼마나 자주 속아왔던가!(비인격화 현상)" -148쪽

"정신분석에서 인간이 본능적인 것에 관하여 의식하게 되는 반면에 실존분석이나 로고데라피에서는 인간이 그 어떤 심령적인 것, 혹은 실존적인 것을 의식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적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영성, 혹은 실존의 관점에서만 책임지는 존재라는 말로 묘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237쪽

"나는 인간적이 된다는 것은 실존적으로 그 자신의 실존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240쪽

각주에서...
프리드리히 폰 쉴러
"영혼은 이야기를 하는 그 즉시 이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혼일 수는 없다."-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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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학교 서열화 현상.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서열화에 대해서 무심했다. 대학에 입학하고도 그저 해방감을 만끽하며 즐거운 일년을 보냈다. 대학 2학년, 3학년, 4학년 그리고 졸업. 졸업을 앞두고, 졸업을 하고서 대학서열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누가 너는 어떠니, 쟤는 어떠니 이런식으로 말한건 아니지만 사실 취직을 하는데 있어서 대학 네임밸류는 대단히 크게 작용한다.

정부에서는 서열화를 없애기 위해 학력란 폐지를 하네 어쩌네 말하지만 사실 서열화는 없어진 것처럼 보일뿐 없어지지 않았다. 조금도 죽지 않았다.

서열화가 나쁜가? 그래 이름있는 명문대학 간 사람들이 아무래도 서열상 그 밑에 있는 대학에 간 사람들보다는 꾸준히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 생각된다. 물론 가정형편에 따라 얼마전 신문에 났듯 손자 대학보내라고 과외비로 천만원씩 던져주는 집들도 허다할 것이다. 상류층에서는. 또 그정도까지는 안되더라도 고액과외와 각종 학원비, 유학비를 대가며 교육시키는 집들도 허다할 것이다. 돈없어 사교육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돈있는 집 자식이 공부를 잘한 건 돈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꾸준히 공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열화는 정당한가? 또 그렇지는 않다. 대학의 서열화는 오로지 수능점수에 의한 것이다. 얘는 수능 몇점이고, 쟤는 수능 몇점이니까 쟤가 얘보다 10문제 더 맞았어. 이런 기준으로 서열화를 하는 것이다. 웃긴 이야기다. 몇문제 더 맞고 덜 맞고로 대학졸업후까지 그 사람의 가치가 평가된다는 것은.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쳐주는 학벌은 학부시절의 학벌이라는 것이다. 대학원을 소위 이름있는 명문대학 나온다해도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가령 예를 들어서 이름없는 지방 사립대 학부를 나온 사람이 서울대 대학원을 들어간다고 해도 서울대  학부를 나온 사람보다 서열면에서는 떨어질 것이다.  대학원은 수능이 아니라 영어 혹은 전공시험으로 판정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수능점수와 영어 혹은 전공시험점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모르겠다. 왜 수능점수를 더 중요시하고 전공시험점수와 영어시험성적을 그보다 덜 중요시하는지는. 하긴 영어도 안되는 나는 이름있는 명문대 대학원을 다니고는 있지만 평가기준으로 따진다면  수능점수도 떨어지고 영어도 안되는 하지만 전공시험은 아는 것도 없이 운좋게 합격한 케이스가 된다. 최악의 케이스.

단한번의(어떤이들에겐 단한번이 아니라 재수, 삼수를 통해 단 두번, 단 세번이 될 수도 있겠다) 수능점수가 평생을 따라가는 이런 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또 해봤다.

만약 각 대학들이 한 가지 전공면에서는 각자 최고의 학과를 지니고 있다면, 그렇다면 학교네임밸류의 서열화가 아니라 과별로 분류된 학교네임밸류가 형성된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이것도 서열화는 서열화다. 단지 통합적인 대학 학부별 네임밸류가 아니라 과별 네임밸류라는 점에서 다르다. 흠... 생각끝에 이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더라도 서열화는 서열화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있어서 서열화는 학부의 서열화보다 느슨하다. 그런데 좋은 대학원을 나왔는데 왜 나를 대접해주지 않느냐는 외침은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좋은 대학원을 나오고도 '특별히' 대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나는 학부는 서울 중위권(수능점수에 따라-얘도 웃긴 기준이다. 수능점수에 따라 서울 상위권, 서울 중위권, 서울 하위권, 경기권, 지방권 이런식으로 분류하는건 참으로 웃기다)을 나오고 대학원을 명문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특별하게 대접받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물론 마음 깊은 곳에 그런 심정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한다. 그럼 다른 대학원보다 100만원이상을 더 주고 이 대학원을 다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명문 대학원 나왔다고 특출나게 대접받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소원한다. 물론 물론 대학원은 별로 인정해주지도 않지만 말이다.

학부에 있어서 서열화의 엄격함이 대학원에 있어서 서열화의 느슨함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점차 느슨하게 느슨하게 이동하면서 차이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추가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프랑스에서 바칼로레아 시험을 여러번에 나눠보는 걸로 정부방침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프랑스 고교생들이 안된다며 길거리로 나섰다. 프랑스 고교생들의 정책에 대한 이해와 참여, 행동력은 높이 살 만한데 나는 이게 더 좋다고 본다. 프랑스 정부의 편이라는 이야기다.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험을 나눠서보면 단박에 결정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은가. 또 학생 개인도 꾸준히 공부할 수 있지 않은가. 어떤 프랑스 고교생은 돈없는 고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시험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시험을 여러번 보면 돈벌 시간이 없다고 한다. 흠...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다. 부유층 자녀는 마음놓고 공부하고, 극빈층 자녀는 돈벌며 공부하면 아무래도 여러번 시험을 볼 경우 꾸준하게 공부만 한 아이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한번에 결정되는 것보다는 여러번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싶다. 여러번의 시험을 전부 반영하지 않고 그중 좋은 성적을 골라서 반영하게 하면 돈없는 고학생들은 한번의 시험만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평소 돈벌다가 자신이 시험시기를 정해놓고 그때에 맞춰 공부하면... 우리도 그렇게 하면 안되나? 나눠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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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9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우주 2005-03-0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열화에 대해 부정적이시면서도, 대학원을 '명문'이라고 표현하시는 건 어색하네요. ^^ 그리고, 수능 성적이 오래 가는 건, 중고 시절 내내 공부했던 결과이기 때문이겠지요? 소위 sky에 다니는 애들과 많이 놀아봤는데(^^) 역시나 그 친구들 똑똑하긴 하더군요. 전 따라가지 못할 무언가가 있긴 해요. 물론, 서열화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왜 그런 친구들을 더 선호하는지는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배도 아프지만. ^^;
대학원은 대학에 비해 느슨하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도 솔직히 교육대학원에 대해서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거든요. 아프락사스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요.

연우주 2005-03-0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원론적으로 아프락사스님의 서열화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해요. 그런데, 학벌 = 취업이 연결되어 있는 한 어려울 것 같아요.

릴케 현상 2005-03-0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홍세화님의 따님이 서울대 다닌다는 게 생각나네요

마늘빵 2005-03-0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님 / 제가 다니는 대학원을 '명문'이라고 표기한 것은 제 의견이 아니고 그냥 일반적으로 그렇게 지칭하기 때문에 붙인 것이랍니다. 전 제가 다니는 대학원을 명문이라고 규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설대, 연대, 고대 애들이 '대체로'똑똑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들만 '특별히' 똑똑한건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똑똑한 애들이 다른대학에 비해 조금 더 많을 뿐이죠. 전 서울대나 고대다니는 애들중에서 생각없고 개념없는 애들 많이 봤답니다. 물론 좋은 애들이 더 많지만.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똑똑이가 70%인 것을 100%로 취급하고, 똑똑이가 30%라도 존재하는 것을 0%로 취급하는 극단화의 논리가 심하다고 봐요. 서열화의 무서움은 거기에 있죠. 다른 대학에도 똑똑이가 있는데 이들을 무시하는거죠. 간판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우주 2005-03-10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하다는 기준, 참 모호하죠? 때론 말이죠.
쨌든 전반적으로 아프락사스님의 서열화가 없어져야 한다 라는 말에 공감이 가요. 우리 사회의 오랜 모순이잖아요. 다들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잘 모르는거구요. 어려운 문제지요.

마늘빵 2005-03-10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그런면에서 철학자 김상봉의 학벌반대모임은 의미있는 활동이죠. <학벌사회>라는 두꺼운 책을 샀는데 아직 못봤네요. 이걸 보면 그의 나름의 해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법은 계속 고민중...

릴케 현상 2005-03-10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들레라는 출판사에서 나오는 류의 책들도 함 보심이^^'학교를 넘어서' 같은 책들은 이제 학교 없는 사회를 제안하고 있더군요.

마늘빵 2005-03-1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 추천. 저 책 다 보고 나면 봐야겠어요.

2005-03-10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5-03-10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0%의 똑똑한 명문대생에 대해서 저는 좀 비관하는 편이에요^^ 대부분 겉똑똑이거든요. 이런 사람들과 중요한 일을 하면 낭패보기 쉽죠. 언젠가 아웃사이더가 망하는 거 보면서도 그런 생각 좀 했어요 대한민국에서 젤 똑똑하다는 위인들이 하는 게 저정도라고...(어떤 사람들은 사업은 그 사람들 전공이 아니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거기서 단순 필자일 뿐이었다면 아웃사이더는 우리가 아는 아웃사이더가 아니었지 싶어요)

마늘빵 2005-03-1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명한 산책님/ 책 주신다면야 감사히 읽겠습니다. ^^; 저도 그들 70% 마저도 의심스럽습니다. 70%라는건 다수를 나타내는 임의의 숫자이긴 하지만요.
 

 

 

 


 

 얼떨결에 '추천리뷰쓰기' 이벤트에 당첨되어 시사회를 가게 되었다. 오랫만에 당첨된 시사회! 주기적으로 자주 신청을 하는데도 시사회 당첨되기는 매우 힘들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미국의 현대작가 F X 툴의 단편소설 ‘불타는 로프’를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보잘 것 없는 곳에서 찾아낸 값진 물건'이라는 뜻이다.

 영화는 소재면에서 복싱영화이면서 30살이 넘은 늦은 나이에 복싱에 입문한 한 여자의 삶을 다루고 있다. 돈없고 정많은 늙은 복싱 트레이너 프랭키를 찾아와 무턱대고 복싱을 가르쳐달라는 여자. 프랭키는 여자는 안키운다지만 결국은 그녀를 받아들이게 된다. 장장 8년간 키워놓은 남자 복싱 선수가 그를 배신하고 다른 매니저에게 가버린 지라 프랭키는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속은 곯아있다. 하지만 그녀는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배신하지 않는다.

 복싱에 입문한지 1년 반만에 타이틀 전에 도전하는 그녀. 정말 대단한 열정과 지독한 연습으로 단기간에 최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상대선수의 반칙으로 반신불수가 되어버린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숨도 제대로 못쉬는 그녀는 오히려 프랭키를 걱정하고 있으니...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프랭키의 도움을 받아 안락사를 택함으로써 짧았지만 굵게 살았던 그녀의 인생을 마감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그녀를 지칭한다. 보잘 것 없는 시골촌뜨기에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손님들이 남긴 음식이나 싸다가 집에 가서 몰래 먹고 돈을 모아 펀치볼을 사는 그녀는 프랭키를 통해 값진 물건으로 탄생한다.

 프랭키가 그녀에게 붙인 별명 게일어 '모쿠슈라'는 '나의 소중한 혈육'이라는 의미다. 그녀는 끝내 죽는 순간 이 말을 듣게 되지만 이 별명은 프랭키의 그녀에 대한 사랑을 함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둘은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 이상이었다.

 이 감동적인 영화가 실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봤다. 만약 실화였다면 좀더 감동이 깊고 진실하게 다가왔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실화라면 실화의 주인공이 된 그녀가 너무도 가엽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미있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그것도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안락사를 택하는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까. 오히려 실화가 아닌 것이 다행이다.

 이 영화는 2005년 아카데미에서 7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각종 협회에서 받은 상만 해도 엄청나다. 보고 후회하지 않을 영화다. 여배우인 힐러리 스웽크는 <소년은 울지 않는다>라는 영화 이후로는 아마도 처음 인 듯 싶다. 클린튼 이스트우드의 제작, 감독, 주연, 음악 등 이 영화 전체에 발휘된 그의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영화판에 오래 있으면 이렇게 다분야에 재능을 보일 수 있는것인가?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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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3-08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봤었는데요. 클린튼 이스트우드 정말 연기 잘하지 않았나요? 저는 이번 아카데미에서 이배우가 남우주연 탈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못타서 의외였어요. 처음엔 약간 지루했는데, 뒤로 가면서 감동적이어서 울먹이면서 봤던 영화였어요.

LAYLA 2005-03-08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에요, 누구랑 간거에요? 정말 남자랑 같이 가신거에요?^^

마늘빵 2005-03-08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rky 님/ 저도 그에게 반했어요. 여배우도 잘하긴 했지만 클린튼 이스트우드가 정말 잘했어요. 사실 눈물을 쥐어짜낸 영화는 아니었지만 감동.

라일라님/ ^^ 남자는 아니구 그냥 종로 인근 직장에서 일하는 밴드 키보드치는 동생 불러다 봤어요. 밥사라고 하고서. 흐흐. 피자헛 먹었슴다. 비싼데...

줄리 2005-03-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여배우 제가 좋아하는 배우예요. 소년은 울지 않는다 에서 여우 주연상을 타더니 이번에두 탔네요. 아카데미상을 두번이나 탔으니 오래 살겠네요. 그녀의 진짜 삶도 아주 감동적이더군요. 희망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쯤으로 말할수 있는 그런 삶이더라구요. 저 근데 이 영화 아직 안봤어요. 곧 봐야지요...

2005-03-08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극단의 형벌 - 사형의 비인간성에 대한 인간적 성찰
스콧 터로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극단의 형벌'은 곧 '사형제'를 의미한다. 사형은 법정에서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형벌이고, 이는 죄인의 죽음을 의미한다. 죄인을 죽이는 형벌 이상의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죄인을 죽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가 만기출소 한 뒤에 나와 동일 범죄를 다시 저지르는 상황을 사전에 막기 위함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와 같이 앞으로 일어날 범죄를 미리 예견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에겐 그런것은 영화 속에나 볼 수 있는 것일 뿐이다. 또 설령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또 그것이 정확한 예견이라 하더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범죄에 대해 형벌을 미리 부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형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한다. 또한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다만 국가별로 사형제를 실시하는 곳이 다수를 차지하느냐, 소수를 차지하느냐 하는 비율이 달라질 뿐이다. 인간 세상에서 사형제가 아주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그저 희망이지 싶다. 마치 성매매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성매매 특별법을 시행한다 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만, 성매매가 사라졌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좀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을 뿐.

 <극단의 형벌>은 스탠퍼드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뒤 연방검사로 지내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스텃 터로의 책이다. 그는 이미 문학전공자 답게(?) 탁월한 글빨을 자랑하며 6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내놓았다고 한다. 변호사에 베스트셀러 소설가에 사형위원회에도 소속되어있다? 대단한 경력과 재능이다. 어느 한 가지만이라도 잘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걸 실감하고 있는 요즘 그는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거 같다.

 <극단의 형벌>은 그가 속해있는 사형위원회의 성과를 집필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그 혼자지만 내용은 그만의 것은 아니다. 그들 모두의 것을 그가 종합했을 뿐.

 2002년 일리노이 주지사 조지 라이언이 14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사형 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무고한 사형수 4명을 석방하고 167명의 사형수를 감형했다. 정말 대단하다. 주지사라는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해선 미국사회에서 사형제를 옹호하는 것이 훨씬 이득일텐데 그는 정말이지 대단한 일을 벌였다. 지금은 어찌되었는지 궁금하다. 저런 개혁을 단행하고도 정치적으로 현재 살아있을까?

 이 책은 위원회의 구성과 진행, 결과에 대해 순서대로 서술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사형제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사형제에 대한 담론의 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좀더 이론적이고 사형제 그 자체에 대한 논의를 기대했는데 이 책은 사례들로 가득하다. 사례가 객관적인 자료로서 기능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담론이 빠져있어 많이 아쉽다. 물론 책에 대한 기대는 독자인 나만의 것인지라 단지 '사형위원회'의 조직과 진행, 결과만을 다룬 그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형제에 대해 관심을 좀더 증폭해준 것만으로 이 책에 대해 만족을 표해야겠다.

 추가발언
 책 앞부분에 있는 소크라테스의 죽음, 잔 다르크의 순교, 루이 16세의 처형, 막시밀리언의 죽음 등의 사진과 간단한 코멘는 인상적이었다. 각각의 죽음에 대한 역사 전반적인 지식욕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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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5-0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사형국가들에 관한 도표 같은 통계자료들도 있나요?

마늘빵 2005-05-03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 도표나 통계는 없고요. 글쓴이가 말을 하면서 중간중간 수치를 이야기하긴 합니다. 정확한 자료를 원하신다면 이 책은 아닙니다. ^^

릴케 현상 2005-05-03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도서관 가서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쩝 안 가도 되겠군요...도표같은 건 어디서 구하나...
 
극단의 형벌 - 사형의 비인간성에 대한 인간적 성찰
스콧 터로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4년 7월
절판


"우리가 사형논쟁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런 질문들의 본질적인 성격 때문이다. 자신이 사형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옹호자이든 반대자이든, 또는 그 중간에서 갈등을 겪는 사람이든 모두 이 문제에서 한 나라의 정신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응ㄹ 보고 있다.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확신 때문에 사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형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야만인이나 방종한 죄인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사형 지지자들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동정을 과장하는 사람들이거나 위선자라고 생각하며,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된다면 분명히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67쪽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무고한 사람을 처형하는 일은 당연히 끔찍하게 여길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런 처형에 대해 말로는 완전히 표현하기 힘든 특별한 공포를 느낀다. 물론 무고한 사람을 평생 감옥에 가두어두는 것도 인권을 능욕하는 무시무시한 짓이다. 그러나 확실한 근거 없는 처형은 분명히 그보다 더 나쁘다. 법원이 종종 간결하게 표현하듯이, "사형은 다르다". 한 가지 이유는 죄수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희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형수 감옥에 있다가 퍼먼 판결로 목숨을 구했던 사람들 가운데 넷이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는 더 큰 이유는 무고한 사람을 처형함으로써 정의가 거꾸로 서고, 법을 문명의 힘이 아니라 야만의 힘으로 만든다는 것이다."-93쪽

"모든 사형 집행은 정의로워야 한다. 만일 무고한 사람이나 그럴 만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처형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도덕적 균형 감각이나 사형이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훼손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법 제도는 틀림없이 정확해야 한다. 이 제도는 극한의 악이 무엇인지에 대한 섬세하게 조율된 감각에 따라 운영되어야 하며, 그런 악을 저지른 자가 누구인지 오류 없이 밝혀 내야 한다."

-134쪽

" '극한의 악'을 처벌한다는 상징적인 문제를 고려할 때, 재활이나 속죄는 계산의 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피고가 지배적인 도덕의 요구를 인정하게 되면 그런 가치들을 재확인하기 위해 벌을 줄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단 그 길로 접어든다 해도, 누가 속죄를 할지, 언제 할지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사형 집행은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없애 버린다는 것이다."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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