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학교 서열화 현상.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서열화에 대해서 무심했다. 대학에 입학하고도 그저 해방감을 만끽하며 즐거운 일년을 보냈다. 대학 2학년, 3학년, 4학년 그리고 졸업. 졸업을 앞두고, 졸업을 하고서 대학서열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누가 너는 어떠니, 쟤는 어떠니 이런식으로 말한건 아니지만 사실 취직을 하는데 있어서 대학 네임밸류는 대단히 크게 작용한다.
정부에서는 서열화를 없애기 위해 학력란 폐지를 하네 어쩌네 말하지만 사실 서열화는 없어진 것처럼 보일뿐 없어지지 않았다. 조금도 죽지 않았다.
서열화가 나쁜가? 그래 이름있는 명문대학 간 사람들이 아무래도 서열상 그 밑에 있는 대학에 간 사람들보다는 꾸준히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 생각된다. 물론 가정형편에 따라 얼마전 신문에 났듯 손자 대학보내라고 과외비로 천만원씩 던져주는 집들도 허다할 것이다. 상류층에서는. 또 그정도까지는 안되더라도 고액과외와 각종 학원비, 유학비를 대가며 교육시키는 집들도 허다할 것이다. 돈없어 사교육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돈있는 집 자식이 공부를 잘한 건 돈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꾸준히 공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열화는 정당한가? 또 그렇지는 않다. 대학의 서열화는 오로지 수능점수에 의한 것이다. 얘는 수능 몇점이고, 쟤는 수능 몇점이니까 쟤가 얘보다 10문제 더 맞았어. 이런 기준으로 서열화를 하는 것이다. 웃긴 이야기다. 몇문제 더 맞고 덜 맞고로 대학졸업후까지 그 사람의 가치가 평가된다는 것은.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쳐주는 학벌은 학부시절의 학벌이라는 것이다. 대학원을 소위 이름있는 명문대학 나온다해도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가령 예를 들어서 이름없는 지방 사립대 학부를 나온 사람이 서울대 대학원을 들어간다고 해도 서울대 학부를 나온 사람보다 서열면에서는 떨어질 것이다. 대학원은 수능이 아니라 영어 혹은 전공시험으로 판정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수능점수와 영어 혹은 전공시험점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모르겠다. 왜 수능점수를 더 중요시하고 전공시험점수와 영어시험성적을 그보다 덜 중요시하는지는. 하긴 영어도 안되는 나는 이름있는 명문대 대학원을 다니고는 있지만 평가기준으로 따진다면 수능점수도 떨어지고 영어도 안되는 하지만 전공시험은 아는 것도 없이 운좋게 합격한 케이스가 된다. 최악의 케이스.
단한번의(어떤이들에겐 단한번이 아니라 재수, 삼수를 통해 단 두번, 단 세번이 될 수도 있겠다) 수능점수가 평생을 따라가는 이런 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또 해봤다.
만약 각 대학들이 한 가지 전공면에서는 각자 최고의 학과를 지니고 있다면, 그렇다면 학교네임밸류의 서열화가 아니라 과별로 분류된 학교네임밸류가 형성된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이것도 서열화는 서열화다. 단지 통합적인 대학 학부별 네임밸류가 아니라 과별 네임밸류라는 점에서 다르다. 흠... 생각끝에 이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더라도 서열화는 서열화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있어서 서열화는 학부의 서열화보다 느슨하다. 그런데 좋은 대학원을 나왔는데 왜 나를 대접해주지 않느냐는 외침은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좋은 대학원을 나오고도 '특별히' 대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나는 학부는 서울 중위권(수능점수에 따라-얘도 웃긴 기준이다. 수능점수에 따라 서울 상위권, 서울 중위권, 서울 하위권, 경기권, 지방권 이런식으로 분류하는건 참으로 웃기다)을 나오고 대학원을 명문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특별하게 대접받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물론 마음 깊은 곳에 그런 심정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한다. 그럼 다른 대학원보다 100만원이상을 더 주고 이 대학원을 다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명문 대학원 나왔다고 특출나게 대접받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소원한다. 물론 물론 대학원은 별로 인정해주지도 않지만 말이다.
학부에 있어서 서열화의 엄격함이 대학원에 있어서 서열화의 느슨함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점차 느슨하게 느슨하게 이동하면서 차이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추가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프랑스에서 바칼로레아 시험을 여러번에 나눠보는 걸로 정부방침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프랑스 고교생들이 안된다며 길거리로 나섰다. 프랑스 고교생들의 정책에 대한 이해와 참여, 행동력은 높이 살 만한데 나는 이게 더 좋다고 본다. 프랑스 정부의 편이라는 이야기다.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험을 나눠서보면 단박에 결정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은가. 또 학생 개인도 꾸준히 공부할 수 있지 않은가. 어떤 프랑스 고교생은 돈없는 고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시험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시험을 여러번 보면 돈벌 시간이 없다고 한다. 흠...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다. 부유층 자녀는 마음놓고 공부하고, 극빈층 자녀는 돈벌며 공부하면 아무래도 여러번 시험을 볼 경우 꾸준하게 공부만 한 아이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한번에 결정되는 것보다는 여러번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싶다. 여러번의 시험을 전부 반영하지 않고 그중 좋은 성적을 골라서 반영하게 하면 돈없는 고학생들은 한번의 시험만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평소 돈벌다가 자신이 시험시기를 정해놓고 그때에 맞춰 공부하면... 우리도 그렇게 하면 안되나? 나눠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