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제 무엇이 문제인가 - 인간 복제의 윤리학
스티븐 제이 굴드 외 지음, 그레고리 E. 펜스 엮음, 박찬구 외 옮김 / 울력 / 2002년 2월
품절


우리가 인간 복제의 전망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것은, 이러한 일의 생경함과 진기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즉각적으로 아무런 논증 없이 알고 느끼는 것으로서, 우리가 정당하고 친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혐오감은, 지나친 인간의 작위에 대한 반감이며, 말할 수 없이 심오한 것들을 범하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사실상,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우리의 타고난 본성은 더 이상 존경받지 못하고 우리의 몸 또한 우리의 자율적, 이성적 의지의 단순한 도구로 여겨지는 이 시대에, 혐오감은 우리 인간성의 핵심을 보호하기 위해 외치도록 남겨진 유일한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전율을 잊어버린 영혼은 경박하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47쪽

무성 생식은 자기 보존 활동의 지속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유기체가 두 개로 자라거나 분화되기 시작하면 원래의 것은 (이중으로) 보존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 이에 비해 성은 소멸을 의미하며, 대체에 이바지한다. 하나를 낳기 위해 모인 둘은 곧 죽게 된다. 성적 욕망은 인간에게든 동물에게든 자기 보존적인 개체에게 부분적으로는 감추어져 있고 궁극적으로는 모순이 되는 목적을 위한 것이다. 인식하든 않든 간에 성행위를 하면서 우리는 성기를 우리 자신의 소멸을 위해 사용한다. 알을 낳고 죽기 위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는 보편적인 진리를 이야기해준다. 즉 성은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생식에 부분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55쪽

아이의 동의를 상정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에 관한 반대 의견은 복제 인간이 나중에 질문을 받을 때 결국 복제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화를 낼 것이라는 명백하고도 충분한 점을 간과하기까지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익과 손해가 아니라 적절한 (비록 시간적으로 지난 것이라 하여도) 동의를 하는데 필요한 독립성, 즉 단지 선택할 자유만이 아니라 자유롭고 바르게 선택할 성향과 능력이 과연 있겠는가 하는 점에 있다. 과연 복제 인간이 어느 정도로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만한 주체가 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복제 자체에 있어서 그리고 복제 인간을 복제된 자로 키우는 사실 자체에서 복제를 시행한 인간이 복제된 아이의 독립을 박탈한다. 이 독립은 그 아이가 한 인간의 인위적 기획에 의해 고안된 결과물이 아니라 세상에 나온 예상치 못한 놀라움, 하나의 산물이라는 사실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57-58쪽

그러나 복제의 경우에 있어서는 오직 하나의 '부모'만이 있을 뿐이다. "편부모 가정의 아이"가 처한 일반적인 슬픈 상황이 이 경우에는 고의적으로 그리고 악의를 가지고 계획된 것이다. 자기 복제의 경우 "후손"은 또한 자신의 쌍둥이다. 그래서 결국 근친상간의 무서운 결과가, 즉 자신의 형제의 부모가 되는 사태가 실제로 전혀 성교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모든 인척 관계 또한 복잡해진다. 아버지, 할아버지, 아줌마, 조카, 누이 등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누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아버지나 어머니의 한쪽 가계가 필연적으로 배제된 한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은 어떤 것인가?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하고 있는 이혼, 재혼, 양자, 미혼모 등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로 인해 집단 혈통이 어지럽혀지고 친척 관계와 아이(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변명이 될 수는 없다. 물론 누군가가 이런 현상이 어린아이에게 더 나은 상황을 마련해 준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61-62쪽

낳는 것(출산)은 만드는 것(제조)과 어떻게 다른가? 자연적인 생식에서 인간 존재는 우리와 같은 다른 인간 존재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상호 보완적인 남자와 여자로서 결합한다. 즉 살아가고, 그래서 소멸하고, 그래서 열정적으로 성애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복제를 통한 생식의 경우 그리고 이 복제에서 발전된 좀더 세련된 형태의 생식의 경우에는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의도와 계획에 따라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이 만드는 모든 물건들과 마찬가지 그것이 아무리 뛰어난 물건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이 주인이 된다. 제작자는 동등한 위치가 아니라 군림하는 자로서 자신의 의지와 창조적 솜씨로 인해 그 제품을 능가한다. 동물을 복제한 과학자는 자신의 도구 제작에 관여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동물은 처음부터 이성적인 인간의 목적에 수단으로 사용되도록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인간 복제의 경우에는 과학자들과 장래의 "부모들"이 동물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기술 관료적 심리 상태를 인간 아이에게도 적용한다. 인간의 아이들 역시 그들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62-63쪽

마지막으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일 것인데, 세포핵 이식을 통한 인간 복제의 관행 - 예상되는 모든 다른 미래 세대의 유전 공학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 은 아이를 가지는 일과 부모 자식 관계의 의미에 대해 심각하고도 해로운 오해를 야기하고 악화시킨다. 부부가 아이를 낳고자 결심하는 것은 새로운 신생아의 출현을 긍정하는 것인데, 이것은 단순히 아이를 가지는 것뿐 아니라 암묵적으로는 그 아이가 어떤 아이든지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우리를 대체하는 존재를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암암리에 우리의 통제 영역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자연에서는 흔히 통하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즉 생식을 통해 미래를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 생명과 인간 종의 불멸에 일정 부분 참여하는 행위를 통해 바로 우리의 통제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63-64쪽

복제의 옹호자들은 복제의 불법적인 사용과 구분되는 합법적인 사용이 있다고 믿고자 한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 내세우는 원칙 때문에 그러한 경계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그런 경계를 강제로 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복제 옹호자들이 이해한 생식의 자유는 (아이에게 육체적 손상을 가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한) 예비 부모들의 주관적 소원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아이 없는 부부들이 감상적인 호소를 하는 경우와 유명하고 재능 있는 사람 - 그들이 살았건 죽었건 간에 - 을 복제하고 싶어하는 (혼인여부와 무관한) 개인의 경우는 구분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들이 내세우는 원칙들은 복제 뿐 아니라 사실상 "완전한" 아기를 창조(제조)하려는 미래의 모든 인위적인 시도들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 '혐오감의 지혜' 中)-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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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복제, 그 빛과 그림자
안종주 지음 / 궁리 / 2003년 1월
절판


복제 인간은 복제 세포를 제공한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자라는 환경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에게 인위적으로 원본 인간이 살아온 것과 비슷한 조건의 환경을 만들어준다 할지라도 그 원본 인간이 걸어온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복제 인간이 가진 습관이나 말투, 사고 방식 등은 원본 인간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그가 태어난 곳과 자란 곳, 다닌 학교, 가정, 국가, 그 사회와 문화, 과학 기술 문명 등 수많은 외부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제 인간은 원본 인간과 유전자가 같을 뿐 또 하나의 새로운, 완전한 인간인 셈이다. -42쪽

또 인간이 복제 인간을 만들어 자신이 해야 할일을 그에게 맡기고 자신은 편하게 살아갈 때, 반대로 복제 인간은 열심히 일해 문화를 개척하고 인간의 생활을 향상시켰을 때, 복제 인간들이 건설한 문화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리고 인간이 단순히 쾌락과 편리함만 추구하는 몸뚱이로 전락된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아마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영화를 본 뒤 품은 상상인 것 같은데 복제 인간과 보통 인간은 단지 생식 세포의 결합으로 태어났느냐 체세포의 복제로 태어났느냐의 차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태어난 복제 인간에게 애초부터 복제 인간이란 표시를 하지 않는 이상 그가 복제 인간이란 사실조차 알 수 없다. 그의 세포를 떼어내 게놈 전체를 샅샅이 조사한다 하더라도 보통 인간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막연한 불안, 비과학적 사고 방식이 빚어낸, 과잉 염려증에 지나지 않는다. -44-45쪽

1995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설치된 미국의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NBAC)는 동물 복제 연구를 하는 이유로, 1) 연구 목적에 쓰일, 유전적으로 동일한 동물 집단을 만들기 위해, 2) 원하는 가축을 빨리 키우기 위해, 3) 형질 전환한 가축의 발생률과 증식률을 높이기 위해, 4) 가축의 유전자를 바꾸기 위해, 5) 세포 분화에 관한 기초 지식을 얻기 위해서라고 꼽았다. -79-80쪽

선스타인은 인간 복제를 금지하는 것은 미국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내릴 경우, 아이를 가질 것인지 가지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프라이버시권의 본질적 부분이라는 논거를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개인의 자유나 권리도 정부가 제한해야 할 극히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으나, 복제는 그렇게 제한할 타당한 이유가 못된다는 것이다. -198-199쪽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의 복제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이는 인간을 세상에 출생시키는 고귀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녀는 자신들의 진정한 부모를 가질 권리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의 결혼을 통한 사랑의 열매로 인정받아야 한다. 자녀는 우리의 설계에 따라서 제작할 수 있는 산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특정하게 요구되는 특성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의 교묘한 의도의 복사물로 태어나서는 안 된다.

(미 가톨릭교회 생명인권위원회의 견해) -218쪽

생명복제는 근본적으로 다르마를 파괴하는 일일 수 있다. 그것은 육상(六相)의 틀 속에 있는 변이가 아니라 인위적인 조작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야기되는 문제는 이 질서 파괴에 다른 업보이다. 이미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은 과학 뿐만 아니라 철학, 종교의 중심 테마가 되고 있지만 생명 복제에 따른 파장은 엄청난 후유증을 잉태할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심각한 양상들은 삼독이 낳은 인과응보이다. 그러나 생명 복제의 과보가 안고 있는 문제는 보다 가혹하다고 본다. 더구나 특수한 목적에 악용될 경우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그 개발은 중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병조 동국대 부총장 '불교 윤리와 생명 복제' 中)-225쪽

언젠가 우리들은 뛰어난 소질을 가진 선량한 시민의 제일의 의무는 자기 자신의 혈연을 후세에 남기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나아가서 바람직하지 않은 소질을 가진 사람들의 존속을 허용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최대의 과제는,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가치가 덜한 사람들 또는 해가 되는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아지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유전의 거대한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한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소질이 뒤진 사람들이 자손을 전혀 남기지 않도록 배려되기를 절실히 원하는 바이다. 특히 사악한 본성을 가진 경우에는 절대로 자손을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범죄인은 단종(斷種)해야 하고 정신박약아에 대해서는 자손을 남기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26대 前 美 대통령, 1913년 발언)-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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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는 정말로 비윤리적인가? 민음 바칼로레아 1
로렝 드고 지음, 김성희 옮김, 최재천 감수 / 민음인 / 2006년 1월
구판절판


1997년 유네스코 186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발표한 '인간유전체와 인권에 관한 일반 선언'은 제11조에서 "인간 존엄성에 반하는 행위, 즉 인간 복제 따위는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같은 해 유럽 평의회 41개 회원국은 "유전자에 근거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고 연구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배아의 복제를 금지"하는 '유럽 생명 윤리 협약'을 채택했으며, 2001년 이를 다시 보완하여 "살아 있는(또는 죽은) 인간 생명체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인간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만들려는 모든 시도"를 금지하는 '인간 복제 금지에 관한 추가 의정서'를 채택했다. -11쪽

독일은 인간 배아에 대한 모든 종류의 실험을 금지한 반면, 영국은 인간 배아에 대한 각종 실험을 허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분야를 연구하라고 학자들을 격려까지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복제를 무조건 반대하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치료 목적의 복제 연구는 찬성하는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의견대립을 보인 적도 있다.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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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 - 지적 열정을 추구한 나의 삶, 나의 길
박이문 지음 / 미다스북스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박이문. 이름 세 자를 하얀백지에 써놓고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박이문의 책을 두번째 읽는데 그를 직접 만나보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글에서 그 사람의 냄새가 느껴진다. 박이문의 냄새는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다. 신체는 이미 많이 늙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고 언제나 사색을 끊지 않는다. 인생의 끝에 거의 다다랐지만 아직까지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으며, 그간 낸 수많은 저서들은 모두 그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기'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왔다고. 이 책 역시 2005년의 박이문이 작성한 자서전이다.

  "나는 이미 약 20년 전에 <사물의 언어 - 실존적 자서전> 이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새삼 이러한 자서전적 책자를 또 내는 데에는 그후 나의 외부에서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의 삶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생의 황혼을 피부로 실감하면서 나의 삶을 마지막으로 총정리할 실존적 요청을 실감하게 되었고, 덧붙혀 이러한 나의 초상화가 혹시 다른 이들, 특히 젊은이들의 삶에도 참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사 그것이 반면교사로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이러한 자기반성을 통해서나마 앞으로 내게 남아 있는 삶을 조금이나마 더 보람 있게 살아보자는데 있다."

  이런 겸손한 노 철학자가 있나. 사실 박이문은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했고, 이후에 불문학 석박사를 취득하고,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박이문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교수자리로 충분치 않았고,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느즈막한 나이에 대학생이 된다. 미국의 남가주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석박사를 취득해, 그곳에서 또 25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가 불문학을 공부한 이유는 문학을 하기 위함이었고, 그것은 시였다. 박이문의 시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 아마도 내가 시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읽어볼일이 없을 듯 하다 - 그의 시도 그의 다른 글과 마찬가지로 자전적 성격을 띠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러나 박이문은 시를 쓰면서 관심은 철학에 있었다. 불문학과 시가 해결해주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의문과 자기자신에 대한 고민을 철학이 해결해 줄 수 있을거라 믿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미국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프랑스 철학에 심취했고, 여기서 해결되지 않는 갈증을 미국에서 해결해보려 했으나 오히려 실망만이 돌아왔다. 하지만 곧 실망은 기대로 바뀌었고, 열심히 사색을 이어갔다.

  그는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고, 시를 쓰고, 철학을 한다. 오랜 세월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이문에게 있어 갈증은 아직 남아있는 듯 하다. 자서전 성격을 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바는, 박이문이 아직도 고민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갈증을 풀어줄 뭔가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의 갈증은 죽음의 문턱에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공부를 할수록, 고민을 거듭할수록, 물음을 던질수록, 아는 것은 점점 줄어들 것이고 알고픈 것은 점점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목마름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직업으로부터, 철학으로부터, 모든 물질적, 사회적, 관념적 속박과 구소으로부터는 물론 애착으로부터도 해방되어 자유분방하면서 충만한 생명체로서 흰 구름처럼, 끊임없이 떠도는 바람처럼 존재하고 싶다. 철학적 사유처럼 투명하고, 예술작품처럼 아름답고, 종교적 삶처럼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 싶다'로 끝맺는다. 뭐 그리 하고픈 것이, 되고픈 것이 많을까. 1930년 출생인 박이문의 나이 올해 일흔여덟이다.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되돌아볼 시기에 그는 아직도 이팔청춘마냥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그 꿈은 헛되지 않다. 꿈이 있다는건, 꿈을 가진다는건, 삶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이제 늙었으니 집에서 소일하며 책이나 보고 손자손녀나 봐야지,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달리 그는 아직도 꿈을 가지고, 꿈을  실현하려 한다. 부럽다. 그의 인생이. 그의 열정이. 그의 삶이. 내 나이의 두 배가 훨씬 넘는 그를 보면서 열정이 식어버린 나를 반성하고, 나를 채찍질한다. 고작 그 정도였더냐 너의 질문과 너의 고민은 이제 해결되었더냐. 미궁에 빠진 채 나오려 발버둥치지 않고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살아가려 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대의 내가 '우울한 허무주의자'였고, 30-40대의 내가 '철학적  허무주의자'였다면 오늘의 나를 나 스스로 '행복한 허무주의자'라고 자처하게 되었다. 나는 일상생활을 해 가는 과정에서 그 자체로서 무한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지만, 내 인생 자체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 그리고 모든 존재와 현상들이 그 자체를 초월한 어떤 우주적 목적 즉 의미, 더 나아가서 우주 자체를 떠난 우주의 목적 즉 의미의 존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구약의 전도서가 되풀이 말해주듯이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생각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이문은 허무주의자다. 그의 생각을 읽고 있노라면 허무주의자도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눈은 저 멀리 나아가 있다. 보이지 않는 끝없는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모든 것이 허망하고 허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20대의 우울한 허무주의자는 아니다. 그의 20대가 우울했던건 그만큼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혼란을 겪었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지금 그는 여전히 허무주의자이지만 적어도 행복하다. 여전히 고민은 남아있지만 그 허무함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애써 그 허전함을 메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철학자라 칭하고 싶다. 그는 불문학자로 시작해 시인을 거쳐 철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땄다는 의미에서 철학자가 아니라, 끊임없는 고민과 사색을 거듭하며 나의 인생을 채워나갔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고 싶다. 프랑스 문학도, 시도, 철학도, 박이문의 허무를 채워주지는 못했지만, 지나온 삶의 과정 자체가 그의 허무를 채워나가는 과정이었다. 철학계에 있어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도 못했고, 이후 세월이 한참 지난 후 '한국의 철학자 ' 에 그의 이름은 포함되지 않겠지만, 그는 진정 철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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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7-05-2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손한 노학자는 저의 로망 중 하나예요. 어떡하죠. 나, 이번 달엔 책 안 사려고 했는데. 했는데. 했는데.... ㅠ_ㅠ

마늘빵 2007-05-2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했는데.. 했는데... 지르셔야죠. :)

비로그인 2007-05-2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중학이후, 평생토록 사숙하고 존경하는 '한국의 철학자'입니다.

 
인간복제의 시대가 온다 살림지식총서 183
김홍재 지음 / 살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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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잉여 배아나 유산된 태아 외에도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제3의 방법이 있다. '인간 배아복제'로 체세포의 핵을 미리 핵을 제거한 난자와 융합시키는 체세포 복제 기술로 만든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이다.
인간 배아복제를 하면 복제 배아를 다량으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복제 배아에서 얻을 수 있는 줄기세포의 양도 엄청나게 많아지게 된다. 반면 냉동 배아나 유산된 태아의 경우에는 수가 한정되기 때문에 치료용으로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또 인간 배아복제에는 기존의 배아 줄기세포가 갖고 있는 면역 문제가 전혀 없다. 기존의 냉동 배아에서 추출하는 줄기세포는 만능 세포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세포에서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킨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백혈병 환자가 면역거부반응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가족이나 형제를 찾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간 배아 복제를 사용하면 이런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 치료할 환자의 체세포로 복제 배아를 만들면 원본인 환자와 똑같은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추출한 배아 줄기세포를 사용하면 그 환자를 치료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 배아복제 역시 윤리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40-41쪽

일란성 쌍둥이는 수정란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나뉘어져 두명으로 자란 것이기 때문에 유전정보가 완전히 똑같다. 개체의 발달을 총 지휘하는 유전정보가 같아도 쌍둥이가 완전히 똑같지 않은 이유는 밑바탕이 같아도 유전정보가 발현되는 과정에서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유전정보의 발현 양상은 자라면서 접하는 주변 환경에 의해 많이 결정된다고 한다.
복제인간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유전정보가 똑같다고 하더라도, 복제인간과 원본인 인간과의 차이는 일란성 쌍둥이보다 당연히 더 클 수 밖에 없다. 일란성 쌍둥이와 달리 복제인간은 몇 살이든 나이가 든 사람을 복제한 것이므로 나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는 복제인간을 일란성 쌍둥이보다 더욱 다른 환경에서 자라게 한다. -54쪽

인간복제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를 키우기를 원하기 때문에 입양은 그렇게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자유를 엄연히 보장해줘야 한다면, 그 선택이 다른 사람이나 사회 전체의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간복제는 당연히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63쪽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윤리적인 이유는 복제기술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는 존엄성을 간직한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복제인간은 불임 부부가 됐든 동성애자가 됐든 다른 사람의 특정한 요구에 의해 태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제인간은 '고귀한 생명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다. -72-73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제된 아이의 성과를 별개로 보지 않고 원본과 함께 놓고 볼 가능성이 크다. 복제로 태어난 아이가 밤을 새가면서 열심히 공부해 반에서 1등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뛰어난 원본이 존재하면 복제인간이 거둔 성과는 그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유전자의 덕 때문이라고 폄하될 수 밖에 없다. 즉, 독립적인 별개의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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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22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인간 복제'라는 말만 보면...17살 때, 등 떠밀려 썼던 허접한 논술이 생각납니다.
'인간 복제의 찬.반론에 대하여'라는 주제를 가지고 절충형을 썼었는데.
등 떠밀려 쓰다 보니, '주관'이 맥주 김 빠진 듯 써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정말 성의없게 썼는데도 작은 상이라도 받은 것이 참 부끄러운 과거입니다...(긁적)
하지만, 지금도 다시 쓰라 하면, 여전히 저는 절충형 논술을 쓸 것입니다.
분명, 그 '장.단점'을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인간이 '지나침의 선'을 넘을까, 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관건.

마늘빵 2007-05-22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이건 자랑댓글인데요? ㅎㅎ
절충형 논술은 위험하죠. 잘못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이 절충형인데 저는 가급적 한쪽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안되는건 아니지만 대개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식이 되기 때문에.

비로그인 2007-05-22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까. '절충형'에 대한 인식이 다소 다른군요, 저와.
저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식'의 절충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줏대 없잖아요.
제가 말한 절충형은 찬.반론의 양측 입장을 모두 표현한 것을 말합니다.
어찌 보면 어느 쪽의 입장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양쪽 모두를 비판함과 동시에 -
양쪽 모두를 밀어주는 형식이랄까요. 사실, 다른 모든 분야에는 거의 한쪽의 주관을
강하게 밀고 나가는 스타일입니다만, '인간 복제'라는 주제에 한해서는 -
그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으며,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으니까요.

객관적인 입장을 표현하는 것도 학생들의 '주관'이 될 수 있으므로 -
아프님의 사견대로 어느 한 쪽을 택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머리가 굳어지면서 스스로 판단 기준을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도록 유도해야지,
어른이 개입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웃음)

혹시, 제 반론에 기분 상하신건 아니시죠? 솔직히, 아프님이니까 이런 논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웃음)

마늘빵 2007-05-22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핫. 아니요. 저는 한쪽으로 밀으라고 하는게 아니라, 음. 뭐랄까. 양시양비를 하게 되면 애매모호하고 주관이 없어보일 수 있으니깐 자신이 없다면 한쪽 입장을 취하는게 낫다라고 하는거죠. :) 물론 하고픈 사람들은 주관이 있다면 뭘하든 상관없다고 이야기합니다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더군요. 확고한 생각이 없으면서 애매모호하게 쓰는 경향이 있어서 경계심을 주기 위해 그리 말한거랍니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


비로그인 2007-05-22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음 - 그렇군요.
하긴, 아프님이 생각없이 그리 할 분이 아니시지. (웃음)
제가 경솔했습니다. (꾸벅)

마늘빵 2007-05-22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없이 그리 할 분입니다. 크흣. :)

비로그인 2007-05-23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하핫.

302moon 2007-05-23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분,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엄청 웃었습니다. / 이 책도 리스트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늘빵 2007-05-23 2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02moon 님 / 아니 이 은밀한(?) 대화를 보셨군요. :) 요즘 인간복제 관련 책들을 보고 있는데, 음 이 책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양쪽 모두를 소개한 종합적인 책입니다. 살림총서라 얇지만 정리는 잘 되어있는듯. 다만. -_- 황우석 박사 이야기가. 음. '거짓말 들통' 이전에 시간이 멈춰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