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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 - 지적 열정을 추구한 나의 삶, 나의 길
박이문 지음 / 미다스북스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박이문. 이름 세 자를 하얀백지에 써놓고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박이문의 책을 두번째 읽는데 그를 직접 만나보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글에서 그 사람의 냄새가 느껴진다. 박이문의 냄새는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다. 신체는 이미 많이 늙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고 언제나 사색을 끊지 않는다. 인생의 끝에 거의 다다랐지만 아직까지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으며, 그간 낸 수많은 저서들은 모두 그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기'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왔다고. 이 책 역시 2005년의 박이문이 작성한 자서전이다.
"나는 이미 약 20년 전에 <사물의 언어 - 실존적 자서전> 이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새삼 이러한 자서전적 책자를 또 내는 데에는 그후 나의 외부에서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의 삶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생의 황혼을 피부로 실감하면서 나의 삶을 마지막으로 총정리할 실존적 요청을 실감하게 되었고, 덧붙혀 이러한 나의 초상화가 혹시 다른 이들, 특히 젊은이들의 삶에도 참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사 그것이 반면교사로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이러한 자기반성을 통해서나마 앞으로 내게 남아 있는 삶을 조금이나마 더 보람 있게 살아보자는데 있다."
이런 겸손한 노 철학자가 있나. 사실 박이문은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했고, 이후에 불문학 석박사를 취득하고,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박이문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교수자리로 충분치 않았고,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느즈막한 나이에 대학생이 된다. 미국의 남가주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석박사를 취득해, 그곳에서 또 25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가 불문학을 공부한 이유는 문학을 하기 위함이었고, 그것은 시였다. 박이문의 시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 아마도 내가 시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읽어볼일이 없을 듯 하다 - 그의 시도 그의 다른 글과 마찬가지로 자전적 성격을 띠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러나 박이문은 시를 쓰면서 관심은 철학에 있었다. 불문학과 시가 해결해주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의문과 자기자신에 대한 고민을 철학이 해결해 줄 수 있을거라 믿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미국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프랑스 철학에 심취했고, 여기서 해결되지 않는 갈증을 미국에서 해결해보려 했으나 오히려 실망만이 돌아왔다. 하지만 곧 실망은 기대로 바뀌었고, 열심히 사색을 이어갔다.
그는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고, 시를 쓰고, 철학을 한다. 오랜 세월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이문에게 있어 갈증은 아직 남아있는 듯 하다. 자서전 성격을 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바는, 박이문이 아직도 고민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갈증을 풀어줄 뭔가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의 갈증은 죽음의 문턱에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공부를 할수록, 고민을 거듭할수록, 물음을 던질수록, 아는 것은 점점 줄어들 것이고 알고픈 것은 점점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목마름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직업으로부터, 철학으로부터, 모든 물질적, 사회적, 관념적 속박과 구소으로부터는 물론 애착으로부터도 해방되어 자유분방하면서 충만한 생명체로서 흰 구름처럼, 끊임없이 떠도는 바람처럼 존재하고 싶다. 철학적 사유처럼 투명하고, 예술작품처럼 아름답고, 종교적 삶처럼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 싶다'로 끝맺는다. 뭐 그리 하고픈 것이, 되고픈 것이 많을까. 1930년 출생인 박이문의 나이 올해 일흔여덟이다.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되돌아볼 시기에 그는 아직도 이팔청춘마냥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그 꿈은 헛되지 않다. 꿈이 있다는건, 꿈을 가진다는건, 삶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이제 늙었으니 집에서 소일하며 책이나 보고 손자손녀나 봐야지,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달리 그는 아직도 꿈을 가지고, 꿈을 실현하려 한다. 부럽다. 그의 인생이. 그의 열정이. 그의 삶이. 내 나이의 두 배가 훨씬 넘는 그를 보면서 열정이 식어버린 나를 반성하고, 나를 채찍질한다. 고작 그 정도였더냐 너의 질문과 너의 고민은 이제 해결되었더냐. 미궁에 빠진 채 나오려 발버둥치지 않고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살아가려 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대의 내가 '우울한 허무주의자'였고, 30-40대의 내가 '철학적 허무주의자'였다면 오늘의 나를 나 스스로 '행복한 허무주의자'라고 자처하게 되었다. 나는 일상생활을 해 가는 과정에서 그 자체로서 무한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지만, 내 인생 자체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 그리고 모든 존재와 현상들이 그 자체를 초월한 어떤 우주적 목적 즉 의미, 더 나아가서 우주 자체를 떠난 우주의 목적 즉 의미의 존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구약의 전도서가 되풀이 말해주듯이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생각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이문은 허무주의자다. 그의 생각을 읽고 있노라면 허무주의자도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눈은 저 멀리 나아가 있다. 보이지 않는 끝없는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모든 것이 허망하고 허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20대의 우울한 허무주의자는 아니다. 그의 20대가 우울했던건 그만큼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혼란을 겪었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지금 그는 여전히 허무주의자이지만 적어도 행복하다. 여전히 고민은 남아있지만 그 허무함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애써 그 허전함을 메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철학자라 칭하고 싶다. 그는 불문학자로 시작해 시인을 거쳐 철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땄다는 의미에서 철학자가 아니라, 끊임없는 고민과 사색을 거듭하며 나의 인생을 채워나갔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고 싶다. 프랑스 문학도, 시도, 철학도, 박이문의 허무를 채워주지는 못했지만, 지나온 삶의 과정 자체가 그의 허무를 채워나가는 과정이었다. 철학계에 있어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도 못했고, 이후 세월이 한참 지난 후 '한국의 철학자 ' 에 그의 이름은 포함되지 않겠지만, 그는 진정 철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