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위기의 시대를 돌파해온 한국인의 역동적 생활철학
탁석산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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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세계를 고찰하는 방식에 있어서 은밀하고 급작스러우며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어떤 단절이 반드시 필요하다."(강준만, <한국 생활문화 사전>)-28쪽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는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이주민의 성공적인 근대화 사례가 논쟁의 진전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즉 일본과 관계없이 근대화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면, 일본의 식민지배가 근대화에 끼친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를 도왔다든가 혹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 근대화의 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대중이 일본을 이용해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국인은 존재하였고, 일본의 지배조차 이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 한국인은 대중을 말한다. -32쪽

실용주의란 어느 시기에는 천해 보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가장 절실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것이 가장 유용한가를 찾아내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36쪽

한국은 종교, 이데올로기, 전통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실용주의를 택하게 되었고, 실용주의는 그 시대에 필요한 것들 중 최우선하는 것을 택하는 특성이 있다. 민주주의도 곁에 있었으나 생활에 밀려 있었다. 하지만 대중은 생활을 어느정도 해결한 뒤에는 민주화를 택했다. -39-40쪽

(불교가)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해 답을 하지 않는 것은 현재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라는 뜻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해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라면, 지금 눈으로 보는 세계가 전부라고 믿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59쪽

한국의 불교는 전래 당시부터 이미 말법시대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즉 깨달음의 종교에서 이미 믿음의 종교로 바뀐 것이다. 이 점은 미륵반가유상으로 대표되는 불교 유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륵은 미래불로서 현재 고통의 구제를 주임무로 한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수행을 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저 세계마저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고, 세상을 구제해줄 미래불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는 종교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해탈이 아니라 현재의 고난을 피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현세주의의 모습이다. -59-60쪽

한국에서 기독교문화는 기본적으로 예수를 거쳐 하느님이 신자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불교에서 아미타불을 거쳐 부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구조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기독교 역시 스스로를 수양하거나 선행을 하는 것보다는 예수를 믿는 일이 더 중요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천국에 갈 수는 없다. 에수를 통하거나 성당을 통하거나 중개자를 통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타력구제 신앙인 것이다. 한국에 기독교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불교와 기본적 구조가 다르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즉 믿는 대상이 부처에서 하느님으로, 아미타불에서 예수로 바뀌는 것뿐이다. -62-63쪽

인생주의는 이 모두가 아닌 인생 자체를 중시한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 만든 제도나 작품이 아닌 인생을 중시하는 것이다. 신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는 결코 인간중심 사회가 될 수 없고, 인간중심이 아니라면 인생주의도 생겨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라고 해서 인생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제도나 인간이 만든 작품에 삶 자체보다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문화는 자연이나 인간의 제도나 작품이 아닌 인생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인생주의다. -78쪽

휴머니즘이 신보다 사람이 중심이라는 뜻이라면, 인생주의는 사회적 제도나 법보다는 사람이 더 소중하며 사회적 성취나 성공보다는 삶의 쾌락이 더 귀중하다는 뜻이다. -82-83쪽

일본은 세상을 긍정으로 가득한 것으로 파악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는 엄밀성과 함께 긴장감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꼼꼼하고 빈틈이 없어 보이지만 정신적 긴장의 지속이라는 댓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인생은 원래 허무한 것이라는 믿음이 상존하기 때문에 정신적 긴장감은 훨씬 덜하다. 한잔 먹고 풀고, 한바탕 싸우고 풀고 하는 식이다. 즉 회복력이 빠른 편이다. -109쪽

"프래그머티즘은 '실용주의'로 번역되지만, 사실 그 사상은 우리말의 '실용주의'가 함축하고 있는 뉘앙스보다 훨씬 폭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래그머티즘이란 단순히 '실용성이 최고'라는 발상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용성뿐만 아니라 실천주의, 결과주의, 실험주의, 개방성, 진취성, 창의성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성격과 특징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프래그머티즘은 단지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의 타개를 위한 단순한 방책이나 기술이 아니라, 세계관과 가치관 및 방법론 등도 아울러 함축하고 있는 하나의 사조이다."(<프래그머티즘>, 김동식)-131-132쪽

진리나 정의도 좋음 앞에서는 순위가 밀리는 상황이므로 서양처럼 진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며 싸우는 일은 한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진리나 정의보다는 인생의 즐거움이 앞서기 때문에 인생의 즐거움에 좋은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139쪽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무슨 개념인지 알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는 사이비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말만 실용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무엇이 실용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효율이나 경제성이 높은 것을 실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천박한 실용주의로 불러도 되겠다. -149쪽

실용주의는 이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은 감각적 즐거움이 인생주의의 내용을 채우고 있지만 상황이 변한다면 사색의 즐거움이 이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생주의는 유지되겠지만 그 내용은 변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구의 뛰어난 효능 때문에 의도나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현세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에 좋은 것이 무엇이냐를 판단할 때 이 세상이 아니라 죽음 후의 세상을 진정한 세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결론을 내리면 현세주의가 사라질 수도 있다. 물론 허무주의도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허무주의가 현세주의와 인생주의의 보험 역할을 하고 있지만 현세주의가 무너지면 허무주의도 쇠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59쪽

인생주의가 추구하는 감각적 즐거움은 학교에서 가르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이성적인 인간이 되라고 가르쳤다. 누가 주도적으로 퍼뜨린 것은 아니지만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많이 배운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즐거운 인생을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전파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중략) 다시 말해서, 사람들 속에서 자발적으로 자라나서 오랜 시간 검증을 받았다는 것이다. 학교가 아닌 집에서, 시장거리에서, 사무실에서 인생주의는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정착한 것이다. 저잣거리에서 생겨나 자랐기에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나선 것도 아니고 고매한 학자들이 주창한 것도 아니며 외국에서 수입되어 일시적으로 유통된 것도 아니기에 그 생명력은 강하다. -173쪽

우리는 문화재와 문화를 혼동한다. 눈부신 문화재를 가진 국가가 훌륭한 문화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중략) 문화는 삶의 총체적 방식이고 물리적 대상들은 인간 마음속에서 개념들로 표상될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문화재는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인류 문화활동의 소산’이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보통은 현재의 것을 제외한 옛날 것에서 지정된다. 즉 문화재라는 것 자체가 정의상 현재의 삶의 방식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설사 포함되어 있다하더라도 문화재는 삶의 총체적 방식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첨성대는 문화재이지만 첨성대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문화이다. -238-239쪽

동일한 것이 문화에 따라 다른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문화가 단절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이다. 문화가 연속적으로 단절 없이 계승되고 전달된다면, 다시 말해서 삶의 총체적 방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동일한 물리적 대상은 동일한 의미를 확보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는 단절을 통해 진화한다. 따라서 동일한 대상이 상이한 문화 속에서 상이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문화재를 연결함으로써 문화를 구성하는 시도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39-240쪽

문화가 낱낱의 대상이 아니라 총체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한다면, 한국 문화를 논할 때 흔히 등장하는 원전중심주의도 비판되어야 한다. 즉 문화현상을 중요시하지 않고 원전을 가장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원전이 아니라 원전을 둘러싸고 어떤 현상이 있는가가 삶의 방식 그리고 당대의 문화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원전 콤플렉스라고 부를 수 있는데, 누가 원전을 정확히 해석했느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곤 한다. 그런데 문화는 심지어 오역에서도 비롯된다. 즉 오역을 했는데 오역이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문화에는 정오표가 없다. 그때그때의 현상이 바로 문화 자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는 흘러가는 물과 같은 것으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 -240-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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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조종법 - 정직한 사람들을 위한
로베르 뱅상 , 장 레옹 보부아 지음, 임희근 옮김 / 궁리 / 2008년 11월
품절


'자유롭다는 느낌'의 중요성이다. 상황에 의해 자신의 의사와는 다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들은, 그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다음 입장을 택함으로써 앞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중략) 그러나 이것은, 개인들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행동했고 그래서 스스로의 행동을 자유로이 결정했다고 느낄 때에만 해당하는 말이다.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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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 최신 연구로 확인하는 인간광우병의 실체와 운명
유수민 지음 / 지안 / 2008년 9월
절판


감염된 소가 '다우너'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뇌 및 척수 조직 전체에 변형 프라이온 단백질이 상당량 축적되었으며, 심한 경우 말초신경까지 타고 내려와 근육 일부에도 변형 프라이온 단백질이 검출되는 상태를 말한다. '다우너'가 되는 수많은 원인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광우병이라면 감염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크다.-192쪽

푸줏간에서 사용하는 칼로 고기를 발라내면 많은 양의 고기가 뼈에 남는다. 1950년대에는 수동식 기계를 사용합으로써 뼈에 남아 버리게 되는 고기의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1960년대에는 자동화기계를 이용해 발라내기 힘들거나 발라내봤자 경제적 이익이 적은 고기를 회수했다. 이렇게 얻어진 MRM은 고기파이, 소시지, 햄버거 패티 등 여러 가지 육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즉, 얇게 저미거나 다진 고기가 들어가는 음식이라면 어디든지 이용됐다. MRM의 대상이 되는 뼈는 대부분 육질을 떼어낸 뼈로서 주로 척추, 갈비뼈, 어깨뼈, 엉덩이뼈 등이 이용되었다. 특히 척추는 많은 종류의 기계들이 피스톤을 이용해 뼈를 곡압으로 압축해 고기를 떼어내는 방법을 썼기 때문에 척수 등의 신경조직이 같이 빨려들어 갈 확률이 높았다. (영국 정부 <광우병 백서> 中)-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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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구판절판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한마디로 대상을 잘 고르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한 건 대상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고, 아직까지 사랑을 못해 본 건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참으로 신기한 인과론이다.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판에 나는 몸만 쏙! 들어가면 되는가? 실패한 다음엔 다시 몸만 쏙! 빠져나와 복수극을 펼치면 되고? 이렇게 지독한 이기주의가 또 있을까? 상대를 잘못 만나 인생을 망쳤다면, 그런 상대를 선택한 '나'라는 존재는 대체 뭔가?
상식적인 말이지만, 사랑 따로 나 따로가 아니라, 나와 사랑과 대상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각자 따로 존재하다 서로 플러스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노동이거나 거래지. 그러므로, 노동이나 거래가 아닌 제대로 된 사랑을 꿈꾼담녀, 반드시 환기해야 한다. 사랑과 대상과 나 사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 나아가 사랑하는 대상,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14-15쪽

앎의 크기가 내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앎의 열정이 없는 존재가 운명적 사랑을 한다는 건 우주적 이치상 불가능하다. 주류적 척도로부터 벗어나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열정, 자본과 권력의 외부를 향해 과감하게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내공. 공부는 무엇보다 이 열정과 내공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이런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해야 한다. -18쪽

연애가 작업이라는 '허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아주 기이한 전도가 일어났다. 사랑이나 연애는 일단 이성 혹은 합리성의 외부에 있는 충동 혹은 열정을 뜻한다. 즉, 접근법이나 형태가 무엇이건 일단은 상식적 코드로부터 탈주하는 힘을 내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작업은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그것은 출발부터 돈과 권력과 외모라는 주류적 가치를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에로틱한 열정과는 거리가 먼, 말 그대로 '작업의 일환'이 되었다. 입시나 취업전선과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27-28쪽

"그녀와 나는 음악과 정치, 예술, 모든 분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거기다 섹스까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어디 있단 말인가"(존 레넌)-51쪽

"너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너는 벗이 될 수 없다. 너는 폭군인가? 그렇다면 너는 벗을 가질 수 없다."(니체)-65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13쪽)-73쪽

무언가 서로에게 줄 것이 있어, 자신에게 넘쳐나는 것이 있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받고 싶은 것이 있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어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결혼이다. 풍성한 토양에서 자라는 사랑의 식물은 서로를 선물하는 친구로 만들어주지만, 척박한 토양에서 자라는 사랑의 식물은 상대방을 구속하는 가시 울타리로 자라난다.(<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30-131쪽) -198-199쪽

무릇 천지만물을 살피는 데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고, 사람을 보는 데에는 정보다 묘한 것이 없으며, 정을 살피는 데는 남녀 간의 정을 살핌보다 진실한 것이 없다.(18세기 문인 이옥)-203쪽

"참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스스로 창조한다."(니체)-220쪽

만일 내가 참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의 기술>, 70쪽)-235쪽

"스승이면서 친구가 아니면 스승이라고 할 수 없다. 친구이면서 스승처럼 배울 게 없다면 역시 친구라 할 수 없다."(이탁오)-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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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요 2008-12-1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찜해두었습니다. 땡기는걸요. 은근히...^^
 
현대의 과학철학
앨런 차머스 지음, 신일철 외 옮김 / 서광사 / 1985년 3월
구판절판


좋은 과학 법칙이나 이론은 그것이 세계에 대한 한정된 주장을 하기 때문에 반증가능하다. 반증주의자는 이러한 사실에서 더 잘 반증될 수 있는 이론이 매우 느슨한 의미에서 더 좋은 이론이라는 사실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론이 주장하는 바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이론이 지적하는 방식으로 실제로 이 세계가 운행되지 않을 잠재적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계에 대해 매우 폭넓은 주장을 담고 있는 이론이 좋은 이론이다. 그러한 이론이 결국 반증가능성이 높으며, 테스트에 붙여질 때마다 반증에 견디어낼 수 있는 이론이다. -82쪽

"나는 나 자신과 같은 반증주의자는 평범한 진리들을 이야기하는 것보단든 흥미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록 곧 거짓으로 밝혀진다고 할지라도 대담한 추측을 제기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인다. 우리들이 이것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가 오류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이 방법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추측이 거짓임을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진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진리에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포퍼)-84쪽

결국 과학은 그 안에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더 나은 패러다임으로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을 포함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혁명의 기능이다. 모든 패러다임은 자연과의 조화를 문제로 삼는 한 어느 정도 부적당한 요소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불일치가 심각해질 때, 곧 위기가 일어날 때, 하나의 패러다임에 의해 전체 패러다임이 대체되는 혁명적인 조치가 취해지는 것은 효과적인 과학의 진보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165쪽

과학은 실재의 참된 성질에 대한 기술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이념은 간혹 상대주의에 대한 반론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포퍼는 진리를 이러한 방법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사용 방법에 따르면, 한 이론은 그것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참일 수 있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믿는다고 해도 거짓일 수 있다. 참된 이론은 그것이 확실히 참이라면, 개인이나 집단의 믿음에 관계없이 참이다. 실재의 성질을 참되게 기술한 진리는 포퍼와 같은 실재론자에 있어서도 객관적인 진리이다. -234쪽

철학자는 어떠한 지식이 받아들여지거나, "과학적인" 것으로 분류되기 위해서 만족시켜야 할 기준을 설정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각각의 지식은 그 나름대로 분석될 수 있다. 곧 우리는 그 각각의 목적이 어떠한가를 탐구할 수 있고, 그것의 목적은 통상적으로 생각되고 제시되는 것과는 다를 수도 있고, 우리는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사용된 수단을 탐구할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이 성취할 성공의 정도를 탐구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의 목적을 비판하고,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된 방법의 적합성을 비판하고, 동일한 목적을 획득할 수 있는 대안적이고 더 우수한 방법에 그것을 대비시킴으로써 모든 지식의 영역을 비판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어떤 지식의 영역을 과학으로 인정하거나 비과학으로 못박아 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러한 "과학"의 일반적인 범주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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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8-11-03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이 책 진짜 오랫만에 보네요. 아직도 출간되고 있다니 신기하군요...;;

마늘빵 2008-11-03 08:57   좋아요 0 | URL
스무살 무렵 때 들은 첫 수업이 이거였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었어요. 다시 눈에 띄어서 봤지요. 이건 정리하면서 보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따라가기 힘들어요. 2권도 있던데요? :) 83년인가 85년엔가 나오고 계속 재고가 있는거 있는데요.

바라 2008-11-05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번에 과학철학 들을 때 참고로 읽었었는데..과학철학 자체가 참 어렵기도 한데 위 책이 그나마 참 평이한 편이었던 거 같네요; 속편으로 나온 <현대의 과학철학 2>권은 사회과학 쪽을 다뤘던 거 같구요. 서광사에서 같은 시리즈로 나온 H. 브라운의 <새로운 과학철학>도 참 좋은 책인 거 같습니다.(좀 더 어려워서 고생했었지만;;)

마늘빵 2008-11-05 09:18   좋아요 0 | URL
지금 다시 봐도 100%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정독해서 봐야 할 책인데, 출퇴근 시간에 보고 있으니 집중해서 볼 수가... -_- 2권은 이번에 샀는데, 언제 또 볼지는 모르겠어요. 저도 학부 2학년 때 이 책으로 과학철학 수업 받았어요. 그때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몰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