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폭력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무엇이 폭력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폭력이라는 말에는, 즉 무엇이 폭력인지를 결정하는 ‘사실 판단’에는 언제나 ‘폭력이 나쁜 것’이라는 ‘가치 판단’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가치 판단 없이 무엇을 폭력이라고 사실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어떠한 힘의 사용에 대해서 가치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면, 설령 그 힘이 객관적으로 폭력일지라도, 굳이 그 힘이 폭력인지 여부를 사실적으로 판단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속)-25-26쪽
(이어서) 그러므로 ‘폭력’에 관한 질문에는 언제나 가치 판단이 끼어든다. 어떠한 힘의 사용이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묻는 것이. 그리고 그 정당성에 관한 질문, 즉 가치 판단에 관한 질문을, 어떠한 힘이 폭력인지 아닌지의 형태로, 마치 그것이 사실 판단의 문제인 것처럼 제기한다. 이것이 우리가 폭력에 관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중략)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폭력이냐’가 아니라, 무엇이 부당한 힘의 사용이냐, 즉 ‘우리가 무엇을 폭력으로 규정해 배제하기를 원하느냐’일 것이다. 우리는 모든 폭력을 폭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25-26쪽
다만 그것을 폭력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폭력과 비폭력의 구분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힘, 곧 정치적 권력이다. 국가 상태에서는 무엇이 폭력이고 무엇이 폭력이 아닌지, 더 정확하게 얘기해서 무엇이 정당한 폭력이고 무엇이 부당한 폭력인지를 구분하는 권한이 각 사람에게 속해 있지 않고 오로지 국가에 속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각 사람에게 그것을 판단할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이 판단의 능력이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정당한 판단의 권한을 다시금 정당화 요구라는 시험대에 오르게 만든다. -40쪽
군대와 경찰은 폭력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곳이다. 폭력을 단순히 ‘이용’한다고 하지 않고 ‘관리’한다고 표현한 것은, 군대와 경찰에서는 폭력이 독점적으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문명화한 사람들의 비폭력적인 신체와 성향이 그곳에서 다시 폭력적으로 바뀌고, 일정한 시간 동안 이용된 후에 또다시 비폭력적으로, 그러나 결코 완전히 비폭력적이지는 않게 순화되어서 그곳으로부터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명은 폭력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즉 폭력의 반대말이 아니라, 다만 폭력을 관리하는 세련된 형태일 뿐이다. -49-50쪽
한국의 남성들은 군대에서의 경험을 크거나 작게 일종의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군대에서 겪은 폭력과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으로 회복한 폭력성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보상 심리로서 그 폭력성을 남성성과 동일시하고, 제대 후에도 그 폭력성을 버리지 못해 주로 자신보다 약한 타자에게 분출하곤 한다. 한국 사회 전체가 병영과 같았던 군부 독재 시절에 국민들은 이미 학교에서부터 재폭력화했고 제대후라고 해서 특별히 탈폭력화하지도 않았다. -52쪽
국가의 폭력 독점은 그 폭력의 출처인 개개인이 폭력적인 힘의 자의적인 사용을 포기할 때 가능하며, 그것은 다시 개개인이 스스로 자기 보존을 추구하는 것보다 국가라는 폭력의 독점 기구를 통해서 자기 보존을 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여길 때에 가능하다. 그런데 폭력의 독점 기구인 국가의 자기 보존 노력이 폭력의 출처인 개개인의 자기 보존 노력과 상충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국가의 폭력 독점의 정당성이 의심받게 되는 것이다. -67쪽
부르디외에 따르면 교육 행위 자체가 상징적 폭력이다. 그것이 폭력인 것은 일차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학습자에게 자의적인 문화를 주입하기 때문이고, 이차적으로 그 과정에서 특정한 의미 체계를 선택하고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교육 과정은 마치 사회의 집단적․계급적 이해관계와 무관한 것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더 효율적으로 지배적인 문화와 가치를 주입할 수 있으며, 그 결과로서 기존의 권력관계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교육 행위는 철저히 지배 집단이나 지배 계급의 객관적인 이해관계, 곧 그들의 물질적인 이해관계, 상징적인 이해관계, 그리고 교육적 차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124쪽
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고 남이 겪는 폭력을 마치 내가 겪는 폭력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도덕적 요청과,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상대의 공격이 자신에게 폭력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단련하고 폭력에 무뎌지게 해야 한다는 정치적․군사적 요청 사이에 긴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관찰하게 되는 미국과 같은 대외적으로 폭력적인 탈영웅적 사회는 이 딜레마를,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군대를 전문화하고 시민들을 탈군사화함으로써 해결하고 있는 듯하다.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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