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구판절판


"타인의 삶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트집을 잡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체험이나 행동의 범주를 넘어서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마루야마 겐지, <소설가의 각오>)-10쪽

"수령으로서 참을성이 없는 자는 매양 소장(訴狀)을 접할 때마다 그 사건의 근원부터 캐내어 밝혀내려 하지는 않고 다만 눈앞의 소첩(訴牒)에만 의거해서 판단하니, 더듬어 찾아도 얽히고 설켜 있어서 옳은 듯도 하고 그른 듯도 한데, 급하게 제결(題決)을 놓아 이졸(吏卒)을 꾸짖어 물러가게 하고는 구차하게도 목전의 할 일이 끝났음을 다행으로 여긴다."(정약용, <목민심서>)-40쪽

검사한테 가면 태도가 달라요. 그러니까 뭐 알려고 하지도 않고요. 이미 너는 노동조합활동 하는 애고, 너의 세계관과 나의 세계관은 다르고, 너는 어차피 그렇게 하면, 구속돼서 살 거 각오하고 하는 애 아니냐? 그런 태도죠.(이해영, 11면)-77쪽

85.5퍼센트의 시민들은 인맥으로 칠 법조인이 단 한명도 없는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연구진이 핵심 중산층으로 분류한 집단에서는 법조인을 인맥으로 확보한 비율이 21.5퍼센트에 이르지만, 하층으로 분류된 집단은 그 비율이 5퍼센트 내외로 뚝 떨어집니다. 핵심 중산층이나 주변적 중산층에 비해 하층에 속한 사람들은 법조인을 알게 될 가능성이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통계는 많은 시민들에게 사법은 타자성의 세계이며, 미지의 세계에 속한 영역일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80-81쪽

"약자가 권리를 침해받고 있을 때는 침묵하던 법이, 견디다 못한 약자가 그걸 세상에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늦게 개입하여 약자만을 처벌한다."(변교수)-81쪽

"돈을 받고 그릇된 재판을 해서도 안되오. 왜냐하면 뇌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며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 때문이오."(구약성경 신명기 16장)-86쪽

돈을 돌려준 경험을 이야기한 전현직 판검사들 중의 누구도, 돈을 준 변호사를 입건하거나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런 조치를 취하면 그는 어떤 평판을 얻게 될까요. 일반인들은 혹시 그런 판검사를 청렴하다고 칭송할지 모르지만, 좁은 법조계 바닥에서는 ‘또라이’로 찍힐 개연성이 높습니다. -100-101쪽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는 하기 어렵다. 그럴 때 당신은 학연, 지연, 혈연을 찾아 누구에겐가 전화를 건다. 그러면 금방 해결된다. 당신에겐 전혀 죄의식이 없다. 그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기본일 뿐이니까. 그러나 당신처럼 그렇게 전화 한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학연, 지연, 혈연을 갖지 못한 사람이 누구에겐가 돈을 주고 어떤 일을 해결했을 때 당신은 그건 부정부패라고 분노한다. 당신의 그러한 2중 기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연고에 의한 청탁은 괜찮고 금품을 이용한 청탁은 범죄라면, 그건 정말이지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강준만, <서울대의 나라>)-128쪽

신성가족은 자신의 힘으로 창조한 것이며, 사악한 사회에서 자유롭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사회에서 해방시킨 존재입니다. 신성가족의 가장 큰 상징인 ‘거룩’은 처음부터 ‘구별’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맑스는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쟁을 겪어온 비판적 비판주의는 마침내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되는 데 성공했다"고 그들을 묘사합니다. -146쪽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중국, 프랑스, 이딸리아 등과 함께 우리나라를 가족주의가 지배하는 대표적인 ‘저신뢰 사회’로 규정했습니다. 가족주의사회에서는 혈연관계로 엮이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할 만한 토대가 없기 때문에 자발적인 결속력이 약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고비용으로 연결되게 마련입니다. -152쪽

퇴직 후를 생각하는 판검사 입장에서 삼성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미래의 직장, 그것도 최고의 직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 사건에 제대로 된 수사나 판결을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삼성을 통제하기는커녕, 삼성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 언젠가는 개업을 해야 하는 판검사로서는 삼성 같은 곳에서 많은 월급을 받으며 품위를 유지하며 사는 것이 ‘브로커’를 고용해 어렵게 개인 변호사로 사는 것보다 훨씬 매력적입니다. 이 역시 판검사들이 언젠가는 개업을 하는 우리 법조계 구조에서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이한 일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172쪽

결국 ‘신성가족’에게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사장이라는 중개인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연관지어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성가족이 품위를 지키며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반인들과 이들을 중개해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씨스템에서 모든 지저분한 업무는 당연히 중개인들의 몫이 됩니다. -197쪽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쟁을 겪어온 그들은 마침내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되는 데 성공했다."(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신성가족>)-215쪽

‘거절할 수 없는 관계’란 누군가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순간 마치 모래더미처럼 스르르 무너져 내리게 마련입니다. -314쪽

원만함은 우리사회에서 대체로 좋은 가치로 받아들여졌고, 어느 조직에서나 원만한 사람을 선호하는데 이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원만함이 사법 관련자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원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켜내는 것은 언제나 기득권층의 이익과 기존 질서입니다. 갈등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원만함으로 이해되는 조직에서, 모두 그러다보면 ‘정의’라는 본질적인 가치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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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6-14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에서 나름의 신성가족이란 불가피하지 않은가도 생각되네요...그것의 내재적 원리나 공유하는 가치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서 민중들에게 드러나는 연구들이 많이 나와야 극복할 방법들도 나올텐데요...알면 더 답답하려나? ㅎㅎ

마늘빵 2009-06-14 22:47   좋아요 0 | URL
읽다보니 이게 제도로 보완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개개인이 바뀌지 않는한은 불가능하겠다 싶기도 하네요. 그들은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것들이 사건과 직접 관련된 사람들 입장에서보면 이건 완전 썩은 물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