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윤리에 관한 15가지 물음
가토 히사다케 지음, 표재명 외 옮김 / 서광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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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보는 데에는 상당한 돈이 지불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관심가는 책이 눈에 띄더라도 흥분된 마음을 자제하고 집에 묵혀둔 책들로 눈을 돌리곤 한다. 갈수록 돈 들어갈 데는 많고 사고픈 책들은 많은데 양자 사이에 절충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현대 윤리에 간한 15가지 물음> 이라는 책은 99년에 내가 경제학부에서 철학과로 전과한 뒤 들은 첫학기의 수업 '윤리학'을 통해 알게 되었다. 주교재는 아니었고, 단지 수업중 교수님께서 잠깐 언급했을 뿐이었지만 처음 철학에 입문한 나는 뭘 읽어야할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수업중 언급되는 책들을 중심으로 사보기 시작했다.

<현대 윤리에 관한 15가지 물음>은 가토 히사다케라는 일본의 철학교수가 지은 책을 그의 제자인 경북대 윤리교육학과 출신 김일방, 이승연씨가 번역하고, 고려대 철학과 표재명 교수가 최종적으로 검토해 출간한 책이다.

가토 히사다케는 본래 도쿄대학 철학과를 나와 헤겔철학을 전공했으나, 이후에 윤리학에 관심을 보이며, 생명윤리, 환경윤리, 응용윤리 등 각종 윤리학 분야에서 다양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군.

본래 일본에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원고로 읽히던 것을 책으로 엮어낸 것인데, 일단 일본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는(?) 혹은 윤리학을 다루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는 현실이 부럽다. 방송에서 이렇게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일단 이 방송 프로그램을 들을 만한 청자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라디오 방송의 원고를 듣는 형식이 아닌 읽는 형식으로 바꾸어 책으로 낸 것이 이 책인데, 사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대중을 상대로 썼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대중이 이를 얼마나 알아들을지가 의문이었다. 이 책의 단점은 첫째가 그것이다. 일반 대중이 듣기에는 다소 어려운 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을 상대로 하기 위해 각종 다양한 예시를 들은 것에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윤리학적 이론의 지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점에서는 그다지 대중적인 책이라고 하기엔 무리이지 싶다.

두번째 단점은 번역상의 문제다. 이 책에는 쉽게 우리말로 번역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대상으로 한 책이면서 철학자들만이 알아듣는 단어 사용을 한 곳이 곳곳에 눈에 보인다. 일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 프리오리(A priori)'라는 단어로 이는 본래 라틴어로서 '보다 앞선 것으로부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말로는 '선천적'이라고 번역해도 무방할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서는 이 개념은 좀더 세밀하게 분류할 수 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논리학의 형식적 규칙들이 아프리오리하게 인식되는 유일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려고 했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아프리오리한 요소에 근거를 둔다. 대상은 이 형식 안에 주어지며, 인식은 오성의 아프리오리한 개념에 근거를 둔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대상을 사유하고 경험을 조직한다. 칸트에게 아프리오리는 '선험적'과 '초월적' 두가지로 나눌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독일어 tranzendental은 칸트에게 '선험적'이란 뜻이며, 이는 tranzendence 인 '초월'과 '경험'의 중간에 위치하는 개념이다. 뭐 '아프리오리'라는 개념의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 때문에 칸트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칸트가 언급되는 부분이 아니니 '선천적'이라는 우리말로 번역해도 무방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책은 별로 추천하고픈 책은 아니다. 언급한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에서의 부적절한 위치나 번역상의 다소간의 문제점, 그리고 각각의 15가지 질문들과 대답이 엮어내는 체계성과 완결성의 부족함으로 썩 읽고싶게 만드는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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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쇼
데이비드 에드워즈 지음, 송재우 옮김 / 모색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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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쇼>는 '세상의 모든 자유는 환상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은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영화 <트루먼쇼>를 모방한 것으로 보여진다. 저자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 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던 일개 세일즈 맨이었으나, 이 세계를 떠나 집필과 교육에 열중하여, 이후 여러 저널과 잡지에 인권과 환경 문제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첫 작품이다.

역자는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철학박사를 획득, 동국대학교 아나키즘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며, <프리덤쇼>라는 책이 아나키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해서 이를 번역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프리덤쇼>는 어떻게보면 음모론이다. 우리가 당연하다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에 딴지를 걸고 이것은 음모라고 말한다. 물론 '음모'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가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지극히 음모론적인 시각이다.

그는 책에서 노암촘스키를 자주 인용하며, 그의 미국에 대한, 환경에 대한, 권력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며 그의 입을 빌어서 음모론을 전개한다. 또 그의 지적들이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부터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내용면에서 받아들이기 거북하거나 하지는 않다. 그럴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개 회사원치고는 참 여러분야에 대해서 깊이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권위있는 지식인의 입을 빌어 말한다는 점은 그의 한계로 지적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못했고, 학위를 받지 못한 저자로서는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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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컬티. 영어 Faculty는 능력, 재능, 기능 이라는 의미 이외에도 교직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이 영화제목의 패컬티는 후자의 의미로 쓰인 것 같다. 이 영화는 한 고등학교의 교직원들이 외계생물체에 의해 정신을 지배받으면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우주의 어느 행성에 살던 외계생물체는 행성에 물이 마르자 살 수가 없어 지구로 왔다. 이 생물체가 처음으로 머문 장소는 해링톤 고등학교. 재정난에 허덕이며 학생들의 뮤지컬로 올리지 못하고, 미식축구에도 넉넉한 지원을 하지 못한다. 학교 컴퓨터가 낡아 교체해야하나 이것도 그저 바램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윌리스 축구코치가 드레이크 교장을 살해하고, 숙주를 심었다. 이후 다른 교직원들에게도 외계생물체의 숙주가 자리잡고 이들은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7명의 아웃사이더 학생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눈치채고 따로 모여 저들에 대항할 채비를 한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단순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이 정도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나름대로 긴박감 있게 사건을 진행시켜 그다지 오락영화로서의 지루함은 별로 없다. 특별히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타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감독이 유명한 것도 아니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스파이 키드>를 만든 감독인데 이 작품들도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 말이다.

외계숙주에 대한 영화야 이제 질리도록 봤고, 이 정도의 시나리오는 영화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단지 범인이 누구냐 하는 것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될 뿐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다. 오락용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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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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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우선 제목이 참 길다. 하지만 매우 땡기는 제목이다. 제목만 보기에는 일종의 편가르기에 대해 다루고 있는 듯 하고,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책 안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이것이 아니었다.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가 원 제목이었는데, 출판사 측에서 책의 여러 글들을 아우르는 제목이 본 제목인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보다는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가 책의 메시지와 더 가깝다고 생각해 저자와의 협의하에 바꾼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내가 봤을 때도 원제 <아들아... >로 했을 경우 책의 첫 몇몇 글들에는 부합할지 모르지만 이후의 다른 여러 글들을 아우르는 제목은 되지 못한다. 저자는 본래 자신의 아들이 이 글을 봐주기를 바라며 썼던 것 같지만 그것은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전체적인 책의 내용과 이 책을 읽을 독자를 생각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달랐을 것이다. 책을 판매하는데 있어서도 본래의 제목보다는 나중의 제목이 훨씬 낫다. 나 또한 본래 제목을 달고 있었더라면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 김훈은 본래 한국일보 기자였고, 나중에는 시사 주간지 기자를 지냈다. 그리고 나이먹은 지금에 와서 쓴 소설 <칼의 노래>가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안 심사 기간 동안에 청와대에서 칩거하며 읽은 책이라 하여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며 엄청난 판매부수를 올리게 되었다. 물론 순전히 대통령이 읽은 책이라해서 이만큼의 판매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단 책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이 책으로 인해 김훈은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뒤늦게 독자들에게 다가간 셈이다.

 나는 <칼의 노래>는 읽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후속작 <현의 노래>는 읽었다. 그의 소설 속 문장들은 확실히 개성적인 그만의 문체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소설가 중에서도 자신만의 문체를 지닌 소설가는 드물다고 본다. 그런데 김훈은 그의 첫 소설에서 그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다른 여타 소설들을 잘 읽지 않는 나도 <현의 노래>를 통해서 그의 문체를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소설을 쓰기 전에 언론기자 생활을 하며 써두었던 칼럼모음집인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서도 그 문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문장은 굉장히 짧지만, 힘이 있고, 은유적이면서,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논리적이고, 삶에 기반한 생생함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의 문장은 고대 중국의 고전 속 문장을 읽는 듯 이리저리 휘돌아다니며 정곡을 찌른다. 아마도 그의 이런 짧고 강한 문장은 오랜 기자생활을 하면서 익히게 된 습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문장은 이성적이지만 '머리'에 기반하기보다는 '가슴'에 기반하고 있다. 이 말은 어찌보면 모순적이다. 보통 머리로 사유한다는 것은 이성적이고, 가슴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감성적이라는 뜻인데, 그는 분명 '가슴'으로 사유하면서도 그의 문장에는 이성적 논리가 담겨져있다. 그의 모든 글들이 그가 발로 직접 뛰며 경험한 것들이고,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그는 넓고 깊은 사유를 전개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나의 가슴을 자극한다.

 그는 얼마전 한국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성을 굳이 말하자면 '중도 우파'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회색분자가 많아야 좋은 세상이야. 회색과 중도가 깃발을 꽂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어려워져. 그 깃발 아래 기회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이지만 양심적인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 해. 그러면 희망이 있어. 중도란 인간의 상식이지.”

 그는 또한 그들은 물적토대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좌익과 좌파가 세상을 맡아선 안된다고 하며 물적토대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은 우익이라는 주장을 폈다.

 '중도좌파' 혹은 '좌파자유주의자'의 입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물론 그의 이런 발언들이 못마땅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세상을 꾸려나가는 것은 낭만주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 책에는 김훈이 그 당시의 크고작은 사회적 사건들에 대해여, 혹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일어나는 주변의 일들에 대하여, 분노하고 느끼고 감동받은 것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다. 때로는 욕을 하듯 강렬하게 퍼붓기도 하고, 때로는 죽은 듯 고요하게 사색을 전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모든 글들에서 느껴지는 바는 '생생함'이다. 그는 이제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아직 그의 머리와 가슴은 기운이 넘치고, 그의 문장과 글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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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구판절판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묻는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 ( <말하기의 어려움> 중)-65쪽

"몸속에는 산소가 가득 들어 있어야 하고 몸은 늘 민감하고도 정확하게 반응하는 감각들로 살아 있어야 한다. 글이란 '왜 쓰는가'에 대답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일은 이 생기발랄한 몸의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몸이 언어를 통해서 이미지에 가 닿을 때 그의 글은 가장 빛나는 문장을 이룬다. 문체는 몸의 일부이다. 몸이 이미지에 맞는 가장 정확한 문체를 포착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이 몸에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끝난 것이다." ( <외로운 맹수, 소설가의 생존방식> 중)-138쪽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 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맹자는 말하기를 인은 집안을 편안케하고 의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 하였으니 집과 길은 그 중요성이 같은 것이다. 길은 원래 주인이 없고 오직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신경준 <도로고>)-163쪽

"길은 그 위를 가는 자에게는 통로이지만, 길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풍경이다. 그 풍경은 인간과 자연의 사이를 비집어가면서 가늘게 이어진다." (<길>)-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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