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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몽드 ㅣ 살림지식총서 48
최연구 지음 / 살림 / 2003년 12월
평점 :
현재 나와있는 모든 책들 중에서 가장 싸다고 여겨지는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의 48권 <르 몽드>. 정식 책값 3,300원. 인터넷 서점 할인가 2,970원. 정말 싸다. 주간지 값도 안된다. 그리하여 난 값싸고 얇은 살림지식총서 시리즈 중에서 관심가는 주제를 찾아 읽기를 즐긴다. 책세상문고 시리즈도 마찬가지. 이런 작고 깜찍한 책들을 좋아한다.
<르 몽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신문인 '르 몽드'를 다루고 있다. 독일에는 슈피겔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르 몽드가 있다. 한국에는 한겨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 10위 안에(당당 6위) 들어있는 진보적인 언론 '르 몽드'는 유럽에서의 짧은 언론사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으로 발돋움했다.
르 몽드는 중도적이고 진보적인 신문이지만, 선거 시기와 같은 민감한 국면에서는 좌파적 성향을 띠므로 보통은 중도 좌파 신문으로 분류된다. 프랑스의 두 신문, 르 몽드와 르 피가로가 각각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신문으로 발행 부수면에서 1,2위를 다투고 있으나, 열독율과 영향력면에서는 르 몽드가 압도적이라고 한다. 르몽드가 1999년 기준 39만부 정도를 기록할 때, 르 피가로는 36만부 정도로 두 신문의 발행부수는 크게 차이나지는 않는다. 발행부수면에서는 우리나라의 조중동을 따라갈 수 없다. 각각 2백만부를 넘는다고 하니. 하지만 발행부수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성이 상실된 사회라고 볼 수 있을 터. 우리나라가 대표적으로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보수지 세 신문이 각각 2백만부를 넘어서고 있으니.
1944년에 창간한 이래 르 몽드는 몇번의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프랑스 최고의, 세계 최고의 언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 신문의 판형이 대판인데 비해, 프랑스에서는 타블로이드판을 선호한다. 르 몽드도 그렇고, 좌파신문 리베라시옹, 또 뤼마니테가 그렇다. 유일하게 우리나라와 같은 판형을 가지고 있는 신문은 보수지 르 피가로 뿐. 이는 유럽사회의, 프랑스의 개인주의에 기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보기 편하고 휴대하기 좋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크게 펼쳐 주위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을 정도의 크기를 지닌 타블로이드판.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지하철 무가지 신문들이 생겨나면서 타블로이드판형이 널리 보급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있긴했지만.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는 타블로이드판은 대판보다 뭔가 천박하고 가볍고 중후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강한 듯 하다.
르 몽드의 현 회장 장 마리 콜롱바니는 르 몽드의 언론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콜롱바니가 이야기하는 르 몽드의 첫번째 적은 다름 아닌 '돈'이다. 그는 "신문의 '재정적 독립'이 없다면 기자들의 독립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신문의 재정적 독립성이야 말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강조한다.콜롱바니가 말하는 언론의 두 번째 적은 '시간'이다. 즉, '리얼 타임의 독재성'이다. 오늘날 언론은 "권력이 생산-제어-통제하는 정보로 위협받고"있고, "궁극적으로 독점을 갈망하는 일부 대기업들이 언론 영역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상업주의 정보마저 횡행"하고 있다. 여기에 정보통신의 발달은 사건과 보도 사이의 즉각성을 강요함으로써 "한발 물러서서 성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거리를 지워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1944년 창간 이래 뵈브-메리의 다음과 같은 신문관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한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유의해야 할 점은, 사실보도와 진실보도는 다르다는 점이다. 사실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고, 진실은 사실의 내면에 숨어있는 권력구조와 전체적인 흐름, 진상을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르 몽드는 무엇보다 '사실'이 아닌 '진실'보도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르 몽드 신문의 특징으로 뽑을 수 있는 것은, 첫째, 사진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은 진실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르 몽드는 아주 예외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진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면 그 많은 공간을 뭐로 채워? 르 몽드는 그 많은 공간을 저명한 필진들의 칼럼으로 대신하고 있다. 르 몽드에는 프랑스 사회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필진으로 자리하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대표적. 둘째, 르 몽드는 석간신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일보를 제외하고는 전국지 중 석간신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는 대부분이 석간신문이며, 이것은 프랑스 언론에서는 특별한 점으로 뽑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셋째, 르 몽드의 수입은 70%이상이 신문판매를 통해 얻어진다. 우리나라의 조선 중앙 동아 신문들이 엄청난 광고로 도배를 하고 수입을 챙기고 있는 반면, 프랑스의 르 몽드는 이를 일부러 멀리하고 있다. 광고는 르 몽드가 독립하는데 있어 방해가 될 뿐이다. 최근 광고 수입이 30%에서 38%로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이도 우리나라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경우는 광고수입만해도 70%가 훨씬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넷째, 르 몽드의 주식은 기자와 사원들에게 나눠져있다. 조선일보가 86%, 동아일보가 66%, 한국일보가 98%의 지분을 회장일가가 소유한데 비해, 르 몽드의 사장은 2000분의 1만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르 몽드는 '세계'라는 의미로,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인종주의와 파시즘을 배척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껏 대개 국제적인 사건에 있어서, 또 국내의 큼직한 사건에 있어서 이와 같은 르 몽드의 철학을 지켜왔다. 이 책은 르 몽드를 일방적으로 찬양하고 있다. 물론 르 몽드는 마땅히 찬양받을 만하다. 하지만 최근의 덴마크 신문의 이슬람 만평 사태에서 보여지는 르 몽드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르 몽드가 지켜왔던 정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2005년 9월 30일을 시작으로, 2006년 2월까지 있었던 이슬람 마호메트 풍자 사건에 대한 일지이다. 덴마크가 마호메트 풍자 만평을 실어 그 시작을 알렸고, 이슬람국이 이에 반말하고 사과를 요구했으며, 노르웨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주요 신문들이 이를 다시 다룸으로써 유럽 대 이슬람의 싸움으로 번져나갔다. 언론이 불을 지핀 것이나 다름이 없다. )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세계적인 르 몽드 역시 여기에 한 몫 했으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진보적인 신문이다, 보편주의를 표방하고, 인종주의와 파시즘을 배척한다던 르 몽드가 여기에 끼어들었다
( 덴마크 만평에 대한 한국일보 기사에는 분명히 '르몽드'를 비롯해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신문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일제히 문제의 만평을 다시 실었다고 되어있다. 표현의 자유 좋다. 하지만 타 문화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르 몽드의 철학이라면 오히려 표현의 자유보다 타 문화에 대한 존중의 정신을 강조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결국 이들 유럽의 주요 일간지들의 만평 추가 게재로 유럽 대 이슬람의 폭력사태로까지 사건은 번져나갔다. )
르 몽드는 짧은 언론 역사에 비해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르 몽드 신문을 인용한 국제 학술 논문도 부지기수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권력으로 볼 수도 있다. 힘이 있는 만큼 르 몽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르 몽드의 발언 하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흔히 진보적인 신문으로서 독일의 슈피겔과 프랑스의 르몽드를 손꼽는다. 언젠가 독일어로 슈피겔을 읽는 것이, 프랑스어로 르 몽드를 읽는 것이 꿈이다. 인정받는 진보적인 언론답게 처신을 조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