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 복거일의 영어 공용론 SERI 연구에세이 3
복거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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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망의 가치가 꼭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해서 늘어나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사용자 수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20쪽

아주 적은 사람들만이 쓸 때, 한 언어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쓰게 되면서, 그것의 가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21쪽

영어를 모국어로 가져서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민족어로 모국어로 가져서 영어를 덜 잘하는 사람들보다 사회적 경쟁에서 훨씬 유리할 것은 분명하다. -50쪽

물론 이런 상태가 민족어들의 완전한 쇠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사라지기엔 민족어들이 담은 민족의 역사와 지적 자산들은 가치가 너무 크다. 그래서 민족어들은 대중들의 외면을 받지만 전문가들에 의해 쓰이고 보존되고 이어질 것이다. 그런 상태에선 민족어들은 거의 진화하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박물관 언어'로 남을 것이다. -51쪽

이 사실은 사람들이 인종과 관계없이 어떤 언어든 배워서 쓸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프랑스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쓰고 한국 사람들이 조선어를 쓰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프랑스어나 조선어를 쓰는 사회에서 태어나 그것들을 모국어로 배웠기 때문에 그것들을, 그리고 그것들만을, 잘 쓸 수 있는 것이다. 부모와 다른 모국어를 유창하게 쓰는 어린 아이들은 그런 사실을 떠받쳐주는 증거들이다. -58쪽

오랫동안 사람들은 자기 종족의 언어만을 배우면 됐다. 그래서 사람의 뇌에서 언어를 관장하는 부분은 한 언어를 다루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고대 문명이 일어나고 다른 종족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지자 점점 많은 사람들이 둘 이상의 언어들을 배워야했다. 그렇게 갑자기 닥친 상황에 맞춰 뇌가 빠르게 진화할 수는 없었으므로, 뇌는 첫 언어가 아닌 차후의 언어들을 관장하는 일을 원래 언어를 관장하던 부분이 아닌 다른 부분으로 돌렸다. 그래서 외국어를 쓸 때, 우리는 수학 문제를 풀 듯 의식적으로 조립해서 쓰는 것이다. -59쪽

언어는 사람의 삶에서 워낙 중요한 도구고 배우기가 무척 어렵고 습득에 많은 자원이 들어가므로, 컴퓨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전환 비용이 높다. 이제 결정적 시기 가설은 언어의 전환 비용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히, 국제어를 모국어로 갖지 않는 사람들은 겹으로 불리하다. 그들은 모국어말고도 국제어라는 언어를 하나 더 배워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생물학적 조건 때문에 그 국제어를 제대로 배워서 쓸 수도 없다. -61쪽

영어 공용은 정부가 시민들에게 영어를 쓰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고, 조선어의 독점적 지위를 허물어서, 시민들이 영어를 쓰고 자식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따라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영어의 습득과 사용에 관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자연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언어 시장의 자유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91쪽

국제어인 영어를 제대로 못 쓰면, 남들에게 뒤쳐져 점점 큰 서러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기를 쓰고 영어를 배우려는 것이다.
얼마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는 우리 역사학자들의 기자 회견과 심포지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학자는 "미국의 교과서 집필자들이 한국사에 관해 제대로 쓰고 싶어도 한국에서 펴낸 한국사에 관한 영어 자료가 없어서 부득히 일본 역사책을 참고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우리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는 영어를 잘 써야 한다. -108쪽

언어는 본질적으로 도구다. 언어가 사람에게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리고 모국어가 우리에게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언어가 도구라는 사실과 사람들의 언어 구사 능력은 특정 언어에 매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언어는 한 사회의 문화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고 상당한 정도까지 그것을 규정한다. 그러나 그 사실이 한 사회가 공용어를 바꾸면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언어를 모국어로 가진 사람들이 그것에 큰 애착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것을 신성한 우상으로 떠받드는 것은 어떤 명분과 이름으로 치장되더라도 비합리적이다. -111-112쪽

'만일 막 태어난 당신의 자식에게 영어와 조선어 가운데 하나를 모국어로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자식에게 어느 것을 권하겠는가? 한쪽엔 영어를 자연스럽게 써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일상과 직장에서 아무런 불이익을 보지 않고 영어로 구체화된 많은 문화적 유산들과 첨단 정보들을 쉽게 얻는 삶이 있다. 다른 쪽엔 조상들이 써 온 조선어를 계속 쓰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영어를 쓰는 것이 힘들고 괴로워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기피하고 평생 갖가지 불이익을 보고 영어로 구체화된 문화적 유산들을 거의 향유하지 못하고 분초를 다투는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얻지 못하고 뒤늦게 오류들이 많은 번역으로 얻어서 그것고 이용가능한 정보들의 몇십만분의 일이나 몇백만분의 일만 얻어서, 세상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삶이 있다. 당신은 과연 어느 삶을 자식에게 권하겠는가? 아예 그에게서 선택권을 앗겠는가? 당신의 자식은 아직 조선어를 배우고 쓰지 않아서 조선어에 대한 물질적, 심리적 투자가 없고, 자연히, 조선어에 별다른 애착을 지니지 않은 터에?' -119-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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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1-24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영어 잘하시나봐요. 저는 영어 잘하는 사람이 제일 부럽거든요.
내일도 변함없이 기쁜 하루를 보내시기를.........

마늘빵 2006-11-2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해십니다. 전 영어 공용화 반대입장이고, 이와 별개로 영어도 거의 못합니다. 고등학교에서 배운거 이래로 영어를 제대로 공부한 역사가 없습니다. ^^ 영어에 대한 반감으로 앞으로도 절실히 필요치 않은 이상 그닥 배우고싶지 않습니다.

비로그인 2006-11-2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세대는 읽고 쓸 줄만 알면 되었는데
요즈음은 듣고 말하기가 중요한 시절이 되었습니다.
저의 아이들은 잘 따라합니다.
아마 저는 영어 공용화 되기전에 죽을 겁니다.. 하하


marine 2006-11-2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고종석씨가 쓴 "우리 모두는 그리스인이다" 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마늘빵 2006-11-24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씨도 영어공용화에 대해선 복거일씨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죠. 복거일도 이 책에서 고종석을 인용합니다. <감염된 언어>를 통해서.

야클 2006-12-0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영어공용화'로 인터넷 검색해보면 주거니 받거니 서로 논쟁한 글들이 많아요. 아주 재미있던데. 이윤기님의 글도 인상 깊고요. ^^

마늘빵 2006-12-02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 뒤에 부록으로 그 글들 다 모아놨네요. 재밌어요.
 
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절판


"죽음이란 가장 두려운 것이고, 죽음 앞에서 확고하게 버티는 것은 가장 큰 힘이 요구되는 일이다."

"죽음 앞에서 공포에 짓눌려 뒤로 물러나며 파멸로부터 스스로를 순수하게 보호하는 것은 삶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의 삶이라 할 죽음이다."

"사물의 표면을 꿰뚫고 사건들의 얼룩덜룩한 외관을 관통하는 '이성'의 눈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 (헤겔 <정신현상학>)
-48쪽

"비판의 무기가 무기의 비판을 대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신체적인 힘은 신체적인 힘에 의해 소멸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론은 대중의 소유가 되는 즉시 신체적인 힘이 될 수 있다 "-111쪽

"돈으로부터 해방되려면 모든 종교들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특히 그 종교들의 기초를 이루는 유태교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유태인을 모든 종교적 정체성으로부터 해방시키면 모든 종교성의 기반들을 제거하게 될 것이며, 유태인이 모태가 된 자본주의의 기반들도 제거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세속적 존재가 될 시민사회 안에서 모든 인간들이 해방되고 비로소 신학적 국가들이 변화되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114쪽

마르크스는 소외란 정신이 자신에 대해 깨닫기 위해 스스로에게 돌아가려고 자신에게 떨어져 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채택하여 이론에 이용했다. 더욱이 그는 헤겔처럼 철학이 보통의 의미에서 전복으로 정의되고, 그럼으로써 이성과 반대인 광기 사이의 근접성을 확립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진정한 단일성이란 부분으로 나뉘는 과정과 분리될 수 없다. 광기란 존재의 진실의 조건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그 시절에 깨닫게 된 것이다. -133쪽

그가 보기에 사적 소유권은 소외 노동의 근원이 아니라 결과였다. 소외는 노동 그 자체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소외를 인간 자신에 대한 외재성으로 정의한 헤겔이나 소외를 종교와 동일시한 포이어바흐와는 달리, 마르크스는 소외를 사회조직들과 종교들을 생겨나게 한 노동에 의한 현실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 포함시켰다. -144쪽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168쪽

"정치권력은 엄밀하게 말해서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조직된 권력이다." -203쪽

마르크스는 제국이 언젠가 전복될 것이라고 예견했는가 하면, 노동자 프롤레타리아가 농민과 연합하지 않아 승리를 몰수당할까 염려하기도 했다. 더 정확히 말해 제국이 무너지게 되면 의회주의 공화국이 들어서서 국가를 회수한 다음 부르주아를 위한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노동자의 혁명은 도시 노동자들이 시골의 소지주, 농민, 상인들과 연합하여 그 모든 파괴력을 국가에 대항하는 데 집중시키고, 모든 정치 혁명들이 점점 완벽하게 만들 뿐이었던 국가기구를 부숴버릴 때에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프롤레타리아 지도자의 과업은 거대한 연합, 즉 국민들 중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다수의 정부를 구성할 목적으로 민중의 당을 창설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운명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게 만드는 것이다. -281쪽

"현대사회에서의 계급의 존재나 그들 간의 투쟁을 발견한 공로는 나에게 있지 않다. 나 이전에 오래 전부터 부르주아 역사가들이 이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을 언급했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그것에 관한 경제적인 분석을 하였다. 내가 새로 한 것이라고는 첫째, 계급의 존재는 생산의 일정한 역사적 발전 국면에만 연결되어 있다는 것, 둘째, 계급 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이어진다는 것, 셋째, 그 독재 자체도 모든 계급들의 폐지와 계급 없는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형성한다는 것 등을 논증한 것일 뿐이다." -283쪽

"공산주의자는 자유롭게 오늘은 이것을 하고 내일은 저것을 하며, 아침에는 사냥꾼 노릇을 하고 오후에는 어부 노릇을 하며 저녁에는 목동 노릇을 한다. 결코 직업적인 사냥꾼, 어부 또는 목동이 되지는 않는다." -293쪽

"인간은 실제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되고자 원하는 그 모습을 가지고 자신의 신으로 삼았다. 또는 그것이 그의 신이다." -330쪽

"우리가 어떤 개인을 판단할 때 개인의 생각에 따라서 판단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자신의 인식을 바탕으로 격변의 시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이와는 반대로, 물질 생활의 모순들과 사회의 생산력들과 생산관계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에 의해 그 의식이 설명되어야 한다. 너무 큰 모든 생산력들이 발달되기 전에는 사회의 형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새롭고 더 뛰어난 생산관계들이라 해도 물질적 존재 조건들이 구 사회의 바로 한가운데서 만개하기 전에는 그 사회를 대체하지 못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인류는 완수할 수 있을 만한 과제들만 계획한다." -353-354쪽

그는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방법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첫번째는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노동자들의 탈진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임금 노동자들이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양을 줄잉는 것, 즉 재화 제조의 노동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방법이다. 그것은 거의 무제한적이며 노동자들을 기계로 대체하는 과정을 거친다. 첫번째 방법은 노동자의 피로에 의해 제한되고, 두번째 방법은 기술 진보 때문에 제한적이다. 첫번째는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하고, 두번째 방법은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 -443-444쪽

"나는 공산주의를 아주 싫어한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자유에 대한 부정이며, 나는 자유가 없이 인간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국가 안에 사회의 모든 힘들을 집중시켜 탕진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손 안에서 소유권의 중앙집권화로 귀결되고야 말기 때문이다. ...... 나는 그게 뭐가 됐든 어떤 권위적인 수단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연합의 길을 통해 아래에서 위로 공동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사회를 조직하기 원한다. 자, 내가 어떤 의미에서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집산주의자인지 보라!" -474쪽

첫단계는 부르주아지로부터 그들의 권위를 단번에 박탈시키기 위한 혁명적이고 폭력적인 단계(파리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처럼)이다. 두번째 단계는 방금 언급된 개혁들과 같은 급진적인 개혁들에 의해 반혁명적인 활동들(예를 들어 베르사유 사람들의 활동들)을 피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예를 들어 코뮌)이다. 세번째 단계는 '각자의 노동에 따라 각자에게'라는 워닉에 맞도록 생산을 재개시키는 사회주의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각자에게 생산물을 동등하게 분배하고 집단들을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도록 하는 공산주의이다. -512쪽

"생산계급의 해방은 성에 대한 구별도 인종에 대한 구별도 없는 모든 인간들의 해방이며, 생산자들은 그들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되어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생산 방식들이 그들에게 속할 수 있는 형태란 두 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일반적 사실의 상태로서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고 산업 발전에 의해 점점 더 제거되고 있는 개인적 형태이고, 둘째는 물질적이고 지적인 요소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그 자체에 의해 구성되는 집단적 형태이다. 이러한 집단적 소유화는 정당에서 조직되는 생산계급 - 또는 프롤레타리아 - 의 혁명적 활동에서만 비롯될 수 있으며, 그러한 조직은 프롤레타리아가 쓸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을 통해 추구되어야 한다. 이런 수단들 중에는 지금까지 속임수의 도구였다가 해방의 도구로 변화된 보통선거도 포함되어 있다." -592쪽

"자본 독점은 그것과 더불어 성장하고 번영한 생산양식에 족쇄가 된다. 논동의 사회화와 노동의 물질적 원동력의 집중화는 자본주의의 거죽 안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 거죽도 남아날 리가 없다. 수용자들도 이번에는 자신들이 수용을 당한다."
점점 더 많은 자본가들이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각 기업은 기업이 산출해 내는 이윤을 개인적으로 지키려 애쓰고, 전체 이윤의 비율은 투자 증가 때문에 떨어질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것들은 위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 다음에는 사회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소외와 착취가 동시에 사라지게 될 사회를 열망하게 되며 결구 혁명을 선택한다. 오로지 혁명만이 그런 사회를 탄생시킨다. 그 사회가 바로 공산주의 사회이다. -6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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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박이문 지음 / 미다스북스 / 2006년 4월
구판절판


방황은 인간의 운명이다. 인간은 그냥 존재하는 물질과는 달리 싫건 좋건 자신의 행동, 자신의 삶을 선택해야만 하는 자유를 갖고 태어났다.
선택은 언제나 가치의 선택이고, 모든 가치 선택은 궁극적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게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나에게 있어서 어떠한 삶이 인간으로서 가장 의미 있는 삶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다양한 대답들 가운데의 최선의 대답이 선택으로 나타난다. -15쪽

윤리적이란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를 희생하면서 남을 생각하는 마음씨이다. 수치심은 윤리적 결함 즉 내가 생물학적 나의 욕망을 초월해서 남의 아픔과 기쁨을 생각하지 않는 즉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생물체로서만 존재하는 자기에 대한 반성적 의식이다. -31쪽

생명에 대한 애착은 곧 죽음에 대한 거부이다. 왜 죽음을 끝까지 거부하는가? 죽음이 생명의 불가피한 조건이라면, 이러한 조건이 자연, 우주의 움직일 수 없는 질서이며 법칙이라면, 죽음의 거부는 우주질서의 거부이며, 우주 질서와 법칙의 거부만큼 불합리한 것은 있을 수 없다. 덧없는 삶을 악착같이 좀 더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부조리하고 어리석으며, 생명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치사하다.
하지만 우리의 어리석고 부조리한 태도와 치사한 집착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삶과 죽음이 논리가 아닌 것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논리가 아니라 본능의 영역에 속하며, 삶에 대한 우리의 집착 즉 죽음에 대한 우리의 거부감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안건이다. -37쪽

죽어서 떠난 이의 텅 빈 자리가 허전하다. 한 생명의 죽음은 그가 애써 살아오면서 닦아 놓은 모든 것을 허망하게 한다. 죽은 후에 내가 살아오고 닦아 놓은 모든 것이 혹시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내 자신에게는 전혀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의식을 전제하지 않는 의미를 생각할 수 없다면 나의 의식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는 나의 죽음은 나로부터 모든 의미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39쪽

혼자됨이 생명체의 객관적 존재조건을 지칭한다면 고독은 그러한 혼자된 존재조건의 주관적 체험을 가리킨다. 체험은 발달된 반성적 의식을 전제하며, 오직 인간만이 그러한 의식을 갖춘 동물이다. 인간만이 자신의 혼자됨이라는 존재조건을 '고독한' 것으로 체험할 수 있다. 어떠한 동물의 세계에도 고독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독'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해당될 수 있는 말이다. 인간만이 고독할 수 있는 동물이다. 고독이 혼자됨에 대한 인간의 반성적 의식상태를 말하지만 혼자됨에 대한 그러한 반성적 의식이 곧 고독이라는 의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45쪽

고독은 자신의 곤경에 대한 남들의 사회적 무관심 속에 놓여있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인간의 상황이며, 고독감은 한 인간 혹은 한 인간 집단이 그러한 상황에서 혼자만으로 감당해야하는 고립감, 쓸쓸함, 아픔의 의식이다. 고독은 내가 참여하고 싶은 사회 즉 인간 공동체 더 정확히 말해서 내가 남들과 인간으로서 공유하고자 하는 삶의 축제로부터 사회저으로 소외, 제거된 상황,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빚어내는 인간적 아픔이다. -47쪽

자살찬양은커녕 자살을 부정해야하는 다른 이유로 자살행위가 생명일반 특히 인간 생명의 가치를 부정함을 함의한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자살행위가 자살자 본인의 생명의 가치만이 아니라 모든 가치의 부정을 의미한다고 하는 이유는 가치의 전제조건인 인간의 의식의 부정 내지는 소멸을 함의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 역시 살아남기를 원하고, 어떤 경험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제 3자들 즉 사회의 이유가 될 수 있어도 자살자 본인에게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가치의 부정 혹은 의미의 부재를 따지는 행위 자체는 살아 있는 자들의 문제일뿐이지 자살한 본인 자신에게는 전혀 무의미하다. -55쪽

'가짜'에는 '사기'라는 의도가 은폐된다. 그것은 자신의 부당한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포장된 복제품이다. 나나 다른 모든 이들이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서로 다 같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내 목에 걸린 아름다운 진주 목걸이, 성형수술로 아름다워진 코, 눈, 입등은 가짜가 아니라 일종의 화장이며 장식이다. 나의 상품이 복제품이라는 것을 나나 남들이 모두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내가 팔고 남이 샀다면 그것은 가짜가 아니라 그냥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태원에서 매매되는 복제품 가운데 많은 것들은 '가짜'가 아닌 그냥 복제품이다. 복제품이 원본이 아니라 복제품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공개적으로 밝혀진 것이라면 그것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와 같은 뛰어난 복제품일 따름이다. 복제품이 어떤 이유에서이든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복제품이 아니라 원본인양 행세를 할 때 비로소 가짜라는 범주에 속한다. '가짜'는 어떤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속이고자 하는 비도덕적 동기를 함축한 특정한 종류의 복제품을 지칭한다. 복제품이 원본보다 질적으로 더 뛰어날 수도 있지만, 가짜와 진짜의 차이는 그런 물리적 및 기술적 속성과는 상관없이 복제품을 제조하고 소유하고 유통시키는 의도에 있다.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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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이문 교수님은 저의 중학시절 독서신문에서 이분의 글을 접한 후
평생 독자가 되었답니다.

마늘빵 2006-11-2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뒤늦게 접했지만 주요 저서들을 찾아 읽어보려고 합니다. ^^
생각하는 삶에 대한 글들이 좋습니다.
 
지식의 성장 살림지식총서 72
이한구 지음 / 살림 / 200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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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서, 또 이 책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일상용어로 최대한 쉽게 풀어쓰려고 했다. 지식의 성장을 논의하면서 끝까지 견지한 나의 입장은 이것이다. - 지식의 성장은 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한 조건들을 우리는 제시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앎이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증해주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이성은 언제나 틀릴 수 있으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적 진리를 소유할 수 있다는 치명적 자만에 빠져서는 안된다" 라고.

  저자는 이 얇은 책자를 통해서 지금까지의 지식의 성장의 역사를 간단하게 훑어보며, 지식의 종류와 이에 대한 각각의 의견, 서로에 대한 비판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지식은 크게 두 가지, 대상적 지식과 기술적 지식으로 나뉘어지며, 대상적 지식이라는 것은 표상적 지식 또는 명제적 지식이다. 이는 마음 속에 떠오르는 대상에 대한 상으로 이를 알기 위해서는 대상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야한다. 기술적 지식은 대상에 관한 어떤 정보를 갖는 것은 아니며, 규칙이나 규범에 따라 행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안다고 했을 때, 그 '안다'는 개념은 내가 자동차의 구조원리와 작동원리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는 단지 내가 자동차를 몰고 달릴 수 있다는 것, 그 행위를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지식의 종류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해 저자는 지금까지의 지식이 성장해온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합리적인 지식의 모형이라 여겨지는 반증주의 인식론은 비판적 합리주의가 강력히 주장하는 이론이며, 이는 우리의 삶과 실천이 비판적 이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독단적 이성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독단적 이성이 이성의 절대적 확실성을 주장하는 데 반해, 비판적 이성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오류가능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비판적 합리주의는 객관적 진리를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 인간에게 불가능하므로 판단을 보류하자 라는 회의주의도 아니며, 진리는 그것을 파악하는 자에 의존하므로 절대적 진리란 없다고 이야기하는 상대주의도 아니다.

  정리하자면, 비판적 합리주의는 독단주의와 회의주의도 아니고, 상대주의도 아니며, "이성의 오류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오류를 제거함으로써 우리가 진리로 점차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주장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거쳐, 20세기 대표적 철학이론인 논리 실증주의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검증가능성의 원리를 제기하며, 모든 의미 진술은 두 가지, 경험적 진술과 동어반복적 진술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험적 진술은 일상생활의 사실적 진술을 포함, 자연과학의 진술을 말하며, 동어반복적 진술은 수학이나 논리학에서 등장하는 개념에 관한 것을 의미한다.

  이어서 이런 지식이론들을 소개하면서도, 흄, 러셀 등의 철학자들이 고민했던 바들을 소개하고, 객관적 진리를 얻기 위해 치고 받고 논쟁을 거친 지식의 역사를 소개한다. 과학과 비과학, 귀납이론과 연역이론, 반증가능성 등등. 이 책은 철학의 한 분과인 과학철학, 그리고 인식론을 공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알고 넘어가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내용을 숙지한 뒤에 정식 입문서를 본다면 그 책이 더 쉽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인식론과 과학철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단지 지식의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져왔는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이 책 하나로 충분하지 싶다. 차근차근 저자가 소개하는 대로 따라가면 그다지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p.s. 읽을 때는 다 이해 됐는데 꼭 보고난 뒤에는 기억이 안나는 이것은 뭘까. 읽으며 쉽게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지금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건 별로 없다.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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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를 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아프락사스님 저의 서재에 들러주셨더군요.
고맙습니다.
 
토론은 기싸움이다 - 탁석산의 글쓰기 5 탁석산의 글쓰기 5
탁석산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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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 제 5권 완결판. 1권에서 글쓰기 뭔지조차 몰랐던 멘토를 만난 현민은 4권을 통해 직장에서 보고서 쓰는 법, 프리젠테이션 하는 법을 익히고, 글짱을 거쳐 말짱에 이른다. 토론은 기싸움이다. 현대사회는 글도 중요하지만 말도 중요하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말을 잘 하는 만큼 대접받는다. 연봉협상에 있어서, 면접에 있어서 머뭇머뭇 말을 못하고, 집단토론에서 조용히 있다 토론이 끝나면 그제서야 휴 하고 한숨을 내쉬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연봉협상에 있어서도 말을 못하면 다른 능력이 있어도 제 몸 값을 받지 못한다. 협상은 말에서 이루어진다.

  제 5권 <토론은 기싸움이다>에서 탁석산은 글 뿐 아니라 말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1권에서 멘토에게 글쓰기가 뭐에요, 물었던 현민은 이제 글짱을 넘어서 말짱까지 넘보고 있다. 또한 탁석산은 과감히 소피스트를 자청하며 제자 소피스트를 기르겠노라 말한다. 오늘날은 소피스트의 시대이니 각자 소피스트가 되도록 노력하라.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는 소피스트들이 많았다. 이들은 다른 말로 궤변론자로 불리기도 하며 진리를 추구했던 소크라테스에 비해 안좋은 이미지로 찍혔지만, 지금은 현실이 다르다. 진리를 추구하는 소크라테스는 딱 밥 굶기 쉽상이다. 하긴 당시에도 소크라테스는 그리 부유하진 않았던 듯 하다. 소피스트=궤변론자, 심하게 하면 말로 사기치는 녀석들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소피스트가 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이렇다. 오늘날의 법원이 있고, 판사가 있고, 배심원이 있지만, 얘들은 누가 나를 고소하면 내가 잘못했든 안했든 간에 일단 소송이 걸렸기 때문에 법원에 출두해서 변론을 해야했다. 그런데, 말을 못하는 녀석은 죄를 지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말빨에 놀아나는 판사와 배심원들 때문에 없던 죄가 생겨버린다. 환장할 노릇이지. 그러니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칼쓰는 법을 배울 것이 아니라 말 잘하는 법을 배워야했고, 소피스트들이 차려놓은 학원은 그러니 장사가 잘 될 밖에 없었다.

  한 일화가 있다. 한 제자가 스승을 고소했는데, 제자는 스승에게 수업료를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왜냐면 자기가 재판에서 이기면 이겼으니깐 안내도 돼고, 지면 스승이 날 제대로 가르친 것이 아니니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반박했다. 아니지 아니지 너는 재판에서 나한테 지면 졌으니까 수업료를 내야하고, 이겼으면 내가 널 제대로 가르친 것이니 나한테 수업료를 내야지. 과연 누가 재판에서 이겼을까?

  현대 사회에서는 누가 날 고소한다고 바로 법원에 출두해 나를 변론할 필요는 없지만, 말을 잘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대학 면접에서, 또 취업시 집단토론, 면접에서, 여자 꼬실 때, 강의실에서 앞에 나가 발제할 때 말을 못하면 그만큼 손해본다. 글도 중요하지만 말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웅변학원에 다닐 필요는 없다. 아주 어릴 적 웅변학원에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면, 여기서는 말을 잘하는 방법을 가르치긴 하지만 논리적인 말하기가 아니라 우렁한 목소리로 강당에 쩌렁쩌렁하게 울리게 하기 이런 거였다. 그것도 말 잘하는 방법 중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부족해. 부족해. 많이 부족해.

  탁석산이 애초 1권에서 이야기했던 논증의 구조는 말하기에도 곧바로 적용된다. 보고서를 쓸 때 논증의 형식으로 1/4만 쓰라고 했던 4권에 이어, 이 책의 말하기에서도 기본은 논증이다. 그 다음이 크게 말하기, 목소리에 색깔 입히기, 퍼포먼스 잘 하기 등등의 주변기술에 대해 가르친다. 탁석산은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런저런 잡소리를 많이 한다. 글은 딱 글만 주어져있으니 그것만 보면 되는데, 말은 그렇지 않다. 앞에 나가 말하는 사람, 그리고 토론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와 외모, 옷차림, 행동거지까지 다 보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는 순수한 논증만으로는 그칠 수 없다.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탁석산은 이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4장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가이드'에서 이를 안내하고 있다.

  이제 다 배웠다면 연습에 연습을 거치고, 또 반복 숙달하여 글짱, 말짱으로 탄생하는 길만 남았다. 그리고 아 이제 됐다 하산하자 생각이 들 때, 나도 한번 탁선생을 고소해볼까? 책 값 내놓으라고. 이기면 이겼으니까 책 값 받고, 지면 제대로 못배웠으니 수업료 돌려받아야지. 근데 소송비가 더 들지 싶다. 안하는게 이득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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