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 복거일의 영어 공용론 SERI 연구에세이 3
복거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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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망의 가치가 꼭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해서 늘어나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사용자 수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20쪽

아주 적은 사람들만이 쓸 때, 한 언어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쓰게 되면서, 그것의 가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21쪽

영어를 모국어로 가져서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민족어로 모국어로 가져서 영어를 덜 잘하는 사람들보다 사회적 경쟁에서 훨씬 유리할 것은 분명하다. -50쪽

물론 이런 상태가 민족어들의 완전한 쇠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사라지기엔 민족어들이 담은 민족의 역사와 지적 자산들은 가치가 너무 크다. 그래서 민족어들은 대중들의 외면을 받지만 전문가들에 의해 쓰이고 보존되고 이어질 것이다. 그런 상태에선 민족어들은 거의 진화하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박물관 언어'로 남을 것이다. -51쪽

이 사실은 사람들이 인종과 관계없이 어떤 언어든 배워서 쓸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프랑스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쓰고 한국 사람들이 조선어를 쓰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프랑스어나 조선어를 쓰는 사회에서 태어나 그것들을 모국어로 배웠기 때문에 그것들을, 그리고 그것들만을, 잘 쓸 수 있는 것이다. 부모와 다른 모국어를 유창하게 쓰는 어린 아이들은 그런 사실을 떠받쳐주는 증거들이다. -58쪽

오랫동안 사람들은 자기 종족의 언어만을 배우면 됐다. 그래서 사람의 뇌에서 언어를 관장하는 부분은 한 언어를 다루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고대 문명이 일어나고 다른 종족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지자 점점 많은 사람들이 둘 이상의 언어들을 배워야했다. 그렇게 갑자기 닥친 상황에 맞춰 뇌가 빠르게 진화할 수는 없었으므로, 뇌는 첫 언어가 아닌 차후의 언어들을 관장하는 일을 원래 언어를 관장하던 부분이 아닌 다른 부분으로 돌렸다. 그래서 외국어를 쓸 때, 우리는 수학 문제를 풀 듯 의식적으로 조립해서 쓰는 것이다. -59쪽

언어는 사람의 삶에서 워낙 중요한 도구고 배우기가 무척 어렵고 습득에 많은 자원이 들어가므로, 컴퓨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전환 비용이 높다. 이제 결정적 시기 가설은 언어의 전환 비용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히, 국제어를 모국어로 갖지 않는 사람들은 겹으로 불리하다. 그들은 모국어말고도 국제어라는 언어를 하나 더 배워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생물학적 조건 때문에 그 국제어를 제대로 배워서 쓸 수도 없다. -61쪽

영어 공용은 정부가 시민들에게 영어를 쓰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고, 조선어의 독점적 지위를 허물어서, 시민들이 영어를 쓰고 자식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따라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영어의 습득과 사용에 관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자연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언어 시장의 자유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91쪽

국제어인 영어를 제대로 못 쓰면, 남들에게 뒤쳐져 점점 큰 서러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기를 쓰고 영어를 배우려는 것이다.
얼마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는 우리 역사학자들의 기자 회견과 심포지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학자는 "미국의 교과서 집필자들이 한국사에 관해 제대로 쓰고 싶어도 한국에서 펴낸 한국사에 관한 영어 자료가 없어서 부득히 일본 역사책을 참고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우리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는 영어를 잘 써야 한다. -108쪽

언어는 본질적으로 도구다. 언어가 사람에게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리고 모국어가 우리에게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언어가 도구라는 사실과 사람들의 언어 구사 능력은 특정 언어에 매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언어는 한 사회의 문화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고 상당한 정도까지 그것을 규정한다. 그러나 그 사실이 한 사회가 공용어를 바꾸면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언어를 모국어로 가진 사람들이 그것에 큰 애착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것을 신성한 우상으로 떠받드는 것은 어떤 명분과 이름으로 치장되더라도 비합리적이다. -111-112쪽

'만일 막 태어난 당신의 자식에게 영어와 조선어 가운데 하나를 모국어로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자식에게 어느 것을 권하겠는가? 한쪽엔 영어를 자연스럽게 써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일상과 직장에서 아무런 불이익을 보지 않고 영어로 구체화된 많은 문화적 유산들과 첨단 정보들을 쉽게 얻는 삶이 있다. 다른 쪽엔 조상들이 써 온 조선어를 계속 쓰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영어를 쓰는 것이 힘들고 괴로워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기피하고 평생 갖가지 불이익을 보고 영어로 구체화된 문화적 유산들을 거의 향유하지 못하고 분초를 다투는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얻지 못하고 뒤늦게 오류들이 많은 번역으로 얻어서 그것고 이용가능한 정보들의 몇십만분의 일이나 몇백만분의 일만 얻어서, 세상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삶이 있다. 당신은 과연 어느 삶을 자식에게 권하겠는가? 아예 그에게서 선택권을 앗겠는가? 당신의 자식은 아직 조선어를 배우고 쓰지 않아서 조선어에 대한 물질적, 심리적 투자가 없고, 자연히, 조선어에 별다른 애착을 지니지 않은 터에?' -119-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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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1-24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영어 잘하시나봐요. 저는 영어 잘하는 사람이 제일 부럽거든요.
내일도 변함없이 기쁜 하루를 보내시기를.........

마늘빵 2006-11-2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해십니다. 전 영어 공용화 반대입장이고, 이와 별개로 영어도 거의 못합니다. 고등학교에서 배운거 이래로 영어를 제대로 공부한 역사가 없습니다. ^^ 영어에 대한 반감으로 앞으로도 절실히 필요치 않은 이상 그닥 배우고싶지 않습니다.

비로그인 2006-11-2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세대는 읽고 쓸 줄만 알면 되었는데
요즈음은 듣고 말하기가 중요한 시절이 되었습니다.
저의 아이들은 잘 따라합니다.
아마 저는 영어 공용화 되기전에 죽을 겁니다.. 하하


marine 2006-11-2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고종석씨가 쓴 "우리 모두는 그리스인이다" 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마늘빵 2006-11-24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씨도 영어공용화에 대해선 복거일씨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죠. 복거일도 이 책에서 고종석을 인용합니다. <감염된 언어>를 통해서.

야클 2006-12-0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영어공용화'로 인터넷 검색해보면 주거니 받거니 서로 논쟁한 글들이 많아요. 아주 재미있던데. 이윤기님의 글도 인상 깊고요. ^^

마늘빵 2006-12-02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 뒤에 부록으로 그 글들 다 모아놨네요.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