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복거일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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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언어들에서 근본적인 것은
그것들이 어떤 것을 기술하는 데 쓰일 수 있고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어떤 것은, 어찌 되었는지, 이 세상이다.
늘 그리고 거의 전적으로 매체에
- 안경을 닦는 일에 -
관심을 쏟는 것은 철학적 잘못의 결과다.
(칼포퍼)-7쪽

민족주의적 열정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적절한 수준에 머물면, 사회의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되면, 지나친 이기주의적 행동이 개인에게 해롭듯이, 정치적 짐이 되어 오히려 사회의 생존과 발전을 해친다. 자연히 그것을 현명하게 쓰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을 잘 쓰는 길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을 시민들의 자아를 넓히는 데 이용하는 것일 터이다. 민족주의는 궁극적으로 확대된 이기주의이므로, 시민들이 일상에서 지닌 '나'라는 개념의 외연을 넓히는 데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 중략 ...
동해의 이름을 조선해로 바꾸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보다는 그렇게 조그맣지만 실속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일본에게 앗긴 것들을 되찾는 길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천년 전 정이 선생이 갈파한대로, "마음에 사무쳐 목숨을 버리기는 쉽지만, 조용히 의로움을 이루기는 어렵다." -45-46쪽

자유주의는 개인들의 자유를 큰 가치로 여기고 개인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사회적 강제를 줄이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 공평하게 대하려고 애쓴다. 반면에, 민족주의는 민족적 특질들에 따라 개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본질로 삼는다. 그것은 나라를 이루는데 주력이 되는 민족에 속하는 개인들이 소수 민족들에 속하는 개인들보다 더 큰 권리를 갖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민족이 정의하기 어렵고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실제로 민족을 구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민족주의자들에겐 별다른 무게를 지니지 못한다.
따라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조화시키는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아니 한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그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자유주의는 개인들의 자기 이익 추구를 배척하지 아니 한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리라고 여겨지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도록 허용된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민족국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런 이익의 추구가 다른 민족국가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약만을 둘 따름이다. 거기에 서로 화해하기 어려운 두 이념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65-66쪽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민족구가가 개인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민족국가가 개인들로 이루어졌고 따로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므로, '국익'이란 말은 궁극적으로 민족국가를 이룬 개인들의 이익 집합을 나타내는 '간략한 표현'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국익'은 개인들의 이익들의 함수다. -66쪽

세계가 점점 긴밀하게 통합되고 서양과 우리 사회 사이의 지식의 물매가 여전히 싼 터라, 번역투는 점점 우리 문체의 중심을 차지할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점점 닦여가면서, 그것은 우리 언어 생활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간단한 예로서, '한잔의 술'은 번역투고 '술 한잔'이 우리 말투이므로, 전자를 쓰지 말자는 주장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전자에선 '한잔'에 그리고 후자에선 '술'에 강세가 주어진다. 따라서 그 둘을 다 쓰되 구별하는 것이 우리 말을 기름지게 하는 길이다). 실은 번역투는 우리 언어의 생장점의 한 측면으로 진화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124-125쪽

궁극적으로 영어가 단 하나의 국제어로서 거의 모든 부면들에서 쓰일 것이다. 반면에 민족어들은 점점 활력을 잃고서 차츰 사라질 것이다. 현존하는 3천 개 내지 6천 개 가량의 언어들 가운데 백 년 안에 반이 쇠멸하리라는 추산도 나왔다.
...중략...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이런 상태가 민족어들의 완전한 쇠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쉽게 사라지기엔 민족어들은 너무 큰 지적 자산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민족어들은 대중들의 외면을 받지만 전문가들에 의해 사용되고 보존되고 계승될 것이다. 그런 상태에선 민족어들은 거의 진화하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박물관 언어'들로 남을 것이다. -173-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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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3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27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에서 살다 - 바보 이반의 산 생활을 적은 생명의 노래
최성현 지음, 허경민 사진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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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로 익히 알려진, 바보 이반 최성현의 또다른 삶 이야기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철학을 공부하다가 산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고, 스무해가 지났다. 이 책은 산 스무살이에 대한 삶의 기록이다. 홀로 그곳에 멀찌감치 문명과 떨어져 살며 무슨 즐거움을 찾고자 했을까.

  사람들은 자주 내게 이렇게 묻는다.
  "무슨 재미로 산에 살아요?"
 
 그 하나는 나를 찾아오는 풀과 나무, 새, 벌레, 짐승 등과 만나는 재미다. 움직일 줄 모르는 풀과 나무가 어떻게 내게 온다는 것인지 짐작이 안가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잘 살펴보면 뜻밖에도 많은 나무들이 움직인다. 제 힘으로, 혹은 남의 힘으로.

  책 한장 한장에는 최성현씨가 스무해 동안 홀로 산에 살며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기록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 순수하게 산살이를 지내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우리가 보기에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즐거움을 느낀다. 개구리밥과 물옥잠, 뽕나무 아래 찾아온 밤나무 등등 나라면 무심코 지나칠 만한 것들을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뽕나무를 찾았더니 밤나무가 나오고, 밤나무를 찾았더니 또 무엇이 나오고, 자연은 그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자연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작은 어느 것 하나를 지나쳐버리기 때문이다.

  매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반복되고, 뜨거운 여름살이, 추운 겨우살이 준비하는 것도 이제 지겨울 법도 한데 그는 결코 산 살이에 실증을 내지 않는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 삶이 무엇이 그리도 좋을까. 하지만 그 시골 홀로 집짓고 사는 그곳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듯 하지만, 밖에 쭈그리고 앉아 땅을 보고 있노라면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 기다리고 있다. 겉으로 별다른 일이 없다고 하여 따분하고 심심한 인생살이라고 보는 것은 편견이다.

 그는 자연을 보고 느끼고 살며 삶의 철학을 깨닫기도 한다. "환경문제는 어느 일부분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공범인 것이다. 공해 물질을 만들어 내는 공장도, 거기에 동참하고 있는 과학자도, 그것을 새로운 방향으로 풀어가지 못하는 정부도, 그것을 사서 쓰는 소비자도 잘못인 것이다. 누가 누구를 탓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 사서 쓰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놈이 나쁘다'라는 방식으로는 안된다. '저도 사실은 이렇게 잘못된 것이 있더군요' 라는 식의 자기 성찰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고발은 쉽고 고백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에는 고발의 방식이 많다 하지만 고발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고발과 고백은 차원이 다르다. 고발은 적을 만들지만, 고백을 통해서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고백은 자기를 열고 상대방을 연다. 우선 자기 생활을 돌아보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때때로 만나 그것을 고백함으로써 서로 정보를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

  사물을 보는 깊이있는 시각은 책을 많이 읽고 사색함으로써, 홀로 절에 틀어박혀 도를 닦으면서도 길러지는 것이지만, 최익현과 같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면서도 -그것이 벌써 이십년이지 않은가- 길러진다. 젊은 날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그때 그가 공부한 철학적 지식이란 것과 그가 이십년 동안 산에서 살며 자연스레 삶 속에서 체득한 인생철학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양서를 읽거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을 기르고, 결국 나를 돌아보기 위함일진대, 바보 이반 최익현은 그것을 산살이를 통해 길러냈다.

  산으로 가는 산책은 작은 출가와 같다.
  새로운 사람으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자꾸 걷는다.
  본 것에서 일어나던 생각들이 떨어져 나간다.
  들은 것에서 일어나던 생각들이 떨어져 나간다.
  말한 것에서 일어나던 생각들이 떨어져 나간다.
  돌아오는 길에는 몸과 마음이 가볍다.
 

  그는 이렇게 매일매일 작은 출가를 경험하며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산책길에 본 것에서, 들은 것에서, 말한 것에서 일어나던 생각들은 떨어져나가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다.  매일매일이 그에겐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고, 새로운 인생이다. 오늘 밤나무를 보고 느낀 것과 내일 똑같은 밤나무를 보고 느낀 것은 같지 않다.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을테니까. 이렇게 하루를 지내다보면 어느새 밤은 어둑해지고, 다시 또 따스한 햇살이 마당을 비춘다. 마당이랄 것도 없다. 여기 모든 곳이 내 집이니. 하지만 또 내 집이 아니다. 이곳은 그저 내가 머물다 가는 곳이니.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느낀다. 정말 존경스럽고 부러운 삶이지만, 결코 문명과 세속이 찌든 내가, 또 매일매일 복잡하게 돌아가는 이 곳이 싫지 않은 내가, 이곳을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세속을 떠나 자연과 더불어 살며 대자연의 이치와 신비로움을 느끼고 싶은 마음 한 구석에 있으나, 나에겐 그것은 언제고 구석에나 머물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한 없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곧 현실로 돌아와 오늘의 뉴스를 뒤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잠시 책을 읽으며 꿈을 꾼 듯 하다. 여기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이렇게 책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바삐 돌아가는 나의 일상에 잠시 마음의 휴식을 가져다준 책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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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50대의 힘
탁석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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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제 그도 많이 늙었구나 싶다. 50대라니. 하긴 탁선생이 강호에 발을 들여놓은지도 벌써 꽤나 시간이 흘렀지. 2000년에 강호에 데뷔했으니 올해 2006년, 딱 6년 됐다. 그렇담 그가 첫 책인 <한국의 정체성>을 낸 것이 - 논문으로 쓴 흄의 인과론에 관한 책도 있지만 이건 제외 - 40대였단 이야기가 된다. 40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저술가라는 칭호를 받을 때도 됐다. 그간 낸 책들이 적지 않다. 한국의 정체성, 주체성을 비롯해서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철학 읽어주는 남자> <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전 5권), 그리고 이번에 나온 <대한민국 50대의 힘>까지. 권수로 하면 총 11권이고, 시리즈를 한 권으로 한다면 여섯 작품이다. 일년에 하나씩으로 친다면 그다지 활발한 저술활동을 했다고는 볼 수 없겠구나.

  그도 이제 어느덧 공자가 말한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지천명'이라는 50대가 되었고, 사회와 국가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주변에 널려있는 같은 또래의 개개인의 사람으로 돌려졌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 분류되지만 역시나 내 짐작대로 그것은 책을 팔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고, 책의 내용을 뜯어보면 자기계발서라기보다는 사회학 쯤으로 분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같은 50대를 살아가고 있는 9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탁석산이 느낀 바들, 그리고 평소 생각해두었던 50대의 인생살이에 대해 풀어놓는다.

  그러나 단순히 한국의 50대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현재 한국 사회에 있어서 50대가 해줘야 할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탁석산에 따르면 지금은 네트워크 시대이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다르기 때문에 중앙 연산 장치를 바꾸는 것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고, 모든 것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한국 사회는 예전에는 모든것을 통제하는 중앙 연산 장치가 존재했고 다른 조직이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등 컴퓨터 구조와 비슷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보다는 인간의 뇌에 가깝다. 각종 시민 단체와 수많은 연대가 사회에서 발언권을 얻고 있고, 위계질서에 의해 지탱되던 계급사회는 평등한 관계를 토대로 하는 네트워크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 시대에서 어떻게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가. 탁석산은 이에 대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세대로 지금의 50대를 손꼽고 있는 것이다. 그의 50대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의 50대들은, 한국의 1950대에 태어난 이들이고, 이들은 첫째, 자연연령으로 볼 때 모든 세대를 연결하기에 적합한 세대이다. 왜냐면 현재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50대는 딱 중간에 위치한 세대이다. 둘째, 이들은 해방 이후에 태어나 식민지와 전쟁을 겪지 않아 비교적 자유로우며, 가난에서 풍요로,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국가주의에서 세계화로 모든 것이 요동치던 시대를 거치며 성장한 세대이기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다른 세대보다 깊다. 셋째, 말보다 실천의 힘을 가지고 있는 세대로서, 이념에 함몰되지도 않고, 실천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세대이다. 넷째, 혼자 잘살기보다 더불어 살기에 익숙한 세대이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세대이다. 다섯째, 지난 세월 열심히 살아왔기에 가족과 국가에 빚이 없다. 국가에서도 할 만큼 했고, 가정에서도 할 만큼 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며 희망하는 바람직한 사회를 형성하는데 사심없이 헌신할 수 있는 나이이다.

   탁석산은 스스로 이 책은 축 쳐진 그대 50대여 힘내라, 아니라 니들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고 쓴소리를 하는 책이라고 소개한다.  이 책은 확실히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50대의 위치란 어떤 의미를 지니며, 그들이 지금껏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고 있다. 탁석산 스스로는 50대여 힘들내라 는 메세지를 날리는 책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 책을 읽은 50대들은 자신들이 이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막대한 임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깨우치게 되리라 본다. 그리고 축 쳐진 그대의 어깨를 빳빳이 펴고 당당하게 오늘을 살아가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각각의 개인으로서의 50대의 인간을 살펴본다기보다는 50대라는 단체의 특성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세밀하게 짚지 않고 뭉뚱그려 넘어가는 경향이 있긴 하다. 50대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50대를 지칭하진 않는다. 탁석산이 이 책에서 지칭하고 있는 50대는 시대의 주역으로 살아왔으나 지금은 팽개쳐진 그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서 살아왔던 50대를 지칭한다. 이 책을 보며 다소 비약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독자들을 위한 오해풀이 정도로 보면 좋을 듯 하다. 내가 탁석산에 대한 오해를 제대로 풀어주고 있는 것인지는 또 모르겠지만.

  이 책의 주된 내용은 탁석산이 인터뷰한 50대의 입이 아니라 탁석산 본인의 입이다. 대한민국 대표 50대 아홉명의 목소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50대에 접어든 탁석산의 목소리로 이루어져있다. 9명의 입은 탁석산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거쳐가는, 혹은 도움을 주는 이들일 뿐이다. 그들은 목소리는 분명 이곳에 소개되어있지만 그것이 주가 되지는 않는다. 탁석산은 자신이 하고픈 말을 하기 위해 그들의 입을 빌린 것 뿐이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 책은 '대한민국 50대의 힘'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 50대 탁석산의 힘'이라고 제목을 붙여야 옳을 것이다.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책이다. 대한민국의 50대의 위상과 역할에 관한 책이면서, 50대 접어들은 탁석산 본인의 목소리를 높이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아들과 딸이 50대를 살고 있는 아버지에게, 회사 사장이 함께 50대를 살아가는 부하직원이자 동료인 그들에게, 50대 아내가 50대 남편에게, 또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해야 할 책이다. 자기계발서로 분류해 이 책을 팔아보고자 하는 출판사의 욕심은 그런 점에서 나쁘지 않다. 이 책을 읽고 힘 빠진 그들이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대표 50대 탁석산은 이렇게 활발하게 저술활동을 펼치며 사회적 목소리를 키워나가고 있지 않은가.

 

  두 가지 더.

 하나. 철학자 탁석산의 영역은 어디까지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지금껏 그가 낸 책은 11권이지만 각기 모두 다른 분야를 향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꽤나 심각한 이야기를 들려주더니(한국의 주체성, 정체성), 이어서 민족주의를 이야기하고(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대중적인 철학서를 내놓기도 하며(철학 읽어주는 남자), 쉬운 논리학 교재를 내기도(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이제는 자기계발서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주제를 불문하고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가지 바램은 그가 <한국의 정체성>이 나오던 그 시절, 대학 강단에서 필자를 비롯한 학생들 앞에서 앞으로 일본에 관한 책을 내리라 이야기했는데 이 책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평소의 지론대로라면 일본에 관한 책이 나오면 그 파장 또한 <한국의 주체성> 과 <한국의 정체성> 못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많은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을지도.

둘. 이 책의 202쪽부터 시작되는 꽤나 긴 분량에 할애하고 있는 '사상과 생활의 네 가지 조합'이라는 부분에서 탁석산은 위험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사상과 생활면에서 우파와 좌파로 나누어 네 가지 조합을 만들어내고, 그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우파적 생각과 좌파적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활과 사상 중 어느 것이 중요할까? 나는 생활이라고 본다. 사상이 껍데기라면 생활은 삶 자체이다. 아무리 사상적으로 뛰어났다 해도 생활로 낙제점이라면 결코 사회를 이끌 수 없다. 박정희에 관한 논쟁이 아무리 무성해도 결국은 박정희가 개인적으로 남긴 재산은 별로 없다는 명제로 사실상 논쟁은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대목을 통해, 박정희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결국 박정희는 사상논쟁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생활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개인적으로 축적한 돈이 없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닌가. 매우 위험하다.

  생활에서 좌와 우를 나누는 기준으로 '검약과 정직'을, 사상에서 좌와 우를 나누는 기준으로 '인간 개조에 관함 믿음'으로 기준을 세우고, 검약과 정직을 실천하는 쪽을 생활에서의 좌파로, 인간개조에 관해 믿는 쪽을 사상에서의 좌파로 분류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삼청교육대를 통해 인간개조를 시도한 전두환은 사상적인 좌파가 되고, 생활면에서 검약과 정직을 실천한 박정희는 생활면에서 좌파가 된다. 너무나 단순한 기준 설정과 이를 적용하면서 매우 위험한 발언들이 눈에 보이고, 이러한 기준설정으로 본래적 의미의 좌파와 우파 개념에 대해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을까 싶다. 좌파와 우파에 대해선 워낙에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해석이 존재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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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2-1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탁선산씨는 논리학 관련 책도 냈으면서도, 자신이 논리적인 주장이 아니라 우기기식 주장을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요. 안 그래도 요즘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내용이나 구성은 유용한데, 세부적으로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

짱꿀라 2006-12-17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생활에서 좌우로 나뉘는 검약과 정직이 무엇보다도 큰 깨달음을 줍니다.

마늘빵 2006-12-17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 저도 그런거 같아요. 논리학을 공부했으면서 비논리적인 경우가 많아요. 음. 탁석산이 티비에 나온거 본지는 오래된지라 실제로는 어떤 말들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산타님 / 네. 인정해야 할 부분이지만, 탁석산의 좌우 구도 기준은 좀 문제가 있었어요. 지나치게 단순화 시킨 경향이 있어요.

이리스 2006-12-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회사에 강연 왔을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원고 청탁한 것 받고 나서는 엄청 실망했지. ㅎㅎ 그 이후론 잘 안보게 되더라구.

마늘빵 2006-12-1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누나 / 회사 강연도 했어? 여기저기 잘 다니네. 이 사람 안티세력이 좀 많지. 한편으로는 인정해주는 이들도 많고. 학계나 학계 밖에서나 이 분이 어느 집단에도 속해있지 않기에 따돌려지는 거 같긴 한데, 자신이 공부한 철학적 지식을 가지고 '한국학'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해주는 분위기지. 그 고민과 성찰이 꽤나 깊이있고 신선하기 때문에. 근데 무슨 원고를 썼어?
 
교육학개론 (한용진 외)
한용진 외 지음 / 학지사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이쪽 계열의 공부를 하다보니 원치 않아도 자꾸만 접하게 되는 교육학 관련 교재들이 널렸다. 교육심리학, 교육사회학, 교육철학 및 교육사, 교육공학 기타 등등 '교육'자만 들어가는 교재들은 딱 시험 볼 때 빼고는 절대 안보게 되는 녀석들임에도 불구하고 팔아준 책만 해도 책꽂이 한 칸이다. 교육학에 있어서 가장 기본은 교육학개론이다. 교육학개론에서는 교육학의 세부적인 영역들 심리학, 철학, 사학, 공학 등등을 개괄적으로 소개한다.

  크게 교육학개론 책은 저자가 지적했듯이 두 종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기본형이요, 하나는 주제형인데, 전자가 교육학 과목을 처음 접하는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후자는 그래도 교육학이란 것에 대해서 어설프게나마 접해본 경험자들이 접하기에 적합한 책이다. 저자가 '책 머리에' 소개했듯이 한기언의 <교육학개론>이 전자의 역할을 하고, 후자에 적합한 책으로는 김정환 외, <교육학개론>이 속할 것이다.

  현재 고려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 저자 한용진을 비롯  5명은 이 두 가지를 조합한 교육학개론 교재를 펴냈다. 흔히 이렇게 전문성과 대중성을 조합하려고 한 책들은 양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버림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양자의 장점을 취합하여 초보자나 경험자가 보기에 친절한 교재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1장 교육과 교육학' 부터 시작하여 인간학적 이해, 역사철학적 이해, 심리적 기초, 사회적 접근 등등 교육학의 세부영역들을 차례로 다루고, 과정과 공학, 생활지도, 행정, 교사론 나아가 대한교육과 청소년교육,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읽기 쉽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고, 때로는 저자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서 서술한 부분도 많이 눈에 띄나 그런 부분들로 인해 독자는 자신의 생각을 넓혀갈 수 있으리라 본다.

  또 이 책의 장점으로 뽑을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장이 끝날 때마다 소개되어있는 '함께 토론할 주제'의 영역과 '참고문헌' '함께 볼 만한 비디오' 등의 안내이다. 토론할 주제는 단순히 해당 장에서 습득한 이론을 되풀이하고 확인하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서술할 수 있는 문항들로 이루어져있고, 함께 볼 만한 비디오 또한 교사가 되려는 이들이, 또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유용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교육학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 비록 이번 학기 교육대학원 교재이긴 했지만 - 사서 한번씩 읽어볼 만한 책이다. 충분한 소장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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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대를 나왔더니 책장 한 쪽에 교육학 관련 도서들이 주욱 있어요.
두번 다시 안 보게되고 책장 자리만 차지하는 책들이죠.
교육학은 공부하기가 지루했고 점수도 별로 좋지 않았는데 이 책은 괜찮은가봐요?
리뷰를 읽어보니 소장할만하다 하셨는데 한번 보고 싶네요.

마늘빵 2006-12-1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 보지도 않은 책들만 주룩주룩 쌓여있습니다. 저도 교육학은 별로 성적이 좋지 않아요. 별로 정도 안가고.
 
교육학개론 (한용진 외)
한용진 외 지음 / 학지사 / 2006년 9월
절판


교육학개론은 교육학이라는 학문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과목이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교육학개론>의 목차를 보면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교육학의 하위 학문 영역을 순서대로 나열하여 각각에 대하여 개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학이라는 학문이 고민하는 주제들을 나열하고 이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는 방식이다. 전자를 기본형이라 한다면, 후자는 주제형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방식의 교육학개론은 각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즉 교육학이라는 과목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형 방식이 보다 이해하기 쉬운 면이 있으며,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제형 방식이 더 매력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본 교재는 위의 기본형과 주제형을 적절히 혼합하여, 두 가지 방식의 장점을 취한 종합형 교재로 편찬하였다.
(머리말 중)-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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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4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1학년때 교육학개론 처음 배웠는데,정말 재미없어서 수업 시간에 딴 생각하고 친구들하고 장난치고 했었어요.
이렇게 따로 책을 읽으시는것 보니 저와는 많이 다르시네요.

마늘빵 2006-12-1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녀요. 저도 딴 짓 합니다. 별로 재미없는 학문이에요. 마지 못해 하고 있어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