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50대의 힘
탁석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이제 그도 많이 늙었구나 싶다. 50대라니. 하긴 탁선생이 강호에 발을 들여놓은지도 벌써 꽤나 시간이 흘렀지. 2000년에 강호에 데뷔했으니 올해 2006년, 딱 6년 됐다. 그렇담 그가 첫 책인 <한국의 정체성>을 낸 것이 - 논문으로 쓴 흄의 인과론에 관한 책도 있지만 이건 제외 - 40대였단 이야기가 된다. 40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저술가라는 칭호를 받을 때도 됐다. 그간 낸 책들이 적지 않다. 한국의 정체성, 주체성을 비롯해서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철학 읽어주는 남자> <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전 5권), 그리고 이번에 나온 <대한민국 50대의 힘>까지. 권수로 하면 총 11권이고, 시리즈를 한 권으로 한다면 여섯 작품이다. 일년에 하나씩으로 친다면 그다지 활발한 저술활동을 했다고는 볼 수 없겠구나.

  그도 이제 어느덧 공자가 말한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지천명'이라는 50대가 되었고, 사회와 국가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주변에 널려있는 같은 또래의 개개인의 사람으로 돌려졌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 분류되지만 역시나 내 짐작대로 그것은 책을 팔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고, 책의 내용을 뜯어보면 자기계발서라기보다는 사회학 쯤으로 분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같은 50대를 살아가고 있는 9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탁석산이 느낀 바들, 그리고 평소 생각해두었던 50대의 인생살이에 대해 풀어놓는다.

  그러나 단순히 한국의 50대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현재 한국 사회에 있어서 50대가 해줘야 할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탁석산에 따르면 지금은 네트워크 시대이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다르기 때문에 중앙 연산 장치를 바꾸는 것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고, 모든 것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한국 사회는 예전에는 모든것을 통제하는 중앙 연산 장치가 존재했고 다른 조직이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등 컴퓨터 구조와 비슷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보다는 인간의 뇌에 가깝다. 각종 시민 단체와 수많은 연대가 사회에서 발언권을 얻고 있고, 위계질서에 의해 지탱되던 계급사회는 평등한 관계를 토대로 하는 네트워크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 시대에서 어떻게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가. 탁석산은 이에 대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세대로 지금의 50대를 손꼽고 있는 것이다. 그의 50대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의 50대들은, 한국의 1950대에 태어난 이들이고, 이들은 첫째, 자연연령으로 볼 때 모든 세대를 연결하기에 적합한 세대이다. 왜냐면 현재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50대는 딱 중간에 위치한 세대이다. 둘째, 이들은 해방 이후에 태어나 식민지와 전쟁을 겪지 않아 비교적 자유로우며, 가난에서 풍요로,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국가주의에서 세계화로 모든 것이 요동치던 시대를 거치며 성장한 세대이기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다른 세대보다 깊다. 셋째, 말보다 실천의 힘을 가지고 있는 세대로서, 이념에 함몰되지도 않고, 실천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세대이다. 넷째, 혼자 잘살기보다 더불어 살기에 익숙한 세대이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세대이다. 다섯째, 지난 세월 열심히 살아왔기에 가족과 국가에 빚이 없다. 국가에서도 할 만큼 했고, 가정에서도 할 만큼 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며 희망하는 바람직한 사회를 형성하는데 사심없이 헌신할 수 있는 나이이다.

   탁석산은 스스로 이 책은 축 쳐진 그대 50대여 힘내라, 아니라 니들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고 쓴소리를 하는 책이라고 소개한다.  이 책은 확실히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50대의 위치란 어떤 의미를 지니며, 그들이 지금껏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고 있다. 탁석산 스스로는 50대여 힘들내라 는 메세지를 날리는 책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 책을 읽은 50대들은 자신들이 이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막대한 임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깨우치게 되리라 본다. 그리고 축 쳐진 그대의 어깨를 빳빳이 펴고 당당하게 오늘을 살아가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각각의 개인으로서의 50대의 인간을 살펴본다기보다는 50대라는 단체의 특성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세밀하게 짚지 않고 뭉뚱그려 넘어가는 경향이 있긴 하다. 50대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50대를 지칭하진 않는다. 탁석산이 이 책에서 지칭하고 있는 50대는 시대의 주역으로 살아왔으나 지금은 팽개쳐진 그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서 살아왔던 50대를 지칭한다. 이 책을 보며 다소 비약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독자들을 위한 오해풀이 정도로 보면 좋을 듯 하다. 내가 탁석산에 대한 오해를 제대로 풀어주고 있는 것인지는 또 모르겠지만.

  이 책의 주된 내용은 탁석산이 인터뷰한 50대의 입이 아니라 탁석산 본인의 입이다. 대한민국 대표 50대 아홉명의 목소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50대에 접어든 탁석산의 목소리로 이루어져있다. 9명의 입은 탁석산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거쳐가는, 혹은 도움을 주는 이들일 뿐이다. 그들은 목소리는 분명 이곳에 소개되어있지만 그것이 주가 되지는 않는다. 탁석산은 자신이 하고픈 말을 하기 위해 그들의 입을 빌린 것 뿐이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 책은 '대한민국 50대의 힘'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 50대 탁석산의 힘'이라고 제목을 붙여야 옳을 것이다.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책이다. 대한민국의 50대의 위상과 역할에 관한 책이면서, 50대 접어들은 탁석산 본인의 목소리를 높이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아들과 딸이 50대를 살고 있는 아버지에게, 회사 사장이 함께 50대를 살아가는 부하직원이자 동료인 그들에게, 50대 아내가 50대 남편에게, 또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해야 할 책이다. 자기계발서로 분류해 이 책을 팔아보고자 하는 출판사의 욕심은 그런 점에서 나쁘지 않다. 이 책을 읽고 힘 빠진 그들이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대표 50대 탁석산은 이렇게 활발하게 저술활동을 펼치며 사회적 목소리를 키워나가고 있지 않은가.

 

  두 가지 더.

 하나. 철학자 탁석산의 영역은 어디까지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지금껏 그가 낸 책은 11권이지만 각기 모두 다른 분야를 향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꽤나 심각한 이야기를 들려주더니(한국의 주체성, 정체성), 이어서 민족주의를 이야기하고(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대중적인 철학서를 내놓기도 하며(철학 읽어주는 남자), 쉬운 논리학 교재를 내기도(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이제는 자기계발서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주제를 불문하고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가지 바램은 그가 <한국의 정체성>이 나오던 그 시절, 대학 강단에서 필자를 비롯한 학생들 앞에서 앞으로 일본에 관한 책을 내리라 이야기했는데 이 책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평소의 지론대로라면 일본에 관한 책이 나오면 그 파장 또한 <한국의 주체성> 과 <한국의 정체성> 못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많은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을지도.

둘. 이 책의 202쪽부터 시작되는 꽤나 긴 분량에 할애하고 있는 '사상과 생활의 네 가지 조합'이라는 부분에서 탁석산은 위험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사상과 생활면에서 우파와 좌파로 나누어 네 가지 조합을 만들어내고, 그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우파적 생각과 좌파적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활과 사상 중 어느 것이 중요할까? 나는 생활이라고 본다. 사상이 껍데기라면 생활은 삶 자체이다. 아무리 사상적으로 뛰어났다 해도 생활로 낙제점이라면 결코 사회를 이끌 수 없다. 박정희에 관한 논쟁이 아무리 무성해도 결국은 박정희가 개인적으로 남긴 재산은 별로 없다는 명제로 사실상 논쟁은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대목을 통해, 박정희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결국 박정희는 사상논쟁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생활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개인적으로 축적한 돈이 없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닌가. 매우 위험하다.

  생활에서 좌와 우를 나누는 기준으로 '검약과 정직'을, 사상에서 좌와 우를 나누는 기준으로 '인간 개조에 관함 믿음'으로 기준을 세우고, 검약과 정직을 실천하는 쪽을 생활에서의 좌파로, 인간개조에 관해 믿는 쪽을 사상에서의 좌파로 분류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삼청교육대를 통해 인간개조를 시도한 전두환은 사상적인 좌파가 되고, 생활면에서 검약과 정직을 실천한 박정희는 생활면에서 좌파가 된다. 너무나 단순한 기준 설정과 이를 적용하면서 매우 위험한 발언들이 눈에 보이고, 이러한 기준설정으로 본래적 의미의 좌파와 우파 개념에 대해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을까 싶다. 좌파와 우파에 대해선 워낙에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해석이 존재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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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2-1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탁선산씨는 논리학 관련 책도 냈으면서도, 자신이 논리적인 주장이 아니라 우기기식 주장을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요. 안 그래도 요즘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내용이나 구성은 유용한데, 세부적으로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

짱꿀라 2006-12-17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생활에서 좌우로 나뉘는 검약과 정직이 무엇보다도 큰 깨달음을 줍니다.

마늘빵 2006-12-17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 저도 그런거 같아요. 논리학을 공부했으면서 비논리적인 경우가 많아요. 음. 탁석산이 티비에 나온거 본지는 오래된지라 실제로는 어떤 말들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산타님 / 네. 인정해야 할 부분이지만, 탁석산의 좌우 구도 기준은 좀 문제가 있었어요. 지나치게 단순화 시킨 경향이 있어요.

이리스 2006-12-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회사에 강연 왔을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원고 청탁한 것 받고 나서는 엄청 실망했지. ㅎㅎ 그 이후론 잘 안보게 되더라구.

마늘빵 2006-12-1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누나 / 회사 강연도 했어? 여기저기 잘 다니네. 이 사람 안티세력이 좀 많지. 한편으로는 인정해주는 이들도 많고. 학계나 학계 밖에서나 이 분이 어느 집단에도 속해있지 않기에 따돌려지는 거 같긴 한데, 자신이 공부한 철학적 지식을 가지고 '한국학'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해주는 분위기지. 그 고민과 성찰이 꽤나 깊이있고 신선하기 때문에. 근데 무슨 원고를 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