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학 스케치 1 - 이야기로 만나는 교양의 세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풀빛 / 2007년 2월
품절


지눌은 자신이 곧 부처임을 깨닫기만 한다면 여러 이론을 놓고 다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입장에서의 논쟁을 화해시키려고 한 원효의 사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처음부터 논쟁 자체가 필요 없다는 입장에 서게 된다. 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고 아울러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다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는다면 처음부터 차별이 없기 때문에 논쟁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심 때문이다. 그러나 욕심을 일으키는 그 마음 자체도 본래 부처의 마음이라고 보았다. 욕심을 일으키는 것도 마음이고 깨닫는 것도 마음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한 마음에 두 개의 문이 있다고 한다. -84-85쪽

지눌은 돈오와 점수 두 가지 가운데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는 돈오가 먼저라고 한다. 그래서 선오 후수, 즉 돈오가 먼저고 점수가 나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때 주의할 것은 첫째, 자기 마음이 부처의 마음인줄 모르고 깨닫는 일은 뛰어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나같이 능력 없는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스스로를 낮추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내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우쭐해져서 더 이상 수양하려고 하지 않는, 스스로를 높이는 태도다. -86쪽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일까? 그것은 어떤 사물을 대하든지 나라는 존재의 입장을 버리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생겼다고 하자. 그 일은 민족을 또는 우리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다보면 내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때 내게 이로울 것인가 해로울 것인가를 따진다면 전혀 일이 진행될 수 없을 것이다.
지눌은 분별을 버리면 나와 남의 구별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남을 위하는 일이 바로 자기를 위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런 의식을 갖고 사물을 보았을 때 비로소 참답게 필요한 일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역사상 거란과 싸운 승병이나 임진왜란에 참여한 승병들은 모두 이와 같은 불교의 정신을 실천으로 나타낸 예다. -90쪽

정몽주는 불교를 엄격히 배척했다. 불교식의 장례를 금하고 유교 장례 의식을 보급한 사람도 정몽주였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고, 승려를 불러다 재를 올리며 종이돈을 태운다. 하지만 유교에서는 매장을 하고, 주자가 정해 놓은 절차대로 죽은 자와 이별하는 예식을 행한 다음 때맞추어 제사를 지낸다.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제사 관습은 바로 정몽주에서 시작된 것이다. 또 정몽주는 불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세속을 떠나 도를 닦아야 하는데, 그런 일은 평범한 사람들이 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처럼 어렵게 도를 닦기보다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등 일상생활 속에서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불교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전형적인 성리학자의 태도였다. -117쪽

민본사상과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상은 다르다. 민본의 이념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므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백성을 위한다'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이념은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백성이 권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설명하면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고 했다. 민본사상은 이 중에서 '국민을 위한' 이라는 면을 생각하지만 '국민의'나 '국민에 의한' 이라는 면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민본사상에서는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122쪽

조광조의 사상은 다음 말 속에 집약되어 있다. "도학을 높이고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 성현을 본받고 지치를 일으킨다." 여기서 도학은 '도'를 배우는 학문을 뜻한다. 도는 본래 '길'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길을 따라 가지 않으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길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거리에만 길이 있는 것이 아니며 마음 속에도 길이 있다. 거리의 길이 장소를 옮겨가기 위한 것이라면 마음 속의 길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이다. 길을 잘못 들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듯이 마음 속의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못하고 짐승과 다름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139-140쪽

철학은 본래 체계를 갖춘 사유다. 따라서 생각하는 목적이나 사물을 보는 눈이 다르면 생각하는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에 논쟁이 생긴다. 철학 논쟁은 자신의 의견이 옳고 상대방의 의견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싸움이다. 하지만 논쟁이 상대를 이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논쟁은 자기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자기 생각을 체계적이고 날카롭게 다듬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논쟁이 풍부했던 철학은 그만큼 발전하게 된다. 또한 논쟁은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참다운 논쟁은 언제나 논쟁 전과 후의 모습을 달라지게 만든다. 논쟁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아가 서로의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더 나은 이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162-163쪽

이언적은 진리가 모든 만물보다 앞서는 궁극적 본질이지만 구체적으로는 경험 세계에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주장은 진리가 한갓 사물의 존재 법칙이 아니라 도덕 원리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그 원리를 따른다면 도덕적 실천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도덕적이라는 확신과 아울러 마땅히 그 본성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170쪽

이황은 리와 기가 같이 있다고 해서 그 둘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본다면, 결국 인간의 순수한 마음과 욕심 섞인 마음을 하나로 보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침내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군자는 자신의 인간다움을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는 지성인이고 소인은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욕심꾸러기다. 이황의 주장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옳고 그름을 따지다가 비록 목숨을 잃더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꿋꿋이 실천해 가는 군자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짓밟고 해치는 소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단은 언제나 선이기 때문에 사단을 따르는 사람은 소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단이나 칠정이 모두 악이 될 수도 있는 기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결국은 군자와 소인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182쪽

허균은 똑똑하고 글을 잘 지었지만 행동은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녀의 정욕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고, 남녀가 나뉘는 윤리와 도덕은 성인의 가르침이다. 하늘이 성인보다 높으니 성인의 가르침을 어길지언정 감히 하늘이 준 사람의 본성을 어길 수 없다."라고 했다.
(안정복의 <천학문답>, 심재의 <송천필담> 中)-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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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에떼 -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우리말을 구사하는데 있어서 고종석 만큼 뛰어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 -  아직까지 많은 글을 접해보지 못한 나의 좁은 시야에서 비롯될 수도 있겠지만 - 고종석의 글이라면 무조건 갈무리하고, 고종석의 책이라면 무조건 사모으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내가 고종석을 좋아하는 다른 이유는, 그의 사회, 사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개 나의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보수, 우파 라고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유럽의 시각에서 봤을 때나 긍정할 수 있을 뿐, 실상 오른쪽으로 편중된 시각이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한국땅에서는 옳지 않다. 고종석의 정치, 사회적 발언내용에서 내가 그에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은, 영어공용어화에 대한 시각 뿐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간 고종석은 꽤 많은 책을 냈고, 그 책들은 많이 팔리기보다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받았다. 소위 그의 팬들은, 그의 문체 때문이건, 사회정치적 메세지 때문이건, 그 밖의 어떤 이유 때문이건 간에 고종석을, 마음을 다해 사랑해주었다. 그가 낸 모든 책들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감염된 언어>이다. 1999년에 나온 이 책은  이후 약 8년 동안 나온 다른 책들보다, 그 이전에 나온 다른 책들보다 뛰어나다. 나로 하여금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만들었고, 깊이있는 생각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번 책 <바리에떼>는 실망스럽다. 

  <바리에떼>에 대한 나의 실망감은, 고종석의 시각이나 글에서보다는 편집구성과 그것이 책으로 엮여졌다는데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 개별 글들이 모여 하나의 책으로 묶여졌을 때 상황과 맥락에 의해 빛을 발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각각의 글의 질적 저하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고종석의 이번 책은 후자에 가깝다. 그저 그의 글들을 하나로 묶어 찾기 쉽게, 읽기 쉽게 엮어놨다는 정도의 의미 밖에는 찾기 힘들다. 그의 열성적인(?) 팬인 나는,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그의 글을 손쉽게 읽어볼 수 있어 좋지만, 그나마 나같은 열성적인 팬에게나 의미를 지닐 뿐이다.

  바리에떼. 프랑스어로 다채로움이라는 뜻을 지닌 이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고종석은, "'잡다함'이나 '버라이어티'라는 말이 한국어 화자들에게 행사할 정서적 환기력을 조금이라도 눅이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이 제목에서 고종석의 프랑스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함과 동시에, 그가 글을 쓸 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점을 읽어낸다. 고종석의 글에서는 비슷한 활동을 하는 강준만이나 진중권의 글보다 조심성이 느껴진다. 가끔 강한 어조로 칼럼을 쓸 때도 있지만, 대개 그의 사회적 메세지는 사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면서도 에둘러간다. '바리에떼'라는 제목은 그의 글쓰기에 임하는 자세와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의 목차는 1부 어스름의 감각, 2부 정치의 둘레, 3부 친구의 초상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그 안에는 각기 다른 정말 '바리에떼'한, 속되게 말하면, 잡글이 모여있다. 문학동네에 기고했던 옛 글부터 시작해서 한 시인의 책에 쓴 글, 또 고종석 스스로 스승이라 칭하는 복거일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 대한 긴 반박문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글들의 집합이다. 그런 만큼 이 책 한권에서 정치, 사회, 시 등의 다양한 주제를 만날 수 있고, 또 다양한 고종석식 글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앞서 언급한대로 각 글들의 관계성이 느슨하고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단지 '글의 집합' 이상의 의미는 없다.

 * 고종석에 관심을 갖고 맨 처음 그를 접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은 피하길. 이전에 나온 <서얼단상>이나 <감염된 언어>, <코드훔치기> 등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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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님글 관심은 있는데 첨읽는 사람이라면 비추라니,
보관함에 있던 책인데 급좌절... -.-... 리뷰 고마워요 :)

홍수맘 2007-04-2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짐 보관함에 있는데...........
고민거리 하난 생겼습니다. 그려.

비로그인 2007-04-23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충고 감사합니다.

다락방 2007-04-23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관심도 없었는데 이 리뷰를 읽고 나니 [감염된 언어]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드는군요. 흐음.

가넷 2007-04-23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사두었는데. 그런데 감염된 언어는 품절인것 같군요. 흠;

마늘빵 2007-04-2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 ^^ 처음이시라면 이건 비추에요. 위에 언급한 세 책 중 하나가 나을 듯 합니다.
홍수맘님 / 다른 책을 먼저 읽으시고, 반하셨다면 그때 읽으셔도 늦지 않을 듯 합니다. 열성적인 팬이 된다면 그때.
엘신님 / 고종석 팬이면서 별 세개 달기 힘들더군요. 네개와 세개를 고민하다, 정직하게 세개로 했습니다. 딱 고만큼의 값을 해요.
다락방님 / 네 꼭 읽어보세요. 가장 고종석 다운 글과 논조면서 고종석의 책들 중 가장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늘사초님 / 품절이요? 음. 그 책이. 나온지 오래되긴했지만 꾸준히 매니아(?)들에 의해 읽히는거 같았는데.

비로그인 2007-04-2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도 '마리안느'의 매력을 알게되면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겁니다. :D

마늘빵 2007-04-23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걔는 누구에요?

marine 2007-04-24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기 작품이 참 좋은 것 같아요 "감염된 언어" "서얼단상" 너무 좋죠 전 영어 공용화론도 동조하는 입장이라 여러가지로 마음에 듭니다 단 정치적 입장은 동의하기 힘들구요 역시 그 분은 수필가로서 길이 남으셨음 좋겠어요

마늘빵 2007-04-24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정치적 입장도 대략 큰 틀에서는 동의해요. 복거일과 다른 논변을 취하고 있지만 영어공용화론은 받아들이기 힘들더군요. 음, 언어, 글에 관한 글들이 참 좋습니다.
 
장자 & 노자 : 道에 딴지걸기 지식인마을 6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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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중국철학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에는 플라톤과 데카르트, 칸트가 좋았다. 대략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기초 위에 차곡차곡 벽돌을 쌓아나가는 서양의 체계적인 철학자들을 좋아했다. 그러다 좀 더 다양한 철학자들을 알게 된 뒤에는, 한나 아렌트와 존 롤스가 좋아졌고, 동시에 별로 끌리지 않아 관심에서 제외시켰던 중국철학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자&노자>는 최근의 중국철학에 대한 나의 관심으로 찾아 읽게 된 책이다.

  요즘 장자의 <장자>와 노자의 <도덕경>과 같은 원전번역본 뿐 아니라 원전을 쉽게 풀어 해설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게 다 논술붐 때문이지만 덕분에 좋은 책들을 접하게 되는건 기분 좋은 일이다. 풀빛의 청소년 철학서, 김영사의 지식인 마을, 삼성출판사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편 등등 동일한 철학자를 다루면서도 각기 다르게 접근하고 있는 이같은 책들을 모두 읽고프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구입해 읽고 있다.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비슷비슷하지만 구분하기 힘든, 혹은 비슷한 구석이 없는 듯 하지만 비슷한 관련있는 철학자와 과학자들을 끼리끼리 묶어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는 나라가 많았던 만큼 각기 국가를 경영하는 다른 철학을 주장한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두고 제자백가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철학자들은 대개 여기에 속한다. 공자와 맹자, 순자, 한비자, 노자, 장자, 묵자, 고자, 상앙 등등 대략 인기를 끌었던 이들은 요정도다.

  공자는 유가철학의 아버지가 되었고, 맹자는 공자의 철학을 받을어 이를 체계화시키고 발전시켰다. 공자의 또다른 제자라 불리는 순자는 공맹과는 다른 기초 위에 한비자라는 제자를 낳았고, 한비자는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 한편 노자와 장자는 '도' 와 '무위자연'을 주장하며 유가의 예든, 법가의 법이든, 백성들에게 인위적인 무언가를 강요하지 말라 말했다. 대략 큼지막하게 분류를 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나, 공자와 맹자의 차이와 노자와 장자의 차이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다. 유가학파 안에 공자와 맹자를 넣고, 도가학파 안에 장자와 노자를 집어넣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건 유가와 도가의 대략적인 흐름과 큰 주장일 뿐이다.

  <장자&노자>의 책 앞날개에는 저자 소개와 함께 두 철학자의 차이를 보여줄 만한 문구가 적혀있다.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道 vs 국가 통치를 위한 道." 노자와 장자는 엄연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노자와 장자를 한 무리 안에 넣고 동일시하는 경향은 사마천의 <사기>로부터 비롯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사마천의 <사기> 때문에 오해받은 노자와 장자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장자는 타자와 소통하며 자아가 변화하는 열린 철학을 주장했다는 것이며, 노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위계질서를 고정된 것으로 보고 지속적인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통치 철학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이를 대표해주는 문구로서 장자는 "우리가 걸어가야 道가 만들어진다" 는 것을, 노자는 "道가 만물을 만든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본문을 통해 노자와 장자의 철학을 각각 구체적으로 살피며 차이를 드러내주고 있지만 비교하기 힘들다면 p154에서부터 시작되는 '노자와 장자 그리고 사마천의 가상 토론회'를 추천한다. 저자는 세 사람을 함께 등장시키며 노자와 장자를 동일시했던 사마천과 우리는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장자와 노자와의 삼자대면을 통해 경계를 분명히 긋는다. 아래는 가상토론회의 내용의 핵심 부분만을 인용해 대화로 구성해본 것이다.

  장자 : "제가 중시하는 인물은 통치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형벌로 다리를 잃은 사람, 목수, 백정 등 하찮게 여겨지는 보통 사람들이빈다. 저는 통치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소중한 삶을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노자 : "지금은 전쟁과 갈등으로 얼룩져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안정된 국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실 역사를 보면 혼란은 국가의 힘이 약할 때 초래되는 현상이고, 질서는 국가의 힘이 강할 때 찾아오는 현상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저는 국가야말로 바로 질서 자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 중략 ... 장자 선생님께서는 마치 군주와 백성을 차별하는 국가가 없어지면, 사람들이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혼란은 그 자체로 질서가 없는 상태라는 점과, 질서가 없는 상태는 강력한 국가가 없는 상태라는 점을 선생님께서는 한번 생각해보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장자 : "그 질서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까? 제가 보았을 때 그것은 통치자나 통치 계층만을 위한 질서, 그들만의 질서 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노자 선생님이 말씀하신 질서는 통치자의 압도적인 기득권이 유지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중략 ... 국가가 생긴 뒤 일어난 전쟁의 양상을 한번 보십시오. 대량 살육이 저질러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살육당하는 것은 누군가요? 통치자인가요? 관료인가요? 아닙니다. 전쟁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대부분 보통사람입니다."

 노자 : "새로운 국가는 힘으로 등장할 수 있지만, 그 국가가 지속되려면 은혜라는 이름으로 민주에게 원활하게 재분배를 계속해야 합니다. 바로 이 점이 제 정치 철학과 한비자 선생님의 법가 철학의 다른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마천 선생님이 너무 가볍게 저를 한비자 선생님과 같은 부류로 묶었다고 불만을 나타낸 것입니다."  (* 주 : 사마천의 <사기>에는 '노자, 장자, 신불해, 한비자에 대한 전기'라는 부분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노자와 장자의 철학은 물론, 그들에 대한 오해와 두 사람의 차이까지 분명히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저자 강신주의 노자, 장자 해석에 따른 서술이니 그 점은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와 다른 해석을 가하는 학자들도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다. 이 책은 사실과 진리를 따져묻는 것이 아니라, 노자와 장자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보여줄 뿐이다. 고로 좀 더 깊이있는 사색과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라면 이 책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시중에 나와있는 다른 노자와 장자에 대한 책들, 나아가서 원전까지 읽어야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원전번역 또한 번역가의 주관적 해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가장 좋은 것은 한자원문으로된 책을 놓고 일일히 해석해가며 읽는 것이지만 전공자가 아닌 이상이야 이렇게까지 하는건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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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읽기 2007-08-0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아는 도덕경은 진한시대에 걸친 분서 갱유로, 한나라 문제때, 법가적 변형을 거친 위서라 할 만합니다. 때문에, 본래 장자와 같은 철학적 사유였으나, 통치론으로 변형된 측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례를 들면, 유가와 양생론을 배척한다는 데서도 장자와 노자는 동일한 입장에 서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마늘빵 2007-08-04 00:55   좋아요 0 | URL
부엌데기님 해설 감사합니다. :) 이메일 확인 안했으면 - 보통 때는 그냥 다 삭제해버리는데 - 이 글 못 볼 뻔 했습니다. 알라딘은 댓글 브리핑이 되지만 시일이 좀 지난 글에 대해서는 브리핑이 안되는지라.

노자와 장자는 크게 보면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을테고, 또 작게 파고 들어가면 강신주씨와 같이 볼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노장은 비슷한 관점에서 함께 바라보는데 익숙하죠. 그 차이를 알고자 이 책을 집어들었더랬습니다.
 
지식을 위한 철학통조림 - 고소한 맛 1318을 위한 청소년 도서관 철학통조림 4
김용규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식을 위한 철학 통조림>(고소한맛)은 동일제목의 책 '담백한맛'에 이어 인식론과 과학철학을 이야기한다. 지난번 책에서는 앎이란 무엇인가로 시작된 물음에서부터 데카르트의 인식론까지 이어졌고, 이번엔 데카르트를 넘어선 칸트와 자신으로서 철학을 끝내려했던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더 유명한 포퍼, 수능시험 언어영역 지문에 자주 출제되었던 패러다임 이론의 주인공 쿤, 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처음 들어본 마투라나를 다룬다.

  흔히 '서양철학사'라고 했을 때 마지막에 다루어지는 철학자는 칸트, 헤겔, 니체, 하이데거 정도다. 그러니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나로서도 학부시절 따로 관심갖고 찾아보지 않는한, 어느 정도 들어본 철학자는 거기에서 그칠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서양철학사'의 범주는 매우 작은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여기서 쿤이나 포퍼 같은 이들은 철학사의 영역 안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어떤 기준으로 철학사에 들어갈 철학자와 그렇지 않은 철학자를 분류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모든 학문에 있어서 논의의 끝에선 00철학을 다루기 때문에, 영역의 구분짓기가 모호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본래 생물학자였다가 사색의 끝에서 철학과 조우하고 여기서 새로운 논의를 창출해낸 이를 두고 철학자로 분류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고민은 '철학사'를 집필하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고민이다.

  하지만 '철학사'를 집필하는 것이 아닌, 각각의 해당 분야, 인식론, 형이상학, 과학철학, 분석철학 등등에서 논의를 시작하면, 그가 무엇을 전공했고, 무엇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든 간에 관계없이, 의미있는 논의를 이끌어낸 이들은 모두 포함될 것이다. 인식론을 다루는 이 책에서 끝에 마투라나 라는 생소한 이름을 접하게 된 건 그런 맥락이다. 마투라나는 인지생물학자로 분류되어있고, 그의 주전공 또한 생물학이다. 그러나 그는 인지론에 있어 상대주의적 인식론인 급진적 구성주의의 정초자로 알려져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다른 철학의 영역과는 만날 일이 없지만, 인식론에 있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하는 철학자이다. 마투라나는 생물학에서부터 시작하여 인지생물학, 인식론, 인지론으로 나아가 윤리학과 조우한다.

   "...... 누구나 다 아는 이 세계는 오직 한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내놓은 '어느 한' 세계임을 깨닫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그리고 우리가 다르게 살 때만 세계가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앎의 앎은 우리를 얽어맨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알면, 더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마치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 p.257 : 마투라나, <인식의 나무> 中)

  "우리의 세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내놓은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이들과 다투더라도 '그들과 계속 함께 살야 하는 한' 자신만의 확실한 어떤 것을 진리라고 고집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을 부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살고 싶으면 그것이 아무리 마땅치 않게 보인다고 해도, 그들에게 확실한 것 또한 '우리의 것만큼이나 정당하고 타당함'을 인정해야 한다. ...... 이런 행위를 가리켜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좀 약하게 표현하면 일상생활에서 내 곁에 남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문 p258 : 마투라나, <인식의 나무> 中)

  이로부터 저자 김용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놓는다. 

 "윤리와 지식에 대한 마투라나의 입장은 "무릇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라는 그의 아포리즘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함'과 '앎'을 각각 행위와 경험, 곧 '세계를 내놓은 행위'와 '세계를 인지하는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과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렇다면 "무릇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라는 아포리즘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세계를 내놓은 행위'와 '세계를 인지하는 경험'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 즉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과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투라나의 인지론에서 지식과 윤리가 분리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함'과 '앎'이 서로 반복하여 순환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계를 구성해 내놓으면 '그렇게' 구성된 세계를 경험하며, '그렇게' 구성된 세계를 경험하면 다시 '그렇게' 세계를 구성해 내놓는다는 말이다. 달리말해, 우리가 '그렇게' 존재하면 세계가 우리에게 '그렇게'나타나고, 세계가 우리에게 '그렇게' 나타나면 우리가 다시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투라나의 인지론에서 지식과 윤리가 서로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이유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함'과 '앎'의 이러한 순환구조가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윤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함'과 '앎'의 순환은 당연히 그것을 결정한다. 즉 '세계를 내놓는 행위',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 선하면 선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악하면 악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p260-261) 

  인식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 앎과 함은 동일하며, 마투라나에게 있어서 '세계를 내놓는 행위'와 '세계를 인지하는 경험'은 분리시킬 수 없다. 고로 우리의 인식과 존재는 서로가 반복 순환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고, 윤리는 우리의 인식과 존재로부터 결정된다. 어떻게 세계를 인지하고 내놓는가에 따라 선순환과 악순환은 결정된다. 그것이 마투라나의 인지론이 윤리학과 만나는 지점이다.   

  가볍게 읽으려고 접한 철학통조림을 통해 기대보다 꽤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일단 저자의 글솜씨와 이야기를 엮어내는 솜씨에 놀라고, 내 머리 속에 조각들로 존재하는 지식을 한 줄로 꿰어줬다는데 고마움을 느끼고, 이름만 알고 책은 읽어보지 못했던 쿤과 포퍼, 비트겐슈타인, 로티을 접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또 생소한, 하지만 유명한 인지생물학자 마투라나를 알게 해주었다. 이래저래 이 책은 애초 나의 기대보다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지식의 조각들이 팽팽하게 들어맞지 않는 한 이 시리즈를 반복해서 읽을 것이다.

  지난주 신문에서 마투라나의 새 책을 접했다. 매주 신문 책 소개란을 보면서 보관함에 넣는 책이 많아지는건 그만큼 관심갖는 영역이 넓어졌다는 뜻일게다. 이 책을 통해 마투라나를 접하지 않았다면 나는 <앎의 나무>를 보관함에 넣지 않았을 것이고, 그가 쓴 이전의 다른 책들 또한 무심코 지나가버렸을 것이다. 좋은 책 한 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심의 영역을 넓혀주며 동시의 인식의 영역에 있어서도 넓이와 깊이를 더해준다.  매달 지출하는 도서비용은 점점 더 늘어날테지만 앎의 영역을 확장하는건 나에겐 즐거움이다. 이 책이 내게 준 부차적인 도움들을 제외하고라도 순수하게 이 책의 기획의도와 목적만을 놓고 평가해봤을 때도 매우 잘 쓰여진, 누구에게나 유용한 철학서다.

 * 이번에 출간된 마투라나의 <앎의 나무>는 그의 저서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인식의 나무>의 새 번역본이다. '인식의 나무'가 '앎의 나무'로 제목만 바뀌어 새 옷을 입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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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3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품을 구매하는데 있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디자인인 것처럼 -
책에 끌리게 만드는 첫 번째 요인은 역시 제목이라는 것을 또 한번 느낍니다.
이 책은 시리즈 형식인 것 같은데, 다 읽고 싶네요.
인생이 정말 항상 '고소하고' '담백하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웃음)
아, '쓰고 역한 맛'도 있기 때문에 인생인건가 싶지만.

마늘빵 2007-04-2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제목. 제목이 참 가볍고 쉽게 느껴졌는데, 제목에 비해서는 꽤 진지하고 깊이있습니다. 다만 맛깔나게 조리했을 뿐이지요. 하나를 읽으면 다 읽으셔야 해요. 줄거리가 쭉 이어지거든요. 다 읽으신 다음에는, <알도와 떠도는 사원>을 보세요. 모든 것이 다 종합되어있는 환타지 소설이에요.

비로그인 2007-04-23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또 좋은 책을 추천해 주시는군요. (웃음)
예. 여름이 오기 전에는 - 이 맛있는 통조림들을 다 맛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식을 위한 철학통조림 - 담백한 맛 1318을 위한 청소년 도서관 철학통조림 3
김용규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통조림 조리사 김용규가 전작인 <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 두 권을 통해서 '윤리학'을 쉽게 풀어냈다면, <지식을 위한 철학통조림>을 통해서는 '인식론'을 풀어내고 있다.

  인식론이라는 것은, 영어로 epistemology 라 하여, 과학을 뜻하는 그리스어 episteme 와 담론을 뜻하는 그리스어 logos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인식의 일반적인 과정에 대한 분석이나 연구'라는 의미로, '지식이론' 과 '인지학'과 동의어이다. 작게는 '과학적 정신'에 대한 분석. 과학이 사용하는 방법, 과학적 위기, 과학의 역사를 연구하며, 어떤 특정한 과학에 대한 철학적 연구(수학 철학, 역사 철학, 생물 철학 등)도 포함한다. (엘리자베스 클레망의 <철학사전> 참조) 

  <지식을 위한 철학 통조림( 담백한 맛 )> 에서는 그리스 신화인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시작하여 지식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그리스 소피스트의 궤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플라톤의 상기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진리론, 베이컨의 귀납법, 데카르트의 연역법까지를 다룬다. 각각의 장 뒤에는 '보너스캔'이라 하여 저자 김용규가 먼저 낸 책 <알도와 떠도는 사원>에 등장시킨 알도와 레나를 등장시키며 해당 장에서 이야기한 바를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소설 속에서 쉽게 재현해냈다. 또한 연극이 벌어지는 각 장면은 프로메테우스의 경우 코카서스산, 소크라테스의 경우 감옥, 플라톤의 경우 동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아테네 학당 등 각각의 등장인물들과 매우 관련이 깊은 곳을 택함으로써 해당 철학자의 삶의 터전과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하였다.

  앎이란 무엇이고,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고대 그리스 신화와 소크라테스에게서 시작하여, 이후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의 앞에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가를 따져 묻는 데카르트에 이른다. 또한 <지식을 위한 철학 통조림> 2권인 '고소한 맛'에서는 믿을 만한 지식은 무엇인가, 진리는 어떻게 인식하는가, 우리가 믿고 있는 지식이란 변하지 않는 진리인가, 아니면 변하지 않는 진리라 믿는 것인가, 등등을 따져묻는 칸트와 비트겐슈타인, 포퍼, 쿤, 마투라나에 이르며 과학철학의 부분을 건드린다. 사실 철학에 있어 인식론이란 과학철학, 심리철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처음에는 단지 앎이란 무엇인가, 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하였지만, 점차 논의가 세분화되고 확장되며 과학와 마음의 영역까지 끌어들이게 된다. 또한, 존재론, 형이상학, 윤리학 등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철학의 분야를, 심리철학, 과학철학, 해석학, 인식론, 윤리학, 정의론, 정치철학 등등으로 나누지만 모든 것은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어있다. 2권의 끝에서 생물학자인 마투라나가 등장하는 것은 뜻 밖의 사건은 아닌 셈이다.

  프로메테우스부터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장들은 별개로 독립되어 존재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피스트에게서의 지적되는 문제점은 소크라테스에게로, 소크라테스의 한계점은 플라톤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데카르트에 이른다. 고로 하나의 장에 한 명의 철학자가 등장한다고 하여 따로 읽어서는 안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되어있다고 봐야한다.

  김용규는 내게 기존에 알고 있는 철학사의 단편적인 지식들을 하나로 꿰어주는 마법사이다. 그 누구도 철학사를 하나의 스토리로 인식하게끔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나의 짧은 철학적 지식이란 것도 각각의 조각들로 바다를 표류하고 있다. 결국 공부는 스스로가 해야하는 것이고, 조각난 지식들을 꿰어 맞추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지만, 이런 책들을 만나면 조각난 퍼즐은 한결 맞추기 쉬워진다. 청소년용 철학서라 하지만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기 위해 바다 위를 유영하는 나같은 이들을 위해 안성맞춤인 책이다. 책이 청소년용이라 하여, 유아용이라 하여 그네들만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아주 유치한 동화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게 유용하다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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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2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홍이에게도 유용하겠죠? ㅎㅎㅎ

마늘빵 2007-04-22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 요고 근데 대략 고등학생 수준에서 봐야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