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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노자 : 道에 딴지걸기 ㅣ 지식인마을 6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13년 4월
평점 :
뒤늦게 중국철학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에는 플라톤과 데카르트, 칸트가 좋았다. 대략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기초 위에 차곡차곡 벽돌을 쌓아나가는 서양의 체계적인 철학자들을 좋아했다. 그러다 좀 더 다양한 철학자들을 알게 된 뒤에는, 한나 아렌트와 존 롤스가 좋아졌고, 동시에 별로 끌리지 않아 관심에서 제외시켰던 중국철학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자&노자>는 최근의 중국철학에 대한 나의 관심으로 찾아 읽게 된 책이다.
요즘 장자의 <장자>와 노자의 <도덕경>과 같은 원전번역본 뿐 아니라 원전을 쉽게 풀어 해설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게 다 논술붐 때문이지만 덕분에 좋은 책들을 접하게 되는건 기분 좋은 일이다. 풀빛의 청소년 철학서, 김영사의 지식인 마을, 삼성출판사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편 등등 동일한 철학자를 다루면서도 각기 다르게 접근하고 있는 이같은 책들을 모두 읽고프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구입해 읽고 있다.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비슷비슷하지만 구분하기 힘든, 혹은 비슷한 구석이 없는 듯 하지만 비슷한 관련있는 철학자와 과학자들을 끼리끼리 묶어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는 나라가 많았던 만큼 각기 국가를 경영하는 다른 철학을 주장한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두고 제자백가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철학자들은 대개 여기에 속한다. 공자와 맹자, 순자, 한비자, 노자, 장자, 묵자, 고자, 상앙 등등 대략 인기를 끌었던 이들은 요정도다.
공자는 유가철학의 아버지가 되었고, 맹자는 공자의 철학을 받을어 이를 체계화시키고 발전시켰다. 공자의 또다른 제자라 불리는 순자는 공맹과는 다른 기초 위에 한비자라는 제자를 낳았고, 한비자는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 한편 노자와 장자는 '도' 와 '무위자연'을 주장하며 유가의 예든, 법가의 법이든, 백성들에게 인위적인 무언가를 강요하지 말라 말했다. 대략 큼지막하게 분류를 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나, 공자와 맹자의 차이와 노자와 장자의 차이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다. 유가학파 안에 공자와 맹자를 넣고, 도가학파 안에 장자와 노자를 집어넣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건 유가와 도가의 대략적인 흐름과 큰 주장일 뿐이다.
<장자&노자>의 책 앞날개에는 저자 소개와 함께 두 철학자의 차이를 보여줄 만한 문구가 적혀있다.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道 vs 국가 통치를 위한 道." 노자와 장자는 엄연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노자와 장자를 한 무리 안에 넣고 동일시하는 경향은 사마천의 <사기>로부터 비롯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사마천의 <사기> 때문에 오해받은 노자와 장자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장자는 타자와 소통하며 자아가 변화하는 열린 철학을 주장했다는 것이며, 노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위계질서를 고정된 것으로 보고 지속적인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통치 철학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이를 대표해주는 문구로서 장자는 "우리가 걸어가야 道가 만들어진다" 는 것을, 노자는 "道가 만물을 만든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본문을 통해 노자와 장자의 철학을 각각 구체적으로 살피며 차이를 드러내주고 있지만 비교하기 힘들다면 p154에서부터 시작되는 '노자와 장자 그리고 사마천의 가상 토론회'를 추천한다. 저자는 세 사람을 함께 등장시키며 노자와 장자를 동일시했던 사마천과 우리는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장자와 노자와의 삼자대면을 통해 경계를 분명히 긋는다. 아래는 가상토론회의 내용의 핵심 부분만을 인용해 대화로 구성해본 것이다.
장자 : "제가 중시하는 인물은 통치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형벌로 다리를 잃은 사람, 목수, 백정 등 하찮게 여겨지는 보통 사람들이빈다. 저는 통치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소중한 삶을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노자 : "지금은 전쟁과 갈등으로 얼룩져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안정된 국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실 역사를 보면 혼란은 국가의 힘이 약할 때 초래되는 현상이고, 질서는 국가의 힘이 강할 때 찾아오는 현상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저는 국가야말로 바로 질서 자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 중략 ... 장자 선생님께서는 마치 군주와 백성을 차별하는 국가가 없어지면, 사람들이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혼란은 그 자체로 질서가 없는 상태라는 점과, 질서가 없는 상태는 강력한 국가가 없는 상태라는 점을 선생님께서는 한번 생각해보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장자 : "그 질서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까? 제가 보았을 때 그것은 통치자나 통치 계층만을 위한 질서, 그들만의 질서 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노자 선생님이 말씀하신 질서는 통치자의 압도적인 기득권이 유지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중략 ... 국가가 생긴 뒤 일어난 전쟁의 양상을 한번 보십시오. 대량 살육이 저질러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살육당하는 것은 누군가요? 통치자인가요? 관료인가요? 아닙니다. 전쟁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대부분 보통사람입니다."
노자 : "새로운 국가는 힘으로 등장할 수 있지만, 그 국가가 지속되려면 은혜라는 이름으로 민주에게 원활하게 재분배를 계속해야 합니다. 바로 이 점이 제 정치 철학과 한비자 선생님의 법가 철학의 다른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마천 선생님이 너무 가볍게 저를 한비자 선생님과 같은 부류로 묶었다고 불만을 나타낸 것입니다." (* 주 : 사마천의 <사기>에는 '노자, 장자, 신불해, 한비자에 대한 전기'라는 부분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노자와 장자의 철학은 물론, 그들에 대한 오해와 두 사람의 차이까지 분명히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저자 강신주의 노자, 장자 해석에 따른 서술이니 그 점은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와 다른 해석을 가하는 학자들도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다. 이 책은 사실과 진리를 따져묻는 것이 아니라, 노자와 장자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보여줄 뿐이다. 고로 좀 더 깊이있는 사색과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라면 이 책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시중에 나와있는 다른 노자와 장자에 대한 책들, 나아가서 원전까지 읽어야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원전번역 또한 번역가의 주관적 해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가장 좋은 것은 한자원문으로된 책을 놓고 일일히 해석해가며 읽는 것이지만 전공자가 아닌 이상이야 이렇게까지 하는건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