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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전쟁 -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전략
조지 레이코프.로크리지연구소 지음, 나익주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지난주 토요일자 신문에 소개된 나온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책이다. 죠지 레이코프라는 미국의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인 저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로 이미 만난 바 있어 친숙하다. 당시 책의 제목이 참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읽어볼 기회는 없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가 "레이건 행정부 이후 미국의 진보진영이 보수진영에게 패하고 있는 이유가 두 가지 가정 모형에 연결된 프레임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 책이라면, <프레임 전쟁>은 진보와 보수의 전반적인 프레임과 진보가 보수에게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설명한 책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되겠다.
진보가 보수에게 계속해서 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번역하신 숭실대 철학과 김선욱 교수는 대학 때 학부 강의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정치는 진리를 담보하는가, 아니면 진리와 별개로 이루어지는가? 이에 대한 고민이 담긴 책이 김선욱 교수의 <정치와 진리>이고, 그는 정치는 진리와 별개로 이루어진다, 쪽에 무게를 실었다. 죠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전쟁>도 이런 질문을 머리 속에 세워놓은 채 읽어 볼 수 있다. 결론은 잠시 후에 내자.
진보는 보수의 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좀 더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발언을 함으로써 중간지대에 있는 유권자들을 끌어오려고 한다. 하지만 레이코프는 이건 진보진영의 절대적인 실수라고 지적한다. 중간지대에 있는 그들을 설득할 때에도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며 설득해야 먹힌다는 것이다.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레이코프는 '이중개념주의자'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이념적으로 중도 라는 개념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누구나가 중도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양 극단을 피함으로써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모두 어떻게든 국민들이 자신들을 중도로 인식하게끔 만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거 아니다. 중도는 없다. 대신 이중개념주의가 있을 뿐이다. 이중개념주의란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진보적임을 의미한다.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으니 이걸 중도라고 표현할 수 없으며, 진보진영이 '겉보기에'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그의 진보적 목소리를 자극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전략으로써 레이코프는 '프레임'을 끌고 나온다. "프레임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우리의 구조화된 정신적 체계로, 프레임을 장악한다는 것은 그 세력이 우리 세계의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레임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비유되고 은유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이 책의 4장 '가정으로서의 국가' 부분을 보면, '나의 조국' '모국 러시아' '혁명의 딸'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 국가를 하나의 가정에 비유를 하게 되는데, 이는 곧 "국민에 대한 정부의 의무는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의무"이며, "부모가 자녀들을 보호하듯이 정부는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진영에서 사용하는 모든 단어는 이와 같은 비유와 은유를 통해서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파고든다. 진보진영 역시 이와 같은 프레임을 사용함으로써 유권자를 확보할 수 있다.
레이코프는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에게 먹힐만한 프레임을 재구성하고 "가치와 원리에 집중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한국의 진보를 보면 너무 순진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순수한 의미에서 진보라하기에는 뭣하지만 노무현 정부를 큰 범주 안에서 진보라고 했을 때 - 상대적으로 한나라당과 자민련 등과 비교해보면 -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들은 레이코프의 프레임 정치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진보적 색채를 띠고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내리치고 있다. 애초 한나라당의 후보를 찍었던 이들보다 그에게 표를 던졌던 이들이 더욱 심하게 비판하고 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왜 그럴까.
노무현 정부는 프레임 정치에 완전히 실패했다. 당선 이후 반대진영의 국민들을 껴안기 위해 중도적 목소리를 냈고, 보수보다 더욱 보수적인 발언, 우익보다 더욱 우익적인 정치를 함으로써, 자신을 지지했던 이들을 등 뒤로 돌렸다. 신자유주의, 한미FTA, 노동자, 교육 등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노무현 정부는 어설픈 중도에서 더 나아가 보수적 색깔을 띠었고, 결국 어느쪽에서도 지지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가치와 원리에 집중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라"는 레이코프의 조언을 받아들인다면, 최초 당선 시절로 돌아가 정책에 있어 진보적 색채를 띠는 것이 옳다. 자신을 지지했던 이들 뿐 아니라 중간지대에 있는 이들에게까지도 이러한 목소리가 먹힌다는 것이다.
이제 노무현 정부는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으니 포기하고, 다음 대선에서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진영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프레임을 효과적으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민노당 권영길 후보가 티비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국민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진보진영이 구성해야 할 프레임은, '함께 삶'이다. 지난 대전 때 권영길 후보의 저 발언은 '함께 삶'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었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라는 말 속엔 나는 당신의 삶을 걱정하고 있고, 나 또한 당신과 같은 살림살이를 하는 국민 중 한명이라는 메세지가 담겨있다. 더불어 진보진영은, 옮긴이도 후기를 통해 지적했지만, 경제발전과 진보적 가치가 결코 배타적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경제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알고 있는데, 국민이 느끼는 이 간극을 줄여줄 수 있는 프레임 구성이 절실하다.
자, 결론 내려보자. 정치는 진리를 담보하는가, 아니면 진리와 별개로 이루어지는가. 이때 '진리'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내리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수 있지만, 레이코프는 꾸준히 지속적으로 인간존중과 자유와 평등 등의 가치를 강조해야 함을, 이러한 가치를 담은 프레임을 만들 것을 주장하고 있고, 또 진리가 이러한 가치들을 의미한다면, 정치는 진리를 담보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김선욱 교수의 결론인 "정치와 진리는 별개로 이루어진다"는 다른 차원에서 내려졌지만, 우리는 같은 질문을 던지고 또 그와는 다른 차원에서 정치와 진리는 관련있다고 결론 내릴 수도 있겠다. 진보진영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인 자유와 평등, 인권, 함께 삶을 보수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어설프게 넓은 범위의 유권자를 껴안으려 하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야할 것이다. 그러면 진보진영이 어설프게 껴안으려 했던 유권자까지도 자연스럽게 지지자로 변신할 것이다.
*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국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미국인 노엄 촘스키의 제자라고 한다. 제자이지만 언어학에 있어서는 촘스키의 생성문법이론에 비판적이며, 하지만 현실 정치에 깊이 참여하고 꾸준히 발언한다는 점에서는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옮긴이는 뒤에 '옮긴이의 말'을 통해, 촘스키의 현실비판이 그의 언어학 이론과는 별개로 이루어지는 반면에, 레이코프의 현실비판은 그의 인지언어학에 토대를 두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어찌되었건 두 사람 모두 미국의 진보진영에서 - 당파성을 넘어 -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이다.
* 같은 텍스트를 놓고서도 읽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책은 다르게 읽히고 다른 결론이 도출된다. 나는 "정치는 진리를 담보하는가, 아니면 진리와 별개로 이루어지는가" 라는 물음을 갖고 이 책에 접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