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 이러저러한 국가론에 대한 '해석들'

* 레디앙(2007. 1. 27)   / 이러저러한 국가론에 대한 '해석들'
[토요연재-책읽기] 플라톤, 레닌, 박정희가 생각한 국가

『개념어 사전』 남경태 지음, 들녘
『개념-뿌리들 1, 2』 이정우 지음, 철학아카데미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김용규 지음, 웅진

세 권의 책이 있다. 두 권은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간이며, 한 권은 불쑥 소개하기에는 유효 기간이 한참 지난 책이다. 시점은 둘째치더라도 세 권의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두 권은 ‘개념’이라는 간판을 걸고 나온 데서 묶이고, 또 두 권은 ‘철학’이라는 겉옷을 비교적 가볍게 걸친 데서 엮이며, 또 두 권은 ‘어려운 거 쉽게 쓰기’라는 트렌드에서 만난다(다른 한 권 또한 저자의 이름에 비해 ‘정말’ 쉬운 글이 분명하지만 두 권에 비하면 상대도 안 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범위 좁히는 것부터가 먼저겠다. 먼저 두 권이 공통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항목을 비교하며 읽고, 다른 한 권에서는 부족하나마 국가론 언저리에 있는 에세이를 덧붙여 다른 책들과 대비해 본다.

흔히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표현은 ‘어렵다’라는 말이다. 일단 문체가 주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학자들 특유의 번역 투 어조나 만연체 문장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미로와도 같은 인용구 연쇄망의 영향 또한 없진 않을 것이다. 그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한 독자들에겐 그야말로 거치적거리는 방해물일 뿐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나, 많은 학자들은 ‘개념 잡는 일’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개념의 발명이라는 말도 있다지만, 그거야 드물디 드문 대가들 얘기고, 일반 독자들로서는 개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조차 곤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개념이란 극히 미묘하고 유동적이고 모호한 우리의 경험 내용들을 일반화하고 평균화해서 잡아주는 것이며, 나아가 그 내용들의 그 의미를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p.1-13)

   
『개념-뿌리들 1, 2』 이정우 지음, 철학아카데미
 
이정우가 내놓은 개념에 대한 개념. ‘일반화하고 평균화해서 잡아주는’ 일이라니 개념은 정밀묘사가 아니라 ‘얼추’ 그려 놓은 그림인 모양이다. 말이 대강(大綱)이지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하고 철학사의 굵은 줄기를 놓쳐서는 안 되며 다른 이의 개념을 설명하고 다시 자신 고유의 개념까지 덧붙이니, 개념은 어려울 수밖에 없을 듯하다.

게다가 이정우의 표현을 빌면 개념에는 주름이 접혀 있다. 섬세한 주름 사이 의미가 있고 맥락이 있다. 개념을 파악하는 데는 문헌학적 식견만큼 시대적 맥락을 이해하는 게 불가결한 문제일 터. 여기까지도 힘든데, 인문학에서 개념은 외톨이 개념으로서는 성립할 수 없다고 한다.

“개념이라고 하는 존재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개념이 있으면 반드시 그 개념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다른 개념들을 불러옵니다.”(p.1~15)라는 이정우의 말이나 “인문학의 개념들은 자연과학의 개념들처럼 뜻이 구체적이지 않으며, 단일한 의미보다는 복합적인 뜻의 그물을 가진다. 하나의 개념은 인접한 개념들과 연관되고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p.5)라는 남경태의 설명이 그렇다.

두 저자가 공히 다룬 ‘국가’라는 개념을 보자. 국가는 개념이기 이전에 먼저 우리에게 실체로 피부에 와 닿는 것이겠지만, 저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오히려 우리가 갖고 있는 국가의 실체는 이미지에 가깝고 실은 조각난 그림들에 불과하다.

국가라고 하면 떠오를 법한 군대, 세금, 국가보안법, 애‘국가’, 대통령, 국회 등이 있다지만, 그저 부분들에 불과하며 한 부분조차 인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먼저 국가를 설명하려는 남경태의 도입문을 보자.

“1917년 러시아 임시정부의 탄압을 피해 잠시 핀란드로 도피하고 있던 시기에 레닌은 『국가와 혁명』이란 책을 썼다. 그리고 1963년 군복을 벗고 대통령이 될 차비를 갖추던 시기에 박정희는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을 썼다.

레닌이 말하는 국가는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기 전 일시적으로 존재하게 될 프롤레타리아 국가이며, 박정희가 말하는 국가는 오랜 왕조 시대를 거쳐 공화국으로 갓 태어난 대한민국이다. …… 제목은 비슷해도 두 사람의 책은 전혀 다르며, 같은 개념이라도 좌파인 레닌과 우파인 박정희가 그 개념에 실은 의미는 정반대다. 국가란 정의하기 나름인 것일까?”(p.56~57)

레닌과 박정희를 대비하는 것도 빼어난 전략이지만, 국가의 정의란 결국 국가에 대한 이념에 부응할 수밖에 없음을 먼저 실토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즉 국가 개념은 사실상 국가들의 개념들인 셈이다. 이 개념들 중 으뜸은 너나 할 것 없이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철학자가 왕으로 지배하는 국가를 모델로 삼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정치 형태를 군주정, 귀족정, 공화정으로 구분하고 그 가운데 공화정이 으뜸이라고 여겼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당시의 국가란 인구 1만 명이 넘지 않는 도시국가에 불과했다.”(p.57~58)

남경태의 설명은 특별히 새로운 정보를 전달해 주지 않는다. 평이한 서술이고 일반 상식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폴리스의 인구학, 지리학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것과 대비되는 웅장한 고대 중국의 경우를 부가하여 설명한다. 간단한 설명으로, 국가론의 시원인 플라톤 철학의 권위를 동아시아의 그것과 견주면서 은근슬쩍 무너뜨리는 것이다. 개념은 한 데 머물지 않고 널리 확장된다.

반면 이정우의 설명을 보니, 일반적인 플라톤 위주의 국가 개념 풀이가 실제로는 너무 넓은 데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플라톤은 법/관습, 국가, 교육, 정의 등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사유하고서 방대한 저작들을 남긴 최초의 철학자죠. 방금 인용한 『국가』에 그의 정치철학적 사유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politeia라는 이 책의 제목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폴리스론 또는 폴리스 정체(政體)론이 됩니다. 이 말은 라틴어로는 res publica(직역하면 public thing, 즉 공공의 일/것이죠)로 번역되었고, 여기에서 현대어 republic이 나옵니다. 우리말로는 공화국으로 번역되죠. 때문에 politeia는 국가론, 이상국가(플라톤이 그린 것이 이상국가이기에), 공화국, 정체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됩니다.”(p.2-280~281)

플라톤 『국가』의 번역을 따지고 드는 일을 보자니 철학자들 특유의 언어유희로 빠져드는 것 같지만, 이어지는 설명을 읽어 보면 ‘국가론’의 쟁점들을 파고들고 있기도 하다. 사소한 번역에서도 국가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아래처럼 정치학과 형이상학을 한 데 결합해 내어 플라톤 철학의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이상국가론은 형상이론과 맞물려 있어요. 오늘날의 정치학은 어떤 특정한 형이상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전통 정치철학은 특정한 형이상학적 근거 위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키아벨리 이후에 형이상학과 정치학이 갈라지고, 개별 과학으로서의 정치학이 성립합니다. 플라톤은 국가의 형상이 존재한다면, 즉 이상국가가 존재한다면, 그 형상을 모방하는 정당한 법/관습의 수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p.2-282)

다만 ‘형상’ 개념이라는 또 다른 어려운 숙제가 기다리고 있을 뿐. 남경태와 이정우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국가라는 단어의 함정 또한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흔히 국가를 조국이라고 표현하면서 민족과 거의 동일시하는 우리 사회의 과도하게 민족주의적인 풍토에서는 국가의 개념에 비하하는 의미를 담기가 매우 어렵다.”(p.57)

   
  ▲『개념어 사전』 남경태 지음, 들녘 
 
남경태는 국가와 민족의 개념을 혼동하고 또 혼용하는 일반적인 상식과 관행을 무너뜨린다. 남경태가 이념적 혼란을 지적한다면 이정우는 행정 명칭이 야기하는 혼란을 집어낸다.

“국가와 정부는 달라요. 국가란 특정한 국명을 가진 공동체에 속하는 모든 사람의 공통의 문제죠. 말 그대로 ‘res publica’입니다. 존재론적으로 보아 추상적 존재입니다. 반면 정부는 국가의 한 기관이죠. 그러나 정부의 힘이 워낙 강하고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부와 국가가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p.2-282~83)

이후 두 저자는 시대 순으로 국가를 키워드로 한 서양 정치철학사를 훑는다. 남경태가 역사와 사회과학적 배경을 거론하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면, 이정우는 예의 능숙한 솜씨로 각 사유의 특징들을 펼쳐 놓는다.

남경태의 경우. “본격적인 자본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국가는 대외적으로는 국제 질서의 주체로 활동했고 대내적으로는 국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법치국가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변하고 전 세계의 식민지 분할이 완료되자 국가는 새로운 임무를 가지게 되었다. 국가는 이제 성장의 엔진이 멈출 지경에 처한 자본주의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했다.”(p.59~60)

남경태의 개념 풀이는 이처럼 철학적 개념을 역사, 사회, 문화 등의 맥락 속에서 서술함으로써 그것의 문자적 의미보다는 생생한 이해를 돕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친절한 태도에 집착한 나머지 개념을 고정된 맥락에서만 떠올리게 하는 약점 또한 분명해 보인다.

아래의 문장은 저자 고유의 정치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면서도 매우 상투적인 설명에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를 부정적인 관점에서 계급 지배의 도구로 파악한 레닌과, 긍정적인 관점에서 사회 발전의 수단으로 간주한 박정희는 둘 다 자신의 국가관을 현실에서 완전히 정당화하지는 못했다. 극좌와 극우가 실패했다면, 새는 역시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만 하는 걸까?”(p.60) 적어도 ‘쉽게 쓰기’의 강박관념이 만든 결과라고 해야 할까.

이정우의 경우는 반대로 사회과학의 빈약함을 느끼게 한다.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에 대한 설명은 책이 목적하는바(대중 강연)에 비해 상당히 정교한 서술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맥락을 엿보는 대목에서는 그저 그런 일반적 설명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정우 본연의 생각이 알 듯 말 듯하게 모호하게 그려지고 있기도 하다. 철학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 중에 하나가 이념적으로 날카롭지 않고 무딘 것이라면, 이정우의 글 또한 이 점에서 그리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이런(68년 이후 후기구조주의의) 흐름에 있어 정치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권력의 문제입니다. 구조주의 사유의 문제점은 사실상 만들어진 것, 즉 권력이 개입해 구성한 것을 마치 자연법칙처럼, 마치 원래 그런 것처럼, 즉 주어진 것으로 착각했다는 점에 있죠.

이것은 달리 말하면 우리가 맞붙어 싸워야 할 것, 저항해야 할 것을 우리가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 그럴 수밖에 없는 것으로 수동적으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 그것들이 우리를 억압하고 판단될 경우 그것들을 고치고 그것들에 저항해야죠.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호체제(‘체계’가 아니라 ‘체제’입니다)를 만들어내고 관리하고 강제하는 핵심적인 존재는 바로 국가(와 자본주의)입니다.”(p.2-316~317)

철학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태도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겠지만, 반드시 벗었으면 싶을 만한 철학의 외투를 여전히 걸치고 있는 건 아닐지.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김용규 지음, 웅진
 
김용규는 조지 오웰의 『1984년』의 빅브라더를 다루면서 사회공학과 이상국가(또는 유토피아)의 문제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설명 틀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이다. 그는 철학적, 정치학적 환원 작업을 이 침대에 자주 비유한다.

“사람들은 이렇듯 나름대로 어떤 한 가지 기준을 가지고 모든 것을 그것에다 맞추려는 사람을 프로크루스테스라고 하고, 그런 획일화 작업에 사용되는 폭력적 도구를 일컬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합니다. …… 이상사회를 만들려는 사회공학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갖고 있게 마련입니다.

최초의 사회공학 저서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의 『국가』가 보여주듯, 모든 사회공학에는 이상적인 사회 형태를 설계하고 확정하는 작업과 그것에 맞게 인간을 길들이는 작업이 필연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죠.”(p.281~82)

문학과 철학을 신화적 비유로 매끈하게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론 또는 국가철학의 문제설정 자체를 사회공학이라고 잘라 말하는데, 그 주장은 차치하고서라도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이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침대 얘기는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분명 사회가 가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의해서 제조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거지요. …… 모든 유토피아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의한 ‘잡아 늘이기’와 ‘다리 잘라내기’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실현을 기반으로 설계되고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p.304~5)

저자의 정치관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만, 어찌 보면 상식적인 선에서 서둘러 마무리하는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다음 대목에서는 더더욱. “결국 우리가 진정 원하는 유토피아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이어야 한다는 거지요.”(p.307)

김용규가 문학 이야기에 철학적 에세이를 곁들인 이유를 들어보자.

“철학적 해석이라는 말에 눈길을 주길 바란다. 왜냐하면 작품의 배후에 숨어 있는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밝히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분석으로서, 비평가들이 작품을 평가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분석을 통해 얻어진 비평이라는 이름의 커피는 어느 문학 살롱에서든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당신도 이미 그 씁쓸함과 무미함을 간혹 맛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석은 다르다. 해석은 여느 문학 살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메뉴다.”(p.7~8)

분석을 지양하고 해석을 지향하겠다는 건 좋다. 그런데, 정작 본인의 해석은 무엇인지, 얼마나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카프카의 소설에 마르셀의 철학을 덧붙이는 건 보여도 정작 철학적 해석이 무엇인지 내놓지를 않는 거다.

저자는 카프카의 「변신」이 가족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실은 당위로 보이는 서술)에 얼마만큼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적어도 카프카는 가족의 해체와 붕괴의 방향에서 쓴 것이 아닐까. 기자의 어설픈 판단으로는, 소리만 요란했지 자신의 해석 없이 알맹이 없는 서술을 넘어서, 아예 텍스트의 맥락조차 잘못 짚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한편 알라딘의 ‘나귀’라는 독자는 실수라고 하기엔 용납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수두룩했다고 전한다. “오셀로는 무어 출신의 장군이지요.”(p.95) 무어는 지역 이름이 될 수 없고 인종 집단이라는 독자의 설명이다. 물론 사전에서는 인종적 명칭도 될 수 없다고 전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유대인 신학자 본회퍼”(p.179)에서 본회퍼는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 박학다식으로 이름난 저자의 이름에 견주자니 사소한 실수라고 덮기엔 구멍이 꽤 커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Ritournelle > * 민주노동당 대권도전자 두 명의 출마선언문

*  2007년 대선에 대한 각 정당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박근혜라는 별반 차이도 없이 뵈는 두 명의 꼴동 보수 우익 대권주자들의 힘 겨루기 양상으로 당내 대권 경쟁 구도가 과열되고 있고, 열린 우리당은 이에 비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시간만 죽이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정운찬 카드가 여권의  새롭고도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 구체화된 청사진이 없어 확실한 정치적 선전 효과는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의 민주 노동당은 당내 최고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두 명의 국회의원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이 이 이번 대선 경쟁에 뛰어 들었다. 물론 과연 어떠한 정치적 파급 효과를 가져런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아래는 당내 두 명의 대선 경쟁자의 출마 선언문을 옮겨 놓은 것이다. 이땅의 모든 민중들의 목소리가 저 푸른 들판에 널리 퍼져 힘차게 울리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 레디앙(2007. 3. 10)   / '진보정당 집권의 꿈' 실현하겠습니다

[출마선언문 전문] "한나라당 집권 저지 민주노동당밖에 없어"

2007 새세상 선언 - ‘진보정당 집권의 꿈’을 실현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민주노동당 당원동지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빈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 앞에서 제 17대 대통령선거 민주노동당 후보경선에 출마할 것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최초의 ‘민주노동당 출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지금 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라는 정치경력을 쌓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민주노동당 출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진보정당의 집권을 통해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외길 35년, 진보정당운동의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처음 이 길을 나설 때 저는 16살의 철없는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정권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시키는 것을 보면서 저는 더 이상 소년일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의 신분으로 유신독재타도 유인물을 제작 살포하면서 35년 외길의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이 전두환 군사독재 세력의 총칼앞에 유린되는 것을 보면서 인텔리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하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와 있는 동료들과 전기용접공으로 일하면서 핏줄보다 진한 형제애를 느끼며 독재의 어둠 속에서 해방의 밭을 갈았습니다.

1987년 6월항쟁과 7,8,9월 노동자대투쟁의 성과가 직선제 개헌이라는 형식적 민주주의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서 노동운동의 최고 형태로서 진보정당운동의 한길로 달려왔습니다.

자갈밭에 씨앗을 뿌리는 듯한 10여년의 진보정당운동이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의 창당이라는 꽃을 피웠을 때의 감격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2002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그리고  2004년 제 17대 총선에서 장수를 태운 말이 되어 결국 46년 만에 처음으로 진보정당 원내진출의 꿈을 이뤘을 때는 민주노동당과 당원들이 한없이 자랑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위해, 해방을 위해 청춘을 바쳐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전쟁의 공포는 여전하고 보수정치의 독점체제, 재벌경제의 일방적 지배는 더욱 강고한 성채가 되어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행복과 평화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동지 여러분!

다가오는 2008년은 정부수립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60년을 돌아보고 향후 60년을 설계해야 할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박정희 시대의 소위 산업화와 문민정부를 거친 노무현정부의 이른바 개혁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매년 강북구 주민 378명을 태운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습니다

바로 사회양극화의 심화입니다. 소득양극화는 자산양극화를 거쳐 교육양극화에 이르고, 이는 다시 건강양극화로 귀결되어 악순환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기회균등을 통해 사회정의 실현의 바탕이 되어야 할 교육은 대대로 부가 승계되고 가난이 세습되는 기득권 재생산의 통로로 전락하였습니다.

인간의 창의와 노력에 따라 무한대의 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가 아니라, 대학을 가느냐 못가느냐 서울의 대학이냐 지방의 대학이냐에 따라 19살에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비정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사회양극화는 최종적으로 평균수명의 양극화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강북구의 사망위험이 강남구보다 30%나 높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강남구에 비하자면, 강북구 주민 378명을 가득 태운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매년 한대씩 추락하는 것과 같은 기막힌 현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노동자 농민 등 서민들은 수 십 년 째 연평균 2,800시간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기록한 죄밖에 없는데, 이 땅에서 살기 어렵다며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살률이 OECD국가 중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현실은 과연 누구 탓입니까?

왜곡된 분배구조, 양극화 조장하는 성장정책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가 문제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선  경제대통령이 뽑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경제가 문제입니까? 2006년 경제성장률이 실현 가능한 최대 성장치인 5%에 이르러 OECD국가 중 상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수출도 기록적인 3,000억불에 도달하였는데 경제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바로 분배 문제입니다. 왜곡된 분배구조의 문제입니다. 재벌중심의 성장이 지속되면서 중소기업들은 수직계열화 되었습니다. 재벌기업이 임금상승 등에 따른 원가절감 압력을 연구개발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해결하지 않고 하청업체, 납품업체에 전가하고, 이들 업체들은 비정규직 착취를 통해서 채산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해외 농산물 수입으로 저농산물가격을 유지함으로써 농가소득은 감소한 반면, 자본의 노동비용지출 압력은 완화되었습니다. 농촌경제가 파탄 직전에 몰리는 한편 재벌과 해외 자본의 이익은 증가하였습니다.

국내소비 분야도 대기업 유통기구가 독식하면서 재래시장은 고사되고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으로 자영업자는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돈을 버는 자영업자는 전체의 8.3%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노무현정부, 당장 FTA 협상을 중단하십시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IMF 환란위기로 고통이 증대된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월 참여정부의 통계청은 2006년의 전국가구 계층별 소득격차가 2003년 이래 가장 크게 벌어졌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대통령이 서민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제 노무현정부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양극화를 더 조장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는 것이 현실적인 요구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를 빌어 노무현 대통령에게 강력히 요구합니다.

사회양극화의 심화를 감수하고서라도 대자본 중심의 성장을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한미 FTA협상을 당장 중단하십시요. 한미FTA는 정권말기의 무력증에 빠진 노무현 부시 두 레임덕이 빅딜할 사안은 더더욱 아닙니다. 차기정부에서 협상재개여부를 국민투표로 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범여권 통합신당세력, 실정을 책임지고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대통합신당을 추진하고 경제대통령후보를 내세워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세력에게도 엄중히 요구합니다. 노무현정부의 무능과 실정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서민들에게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낀다면 이번 대선에 후보를 출마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른바 제 3지대에서 신장개업 한다하더라도 국민들은 속지 않을 것이며 재집권의 어떠한 명분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사회양극화의 공동정범입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노무현정부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효과로 잔치집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과 함께 사회양극화의 공동정범입니다.

또 한국경제의 미래가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중소기업의 육성에 있다면, 한나라당은 한국경제의 거대한 암초가 될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강력한 재벌 중심 성장노선은 중소기업의 성장분야를 잠식하고 연구개발보다 독점력에 의존하는 재벌 지배체제를 강화함으로써 분배구조 악화시키고 사회양극화를 더욱 조장할 것입니다.  
 
70년대 행복했던 사람은 한나라당 유력대선주자들 뿐입니다

한나라당의 주요 대선후보들은 박정희의 70년대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70년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우리 역사에서 70년대는 저임금과 저곡가 그리고 노동탄압이 성장동력이었던 시대입니다. 노동자 농민의 일방적 희생 위에서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시대였습니다.

전쟁위기를 고취시키고 인권탄압과 간첩조작 등으로 정권안보를 취하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에 행복했던 사람은 70년대를 찬양하는 그들밖에 없었습니다. 
 
한나라당 집권을 저지할 세력은 민주노동당밖에 없습니다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할 세력은 민주노동당 밖에 없습니다. 정권 재창출 명분도 능력도 상실한 현 집권세력은 더 이상의 대안이 아닙니다. 제가 민주노동당 후보가 된다면 한나라당의 실체를 발가벗겨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일할 맛 나는 새 세상을 열어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동지 여러분!

취업노동자의 3분의 2 정도가 월 200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는 실정에서 그리고 이들 대다수가 100인 미만의 영세기업에 취업해 있는 현실에서 기업의 임금인상만으로 서민의 빈 지갑을 채울 순 없습니다. 결국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사회적 재분배를 통해 서민의 구매력을 증진시키는 길이야말로 내수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중소영세 기업의 활로를 뚫어주는 첩경이 될 것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일자리, 주거, 교육, 건강 등 ‘서민의 4대 기본권’을 직접 챙기겠습니다

‘사회양극화해소특별법’과 ‘부유세법’, ‘사회복지세법’을 만들겠습니다.

우선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 탈세범죄와의 투쟁을 전개하고 탈세자금에 대한 전면 몰수를 실시하겠습니다. 그리고 백만장자와 대기업으로부터 매년 20조원을 걷어, 650만 빈곤층에게 지원하겠습니다. 빈곤층 자녀들도 학비걱정 없이 맘껏 공부할 수 있도록, 무상교육 서비스를 확실히 지원하겠습니다.

돈 없어 병원에 못가는 의료보험 사각지대 60만명을 포함, 모든 빈곤층에게 무상의료 혜택을 드리겠습니다. 빈곤층도 일터에서 맘껏 일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최소한의 주거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부자 20%의 소득이 가난한 20%의 소득보다 7.64배나 많습니다. 빈곤층 650만명에게 매년 300만원씩 지원하고, 다양한 원스탑 복지서비스를 제공해, 그 격차를 IMF 이전 수준인 4.49배 수준으로 줄여 내겠습니다.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특별법’을 만들겠습니다.

비정규직을 IMF 이전 수준으로 줄이겠습니다. 해고될 걱정 없이, 열심이 일하기만 하면 행복한 가정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공공교육복지일자리 100만개 창출 특별법’을 만들겠습니다.

서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어야 합니다. 현재 62% 수준인 고용률을 OECD 평균인 68%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 6%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23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필요합니다. 일자리창출, 민간기업에게만 맡겨놓을 수는 없습니다.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합니다. 비대한 관료조직을 확실히 줄이되, 복지서비스 분야와 교육, 소방, 치안분야에서 100만개의 일자리를 젊은이들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동산투기 범죄수익 몰수법’, ‘분양원가 전면공개법’, ‘주택 초과보유 제한법’, ‘공공임대주택 150만호 건설특별법’을 만들겠습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모든 권한을 사용해 기필코 이루겠습니다

이 모든 법을 취임 100시간 이내에 국회에 제출하겠습니다. 2008년도 정기국회까지 통과시켜 내겠습니다. 국민지지율이 50%가 넘는데도 보수정당이 발목을 잡는다면, 대통령에게 주어진 모든 권한을 사용해 그 장벽을 허물어버릴 것입니다. 
 
평화는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그 모든 원인을 제거한 상태여야 합니다

국민여러분 그리고 당원동지 여러분!

전쟁은 우리 서민들은 물론, 인류 전체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재앙입니다. 평화는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그 모든 원인을 제거한 상태여야 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북핵 실험 후 한나라당은 미국주도의 대북봉쇄정책에 참여하자고 주장하였습니다. 심지어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지전도 불사하겠다며 전쟁을 선동하였습니다. 북핵 위기 당시 집권당이 한나라당이었다면 한반도는 지금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 있을 것이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은 불가능할 것이며 국제신용등급 또한 하락했을 것입니다.

지난 북핵위기 사태 속에서 노무현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역시 우왕좌왕 흔들렸습니다. 오직 민주노동당만이 일부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양을 방문하였고 흔들리지 않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적극적인 대북 화해정책을 추구하였습니다. 2.13 합의로 북핵을 완전히 해체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민주노동당의 노선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남북한 지상군 병력을 10만으로 감축하겠습니다

21세기 국제경쟁력 중의 하나는 평화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즉각 ‘남북한 지상군 병력 10만감축’을 추진하겠습니다. 절감되는 군사비 예산으로 공공교육과 복지 예산을 확대하겠습니다. 남북한 상호군축은 남북 긴장완화는 물론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경제활동인구를 증가시켜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임기 내에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을 성사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새 정부의 임기 내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완성하겠습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남북간 불가침조약은 물론 북미불가침조약과 북미수교를 이끌어내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6.15공동선언이 약속한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을  성사시키겠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명분도 없고 비도덕적인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유일하게 반대한 정당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면 이라크는 물론 세계 각국에 파견된 무장병력을 일제히 철수시키겠습니다. 
 
민주노동당의 혁신을 통해 신뢰받는 진보정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의 정신을 함께 계승한 유일한 정치세력입니다. 1997년 노동자 총파업 투쟁에 바탕하여 탄생한 진보정당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창당한지 어언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원내에 진출한지 3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민주노동당은 땀흘려 일하는 서민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정치를 실현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해 처음 입법성과를 냈던 것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관련 법안이었습니다.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기업의 불의에 맞서 싸운  유일한 정당이 바로 민주노동당입니다.
 
민주노동당, 정체성만 빼고 다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오랜 숙원이었던 원내 진출을 이루어내고서도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으로 우뚝 서지 못했습니다. 서민들의 이해와 요구에 신속하게 부응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민주노동당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나라가 장차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당 안팎에서 민주노동당의 위기가 거론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정체성만 빼고 다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민주노동당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혁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진보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중심의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을 구축하여 대선을 승리로 이끌겠습니다

이번 대선은 그간 사회양극화를 조장해온 세력과 사회양극화를 해소시킬 세력간의 일대 결전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으로 전락할 것인지, 호혜와 평등으로 넘치는 인간의 왕국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운명의 한판 승부가 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진영과 반신자유주의 진영 간의 각축에서 승리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은 폭넓은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다양한 진보정치세력들이 서로 서로의 한계를 깨쳐주고 보완해주는 동지적 결합, 기득권 세력의 불의와 이기주의를 타파하고 서민이 겪고 있는 당장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조직적 힘의 결집, 우리 사회의 미래 비전을 벼려낼 집단적인 지혜가 모아지는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으로 제 17대 대선을 진보진영 전체의 승리로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제 17대 대선 승리를 통해 새 세상을 열고자 다시 광야에 나서려 합니다. 그러나 저는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습니다. 진보정당 집권의 꿈은 단지 민주노동당 8만 당원들만의 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확인되었듯이 민주노동당의 꿈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바라는 수백만 민중이 함께 꾸는 꿈입니다.

3백만명이 5백만명이 되고 다시 1천만명에 이를 때 진보정당 집권의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 걸어왔던 것처럼 태산을 옮기는 기백과 투지로 한발 한발 길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더 낮은 곳으로 더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4천만 민중이 기다리는 곳으로.

감사합니다.     

 

* 레디앙(2007. 3. 7)  / "진보정치 대반격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심상정 출마선언문 전문] "가난한 사람 위한 민주주의 시대 열어갈 터"

가난한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 시대를 열겠습니다
-2007년 3월 7일 심상정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지금 떨리는 가슴으로 당원동지 여러분과 역사 앞에 섰습니다.
전태일 정신으로 달려 왔습니다

막상 새로운 길을 나서려고 하니, 27년 전 오늘과 똑같은 떨림으로 저 자신과 시대를 마주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 수배 중이던 22살의 저는, 서울 명일동에 있던 한 직업훈련소에서 어렵사리 미싱사 자격증을 따냈습니다. 그 자격증을 움켜쥐고 힘껏 내달리며 외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전태일 동지, 저도 이제 미싱사가 됐어요!”

‘낮은 곳을 향한 끝없는 연민과 인간해방을 향한 불굴의 투지’, 이 전태일 정신에서 저는 진정한 민주주의와 진보의 길을 배웠습니다.

1985년,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정치 총파업인 구로동맹파업을 조직할 때도 9년이라는 짧지 않은 수배생활의 고단함을 견디어 낼 때도, 전노협, 민주노총, 산별노조운동으로 이어지는 가슴 벅찬 노동의 시대를 열어갈 때도, 제 곁에는 항상 전태일이 있었습니다.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자 합니다

지금 저는 국민과 역사 앞에 두 번째 다짐을 하고자 합니다. 27년 전의 다짐이 저 자신의 삶에 대한 다짐이었다면, 오늘의 다짐은 우리 사회의 다수 서민과 민주노동당의 미래에 대한 약속입니다.

저는 오늘 제 17대 대통령선거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에 출마할 것을 선언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빼앗긴 사회입니다

얼마 전 정부는 스스로 매긴 성적표를 내보였습니다. 구구한 지표와 수사를 종합하면, 한마디로 ‘결코 나쁘지 않다’입니다. 국가는 부유해졌고, 한국 기업의 실적은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천문학적으로 ‘부’가 늘고, 나라와 기업이 호황을 누리는데, 어째서 주변을 돌아보면, 서민들의 못살겠다는 한숨과 절망만 가득한 것입니까? 욕심이 과해서 입니까?

이 땅의 서민들은 부자가 되지 못해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큰 평수의 고급 아파트와 값비싼 수입명품을 갖지 못해서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면 그저 집 걱정하지 않고 아이들 교육시키고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의 부모세대는 못 배우고, 못 입어도, 자식 세대는 나아질 거라는 믿음과 희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20년, IMF 10년을 거치면서 서민들의 소박한 꿈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이미 부서진 지 오래입니다.

젊은이의 3명중 1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 생계를 꾸릴 수 없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입니다. 이 나라의 대다수 서민은 오늘의 어려움에 고통받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미래에 더더욱 절망합니다.

부가 세습되고, 가난이 세습되는 사회, 절망의 벽이 가로 놓인 나라가 대한민국 오늘의 자화상입니다.

신자유주의 정권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라고 말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은 무모한 짓이라고 충고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도덕적 권위는 붕괴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실시했던 국가들은 극심한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 안팎의 저항에 직면해 방향 전환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강한 진보정당을 가진 국가들은 신자유주의의 거센 공세에 맞서 자국의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지켜왔습니다. 이제 신자유주의 시대는 그 정점을 지나 급격한 쇠퇴 일로에 접어들었습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오늘의 시대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위세를 상실한 신자유주의가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동안 재벌을 축으로, 노동을 배제하는 성장을 해오면서 분배를 한없이 뒤로 미루던 한국의 보수세력은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지지자입니다.

이들과 연합해서 신자유주의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정권이 바로 노무현 정부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싸워서 세운 민주주의를 ‘부자를 위한 민주주의’로 전락시켰습니다. 급기야 이 정권은 서민들을 영원히 나락으로 빠뜨릴 한미 FTA마저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서민의 고통과 절망의 원인은 바로 서민의 염원을 외면하고 신자유주의로 전락한 노무현 정권에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민주화의 배반을 경험한 서민들은 ‘정치가 밥 먹여 주냐’고 절규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수십 년 대한민국사회를 지배해 온 재벌과 기득권세력의 정치는 종식되어야 합니다. 서민들 밥 먹여 주는 정치의 힘찬 새 역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다수 서민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유해지는 것이 민주주의 일 수는 없습니다. 이제 가난한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를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시대적 요구입니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시대교체’입니다

인류의 마지막까지 갈 것 같던 신자유주의도, 역사의 최후까지 군림할 것 같던 미국의 패권도, 도전과 변화에 직면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대체하는 공존과 공영을 향한 구상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미국의 군사적 패권은 중동, 남미 등 세계 곳곳에서 좌절되고 있습니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한반도 정세도 의미심장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냉전과 대결 체제가 빠르게 해체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우리 사회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진입할 것입니다.

권좌를 아래로, 옆으로 바꿔가며 이 나라를 지배해 온 보수정치도 마침내 밑천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민생과 개혁을 시대적 과제로 부여 받았던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한나라당이 말하는 ‘정권교체’는 냉전의 부활, 신자유주의 강화를 의미합니다. 부자들의 희망이고 서민들의 절망입니다. 역사의 반역입니다.

전환기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바야흐로 희망의 시대를 힘차게 열어제칠 것인가, 아니면 절망의 끝자락을 붙잡고 구시대와 함께 침몰할 것인가.

민주노동당만이 답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대교체’입니다.
부자들의 시대에서 서민의 시대로
냉전의 시대에서 평화와 통일의 시대로
신자유주의 약육강식 시대에서 호혜협력의 시대로
보수정치를 과감히 단절하고 진보정치의 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강한 진보정당만이 ‘시대교체’를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정권 교체는 난 사람 몇 명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 교체는 개인이 할 수 없습니다.
강한 진보정당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서민들은 민주노동당에도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에 ‘실망’이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보수정치의 무능력과 한계가 빈곤과 양극화를 초래했다 할지라도 민주노동당 역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집권세력에 대해 비판하고, 한나라당의 허구성과 타락을 따져묻기 앞서 민주노동당을, 우리 자신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적은 의석수와 주류사회의 편견도 면죄부가 되지 못합니다.

민주노동당은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정치를 자임했지만, 아직 일하는 사람의 희망과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실력과 대안이 부족한 것, 그래서 우리가 서민과 함께 충분히 강해지지 못한 점에 대해 냉정하게 자기비판해야 합니다.

진보는 이미지나 선언이 아닙니다.

진보정당하려면 대안사회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진취적이면서도 촘촘한 정책이 있어야 합니다. 강력한 지지 계급, 계층을 조직해야 합니다. 말로만 떠드는 게 아니고 여성과 환경, 인권과 평화의 가치가 알알이 박힌 정책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진보가 강한 정당을 만들고, 강한 진보정당만이 서민의 시대를 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번 경선에서 저의 최대 화두는 민주노동당 그 자체입니다. 민주노동당의 혁신이야말로 이번 대선의 최고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이번 대선은 강한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전당원의 헌신과 열정을 쏟아붓는 치열한 담금질이어야 합니다. 때문에 심상정 선거캠프는 민주노동당이고 당원동지 모두입니다.

진보정치의 대반격을 기대하십시오.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서민들 밥 먹여주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이번 대통령선거의 화두는 경제와 평화입니다.

서민의 밥이 정치의 중심인 시대,
평화가 곧 밥이 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몰락하는 신자유주의 공세를 대체할 호혜의 국제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금융위기를 초래한 채권단의 책임을 묻겠습니다

우리 경제는 외국자본과 재벌대기업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난 IMF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들의 지배는 더욱 공고화되었습니다.

IMF 금융위기 10년인 오늘, 저 심상정은 이제 그동안 좋은 시절을 보낸 채권자의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해외 국제채권단, 국내 재벌대기업, 이를 방조한 관벌들의 책임을 규명할 것입니다.

금융위기의 피해를 온전히 짊어졌던 서민들에게 잃어버린 권리를 돌려 드리겠습니다. 제가 여러 번 소득재분배뿐만 아니라 자산재분배를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서민이 주인되는 경제 비전을 세우겠습니다

대안이 무엇이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저는 여기 세박자 경제론을 제시합니다. 우리 진보운동이 지니고 있었던 분배경제모델, 일국모델의 한계를 넘는 미래 비전을 세우고자 합니다. ‘국내 서민경제론, 한반도 평화경제론, 동아시아 호혜경제론’으로 구성되는 ‘세박자 경제론’은 앞으로 5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50년, 100년 한국사회를 지탱할 경제파라다임을 지향합니다.

세박자 경제론이 대안입니다

세박자 경제론은 서민이 경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는 사회를 꿈꿉니다. 외국자본과 재벌대기업에게 서민을 배려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제가 아닙니다. 일하는 노동자, 가난한 서민들이 사회의 주인이 되자는 역사적 프로그램입니다.

국내적으로 자산재분배를 통해 서민경제의 주춧돌을 세우겠습니다. 지역주민이 주도하는 풀뿌리경제 그물망을 만들고, 서민금융체제를 구축하며, 핵심 기간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서민은행을 만들고, 공공부문을 혁신하고,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해 기업을 민주화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떠날 수 없는 땅 한반도가 있습니다. 최근 밀려오는 한반도 해빙의 물결을 경제공동체로 승화해야 합니다. 한반도에 평화경제체제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이것이 자주, 평화를 외쳐왔던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대안은 없다고들 합니다. 한미FTA를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대면하는 사람들은 압니다. 민중들이 역사를 바꾸어 왔습니다. 기필코 한미 FTA를 막아 내서 동아시아에 호혜적 분업체제에 뿌리박은 경제공동체를 만들겠습니다. 사회문화적 연대를 시작으로 Social Asia를 만드는 초석을 일구겠습니다.

오늘 말씀드린 세박자 경제론은 서로 떨어지지 않고 함께 굴러가야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이후 소상히 밝히겠습니다. 더불어 진보운동이 미래 대안사회를 개척하기 위해 내세워야할 다른 핵심의제들도 곧 제시하고 평가를 받겠습니다.

시대교체를 이루어내겠습니다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가난한 서민들이 진정한 그들의 대변자를 찾고 있습니다. 진보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우리들에게 달려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우리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혁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강한 민주노동당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심상정이 당원동지 여러분들과 함께 해내겠습니다. 민주노동당의 힘으로 보수정치의 시대를 종식시킬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의 자랑스런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의 민주주의 시대를 힘차게 열어낼 것입니다. ‘시대교체’를 이루어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

   담당 : 정기인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시간/장소 : 예비모임 3월 19일(월) 21:00 / “새움”세미나실

   연락처 : 정기인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018-295-1804 kiinchong@hanmail.net



소개: 맑스와 엥겔스의 문예에 대한 이론부터 현대의 맑스주의 문예이론을 함께 공부하여, 한국의 문학사, 문화현상 나아가 세계의 문학사와 문화현상들을 맑스주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론적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대의 맑스주의 이론은 알튀세르 이후, 알튀세르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나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세미나가 진행되어 가면서 구성원의 합의에 따라, 알튀세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고 우리는 어떠한 사상적 행적에 동의할 것인지가 드러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야 비로소 현대 맑스주의 문예이론 중 어떤 부분에 더 집중할 수 있을지가 정해질 것입니다. 그 전에는 맑스-엥겔스를 포함하여, 그 이후의 소련 사회주의 공식 문예이데올로기와 함께 루카치 이후 서구 맑시즘을 살펴보면서 구성원의 관심에 따라 합의하여 구체적인 커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맑스주의에 대해 기본적 지식이 없더라도 참여 가능합니다. 한국문학, 문화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싶어하는 분들, 맑스주의 문예이론에 관심있는 분들 모두 환영합니다.



읽을 거리 (6이하는 예시로, 구성원들의 합의와 구성원들의 알튀세르에 대한 이해에 따라 변경될 것입니다.)

1. (개괄)

아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테리 이글턴, <문학이론입문>

2. 맑스와 엥겔스

마르크스, 엥겔스 지음, 박산달, 모라브스키 엮음, 김대웅 옮김, <마르크스 엥겔스 문학예술론>, 한울, 1988.

3. 마르크스-레닌주의 미학

에른하르트 욘 지음, 임홍배 옮김, <마르크스 레닌주의 미학입문>, 사계절, 1988.

소련과학아카데미 편, 신승엽 외 옮김, <마르크스 레닌주의 미학의 기초이론 1~2>, 일월서각, 1988.

4.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소설의 이론>, <미학>

5. 골드만

<문학사회학 방법론>, <소설사회학을 위하여>, <숨은신 -비극적 세계관의 변증법>

6. 페터 지마

<텍스트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문예미학>, <데리다와 예일학파>

7. 마슈레

<문학 생산이론을 위하여>, <문학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헤겔 또는 스피노자>

8. 윌리엄즈

<이념과 문학>, <문학과 문화이론>, <문화와 사회>

9. 제임슨

<변증법적 문학 이론의 전개>, <언어와 형식>, <후기 마르크스 주의>

10. 이글턴

<문학과 비평>, <이데올로기 개론>, <미학 사상>

 

 

* 이 세미나들은 아무런 참가제한이 없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 모두 오시면 됩니다.


* 회비는 참가하는 세미나 수에 무관하게 매달 1만원씩 입니다.

  (수입이 없으신 분은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 문의: 011-9975-1392 류승민 또는 http://club.cyworld.com/seumnet



* 새움 세미나실 찾아오시는 길


_신촌역 1번 출구에서 나와서 직진. 현대백화점과 KFC사이로 우회전해서 현대백화점 식품관입구까지 와서 건너편을 보시면 신보건약국이 보입니다. 신보건약국 골목으로 들어와서 오른쪽 두 번째 건물 3층입니다. 건물 1층은 바지락칼국수집이고 3층은 비디오방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 비디오방이 바로 저희의 세미나실 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로쟈 2007-03-12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년전 커리를 보는 듯하네요.^^ 덤으로 말씀드리자면, 마슈레의 '문학'책들은 판독불능입니다. 영역본으로 읽으신다면 모를까...

기인 2007-03-12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ㅎ 요즘은 하도 묻혀있어서, 다시 끄집어내보려고 합니다. 단순 훈고학적 취미로 끝나지 않기를... 저는 30년대나 80년대에 관심이 많아서, 어짜피 다시 읽어야 하지만, 새로 공부해보려는 친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입니다..
마슈레를 읽게 된다면, 동문선에서 나온 판들은 영역판을 읽던지 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전출처 : 로쟈 > 누가 한국소설을 읽는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모닝커피 한잔 마시면서(정신도 차릴 겸) 신문들을 훑어보는데, 문학기사 하나가 눈에 띈다. 계간 '세계의 문학' 봄호에 실린 문학평론가 천정환의 '2000년대 한국 소설의 독자'에 대한 리뷰기사인데 이전에 읽었던 리뷰들과 초점이 전혀 달라서이다(참고로, 이번 봄에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평문이다). 

책이 출간되기 이전부터 나온 리뷰들의 초점은 문학독자층이 변화하고 있다는 그닥 새롭지도 않은 얘기였는데(사실 <근대의 책읽기: 독자의 탄생과 한국근대문학>(푸른역사, 2003)의 저자인 천정환씨는 한국 근/현대문학 독자층 연구라는 '블루오션'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한국소설 중간계급 전유물 전락'이라고 타이틀을 뽑게 되면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다시금 다른 언론의 리뷰들을 찾아보니까 '25-35세 여성이 문학시장 움직인다' '엘리트 독자 가고 대중 독자가 왔다' 같은 타이틀이 붙어 있다. 거의 '라쇼몽' 수준 아닌가? 가히 '독자의 시대'가 도래한 걸 입증해주는 듯도 하다. 당신이 무얼 쓰든지 간에 독자는 자기 구미에 맞는 것만 읽어내는 시대! 나는 가장 최근의 리뷰를 편들고 싶다. 세 편의 리뷰를 자료삼아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03. 12) 한국소설 중간계급 전유물 전락

“하위계급의 남성 및 여성 독자와 상층계급의 남성 독자는 소설로부터 이탈했다. 남은 건 엽기·추리·무협 등 하위 서사장르를 소비하는 남성 중간계급 일부와 여성 중간계급뿐이다.”

문학평론가 천정환씨(성균관대 국문과 교수)가 계간 ‘세계의문학’(민음사) 봄호에서 ‘2000년대의 한국 소설 독자’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한국인 작가가 한국어로 쓴 소설을 읽는 독자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지만 번역된 외국소설을 읽는 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나고 있다”면서 ‘한국 소설의 독자’와 ‘한국의 소설 독자’는 구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 소설의 독자가 줄어드는 것을 한국의 소설 독자가 줄어드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또 한국 소설의 독자에게만 집착하는 현재 문단의 구조에 대한 간접적 비판도 담고 있다.

천씨는 “한국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다면 이는 교육과 훈련, 배제와 선택을 통해 걸러진 ‘한국 소설’ ‘한국 작가’가 독자들의 삶·취향과 불화의 상태에 있는 것”이라면서 “상·하위 계층을 거의 잃어버린 주류 한국 소설은 프티부르주아 여성과 여학생, 문학청년 이외의 문화 수용자들의 관심을 잘 끌고 있지 못하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엘리트 독자와 대중독자로 재편된 한국 소설 독자 가운데 엘리트 독자인 상층계급 남성들은 문학을 떠났다. ‘교양’의 발로로 소설을 읽던 이들은 현재 계간지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한국문학 질서의 근간이기도 하다. 저자는 소설 애호가로 알려진 정치학자 최장집씨나 80년대까지 신문 문학월평을 꼼꼼히 챙겨봤다는 노회찬 국회의원을 이 범위의 독자로 들었다.

그러나 386세대 이후 이같은 엘리트 독자는 사라졌다. 아직까지 소설을 읽고 있는 엘리트 독자는 최후의 근대적 독자일 뿐 탈근대의 독자는 아니라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인문학 전공자와 문학 연구자조차 연구는 할 망정 소설 독자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대중독자 가운데서는 전통적 의미의 노동계급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남성 중간계급과 남학생 일부, 여성 중간계급과 여학생층이 남았다. 그런데 남성 중간계급과 남학생 일부는 주로 엽기·추리·무협 등 하위 서사장르 소비의 주역들로, 순수·본격을 추구하는 한국문학이 이들을 놓고 영화·만화·게임과 싸우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그렇다면 남은 독자는 여성 중간계급과 여학생층인데 이들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칙 릿,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일으킨 공지영 신드롬, 그리고 일본소설 수입붐의 주역들이다.

천씨는 “소설에서의 일류(日流)에 드러난 초국적·무국적의 소설 향유는 세계화한 삶이 소설 향유에 미치는 영향으로 막기 힘든 대세이며, 80만부가 팔려나간 ‘우행시’의 성공에 대해서도 문단은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소설 독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빈사상태의 한국문학이 독자에게 투사한 자기모습일 뿐 그들이 모르는 독자층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결론을 맺었다.(한윤정기자)

한국일보(07. 02. 27) 25-35세 여성이 문학시장 움직인다

'칙릿(chic lit)을 잡아라.' 젊은 여성(chic)들을 위한, 그녀들의 문학(literature)이 21세기를 호령할 태세다. 문학ㆍ출판계가 그 같은 변동상에 감응하고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 <브리짓 존스의 일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젊은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끈 영상물의 성공에서 확인되는 추세에 대한 문학의 대응이다. 신간 일본 소설은 보다 직설적이다. <워킹 걸 워즈>. 매일 전쟁 치르듯 살아 가는 30대 전후의 여성 직장인들을 속도감 있게 그린 소설이다(랜덤하우스).

성균관대 국문과 천정환 교수는 계간 <세계의 문학>을 통해 "25~35세의 비물질 노동 종사 여성들은 문화적 소비에서 일종의 전위 부대"라며 "지난해 출판계 전체의 화두였던 칙릿은 향후에도 한국 소설의 유력한 독자층으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층 계급 및 남성 독자의 상당 부분이 소설 독자에서 이탈한 현재, 순수ㆍ대중의 장벽을 허물며 21세기 초 문화계의 화두로 등장한 칙릿 층은 고학력 중간층이라는 외형적 공통점을 지닌다. 천 교수는 그러나 "그들의 상당수는 불완전 고용 상태에 놓여 있다"며 그들의 현실적 입지를 외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고학력 전문직이지만 사실상 직종 내부에서 성별로 분업화하고 저임금과 비정규직으로 차별화한 노동에 투입되기 십상인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동과 소비의 불일치, 출신 계급(부모의 계급)과 소속 계급(자신의 현실)의 불일치 등 현실에서의 이중적 지위가 따라서 엄존한다는 지적이다. 본디 근대 소설의 가장 중요한 독자층이었던 여성 중간 계급과 여학생 층은, 최근 가족과 결혼의 문제에서 결정권이 강해짐에 따라 더욱 큰 지분과 역할을 부여받게 됐다는 것.

천 교수는 "성공한 대중 소설은 독자의 취향과 의식의 평균치에 대해 과감히 도발하는 소설"이라며 관련 작가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는 <나의 달콤한 도시>에 대해 "TV나 영화 같은 데서 심심찮게 본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 네티즌의 서평을 인용, 기시감과 상투성을 극복할 것을 작가들에게 요청했다. 천 교수는 서사가 매우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상식을 비트는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성공한 작품에 속한다고 평했다.

천 교수는 "1990년대 이후 문학 독자의 재생산 구조는 상당히 달라졌다"며 "소설의 전통적 독자가 이탈하고 재구성되면서 우리 눈앞에서는 문명사적 전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0년대 한국 소설의 독자를 주제로 펼쳐진 논의에서 천 교수는 "하위 계층과 젊은 세대는 블로그와 UCC 등 인터넷을 통한 산 지식 습득과 향유에만 집중, 독서 문화에서 이탈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이들이 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 문학의 미래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립국어원은 최근 문화 지형도를 바꿔 놓고 있는 칙릿을 '꽃띠 문학'으로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장병욱 기자) 

 

동아일보(07. 02. 23) 엘리트 독자 가고 대중 독자가 왔다

■ 세계의 문학 ‘2000년대 표준 독자’ 분석

서울 거주 22세 여대생 김모 씨. 한 달에 한두 번 시내 중심가 대형 서점에 가며 ‘에쿠니 가오리’류의 소설을 사 본다. 베스트셀러 목록이나 인터넷 독자 서평을 살펴보긴 하지만 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책의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다. 대학 도서관이나 대여점, 친구들에게서 빌려 읽을 때도 있다. 독서 시간은 잠들기 전 1시간 정도. 인터넷 이용 시간이 훨씬 많고 개봉 영화 무료 시사회를 알뜰히 챙기는 영상 세대지만 재미있는 소설이라면 기꺼이 손에 잡는다.

다음 주 출간되는 ‘세계의 문학’ 봄호에 소개되는 ‘2000년대 표준 문학 독자’의 모습이다. ‘세계의 문학’은 특집 ‘누가 문학을 읽는가’에서 한국의 문학 독자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짚었다. 결론은 ‘엘리트 독자가 물러난 자리를 대중 독자들이 채우고 있다’는 것.

○ 엘리트 독자가 쇠하다

이 특집에서 성균관대 천정환 교수는 ‘2000년대 한국소설 독자 Ⅱ’라는 기고를 통해 엘리트 독자가 사라져 간다고 선언한다. 그는 직접 인터뷰한 모델 독자 G, C, Y 씨를 통해 엘리트 독자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40대 초반의 남성 교수. 주요 한국소설 작품과 김윤식 백낙청 등 대가급 평론가의 저작을 읽었다. ‘창작과 비평’ 등 문예지를 읽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한국 현대소설 사상 최고의 유산이라고 믿는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선 ‘한국문학의 대안’인지 모르겠다며 유보적이다.

인문학 출판사의 40대 남성 주간. 문예지는 안 보지만 우리 작가의 주요 작품집과 장편을 꾸준히 읽는다. 천명관의 ‘고래’, 박민규의 ‘카스테라’ 같은 30대 작가들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고 ‘좋은 문학적 역량을 갖고 있다’고 평한다.

문학박사 학위를 소지한 30대 초반 여성 대학강사. 한국소설 중 어떤 작품이 대중적으로 읽히는지, 평단에서 회자되는지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현장의 한국문학 작품은 거의 읽지 않는다. “재미가 없을 것 같고, 안 읽어도 세상 사는 데 별 문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독자 G 씨는 우리 문학 교육과 인문학 제도가 길러 낸 가장 모범적인 엘리트 독자다. C 씨는 성실한 엘리트 독자이긴 하지만 G 씨에 비해 문학의 변화를 보는 태도가 유연하다. 천 교수는 “Y 씨는 문학도이면서도 G, C 씨와 같은 선배 엘리트 독자의 명맥을 잇지 못하는 독자”라면서 “전통적 의미의 엘리트 독자가 단절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밝혔다.

○ 재미난 이야기를 찾는 대중 독자들

그렇다고 문학 독자 자체가 사라지는가? 이 특집에 따르면 엘리트 독자의 뒤를 잇는 것은 들끓는 대중 독자다. 출판문화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특집 기고 ‘통계로 본 소설 독자’에서 지난해 ‘국민 독서실태 조사’(성인 1000명, 초중고교생 3000명 대상)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남성보다는 여성이, 세대별로는 20대가, 대학생과 화이트칼라 직업군이 소설을 많이 읽으며, 소설 독자들이 다른 문학 장르 독자들보다 영화를 많이 본다는 등의 자료를 토대로 ‘서울 거주 22세 대학생 김모 씨’라는 2000년대 표준 문학 독자의 초상을 뽑아냈다.

이들에게는 앞선 엘리트 독자들처럼 한국문학 작품을 읽거나 최소한 알아야 한다는 ‘충성심’이 없다. 일본소설이나 영미권 치크리트(chick-lit)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읽으며 소설의 선택 기준은 ‘재미와 오락’이다. 백 연구원은 이 같은 대중 독자들 때문에 “소설 판매량은 안정적이고 견실하며, 다양한 방식을 통해 여러 사람이 한 권의 소설을 읽는 경향이 있다”면서 소설은 힘센 장르라고 밝혔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소설은 엔터테인먼트 경쟁력 제고가 필요한 조정 국면”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김지영 기자)

07. 03. 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LAYLA >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마광수 지음 / 해냄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마광수 교수야 워낙에 유명하니 대충 어떤 사람인진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앙드레 김 하면 그의 어깨가 부푼 하얀 양복을 떠올리듯 마광수 하면 야한소설과 긴 손톱을 떠올리는 정도의 수준이랄까. 그리고 크게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소설이 야해서, 그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들로 그가 유명해졌다고 하지만 난 애초에 그의 소설이 그리 야하리라 생각지 않았다. 그보다 야한 글이나 야한 동영상은 구하려고 하기만 하면 웹상에 넘쳐난다. 그랬던 내가 그의 에세이를 읽게 된 건 인터뷰집 '금지를 금지하라'를 읽고 그의 사상과 가치관에 흥미를 느껴서이다. 먼저 표지가 안이쁘다. 표지를 처음 보고 '이게 뭐야 정말 구리네'하고 누가 만들었나 습관적으로 책날개 펼쳐서 확인했더니 '표지그림:마광수'라고 찍혀있었다. 그의 그림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건 정말 구렸다. 인터넷 게임에 나올듯한 캐릭터랄까..책의 초반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중반부를 지나면서는 읽는게 힘들었다. 일단 이 책은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는 제목에 걸맞게 '자유'와 관련된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를 다루고 있는 듯한데 원고가 91년도 2001년도 심지어 그가 대학시절에 쓴 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 순서가 뒤죽박죽이라-분명 거기에도 어떤 의도가 있겠지만- 나로서는 좀 난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그 뒤죽박죽과 함께 비슷비슷한 논조와 내용의 에세이가 자꾸 반복되어서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충 반복되는 내용이라면 '일본에서 내 소설은 야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교수라는 나의 위치때문에 마녀사냥을 당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문화적 촌티를 벗어야 한다.' '성에 대한 이중적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는 류의 이야기들이다. 즉 그가 재판과정에서 느낀 답답함과 울분 억울함등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의 글빨이 그리 대단한것도 아니라서 (국문학과 교수라서 기대했는데 의외였다) 자꾸 반복되는 '그소리가 그소리'인 에세이들은 마치 작가가 독자들에게 징징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좋은 내용이 80퍼센트이고 반복되는 내용이 20퍼센트라고 하면 '20퍼센트 쯤이야' 싶지만 나로서는 상당한 고역이었다.  자유.라는 큰 주제 밑에서 에세이가 어떤 통일성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답답한 느낌이라면 좀 얇게 좋은 양질의 에세이만 싣는 것이 나았을거 같다는 생각.

이 책을 보면서 마광수 교수에 대한 호감이 많이 깍여나갔다. 역시 인터뷰만으로 어떤 사람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하는건 무리였다. 그의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은 꽤나 매력적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런 사상과 마초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지 촘 신기하지만 (그는 유별나리만치 진보적인 사람이니까) 하여튼 그는 마초적이고 외모지상주의적이다. 나도 장동건 좋아하고 잘생긴 남자 좋아라 하지만 마광수 교수의 노골적인 외모지상주의는 잔인한 구석이 있다. 슬픈 구석도 있다. 진보적이라고 하면, 지식인이라고 하면, 똑똑하다고 하면 흔히 사람들은 외모는 별 게 아니고 내면이 중요하니 어쩌니 하는데 자유를 외치며 한편으론 아름답고 야한것이 좋다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 그의 그런 모습이 진정 야해보인다.

 

못생긴 여자가 여권 운동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여자가 남자에 대해 적개심을 표시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남자가 윤리. 도덕 부르짖으며 퇴폐문화 척결운동 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남자가 성 자체에 대해 적개심을 표시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여자들과 못생긴 남자들을 한데 모아

자기네들끼리 남녀평동하고 도덕 재무장하고

고상한 정신적 사랑만 하고 퇴폐문화 없애고

야한 여자. 야한 남자에 대해 실컷 성토하게 하면

 

그것 참 가관일 거야

그것 참 재미있을 거야

그것 참 슬픈 풍경일 거야

 

마초적인 부분이야 너무 많다.

중년 남성들 가운데 발기부전이나 조루증 등으로 고민하는 이들은 대개 근사한 마누라를 둔 사람이거나 마누라가 대학교수등 여류명사거나 또는 돈 많은 집 따링거나 할 때 남편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성적 기능을 상실해 버리기 쉽다. .....아무리 남녀평등이 부르짖어지고 있는 민주 사회라고 해도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자연은 남성들이 여성을 지배하도록 만들어놓았다. 왜냐하면 남성이 성적으로 기고만장해야만 좋은 정자가 여성에게 주입되어 좋은 씨앗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졸여성보다 고졸여성들이 오히려 사랑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잇다. 그들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한 모성애적 내조와 관능적 치장에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대졸여성, 특히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여성일수록 눈만 높아지고 여류 명사가 되고자 하는 허욕만 강해져.......

좋은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밑줄긋기도 많았고. 하지만 그만큼 꺼려지는 부분도 많은 책이었다. 한 사람의 가치관이 이런 조합으로 이뤄질 수도 있구나. 라는 느낌. 그리고 그런 조합으로 전개되는 에세이를 보는 것도 초금은 신선했다. 보통사람.의 논리구조로는 튀어나올 수 없는 그만의 사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