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 식민지의 새로운 재현: 경합하는 공공성

* 담론비평(2007. 3. 15)  / 식민지의 새로운 재현 "경합하는 공공성"

 

허수 동덕여대 교수, 식민지연구 최신동향 비판적 검토

 

리뷰팀 review@dambee.net

 

▲ 역사문제연구

허수 동덕여대 교수(한국사)가 '역사문제연구' 제16호에 식민지 시대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최신 연구동향을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논평한 논문 '새로운 식민지 연구의 현주소-'식민지 근대'와 '민중사'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허 교수의 논문은 매우 치밀하고 명석하게 기존 연구들을 분석할 뿐아니라, 나름의 발전적 대안까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한국사 전공자는 물론, 역사에 관심있는 일반인들도 한번쯤 고민해볼 만하다.

먼저 그는 엄밀한 구분없이 사용되는 '역사인식'과 '역사의식'을 정확히 구분하자고 제안한다. 역사인식(historical perception)은 '역사적 대상에 대한 경험적 파악'으로서 '역사적 지식'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식(historical consciousness)은 '역사적 발전에 대한 강한 자각'이자 '역사인식의 기초가 되는 사유방법'을 일컫는다. 현실의 변화 등을 계기로 역사의식의 전환이 이뤄지면 역사인식의 확장이 초래되는 경우가 많고, 역사인식의 꾸준한 축적 위에서 새로운 역사의식이 도출될 수도 있어 양자는 밀접한 인과관계를 갖는다는 게 허 교수의 생각이다.

비판적 역사담론은 역사의식과 역사인식 사이의 생산적 긴장을 통해 형성된다는 전제 아래 허 교수는 '식민지 근대'의 입장에서, 그리고 '민중사'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역사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대안으로 '서로 경합하는 공공영역들'이란 관점을 제시한다.

그런데 약간의 선이해가 필요하다. '식민지 근대'와 '민중사' 입장도 사실 90년대 중반 이후에 시도된 것들이라, 그 이전의 연구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머릿속에 넣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 유명한 '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의 대립이다. 여기서의 '식민지근대화론'은 앞서의 '식민지근대'적 입장과는 다른 것으로, 후자가 나름 진일보한 관점이다.

수탈론과 식근론은 상호 대립했지만 그 심층에서는 '민족주의·근대주의'의 지반을 공유했다는 게 최근 학계의 입장이다. 수탈론적 입장은 '주체적 근대화'를 강조하면서 독립운동에서 사회주의운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연구하고, 좌우합작을 잣대로 해서 운동을 평가해왔지만, '그들만의 근대화'란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식근론은 식민지시기의 경제성장을 강조했지만, 정치적 층위를 배제하고 경제적 층위의 능동성에 제한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두 대립적 인식은 '근대성 비판'이라는 새로운 접근에 의해 상대화되기 시작했다. 동구권 몰락과 IMF 등의 외부요소는 근대성이 전가의 보도가 아님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질문 역시 바뀌었다. 그 전에는 '왜 우리는 우리 힘으로 근대화를 수행할 수 없었는가'였다면, 이제는 그 초점이 '우리의 근대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가'라는 근대성찰적 관점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 질문이 반복되면서 이 시대를 바라보는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식민지 경험이 상대적으로 '강한 근대'와 '강한 非근대'의 공존과 지속으로 표상된다"는 점이었다. 이 점은 근대의 폭력성과 근대 비판의 내적 자원들을 식민지로부터 더 잘 추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근대비판논자들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자면 총독부가 식민지 주민들을 국민으로 통합하지 못했던것, 국민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민중'의 존재가 새삼 부각되었던 것이다.

이런 연구사의 토대위에서 출현한 '새로운 식민지 근대' 연구가 마쓰모토 타케노리와 윤해동의 연구다.

마쓰모토 타케노리는 △수탈론 對 식근론을 극복하기 위한 분석틀을 제시했고, △헤게모니, 규율권력, 젠더 등 새로운 분석틀을 의식적으로 채택해 일상생활 레벨에서의 권력작용을 분석해 사회구성체 수준에서의 거대권력 분석과는 다른 논점을 제시했다. 또한 △다양한 사상·운동을 민족주의와는 다른 시점에서 재평가하는 등 민족주의를 상대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줬다.

그의 주장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규율권력장치, 대중문화, 근대적 미디어는 그 제한적 보급에도 불구하고 식민지하 조선인 사이에서 헤게모니로서 성립했으며 △촌락은 근대의 헤게모니와 전통적 규범이 각축하는 장이고 농촌엘리트는 식민지권력의 의지를 전달하는 자이면서 동시에 민족의식의 보유가 가능한 양면성(=회색지대)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양면성에서 그는 수탈-저항의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했다.

윤해동은 피지배 민중을 '협력과 저항'의 양면성 존재로 파악한 뒤, 이를 회색지대의 발원지로 보았다. 그리고 일상에서 '정치'가 이뤄지는 공간을 '식민지적 공공성'이란 개념으로 포착하고자 했다. 그 사례로 그는 1920~30년대 지방제도 개정, 1930년대 초반 경성지역의 전기사업 부영화 운동, 각종 민중대회 등을 주목했다.

   
▲ 일제시대 경성전기의 모습
둘째 단계로 그는 대중을 주목했는데, 기업열, 교육열 등으로 상징되는 합리성의 폭발이 근대적 개인을 형성시켰고, 대중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윤해동은 식민지와 좌우운동권이 이들 대중을 재주술화하려는 입장에서 각축했다고 파악하는데, 대중은 한편으로는 좌우익에 의해 각각 '계급'과 '민중'으로 전유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권력에 의해 '제국민족'이라는 새로운 신성으로 동일화되어 갔다는 것이다.

마쓰모토가 회색지대로 표현되는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농촌엘리트로 설정했다면, 윤해동은 도시의 대중으로 삼았다.

그러나 허 교수는 이들의 연구가 역사의식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식민지 근대가 민족 주체 혹은 계급 주체에 기반한 역사인식을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면, 새로운 주체를 무엇으로 설정할까의 문제가 남는 것. 여기서 둘은 소극적이거나 불명확하다는 게 허 교수의 비판이다. 역사인식은 이루고 있으나 역사의식이 추상적 문제제기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 다음 허 교수는 새로운 식민지연구의 다른 차원으로 '민중사' 연구를 검토한다.

이 분야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신창우는 경기도 양주의 헌병보조원 강기동(姜基東)이 한일합방이 되자 의병토벌을 그만두고 자신이 의병으로 나서 일제와 싸운 과정을 추적했다. 신창우는 이를 통해 강기동이 식민지 민중, 하층민의 여방을 체현한 '대리투쟁'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허 교수는 그렇게 보는 것은 무리라고 비판한다. 하나의 사례를 그렇게까지 확장하면 곤란하다는 것.

그 다음 조경달은 민중의 가치체계를 통해 근대라는 시대를 상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를 위해 '저변민중' 특히 농민을 자율적 존재로 보는 관점을 내세운다. 그는 민중이 스스로 말하지 않고 사료가 없기에, 식민지 시기에 일어난 운동, 투쟁이라는 비일상적 세계로부터 민중의 일상적 세계를 역투시하는 방법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조경달은 국민국가론에 대해서 비판적인데, 국민국가론은 민중을 주체적으로 포착하려는 시각이 희박한 까닭에 항상 국민국가를 주어로 하며, 민중은 수동태로 언급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의 식민지 근대 논의가 일본의 국민국가론과 동일한 문제점을 지닌다고 비판했다.

신창우와 조경달 모두 역사의식에서 나름 투철한 방향전환과 신념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증적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고, 민중(농민)의 자율성을 실증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방법론적 준비도 부족하다고 허 교수는 지적한다. 

이는 인도의 서발턴 연구집단에서도 봉착한 문제였다. 호미 바바는 지배-저항의 대립구도를 깨기 위해 '탈중심화된 다중적 주체'와 '혼성성'을 내세웠다가 담론연구에 편향되었고 사회경제적, 정치적 실천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 반대편에서 라나지뜨 구하는 "지배와 짝을 이루면서 이원적인 관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항으로 서발턴을 보지 않고서는 종속을 이해할 수 없다"며 명확한 이원적 관계구성 입장을 취했다.

이 둘 사이의 쟁점은 서발턴의 정체성이 혼성적인가 이원적인가, 반본질주의적 이해가 타당한가 본질주의적 이해가 타당한가 라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야트리 스피박은 '전략적 본질주의'를 채택한다. 그는 서발턴이 엘리트의 사유 없이는 재현될 수 없는 존재인 동시에, 재현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그 타자성을 상실하는 존재라고 파악한다. 이를 바꿔말하면 제대로 묘사하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 가야트리 스피박
허 교수는 이런 스피박의 '전략적 본질주의'는 서발턴 재현의 불가능성과 재현 노력의 불가피성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잘 보여준다며, 이 '재현'과 '실천'이라는 두 층위를 '역사인식'과 '역사의식'에 연결할 수 있다고 본다. 농민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민중사 입장은 본질주의적 시각을 가진 구하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민중사적 입장은 민중성을 재현하는 작업의 곤란함을 자각하면서도 그 곤란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투철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허 교수는 대안을 제시한다. 바로 하버머스의 '공공영역'을 끌고 들어온다. 헌데 식민지 시기에 공공영역이라 할만한 것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는 그간 시끄러운 논쟁거리였다. 그런데 얼마전 역사학대회에서는 최갑수 서울대 교수가 프랑스 혁명시기 '민중적' 공공영역이 발견되었다며 공공영역이 부르주아(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펼친 바 있고, 2006년 사회학대회에서는 황병주 등의 소장학자가 식민지시기 공개념을 확장해석하고 다양한 생활세계에서 그 흔적을 찾고자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대해 '민중론'의 대표주자 조경달은 곧바로 비판하고 나섰는데, 식민지적 공공성이 과대평가돼선 곤란하다는 것. 민중세계는 지식인세계와 단절되어 식민지공공성의 권외에 존재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허 교수는 굳이 따지자면 공공영역이 있었다는 쪽이다. 그런데 그는 그 주장을 위해 공공영역이라는 개념 자체를 유연화시킨다. 그 시각을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세계화의 원근법'(이산)에서 빌려온다. 

깨놓고 말해서 식민지시기 조선인사회의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국가에 미치는 힘이 약하고 협소했다는 측면에서, 식민지시기 국가와 사회 사이에는 상당한 틈이 존재했다. 그러나 반드시 국가와의 연관이 필요할까라는 의문도 제시해볼만한다.

   
▲ 세계화의 원근법, 이산 펴냄
당시 민중들이 국가와 직접적인, 그리고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상호작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이 속한 종교적, 지역적, 성적 정체성의 네트워크 속에서 일상을 영위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미성숙했다고 없는 게 아니라, 성숙의 정도가 달랐기 때문에 다양한 공공영역들이 경쟁적으로 존재했다는 게 허 교수의 새로운 발상인 것. 이것이 바로 '서로 경합하는 공공영역'이라는 아직 개념화되지는 않은 발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식민지에서 공공성의 문제의식을 부르주아적 차원에서 '일상' 차원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고, 공공영역의 몇가지 차원을 상정하면서 그들 간의 긴장과 상호접합도 시야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눈에 들어오는 사례는 젠저나 위안부 같이 차이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가 있고, 경성전기 부영화 운동과 같이 지역,장소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가 있으며, 민족주의 계열의 운동이 가지는 단일화 효과도 상정될 수 있는 반면,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이데올로기가 만드는 동일화과정도 상정 가능하다.

이들의 역동적인 경합이 과연 경험적인 차원에서 실증적인 연구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 재현되는 식민지적 '주체'의 현실이 지금 이곳의 근대성을 반성할 수 있는 역사적 잣대를 선물해줄 것인가.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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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출판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출판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그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 대해서도 우리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렌덤하우스'란 곳이 어떤데인지?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의 답글이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kabbala :: 많은 출판사 중에서 왜 외국의 랜덤하우스부터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61.111.95.xxx)  
봄비 :: 누가 대한민국 최강 출판사라고 하길래...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저로서는 막연한 존경의 꿈틀거림을 조속한 시간내에 처리하기 위해서요..
더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222.110.181.xxx)
삭제
행인 :: 랜덤하우스는 세계 최대의 출판사며 한국에서는 처음에는 중앙M&B와 합병하는 형태로 들어왔으나(그때의 명칭이 랜덤하우스중앙입니다) 지금은 랜덤하우스가 모든 지분을 회수하여 랜덤하우스코리아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봄비님께 랜덤하우스에 대해 알려주신 분이 어떤 의미에서 '최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랜덤하우스에는 최강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립니다.

대표적인 예로 랜덤하우스는 '임프린트'제도를 도입하여 한국에도 M&A 트렌드를 유행시키면서 한국출판계의 지반자체를 흔들어놓았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유능한 편집자들을 자본으로 영입하여 편집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고 출판사는 브랜드를 확장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게 아니냐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죠. 이는 마치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러하듯 유능한 인재들을 자본으로 포섭하여 창의성과 개성을 존중한다는 명목하에서 혹독한 경쟁을 통해 가장 우수한 결과만을 취사하고 그에 따르는 리스크는 개별 편집자들이 감당하게 하는 아웃소싱 형태와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형태를 통해 1인 편집자들이 명성을 얻기도 합니다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랜덤하우스는 한국 출판계에 신자유주의적인 트렌드를 몰고온 대표적인 거대 출판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랜덤하우스가 운영하는 브랜드만도 북박스, 드림하우스, 키즈랜덤 등 9개에 달합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상이할 수 있겠으나 이윤의 창출이라는 의미에서는 긍정적으로 최강이지만, 동시에 성과로만 판단하며 리스크를 자신이 감당해야하는 혹독한 경쟁체제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의미에서 최강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219.255.20.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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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 행인/ 질문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상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저도 궁금했던 정보입니다.    (218.50.84.xxx) 삭제
:: 회사 규모와 결과물의 수준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주의한다면 막연한 존경의 꿈틀거림을 조속히 처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59.6.245.xxx) 삭제
강유원 :: 제가 썩 좋아하는 소설가 이문구 전집을 펴낸 곳이기도 합니다. 구입하진 않았지만요.    (211.210.218.xxx)  
질문 :: 행인님, 명쾌하게 요약된 설명 감사합니다. 그런데 '개별 편집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요? 기획과 출판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 '임프린트 제도'를 통한 것이 아닌 경우에 비했을 때 특히 더 부담/감당해야 하는 계약내용 같은 것이 있는지요?    (219.253.80.xxx) 삭제
지나가다4 :: '랜덤하우스'는 세계적인 미디어그룹인 베텔스만의 출판 부문 계열사입니다. 베텔스만 그룹은 독일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유럽, 북미, 아시아 등 전세계에 TV, 음반, 출판 등의 부문 계열사를 두고 있습니다. 세계 미디어그룹 순위에는 3위 안에 들어가며,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안에 속하는 그룹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삼성 그룹 안에 금융, 전자, 건설 정도 되는 부문으로 출판 부문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출판물의 기획, 제작에 있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합니다. (* 베텔스만은 '대교베텔스만'이라는 이름으로 램덤하우스보다 먼저 국내에 들어와있습니다. )
저는 출판 쪽에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름이 꽤나 알려진 국내 출판사들이 알짜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 출판사 직원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월급이 적다는 사실 때문에 출판사는 어쩔 수 없이 영세성을 면치못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판사 직원들에 대한 급여나 복지에 대해선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으면서 출판사 소유주들에게 부가 몰리는 상황을 보면서 한참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랜덤하우스'의 국내 진출이 국내 출판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보이긴 하지만. ㅡㅡ.    (59.10.223.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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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4 :: 중요한 걸 빠뜨렸군요. '출판저작물의 시장/고객 우선'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척 좋은 책이지만,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면 (되도록이면) 출판하지 않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59.10.223.xxx) 삭제
행인 :: 질문/ 지나가다4님이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랜덤하우스의 임프린트 정책은 형식상으로는 전문적인 개별 편집자에게 별도의 브랜드를 주고 경영권과 출판권을 맡기는 형태를 취합니다. 그러나 임프린트는 대개 3년 정도의 계약기간을 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랜덤하우스의 입장에서는 자회사가 한번 설립하면 끝까지 책임져야하는 것에 비해, 임프린트는 성과가 좋으면 그대로 계약을 유지하지만 아니면 부담없이 계약을 끝내도 되지요. 임프린트는 일명 소(小)사장 제도라고도 불리는데 한마디로 철저한 성과급, 계약직 형태의 출판계 제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말한 리스크는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를 통해 마치 도요다즘을 출판계에 도입한 것과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시장과 고객에 맞추어 '기획'한 책들이 범람하게 되는 것이죠. 매출을 높일 수 있는 책이 아니라면 팔지 않고, 매출을 높일 수 있는 책만 기획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임프린트가 모두 매출에 의해서만 평가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성과에 의한 경쟁체제라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이제 훌륭한 컨텐츠를 보유하고 있지만 알려져 있지 못한 작가가 이의 가치를 알아보는 편집자에게 발굴되어 유명세를 타게 되는 '신화' 같은건 있을 수 없는 일이 됩니다. 모든 것은 기획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죠(최근 한젬마나 마시멜로 사태는 단순히 대필과 부도덕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러한 출판사의 생존전략과도 결부되어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이 고객에 맞추어 기획된다는 자체가 부정적인 현상이라기 보다는 이런 과정 전체가 철저하게 자본의 효율성에 바탕해서 평가받는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219.255.20.xxx)
삭제
봄비 :: 행인님,지나가다님.. 친절한 설명에 모두 감사드립니다.
막연한 존경의 꿈틀거림을 님들에게 바칩니다!    (222.110.181.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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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arvey,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an enquiry into the origins of cultural change(1989)

2.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정치 경제적 변모

2.1 도입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기본법칙이 계속하여 역사적 지리적 발전을 이루는 변함 없는 동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157)

즉 이윤 추구. 그럼 이윤율의 하락이나 대공황 같은 맑스가 예견했던 자본주의의 필연성은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아님 ‘땜질’ 되고 있는 것인가? (마치 정치 경제학적 맑스주의가 ‘땜질’되고 있듯이? 이를 현실과 이론의 변증법적 발전이라고 하면 할말 없지만...) 이러한 ‘땜질’ 중 하나가 ‘조절학파’(regulation school)의 ‘조절이론’(regulation theory)이다. 조절이론은 Regimes of Accumulation(축적체제: ROA) 과 Modes of Regulation (사회 정치적 조절양식: MOR)이라는 개념으로 역사적 변화를 설명한다. ROA는 특정 기간 동안 자본이 조직되고 팽창되는 특정한 형태로 일정한 형태의 안정성을 획득하고 있다. ROA의 핵심 예는 “포디즘”이라 조절이론가들이 지칭하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MOR는 법, 관습, 국가 등, ROA의 작동의 맥락을 제공하는 제도적 실행이다. MOR은 ROA에게 도움이 되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조한다. 그러나 가끔은 둘 사이에 긴장이 있게 되고, 이 둘 중 하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이런 양방향성이 고전적 맑스주의에서 토대-상부구조와 다른 점일까? 그 외의 차이는? 자본주의 내에서 일정기간의 안정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 패러다임 교체처럼 세련화된 형태?) 포디즘으로의, 포디즘에서의 변화가 조절 학파에서 이러한 개념으로 설명된바 있다. (이하 http://en.wikipedia.org/wiki/Regulation_school 에서 내 맘대로 편역. 여기서 조절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데이비드 하비를 꼽고 있다. *은 내 생각)

하비가 조절이론에 대해 ‘간략하게 요약될 수 있다’고 한 부분을 살펴보면

축적체제란 ‘총생산량을 소비와 축적 사이에서 장기간에 걸쳐 할당하는 안정된 상태를 일컫는다. 이는 생산조건과 임금수입자들의 재생산조건 양자의 변모 사이에 어떤 일치점이 생겨남을 뜻한다.’ ‘그 재생산 표식이 상응하기 때문에(? 국역에는 응집력을 갖추고 있기에로 번역되었는데 원어는 coherent.. schema를 ’표식‘이라는 알 수없는 단어로 번역했는데 도식정도로 번역하면 되는 것 아닐까?)’ 특정 축적체제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러 유형의 개인들-자본가, 노동자, 국가관료, 금융업자, 그리고 다른 정치 경제의 담당자들-의 행태를 결합하여 축적체제의 기능을 원활하게 유지시킬 구도로 만들어내는 데서 발생한다. 따라서 ‘규범이나 습관, 법률, 조절 네트워크 따위의 형태를 띠는 구체적인 축적체제가 작동하여 그러한 과정의 통일성, 즉 개인적 행태들을 재생산 표식에 적절하게 일치시키는 것을 보증해주어야만 한다. 이같이 내재화된 규칙과 사회적 과정을 조절양식이라 부른다.’

이러한 유형의 언어는 우선 발견적 장치로서 쓸모가 있다. 이 이론틀에 따르자면 우리는 복잡한 상관관계와 관습, 정치행위, 문화형태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이에 따라 역동적인 (따라서 불안정한) 자본주의 체제는 적어도 특정기간 동안이나마 적절하게 기능할 만큼의 충분한 질서를 지니게 된다. (157-158)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려면 성공적으로 해결해야만 할 광범위한 영역의 체제 내적 어려움이 두 가지 존재한다. 그 하나는 시장가격기구의 무정부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력의 배치방식을 충분히 통제하여 생산에서의 가치 증가를 보장해줄, 즉 가능한 한 많은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보장해줄 필요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이다. (158)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포디즘이고, 이후 ‘유연적 축적체제’ (flexible accumulation)인 것.

나는 노동통제 관행이나 기술상태, 소비행태, 정치 경제적 권력구도들의 특정한 조합 위에서 전후의 장기호황(1945~1973년)이 일어났으며, 이런 양상이 ‘포디즘-케인즈주의’라고 불릴 법하다는 주장을 전반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1973년 이후 이런 체제가 붕괴되면서 급속한 변화와 변동, 그리고 불확실성의 시기가 닥치게 되었다. 새로운 생산 및 마케팅 체제는 더욱 유연한 노동과정과 시장들을 그 특징으로 하며, 지리적 이동성이 드높아지고, 소비관행이 급격하게 뒤바뀌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체제가 ‘새로운 축적체제’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지 어떤지,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불러일으킨 문화적 전환과 짝을 이루는 기업가주의 및 신보수주의의 부흥이 ‘새로운 조절양식’인지 어떤지는 결코 분명하지 않다. 장기적인 정치 경제의 전개양상을 두고 볼 때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을 보다 근본적인 변화와 혼동할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 경제적 실태와 2차대전 후 과거 활황기 사이의 대조점들은 너무나 강력한 것이어서,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체제라 불릴 만한 것으로 넘어갔다는 가설은 최근의 역사를 특징짓는 이야기 방식으로 채택될 만하다. (160)

2.2 포디즘

포드가 특별히 기여한 점은, (그리고 궁극적으로 포디즘을 테일러주의와 구별짓는 것은), 대량생산이 대량소비, 새로운 노동력 재생산 체계, 새로운 노동통제와 관리의 정치학, 새로운 미학과 심리학, 요컨대 ‘새로운 유형의 합리적 모던 대중적 민주사회’를 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한 그의 안목이었다. (161-162)

결국 조절이론이 ‘포디즘’을 하나의 시기로서 이름지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새로운 유형의 합리적 모던 대중적 민주사회’를 의미하기 때문.

전후 포디즘은 단순한 대량생산 체계라기보다는 총체적 생활방식으로 여겨져야 한다.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뿐만 아니라 제품의 표준화를 뜻했다. 이는 또한 다니엘 벨과 같은 많은 신보수주의자들이 훗날 노동윤리 및 기타 자본주의적 덕목들의 보존에 해로운 것으로 여겼던 완전히 새로운 미학과 문화의 상품화를 의미했다. 포디즘은 또한 매우 뚜렷하게 모더니즘 미학에 -특히 모더니즘의 기능성이나 효율성 선호에-바탕하여 세워졌으며 그것에 기여하였다. 국가 개입의 형태들(관료적 기술적 합리성 원칙에 따라 운영됨)과 그 시세틈에 결속력을 부여하는 정치세력들의 판도는 특수 이익 집단들의 균형을 통해 서로 묶여진 대규모 경제 민주주의 개념에 바탕하고 있었다. (173)

결국 조절이론이 고전 맑시즘적 정치경제학 (자본론)에 가한 변형은 토대-상부구조가 아니라 ROA, MOR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전체로서의 ‘자본주의’의 특정 기간의 ‘regulation'을 밝혀, 그것이 어떻게 특정 기간 안정감 있게 지속되는 가를 설명하는데에 있는 것 같다. (해당 관련서를 몇권 챙겨서 읽어두어야 하겠다. 조금 읽어보니 권현정, <미셀 아글리에타의 자본주의 조절이론에 대한 연구>, 서울대 석사논문, 1993이 시작으로 유용할 듯.)

포디즘의 성과를 모두에게 널리 베푸는 능력, 그리고 적당한 보건 주택 교육 서비스들을 대규모로 또한 인간적이고도 세심하게 제공할 능력, 이 두 가지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176)

국가는 분명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지만, 어느 정도의 ‘조절’이 필수고 때문에 종종 부르주아 계급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맑스의 <자본론>에서도 공장법에 대해서 설명할 때,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이익과 부르주아들의 이익 사이를 구분하는 대목이 있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를 안 망하게 하는 것이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임으로, 국가의 ‘조절’이 필수적이다. 이 국가 조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도화된다면, 결국 자본주의 체제 붕괴의 필연성 내지는 과학적 원리는 국가라는 ‘주체’를 과소평가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

포디즘이라는 일종의 패러다임이 선진 자본주의의 생산성 향상과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높인 것은 사실이나, ‘모든 사람’이 포디즘의 덕을 본 것은 아니었다. 노동시장은 독점부문과 더욱 다양한 경쟁부문으로 양분되는 경향을 보았고, 포디즘은 전자에만 해당되었다. 결과적으로 불평등에 따라 버림받게 된 쪽에서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강력한 사회적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민족이나 성, 인종에 따라서 누가 고용에 있어서 특혜를 받는가, 못받는가’가 결정되기도 하는 상황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시민권운동은 도심불량주거지역을 뒤흔든 혁명적 분노로 발전하고, 저임금 직종에 여성이 몰려듦에 따라 그만큼 격렬한 여성운동도 함께 일어났다. 늘어가는 부유함 속에서도 처절한 가난이 존재함을 깨달으며 포디즘에 기대했던 혜택에 대한 불만이 강력한 저항운동으로 솟구치게 되었다. (175 정리)

여기서 하비는 맑스의 논법을 빌어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디즘의 절정에서, 포디즘을 붕괴시킬 것이 나타났다고.

1973년의 경기 퇴조가 포디즘의 틀을 급작스럽게 뒤흔들게 되자, 비로소 축적체제의 급속한(하지만 아직 명확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변화과정이 시작되었다. (177)

 

2.3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

유연적 축적(flexible accumulation)은 포디즘의 경직성에 정면 대응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노동과정이나 노동시장, 제품, 소비패턴의 유연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전혀 새로운 생산부문의 출현, 금융서비스 공급의 새로운 방식, 새로운 시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업적 기술적 조직적 혁신의 엄청난 강화 등이 그 특징을 이룬다. (...) 또한 이것은 자본주의 세계의 새로운 ‘시공간 압축’국면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시공간 압축’이란 개인적 의사결정 및 공공 의사결정에 드는 시간 지평이 축소되는 한편, 위성통신과 운송비용의 하락을 말미암아 그러한 의사결정이 훨씬 멀리 있는 여러 지역으로 즉시 전파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186)

하비의 ‘유연적 축적’은 바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신자유주의’이며 남한에서는 이데올로기와 이로 인한 자본형식의 변화를 통틀어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이러한 ‘조절체제’의 변화와 포스트모던 문화 사이는 어떠한 관련성이 있을까?

새로운 생산 기술(자동화, 로봇)이 도입되고 새로운 조직형태-생산의 흐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고를 크게 감소시키는 적시 배달체계 같은-가 전개됨에 따라 회전시간(자본주의적 수익성의 핵심을 이루는 한 요소)은 엄청나게 짧아졌다. 그러나 소비의 회전시간이 짧아지지 않는다면 생산의 회전시간이 아무리 빨라져도 소용 없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포디스트 제품의 반감기는 5년에서 7년 정도였지만 유연적 축적에서는 섬유나 의류산업 같은 부문에서 이것을 절반 이상 단축시킨 한편 다른 부문-소위 ‘두뇌’ 산업(예를 들면 비디오 게임 및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에선 그 반감기가 18개월 미만으로 뚝 떨어진다. 따라서 재빠른 패션 변화, 필요 유발 기술의 동원 및 문화적 변화에 큰 관심을 둠으로써 유연적 축적은 소비 측면에서도 보조를 맞추게 되었다. 포디스트 모더니즘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미학은 흥분과 불안, 그리고 유동적인 성질을 보이는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에 자리를 빼앗겼다.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은 문화적 형태들에 있어 차별성이나 순간성, 스펙터클과 패션, 그리고 문화의 상품화를 예찬한다. (193)

소비에 있어서의 회전시간 단축을 위해 상품(그 대부분은 나이프나 포크처럼 긴 주기를 가진 것들)의 생산으로부터 이벤트(거의 순간적인 회전시간을 갖는 스펙터클 따위)의 생산쪽으로 강조점이 옮겨진다. (195)

1970년 이래 규범과 습관, 정치적 문화적 태도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동이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과 어느 정도까지 결합되는 것인가(...) 보다 유연한 자본운동은 포디즘 아래에서 길러진 한층 경직된 가치들이 아닌 것들, 즉 모던한 생활의 새로운 것, 유동적인 것, 순간적인 것, 일시적인 것, 그리고 우연적인 것들을 강조한다. 그에 따라 집단적 행동이 더더욱 어렵게 되며(사실상 이것이 노동 통제 강화의 궁극적 목적이었다) 엄청난 개인주의가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에 있어 필요조건으로(비록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기능한다. 결국 새로운 기업형태 및 혁신, 기업가주의 등을 통하여 새로운 생산체계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 이제부터 해야 할 당면 임무는 자본주의의 지배적 축적체제 속에서 그와 같은 주요한 이행들의 뿌리에 대한 해석을 개관하는 일이다.

ps.

국민국가와 초국적자본 사이의 갈등은 포디즘 시대의 전형이었던 대규모 자본과 대규모 정부 사이의 편안한 조화를 깨뜨리면서 활짝 펼쳐졌다. 이제 국가는 훨씬 더 확실치 않은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국가는 국가적 이해를 따져 기업자본의 활동을 규제해야 하는가 하면, 그와 동시에 똑같은 명목 아래 초국적자본 및 세계 금융자본에 대한 미끼로 작용하는 ‘양호한 경영 여건’을 만들어 내야 하고, 더욱 좋은 환경 조건으로 그리고 보다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는 지역으로의 자본 도피를 저지해야 한다(환관리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208)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국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반자본적인, 적어도 비자본적인 움직임이 ‘국가’라는 형태 또는 매개로 자신을 표출 할 수 있을까?

2.4 이행의 이론화

이 장의 내용은 결국 이행을 이론화 해야 한다는 것; 세 사람의 이론가가 포디즘과 유연적 축적 사이의 비교한 것을 소개하고 있는데, 상식적인 수준.

주목할 것은, 자본주의에서의 필연적인 과잉축적의 흡수는 시공간적 이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 결국 우주로 나가는 것이나, 효용성이 없다고 되풀이 주장되는 MD체제! 우주로만 나가면, 역시 자본주의는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적당한 조절체계만 갖추면.

2.5 유연적 축적: 견고한 전환인가 아니면 일시적 해결인가?

생산이나 노동시장, 소비의 유연성이 전혀 새로운 방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본주의 위기 경향에 대해 금융적 해결책들을 모색한 결과라고 본다. 이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전례 없는 일로서, 금융체계가 실제 생산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하였음을 뜻한다. 또한 이로 인해 자본주의는 유례 없는 금융위기의 시대를 맞게 된다. (232)

첫째 현재의 상황 속에서 (‘통상적 자본주의’와는 반대되는) 뚜렷한 그 어떤 것을 찾고자 할 때,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자본주의 조직의 금융적 측면과 신용의 역할이다. 둘째로 만약 현재의 축적체제에 어떤 매개적인 안정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시간적 공간적 해결의 새로운 국면과 형태들로 나타날 것이다. 간단히 말해 3세계를 비롯한 기타 부채의 상환을 예컨대 21세기까지 유예시킴으로써 “위기를 미루는 것「시간적인 위기 땜질」”이 가능하며,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한 노동통제 체계들이 국제적 분업체계 안에서 새로운 생산물이나 생산양상과 더불어 확산되는 “공간적 판도의 철저한 재구성”「공간적인 위기 땜질」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 전체적인 자본축적 논리 속에서 주로 낡은 요소들을 끌어 모아 특수하고도 새로운 조합으로 자리잡게 한 것이 바로 유연적 축적이란 점은 강조되어 마땅하다. (...) 이러한 시공간적 위기의 형태를 살펴봄으로써 포스트모던한 문화적 실천과 철학적 담론으로의 충동적인 전환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와 같은 시공간 경험의 변화에 토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34~235)

이로서 2부의 역할이 끝났다. 어찌보면 ‘유연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 아닌지, 예전에도 자본의 움직임은 이 ‘유연성’을 추구한 것이 아닌지가 의문이 드는데 이에 대해 하비는 ‘탈산업화나 공장 이전, 보다 유연한 인사행위와 노동시장, 자동화와 제품 혁신과 같은 사실들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스럽다’라고 주장하며 결국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기라는 것이다. 20년 전에 이랬으니 지금은?

어찌됬든 이러한 변화를 강조함으로써, 이를 통해 포스트모던 문화 현상을 토대와 연관지어 설명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 매개로서의 ‘시공간 경험의 변화’를 설정하기 때문에, 하비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강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맑스주의적 시각으로 어떻게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을 설명하겠는가? 물론 이의 전제는 ‘포스트모던’적 현상이 ‘포스트’모던하다는 것. 자본의 작동방식도 ‘크게’ 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포스트모던’ 현상도 ‘모던’현상에서 크게 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해야하는, 또 할 수 있는 정치적 실천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그룹이 내가 알기로는 예전 IS그룹, 현재 트로츠키주의자 아닌가? 일방적 단순화겠지만... ) 잘 모르겠다.... 무엇이 변하고 또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 그러니 공부하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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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넷 > 대학 문에 들어선 젊은 벗들에게

대학 문에 들어선 젊은 벗들에게


 
3월의 캠퍼스는 활기에 넘친다. 흥분과 기대에 들뜬 새내기들의 호기심에 찬 눈빛만으로도 대학은 생동한다. 합격증을 받아든 환호도 잠깐, 이제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숨을 골라야 할 때다. 전쟁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대들은 이제 출발선에 다시 섰다.
대학 입시를 위해 유치원부터 논술과외를 시킨다고 난리인 나라에서, 12년의 긴 터널을 성공적으로 빠져나온 그대들은 행운아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지긋지긋한 문제풀기, 학교와 학원과 과외로 이어지던 미로에서 해방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비로소 자기 삶의 주체로서 스스로와 맞대면하게 된 것을 함께 기뻐한다. 지난 세월 여러분을 지탱시켜 준 삶의 목표는 사라졌다. 다음 진군 목표는 정해졌는가?
슬프게도 오늘날 대학은 만신창이다. 학문의 전당이란 말은 무색해진지 오래다. 실용의 미명 아래 기초학문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이공계는 힘들다고 외면당하고, 인문학은 절체절명의 위기로 내몰렸다. 사람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무도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저 돈 잘 벌어 출세해서 부자로 사는 길을 찾기만 바쁘다.
나는 그대들이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벌써부터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리고, 토플 토익 성적에 목을 매는 영악한 젊은이가 되지 않길 바란다. 더 좋은 대학, 취직 잘 되는 학과로 전과하고 편입하기 위해서만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고시 공부에 인생을 거는 맹목적인 청춘이 아니길 빈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면 안 된다. 출세가 곧 성공이라고 착각하지도 마라.
분위기 파악이 영 안 되는 대학 강의실, 연일 이어지는 선배들과의 술자리, 뜻밖에 많은 과제물의 중압감 속에 우왕좌왕 하다 보면,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도 잘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게 대학이었냐고 말하지 마라. 대학은 원래 그런 곳이다. 누구도 입 벌려 먹을 것을 넣어주지 않는다. 시시하다고 속단하지 마라. 힘들다고 주눅들 것도 없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해도 속으로는 누구나 당황스러운 것이 대학의 새내기들이다.
대학은 그대들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허락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렘과 흥분은 얼마 못가 심각한 혼란과 좌절로 바뀔 것이다. 누구나 그랬고 언제나 그랬다. 대학은 끝내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는다. 이제는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서 제힘으로 풀어야 한다. 기댈 언덕은 없다. 물러설 곳도 없다. 
내면의 목소리에 깊이 귀를 기울여라. 목표는 달성되는 순간 사라진다. 새 목표를 잘 세워야 삶은 제 길을 찾고, 과정은 차례를 얻는다.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할수록 일은 더 꼬인다. 길 가다 눈이 떠져 좋아하다가 제 집을 못 찾아 우는 눈 뜬 장님 꼴이 된다.
카르페 디엠! 그대들에게 허락된 모든 것들을 한껏 즐겨라. 더 깊이 고민하고, 참담하게 좌절하라. 소아(小我)의 각질을 깨고 ‘참 나’로 우뚝 설 때까지. 주체를 세우려면 더 많은 책을 읽어라.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라. 여가는 그저 생기지 않는다. 여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나가야 한다. 옛 사람은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 즉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여행하는 속에 인생의 대답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삶의 눈길은 깊어지고, 마음속에는 호연한 기운이 쌓인다.
그대들이 대학생활을 통해 희망과 설렘을 지나, 절망과 좌절을 건너, 눈 맑고 귀 밝은 듬직한 젊음으로 거듭날 것을 축원한다. 나는 누군가? 나는 나다. 그 나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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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따로 대학 따로 “누구를 믿고 공부하나”
입력: 2007년 03월 15일 18:26:28
 
인천 ㅂ고등학교 3학년 홍모군은 교육인적자원부와 대학들의 입시 관련 발표를 접할 때마다 헛웃음만 나온다. “어차피 ‘저주 받은 89년생’인데 상관없다”는 식이다. ‘저주받은 89년생’이란 교육부가 학교교육 정상화 등을 위해 대입제도를 개혁하겠다는 2008년에 입시를 치르는 홍군 같은 학생들을 이르는 말이다.


고교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홍군은 교육부 발표대로 공부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대입 제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었다. 그 결과 이런 무시무시한 용어가 1989년생들에게 붙여졌다.

홍군이 고1이던 2005년에 교육 당국은 ‘내신 부풀리기’를 방지한다며 내신 평가 방식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꿨다. 이 조치로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경쟁자가 됐다. 노트 빌리기나 학원 추천 등 사소한 일들조차 ‘비밀’이 돼 갔다. 엄마의 주문으로 매일 밤 10시까지 내신 전문학원 수업을 듣게 됐다. 그래도 이 때까지만 해도 홍군은 교육부에서 2004년도에 발표한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내신 반영 비중이 확대될 것”이라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2 때인 지난 해엔 ‘통합교과형 논술 광풍’이 불었다. 대학들이 고교 간 학력 차를 극복한다며 통합교과형 논술을 입시에 도입키로 했기 때문이다. 내신만으로는 변별력 확보가 어렵다는 게 대학들의 주장이었다. 선생님들에게 ‘통합논술’에 대해 물었지만 자신있게 대답하는 분을 찾기 힘들었다. 단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유리할 것 같다”는 답만 돌아왔다. 수능·내신 공부도 해야 하는데 책까지 읽을 시간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학원으로 갔다. 학원은 ‘글쓰는 기술’에 대해 가르쳤다. 짜깁기한 교재를 비싸게 팔기도 했다. ‘이럴 때는 이런 단어를 쓰고 저럴 때는 저런 문장을 쓰라’는 식이었다.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데 그만이라는 논술도 암기식 수업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친구들도 모두 그렇게 하고 있었다.

고3이 된 올해 대학들이 입시안을 발표했다. 수능 비중이 확대됐다. 내신·논술을 못해도 수능만 잘 치르면 명문대에도 진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목고에 다니는 친구는 좋아했다. 내신이 안 좋아 걱정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학년 때는 내신 바람, 2학년 때는 논술 광풍이 불더니 이제 수능 대세론이 불거지고 있다. 부모님은 또 다시 학원에 가라고 한다. 유명한 수능 족집게 학원을 빨리 알아보라고 했다. 인천 지역에 좋은 학원이 없으면 서울에서라도 알아보라고 했다.

홍군은 가끔 ‘실험용 쥐’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왜 하필 이전에 한번도 해보지 않은 대입정책을 2008학년도부터, 그것도 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해에 시행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다. ‘89년생의 저주’가 풀리는 방법은 올 한해가 빨리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

고 1~3년간 교육당국과 대학들은 입시 요강을 내놓으면서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는 내신·논술·수능의 급격한 변화를 모두 겪었지만 2학기 때 또 뭐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교육부와 대학간의 숨바꼭질이 계속되는 한은 그럴 수밖에 없다.

〈선근형기자 ssun@kyunghyang.com

 

* '국립대'라고 해도, 다른 것이 없으니, 왜 '국립'인가? 지역할당제를 더 엄밀히 실행하던지, 여하튼 존재 이유를 밝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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