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 식민지의 새로운 재현: 경합하는 공공성

* 담론비평(2007. 3. 15)  / 식민지의 새로운 재현 "경합하는 공공성"

 

허수 동덕여대 교수, 식민지연구 최신동향 비판적 검토

 

리뷰팀 review@dambee.net

 

▲ 역사문제연구

허수 동덕여대 교수(한국사)가 '역사문제연구' 제16호에 식민지 시대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최신 연구동향을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논평한 논문 '새로운 식민지 연구의 현주소-'식민지 근대'와 '민중사'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허 교수의 논문은 매우 치밀하고 명석하게 기존 연구들을 분석할 뿐아니라, 나름의 발전적 대안까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한국사 전공자는 물론, 역사에 관심있는 일반인들도 한번쯤 고민해볼 만하다.

먼저 그는 엄밀한 구분없이 사용되는 '역사인식'과 '역사의식'을 정확히 구분하자고 제안한다. 역사인식(historical perception)은 '역사적 대상에 대한 경험적 파악'으로서 '역사적 지식'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식(historical consciousness)은 '역사적 발전에 대한 강한 자각'이자 '역사인식의 기초가 되는 사유방법'을 일컫는다. 현실의 변화 등을 계기로 역사의식의 전환이 이뤄지면 역사인식의 확장이 초래되는 경우가 많고, 역사인식의 꾸준한 축적 위에서 새로운 역사의식이 도출될 수도 있어 양자는 밀접한 인과관계를 갖는다는 게 허 교수의 생각이다.

비판적 역사담론은 역사의식과 역사인식 사이의 생산적 긴장을 통해 형성된다는 전제 아래 허 교수는 '식민지 근대'의 입장에서, 그리고 '민중사'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역사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대안으로 '서로 경합하는 공공영역들'이란 관점을 제시한다.

그런데 약간의 선이해가 필요하다. '식민지 근대'와 '민중사' 입장도 사실 90년대 중반 이후에 시도된 것들이라, 그 이전의 연구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머릿속에 넣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 유명한 '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의 대립이다. 여기서의 '식민지근대화론'은 앞서의 '식민지근대'적 입장과는 다른 것으로, 후자가 나름 진일보한 관점이다.

수탈론과 식근론은 상호 대립했지만 그 심층에서는 '민족주의·근대주의'의 지반을 공유했다는 게 최근 학계의 입장이다. 수탈론적 입장은 '주체적 근대화'를 강조하면서 독립운동에서 사회주의운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연구하고, 좌우합작을 잣대로 해서 운동을 평가해왔지만, '그들만의 근대화'란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식근론은 식민지시기의 경제성장을 강조했지만, 정치적 층위를 배제하고 경제적 층위의 능동성에 제한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두 대립적 인식은 '근대성 비판'이라는 새로운 접근에 의해 상대화되기 시작했다. 동구권 몰락과 IMF 등의 외부요소는 근대성이 전가의 보도가 아님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질문 역시 바뀌었다. 그 전에는 '왜 우리는 우리 힘으로 근대화를 수행할 수 없었는가'였다면, 이제는 그 초점이 '우리의 근대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가'라는 근대성찰적 관점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 질문이 반복되면서 이 시대를 바라보는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식민지 경험이 상대적으로 '강한 근대'와 '강한 非근대'의 공존과 지속으로 표상된다"는 점이었다. 이 점은 근대의 폭력성과 근대 비판의 내적 자원들을 식민지로부터 더 잘 추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근대비판논자들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자면 총독부가 식민지 주민들을 국민으로 통합하지 못했던것, 국민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민중'의 존재가 새삼 부각되었던 것이다.

이런 연구사의 토대위에서 출현한 '새로운 식민지 근대' 연구가 마쓰모토 타케노리와 윤해동의 연구다.

마쓰모토 타케노리는 △수탈론 對 식근론을 극복하기 위한 분석틀을 제시했고, △헤게모니, 규율권력, 젠더 등 새로운 분석틀을 의식적으로 채택해 일상생활 레벨에서의 권력작용을 분석해 사회구성체 수준에서의 거대권력 분석과는 다른 논점을 제시했다. 또한 △다양한 사상·운동을 민족주의와는 다른 시점에서 재평가하는 등 민족주의를 상대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줬다.

그의 주장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규율권력장치, 대중문화, 근대적 미디어는 그 제한적 보급에도 불구하고 식민지하 조선인 사이에서 헤게모니로서 성립했으며 △촌락은 근대의 헤게모니와 전통적 규범이 각축하는 장이고 농촌엘리트는 식민지권력의 의지를 전달하는 자이면서 동시에 민족의식의 보유가 가능한 양면성(=회색지대)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양면성에서 그는 수탈-저항의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했다.

윤해동은 피지배 민중을 '협력과 저항'의 양면성 존재로 파악한 뒤, 이를 회색지대의 발원지로 보았다. 그리고 일상에서 '정치'가 이뤄지는 공간을 '식민지적 공공성'이란 개념으로 포착하고자 했다. 그 사례로 그는 1920~30년대 지방제도 개정, 1930년대 초반 경성지역의 전기사업 부영화 운동, 각종 민중대회 등을 주목했다.

   
▲ 일제시대 경성전기의 모습
둘째 단계로 그는 대중을 주목했는데, 기업열, 교육열 등으로 상징되는 합리성의 폭발이 근대적 개인을 형성시켰고, 대중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윤해동은 식민지와 좌우운동권이 이들 대중을 재주술화하려는 입장에서 각축했다고 파악하는데, 대중은 한편으로는 좌우익에 의해 각각 '계급'과 '민중'으로 전유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권력에 의해 '제국민족'이라는 새로운 신성으로 동일화되어 갔다는 것이다.

마쓰모토가 회색지대로 표현되는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농촌엘리트로 설정했다면, 윤해동은 도시의 대중으로 삼았다.

그러나 허 교수는 이들의 연구가 역사의식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식민지 근대가 민족 주체 혹은 계급 주체에 기반한 역사인식을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면, 새로운 주체를 무엇으로 설정할까의 문제가 남는 것. 여기서 둘은 소극적이거나 불명확하다는 게 허 교수의 비판이다. 역사인식은 이루고 있으나 역사의식이 추상적 문제제기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 다음 허 교수는 새로운 식민지연구의 다른 차원으로 '민중사' 연구를 검토한다.

이 분야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신창우는 경기도 양주의 헌병보조원 강기동(姜基東)이 한일합방이 되자 의병토벌을 그만두고 자신이 의병으로 나서 일제와 싸운 과정을 추적했다. 신창우는 이를 통해 강기동이 식민지 민중, 하층민의 여방을 체현한 '대리투쟁'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허 교수는 그렇게 보는 것은 무리라고 비판한다. 하나의 사례를 그렇게까지 확장하면 곤란하다는 것.

그 다음 조경달은 민중의 가치체계를 통해 근대라는 시대를 상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를 위해 '저변민중' 특히 농민을 자율적 존재로 보는 관점을 내세운다. 그는 민중이 스스로 말하지 않고 사료가 없기에, 식민지 시기에 일어난 운동, 투쟁이라는 비일상적 세계로부터 민중의 일상적 세계를 역투시하는 방법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조경달은 국민국가론에 대해서 비판적인데, 국민국가론은 민중을 주체적으로 포착하려는 시각이 희박한 까닭에 항상 국민국가를 주어로 하며, 민중은 수동태로 언급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의 식민지 근대 논의가 일본의 국민국가론과 동일한 문제점을 지닌다고 비판했다.

신창우와 조경달 모두 역사의식에서 나름 투철한 방향전환과 신념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증적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고, 민중(농민)의 자율성을 실증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방법론적 준비도 부족하다고 허 교수는 지적한다. 

이는 인도의 서발턴 연구집단에서도 봉착한 문제였다. 호미 바바는 지배-저항의 대립구도를 깨기 위해 '탈중심화된 다중적 주체'와 '혼성성'을 내세웠다가 담론연구에 편향되었고 사회경제적, 정치적 실천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 반대편에서 라나지뜨 구하는 "지배와 짝을 이루면서 이원적인 관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항으로 서발턴을 보지 않고서는 종속을 이해할 수 없다"며 명확한 이원적 관계구성 입장을 취했다.

이 둘 사이의 쟁점은 서발턴의 정체성이 혼성적인가 이원적인가, 반본질주의적 이해가 타당한가 본질주의적 이해가 타당한가 라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야트리 스피박은 '전략적 본질주의'를 채택한다. 그는 서발턴이 엘리트의 사유 없이는 재현될 수 없는 존재인 동시에, 재현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그 타자성을 상실하는 존재라고 파악한다. 이를 바꿔말하면 제대로 묘사하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 가야트리 스피박
허 교수는 이런 스피박의 '전략적 본질주의'는 서발턴 재현의 불가능성과 재현 노력의 불가피성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잘 보여준다며, 이 '재현'과 '실천'이라는 두 층위를 '역사인식'과 '역사의식'에 연결할 수 있다고 본다. 농민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민중사 입장은 본질주의적 시각을 가진 구하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민중사적 입장은 민중성을 재현하는 작업의 곤란함을 자각하면서도 그 곤란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투철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허 교수는 대안을 제시한다. 바로 하버머스의 '공공영역'을 끌고 들어온다. 헌데 식민지 시기에 공공영역이라 할만한 것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는 그간 시끄러운 논쟁거리였다. 그런데 얼마전 역사학대회에서는 최갑수 서울대 교수가 프랑스 혁명시기 '민중적' 공공영역이 발견되었다며 공공영역이 부르주아(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펼친 바 있고, 2006년 사회학대회에서는 황병주 등의 소장학자가 식민지시기 공개념을 확장해석하고 다양한 생활세계에서 그 흔적을 찾고자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대해 '민중론'의 대표주자 조경달은 곧바로 비판하고 나섰는데, 식민지적 공공성이 과대평가돼선 곤란하다는 것. 민중세계는 지식인세계와 단절되어 식민지공공성의 권외에 존재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허 교수는 굳이 따지자면 공공영역이 있었다는 쪽이다. 그런데 그는 그 주장을 위해 공공영역이라는 개념 자체를 유연화시킨다. 그 시각을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세계화의 원근법'(이산)에서 빌려온다. 

깨놓고 말해서 식민지시기 조선인사회의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국가에 미치는 힘이 약하고 협소했다는 측면에서, 식민지시기 국가와 사회 사이에는 상당한 틈이 존재했다. 그러나 반드시 국가와의 연관이 필요할까라는 의문도 제시해볼만한다.

   
▲ 세계화의 원근법, 이산 펴냄
당시 민중들이 국가와 직접적인, 그리고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상호작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이 속한 종교적, 지역적, 성적 정체성의 네트워크 속에서 일상을 영위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미성숙했다고 없는 게 아니라, 성숙의 정도가 달랐기 때문에 다양한 공공영역들이 경쟁적으로 존재했다는 게 허 교수의 새로운 발상인 것. 이것이 바로 '서로 경합하는 공공영역'이라는 아직 개념화되지는 않은 발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식민지에서 공공성의 문제의식을 부르주아적 차원에서 '일상' 차원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고, 공공영역의 몇가지 차원을 상정하면서 그들 간의 긴장과 상호접합도 시야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눈에 들어오는 사례는 젠저나 위안부 같이 차이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가 있고, 경성전기 부영화 운동과 같이 지역,장소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가 있으며, 민족주의 계열의 운동이 가지는 단일화 효과도 상정될 수 있는 반면,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이데올로기가 만드는 동일화과정도 상정 가능하다.

이들의 역동적인 경합이 과연 경험적인 차원에서 실증적인 연구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 재현되는 식민지적 '주체'의 현실이 지금 이곳의 근대성을 반성할 수 있는 역사적 잣대를 선물해줄 것인가.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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