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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 게시판의 비극

최근 몇 차례의 삭제와 글쓰기 금지 파동을 겪으며 급격하게 찌질해진 강유원 게시판의 분위기는, 그 운영자가 선택한 삶의 방향으로 인해 어쩌면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 밖에 없었던 현상이었을지 모른다. 짧은 문장들로 추려서 말하자면, '회사원 철학자' 강유원의 카리스마가 예전같지 않게 되었고, 그리하여 쇠락의 냄새를 맡은 몇몇 파리들이 꼬여들어 그러한 문제가 불거졌다는 뜻이다. 파리라는 말이 개인적으로는 심할 수도 있지만, 자기만의 '철학'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치들을 따로 불러줄 말이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 용어를 정정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강유원 게시판은 예전같지 않고, 그 배경에는 운영자의 카리스마 쇠퇴가 가장 큰 이유로 자리잡고 있다. 그가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다(고 나는 기억한다). 어설프게 '나만의 철학'을 풀어놓으려는 자들에게 강유원은 자신있는 어조로 '공부가 안 되었군,' 이라고 운을 뗄 수 있었고, 그러면 그의 동료들이 나서서 '이러저러한 책들을 먼저 읽어봐라'라고 마무리를 해줬다. 말하자면 그가 어떤 '선생'으로서의 권위를 한껏 누리고 있었다는 뜻인데, 여기서 한가지 이상한 점은 대체 왜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 '선생'으로서의 권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이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진실로 그렇다. 강의와 인세 수입(이라는 게 있다면)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지금, 그는 굳이 밤잠을 쪼개가며 책을 읽을 필요 없이, 하루를 온전히 투자하여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할 수 있다. 책을 들여다보는 양과 가르치는 내용의 질이 정비례까지는 아니어도 대충 비슷하게 따라간다고 가정하면, 그가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또한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풍성해져야 마땅하며, 그러한 변화는 대중에게 철학을 강의하는 그의 '선생'으로서의 입지를 강화시켜야 마땅한 것 아닌가? 헌데 상황은 그 반대다. '회사원 철학자'라는 수식어에서 '회사원'이라는 명사 하나가 떨어져나간 순간, 강유원의 아우라 중 매우 중요하고 커다란 것이 함께 사라져버렸다.

강유원이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것은, 그가 기존 '학계'의 논리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 금전적으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뜻했고, 그리하여 그는 '독립된 지식인'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이러한 셈법이 부당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기 손으로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은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중요한 미덕이며,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택하지 않으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기 위해 그가 벌였던 숱한 고행의 의의를 폄하할 생각도 전혀 없다. 다만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회사원 철학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그가 누리고 있던 특수한 아우리가 과연 그 자체로서 한국의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볼 때 합당한 것이었나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돈을 받으며 연구하는 것, 꾸준히 논문을 써 내고 동시대의 학자들을 평가하고 그들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것, 아카데미즘의 본질이라면 본질을 구성하는 이러한 요소들을 폄하하는 것이 '회사원 강박사'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고, 그렇기에 그는 보란듯이 철학과 무관한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해왔다. 간단하게 줄여 말하자면 일종의 '은둔고수' 같은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회사에 다님으로써 그는 아직도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직장인들의 호감을 사는데도 성공했다. 사람은 자신이 도저히 못할 것 같은 일, 다시 말해 질투를 하기에는 너무 어렵거나 그럴 가치가 없어보이는 일을 하는 누군가를 봤을 때에는, 대체로 사심 없는 칭찬을 보내는 법이다. 이 두가지 맥락이 맞물려 강유원은 나름대로 (책을 사서 읽는) 대중들 사이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여기서 요점은 그가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아니다. 철학 공부를 하면서도 학계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 오직 그것만이 대중들에게는 감동이었고 카리스마였고 '포스'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분위기 자체가 정당한 것일까? 내가 추측하는 바와 같이, 강유원의 책을 구매하던 대중들이 '회사원 철학자'의 이미지를 먼저 소비하고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철학자가 어떤 아이콘으로 자리잡는 건 절대 나쁜 일이 아니지만, 과연 그 '회사원 철학자'라는 딱지는 정당한 것일까?

이 질문은 이렇게 되물어질 될 수 있다. 과연 철학이라는 분야에서는 '은둔고수'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자기들끼리 '빨아주는' 논문을 쓰는 대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헤겔 원문만을 파고 있다보면,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선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강유원이 '내가 공부하는 방법'에서 제시하고 이후 자신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해나간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에는, 이렇듯 무협지의 내적 논리가 진하게 묻어나있다. 강호 잡사에 물들지 않고 오직 무공 한 길에만 정진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호탕한 웃음 한 번 짓고 스러질 수 있다는, 일종의 자뻑이며 자학인 그런 종류의 존재미학.

다른 부분을 다 접어두더라도, 그런 방식은 근대 학문의 기본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과학이건 철학이건, 그 학문이 대상으로 삼는 데이터(박홍규 식으로 말하자면)에 대해 자유롭게 연구하고 발언하는 것이 근대 학문의 정신이라면, 공부하는 이는 마땅히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 그들과 소통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강유원은 학계에서 떨어져나간 후 홀로 외로이 헤겔을 읽는 길을 택함으로써, '뭔가 센 놈'과 독고다이를 뜨고 싶다는 자신의 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켰을지언정, '공부'를 하고 싶다는 더욱 근원적인 바램은 접어두게 된 것이다.

결국 지금 나는 그가 하는 일이 '공부'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헤겔을 읽어도 토론을 할 수가 없고, 서평을 쓰면 '잘 봤습니다'라는 리플성 트랙백만이 달리는 현실. 강호에서 발을 빼면서 그는 시골 마을에서 검을 가르치며 독야청정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누구와도 시원한 칼부림을 주고받을 수는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무협지의 세계에서는 혼자 폭포수 옆에서 서른 여섯가지 자세를 잡고 운기조식을 하면 '내공'이 늘어나지만, 그런 일은 현실 속에서 가능하지 않다. 혼자 산 속에서 무공을 연마하던 '고수'들이, 다른 동료들과 투닥거리며 질펀하게 연습을 하던 '스포츠맨'들에게 줄줄이 얻어터지고 깨어져나갔다는 것은 이종격투기 'K-1'의 역사가 처절하게 증명하는 바와 같다.

아무튼 그가 화전을 일구고 있던 동안에는 '강호'와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명백했고, 그리하여 '은둔고수'의 품위도 유지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전업 지식인, 혹은 강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고, 즉 '나 철학자 아니야. 그저 책을 좋아하는 회사원일 뿐이지, 허허허'라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됨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던 포스를 잃어버리자, 여태까지는 범접하지도 못하고 있던 다른 '재야'들이 칼을 빼들고 기회를 노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품위가 있는, 적어도 '가오'를 잃어버리지 않는 법은 아는 사람이고, 그 게시판의 분위기를 사랑하는 다른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에도 힘입어서, 강유원 게시판은 그럭저럭 책에 대해 물어보고 대학원 진학에 대해 상담하며 '철학 공부하면 먹고 살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그런 공간으로 남아있기는 하다.

그 균형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것은, 애초에 강유원이 설정하고 있던 모두스 비벤디가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둔고수'는 허구의 개념이며, 설령 그런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다면 이 자본주의 세상은 그런 인재를 반드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내고야 만다. 스타크래프트 연습생들은 모두 인터넷 고수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센 놈만이 남아서 프로가 되는 것이 그 바닥의 생리이듯이 말이다. 헌데 강유원은 그 길을 택했고,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상당한 수의 대중들이 그의 그러한 행보에 갈채와 찬사와 동경의 눈빛을 보냈다.

강유원은, 자신을 지지하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진정 인문학을 소비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았어야 한다. 그들은 다만 현실 속에서 '은둔고수'가 현현하기를 고대하고 있던 뒤틀린 무협지 매니아였을 뿐이다. 헌데 그 이미지는 서사의 논리만을 따지고 보더라도 잘못된 것이어서, 그가 진정 '내공'을 쌓기에 적합한 처지가 되자 자체적인 모순에 의해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 모든 이야기의 대상은 결국 강유원 개인이었지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바는 그의 책과 홈페이지와 게시판에서 나온 것 뿐이기에, 글 제목을 '강유원 게시판의 비극'으로 하기로 한다.

6 개의 덧글:

한윤형 코멘트 내용...

"은둔 고수의 판타지"라는 것, 굉장히 끈질기지. 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에서 외과의사가 마지막에 하루 재수술할 때 자기 손 떨린다고 재야에서 십여년 썪은 자기 스승한테 수술해달라고 부탁하는 거 보고, 실소했던 기억이 난다. -_-;;

노정태 코멘트 내용...

우스꽝스러울 뿐더러 현실을 해석하고 변화시키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하지만 '문제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써놓은 마르크스의 책을, 많은 좌파 청년들이 무림 비급처럼 달달달 읽고, 그런 과정에서 뭔가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는 식의 거짓 만족을 얻고 있다는 거지. 강유원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런 판타지를 직접 삶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거였고. --;;

이상한 모자 코멘트 내용...

무림고수하면 또 수군작..

노정태 코멘트 내용...

이상한 모자/ 껄껄껄

Br 코멘트 내용...

강유원 씨는 튼튼영어사의 직원은 아니지만 안국동의 모처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계십니다.
그 게시판의 수질이 저하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선생이 소통의 장을 bbs에서 networkpolis.net의 on/off로 옮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알기로 선생은 따로 헤겔 철학을 연구하지 않으며, 자본주의를 철학으로 규명하겠다, 혹은 변혁하겠다는 야심도 없습니다. 그러기엔 너무 근본적이어서 오히려 실천적으로 보수적이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파트타임(강사,번역,기고)을 포함한 밥벌이 이외에 선생이 공적으로 하는 일은 무료로 철학적 텍스트를 읽는 법을 가르치고, 또 다른 전공자들(예를 들면 지주형씨, 김영건 선생 등)에게 배우며, 그 결과를 나눠먹는 일 입니다.
자신이 은둔고수가 아니라는 것은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설사 마음 한켠에 그런 야심이 있다 해도, "결과로 말해야지, 진정성 따윈 소용없다"는 걸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걸로 보아, 결과를 지켜보면 될 듯 합니다.

노정태 코멘트 내용...

br/ 말씀하신 안국동의 모처가 '풀로 엮은 집'이라면,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제 글에서 이미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전문적으로 강의를 하는 사람이 된 것 부터가 '회사원 철학자'라는 막강한 타이틀에 흠집을 낸 사건이라고 저는 말하고 있어요. 제가 강유원님이 소득이 있네 없네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networkpolis.net의 문제는 제가 모르니 님의 견해를 존중하겠습니다만,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몇 건의 질문이 들어왔을 때 줄곧 리오 휴버먼의 책을 권하셨다는 사실 정도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유원 님의 방식이 보수적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며 그러면서도 너무 야심이 크다고 판단하는 입장입니다.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님이 전달하신 강유원 님의 말씀대로, 결과를 지켜보는 편이 낫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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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4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25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발적 가난’과 정의롭지 못한 돈

[내 삶의 불복종 ⑧] 삼성의 장학재단 기금을 거부한 공부방 활동가

이현희

<편집인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생김새만큼이나 참 다양하다.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거부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가령,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있고,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개인정보의 누출 우려 때문에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사람, 이마트에 가지 않는 사람, 자가용 차를 타지 않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정치적 이유로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무언가를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기획 연재 - 내 삶의 불복종]에서는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듯, 무언가를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삶의 방식을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소통의 힘을 믿는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운동’이 될 것이다. 그런 운동은 삶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사회의 문제들도 바꿔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자, 당신에게 강요하는 대신 자신의 삶의 방식을 그저 묵묵히 실천하며 나지막히 읊조리고 있는 우리 옆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지난 2월 삼성 고른기회장학재단에서 공부방 등을 대상으로 공모사업을 진행했다. 내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임에서는 회원들의 찬반논의 끝에 일단 이번 공모사업에 불참하기로 했다. 이 결정 후 “삼성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면 다른 대기업으로부터도 지원받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어차피 쓰려고 하는 돈, 제대로 쓰면 되는 것이지”, “공부방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 것 아니냐” 등과 같은 말을 주변에서 들었다.

공부방 활동가로 일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빈민운동의 철학인 가난·생명·공동체를 삶으로 받아들였다. 가지려고 해도 가질 것이 없으니 저절로 가난하고, 가난해서 소비를 못하니 뭇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적어 상생하는 공동체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생명·공동체를 내 삶에서 실현하는데 크게 힘들지 않고, 덜 먹고 덜 쓰겠다는 삶이 특별히 주변인들과 불편한 일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때때로, 공부방이 외부 지원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길 때면 나의 개인적인 삶과 공부방의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된다. 나는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했지만, 공부방 어린이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칫 나의 선택이 공부방에 참여하는 어린이에 대하여 지금보다 나은 교육환경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되며,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내 삶의 선택이 온전히 나만의 선택일 수 있는지, 나의 선택에 자신이 없어진다.

이번 삼성 고른기회장학재단의 작은배움터 공모사업도 그 같은 경우다. 공부방 교육여건을 강화하는 기회일 수도 있는데 공모사업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이성적으로는 바람직한 선택이었다고 자신하지만, 한편에서는 공부방 재정이 지금보다 더 안정된다면 아이들과 눈 맞출 시간도 더 많아질 것이고 더 많은 아이들을 공부방 활동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것이고 더 섬세하게 아이들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거나 저러거나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해 쓰겠다고 하는 돈 그냥 받아서 제대로 쓰면 안될까’ 싶은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엘지사회복지재단으로부터 몇 해째 시설기자재 지원비를 받아 컴퓨터를 샀고, 디지털 카메라, 청소기를 샀다. 씨제이사회공헌의 온라인 기부사이트를 통해 청소년 진로탐색교육도 한 바 있다. 나름의 기준은 있었다 해도 삼성이나 엘지나 씨제이나 다같은 대기업인데 유독 삼성이라고 안하는 것은 일관성 없는 태도가 아닐까.

그런 마음을 진정시킨 것은 공부방이 무슨 교육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초심으로 돌아간 생각의 끄트머리였고, 현재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한 분노였다. 공부방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순환하는 공동체의 일원임을 알아차리고 함께 더불어 이롭게 사는 삶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교육의 현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계 1위 삼성은 무노조경영, 불법 대선자금 제공, 편법 증여, X파일, 시사저널 사태,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는 법치도 양보해야 한다는 등과 같이 오랫동안 여러 가지 반사회적인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그런 삼성이 단순히 국민 정서의 악화를 걱정하여 사회헌납을 하였을까. 하지만 그런 행태에 대한 반감도 다 심증일 뿐 확증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행태에 대해 규제하는 법이 없는, 미법(未法)인 상황이어서 법대로라면 불법(不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긴 삼성뿐인가! 법은 최소한의 규제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득권은 자기 권리를 위해서는 법에 없는 것은 해도 된다는 논리로 일관하고, 또 많은 사람들은 그 말에 동의한다. 과연, 법에 없는 것은 무엇이든 해도 될까?

행복한 삶의 잣대는 오직 물질적 풍요일 뿐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삶의 다양성을 포기하라고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메시지. 자신의 절대 이익을 포기하게 하는 명확한 법이 없는 이상 영리 추구는 무한하다는 기업주와 그에 기생하는 지식인이 있는 한 가난은 끝없이 유전될 것이고, 사회는 더욱 양극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석기시대도 아닌데, 자기 삶의 진정성을 찾는 교육이 아닌 당장 먹고 사는 것만이 삶의 최대 목표인양 교육의 할 일인양 몰아가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는 당연히 법에 없는 것은 무엇이든 해도 되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팽배해져 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특히나 빈민들은 현재도 가난하고, 앞으로도 이런 사회구조가 지속된다면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다.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돈의 유혹에 종속당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돈은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면서 자신의 삶의 진정성을 깨닫고 행동하는 삶을 고민해 가다보면 그 과정에서 내 삶의 진정성을 성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현희 님은 공부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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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46 호 [입력] 2007년 03월 21일 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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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4 1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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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니르바나 > 열정의 학자 정민 "미치지 않고 뭘 해요"




[인터뷰]<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펴낸 정 민 교수

[북데일리]정 민(47)교수의 글은 빠르게 읽힌다. 반복과 부연이 ‘덜’ 하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마른’ 글은 중고생이 읽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쉽다. 그 어렵다는 연암도, 다산도 정민 교수의 손을 거치면 평이해진다.

그는 “학자들의 글은 어렵다”는 통념을 깬 저술가다. 특정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단어 대신 보편적인 단어와 문장을 통해 고전읽기를 대중화시켰다. <한시미학산책>(솔. 1998)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 2004) <다산선생지식경영법>(김영사. 2007) 모두 그가 만들어낸 베스트셀러다.

이번에 발표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휴머니스트. 2007)은 2001년부터 7년에 걸친18세기 탐구에 대한 중간 결산작업이다. 18세기의 특징적 문화현상, 조선 지식인의 자의식, 지적 경향 등을 다뤘다.

19일 그가 재직 중인 한양대학교를 찾았다. 병원 차트 보관대에 꽂힌 수백 개의 자료파일, 이중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크기의 서가. 연구실 곳곳에 붙어 있는 메모들이 치열한 연구의 흔적을 드러냈다. 정 교수는 저술법과 연구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2시간여에 걸쳐 밝힌 학문을 향한 고백은 뜨겁고, 순수했다.

-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의 도입부를 보면 한 분야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는 <미쳐야 미친다>에서 엿볼 수 있었던 ‘벽(癖)’의 예찬론입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진정한 ‘벽’의 의미란 무엇입니까.

“벽이란 자신까지 잊는 ‘몰두’입니다. 벽은 맹목적이고 저돌적이죠. 예전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해서 늘 지나친 것을 경계하고 차단했습니다. 과거에 ‘벽’이 터부시 되었다면 지금은 ‘벽’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미치지 않고 뭘 할 수 있나?”라는 자문이 끊임없이 필요합니다. 실로 ‘벽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18세기 지식경영의 배경, 조선지식인들을 살펴보면 이렇듯 미칠 듯한 몰두가 엿보입니다. 18세기는 외형적으로는 ‘정보화의 문화’ 내부적으로는 ‘벽의 추구’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 교수님의 방대한 저술량을 보면 스스로도 ‘벽’ 의 기질이 다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 가지에 몰두하면 끝을 보는 성격입니다. <한시미학산책>을 쓸 때 얘긴데. 우연히 어떤 논문에 있는 새 울음소리로 만든 금언체(禽言體) 시를 보게 됐습니다. 딱 4수였는데 퍼즐을 풀 수가 없어 무척 답답했죠. 밤낮으로 그걸 고민하다 보니 같은 시기의 다른 논문집에 실린 또 다른 금언체 한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금언체 한시를 모았습니다. 논문을 써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새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죠. 당시 대만에 교환교수로 가있었는데. 대만조류협회에가서 중국에서 새 관련 책자, CD, 테이프, 우표를 사서 공부했습니다. 일본에 가서 조류도감도 가져왔죠. 그렇게 필요한 게 있으면 어디든 가서 찾아와야 직성이 풀리는 편입니다. 대부분의 작업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됩니다. 보이는 대로 자료를 모으다 보면 먼저 모이는 것이 생기죠. 그 중에서 ‘나 좀 어떻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는 것들이 다른 것보다 먼저 책으로 만들어집니다”

-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을 통해 찾아낸 18세기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18세기는 조선이 체험한 최초의 정보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세기를 실학의 코드로만 설명하는 것은 전면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실학은 유용성의 담론이기 때문에 가치의 유무만 따지죠. 어찌 보면 유득공집비둘기에 몰두한 것이나, 앵무새, 화초, 꽃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는 실학기준으로 보면 잡학일 뿐입니다. 그러나 18세기에 정보화의 대 변혁이 일어나며 많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18세기는 지금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예전과 비교해 볼 때 지금은 무가치하다고 생각되던 정보들이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판매가 되고 수요층이 있기 때문이죠. 정보의 우선순위에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 되는 것이 바로 ‘편집’의 능력입니다. 정보를 어떻게 선별하고 취할 것인가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시대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많이는 알되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박제가나 유득공처럼 급제를 하지 못한 서얼들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대학은 나왔지만 취직을 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학문을 향한 태도만큼은 다릅니다. 시험에 관계없이 학문을 향해 열정을 불태우던 그들과 달리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열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18세기를 정보화 하고 체득하는 과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 과거 시대의 인물. 그 중에서도 특히 조선시대 인물들에게 특별한 애착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말 꼽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요.

“다산과 연암을 빼놓을 수 없겠죠. 10년간 연암을 연구했습니다. 다산은 미국에 가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죠. 기질로 봐서 저는 다산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꼼꼼하고 소심한 편이죠.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연암입니다. 연암을 알고 나서 저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공부하는 스타일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죠. 지금처럼 다양한 주제에 폭넓은 관심을 갖게 된 것 모두 연암의 영향입니다. 연암을 체험하기 전에는 전통적인 한문학을 연구하는 학자 일 뿐이었죠. 그러다 또 이덕무에 빠져서 여러 해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덕무하면 우선 삐쩍 마른 몸. 퀭한 눈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인간이 저렇게 열심히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죠. 책읽기와 학문을 향한 그의 성실한 태도는 배울 점이 정말 많습니다. 다산에 도착하면 또 달라집니다. 다산 역시 성실의 화신이지만 이덕무가 주는 인간적인 면은 없죠. 엄청난 절망 속에서 자신을 세우려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18세기 문인들은 소통의 글쓰기를 실천했습니다.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스스로가 움직이는 것을 느낍니다. 매번 매료되곤 합니다”

- 고전읽기 붐이 일고 있습니다. 직접 쓰신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을 비롯해 많은 책들이 고전 읽기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전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시공간을 초월해 가치 있게 읽히는 것이 고전입니다. 지금 수업 중에 강독하는 것이 <고전명문감상>인데 학생들이 굉장한 혼란에 빠집니다. 글이 갖고 있는 충격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온다고 합니다. 자꾸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고 해요. 심지어 어떤 학생은 책을 읽다 수업 중에 울기도 합니다. 리포트 쓰다 우는 학생도 많았습니다. 모두 자신이 새까맣게 잊었던 것을 회복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과거 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렇듯, 미친 듯이 열정을 쏟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자문을 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 대학생들을 보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모두 영어공부, 취업공부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12년간 대학에 들어오려고 공부하고, 대학 와서는 취직을 위해 공부하고, 직장에 들어가면 안 잘리려고 공부하고. 결국 자신을 위한 공부는 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얼마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만 있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죠. 고전은 그 본질적 문제를 명확히, 깊숙이 찔러줍니다. 그리고 확인시켜주죠. 그러니 지금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요. 지금 지식은 전부 실용적인 것들뿐입니다. 고전에는 도구적인 것을 뛰어넘어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 600페이지가 넘는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을 6개 월 만에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왕성한 저술력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어떤 관심사가 생기면 일단 메모를 시작합니다. (병원카트에 꽂혀 있는 파일 철 세 개를 가져와서) 얼마 전에 <에도시대의 여행문화>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그걸 읽으면서 왜 조선시대를 소재로 한 이런 책은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18세기 조선의 여행문화’라는 이름의 파일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백지에 어떤 내용들이 가능할까 쭉 써내려 갑니다. 그러면 30개 혹은 40개에 달하는 소재들이 정리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두 장짜리 세부안을 만듭니다. 여기에는 추가적인 메모들이 곁들여집니다. 미쳐 생각 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붙이고 추가 하는 작업이죠. 그 다음에는 ‘내가 왜 이 책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집필 의도를 씁니다.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하면 쓰지 않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파일 철이 (차트를 가리키며) 저기 꽂힌 것들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다고 해서 바로 논문이나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죠. 몇 년 후에 완성될지 몰라요. 그렇지만 떠오르는 것들은 반드시 파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될 때 본격화 하는 식이죠”

- 교수님의 글쓰기는 중고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다는 평을 받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단문체의 비결, 쉽게 쓰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글은 반드시 짧게 씁니다. 퇴고 할 때 글 자르는 게 일이죠. 글이 짧으면 속도감이 생깁니다. 마냥 늘어놓으면 뜻이 접속이 안 됩니다. 관용어절을 끌고 들어가는 습관을 매우 싫어합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희언니를 만났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볼까요. 벌써 내가 좋아하는 게 영희인지 영희 언니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글쓰기에 있어 구문의 간결성은 무척 중요합니다. ‘조선후기고문론(문장론)연구’가 제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예전 한문가들의 문장을 연구했죠. 글쓰기에 있어서 간결함, 표현의 함축성을 추구하는 것이 제 전공입니다. 그러다보니 글쓰기에 굉장히 예민한 편입니다. 우리나라 문장에는 ‘이다’ ‘있다’ ‘것이다’ 체가 있습니다. 모든 글쓰기의 기본은 ‘이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있다’는 늘어지고 ‘것이다’는 권위적인 느낌을 줍니다. ‘것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면 ‘00은 것이었던 것이다’라는 문장까지 쓰게 됩니다. 강조하는 데 매달리게 되는 거죠. 권투로 말하자면 ‘이다’는 ‘잽’ ‘있다’는 ‘어퍼컷’ ‘것이다’는 ‘스트레이트’입니다. ‘어퍼컷’이나 ‘스트레이트’는 아무 때나 쓰면 안 됩니다. 결정타로 정말 필요한 곳에만 써야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을 읽어 보면 스스로가 ‘이다’ ‘있다’ ‘것이다’ 중 어느 형의 인간인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학자들의 글을 보면 그 세 가지 분석이 가능합니다”

- 글쓰기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동어 반복을 피하는 방법도 들려주시죠.

“리듬 살리는 것에 주의하다 보면 동어반복은 피할 수 있습니다. 글에는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그러나’가 나오면 그 다음은 ‘반면에’로 다음은 ‘또한’으로 고쳐야 합니다. ‘00처럼 00 처럼 00 처럼’이 아니라 ‘00처럼 00이냥 00같이’로 다양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어미를 다르게 하면 완전히 다른 글이 됩니다.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소리를 내서 읽어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은 남이 읽어주며 퇴고하는 방법입니다. 제 글의 대부분은 아내가 읽어줍니다. 듣다 보면 ‘턱’ 걸리는 부분이 나옵니다. 잘못된 문장이죠. 그러면 고칩니다.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 글입니다. 읽히지 않으면 글이 아니죠. 그래서 퇴고는 아무리 해도 부족합니다.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 글쓰기와 함께 거론 되는 것이 독서의 중요성입니다. 책읽기의 필요성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입니다. 자신의 삶을 운영해나가는 기본적인 힘을 기르는 과정이 독서죠.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정보취득의 목적으로 책을 읽습니다. 잘못된 방법이죠. 책이 잘 읽히고 않고 손이 가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독서는 삶의 안목과 통찰력을 길러주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습니다. 삶의 기본을 가르치는 책을 처음부터 소리내어 읽는다면 그것이 갖는 힘은 실로 대단할 것입니다. 동종 분야보다는 다른 분야의 책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보는 자신의 관심사에 의해 ‘재배열’이 됩니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이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실용위주의 책읽기가 아닌 자신의 자양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책읽기가 필요합니다”

- 글 쓰고 공부하는 것 외에 다른 취미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덕무처럼, 정약용처럼 오직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계신 듯 보입니다. 지금의 삶에 행복을 느끼십니까.

“물론 행복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글은 주로 저녁에 씁니다. 낮에는 강의도 있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도 있거든요. 저녁 11시 12나 돼야 집에 갑니다. 강의실에 있을 때도 부재중으로 해놓고 문을 잠가 놓을 때도 있어요. (웃음) 토요일 일요일에도 주로 학교에 나와 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은 그때 밖에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도 연구실에 조용히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종종 갖곤 했는데 요즘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못 마십니다. 어떻게 보면 삶이 무미건조 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묘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건 다른 사람과 같이 나눌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겠지요”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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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비80 > 한국 근대 기원의 새로운 조망과 방법론적 한계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 - MAB .2
황호덕 지음 / 소명출판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한국 인문학계를 통틀어서 ‘근대성’이라는 화두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개념이다. 그중 한국 문학계의 근대 문학연구는 근대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통해 ‘언어’와 ‘민족’, ‘민족문학’, ‘문학’을 내파하는 과정이었다. 거의 10여년을 풍미한 한국 문학계의 근대성 연구는 긍정의 의미든 부정의 의미든 간에 ‘역사의 종언’이나 ‘근대 문학의 종언’이라는 세계사적 , 문학적 전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분히 이념 내지 사상적 차원에서 근대(근대문학)의 기원에 접근한 연구의 경향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학문적 경화 상태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방식의 연구 틀과 다른 시선을 요구하게 되었다.

   근대성의 존재조건과 방식의 차원이 문제가 되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한국 문학계는 좀 더 진일보한 연구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황호덕의 연구는 그 누구의 것과도 다른 방식을 제시하고 있었고 수많은 자료 제시의 현란함 때문에 자못 충격을 안겨 주기까지 했다. 이전까지 근대 네이션과 언어의 역학적 의미를 다루고 있는 논의가 시기적으로 일제 식민지 시대나 멀리 나아가도 1900년대 초기에 머무르고 있다면 황호덕의 책은 그 시기를 그 이전(개항시기에서 갑오경장 직후(1876~95년))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일단 이목을 끈다. 근대 형성의 시기를 이전 연구들보다 좀 더 앞당겨 본 셈이다. 임형택이 자국어형성의 문제를 다룬 연구에서 “언문일치의 자각과 함께 실제로 부상한 것은 국문체가 아닌 국한문체였다”는 엄연한 역사적 현실을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면 황호덕은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을 통해 이를 좀 더 심화  발전시키고 있다. ‘언어’와 ‘네이션’, ‘에크리튀르’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근대 형성기의 외교 공문서, 기행기, 각종 매체의 ‘언어’들이 다름 아닌 ‘네이션’의 ‘표상’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또 그것이 ‘구어(입말)’의 차원이 아니라 ‘쓰기(에크리튀르)’의 차원에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은 특징적이다. ‘한문 - 한자’와 ‘한글 - 국자(國字)’의 역사적 배치물로서 ‘국한문체’는 조선이 받아들여야 했던 근대란 무엇인가를 고스란히 각인한 ‘시각적 양식’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황호덕은 국한문체의 형성에 관여했던 외교, 번역, 신조어의 창출 등과 같은 계기들을 전면화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진전시킨다.

   황호덕은 결국 이 책을 통해 발본적으로 한국 문학의 근대성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협소한 개념으로 보았을 때 문학적 차원을 훌쩍 뛰어 넘는 것으로 보이는 ‘언어’들을 통해 근대와 근대의 의미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전방위적인 문학 연구로서의 자격을 획득한 셈이다.

   문학의 제도적 기반으로서 에크리튀르에 대한 관심은 역시 물질적 근거를 확인하려는 욕구와 관련되어있다. 예컨대 “제도에 있어서의 정신, 제도를 만드는 정신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불가피하고도 최종적인 논증은 역시 물질적인 수준의 증거들을 통해서인데, 문자적 표상을 사회적 제 조건에 미루어 나가면 ‘경제’가 나오고, 텍스트 안에서 미루어나가면 ‘활자’와 ‘에크리튀르’가 오롯해진다”는 진술은 에크리튀르에 대한 관심 역시 경제에 대한 관심과 동일한 범주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황호덕은 한국 근대 형성의 시기를 에크리튀르의 관점에서,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하는 과정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머리말과 1장의 언급에서처럼 “‘화폐’와 ‘언어’는 동일한 기능을 하는 허구적 산물이자 상상의 공동체(네이션)를 운영하는 기제”라는 명제 속에서 황호덕의 근대 형성, 근대의 문학이 시작되었다는 인식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현란한 수사와 풍성한 자료 제시에 혼란스러워 하다보면 황호덕이 표상하는 ‘네이션’의 의미 맥락을 놓칠 우려가 있다. 황호덕은 근대 네이션의 형성을 기존 논의들에 비해 시기적으로 앞당겼지만 그것들이 파워 정치 엘리트들의 견문록이나 외교적 문서, 개인의 일기 등에 국한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물론 어떤 현상의 징후적이라는 개념은 조짐 속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을 수 있고 어떤 상황이 전면화 된 상태는 이미 현상의 광범위한 유포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원을 탐색하기에 부적절할 수도 있다. 다만 황호덕이 선택한 텍스트의 분석이 번역되지 않은 채 그대로 쓰인 정체 모호한 ‘네이션’의 형성을 대표할 수 있냐는 점은 여전히 남는 문제일 것이다. 김기수, 김홍집, 박영효의 외교 문서와 타자 체험을 통해 재현된 ‘교통’의 개념 역시 다양한 실증주의적 방식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이것들이 한국 근대 문학 형성의 원류로 대표될 수 있는지에 대한 언급은 생략되어 있다. 기원에 대한 탐구는 명확한 실체를 확인하는 작업이 되어야지 정체 불분명한 모호한 대상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것이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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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비80님의 "한국 근대 기원의 새로운 조망과 방법론적 한계"

추천하고 퍼갑니다. :) 그런데 기원에 대한 탐구가 명확한 실체를 확인하기에는 '기원'이라는 것 자체의 모호함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지점부터 '명확한 실체'냐의 논쟁보다, 이를 '기원'으로보는데서 따르는 (문학사적) 효과가 더 논쟁지점이지 않을까요? 즉 어떤 것이 기원이냐라는 것은, 지금-여기에 대한 관점이 항상 전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연구과정에서 변증법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지만요.) 소이부답님의 글에서 항상 자극을 많이 받습니다. ㅎ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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