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비80 > 한국 근대 기원의 새로운 조망과 방법론적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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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 - MAB .2
황호덕 지음 / 소명출판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한국 인문학계를 통틀어서 ‘근대성’이라는 화두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개념이다. 그중 한국 문학계의 근대 문학연구는 근대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통해 ‘언어’와 ‘민족’, ‘민족문학’, ‘문학’을 내파하는 과정이었다. 거의 10여년을 풍미한 한국 문학계의 근대성 연구는 긍정의 의미든 부정의 의미든 간에 ‘역사의 종언’이나 ‘근대 문학의 종언’이라는 세계사적 , 문학적 전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분히 이념 내지 사상적 차원에서 근대(근대문학)의 기원에 접근한 연구의 경향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학문적 경화 상태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방식의 연구 틀과 다른 시선을 요구하게 되었다.
근대성의 존재조건과 방식의 차원이 문제가 되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한국 문학계는 좀 더 진일보한 연구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황호덕의 연구는 그 누구의 것과도 다른 방식을 제시하고 있었고 수많은 자료 제시의 현란함 때문에 자못 충격을 안겨 주기까지 했다. 이전까지 근대 네이션과 언어의 역학적 의미를 다루고 있는 논의가 시기적으로 일제 식민지 시대나 멀리 나아가도 1900년대 초기에 머무르고 있다면 황호덕의 책은 그 시기를 그 이전(개항시기에서 갑오경장 직후(1876~95년))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일단 이목을 끈다. 근대 형성의 시기를 이전 연구들보다 좀 더 앞당겨 본 셈이다. 임형택이 자국어형성의 문제를 다룬 연구에서 “언문일치의 자각과 함께 실제로 부상한 것은 국문체가 아닌 국한문체였다”는 엄연한 역사적 현실을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면 황호덕은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을 통해 이를 좀 더 심화 발전시키고 있다. ‘언어’와 ‘네이션’, ‘에크리튀르’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근대 형성기의 외교 공문서, 기행기, 각종 매체의 ‘언어’들이 다름 아닌 ‘네이션’의 ‘표상’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또 그것이 ‘구어(입말)’의 차원이 아니라 ‘쓰기(에크리튀르)’의 차원에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은 특징적이다. ‘한문 - 한자’와 ‘한글 - 국자(國字)’의 역사적 배치물로서 ‘국한문체’는 조선이 받아들여야 했던 근대란 무엇인가를 고스란히 각인한 ‘시각적 양식’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황호덕은 국한문체의 형성에 관여했던 외교, 번역, 신조어의 창출 등과 같은 계기들을 전면화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진전시킨다.
황호덕은 결국 이 책을 통해 발본적으로 한국 문학의 근대성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협소한 개념으로 보았을 때 문학적 차원을 훌쩍 뛰어 넘는 것으로 보이는 ‘언어’들을 통해 근대와 근대의 의미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전방위적인 문학 연구로서의 자격을 획득한 셈이다.
문학의 제도적 기반으로서 에크리튀르에 대한 관심은 역시 물질적 근거를 확인하려는 욕구와 관련되어있다. 예컨대 “제도에 있어서의 정신, 제도를 만드는 정신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불가피하고도 최종적인 논증은 역시 물질적인 수준의 증거들을 통해서인데, 문자적 표상을 사회적 제 조건에 미루어 나가면 ‘경제’가 나오고, 텍스트 안에서 미루어나가면 ‘활자’와 ‘에크리튀르’가 오롯해진다”는 진술은 에크리튀르에 대한 관심 역시 경제에 대한 관심과 동일한 범주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황호덕은 한국 근대 형성의 시기를 에크리튀르의 관점에서,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하는 과정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머리말과 1장의 언급에서처럼 “‘화폐’와 ‘언어’는 동일한 기능을 하는 허구적 산물이자 상상의 공동체(네이션)를 운영하는 기제”라는 명제 속에서 황호덕의 근대 형성, 근대의 문학이 시작되었다는 인식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현란한 수사와 풍성한 자료 제시에 혼란스러워 하다보면 황호덕이 표상하는 ‘네이션’의 의미 맥락을 놓칠 우려가 있다. 황호덕은 근대 네이션의 형성을 기존 논의들에 비해 시기적으로 앞당겼지만 그것들이 파워 정치 엘리트들의 견문록이나 외교적 문서, 개인의 일기 등에 국한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물론 어떤 현상의 징후적이라는 개념은 조짐 속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을 수 있고 어떤 상황이 전면화 된 상태는 이미 현상의 광범위한 유포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원을 탐색하기에 부적절할 수도 있다. 다만 황호덕이 선택한 텍스트의 분석이 번역되지 않은 채 그대로 쓰인 정체 모호한 ‘네이션’의 형성을 대표할 수 있냐는 점은 여전히 남는 문제일 것이다. 김기수, 김홍집, 박영효의 외교 문서와 타자 체험을 통해 재현된 ‘교통’의 개념 역시 다양한 실증주의적 방식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이것들이 한국 근대 문학 형성의 원류로 대표될 수 있는지에 대한 언급은 생략되어 있다. 기원에 대한 탐구는 명확한 실체를 확인하는 작업이 되어야지 정체 불분명한 모호한 대상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것이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