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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현시기 프랑스 좌파 지식인 운동의 동향과 전망
 - 연대하는 지식, 실천하는 이론을 위한 움직임 -

진보평론  제1호
은재호(파리10대학 박사과정)

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은 실패했는가? 89년을 기점으로 목도한 동구의 몰락과 제국의 와해가 시사하는 바, 이론의 현실 조응성 문제가 최대의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으로, 혹은 수정주의의 이름으로 변혁운동의 세례를 받은 대다수 연구자들이 회개와 개종의 대열에 서지 않는다면, 그 위기의 전화와 극복을 위해 경주한 치열한 노력의 한 형태가 실천 이론의 모색이었다. 이론에게 현장은 무엇인가? 이론은 세계관의 동의어인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 사회주의 세계관의 몰락이 아니라면, 그 세계관에 실천성을 부여하는 임무가 이론의 몫이라는데 이견은 없는 듯 하다. 더욱이 최초의 충격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관과 실천의 매개는 투쟁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현실적인 무기로서 뿐만 아니라, 실천을 담보하는 세계관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 지향점이 없는 투쟁이 존재하지 않듯 이론 없는 투쟁 역시 존재할 수 없다면, 세계관의 실천을 굳건히 지지해줄 이론의 세련화와 정교화야말로 진보진영 모두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일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일군의 이론진영이 겪은 저간의 사정은 ‘신좌파’ 또는 ‘유로 코뮤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한동안 우리에게 소원했던 서구 좌파 지식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니, 소비에트의 영향력이 일시에 사라진 구 동구권이 유럽 대륙의 전략적 공백지대로, 아메리카의 새로운 교두보로 확장됨으로써 오히려 우리 보다 더한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국제연대가 유럽대륙 내에서조차 이미 신화의 수준에 도달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려니와, 자국 국경 안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칼날이 목을 겨누고 있고, 유럽통합을 등에 업은 국제금융자본의 진출이 전지구적 세계화의 아성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공화국 프랑스에서는 1995년을 끝으로 14년에 걸친 사회당 정권이 막을 내림으로써, 명목이나마 어렵게 유지해왔던 평등사회의 이념적 지향 마저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1995년이 또한 ‘급진 좌파’의 부상을 기록한 한 해라면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95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를레트 라기에가 이끄는 <노동자 투쟁>(LO)이 전체 유효표의 5.3%, 160여만 표를 획득함으로써 트로츠키주의자들로 대표되는 급진 좌파 진영으로서는 2차 대전 이후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더욱이 프랑스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총파업의 현장에서 좌파의 분열을 목도한 때도 다름 아닌 1995년 겨울. 동구의 와해와 소비에트의 몰락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서도 ‘좌파의 좌파’, ‘혁명 좌파’, 나아가 ‘붉은 좌파’를 선언하는 일단의 사회운동이 비등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비등한 급진적 사회운동이 산출한 당장의 가시적인 결과는 1997년 2월,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종언과 함께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앉는 듯 했던 좌파 정권의 화려한 복귀, 그리고 포스트 코뮤니즘 시대를 여는 숨가쁜 여정이다.

1997년에 이르러 프랑스는 또한 ‘좌파의 전쟁’을 목도하였다. ‘좌파의 전쟁’이란 97년 2월 총선을 전후로 본격화된, 좌파 내부의 다툼을 지칭하는 현지 언론의 표현이다. 그러나 제도 언론에 의해 ‘좌파 헤게모니 투쟁’이라는 말로 요약된 이들의 공방은, 거기에 내재하는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 특유의 역사성과 이론적 계속성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좌파의 좌파’를 지향하는 ‘비판적 지식인’ 그룹이 그 동안 좌파진영 내부에서 정치-사회-문화적 담론의 주도권을 쥐어온 ‘다원적 좌파’, 곧 사회당, 공산당, 에콜로지스트 연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외견상 정치적 동질성과 당파적 합의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좌파운동의 이론적, 실천적 편차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론 보다 앞서는 현실, 현실 보다 정교한 이론의 역사가 다시 시작하는 것일까?


반자유주의의 물결 또는 역사의 회귀

1995년 11월. 프랑스 전국이 파업의 열기로 뜨겁게 달구어진다. 전국의 도로교통은 물론 항공, 항만교통이 조금씩 마비되었고, 각급 작업장은 파업이 아니라면 태업의 현장에서 알랭 크리빈의 <혁명적 공산주의자 연맹>(LCR)이 주도하는 총파업의 전야를 맞이 했다. 93년 선거를 통해 당당히 집권한 우파 <<공화주의자 연합>>(RPR)의 신경제정책이, 불씨 조차 희미했던 일개 ‘극좌파’의 ‘선동’에 휘청거린 것이다. 사실, 우파연합은 기업이 안고 있는 과도한 조세부담과 노동시장의 경직성, 공공서비스 부문의 무절제한 팽창과 방만한 경영이 프랑스를 병들게 한 주범이라는 인식 아래, 자본가들의 투자 의욕을 고양시킬 일련의 제도 개혁을 속속 입안하였거니와, 그 핵심은 사회복지제도의 총체적인 축소였다.

90년대 프랑스의 정치지형을 뒤흔들게 될 반자유주의 물결의 발단은, 이처럼 고조된 총파업 전야에 좌우를 망라하는 일단의 프랑스 지식인들이 현 국면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나서면서부터 이다. ‘사회보장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지지하며 뽈 리꾀르, 프랑수아 퓌레, 쟈크 쥘리아르, 알렝 뚜렌느, 삐에르 로장발롱, 알프레드 그로세 등이 우파 정부의 개혁에 찬성표를 던진다. 이들은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이...사회정의에 부합’하며,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좌/우의 대립적 이념형에 함몰되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생 시몽 재단>의 ‘포스트 미테랑 사회주의자들’ 역시 자신들의 전략을 ‘사회적 좌파’로 자리매김하며,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사관에 입각한 진보진영을 ‘도덕적 좌파’로 폄하한다. 추상으로부터 해방되어 구체적인 현실을 논해야 하며, 과학적 지식을 정치적 자원으로 동원해야 한다는 현실논리가 이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이는 물론 기왕의 근대국가가 사회적 활동공간의 다차원적인 분화와 중앙집권화라는 양극적-동시적 현상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국가란 단순히 계급관계의 구조화가 엮어낸 지배계급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투쟁의 최상위 공간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애초에 ‘노동자 자주관리’를 이야기했던 저들이 ‘시민기업’의 주창자로, 다시 정부 ‘구조조정위원회’ 위원으로 변신해 갔다면, 그리고 임노동의 종말을 예언했던 그 담론 역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우려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변명’으로 이행해 갔다면, 이 ‘이행’을 ‘변절’로 매도하기에 앞서 그들의 시대적 정직성과 전략적 탄력성에 주목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 한 시대를 걸머지고 나가는 인간의 존재는 어떤 경우에도 ‘역사의 의지’로 환원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바로 이처럼 생생하게 살아 행동하는 ‘인간의 욕구’에 주목할 때,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인간 해방의 진정한 의의를 회복하는 것은 아닐까?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란 종래에 인식되었던 것처럼 단순히 스탈린주의의 과오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사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상정했던 사회구성체 이행론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결정론적 세계관의 ‘환상’이었음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Furet, Le passé d'une illusion. Essai sur l'idée du communisme au XXe siècle, 1995).

‘비판적 지식인’들이 개입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 ‘진정한 좌파’의 명칭을 선점하려 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우경화 경향이다. 이들 ‘비판적 지식인’들은 ‘파업 노동자를 위한 호소문’을 통해 ‘공화국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고... 평등과 연대의 사회’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드니 베르제, 쟝-마리 벵상, 다니엘 벤사이드, 에띠엔느 발리바, 삐에르 부르디유, 뤽 볼탕스끼, 쟈끄 비데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적극적 복지국가의 실현으로 쟁취한 노동자의 권리를 ‘기득권’으로, 권리의 요구를 ‘집단 이기주의’로 규정하는 포스트맑스주의자들이 -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 좌파의 옷을 입고 좌파의 이름으로 행동하지만, 그것은 사실 저들의 ‘개종’과 함께 얽히기 시작한 보수진영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저들은 그 동안 암묵적으로 통용되었던 정치적 범주들, 예컨대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시대착오적이라고 규정하며, 이러한 대립적 범주를 초월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신자유주의 이론에 근거하는 초국가적 자본주의의 음모에 대항하여 그 대응전략을 개발하기는커녕, 그 음모에 ‘인간의 얼굴’을 덧씌워주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 각인된, 투쟁의 역사를 통해 성취한 사회적 제 권리들을 방기함으로써, 지배적 자본세력과 투쟁할 수 있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여러 정부기관이야 말로 서구 자본주의 국가가 담지하는 ‘상대적 자율성’의 구체적인 행위자로 기능하며 - 국가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고위 테크노크라트 일반, 특히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국가귀족’의 대척점에서 - 국가의 ‘왼팔’을 구성하는데, 이들의 존재를 약화시킬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라는 것은 기껏해야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억압적 경찰국가로의 퇴행이라는 것이다 (Bourdieu, <>, Le Monde, 1992).

하물며 누가 마르크스의 이름으로 말하는가? ‘마르크스주의를 당과 국가의 정당화 도구로 사용했을 뿐’인 소비에트의 몰락이 마르크스주의의 이념 자체를 손상시킨 것은 아니거니와, 마르크스 자신은 ‘역사 발전의 다양한 길’을 옹호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마르크스 사상이야 말로 역사철학과 현실 정치를 연계하는 미완의 사상으로 재조명되어야 마땅하다 (Balibar, La philosophie de Marx, 1993) ! ‘동구의 몰락이 현실 사회주의를 전체주의로부터 해방시켰다면, 이제 현실 사회주의의 왜곡된 역사관으로부터 마르크스 역시 해방시켜야 한다’는 문제제기이다 (Bensaïd, Marx, l'intempestif, 1995).


미시적 인간이해를 통한 거시적 사회변혁을

‘좌파의 전쟁’을 예고하는 지식인의 동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서명은 서명을 낳고, 호소는 호소를 불러일으키며, 국가 아젠다의 건설이 정당-행정부-의회를 잇는 전통적인 정치 메커니즘의 전유물이 아님을 12월 총파업으로 웅변한다. 그리고 이 총파업의 와중에 현 시기 프랑스 사회가 목도한 것은 급진 좌파 지식인의 부활이다. 89년 이후 어느새 지배이데올로기로 굳어져버린 자유주의 유일사상에 대한 전방위 대항전선의 주축으로, 기존의 좌파진영에서 이탈한 ‘극좌파’ 지식인들이 68년 5월 이후 다시 담론시장의 제 1 선에 복귀해 반자유주의의 물결을 선도한다.

92년 걸프 전쟁 당시,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창설된 <시대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Sprat), 자유주의 유일사상을 비판하며 지난 95년 2월에 발기했던 <메를로-뽕띠 클럽>, ꡔ르 몽드 디플로마티끄ꡕ 편집주간들을 주축으로 토빈세(稅) 수용을 주장하는 <국제 금융거래의 과세를 위한 모임> (Attac), 그리고 부르디유의 호소에 따라 지식인과 노동자의 연대를 추구하는 <행동의 이유> (Raisons d'agir) 등이 사회운동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총파업의 아랫녘에서이다. 이들 모두는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라 할 <생 시몽 재단>과의 투쟁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한편, 스탈린주의의 ‘유물론적 형이상학’을 배격하면서 다음 세기의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고, 이를 전파하기 위해 질주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는 ‘일개 사회주의 국가의 전략이나 당의 정치적 선택으로 환원되기 이전에... 노동자들의 요구를 정치세력화했던 운동의 역사’가 아니었던가(Berger et Maler, Une certaine idée sur le communisme. Réplique à Francois Furet, 1996).

그런 만큼 현시기 프랑스 지식인들에게는 마르크스 사상의 재해석과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재건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세계관의 실현이 반복된 주장과 선언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가, 이들의 저작은 상당수가 다양한 이론적 전통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현대 사회과학의 성과를 소중하게 사용한다. ꡔ마르크스의 현존ꡕ(Actuel Marx)이 ‘뼈대없는 정통'(‘orthodoxie molle’)을 고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면, 다른 일방은 보수적 부르주아 이론으로 치부되던 체계이론, 조직이론, 자원동원론, 그리고 합리적 선택이론과 민속방법론, 공공선택이론 등과의 비판적 화해를 서두르기도 하고, 서구 자본주의 전개에 관한 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신화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분석의 현장 역시 많은 경우, 대륙을 관통하지도 않을뿐더러 역사를 추월하지도 않는다. 물론 여기에서의 현장이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각 부문, 구체적인 행위자들이 일구어내는 사회적 활동 공간을 총칭할 따름이다.

‘마르크스주의’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현란한 이들의 다양한 접근은 변동하는 사회현실에 대한 지적인 개방성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하게 마르크스주의 사회과학의 글쓰기가 노정하는 거대담론에의 편향성이, 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 마저도 토대결정론적 세계관의 형이상학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는 나름의 성찰에 연유한다.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기초한 미시적인 인간이해가 주류 사회과학의 전유물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사실, 현존하는 개인과 상관없는 저 역사철학적, 전체론적 계급범주가 구체적인 사회 현상을 창조하는 개인의 존재 자체는 아니지 않은가? 행위자가 실종된 그 자리엔 거의 언제나 역사와, 구조와, 객관적 조건들만이 번갈아 나열되며 개인에 대한 집단의 우위가 공언되고, 구체적인 맥락과 상황에서 행위하는 행위자들의 상호의존 관계 또는 전략적 상호작용 과정은 분석의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개인의 주관성과 동기가 비판적 사회 이론의 근본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강조는 때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이 상정했던,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선구자적 인간형’이 최소한 우리 모두의 모습은 아닐 것이기에 그렇다. 그렇지 아니할 때, 이론은 우리가 지향해야될 유토피아의 선포에 머무르며 현존하는 인간에게 또 하나의 멍에가 될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 이곳, 프랑스에서 ‘진정한 좌파’를 건설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저들의 노력은 당장의 사안별, 부문별 연대의 현장으로 향하며 정부의 정책 아젠다를 교란한다. 그리고 그 연대의 현장은 룸펜 프롤레타리아와 동성애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못해 현란하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단식 투쟁이 벌어지는 성 베르나르 성당(1996), 무주택자들이 ‘주거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며 점령한 드라공가(街)의 빈 아파트(1997), 일단의 실업자들이 실업수당 인상을 요구하며 점거한 정부 사회복지 부서(1998) 따위가 첨예한 투쟁의 현장으로 변한다.

나아가 그 논리적 귀결로서, 지식의 속류화에 기여하는 한편 지식의 자의적 선택과 왜곡을 감행하며 일정하게 당파성을 띠는 제도 언론과의 전쟁이 ‘상징권력’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총파업의 시작과 끝이 함의하는 바, 현장에 선 노동자들이 갈구했던 것은 화폐와, 잉여와, 교환에 관한 비밀스러운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요구도 저들의 반론처럼 정당하다’는 확신이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사상 및 지식 전투’가 병행되지 않는 사회투쟁이란 존재하지 않거니와, 대중매체의 은밀한 세뇌작업을 저지할 수 있는 지적, 언어적 도구를 고안하여 전파하는 것이 지식인들의 제일 큰 임무일지도 모른다(Bourdieu, Contre-feux, 1998).

프랑스 외무성의 ‘대변지’에 불과했던 ꡔ르 몽드 디플로마티끄ꡕ가 포스트 커뮤니즘의 ‘기관지’로 자리잡으며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는가 하면 (20만부), ꡔ샤를리 에브도ꡕ (8만부), ꡔ뽈리티스ꡕ (2만부), ꡔ레 진로꿉띠블ꡕ (3만5천부), ꡔ마리안느ꡕ 등의 잡지들이 ‘비판 사상’의 충실한 대변자로 떠오른다. ‘제 3의 길’을 떠받치는 세계화의 논리와 다자간 투자협정, 다보스 포럼, 암스테르담 협약이 도마에 오르고, 여성들과 사회적 소외계층의 목소리가 지면을 메꾸거니와, 동성애자들이 ‘지배의 윤리’로부터 면죄부를 얻는 곳도 다름 아닌 여기, 역사의 먼 뒤안길을 돌아온 급진 좌파 지식인들의 키보드에서다.


혁명의 미래, 미래의 혁명

포스트 코뮤니즘 시대의 우경화 경향, ‘자유주의냐 야만이냐’의 강요된 선택에 종지부를 찍는 첫 번째 견인차는 급진 좌파 지식인들이었다. 그래서 1997년 가을,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만행’을 폭로하는『공산주의 흑서』(Le livre noir du communisme)가 발간되었을 때, 프랑스사회는 이미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가 사회민주주의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폭넓은 공감대 속에서, 기든스류의 ‘제 3의 길’을 거부하면서 ‘또 다른 사회’를 향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었다. 주당 35시간 노동제를 통한 노동할 권리의 보장, 실업수당 인상, 전국민 보건체계의 정비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죠스팽 정부의 복지 프로그램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사회운동세력으로서 일정하게 자기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 급진 좌파가 90년대 중반기 프랑스의 정치지형과 교직하며 엮어낸 현실 정치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급진 좌파가 ‘다원적 좌파’의 반대편에서 동원하는 차별화 전략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공히 프랑스라는 사회가 내재화시킨 사회주의 수용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뿐 더러, 그 이념적 편차 역시 자신들이 믿는 것처럼 그렇게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들도 내일의 혁명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Jean-Christophe Cambadélis)거나 급진좌파의 선택은 ‘전략적 선택’(Christophe Aguiton)이라는 평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현시기 프랑스 지식인 운동을 통해 혁명의 이상을 제거한 좌파라는, 프랑스 특유의 기현상을 보고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의 논의와 행태 속에는 고립분산적인 사회운동이 중심 자리를 차지할 뿐, ‘또다른 사회’에 대한 대안적 전망과 그 실현을 위한 일반적, 총체적 프로그램이 부재한다. 부르주아 사회의 비판이 그 대안을 온전히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Alain Finkielkraut)

사실, 급진 좌파의 사회운동이란 사안별 연대의 현장, 단일의제 위주의 산만한 저항에서 조합주의적 요구에 충실함으로써, ‘급진적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급진적 자유주의’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정통’이라 불렸던 일단의 사회주의가 생산수단의 집단화를 바탕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했다면, 90년대 프랑스 급진 좌파의 지향은 사회경제적 요구를 사상한 채 ‘인권’과 ‘보편주의’의 강조, 그리고 전통적인 윤리 개념 (특히 가부장적 가족윤리)에 대한 저항에 머무르고 있다. 때문에 이들이 그려내는 정치 지형이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자유주의 대 반자유주의의 일전이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좌파 정권의 회귀와 신자유주의의 약진이라는 90년대 유럽의 파라독스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70년대의 골든 보이들이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은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자본에 대한 과세였지, 보편주의에 근거하는 인권보장과 국경개방을 통한 외국인 인력의 자유로운 수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 역시도 국가와 정치의 상대적 자율성 개념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이 인적관계로 구성되는지 구조적 관계로 구성되는지에 대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최근의 논의는 국가권력의 통일성 테제를 반박하며 자본주의적 국가장치를 사회적 ‘소외계층’의 권리를 고양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사회주의에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래서인가, 지난 시대의 논의 과정에 나타났던 제도주의적-조합주의적 국가론의 일편향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때문에 지금, 급진 좌파, 특히 부르디유 진영에 대한 조심스러운 불만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사회투쟁의 정치경제적 차원을 간과하는 석학의 앙가쥬망이 마르크스주의의 ‘계급적’ 당파성을 완전히 포기함과 아울러, 그에 따른 좌파의 해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이다 (Philippe Corcuff).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또 다른 사회’에 대한 대안적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아쉬운 때, 프랑스 급진 좌파는 지난 98년 10월 <코페르니쿠스 협회>를 발족시켰다. 그 동안 고립분산적으로, 산발적인 반자유주의 저항전선을 형성했던 대학 연구자들과 현장 활동가 300여명이 모여, 현 사회당 정권의 정책 입안을 주도하는 <생 시몽 재단>은 물론 공화주의적 좌파의 기치를 내건 <마크 블로크 협회>의 반대편에서 ‘진정한 좌파’의 깃발을 높이 세웠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연대와 실천을,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트 코뮤니즘 시대의 대안적 세계관을 건설하겠다는 이들의 야심이 현시기 좌파 운동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를 예단하기엔 시기상조다. 다만... 이들로부터 역사에 대한 신뢰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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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3-2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썻으면 읽기 좋았을텐데....중간에 가다가다가 놓치네요...잡지의 성격 때문이지 논의의 이론적 측면때문인지 아님 파리10대학 박사과정 때문인지... 넓게는 우리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찾을 수 있을 이념형의 차이로 보입니다.물론 프랑스와 한국의 정치적 환경,이념적 숙성이 다르다는 걸 배제하고 보면요.

기인 2007-03-27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저러한 논의들 사이를 진동하면서, 각기 생각이 정립되는 것 같습니다. :)
 
 전출처 : Ritournelle > * <공산당 선언>의 현재적 의미

 * 진보평론 제 1호 / <공산당 선언>의 현재적 의미

진보평론  제1호
최갑수(서울대학교 교수/서양사)

 <공산당 선언>이하 ■선언■으로 줄임)*주1)이 나온 지 올해로 151년이 된다. ■선언■은 아마도 성경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고*주2) 19세기에 나온 정치팜플렛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맑스의 저작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저작인 만큼 이 소책자의 탄생 150돌을 기리는 일은 쉽게 있을 법한 일이었다. 국내에서는 소책자의 형태로 ■선언■이 출간되고 외국 논문들이 번역되어 모음집으로 묶인 것*주3)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만한 행사나 기획이 없었지만, 외국에서는 자못 활발하여 한 잡지의 편집자는 심지어 “맑스의 복귀”를 운위할 정도였다. 좌파 진영의 지식인들이나 운동권만이 아니라 ‘주류의’ 보수적인 언론까지도 맑스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는 것이다.*주4)

*주1) ■■번역본의 우리말 제목이 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박종철출판사에서 펴낸 맑스와 엥겔스의 6권 짜리 ■저작선집■의 제1권에는 ■공산주의당 선언■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150주년 기념판이라는 소책자로 펴낸 것은 ■공산주의 선언■이라고 되어 있다. 필자는 일반적인 관례를 따라 ■공산당선언■으로 하기로 했다. 이러한 차이는 기실 ■선언■의 저자들의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은 애초 그것을 ■공산주의당 선언■이라고 불렀으나 1872년의 독일어판에서는 ■공산주의 선언■으로 개칭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공산주의 선언■(김태호 역, 박종철출판사, 1998)의 해제, 127~134쪽 참조. 필자는 주로 이 번역본을 대본으로 이용하나 표현상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선집1■의 것도 참조하였다.■■

*주2) ■■홉스봄에 의하면 1917년의 러시아혁명 이전에 ■선언■은 이미 3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비유럽계 언어로는 중국어와 일본어 번역이 있었고, 우리말 번역은 아직 나오기 이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100여개에 달하는 신생국이 탄생했음에 비추어 ■선언■은 현재 적어도 10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으나 정확한 통계는 없는 실정이다. Eric Hobsbawm, “Introduction,” Karl Marx and Frederick Engels, The Communist Manifesto: A Modern Edition (London: Verso, 1998), p. 7; “The Fortunes of Marx's and Engels' Writings,” The History of Marxism, vol. 1, Eric J. Hobsbawm ed., Marxism in Marx's Day (Bloomington: Indiana Univ. Press, 1982), pp. 327~344.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의 김인걸 교수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선언■의 최초의 우리말 번역본이 나타나는 것은 1921년의 일이다. 특이하게도 3개의 번역본이 국내외에서 개별적으로 거의 동시에 출현하였다. 하나는 여운형 선생이 상해의 ‘한인공산당’을 위해 적어도 1921년 5월 이전에 영어본에서 중역한 것으로서 3,000부를 발행하였다. 다른 하나는 같은 해 9월에 서울의 ‘조선공산당’(중립파)이 일어본에서 중역한 것으로서 85부를 발행하였다. 마지막의 것은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같은 해에 모스크바의 ‘한인공산당’이 아마도 노어본에서 중역한 것으로서 1,000부를 발행하였다. 세 번역본의 출간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되나 실물의 존재 여부는 현재까지 확인이 안되고 있다. 해방 이후에 남북한에서 동시에 ■선언■이 출간되었으나 ■선언■을 포함하여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의 출간 실태에 관한 연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실정이다. 이는 그간 공산주의운동 연구가 조직과 활동 중심으로 진행된 결과이며, 일반적으로 맑스 저작의 번역이 각국에서 사회과학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하는 만큼 그 연구는 우리의 지성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 최근의 번역본들은 따라서 이전의 그것들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나온 것이다.■■

*주3) ■■■선언 150년 이후■ (카피레프트 옮김, 이후, 1998). 이것은 1998년 5월 13~16일에 파리에서 열린 ‘■선언■150주년기념 파리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일부의 논문들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주4) ■■John Rees, “The Return of Marx?,” International Socialism 79 (Summer 1998), pp. 3~11. 미국에서만 Verso판 ■선언■에 대한 서평을 실은 일간지가 무려 125개지에 달했다.■■

맑스의 복귀와 ■선언■

사실상 ■선언■ 150주년은 맑스 재평가의 기회로 작용한 듯 하다. 지난 1980년대이래, 국내에서는 특히 90년대에 들어서 ‘거대담론’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심지어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호소력을 갖게 되면서 맑스 내지 맑스주의가 현대세계의 이해를 위한 주요한 지적 준거로서의 위치를 상실하는 듯 했다. 포스트맑스주의, 탈구조주의, 해체주의, 생태주의 등의 다양한 사조들은 “역사에서 경제적 요인의 우위와 규정성을 선험적이라고 폐기하고 맑스주의를 경제와 계급에 특권적 위치를 부여하는 사상이라고 단정”하고는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전체 역사과정에 대한 단일하고 통일된 이해를 가정한 역사 형이상학, 계급 형이상학이라고 비판하”였던 것이다.*주1) 이러한 반맑스주의적 분위기에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 “맑스주의자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데리다(Jacques Derrida)이다. 그는 “맑스 없이는, 맑스의 기억과 유산 없이는 미래는 없다”고 단언하고 “맑스의 정신”, 즉 “급진적 비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역설하였다. 그는 “지구와 인류의 역사에서 폭력, 불평등, 배척, 기아, 경제적 탄압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 적은 결코 없었다”고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시장”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암울한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항하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제안하였다.*주2)

*주1) ■■유재건, ■마르크스주의■, 김영한 편, ■서양의 지적 운동 II■ (지식산업사, 1998), 450~451쪽.■■

*주2) ■■디디에 에리봉, ■21세기의 사상가 맑스: 자크 데리다가 ■자본■의 저자를 복권시키다■, 송기형 역, ■이론■ 7호 (1993년 겨울), 363~372쪽. 인용은 368~371쪽임. 데리다는 당시 ■맑스의 유령들(Spectres de Marx)■ (Paris: Galilée, 1993)을 막 출간한 뒤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타난 ‘맑스로의 복귀’에는 데리다가 토로하고 있듯이 세계자본주의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이후 ‘역사의 종언’을 축성하기보다는 내적 모순을 드러내어 정치적, 경제적 혼돈을 부채질하고 있는 세기말적 현실이 크게 작용하였다. 걸프만과 뒤 이어 중동, 발칸반도, 소말리아와 루안다 등지에서의 ‘새로운 세계질서’의 실패, 동남 아시아의 경제위기, 유럽, 한국, 브라질, 미국 등지의 파업의 물결, 유럽연합 대부분 회원국에서의 좌파정당의 집권 등이 구체적인 예이다. 이러한 징후들이 오히려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동력과 파괴적인 힘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소로스나 갤브레이스와 같은 자본주의의 대표자들이 발하는 경고는 전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체제가 위기국면에 진입하고 있음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맑스의 복귀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이뤄진 것이다.

문제는 맑스의 복권이 환영할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주1) 첫째, 그의 복귀는 부분적이고 선택적이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분석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이는 주류 경제학자들도 대부분 인정하는 바이지만,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성에 대한 그의 믿음은 데리다는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의 좌파 인사들에 의해서도 부정되고 있다. 둘째, 맑스로의 복귀가 곧 맑스주의의 복권으로 연결되고 있지 못하다. 그는 현대 사회를 이해하게 해주는 탁월한 지적 원천으로 심지어는 고전으로 간주될 뿐, 그를 혁명적인 맑스주의 전통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맑스의 복권이 러시아혁명이나 레닌의 그것으로 이어지고 있지 못한데서 잘 드러난다.*주2) 마지막으로 맑스에 대한 관심의 부활이 노동자대중의 급진적인 분위기와의 직접적인 연결을 확보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지 못하다. 노동자들의 계급투쟁과의 유기적인 결합이야말로 맑스의 복귀가 단순한 지적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고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기본조건인 것이다.

*주1) ■■Rees, ibid., pp. 7~9.}}

*주2) ■■예컨대 Mike Haynes, “Social History and the Russian Revolution,” John Rees (ed.), Essays on Historical Materialism (London: Bookmarks, 1998), pp. 57~80 참조.■■

오늘날 ■선언■을 읽는다는 것은 맑스로의 복귀와 접근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그것은 거시적인 역사적 안목과 실천적인 행동강령을 결합시킨 매우 드문 본보기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즉 그것은 우리가 현재 어디에 와 있으며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지시해준다. 따라서 ■선언■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150여년 전에 맑스가 구상했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관통하고 있는 기본정신이다. 맑스가 아무리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계속적으로 발전하여 노동계급운동의 성장을 가로막을 지도 모를 여러 문제들을 모두 예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우리에게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통해 실천운동을 끊임없이 재조직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맑스에게 역동적인 역사인식과 자본주의 분석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역사적 유물론이며, 그는 ■선언■의 집필에 앞서 이미 ■독일 이데올로기■(1846)에서 그러한 역사관에 도달해 있었다.
■선언■은 장문의 본격적인 학문적인 저작은 아니며 2월혁명 직전의 정치적 격동기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쓰여진 정치적 강령, 즉 하나의 선언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정치선언을 하나의 선언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고도의 역사적인 문헌, 경제적‧정치적인 분석서, 심지어는 예언서로 간주한다. 놀라운 것은 수십 쪽에 불과한 ■선언■이 세월의 시련을 견뎌내어 1세기 반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현실성을 상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달빛에 바래 기억의 창고 속에 안치되어야 할 신화이기는커녕 매우 엄격하고 포괄적인 기대수준을 아직도 만족시켜주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인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가 ■1872년 독일어판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선언■에 개진되어 있는 일반적 원칙들은 대체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완전한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60].*주) ■선언■이 이럴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현실세계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세계와 우리의 삶이 기본적으로 동일한 시공간의 계열에 속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주) ■■[ ]에 들어있는 숫자는 ■공산주의 선언■(김태호 역)의 쪽수를 가리킴.■■

따라서 우리는 ■선언■에서 15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서양의 시간대에 이미 익숙해진 우리에게 ■선언■은 그 거리를 뛰어넘는 동시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유럽의 2월혁명 전야가 아니라 우리의 19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엄청난 역사의 벽을 실감한다. 당시는 세도정치가 한창이고 마침 풍양 조씨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헌정조 말년이었고 양반문화의 마지막 절정이던 추사 김정희가 아직 생존해 있던 시기였다. ‘이양선’들이 해안에 출몰하고 선교사를 통해 서양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국가권력의 기반이 급속히 축소되면서 지배층의 주체적인 국가경영의 경험이 퇴행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바로 이 전통의 단절과 ■선언■의 시간대의 틈입, 즉 상이한 시간성의 충돌과 교체 아래에서 우리의 고통스런 근대가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맑스가 “부르주아지의 값싼 상품 가격은, 부르주아지가 모든 만리 장성을 쏘아 무너뜨리고 외국인에 대한 야만인들의 완고하기 그지없는 증오를 굴복시키는 중포(重砲)이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국민들에게 망하고 싶지 않거든 부르주아지의 생산 방식을 취하라고 강요하며, 이른바 문명을 자국에 도입하라고, 다시 말해 부르주아가 되라고 강요한다”[9]라고 냉엄하게 갈파했을 때, 그는 과연 만리장성조차 갖추지 못했던 조선이라는 “야만인들”이 겪을 비극적 운명을 예감조차 할 수 있었을 것인가? 게다가 우리가 지금 과연 “부르주아가 됐는가” 하는 문제도 깊이 따져봐야 할 바이지만, “문명”의 충격 속에서 아직도 “하나의 국민, 하나의 정부, 하나의 법률, 하나의 전국적 계급이해, 하나의 관세구역”[10, 강조는 원문의 것임]을 이룩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오랜 민주화투쟁과 활기찬 노동운동을 벌여오기는 했지만, 계급정당은 고사하고 변변찮은 진보정당 하나라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따라서 21세기의 길목에서 ■선언■을 읽은 우리의 감회는 남다르다. ■선언■에 개진되어 있는 역사발전관을 보편적인 공리로 받아들이기에는 우리의 지난 경험이 너무도 고통스러웠고, 자본주의의 높은 생산력을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치룬 대가가 너무도 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으로의 형성, 부르주아지 지배의 전복,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정치권력의 전취”를 “당면 목적”[24]으로 내걸기에는 우리의 힘이 너무도 벅차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언■을 구미의 이론가들*주)과는 다소간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 ■■영어가 ‘세계어’로 기능하고 있는 덕택에 오늘날 영어로 글 쓸 수 있는 이는 일종의 특권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과 진보적 학술연구의 오랜 전통을 겸비한 영국의 이론가들은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하여 소설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만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선언■ 150주년을 맞이하여 주로 이 독립적인 좌파 이론가들을 중심으로 International Socialism 79 (Summer 1998), Monthly Review 50 (May 1998), Socialist Register 1999 (Leo Panitch and Colin Leys eds., “The Communist Manifesto Now,” London, The Merlin Press, 1998) 등이 특집호를 발행했고, 기타 Mark Cowling (ed.), The Communist Manifesto: New Interpretations (Edinburgh: Edinburgh Univ. Press, 1998)이 출간되었다.■■

■선언■의 역사적 맥락

이제 ■선언■이 어떠한 맥락에서 쓰여지고 그 특정한 역사적 조건이 어떻게 내용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자.

19세기 중엽에 쓰여진 ■선언■은 우리가 흔히 ‘이중혁명’이라고 부르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충격을 강하게 받고 있다. 19세기 유럽의 모든 사상체계가 그 영향을 받기는 매한가지지만, 맑스는 그것을 남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프랑스혁명에서 본 것은 전체사회를 인간들의 주체적 의지(이것이 근대적 의미의 ‘정치’이다)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주) 그는 프랑스혁명으로 말미암아 ‘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정상상태’가 되었음을 감지하고 그 변화를 추동하여 프랑스혁명의 성과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혁명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따라서 그가 프랑스혁명에서 구하려고 했던 것은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위한 실천과 전략이었고, 당연하게도 ‘자코뱅의 독재’에 주목하여 박사학위를 마치고 파리로 가기 이전에 한때 ‘국민공회의 역사’를 쓰려고 마음먹기도 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에게서 차례차례 모든 자본을 빼앗고, 모든 생산도구들을 국가의 수중에, 다시 말해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가능한 한 신속히 생산력들의 덩치를 키울 것이다. 이것은 물론 처음에는 소유권과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들에 대한 전제적 침해를 통해서만 ‧‧‧ 일어날 수 있다”[35]. 정치를 통한 사회변혁, ‘근대성’에 친숙해 있는 우리는 이 혁명관이 당시 얼마나 신선한 것이었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바뵈프, 부오나로티, 블랑키로 이어지는 무장봉기와 ‘소수의 독재’의 혁명학은 분명 실천적 조급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변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통제하려는 정치의지의 산물이었다. 맑스 역시 근대사회의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변화의 물꼬를 “공산주의혁명”[35]으로 향하게 하고자 했고, 그리하여 ‘영구혁명’의 명제를 제안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주의를 주로 독일에 돌리는 것은 독일이 부르주아혁명의 전야에 있기 때문이며, 또 독일은 유럽문명 일반의 더 진보한 조건들 밑에서, 그리고 17세기의 영국이나 18세기의 프랑스보다 훨씬 더 발전한 프롤레타리아트를 갖고서 이 변혁을 성취할 것이므로 독일의 부르주아혁명은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직접적 서곡일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57~58]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맑스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적 소유의 폐지”[25]를 이룩하는 공산주의혁명이기는 하지만 ■선언■이 겨냥하는 직접적인 목표는 독일의 부르주아혁명, 즉 ‘제2의 프랑스혁명’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당시 독일의 자유주의 세력에게 제휴의 몸짓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르주아혁명이 달성한 과업을 꼭 완수해야 할 역사적 과제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주) ■■이매뉴얼 월러스틴,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창작과비평사, 1994), 제1장 ‘세계사적 사건으로서의 프랑스혁명’, 15~34쪽; 최갑수, ■마르크스와 프랑스혁명■, ■이론■ 2호 (1992년 가을), 42~60쪽; 최갑수, ■사회주의■, 김영한 외 편, ■서양의 지적 운동■ (지식산업사, 1994), 126~132쪽.■■

■선언■의 배경을 이루는 또 다른 역사적 계기는 산업혁명이다. 서구에서 산업자본주의의 대두와 근대적인 산업노동계급의 등장,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사회주의운동의 출현이 그것이다. ■선언■ 당시 맑스는 이미 근대경제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 도달해 있었다. ■철학의 빈곤■(1847)은 비록 노동력과 잉여가치의 개념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노동가치설을 이해하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가능성을 두루 인식하였다.*주) 산업혁명의 성과에 대한 평가에서도 ■선언■은 이중적이다. 주지하듯이 우선 ■선언■은 자본주의의 비효율과 무질서를 고발하고 그것이 자기파괴의 무덤을 팔 것임을 확신하고 예언한다. “현대 부르주아사회는, 주문을 외워 불러내었던 저승의 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마법사와 같다.”[■선집1■, 405] “부르주아지는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무기들을 벼려냈을 뿐만이 아니라, 이 무기들을 쓸 될 사람들도 낳았다. 현대 노동자들, 프롤레타리아들을 낳았다.”[12; ■선집1■, 406. 강조는 원문의 것임] “부르주아지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매장인을 만들어낸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똑같이 불가피하다”[22; ■선집1■, 412].

*주) ■■David McLellan, “The Materialistic Concept of History,” Eric J. Hobsbawm (ed.), Marxism in Marx's Day, pp. 29~46.}}

하지만 맑스는 근대 자본주의가, 모든 계급의 차이들을 사라지게 하는 새로운 사회의 물질적 조건을 창출하고 있음을 아울러 강조하였다. “부르주아지는 백 년도 채 안 되는 자신들의 계급지배기간 동안, 과거의 모든 세대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들을 창조하였다. 자연력들의 정복, 기계장치, 공업과 농경에 대한 화학의 응용, 기선 항해, 철도, 전신, 전 대륙의 개간, 하천의 운하화, 땅 밑에서 솟아난 듯한 인구 전체.”[10]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는 자본주의의 성과에 입각할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 해방”[51]과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37]는 생산력이 그것을 가능케 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할 때만 이룩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새로운 사회는,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생산방식 전체의 변혁”[35])가 자본주의가 빚어낸 생산력의 토대 위에 둥지를 틀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혁명의 과제란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유지한 채 그 생산관계만을 변혁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한 연구자는 “때로 그가 자본주의사회를 묘사할 때 혹시 사회주의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가끔 생각되곤”*주1) 한다고 토로할 수 있었다. 사실상 맑스 역시 “공산주의를 남김없이 설명하는 것은 소유 일반의 철폐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의 철폐”[24~25]라고 하여 ‘사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주2)를 구분하고 “자본이 사회의 모든 성원들에 속하는 공동의 소유로 변한다고 해도 개인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변하는 것은 아니라”[■선집1■, 414]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공산주의는 사회적 생산물들을 취득할 힘을 그 누구로부터도 빼앗지 않으며, 다만 이러한 취득을 통해 타인의 노동을 자신에게 예속시키는 힘을 빼앗을 뿐이다”[28]. 자본주의가 미증유의 물질적 부를 만들어내면서도 각 개인에게 그것을 향유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기회를 차단하고 있음을 맑스가 명확히 하고는 있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그의 이중감정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자본주의의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본질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지님과 함께 그 역동성과 높은 생산력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즉 그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여 그것이 갖는 풍요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부르주아사회에서는 산 노동은 축적된 노동을 증식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공산주의사회에서는 축적된 노동은 노동자들의 생활과정을 확장시키고 풍요롭게 하며 장려하는 수단일 뿐이다”[27].

*주1) ■■유재건, 위의 글, 437쪽.■■

*주2) ■■■선언■은 “일신상의 소유”[26]로 옮기고 있으나 적절치 못한 듯 하여 ■선집1■의 용어를 택하였음.■■

‘이중혁명’이 ■선언■의 원경을 이룬다면, 1840년대의 국제사회주의운동은 ■선언■의 특정한 구조를 설명해주는 직접적인 배경을 이룬다. ■선언■의 제3장이 보여주는 자못 논쟁적이고 경멸조의 분위기는 사회주의운동진영에 자신의 정체성을 부과하려는 맑스의 의지를 보여주며, 그가 ■선언■에 포괄적인 ‘사회주의’ 대신에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택한 것도 여타 진영들로부터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주1) 맑스와 엥겔스가 공동집필자로 되어 있지만 공동작업의 과정은 조금 복잡하다. 독일 망명운동가들의 모임인 ‘공산주의자동맹’은 1947년 11월 29일부터 12월 8일까지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총회에서 규약을 개정하고 그것에 걸맞은 강령의 최종본의 작성을 맑스에게 의뢰하였다. 그는 엥겔스가 이미 작성해 놓은 ■공산주의의 원칙들■[■선집1■, 319~339]과 ‘연맹’이 준 여러 자료에 입각하여 ■선언■을 완성하고 1848년 아마도 2월 중순경에 런던에서 익명으로 출판하였다. ■선언■은 당시 대부분의 같은 종류의 문건과는 달리 문답식을 과감히 탈피하고 강건하면서도 자못 문학적인 수사를 동원하는 새로운 유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주2)

*주1) ■■후에 엥겔스가 “1847년에는 사회주의는 중간계급의 운동이었고, 공산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운동이었다. 사회주의는 적어도 대륙에서는 ‘품위 있는 것’이었고, 공산주의는 바로 그 반대의 것이었다”[72]고 양자의 차이를 강조했지만 이는 다소간 지나친 구분법이다. 20세기의 구분법은 당시의 그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2월혁명 이전에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었고, ‘공산주의자’로 간주되던 Cabet, Dézamy, Blanqui 등의 면면을 보더라도 ‘공산주의’가 상대적으로 보다 전투적이고 민주적일 뿐 양자간에 질적인 차이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기에 맑스가 제3장의 제목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이라고 하면서도 모두 당시의 용례로 ‘사회주의자들’만을 다루고 있으며 그 가운데 자신의 계보로 끌어들이고 싶은 생시몽, 푸리에, 오웬에게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제’라는 복합어를 부여했던 것이다. 실제로 ■선언■의 주 논적은 독일의 ‘진정한 사회주의였다. Raymond Williams, Keywords (London: Fontana, 1976)의 해당 항목과 Claude Willard, Socialisme et communisme français (Paris: Armand Colin, 1978), pp. 21~37 참조.■■

*주2) ■■■선언■의 작성과정에 관한 가장 훌륭한 자료는 Bert Andréas, Documents constitutifs de la Ligue des Communistes 1847: Edition bilingue (Paris: Aubier Montaigne, 1972)이며, 기타 엥겔스, ■공산주의자 동맹의 역사에 관하여■, ■선집■ 제6권, 214~235쪽;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소, ■마르크스■ (김대웅 외 역, 두레, 1989), 161~231쪽; Rob Beamish, "The Making of the Manifesto", Socialist Register 1999, pp. 218~239 참조.■■

바로 이 때는 유럽에 거대한 혁명의 물결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이었다. 프랑스의 파리에서 터져 적어도 10여개국이 넘는 지역으로 번져가 라틴 아메리카까지 파급이 미친 이 ‘유럽혁명’은 불과 수주일 만에 여러 나라에서 정권을 무너뜨리고 보수반동의 아성인 ‘메테르니히체제’를 해체시켰다. 대부분의 혁명은 단명했으나, 그것이 불러일으킨 국제혁명의 기대와 공포는 참으로 거대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혹자는 그것을 ‘세계혁명’으로 칭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주1) ■선언■은 이 혁명의 발발 직전에 쓰여졌다. 그것은 혁명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늦게 출현하였던 반면에, 당시의 특정한 혁명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선언■은 이 사실로 말미암아 독특한 색조를 부여받았으며 강한 설득력을 가짐과 함께 모종의 역사적 오해를 범하지 않았나 생각된다.*주2)

*주1) ■■이매뉴얼 월러스틴 외, ■반체제운동■ (송철순 외 역, 창작과비평사, 1994). 1848년의 혁명에 관한 연구로는 Sir Lewis Namier, 1848: The Revolution of the Intellectuals (Oxford: Oxford Univ. Press, 1944)이 여전히 고전적인 가치가 있으며 이하에서 필자는 특히 Arnošt Klíma, “The bourgeois revolution of 1848~9 in Central Europe,” Roy Porter and Mikuláš Teich (eds.), Revolution in History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86), pp. 74~100 참조.■■

*주2) ■■이 점에 대해서는 Ellen Meiksins Wood, The Pristine Culture of Capitalism: A Historical Essay on Old Regimes and Modern States (London: Verso, 1991), pp. 1~19; “The ‘Communist Manifesto’ after 150 years,” Monthly Review 50 (May 1998), pp. 14~35를 참조.■■

1848년의 혁명은 프랑스나 라인란트와 같은 비교적 선진화된 지역으로부터 남부 이탈리아나 트랜실바니아와 같은 후진지역에 이르는 매우 다양한 사회경제적, 정치적 조건을 지닌 지역에서 일어났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혁명이 일어난 곳 어디에서나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하지 않았고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에 당시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했던 영국은 1840년대에 민중의 소요와 그에 대한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륙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혁명적 상황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48년의 여러 혁명들의 공통되는 정치강령이 있었다면, 그것은 결코 자본주의체제의 전복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이 고무했던 시민적 평등에 입각한 자유입헌체제의 확립이었고, 헝가리와 이탈리아에서는 그것이 민족자결권의 요구와 결합되어 있었다.

1848년의 혁명이 사회주의적이거나 반자본주의적인 것이 아니라고 해서 그렇다고 전적으로 일반적인 의미의 ‘부르주아혁명’, 즉 자본주의를 봉건적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혁명도 아니었다. 혁명적 ‘부르주아지’는 결코 단일한 자본가계급이 아니었고 그 가운데는 오히려 관리, 전문직업인, 지식인이 우세하였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산업화가 가장 앞섰던 프랑스에서조차 산업부르주아지는 소수이고 미약하여, 상이한 이해관계를 지닌 민중세력의 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홀로 지배엘리트에 맞설 수 없었다. 또한 혁명을 ‘부르주아공화국’이나 자유주의체제라는 정치적 목표를 넘어 보다 광범위한 사회변혁으로 이끌었던, 도로에서 싸우다 죽어간 민중들은 근대적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었다. 여기에는 독립적인 장인층과 소상점주, 일부 지역(이탈리아와 일부의 독일지역)에서 농민층, 도시의 실업자나 불완전 고용인 등이 다수였다. 혁명 유럽의 그 어느 곳에도 영국에 이미 존재했던 규모의 임금노동자층은 부재했다. 특히 프랑스와 일부의 독일에서 신생 프롤레타리아들이 수에 비해서 훨씬 큰 역할을 수행하기는 했지만 아직 혁명의 성공을 위한 굳건한 사회적 기반을 제공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바로 이런 까닭으로 해서 심지어는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조차도 이룰 수 없었다.

혁명운동이란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부군에 맞설 수 있는 일정한 물리력을 필요로 하며, 1848년의 상황에서는 대중동원이 거의 유일한 방안이었다. 그러나 일단 민중이 대거 정치무대에 돌입하자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나 급진파는 곧 그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도처에서 민주주의나 심지어 자유주의로부터 후퇴하여 엄격한 계서제, 질서, 반동을 내세우는 전통적인 세력에 합류해 버렸다. 사실상 어떤 단일한 계급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안정된 체제를 유지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못했기 때문에 혁명이 터져나왔고 또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가 ■선언■을 집필할 당시, 그들은 사회주의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임박했다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그들의 희망은 1848년의 혁명과 그 실패가 보다 장기적인 발전, 즉 부르주아 공화국을 넘어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와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로 나아가게 하는 ‘영구혁명’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맑스는 ■선언■을 쓸 때 독일이 혁명 전야에 있음을 또렷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하기야 유럽에 거대한 폭풍우가 밀어닥칠 것임을 맑스와는 매우 다른 처지에 있던 토크빌이나 기타 여러 사람들이 사전에 알아챘으니, 딱히 그만이 통찰력이 뛰어났다는 찬사는 접어두자. 문제는 그가 그 혁명의 성격을 부르주아혁명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선언■이 개진하고 있는 부르주아혁명관을 요약하면 이렇다: 부르주아혁명이란 “이미 발전한 생산력”에 “족쇄”가 된 “봉건적 소유관계”[10]를 분쇄하는 역사적 과제를 수행한다. 따라서 주 혁명전선은 새로운 생산력의 담지자인 부르주아지와 구 생산관계의 담당자인 봉건세력 사이에 이뤄지며, “부르주아지가 자기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프롤레타리아트 전체를 운동”[15]시켜 이들이 보조자로 혁명무대에 개입한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걸맞게 행동하며 그리하여 “역사에서 매우 혁명적인 역할을 하였다”[6]. 하지만 1848년의 경험은 이러한 혁명관의 기대를 저버렸다. 혁명과정에서 부르주아지가 추구했던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이며, 그 부르주아지는 대부분 자본가가 아니었고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대중의 소수에 불과했고, 더욱 중요하게도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망각하고 끝내 혁명을 배신했던 것이다.

독일의 현실과 이중혁명관

이러한 괴리가 맑스의 판단착오에서 비롯하였을까? 그것은 사실상 ■선언■의 특히 제1장이 개진하고 있는 역사적 분석의 배경이, 발전한 자본주의사회가 아니라 당시의 독일과 유사한 전자본주의적인 사회구성인 데서 비롯하였다.*주) 이는 ■선언■이 20세기말이 아니라 19세기 중엽에 쓰여졌다거나 맑스가 경험한 자본주의가 오늘날보다 훨씬 초기 단계의 것임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당시의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사회조차 제1장의 직접적인 배경이 아니었다. 사실상 그것은 자본주의적인 사회관계보다는 오히려 전자본주의적인 역사현실과 더욱 관련이 깊은 사회세력의 역학관계와 투쟁 그리고 그것이 야기한 혁명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여기에서는 임금노동자 대 자본가(고용주)의 대립이 아니라 비특권계급 대 특권계급, 부르주아들을 포함하는 평민 대 귀족, 국민 대 군주제, 농민 대 지주, 심지어 농노 대 주인, 빈자 대 부자 등의 대립이 사회적 갈등의 기본축을 이루었다.

*주) ■■Wood(1998), op. cit.}}

우리는 여기에서 ■선언■에 엿보이는 미묘한 긴장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저자들이 ■선언■에 세 가지 성격을 부여하려고 했던 결과였다. ■선언■은 말 그대로 공산주의의 선언서요, 자본주의를 전복시키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선언서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언■에서 주목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불온시했던 것은 바로 이 측면 때문이다. 그것은 아울러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하고 예언자적인 분석이다.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분석으로 여전히 강한 설득력을 갖고 있어 요즈음에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면모이다. 그러나 ■선언■의 직접적인 정치적 착상은, 그것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와는 매우 다른 세계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선언■은 특정 혁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얻어낸 부르주아혁명관을 다가올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원형으로 삼음으로써 앞서 말한 괴리를 야기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선언■은 세 가지, 어찌 보면 네 가지 각기 다른 차원의 시간성을 갖고 있다. ‘먼 미래’(프롤레타리아 혁명)와 ‘근접 미래’(독일의 자본주의적 미래) 그리고 ‘전자본주의적인 과거’(영국과 프랑스에서의 자본주의로의 이행)가 ■선언■의 ‘현재’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괴리의 근본적인 원인은 맑스의 거시적인 역사관의 핵심인 이중혁명관 자체에 있다*주). 주지하다시피 영국은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그의 분석의 본보기였다. 영국은 당시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국가였고 그는 영국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를 보았다. 하지만 이 자본주의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하는 부르주아지의 상(像)을 그가 얻어낸 곳은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그는 영국의 자본주의 발전과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성과를 겹쳐놓음으로써 부르주아지와 자본가계급을 동일시하고 혁명적 부르주아지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주) ■■이중혁명관에 입각한 대표적인 역사서술로는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박현채 외 역, 한길사, 1984)가 있으며, 이에 관한 역사사회학적 분석으로는 Colin Mooers, The Making of Bourgeois Europe (London: Verso, 1991)이 참고할 만하다.■■

■선언■의 역사서술는 부르주아지를 “각각의 발전단계”에서 반동세력에 맞서 투쟁하는 진보적인 계급으로 그리고 있다. 그것은 봉건적인 특권계급에 대항하는 “피억압자 신분”에서 출발하여 오랜 계급투쟁을 통해 “마침내 대공업과 세계시장이 갖추어진 이래로는 현대 대의제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하였다”[5~6]. “이 모든 투쟁에서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호소하고 그들의 도움을 청하며, 그리하여 그들을 정치운동에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부르주아지 자신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르주아지 자신의 교양 요소들을, 다시 말해 부르주아지 자신에게 대항하는 무기들을 제공한다”[17~18]. 이러한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부르주아지 상은 영국의 자본주의 발전이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대륙의 혁명투쟁사에서 빌어온 것이었다.
문제는 고전적인 부르주아혁명이라는 프랑스혁명이 자본주의의 발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는 점이다. 혁명적 부르주아지의 핵심은 자본가 내지는 심지어 전자본주의적인 상인층이 아니라 관리와 자유전문직업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의 혁명적 목표는 자본주의를 봉건적인 족쇄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적 평등과 관직 등에 대한 기회의 균등, 즉 ‘재능에 따른 출세’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부르주아들의 이러한 목표는 부의 축적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자본주의사회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것은 오히려 관직이 경제적 잉여에 접근할 수 있는 주요한 통로이고 야심 있는 많은 부르주아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출세길이던 사회에 어울리는 것이었다.*주)

*주) ■■조르쥬 르페브르, ■프랑스혁명 - 1789년■ (민석홍 역, 을유문화사, 1976); Alfred Cobban, The Social Interpretation of the French Revolution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64); 프랑스혁명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서는 민석홍 편, ■프랑스혁명사론■ (까치, 1988) 참조.■■

다른 한편 영국의 자본주의는 부르주아지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영국의 토지특권계급은 도시의 시민층 못지 않게 농업자본주의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였다. 또한 영국에서 자본주의는 반동적인 특권계급에 대한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부르주아들의 투쟁의 결과로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17세기초에 국왕들이 절대군주제의 경향을 강화함에 따라 많은 대농장소유주들이 국왕에 대항하여 싸우고 민중을 혁명에 동원했음은 사실이다. 그 투쟁에서 그들은 대의제와 제한정부의 원칙을 천명했고 그들이 부추겼던 (그러나 곧 탄압했지만) 민중세력은 당시 가장 급진적인 민주주의 이념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청교도혁명은 토지특권계급과 대두하는 부르주아지나 자본가 사이의 계급투쟁은 결코 아니었다.*주)

*주) ■■Christopher Hill, The Century of Revolution 1603~1714 (London: Sphere Books, 1973); "A Bourgeois Revolution," J. G. A. Pocock (ed.), Three British Revolution, 1641, 1688, 1796 (Princeton: Princeton Univ. Press, 1980) 참조.■■

영국의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위하여 계급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그것은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은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적어도 농업자본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지배계급의 일원이었다. 토지계급과 산업계급 사이에 충돌이 나타났던 19세기에서조차 그것은 기본적으로 두 종류의 자본간의 대립이었다. 만약 영국의 자본주의가 정치적‧경제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계급투쟁을 필요로 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층민을 겨냥한 것이었다. 소농들의 소유권과 그들의 이상을 대변하는 급진사상이 자본축적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영국의 자본가들이 맑스에게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부르주아지 상의 본보기를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적 속성이 미약했던 프랑스혁명기의 ‘혁명적 부르주아지’였다. 사실상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지가 특권계급에 대항하여 민중계급과 결합하고 그 투쟁을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차원에까지 이끌었던 거의 유일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혁명의 진행과정을 목도하고 그것이 민중혁명을 야기할 수 있음을 알게된 대륙의 부르주아들은 지배세력에 맞서 민중을 정치무대에 끌어들이면서도 새로운 사회혁명의 가능성에 전전긍긍하였고 끝내는 언제나 혁명대열에서 이탈하였다. 즉 단 한 차례의 1789년의 혁명을 제외하고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걸맞은 부르주아혁명조차 철저하게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예외적인 존재에 불과했던 1789~93년의 ‘혁명적 부르주아지’에 맑스는 매료되었고, 그리하여 그는 부르주아지 일반을 역사상 최초의 보편계급이라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새로운 제2의 보편계급으로서 그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러한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부르주아지를 본보기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며, ■선언■의 자본주의관 역시 ‘혁명적 부르주아지’ 상의 영향을 받아 자못 긍정적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이 언제나 ‘밑으로부터의 압력’에 의한 혁명적 과정을 수반하는 지는 불명확하다. 독일이나 일본 또는 우리의 경험은 오히려 그 반대임을 잘 보여준다. 맑스는 영국과 프랑스의 경험을 웅장한 규모로 결합시켜 근대사회를 가져온 기본동력으로서 이중혁명관을 제시하는 가운데 부르주아지를 자본가와 등치시키고 자본주의의 적극적인 측면을 상대적으로 강조하였던 것이다.


부르주아지에 대한 송가(頌歌)로서의 ■선언■

■선언■을 처음 읽는 독자들은 ■선언■에 대해 듣던 바와는 달리 오히려 특히 그 앞부분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한 찬송가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충격을 받을 것이다. “부르주아지야말로 인간의 활동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였다. 부르주아지는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의 수로, 고딕식 성당 따위와는 완전히 다른 기적을 성취하였으며, 민족대이동과 십자군원정과는 전혀 다른 원정을 수행하였다”[7].
■선언■은 부르주아지의 위대성을 여러 측면에서 조감한다. 우선 ■선언■은 부르주아지의 역동성을 강조한다. 이 역동성은 혁명적 존재로서 부르주아지의 심원한 충동과 욕구에서 비롯하며 단지 물질생산의 측면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 전체를 포괄한다.

부르주아지는 생산도구들에, 따라서 생산관계들에, 따라서 사회관계들 전체에 끊임없이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 생산의 끊임없는 변혁, 모든 사회상태들의 부단한 동요, 영원한 불안과 격동 등이 부르주아 시대를 다른 모든 시대와 구별해준다. 굳고 녹슨 모든 관계들은 오래되고 존귀한 표상들 및 의견들과 함께 해체되고, 새롭게 형성된 모든 것들은 정착되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신분적인 것과 정체적인 것은 모두 증발해 버리고*주), 신성한 것은 모두 모독당하며, 그래서 사람들은 마침내 자신의 생활상의 지위와 상호 연관들을 깨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7~8].

*주) ■■영어본에는 “신분적인 것과 정체적인 것”이 “견고한 것”으로 되어 있다. 영어로 표현하면 “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라는 유명한 문구이다.■■

맑스를 ‘근대주의자’로 파악하려는 일단의 연구들이 집중적으로 인용하여 이제는 ■선언■의 맨 첫 구절과 맨 마지막 구절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명문’이다.*주) 마치 인상파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은, 사물의 고정된 실체성이란 부재하며 오직 광선에 투과된 색채의 부단한 흐름만이 화폭을 메운다는 서정성을 느끼게 해준다. 사실 이 구절로 말미암아 맑스는 프루동이나 바쿠닌으로부터 자본주의의 희생자들을 배신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는 그의 변증법적인 사고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맑스의 진정한 의도는 부르주아지의 존재성에서 비롯한 이 혁명적 역동성이 끝내는 바로 그들을 겨냥할 것임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다만 자본주의의 괴력(그 모순까지 포함하여)과 끈질긴 생존능력을 지켜본 우리로서 맑스의 통찰력을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그것이 부르주아지와 자본주의의 자기변신의 역량을 확인해주는 듯 보이는 것이다.

*주) ■■대표적인 연구로는 문제의 구절을 책의 제목으로 삼은 Marshall Berman, 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 The Experience of Modernity (New York: Penguin Books, 1982)가 있다.■■

■선언■이 찬양하는 또 다른 면모는 부르주아지가 근대 자본주의에 ‘전지구적(global)’ 차원과 ‘범세계적(cosmopolitan)’ 구조를 부여하였다는 점이다. 오늘날 세계화를 하나의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시대로서 파악하려는 일반적 경향에 맞서 ■선언■은 그것이 불연속적인 역사 속의 한 단계가 아니라 애초부터 자본주의체제의 운동원리 속에 뿌리박고 있는 변화의 한 과정임을 역설한다.*주)

*주) ■■엘렌 메익신즈 우드, ■세계화, 포스트모더니티, 또 한 번의 새 시대■, ■선언 150년 이후■, 333쪽.■■

자신의 생산물의 판로를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욕구는 부르주아지를 전지구상으로 내몬다. 부르주아지는 도처에서 둥지를 틀어야 하며, 도처에서 정착하여야 하고, 도처에서 연계를 맺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세계시장의 개발을 통하여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 부르주아지는 공업의 발 밑에서 그 국민적 기반을 빼내가 버렸다. 오래 된 국민적 공업들은 파멸되었고, 또 나날이 파멸돼 가고 있다. 이 공업들은, 그 도입이 모든 문명 국민들에게 사활 문제가 되고 있는 새로운 공업들에 의해, 즉 더 이상 본토의 원료를 가공하지 않고 아주 멀리 떨어진 지방의 원료를 가공하는, 그리고 그 제품이 자국 안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대륙에서도 동시에 소비되는 공업들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 ......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도구들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진 교통을 통해 모든 국민들을, 가장 미개한 국민들까지도 문명 속으로 끌어들인다 ...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8~9; ■선집1■, 404].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형성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해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부르주아들의 야심은 평범하고 천박하기조차 하다. 하지만 이윤의 극대화를 향한 그들의 부단한 노력은 고갈되지 않는 추진력과 무한한 전망과 지평을 열어준다. 그들은 오직 한가지만을 생각하지만, 그들의 좁은 시야는 광대한 연계를 이끌고, 그들의 얄팍한 계산은 가장 심원한 변혁을 야기하고, 그들의 평화로운 경제활동은 마치 폭탄처럼 가장 원시적인 부족에서 막강한 소련에 이르는 전 인류사회를 휩쓴다. 맑스는 자본주의 발전이 야기한 인간의 고통과 희생에 전율했지만 그것이 열어준 전지구적 전망은 사회주의가 딛고서야 할 위대한 성취라고 언제나 믿었다. 그는 자본주의의 형성과 모순 그리고 해체가 세계사적인 차원의 것이라고 생각했고, 미래에 대한 그의 구상도 국민국가의 발전이 아니라 세계문명의 큰 흐름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요즈음 특히 우리 학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월러스틴 류의 자본주의에 대한 세계체제론적 시각이 맑스로부터 지나치게 나아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주)

*주) ■■유재건, ■마르크스와 월러스틴■, 한국서양사학회 편, ■근대 세계체제론의 역사적 이해■ (까치, 1996), 13~40쪽 참조.■■

마지막으로 흥미롭게도 ■선언■은 부르주아 세계의 천박성을 신랄하게 규탄하면서도 그 문화적 규준의 보편주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였다. 대중매체가 이제 막 탄생하던 시기의 맑스는 그것을 “세계문학”의 형성이라고 불렀다. 21세기의 문턱에 선 우리는 과감하게 그것을 “세계문화의 도래”라고 보고 싶다.*주) ■선언■은, 격렬한 정치혁명을 꿈꾸는 이 정치적 문건이 세계문화가 어떻게 세계시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는지를 천연덕스럽게 설명한다.

*주) ■■Marshall Berman, “Book Review about The Communist Manifesto: A Modern Edition with Introduction by Eric Hobsbawm,” The Nation, vol. 266, n. 17, pp. 4~14 참조.■■

국산품에 의해 충족되었던 낡은 욕구들 대신에 새로운 욕구들이 등장하는데, 이 새로운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아주 먼 나라와 토양의 생산물들이 필요하다. 낡은 지방적, 국민적 자급자족과 고립 대신에 국민들 상호간의 전면적 교류, 전면적 의존이 들어선다. 그리고 이는 물질적 생산에서 그렇듯 정신적 생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별 국민들의 정신적 창작물은 공동재산이 된다. 국민적 일면성과 제한성은 더욱 더 불가능하게 되고, 많은 국민적, 지방적 문학들로부터 세계문학이 형성된다[8~9]

이러한 세계문화의 전망은 정보통신혁명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중감정을 갖게 한다. 세계시장은 인간의 욕구를 무한정으로 확대시키고 심지어 전 인류의 ‘공동재산’으로서 문화의 개념을 완성하였다. 세계문화라는 표현 자체가 유럽중심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라면, 전 인류에게 공통의 언어를 제공해주는 ‘보편성’을 갖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선언■은 이를 구체적으로 “부르주아지 자신의 교양 요소들”[17]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곧 계몽사상의 문화를 뜻하는 것으로서,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의 가장 진보적인 부분과 “역사 운동 전체의 이론적 이해에 힘겹게 도달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의 일부”[18]를 노동계급에게 자신에게 대항하는 무기로서 제공해준다.

물론 ■선언■은 부르주아지의 역사적 역할에 대해 아무런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 다음의 구절은 베버(Max Weber)라면 합리화과정이요 ‘탈신비화/탈신성화’라고 불렀을 것을 ■선언■이 얼마나 냉혹하게 보고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선언■의 웅혼한 문체가 약여(躍如)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얻은 곳에서,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 관계들을 파괴하였다. 부르주아지는 타고난 상전들에 사람을 묶어 놓고 있던 잡다한 색깔의 봉건적 끈들을 무자비하게 끊어 버렸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노골적인 이해관계, 냉혹한 ‘현금 계산’말고는 아무런 끈도 남겨 놓지 않았다. 부르주아지는 신앙심 깊은 광신, 기사의 열광, 속물적 감상 같은 성스러운 외경을 이기적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 빠뜨려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개인의 존엄성을 교환가치로 용해시켜 버렸으며, 문서로 보장되고 정당하게 얻어진 수많은 자유들을 단 하나의 인정사정 없는 상업의 자유로 바꾸어 놓았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정치적 환상 때문에 은폐되어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 무미건조한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 부르주아지는 가족관계로부터 심금을 울리는 감상적인 껍데기를 벗겨버리고, 그것을 순전한 금전관계로 돌려놓았다[6~7; ■선집1■, 402~403. 강조는 원문의 것임].

근대 초만 하더라도 ‘물욕(物慾)’은 다른 ‘정욕’과 마찬가지로 억제되어야 할 도덕적 ‘죄악’에 불과했지만 부르주아지의 영역이 확대되고 경제행위에 대한 적극적 인식이 생겨나면서 ‘이해관계(interest)’라는 보다 중립적인 용어로 대체되었다.*주) ■선언■은 ‘이해관계’라는 용어의 문명적 의미, 즉 그것이 인간을,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부르주아들마저도 얼마나 비참하고 비정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부르주아 사회의 타락상은 개인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구조의 밑바닥에서 비롯한 것이다. ■선언■에는 자본주의문명에 대한 저자들의 도덕적 모멸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주) ■■Albert O. Hirschman, The Passions and the Interests: Political Arguments for Capitalism before Its Triumph (Princeton: Princeton Univ. Press, 1977) 참조.■■

■선언■을 읽은 우리의 감상은 오히려 저자들의 그것보다도 훨씬 착잡하고 복합적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근대에 ■선언■이 규정하는 부르주아혁명의 시도조차, 그렇게 진보적인 부르주아지의 일부조차 있었는가 하는 물음과 연결된다. 세기말의 전환에서 차라리 우리는 한국의 부르주아들에게 ‘제2의’ 송가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그렇지만’의 단서와 유보조항에 숨어 역사의 퇴행을 꿈꾸지 말고, 미국이라는 ‘대형(大兄)’에 의존하여 ‘호가호위(狐假虎威)’하지 말고 ‘차디찬 이해관계’에 충실하여 진정한 주체를 확립했으면 한다. 마치 150여년 전에 맑스가 자신의 조국에 부르주아혁명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듯이 우리 역시 ‘새로운’ 부르주아혁명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의 부르주아지는, 만약에 그렇게 부를 사회적 존재가 있다면, “하나의 국민도, 하나의 전국적 계급이해”도 형성하지 못한 채 지난 150년간의 역사의 무게를 왜 느끼지 못하는가?

사회주의의 전망과 경험

■선언■은 물론 부르주아지와 자본주의의 활기찬 ‘근접미래’만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는 미증유의 물질적 생산력을 만들어내어 새로운 사회의 토대를 마련하며, 사회주의는 이 생산력의 기반에 입각하지만 이윤추구와 자본축적의 논리를 극복하여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37]를 이룩할 것이었다.

■선언■은 부르주아지의 선의나 계급화해, 또는 역사의 도약을 믿었던 당대의 여타 사회주의와는 달리 오직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계급투쟁을 통해서만이 사적 소유의 철폐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공업의 진보는 경쟁을 통한 노동자들의 고립 대신에 연합체를 통한 노동자들의 혁명적 단결을 가져온다. 그리하여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부르주아지가 생산하며 생산물들을 취득하는 기초 자체가 부르주아지의 발 밑에서 무너져 간다. 부르주아지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매장인을 만들어낸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똑같이 불가피하다”[22; ■선집1■, 412].

많은 논자들이 ■선언■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심지어 홉스봄은 다음과 같이 실토한다. “천년기의 말에 우리가 대규모로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당시에는 먼 미래에 대한 ■선언■의 날카로운 전망에 감동 받을 것이 틀림없겠지만, 다른 예언의 실패 역시 마찬가지로 두드러진다.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 가운데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매장인을 만들어내지’ 않았음은 이제 분명하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똑같이 불가피함’은 입증되지 않았다.”*주) 자본주의가 대규모의 노동계급을 창출하고 노동계급운동이 종종 승리를 거두고 일부의 나라들이 한때 혁명 직전의 상황까지 내몰린 적이 있었음이 사실이지만, 노동계급은 ■선언■의 저자들이 기대했던 선진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주의를 이룩하지 못했다. 오늘날 심지어 많은 사회주의자들조차 새로운 사회의 전망에 대해 회의적이다.

*주) ■■Op. cit., p. 18.}}

돌이켜 보면 ■선언■이 노동계급의 정치적 발전에 대해 낙관적이었음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일방적이거나 단선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선언■은 노동계급을 결합시킴과 아울러 분열시키는 힘이 존재하며 그것이 효과적인 정치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조직적 노력과 교육이 필요함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언■은 현실적 행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정치적 선언’으로서 이러한 장애물의 존재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선언■은 “다른 계급들은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쇠퇴하고 몰락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대공업의 가장 고유한 산물이”라고 하여 계급의 양극화가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대세라고 천명하고 “오늘날 부르주아지에 대항하고 있는 모든 계급들 가운데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이”[18]라고 기탄 없이 선언하였다. 필자가 보기에 이는 ‘근접과거’의 혁명적 부르주아지 상을 자본주의적 미래에 투영한 결과이며, “프롤레타리아는 사적 소유 일반을 폐지함에 의해서만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주1)는 원리 역시 “관찰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철학적 추론의 결과이다.”*주2) 이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하나의 신화임을 뜻하며, ■선언■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힘이 되어 노동계급의 전투성을 고양하고 유지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말해준다.

*주1) ■■엥겔스, ■공산주의의 원칙들■, ■선집1■, 324쪽.■■

*주2) ■■Leszek Kolakowski, Main Currents of Marxism, vol. 1, The Founders (Oxford: oxford Univ. Press, 1978), p. 130: 홉스봄, 위의 글, 22~23쪽에서 재인용.■■

문제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에 대한 신뢰가 맑스주의의 핵심적인 교의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의 기본적인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사실에 대한 이론적 인식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해방을 통한 자본주의의 야만성의 극복이야말로 맑스 가르침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오늘날 맑스의 교리를, 사회적 총체의 상이한 수준을 하나의 틀로 묶는 전체사의 전망과 계급적 구분을 사회를 이해하는 유일한 준거로 보는 인식틀로 파악하여 하나의 학문방법론 내지 현실인식론으로 축소시키거나(물론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 여전히 대단한 성취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분석을 위한 정치경제학으로 국한시키는 ‘강단 맑스주의’의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데, 이는 혁명적 실천운동의 약화로 말미암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선언■의 정신을 훼손하는 처사이다. 이 점에서 노동자 계급정치와 사회운동의 결합을 통한 ■선언■의 정치적 유산의 복원이야말로 맑스주의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시급한, 아마도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하겠다.*주)

*주) ■■콜린 레이즈‧레오 파니치, ■‘공산주의당 선언’의 정치적 유산■, ■선언 150년 이후■, 26~68쪽.■■

사회주의의 도래에 관한 ■선언■의 낙관론은 또한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과 붕괴로 말미암아 타격을 입었다.*주) 사실 1917년의 러시아혁명은 맑스의 예언을 시험하는 이상적인 자리는 아니었다. 당시 러시아는 맑스가 사회주의혁명의 전제조건으로 생각했던 높은 수준의 생산력과 대규모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니지 못했다. 일부 지역이 꽤 발전한 산업과 매우 전투적인 산업노동자층을 거느리기는 했지만,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농업국가였고 많은 산업노동자들의 뿌리는 여전히 촌락공동체에 있었다. 러시아는 심지어 19세기 중엽의 영국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맑스가 말하는 ‘발전한 자본주의사회’에 미치지 못했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전제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지 못했다.

*주) ■■이채욱, ■소련의 사회주의 실험■, 배영수 편, ■서양사강의■ (한울, 1992), 449~485쪽; ■소련의 체제구축과정(1917~1941) - 그 양면성에 대한 일고찰■, ■서양사연구■ 14 (1993), 231~260쪽 참조.■■

더욱이 소련체제는 ■선언■이 말하는 “민주주의 쟁취”[35]와는 거리가 멀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20세기의 공산주의는 ■선언■의 저자들이 공산주의에 부여했던 의미와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 심지어 맑스는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기를 기대했을 때조차 진정한 사회주의혁명은 발달한 생산력과 성숙한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닌 영국이나 미국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겼다. 선진적인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생하는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보조를 맞출 때만이 러시아에서의 혁명이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는 맑스가 자본의 축적과 높은 수준의 생산력이 인간들의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요구하게 마련이어서 차라리 자본주의체제를 통해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고 인식했음을 말해준다. 그는 그런 종류의 발전이 민주주의적이나 사회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룩될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이 고통스런 과정은 사회주의의 과제가 아니라 그 전제조건인 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현존 사회주의’는 아마도 맑스가 예상했을 수준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생산력을 발전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문제는 이것이 그가 사회주의의 핵심이라고 보았던 민주적인 생산조직으로는 도저히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적 자본축적’을 위해 소농민들과 노동자들은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했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유사한 결과를 얻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련에 스탈린식 정당이 아니라 진정으로 민주적인 사회주의정당이 들어섰다면, 스탈린주의의 잔혹성은 피할 수 있었겠지만 자본의 축적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그 정당이 만약 사회주의의 존립을 위해 일정한 수준의 축적을 기해야 했다면 얼마 안되어 자신의 세력기반인 노동계급과 어려운 긴장관계에 빠져들었을 것이었다.

맑스는 러시아와 같은 저개발국가에서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혁명이 나타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더욱이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스탈린주의의 죄악이 저질러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사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사회주의혁명이 발달한 자본주의에서나 가능할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이 점에서 러시아혁명의 궁극적인 실패는 그의 예언을 입증한 것이라고 논증할 수 있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가 맑스가 오류를 범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자본주의에 대한 생존 가능한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의 호소력을 크게 약화시켰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전망의 부재야말로 세기말의 혼란을 부채질하는 핵심적인 요인인 것이다.

■선언■과 21세기의 우리

흔히 ■선언■을 평가할 때 일반적인 방식은 그의 예언이 잘못되었다던가, 이런 점들은 보지 못했다던가, 또는 그것을 해체하여 거기에서 옥석을 가린다던가 하는 따위이다. 예컨대 ■선언■이 제기한 절대빈곤설이나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성은 과학적 근거를 결여하였으며, 또 그것은 유럽중심주의에 매몰되고 민족문제와 민족주의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자연 및 환경문제를 인식하지 못했으며, ■선언■의 제1장과 제2장을 분리시켜 전자는 여전히 살아있는데 후자는 이미 죽었다는 식이다.*주) 이는 ■선언■이 특정 맥락의 산물이고, 분리시키기 어려운 하나의 유기적 총체이며, 이후의 역사과정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쳤음을 도외시한 결과이다. 그 비판들에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들은 ■선언■과 그 저자들에게 어떤 신통력을 부여하려는 혐의가 짙다. ■선언■에 어떤 망령을 뒤집어씌우기보다는 그 현실적 적실성을 살리는 일이 21세기를 코앞에 두고 그것에 접근하는 올바른 길이 아닐까 한다.

*주) ■■Wal Suchting, “What is Living and What is Dead in the Communist Manifesto?,” Mark Cowling (ed.), The Communist Manifesto: New Interpretations, pp. 157~165; Michael Lowy and Shane H. Mage, “Globalization and internationalism: how up-to-date is the ‘Communist’ Manifesto?,” Monthly Review 50/6 (Nov. 1998), pp. 1~16 참조.■■

■선언■ 가운데 세기말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특히 도움이 된다고 많은 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팽창에 관한 대목이다. ■선언■이 자본주의의 생명력을 과소평가한 것이 사실이지만, 오늘날 인구에 회자되는 ‘세계화’에 관한 묘사 가운데 150여년 전에 쓰여진 ■선언■보다 더 나은 것을 찾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것은 ‘세계화’가 자본주의가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빚어내는 자본주의화요 부르주아화인 동시에 유럽문명이 비유럽세계를 장악하는 서구화의 과정임을 잘 보여준다.

맑스의 생존시 ‘세계화’는 미증유의 사건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초기 단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적 자본주의’는 지구 전체를 뒤덮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자본주의의 돌이킬 수 없는 최종적인 승리라고 단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는 승리주의를 공허하게 만들고 있으며, 주류 경제학자들조차 ‘위기’를 말하고 일부는 해체와 붕괴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팽창을 심원하게 모순적인 과정으로 보는 맑스의 분석은 승리주의의 담론에 비해 훨씬 큰 설득력을 갖는다. 아울러 ■선언■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동원하는 구제책조차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진단한다. 심지어 ■선언■은 IMF사태 직후의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예감하고 있었던 듯 싶다.

... 현대 부르주아사회는, 주문을 외어 불러내었던 저승의 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마법사와 같다 ... 주기적으로 재발하며 점점 더 위협적으로 부르주아사회 전체의 존재를 문제삼는 상업공황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공황 때에는, 이전의 모든 시기에는 어불성설로 보였을 하나의 사회적 전염병이 돌발한다. 과잉생산이라는 전염병이 그것이다. 사회는 갑자기 순간적인 야만의 상태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 부르주아지는 무엇을 통해 이 공황들을 극복하는가? 한편으로는 대량의 생산력을 부득이 절멸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획득하고 옛 시장을 더욱 철저하게 착취함으로써.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서라고? 더 전면적이고 더 강력한 공황들을 준비하고, 그 공황들을 예방할 수단을 감소시킴으로써[11~12; ■선집1■, 405~406].

자본주의는 흔히 내적 위기를 새로운 시장과 식민지를 개척하여 극복하곤 했다. 오늘날 명실상부한 세계체제가 된 자본주의는 위기를 해소시켜줄 수 있는 여지가 급속히 축소되면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모순을 경험하고 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높은 이윤율의 확보가 어렵게된 자본은 ‘신자유주의적인’ 국가의 도움을 받아 국내외적인 양 차원에서 단순히 부의 불균등분배와 불평등의 확대에 의지하고 있다. 그것이 선진경제에서는 빈부의 양극화와 복지체제에 대한 공격으로, 세계적으로는 남북의 양극화와 절대적 빈곤의 심화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선언■이 말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적 팽창’은 이제 주기적인 위기가 아니라 정상상태로 자리잡은 듯 보인다.*주)


* 출전: Roberto P. Korzeniewicz and Timothy P. Moran, “World Economic Trends in the Distribution of Income, 1965~1992,”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02/4 (Jan. 1997): Harry Magdoff, “A note on the ‘Communist Manifesto’,” Monthly Review 50/1 (May 1998), p. 12에서 재인용.
위의 표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절대적 빈곤설이 일국적인 차원에서는 지탱되기 어려울지 몰라도 세계적인 수준에서는 여전히 타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19세기의 이래의 통계를 재구성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가 보편화됨에 따라 남북의 격차가 오히려 더욱 확대되었음을 입증해 줄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나종일 외 역, 창작과비평사, 1993), 119~147쪽 참조.■■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와 노동계급의 정치적 발전의 관계에 대해 맑스가 말한 것이 여전히 유효함을 입증해준다. ■선언■이 다소간 낙관적으로 예측하기는 했지만, 노동계급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전략적으로 자본주의의 핵심에 위치한 노동계급이야말로 ■선언■이 역설했듯이 자본주의를 변혁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회세력인 것이다. 아울러 세계경제는 계급형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던 여러 요인들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 또한 계급정치의 복원을 훨씬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작지 않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과 특히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사회복지제도를 공격하고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우리의 경우는 사회적 안전망조차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량실업을 야기하였다. ‘세계화’는 역설적이게도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고 투명하게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사회복지국가로부터의 퇴행인 동시에 통합된 세계시장에서 자본의 이윤율을 유지하고 높이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국가개입인 것이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자본의 요청이 증대함에 따라 국가가 다시금 계급투쟁의 주요한 장소가 되고 있다. 국가가 계급착취에 눈에 띠게 관여함에 따라 노동계급이 내적 분열을 넘어 조직화와 의식화를 진전시키고 계급투쟁이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선언■은 “가장 진보한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정치적 강령으로서 크게 10가지를 나열하였다[36~37].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현실화되어 있다. 아동노동의 폐지, 공공무상교육, 누진세 등은 일반화되었고, 일부의 수송제도는 공공부문이 되었으며, 상당수의 국가는 국립은행제를 채택하였다. ■선언■은 이러한 조치들이 “생산방식 전체의 변혁을 위해 불가피한 수단”[35]이 된다고 보았으나, 기실 그러한 강령이 구체화되었다고 해서 자본주의체제에 어떤 균열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노동계급운동이 오랫동안 치열한 투쟁을 통해 획득한 사회보장제와 국유화조치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자기파괴의 경향으로부터 구제해 주었다.*주) 그간 국유화나 공공부문의 관리는 ■선언■이 천명했던 “직접생산자에 의한 직접 통제”와 거의 관련이 없이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여 왔거니와,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제 대대적인 민영화를 추진하고 시장논리에 내맡길 수 없는 사회보장제와 같은 공공부문조차 사기업에게 넘기려고 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본주의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자기파괴로부터 보호해 주었던 제도와 장치들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주) ■■최갑수,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사회평론■ 창간호 (1991년 5월), 54~63쪽.■■

이러한 변화가 자본주의를 또 다른 ‘1929년’으로 몰고 갈는지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자본축적의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세계화된 ‘20대 80’의 양극화의 압력을 지탱할 수 있을는지 더욱 의문시되고 있다. 이러한 세기말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이 점에서 자본주의의 내부로부터 해체력을 발견해야 한다는 ■선언■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계급투쟁이야말로 변혁을 위한 주된 지렛대인 것이다.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혁명 앞에서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족쇄 말고는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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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맑스의 에피쿠로스 다시 읽기

* 진보평론 제 1호 (2003. 2. 14)  / 다시읽기/ 맑스와 에피쿠로스: 유물론에 반하는 유물론

진보평론  제1호
고병권(서울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1. 백 투 더 퓨처 - 데모크리투스와 에피쿠로스

그것은 비슷한 크기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필요하다면 팔을 날카로운 칼로 만들고, 어떤 때는 타일 바닥이 되어 위장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비슷한 덩치의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 눈치챘겠지만 영화 ■터미네이터2■에 나오는 액체금속 사이보그 T-2000에 대한 이야기다. 총량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원자들의 배열과 배치를 바꾸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괴물! 그 괴물은 미래에서 왔지만 또한 과거에서 온 것이기도 하다. Back To The Future!

인물이란 사상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그릇이지만 원자론의 창시와 유물론의 토대를 닦았던 과업은 아마도 데모크리투스(Democritus)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기원전 460년경 트라스의 아브데라에서 테어난 데모크리투스는 ‘세계가 원자들(atoms)과 허공(void)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선언한다.

그로부터 백여년 뒤 원자론은 다시 에피쿠로스(Epicurus)라는 유물론자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데모크리투스에게 부여했던 영광을 에피쿠로스에게 나누어주는 것에 인색했다. 사람들은 그를 단순한 쾌락주의자로 몰아세웠으며 학자들은 그가 데모크리투스와 공유하고 있는 지반을 표절이라고 불렀고, 그가 새롭게 내놓은 학설들은 위대함에 대한 변덕과 타락이라고 비난했다. 그도 “세계는 원자들과 허공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지만 누가 알았을까, 그의 말이 유물론의 전통에서 하나의 커다란 지진이 될 것임을....

비트는 힘을 만나는 것은 역사에겐 큰 행운이다. 맑스가 1840년부터 1841년 사이에 쓴 박사 학위 논문 ■데모크리투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주)(이하 ■논문■)에서 그동안 묻혀 왔던 에피쿠로스 철학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고 원자론의 첫 발설자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유물론의 영광이 에피쿠로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했을 때 지진의 의미가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주) {{K. Marx, "Differenz der demokritischen und epikureischen Naturphilosophie", Marx Engels Werke, Ergänzungsband, Schriften bis 1844, (Berlin, 1981). 아래에서 인용할 경우에 (논문: 쪽수) 형식으로 본문에 표기한다.}}

맑스가 에피쿠로스 연구를 시작한 것은 1839년 초로 보인다. 그가 논문을 쓰기 전에 작성한 ■에피쿠로스 철학에 관한 노트■*주)(이하 ■노트■)는 모두 7권으로 되어있는데 이 ■노트■를 통해 우리는 에피쿠로스 철학에 대한 연구동기와 과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에 대한 연구 동기는 직간접적으로 헤겔 철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에피쿠로스 학파나 스토아 학파 등이 속했던 이른바 헬레니즘 시대 철학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철학사에서 하나의 ‘정신적 시민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논문: 267), 아니면 저물어 가는 고대철학의 끄트머리로 봐야할 지에 대해서 헤겔은 분명히 전자의 입장에 섰던 것이다. 맑스는 이 시기에 헤겔의 ■논리학■과 ■엔찌클로페디■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 ■■K. Marx, “Epikuireische Philosophie”, Marx Engels Werke, Ergänzungsband, Schriften bis 1844 (Berlin, 1981), pp. 16-255. 아래서 인용할 경우 (노트 권수: 쪽수) 형식으로 표시한다.■■

그러나 곧바로 헤겔은 에피쿠로스의 인식론을 진부한 것으로 비판하고, 에피쿠로스가 우연성을 주도적인 원리로 만듦으로서 모든 법칙의 필연성과 세계의 목적을 부정했다고 비판한다*주). 헤겔에게 한 사상의 특이성이란 단지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반(反)’에 불과하다. 그는 자신이 딛을 한 계단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뿐이다. 반면에 맑스는 에피쿠로스 철학의 독자성 뿐 아니라 그 위대성을 부각시켰는데, 이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주) ■■G.W.F. Hegel, Vorlesungen über die Geschichte der Philosophie II. Hegel-Werke Bd. 19, (Frankfurt 1971), Philosophie des Epikur: pp. 297-335 (김진, 1990: 57에서 재인용).■■

그 비밀은 아마도 맑스의 논문에서 에피쿠로스의 철학에 대한 가장 탁월한 주석가로 평가되고, ■노트■ 4권과 6권*주1)에서 자세히 인용되고 있는 루크레티우스(Lucretius)에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루크레티우스 저작을 접하면서 맑스는 에피쿠로스에 대한 그의 유물론적 해석에 매료된 것 같다.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 De rerum natura■는 맑스에게 유물론의 전통을 통해 헤겔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급진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힘을 제공했다. 맑스가 헤겔의 ■엔찌클로페디■에서 작성한 ■자연철학■에 대한 목차의 세 버전(version)은 이러한 변형을 시사해준다. 기계학, 물리학, 유기체학에 대해 ■노트■ 6권에서 언급되고 있는 목차들은 버전이 올라갈수록 변형이 심해져서 마지막 버전의 경우에는 사실상 헤겔의 것과는 완전히 상이한 것이 된다*주2).

*주1) ■■김진에 따르면 발견된 노트들 중 다섯 권의 표지에는 분명하게 1, 2, 3, 4, 7 권이 표기 되어 있었다. 그런데 MEGA 제1판의 편집자가 베를린에 있는 SED 문고에서 발견된 표지 없는 원고를 정리하면서 임의로 순서를 정했고, 이후 출판물이 이것을 따르면서 5권과 6권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의 연구를 참조하면 이 글에서 인용되는 노트 6권은 실제로는 5권이 되는 셈이지만, 일단은 MEW에 맞추어 그냥 6권으로 표기했다. 영어판 전집도(Collected Works, Vol. 1. (Progress 1975)) 역시 MEW의 편집에 따랐다. 자세한 내용은 김진(1990: 52) 참조.■■

*주2) ■■이 목차들은 맑스가 헤겔의 ■논리학■을 공부했다는 근거가 되지만(김진, 앞의 책, 55쪽), 사실상 영어판 편집자가 밝히고 있듯이(Collected Works, vol 1.(Prgress, 1975), p.756) 헤겔 철학과는 완전히 상이한 모습으로 변형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맑스가 에피쿠로스 사상의 위대함을 끌어낸 것은 헤겔이 그토록 싫어했던 유물론의 전통 속에서라고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헤겔 변증법에 빚지지 않고서도 유물론 전통 안에서, 바로 데모크리투스와의 비교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빛을 발한다. 헤겔에 대한 맑스의 급진적 비판이 가능했던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채권자 앞에서 채무자는 날카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논문■ 제1부에서 맑스는 데모크리투스와 에피쿠로스 철학을 동일시했을 때의 난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비록 ■논문■의 제1부의 4장과 5장이 유실되기는 했지만, 3장까지 그는 두 철학자가 같은 지식을 같은 방식으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진리와 인간지식의 확실성, 대상의 진리에 대한 이론적 판단, 사유와 존재의 상호 관계 등에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특히 데모크리투스의 모순적 입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모크리투스는 한편으로는 감각적인 현상(나타남, Erscheinung)만이 진정한 대상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감각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그것이 주관적인 가상(Schein)일 뿐이라고 본다. 유물론자로서 초월성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또한 감각에도 확실성의 믿음을 주기는 어려웠던 탓이다. 그렇다보니 진리에 대해 매우 불만족스런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유물론자로서 경험적 관찰의 중요성을 인정해서 세계 곳곳을 방랑했지만 그가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지식은 내용이 없고 그에게 내용을 주는 지식에는 진리성이 없었다”(논문: 273). 그럼에도 그에게 필연성은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중심적인 범주였다.

반면에 에피쿠로스는 감각들을 참된 것의 고지자라고 주장하고 감각에 대항하는 것이 무모한 일이라고 비판한다(Epicurus, 1998: 18). 또 진리란 어디 먼 곳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곁에, 바로 그의 정원에 있는 것이며, 삶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필연성에 대한 어떤 주장도 거부했는데, 그가 볼 때 원인은 여럿일 수 있으며 성급한 판단은 독단을 불러 올 뿐이었다.

맑스는 이러한 대조적인 태도가 두 사람의 철학을 더 이상 동일하게 보기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남아 있는 제1부는 단지 차이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제1부의 ‘일반적 차이’라는 망원경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제2부의 ‘세부적 차이’라는 현미경을 통해서만이 놀랍고 때로는 당혹스러운 사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2. 자유의 정신 -클리나멘

■논문■ 제2부의 첫 번째 장을 장식하는 것은 원자들의 직선으로부터의 편위(declination), 즉 클리나멘(clinamen)이다. 데모크리투스는 원자들의 허공에서의 운동을 두가지로 기술하였다. 우선은 수직 낙하하는 직선운동이며, 두 번째는 원자들간의 충돌에 따른 직선 운동이다. 그런데 에피쿠로스는 그 중간에 직선으로부터 벗어나는 편위 운동을 집어넣었다. 클리나멘이란 접선으로부터 이탈하는 곡선의 미분각이다. 원자가 직선으로부터 갑자기 벗어난다는 편위 운동은 당시 사람들이나 이후 주석가들에게 곧잘 농담으로 받아들여졌다(논문: 278).

그러나 데모크리투스의 말대로 원자들이 중력을 받아 평행한 수직 낙하만 한다면 그것들은 어떻게 충돌할 수 있을까? 다소 애정어린 사람들은 에피쿠로스가 한편으로는 원자들의 충돌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필연과 운명에 맞서는 자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편위 운동을 전제했다고 생각했다(논문: 280). 그러나 루크레티우스는 ‘편위 없이는 원자들이 만날 수 없기 때문에 편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편위 운동은 자유에 대한 설명으로 부적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것은 충돌을 설명하기 위해 오히려 강제된 운동이며 차라리 결정론적 입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맑스는 루크레티우스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듯이 고려될 문제는 편위 운동 자체라고 주장했다(논문: 280). 편위 운동은 원자들 간의 충돌 이전에 원리로서 정립되며, 그 원리에 따라서 원자들의 충돌, 바로 세계의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편위 운동은 어쩌다 일어나는 우연적 운동*주), 혹은 이차적이고 부차적인 운동이 아니다. 맑스는 편위 운동이야말로 근본적인 원리이며 에피쿠로스 물리학 전체를 관통하는 법칙이라고 주장한다(논문: 282).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투스가 말한 원자들의 운동에 또 다른 운동을 하나 첨가시킨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리 자체를 바꾼 것이다.

*주) ■■우리는 편위 운동, 즉 클리나멘이 ‘돌발적’이라고 해서 단순히 우연(contingency)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단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지각할 수 있는 시간보다도 더 짧은 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G. Deleuze, 1990a: 270) 맑스가 “가능한 최소의 공간과 시간에서 일어난다”(논문: 282)고 말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우연이라기 보다는 규정할 수 없음(unbestimmt, unassignable)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이제 세계는 원자들의 클리나멘과 그로 인한 마주침으로 생겨난다. 마주침의 유물론!(Althusser, 1996) 세계에 대한 제1원리와 목적은 거부되고, 기원에 대한 물음은 척결된다(Althusser: 41). 역사의 시간을 목적을 위해 꿰맞추는 것은 관념론의 몫이다. 관념론자는 역사의 출발역에서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을 다 꿰고 있는, 다시 말해 역사의 기원과 목적을 아는 사람이다. 반면 유물론자는 달리는 기차에 올라탄 사람으로 어떤 목적도 알지 못하며 오히려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사건들에 끼여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백승욱, 1995: 117-118).

영원한 것은 없다. 맑스는 에피쿠로스 철학으로부터 ‘영원한 것의 죽음’(노트 4권: 180)*주)을 끌어낸다. 그것이 마주침에 의해서 생겨났다면 그것은 다른 마주침, 다른 충돌에 의해서 깨어진다(Lucretius, 1997: I. 580-583 ff).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한 어떤 세계, 어떤 국가의 법들도 영원하지 못하다. ‘패는 다시 분배되고 주사위가 던져질 날이 올 것이다’(Althusser: 47).

*주) ■■이 표현은 맑스가 이념이나 범주를 영속적으로 파악하는 형이상학적 방법을 비판하면서 ■철학의 빈곤■에서 다시 사용한다. 불변하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생성’한다. 불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불변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 바로 “불사(不死)의 사(死)(mors immortalis)”. (K. Marx, 1988a: 115).}}

결정론을 비웃으며 주사위를 던지는 거대한 자유정신*주)! 맑스가 ■논문■의 1841년 서문에서 말한 ‘제우스에 맞서는 프로메테우스’의 정신!(논문: 263) “원자의 저항과 고집”, “원자의 가슴에 있는 어떤 것”(노트 4권: 170), ‘원자들의 영혼’(노트4권:168), 이 모든 것들이 클리나멘이다.

*주) ■■니체는 고정불변의 딱딱한 원자를 찾아나서는 원자론자들의 태도를 조롱하면서(1994a: 376-377, 1994b: 207), 결정론에 맞서는 자유정신을 강조했지만(1995:301), 주사위 놀이와 자유정신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이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혼이라니! 그는 다시 관념론으로 돌아서는가? 영혼의 물질성을 믿지 않는 조급한 유물론자들에게는 충분히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에 대한 해명은 뒤에서 하기로 하고 우선적으로 오해를 피하자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 영혼을 스피노자가 말하는 일종의 코나투스(conatus)라고 이해해야 한다(Deleuze, 1990a: 269). 코나투스란 개체가 자신을 실존하게 한 원인이 더 큰 외부적 원인에 의해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말한다(Spinoza, 1990: 139-140).

그것은 ‘가슴 속’에 있는 것, 바로 내재하는 것이며, 초월적으로 부과되는 것에 저항한다. 그것은 총체화를 거부하는 특이적(singular) 본질이다(Althusser: 56). 전체(Whole), 존재(Being), 일자(the One)와의 대결!(Deleuze: 267) 맑스는 데모크리투스가 그것의 운동을 강제된 운동으로 변화시켜 맹목적인 필연성으로 바꾸었다고 비판하고, 에피쿠로스만이 그 반발의 본질을 알았다고 주장한다(논문: 284). 총체나 구조가 자신의 우위를 확립하는 것은 마주침이 응고의 과정에 접어들었을 때 뿐이다. 응고하면 세계는 존재의 왕국에 들어서며, 조건에 따라 각각의 특성을 부여받는 존재들로 구성된다(Althusser: 76~77).

그러나 응고는 영원하지 않으며 원자들은 다시 클리나멘과 그로 인한 충돌로 허공으로 흩어지고 다른 관계 안에서 모이게 된다. 사태를 안정화 시켰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겐 항상 우발적으로, 하지만 원자들의 역학 상 지극히 당연하게도 사건(événement)이 발생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모든 의미들은 다시 부여된다. 단순히 돈 덩어리를 많이 가졌던 중세의 상인과 자본가가 다르며, 중세의 제화공과 근대 자본주의에서의 제화공이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원자들은 계속 진동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시지 않는 의문이 있다. 클리나멘의 운동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원자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비틀 수 있을까? 영혼의 힘으로? 맑스는 원자들이 운동을 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점이 아니라 선이라고 말한다(논문: 280). 점은 모든 직선 안에서 지양된다. 개체의 성격은 상실되며 점은 선의 방정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여기서 원자들은 그 자체로 실존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원자는 곧바로 직선을 부정하면서 편위 운동을 하게 된다. 직선은 개별 원자에 대한 부정이며, 편위는 직선에 대한 부정인 셈이다.

우리가 이 진술을 변증법적으로만 이해한다면 논리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의미는 여전히 모호하다. 변증법은 사건을 자주 신비화시킨다!*주) 차라리 우리는 맑스의 주장으로부터 원자 운동의 역학이 개별 원자 자체로부터 나오지 않으며, 클리나멘의 부드러운 곡선 운동은 직선 운동의 역학에서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세르(Serres)가 루크레티우스에 관한 책을 쓰면서 새로운 역학의 탄생을 말했을 때, 우리는 클리나멘의 운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역학과 만난다(Serres, 1977).

*주) ■■베르그송(Bergson)은 변증법을 ‘헐렁이는 양복’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모두의 몸이 다 들어가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옷”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의 특이성(singularity)도 포착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항상 모호하다. (Deleuze, 1996a: 58).}}


3. 원자들의 폭포: 고체에서 액체와 기체로

세르는 클리나멘을 불합리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네 가지 이유를 든다(Serres: 9-11). 첫째는 논리적 불합리성으로, 클리나멘이 모든 사물의 존재에 앞서서 자기 원인으로 정당화 없이 도입되었다는 점, 둘째는 기하학적 불합리성으로, 루크레티우스의 정의는 (유클리드 기하학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며, 셋째는 역학적(mécanique) 불합리성으로, 외부적 힘이 없다면 운동이 계속된다는 관성의 원리와 충돌하는 것이고, 넷째로는 물리적 불합리성으로, 실험을 통해서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자들의 폭포(cataracte atomique)가 만들어지면 사태는 돌변한다. 루크레티우스는 ‘원자(그 자체)를 제외하고 극복할 수 없는 고체성이란 없다’고 말했다(Serres, 1977: 12). 폭포가 되면 원자는 흐르는 유체(fluid)가 된다. 문제는 ‘흐름’으로 돌변하고 단단한 고체 역학은 유체 역학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 딱딱한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교통의 ‘흐름’을 보자. 개별 자동차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스피노자가 말하듯이 움직임(move)과 정지(rest), 빠름과 느림(Spinoza, 1990: 82)의 흐름일 뿐이다. 신호등은 그 흐름에 대한 미분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원자’를 다루는 역학이 아니라 ‘흐름’ 자체를 다루는 역학이 필요한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원자들의 비’, ‘원자들의 폭포’로부터 맑스가 말하는 ‘노동자들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유체역학’이 작동한다. 유체역학 모델은 아르키메데스에서 토리첼리(Torricelli)에 이르기까지 정통 과학사에서는 배제되고 변방으로 계속 밀려나왔다.(Serres, 1977: 11-12). 그것은 이 모델이 안정적인 것, 영원한 것, 동일한 것, 불변적인 것에 맞서는 생성과 이질성의 모델이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Deleuze and Guattari, 1987: 361).

유체 역학은 매끄러운 공간에 대한 흐름을 다룬다. 고체 역학에서 지배적인 것이 점이라면 유체 역학에서 지배적인 것은 흐름이다. 전자에서 선은 두 점을 사이를 잇는 것에 불과하지만, 후자에서 점은 흐르는 선에 종속된다(Deleuze and Guattari: 478). 맑스가 말하는 점과 선의 역전, 직선과 곡선의 역전과 대립!

국가는 이러한 ‘흐름’을 어떤 식으로든 포획하고 그것을 계산가능한 형태로 바꾸어야 했다. 모든 움직임들이 하나의 정교한 척도로 포착되어야 했다. ‘평행하게 내리는 비는 모두 지구의 중심을 향해서만 떨어져야 했다’. 로마가 수로를 만들면서 사용한 방식, 바로 ‘도관과 파이프, 둑을 이용해서 흐름들을 포획하고, 유체를 고체 안에 가두는’ 방식이 국가에게는 필요했다(Deleuze and Guattari: 363).

농촌에서 발생한 노동력의 흐름을 어떻게 도시의 공장으로 안정적으로 흐르게 할 수 있을까? ‘노동력의 흐름의 운동에 대한 조절, 그 흐름을 수로와 도관들로 분배하는 것’. 때로는 강제적인 인력 동원으로, 때로는 유기체적인 회사를 형성해서 국가는 흐름을 통제하였다(Deleuze and Guattari: 368). 맑스의 ■자본론■ 1권의 ‘시초축적에 관한 장’들 곳곳에 흐름들의 분배가 나타난다(Marx, 1994: 897 이하). 어디 노동력의 흐름 뿐이겠는가, 화폐의 흐름, 정보의 흐름, 에너지의 흐름, 그리고 근본적으로 욕망의 흐름!

그러나 흐름은 항상 수도관을 뚫고 새기 시작하며, 새로운 소용돌이를 만들기 시작한다*주). 프리고진(Prigogine)의 비선형 열역학에 대한 연구들은 평형에 대한 작은 교란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그것이 결국에 어떻게 새로운 질서의 창출로 나가는지를 보여준다(Prigogine, 1994, 1996). 클리나멘은 필연성의 쉐마(schéma), 영원한 것, 불변의 것을 깨고 난류(turbulence)를 들여온다.

*주) ■■에피쿠로스는 천체들, 세계가 소용돌이로부터 생겨났다고 말한다(Epicurus: 84).}}

맑스가 그의 ■노트■에서 바다에 새로운 아테네를 건설하자는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이야기를 높이 평가했던 것은 자유를 위한 투쟁과 해양의 모델 사이의 어떤 관계를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노트 6권: 492). 아테네가 파괴의 위협에 처했을 때 테미스토클레스의 반대자들은 군사력을 축소하고, 그것을 분할함으로써 평화협정을 맺어 손실을 보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테미스토클레스는 파괴의 위협에 있는 아테네를 버리고 바다에 새 요소로 새로운 아테네를 건설하자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맑스는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s),(하나의 난류, 새로운 소용돌이) 이후에는 (그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결정하는) ‘철의 시간’이 온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것이 거대한 투쟁으로 특징지워질 때 그 시간은 행복하게 되며, 그렇지 못할 때 비통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유를 향한 거대한 투쟁은 왜 바다를 향했을까? 비릴리오(Virilio)는 ■속도와 정치Vitesse et politique■에서 프롤레타리의 해양적 기원과 그 모델을 보여주었다(Deleuze, 1996b: 158). 해양은 대지의 고체성과 대립한다. “자신을 대지 위에 붙박는 탯줄을 끊는다면 프롤레타리아트 또는 노동자는 도처에서 한 사회 안에 작동하는 경제적이고 상업적인 이해의 본질을 드러내고 그것을 변형시킬 수 있는 조건을 재구성할 수 있다”(Deleuze, 1996b: 159).

액체가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들뢰즈는 소련의 유물론자 베르토프(Vertov)의 영화에서 “에피쿠로스적 유물론의 클리나멘”을 발견한다(Deleuze, 1996b: 166). 베르토프는 액체적 이미지의 제약마저 넘어서며, 그것을 기체적 지각으로 발전시킨다. 분자들, 원자들은 자유를 획득하면서 발생기호가 된다. 문자소(gramme), 기억 흔적소(engramme), 사진소(photogramme). 그것은 단순한 운동의 선을 넘어서 ‘진동’들을 추출해낸다(Deleuze, 1996b:169). 인상주의 화가 쇠라의 점묘화를 보라. 원자들은 화소가 되어 대상들을 만들어내고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자유로워진 유체들의 흐름! 그런데 맑스는 ■논문■에서 클리나멘을 설명하면서 왜 ‘원자들의 영혼’, 혹은 ‘자기 의식’, ‘주체성’ 등 관념론적인 단어들을 사용해야만 했을까? 그것은 바로 에피쿠로스 물리학이 정통 과학의 역사에서 밀려나면서 과학밖에 서 있는 과학의 지위를 차지했던 것과 무관치 않다. “우리는 차라리 (에피쿠로스의 사실들이 속한) 자연을 자연의 밖, 즉 영혼과 주체 안에 위치시킨다”. 그러나 “물론 그 반대를 긍정하는 것이 유물론을 기초짓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자들은 영혼들이 아니며, 영혼 그 자체가 원자적이기 때문이다. 클리나멘에 대한 비물리적 해석은 (오히려) 관념론적 본질이다”.(Serres, 1977: 141)
세계가 원자들과 허공으로 이루어진 이상 무(無, 허공)라고 말할 수 없다면 우리는 영혼 역시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제 유물론자들은 자유롭게 영혼과 의식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반면 관념론자들은 영혼에 대해 비물질적으로, 비물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는 존재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이를 더욱 분명히 할 수 있다.


4. 영원성을 깨뜨리는 영원성

니체는 원자론의 시도가 ‘고정불변의 원인’을 찾으려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라고 비난했지만(Nietzsche, 1994: 376-377), 맑스는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통해서 고정불변하는 것의 죽음, ‘영원한 것의 죽음’을 깨달았다(노트 4권: 478, 논문: 62). 사실 맑스의 저서들은 이후에도 일관되게 형이상학과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형이상학은 세계를 이분하고 ‘이 세계(차안, this world)’의 변화와 유동성에 대비되는 영원불변성의 세계(피안, that world)에 진리를 위치시킨다. 형이상학자들은 영원불변성의 세계만이 참된 세계, 즉 실재계(real world)라 부르고 그 세계에 비추어 이 세계를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우리는 형이상학자들이 현실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이 세계’를 평가절하는 하는 방식이 곧 그들이 ‘이 세계’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이 세계’는 ‘저 세계’를 닮도록 노력해야 하며 현실은 논리학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보편적 국가에 대한 형이상학적 환상을 비판한 ■헤겔법철학비판■과 피안적 진리를 차안의 진리로 세우고자 하는 그 책의 ■서문■, 정치경제학의 형이상학을 비판한 ■철학의 빈곤■, ‘모든 단단한 것들의 죽음’을 말한 ■공산당 선언■ 등 형이상학은 맑스 저작들의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원자들’은 어떻게 형이상학의 비판을 벗어날 수 있을까? 원자들은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영원한 것이 아니던가?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원자들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가 원자들로, 그것도 죽지 않는 원자들로 구성되었다는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

맑스의 ■노트■에 인용된 루크레티우스의 글은 세 가지의 영원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들은 질료를 이루는 원자들(atoms)이고, 그것이 움직이는 빈공간(void)이고, 그 두 가지가 이루는 우주의 총합이다(노트 6권: 490, Lucretius: II권, 352 f). 이 세 가지의 ‘영원성’이 어떻게 ‘영원성’을 끝장 낼 수 있는가? 이 모순적 과제는 가능한 것일까?
우선 우리는 적어도 두 개의 상이한 ‘영원성’과 대면하고 있다. 형이상학의 영원성은 ‘고정불변한 것’의 영원불멸성이지만, 에피쿠로스에게서 영원성은 ‘변화’의 영원성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일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어떤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니체에게 그것이 ‘힘’이었다면*주) 에피쿠로스에게는 ‘원자’였다(Epicurus: 55).

*주) ■■니체의 친구였던 도이센(Paul Deussen)은 베단타 체제를 언급하면서 “세계가 분해되더라도 힘은 남아서 다른 세계를 형성한다”고 말하였다. 이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고병권, 1997: 85). 에피쿠로스가 더 이상 분해되지 않은 요소로 원자를 추론하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거대한 원자들의 바다! 그것이 차라리 세계의 바른 모습일 것이다. “세계란 증대하는 일도 없으며 감소하는 일도 없고,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변전하기만 하는, ...자기 스스로의 한계 외에는 에워싸는 것이 없는, ... 여기에 집적되는가 싶으면 저기서 감소하고, 스스로의 속으로 광포하게 밀려들고 넘쳐드는 대양”(Nietzsche, 1994a: 606-607).

원자들의 강렬도(intensity)가 하나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형상이 생겨나고 그것이 다시 다른 공간으로 흩어지면 소멸한다. 그것이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한 영원성은 불가능하다. 영원하고자 한다면 원자로 구성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러나 원자로 구성되지 않는 어떤 것도 실존할 수 없다. 원자들의 영원성은 변화의 영원성으로 이어질 뿐이다.

원자들의 영원성을 목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감각이야말로 원자들의 구성을 통해 가능한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원자를 감각할 수 있겠는가? 원자들 자체는 실존(existence)하지 않으며 오히려 실존이 원자들로 구성된다. 원자는 실존을 구성하는 요소(elements)다.

맑스 ■논문■의 제2부 3장은 이 문제에 관해 중요한 언급들을 하고 있다. 원자들의 ‘원리(archai)’와 ‘요소(stoicheia)’를 다루면서 맑스는 원자가 ‘분할불가능한 <요소>’지만 그것이 어떻게 초월적인 요소가 아닐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우선 그는 에피쿠로스가 퓌토클레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 말을 인용한다. 거기서 에피쿠로스는 “모든 것들은 신체(body)이거나 허공(void)이다. 그리고 분할불가능한 요소들이 있다”(논문: 290, Epicurus: 90)고 말했다. 마치 ‘분할불가능한 요소’라고 이름이 붙은 제2종의 원자 혹은 요소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문장에 대해서 맑스는 우리가 그렇게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맑스는 우선 신체와 허공은 ‘신체적인 것(körperlich, corporeal)’과 ‘비신체적인 것(leeren, noncorporeal)’의 구별이며, 신체적인 것은 ‘복합체(compound)’와 분할불가능하고 변하지 않는 ‘요소들(elements)’로 나누어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논문: 291). 실존하는 것은 사실상 ‘원자들의 복합체’라고 이해할 수 있다*주).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것은 ‘원자들의 복합체’들이다. 원자들과 허공의 단순한 결정을 통해 ‘표현(expression)’되는 것이 ‘원리(Atomoi archai)’다.

*주) ■■에피쿠로스가 <헤로도토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물체들은 복합체와 구성요소로 나뉘며, 그 구성요소는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으며, 변형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Epicurus, 1997: 55)은 이 구성요소들이 바로 원자임을 말한 것이라고 하겠다.■■

맑스의 설명은 ‘표현’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실존을 설명하는 방식을 통해서 명료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원자’에 해당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실존’을 구성하는 ‘단순체(simple body)’라고 할 수 있다(Spinoza: 84, Deleuze, 1990b: 207). 단순체란 실존을 구성하는 ‘요소’다. 어떤 양태도 다른 양태와의 관계없이 실존할 수는 없다. 이 말은 한 양태가 실존을 구성함에 있어 다른 양태와 관련된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실존이 ‘매우 많은 수(a great number)’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실존이란 부분들(요소들)의 무한한 양으로 이루어진 조성체(composition)*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자체로는 복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는 단순체(요소)는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 실존하는 원자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주) ■■신체가 여러 요소로 구성된 복합체이고 죽으면 분해될 수 있듯이 실존하는 영혼 역시 복합체이다. 우리가 다른 개념과 관계 맺지 않는 어떤 한 개념도 떠올릴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실존은 ‘매우 많은 수’의 단순체들이 어떤 관계(relation) 안에 들어가 복합체를 형성할 때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는 실존을 관계를 통해서 말할 수 있는데, 이때 관계는 어떤 본질(essence)에 상응하게 된다(correspond). 보통은 본질이 실존하려는 경향이 있다거나 실존의 원인이라고 파악하지만 스피노자의 생각은 다르다. 본질은 실존을 결정하지 않는다. 만약 본질이 실존을 결정한다면 실존의 파괴에 대해서도 본질은 그 운명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실존은 다른 실존과의 관계를 통해서 생겨나며 운동한다. 단순체들이 운동하면서 새로운 관계 속에 들어가면 새로운 실존이 나타나며, 그때의 새로운 관계는 어떤 새로운 본질에 상응한다(Deleuze, 1990b: 208-210).

만약 어떤 운동의 결과로 하나의 관계가 깨지고 다른 관계가 만들어지면, 다시 말해서 단순체들이 다른 관계 속으로 들어가면 이제 새로운 관계는 새로운 본질에 상응한다. ■헤겔법철학비판■에서 맑스는 헤겔이 실존의 차이와 본질의 차이를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변질되면 다른 본질에 상응한다’고 말했다(Marx, 1988b: 139). 중세까지 존재했던 ‘농민’과 근대의 ‘공민으로서의 농민’은 전혀 다른 본질에 상응한다. 중세까지 존재했던 농민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존을 구성하는 관계가 바뀌어 더 이상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제는 다른 본질이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본질’의 표현은 전적으로 ‘이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원자들의 운동의 결과에 달려 있다. 저 세계에 있는 어떤 것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것이 이 원자들의 조성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그것 또한 원자여야 한다. 원자만이 원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신이 영원하고자 한다면 원자로 구성되는 것을 피해야한다. 그러나 원자로 구성되는 것을 피한다는 것은 이 세계로부터 완전히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은 이 세계에서 완전히 추방된다(노트 4권: 176-178). 영원한 것들이여, 원자라는 괴물을 피하라!


5. 존재(Being)에서 생성(Becoming)으로

이제 우리는 맑스가 ‘원자들의 질(quality)’을 논하면서 그것을 원자들의 집합체(conglomeration)에 부여하고, 원자들의 조성(composition)과 관계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원자들이 감각적 공간에서 즉각적 차이를 보일 수 있고 차이를 갖기 위해서는 독특한 질을 가져야 하지만, 질이나 특성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는 ‘원자는 변하지 않는다’는 원자론의 주장과 충돌한다. 데모크리투스가 이 모순에 대한 별도의 고려 없이 현상의 세계에서 드러난 차이만을 가지고 조밀함(density), 형태(shape), 배열(arrangement)로 원자의 질을 규정한 데 비해 에피쿠로스는 질이 갖는 모순적 성격으로 인해 원자에 어떤 특성을 부여하자마자 원자의 개념에 의해 부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원자 자체의 질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에피쿠로스는 우선 위치(position)와 배열처럼 원자들 ‘사이’에서 논할 수 있는 특성을 제외하고 크기(size), 형태, 무게(weight)를 특성으로 들었다. 그는 특히 무게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무게는 원자들이 서로를 당기고 밀쳐내는 것, 바로 조성체를 구성하고 해체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성체, 복합체를 통해서만 원자의 질들이 갖는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개별 원자 하나에 무게가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또한 다른 원자들과의 관계(중력)를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사물들에 크기가 있기 위해서는 원자 하나에 크기가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원자‘들’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감각 기관(혹은 기타 도구)을 통해서 알 수 있을 정도로 커서는 안 된다는 것, 몇 가지 형태를 가질 수 있으나 그 형태를 통해서 바꾸어낼 수 있는 모양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등의 문제는 원자들의 ‘매우 많은 수’가 모여 무게를 형성하고 크기를 가지며, 모여드는 양상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가질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성이 변하면 원자들 자체가 변화하지 않으면서 조성체의 질들은 변화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조성체의 형성에서 허공(void)은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영향력은 원자와 원자 사이에서 행사된다. 이는 ‘존재하지 않은 것(無)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에피쿠로스의 선언(Epicurus: 54)과도 통한다. 허공에서는 무거운 것이나 가벼운 것 모두 같은 속도록 움직인다. 허공이란 아무 힘도 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힘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허공이 아니라 원자다.
이 점에서 영혼은 명백히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허공은 영향을 주지도 받지도 않으며, 다만 다른 물체가 자신을 통과하도록 허락할 뿐이다. 영혼이 비물질적이라는 것은 헛소리다. 영혼이 비물질적이라면 어떤 영향을 주지도 받지도 않을 것이다.”(Epicurus: 75-76)

원자와 허공의 ‘차이’는 매우 심오하다. 그것은 결국에는 동일성으로 환원되는 ‘적대’ 보다 심오하다. 원자와 허공은 서로 적대적이지 않다. 허공은 원자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니 적대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존재(Being), 일자(the One), 전체(Whole)를 내세우는 자들은 무(無)를 존재에 통합시킨다. 이들은 ‘존재는 무다’고 말하기도 한다(Deleuze, 1990a: 268).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세계를 아우르는 존재나 일자는 있을 수 없다. 맑스는 무게에 관한 루크레티우스의 언급을 소개하면서 원자들의 ‘무게’로부터 놀라운 결론이 유도된다고 말한다(논문: 289, 349). 무게는 원자들에 내재한 속성이며, 중력의 실체적 중심이라는 사실로부터 “모든 것이 세계의 중심을 향해 싸운다는 생각을 포기해야”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향해야 할 중심성이란 없으며 중심은 ‘곳곳에’ 있다. 원자들이 모이는 강렬도의 지대들이 모두 중력의 중심이 된다. 또한 중심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이동한다. 문제는 존재나 일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맑스는 “현존재(Dasein) 속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현존재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했다*주)(논문: 294). 차라리 우리는 ‘존재로부터의 자유’를 말해야 할 지 모른다.

*주) ■■김진은 ‘현존재의 자유(Freiheit des Daseins)’라고 말했는데(김진, 1990: 94), MEW 원문 확인 결과 ‘현존재로부터의 자유(Freiheit vom Dasein)’였다. 현존재의 자유와 현존재로부터의 자유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우리는 결합하는 두 양상을 구분하는 것을 통해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 그 두 양상이란 바로 ‘Be-동사’와 ‘접속사’다(Deleuze, 1990: 267). ‘A is B’라고 할 때, ‘Be-동사’는 A와 B를 동일화시키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접속사는 동일하지 않은 것들 사이의 동맹이고 결합이다. 그것은 동일화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루크레티우스는 “모든 사물들은 다양한 접속들, 무게들, 충돌들, 마주침들, 운동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작동한다”고 말했다(Lucretius, 1997: 1권 632-635ff).

어떻게 접속되느냐에 따라 원자들은 상이한 것이 될(becoming) 수 있다. 맑스는 원자가 진정으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실체(substance)라고 말했다(논문: 294). 모든 것은 원자들로부터 생겨나며 다시 원자들로 분해된다. 원자들은 ‘하늘과 바다, 땅, 강, 태양을 구성’한다(노트 4권: 159-160, Lucretius: II, 820f). 또 “하늘, 바다, 토지, 강, 태양을 구성하는 같은 원자들이 신체, 나무들, 동물들을 조성(구성)한다”(Lucretius: 1권, 820-823ff). 원자들은 땅이 될 수도 있고, 강이 될 수도 있고 바다가 될 수도 있으며, 산이 될 수도 있고, 나무가 될 수도, 동물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생성이다. 무언가 생겨나는 것은 또한 다양해지는 것이다. 전체마저도 재배열을 통해서 다른 것이 된다. 변화하는 전체!
헤겔은 생성을 존재와 무의 통일로 이해한다(Hegel, 1994: 102). 무엇인가 사멸하고 무엇인가 생겨나는 것을 생성이라고 이해할 때, 그것은 바로 자신 안에 무를 포함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생성은 존재에서 무로, 무에서 존재로의 소멸이다. 이때 아무런 규정성도 없던 존재가 규정성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현존재다. 현존재란 바로 비존재(無)를 포함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이것은 불가능하다. 세계는 원자와 허공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것은 서로를 절대 포함하고 있지 않다. 원자가 없는 곳이 허공이다. 따라서 무(無)인 허공은 원자들의 조성을 해체하는 데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원자들의 조성을 깨는 것은 다른 원자들이다. 에피쿠로스가 앞에서 말했듯이 ‘무로부터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존재는 무를 포함할 수 없다!

이것이 에피쿠로스가 죽음을 걱정하는, 죽음 앞에서 근심(Angst)을 가진 이들에게 보내는 충고다. 죽음이란 원자들의 분해일 뿐이다(Epicurus: 13). “우리가 존재하는 한 무(無)인 죽음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죽음이 오면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원자와 허공의 심오한 차이 때문이다.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에게 아무 상관이 없다. 산 사람에게는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Epicurus: 44).

프리고진의 뛰어난 책의 제목(Prigogine, 1994)이 말해주듯이 유물론은 ‘존재에서 생성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때 시간은 ‘생성’의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성’이야말로 시간을 구성하고 가능하게 만든다.
맑스가 ■논문■의 제2부 4장에서 다루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시간에 대한 태도야말로 데모크리투스와 에피쿠로스의 차이를 잘 드러내 준다. 데모크리투스에게 있어서 시간은 별 중요성이 없다고 말한다(논문: 295). 오히려 데모크리투스는 시간을 부정하기 위해 시간을 설명했다. 원자들은 영원하며 원자 개념에 시간은 있을 수 없다. 영원한 것에서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에피쿠로스 역시 원자들의 영원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시간을 배제했으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원자들의 배치였다. 본질의 영역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으나 원자들이 실존을 구성하는 영역, 그곳은 항상 변화와 사건의 영역이었다. 맑스는 에피쿠로스에게 “시간은 현상의 절대적 형식이었다”고 말한다(논문: 295). 맑스는 이 문장에 “사물의 운동과 분리된 시간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주석으로 달았다(논문: 355).

맑스는 시간이 사물들의 속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속성들의 속성’이며 “변화로서의 변화(change as change)”라고 말한다. 에피쿠로스가 ‘symptoms’이라고 부른 것을 우리는 사건(eventa)이라고 부를 수 있다(Deleuze, 1990: 276). 그렇다면 시간 그것은 ‘사건의 사건(event of event)’이다. 조성이 자연의 수동적 형식이라면 맑스는 시간이야말로 자연의 능동적 형식이라고 말한다(논문: 295).


6. 유물론에 반하는 유물론?

원자들(atoms)과 허공(void)이 있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원자들이 모여 하나의 텍스트가 되다가 다시 ‘적을 절멸시키기 위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단 한 개의 원자를 더하거나 빼지 않고 배열의 변화만으로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하물며 다른 원자들이 다시 개입한다면야 그 변화가능성은 짐작할 수도 없다. 신마저도 안전하고자 한다면 원자를 피해야 한다. 그것은 신도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이다. 맑스는 ■논문■의 제2부 5장에서 천체들(meteors)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데, 천체를 보며 영원성을 끌어내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쉽게 종교에 빠져드는 사람들에게 천체들 역시 원자들의 구성물인 한 영원하지 못하다는 에피쿠로스의 말을 일깨워준다(논문: 298-299, 301).

유물론이 종교와 미신에 가장 강력한 반대자일 수 있는 것은 종교나 미신이 단순한 관념이나 의식이기 때문이 아니다. 헤겔철학이 아무런 물질성도 가지지 못했다면 맑스는 ‘해부용 칼’로 충분했을 것이다(Marx, 1988b: 190). 그러나 그것이 대중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것 또한 원자들로 이루어진 물질인 것이다. 그에게는 실재적인 파괴력을 갖는 원자들의 흐름, 바로 ‘무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원자는 원자에 의해서, 무기는 무기에 의해 제압되어야 한다.

에피쿠로스에서 루크레티우스로, 그리고 맑스로 이어지는 유물론의 전통은 더 이상 정신을 비난하기 위해 물질을 동원하는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이나 영혼도 그 나름의 속성*주)을 갖는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뿐이다. 원자들의 복합체인 한 그것은 원자들의 동학, 유물론의 역학을 따른다.

*주) ■■영혼을 이루는 원자들은 아주 작고 몸의 나머지 구조와 잘 조화될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생각의 속도 이상으로 빨리 움직인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운동을 통해 현실화되는 가능성으로 인해 스스로 감각의 속성을 지니기도 한다(Epicurus, 1998: 73-74)..}}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고 맑스는 말한다. 그러나 삶과 의식의 관계는 인간이 ‘물질적 생활 자체를 생산하고’, 이미 충족된 욕구 위에 ‘새로운 욕구’를 낳으며, 자신을 새롭게 생성시키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생성시킨다는 것, 사회적 관계가 하나의 생산력이라는 것 등의 전제 위에 인간이 의식을 가지며 그것 또한 물질적이라는 판단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맑스는 주지시키고 있다(Marx, 1989: 66-71). 삶이 의식을 규정하지만, 인간은 실천을 통해서 삶을 생산한다.

이 점에서 삶이야말로 생성(becoming)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삶을 생산하는 인간 역시 ‘발전과정상의 인간’이다(Marx: 66). 철학자들은 자주 인간 ‘본질’을 말하고 인간을 역사 단계마다 존재했던 개인들 대신에 끼워 넣어 역사의 추진력인 것처럼 묘사해왔다. 마치 분업에 포섭되지 않으면 완전한 ‘인간’의 본질이라도 실현되는 것처럼, 마치 전체과정을 ‘인간’의 자기소외 과정인 것처럼.(Marx: 121).

역사에서 어떤 심오한 존재나 본질이 그 실현을 강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관념론적인 것이다. 원자들의 마주침으로 사건이 생길 때, 하나의 관계가 맺어질 때 ‘표현’되는 본질, 상응하는 본질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결정은 ‘저 세계’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이 세계’에서 구체적으로 관계를 바꾸기 위한 실천과 투쟁일 뿐이다.

데모크리투스의 문제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어떤 것을 찾으려는 데 있었다. 그는 원자가 전체(Whole)로서의 자연에 대한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보니 원자는 추상적이고 순수한 범주가 돼버리고 능동적 원리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논문: 305) 원자들은 그에게서 괴물이기를 멈추고 장식장 깊은 곳에 놓여있는 아름다움 보석이 되고 말았다.

그는 중요한 것이 원자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배치를 바꾸어내는 능동적 실천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맑스가 모든 유물론자들에게 경고했던 것, 그것은 바로 대상과 현실, 감성이 단지 관조의 형식에서만 파악되고 실천적으로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Marx: 37).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에서 명백히 하듯이 ‘구태의연한’ 유물론과 ‘새로운’ 유물론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시키는 것’, 우리에게는 ‘해부용 칼이 아니라 적을 절멸시키기 위한 무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원자들은 이제 ‘낡은’ 유물론자들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다.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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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정성진, 세계경제위기와 맑스주의 공황론 -브레너 비판을 중심으로-

* 진보평론 제 1호 (2003. 2. 14)  / 세계경제위기와 맑스주의 공황론-브레너 비판을 중심으로-

진보평론  제1호
정성진(경상대학교 교수/경제통상학부)

* 이 글은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주최 동계 학술대회 (1999.2.23.)에서 발표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장상환 교수의 논평에 감사드린다.

1. 머리말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폭발했던 1968~1973년 시기는 공황론을 비롯한 맑스주의 이론이 ‘백화제방’한 시기이기도 했다. 근본주의, 신리카아도주의 같은 맑스의 공황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제출되었던 것도 이 시기이다. 그러나 1997~199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에서 시작된 세기말 세계경제위기는 지난 30년전 같은 맑스주의의 르네상스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 세기말 세계의 정치경제정세는 150년전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묘사한 세계와 닮은 꼴로 되돌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주) 1989~1991년 구소련 동유럽 제국의 붕괴후 득세한 ‘자본주의 외 대안 부재론’의 효과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세계경제위기와 관련되어 제기되는 논의들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특정한 조직형태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지와 반대를 중심으로 한 비맑스주의적 구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주) '공산당선언’의 현재적 의의에 대한 필자의 논의로는 정성진, 「1848년 공산주의 당 선언의 현재성」, 『역사비평』, 1998년 가을호를 참조할 수 있다.■■

사실 동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지배적인 경제담론 구도는 위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대 제도주의’의 쟁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최근 진보진영에서 ‘새로운 통념’으로 정착되고 있는 제도주의는 맑스주의와 아무런 공통점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암스덴 (A.Amsden), 웨이드 (R.Wade) 같은 대표적 제도주의자들 역시 신자유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도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제도주의자들은 위기가 임박할 때까지 동아시아 경제 ‘기적’의 설명을 신자유주의자들과 다투었을 뿐이었다. 사실 제도주의자들은 동아시아 경제위기 폭발 직전까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추세에 대해 근본적 비판을 제기하기는커녕 이를 새로운 대세로 추종하다가 위기 폭발 후 위기의 책임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묻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드러냈다. 이들은 경제에 대한 제도적 이해를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역사구조적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데, 이는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전개과정을 서술한 웨이드의 글*주)에서 위기의 전사가 공백으로 되어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이들은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청천벽력’ 식으로 묘사하면서 위기의 책임을 동아시아 경제 밖에 즉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묻고 위기에 대한 대안을 이른바 ‘국가 되찾기’ (Reclaiming the State)에서 찾고 있다.

*주) ■■R.Wade, “From ‘Miracle’ to ‘Cronyism’: Explaining the Great Asian Slump,”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Vol.22, 1998.}}

이러한 와중에 『신좌익평론』(New Left Review) 지가 1998년 5/6월호 (통권 229호) 한 권 전체를 할애하여 게재한 미국의 저명한 맑스주의 역사학자 브레너(R.Brenner)의 세계경제위기분석*주1)은, 그 평가는 별도로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대 제도주의’라는 오늘의 지배적 경제담론의 구도를 깨고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맑스주의적 논의의 부활을 위한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주2)

*주1) ■■R.Brenner, “Uneven Development and the Long Downturn: The Advanced Capitalist Economies from Boom to Stagnation, 1950~1998,” New Left Review, No.229, 1998. 이하 본문과 각주에서 면수만 표시한 인용은 모두 이 논문으로부터의 인용이다.■■

*주2) ■■1997~1998년 우리 나라 공황기 정세에 대한 필자의 개입으로는 정성진, 「경제위기 논쟁과 맑스주의 공황론」, 한국사회경제학회, 제41회 연구발표회, 『연구논문집』, 1998 참조.■■

캘리포니아 대학 (UCLA) 역사학과 교수인 브레너는 주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논쟁의 신전개를 주도한 역사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미국의 트로츠키주의 그룹인 ‘연대’ (Solidarity)그룹의 정력적인 활동가이기도 하며, 그 그룹의 기관지인 『시류를 거슬러』(Against the Current) 지에 현대 미국정치경제에 관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주1) 그리고 브레너가 1991년 『신좌익평론』지에 글릭 (M.Glick)과 공저한 조절이론 비판 논문은 우리 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다.*주2) 브레너는 그 논문에서 당시 진보진영에서 유행했던 조절이론이 현대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서술이 아니라고 비판하고, 경쟁론과 이윤율 저하 이론에 입각하여 현대자본주의의 역사가 다시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브레너는 그 논문에서 이미 임금상승이나 생산성 저하가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지만, 경쟁과 이윤율 저하를 명시적으로 연결시키거나 그것을 현대자본주의 위기의 분석으로 구체화하지는 않았다. 세계경제위기를 다룬 이번 논문에서는 바로 그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즉 경쟁론과 이윤율 저하 이론에 입각하여 제2차세계대전후 세기말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세계경제의 번영과 위기에 대한 총괄적 서술을 시도하고 있다.

*주1) ■■그러나 브레너와 그가 속한 미국 ‘연대’ 그룹의 트로츠키주의는 예컨대 구소련과 동유럽 제국의 사회성격을 ‘관료집산주의’로 규정하는 점에서 보듯이, 이를 ‘관료제로 타락한 노동자국가’로 규정하는 ‘제4인터너내셔날’이나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국제사회주의’ (IS) 경향의 트로츠키주의와는 명백히 구별된다.■■

*주2) ■■R.Brenner and M.Glick, 「조절접근: 이론과 역사」, 『사회경제평론』, 제5집, 1992 및 이에 대한 필자의 평주도 참조.■■

브레너는 자본주의 이행논쟁에서 봉건영주와 농민간의 계급투쟁의 효과를 중심으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설명할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브레너는 세계경제위기를 다룬 이 논문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수직적’(vertical) 계급투쟁이 아니라 자본과 자본간의 ‘수평적’(horizontal) 경쟁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위기를 해명할 것을 주장하며 노자간의 모순과 계급투쟁에 주목했던 기존의 공황론에 전면적 비판을 제기했다.*주1) 당연하게도 이 매우 야심적인 브레너의 논문은 즉각 활발한 논쟁을 야기했는데, 아직 진행중인 논쟁은 현재까지는 전적으로 맑스주의 이론 진영 내부에서 전개되고 있고,*주2) 대체로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을 맑스주의적 분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필자 역시 이 글에서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이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많은 유익한 통찰과 분석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으로는 실패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주1) ■■브레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기존의 공황론은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수직적’ (시장 및 사회정치적) 관계를 너무 배타적으로 강조했다. 그 결과 기존의 공황론은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적 근원을 이루는 기업들간의 ‘수평적’ 경쟁으로부터 유래하는 생산적 편익 뿐만 아니라 경제적 모순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의 출발점은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미증유의 정도로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자본주의는 그와 같은 생산력 발전을 자신의 무계획적이고 경쟁적인 성격 때문에 파괴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p.23.)}}

*주2) ■■현재까지 제출된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에 대한 비평 논문들로는 먼저 Against the Current지상에 게재된 R.Walker “Capital‘s Global Turbulence: An Introduction” (No.78, 1999); M.Malloy and C.Post, “Understanding the Unevenness of Capitalist Development” (No.79, 1999); H.Ticktin, “Accumulation and Control of Capital” (No.79, 1999); P.Camejo, “A Bubble or Technological Revolution?” (No.80, 1999); L.Goldner, “International Liquidity and the Crisis” (No.80, 1999)등이 있으며, Historical Materialism지 1999년 봄-여름호 (No.4)도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 관련 논쟁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A.Callinicos, G.Carchedi, S.Clarke, G.Dumenil, A.Freeman, C.Harman, M.Lebowitz, D.Levy, F.Moseley, A.Shaikh, J.Weeks 등 일급 맑스주의 이론가들의 비판과 이에 대한 브레너의 답변을 게재했다. 또 Monthly Review지 1999년 6월호는 브레너에 대한 독점자본주의론 입장에서의 비판인 J.B.Foster, “Is Overcompetition the Problem?”와 브레너를 지지하는 D.McNally, “Turbulence in the World Economy”를 나란히 게재했으며, Challenge지 1999년 5~6월호도 임금상승-이윤압박설 입장에서 브레너를 반박한 J.Crotty의 논문과 이에 대한 브레너의 답변을 게재했다. 브레너에 대한 그 밖의 비평 논문으로는 A.Callinicos, “World Capitalism at the Abyss,” International Socialism, No.81, 1998; D.Henwood, “Crisis Update,” Left Business Observer, No.85, 1998; A.Kilmister, “Simply Wrong,” Socialist Outlook, No. 20, http://www.labournet.org.uk/20brenner.html, 1998; R.Hoveman, “Brenner and Crisis: A Critique,” International Socialism, No.82, 1999; D.Laibman, “Global Turbulence and Capitalist Crisis,” Science and Society, Spring 1999; B.Fine et.al., “Addressing the World Economy: Two Steps Back,” Capital and Class, No.67, 1999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읽을꺼리』 제4호가 R.Brenner, “The Looming Crisis of World Capitalism: From Neoliberalism to Depression?” Against the Current, No.77, 1998과 R.Walker, op.cit를 번역 소개한 바 있다.■■

2.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의 의의

브레너는 전후 세계경제의 번영과 위기를 이윤율의 동향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브레너는 전후 황금시대는 1965~1973년을 경계로 종식되었는데 그 원인은 이윤율의 저하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이윤율 저하를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한다는 점에서 브레너의 논의는 과소소비설과 불비례설의 대립구도로 이루어진 기존의 전통적 맑스주의 공황론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러나 브레너는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자본의 가치구성의 상승에서 찾는 맑스주의 공황론을 ‘신맬서스주의’라고 비판한다. 또 그는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임금상승-이윤압박이나 생산성 둔화에서 찾는 신리카아도주의 공황론과 조절이론 및 사회적 축적구조론도 비판한다. 오히려 기존의 이윤율 저하 공황론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브레너 논문의 주요 목적중의 하나이다.

브레너의 이윤율 저하 공황론은 기존의 이윤율 저하 공황론과 마찬가지로 이윤율 저하를 공황의 원인으로 간주하지만,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자본간의 국제적 경쟁의 격화가 초래한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에 기인한 가격저하 압박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이들과 구별된다. 과잉생산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과소소비설과 유사하지만, 과잉생산의 원인으로 대중의 구매력 부족이 아니라 자본간의 국제적 경쟁을 강조하고, 또 공황의 원인을 과잉생산 자체가 아니라 과잉생산으로부터 연유한 가격저하 압박 및 이로부터 비롯된 이윤율 저하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전통적 과소소비설과 구별된다.

브레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윤은 노동자의 증대된 세력 행사로부터 결과된 비용에 대한 상방 압력의 증대가 아니라 제조업 제품 시장에서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결과시키는 격화된 국제적 경쟁을 반영하는 가격에 대한 증대된 하강 압력 때문에 압박되었다” (p.95). 다시 말해서, “제조업 부문 수익성이 저하한 것은 단지 생산자들이 그들의 기존 수익률을 유지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가격을 비용 이상으로 마크엎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65~1973년 미국의 이윤율 저하를 야기한 주된 요인은 가격에 대한 저하 압력이었다. 장기침체의 개시는 저비용의 일제 및 독일제 제품의 세계시장에의 갑작스런 대거 유입과 이것이 초래한 제조업 부문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에서 비롯된 것이다”(p.96). 즉, “명목임금 상승의 가속화나 생산성 상승의 둔화가 1970~1973년 제조업 부문에서 이윤 압박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제조업자들이 수익성 저하를 경험한 것은 그들이 과거처럼 비용 이상으로 마크엎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p.135).

제2차대전후 1965년경까지 지속된 장기호황은 주로 후진성의 이득에 기초한 일본과 독일의 수출주도적 투자주도적 불균등결합발전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의 수출 공세는 미국 제조업 제품에 대해 가격 저하 압력을 가중시켜 미국 제조업의 이윤율을 저하시킴으로써 미국에서 경제위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와 독일과 일본의 국제수지 흑자의 누적은 달러화의 가치저하와 마르크화와 엔화의 가치상승을 결과시켜 독일과 일본제품에 대한 가격저하 압력을 낳으면서 이윤율 저하와 경제위기가 독일과 일본으로 확산되었다.

이상에서 요약해 본 브레너의 논문은 후술될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점에서 현재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위기론을 지배해 온 스탈린주의 전반적 위기론과 조절이론을 동시에 비판하고 IMF 위기후 진보진영에 ‘새로운 통념’으로 정착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책임론’과 ‘개혁적’ 케인즈주의의 지평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브레너의 논의는 독점자본의 지배가 아니라 경쟁의 격화를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독점과 정체 경향의 연관을 핵심으로 하는, 한 동안 우리나라에서 정통적 맑스주의 공황론으로 통용되었던, 스탈린주의 전반적 위기론, 과소소비설 및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한 근원적인 내재적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스탈린주의 전반적 위기론은 데이(R.Day)*주1)가 주도면밀하게 입증했듯이,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이론과 주기적 산업순환론의 의의를 사실상 부정하고, 조야한 세계시장 축소론류의 과소소비설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맑스의 공황론으로부터 결정적으로 이탈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에서 스탈린주의 전반적 위기론은 정통 맑스주의 공황론과 부당하게 동일시되어 왔다. 브레너는 세계경제위기를 자본주의 발전 단계로부터 도출하거나 혹은 공황론을 자본주의 발전단계에 상응하여 구체화하는 전반적 위기론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론의 시도와 달리 자본주의 일반이론인 경쟁론과 이윤율의 저하 경향 이론에 기초하여 공황을 설명하며, 그렇게 이해된 공황론을 오늘 세계경제위기의 현상분석에 적용한다.*주2) 이 점에서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맑스주의 공황론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중요한 요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주1) ■■R.Day, The 'Crisis' and the 'Crash,' NLB, 1981; Cold War Capitalism, M.E.Sharpe, 1995.}}

*주2) ■■예컨대 브레너는 “‘독점자본,’ 및 ‘자본주의의 정체’라는 관념은 1950년대 미국경제의 매우 일시적이며 특수한 양상을 물신화한 것” (p.50)이라고 비판한다. 브레너는 이미 전게한 글릭과 공저한 조절이론 비판 논문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조절이론이 공유하고 있는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자본이동이 더 자유로와지고 경쟁이 더욱 격화되므로,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이 주장하는 독점이윤은 장기적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으며, 현대자본주의에서도 경쟁과 평균이윤율 범주의 현실성이 부정되지 않기 때문에 경쟁자본주의 단계와 구별되는 독점자본주의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R.Brenner and M.Glick, 앞의 글 참조.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으로는 D.Harvey ■자본의 한계■, 한울, 1995, 제5장도 참조할 수 있다.■■

둘째,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그 동안 순수이론적 차원에서 논의되거나 추상적 법칙의 실증 수준에서 논의되었던 맑스의 이윤율의 저하 이론을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세계경제위기의 현상분석으로 구체화한 중요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맑스의 이윤율의 저하 이론에 관한 기존의 논의는 맑스의 이론 자체가 논증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쟁이거나 또는 자본주의 경제의 거시경제통계자료를 이용한 맑스의 이론의 실증을 위주로 하여 전개되어 왔으며, 이 법칙을 특정한 자본주의 경제의 변동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전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그 성공 여부와는 별도로, 맑스의 이윤율의 저하 이론을 자본주의 경제의 현상분석을 위한 이론적 틀로 구체화한 중요한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셋째, 브레너의 논문은 구소련과 동유럽 제국의 몰락후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전반적 위기론의 신용이 땅에 떨어진 후 새로운 정치경제학적 현대자본주의론으로 정착되었던 조절이론, 사회적 축적구조론, 혹은 신리카아도주의 공황론에 대한 전면적 비판이기도 하다. 브레너는 신리카아도주의적 임금상승-이윤압박론이나 조절이론의 공황론에 대해 공황의 원인을 과소소비설처럼 수요측 요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공급측 요인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공급측 이론’ (supply-side theory)이라고 명명하고 그중 생산성 위기를 강조하는 견해는 ‘신맬서스주의’로 분류한다.

브레너는 ‘공급측 이론’이 전후 황금시대의 사회적 기초라고 주장하는 노자간의 타협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브레너는 전후의 이른바 ‘산업평화’ 혹은 ‘사회적 합의’란 전후 혁명적 노동자계급 운동의 철저한 패배의 기초 위에 선 것이었다고 본다. 브레너는 또 황금시대의 종언이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고양 때문에 초래되었다는 ‘공급측 이론’도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브레너는 노동자계급의 투쟁 때문에 이윤율이 저하한 것이 아니라 이윤율 저하를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 증대를 통해 상쇄하려는 자본의 시도가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격화시켰다고 본다. 즉 “노동자계급 저항의 증대는 수익성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p. 94)이며, “노동자 전투성의 증대와 소위 ‘임금 폭발’은 선행한 ‘이윤 폭발’에 대한 보상적 반작용”(p. 125)이라는 것이다. 브레너는 또 1980년대 이후 노동자계급 운동이 퇴조하고 실질임금의 저하가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위기가 계속되었다는 사실은 임금상승-이윤압박설을 논박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넷째,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금융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의 문제 즉 국제금융자본의 투기적 운동이 아니라 국제적 과잉생산의 문제에 주목하는 브레너의 논의는 그 자체로 IMF 위기후 진보진영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책임론’에 대한 강력한 논박이다. 브레너에 따르면, “금융자본과 신자유주의의 발흥은 - 비록 그것이 위기를 상당히 악화시켰다고 할지라도 - 국제적 경제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라고 보아야 함과 동시에, 자본의 금융으로의 전환은 적절한 수익률을 제공하지 못하는 실물경제 특히 제조업 부문의 무능의 결과”였으며, “1970년대말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케인즈주의적 유효수요 관리정책이 이윤율을 회복하고 자본축적을 재개할 수 없음이 판명된 후에야 진행되었다.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통화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적 적자지출이라는 첫번째 정책선택이 실패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주)

*주) ■■R.Brenner, “The Looming Crisis of World Capitalism: From Neoliberalism to Depression?” Against the Current, No.77. 1998.}}

다섯째, 브레너는 전후 황금시대가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에 힘입은 것이었다는 케인즈주의자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입증했는데, 이는 IMF 위기후 제도주의와 ‘신자유주의 책임론’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른바 ‘개혁적’ 케인즈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논거가 될 수 있다. 브레너에 따르면 케인즈주의적 유효수요 관리정책이 전후 황금시대를 지탱한 주요 지주의 하나라는 ‘상식’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브레너는 전후 황금시대를 가능하게 한 독일과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은 케인즈주의적 유효수요 관리정책이 아니라 국가-기업-은행 간의 네트워크와 같은 특유한 공급측 요인들에 결정적으로 힘입은 것이었으며, 미국에서도 케인즈주의적 유효수요 확대정책은 미국경제의 자본축적을 촉진한 것이 아니라 독일, 일본과 같은 경쟁국의 자본축적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 중반까지 일본 정부는 독일 정부처럼 항상 균형예산을 유지했으며 케인즈주의적 재정정책은 그 어느 종류의 것도 배척했다. 그리하여 국내수요를 실제로 억압했다”(p.88) “이 시기 미국, 일본, 및 독일 경제의 경험은 이같은 예외적인 성장의 분출이 복지국가, ‘노자협약’ 및 케인즈주의적 수요관리를 통한 유효수요의 지속적 증가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제도의 출현에 기인한다고 결론짓게 하는 어떤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다. ... 가장 급속한 성장이 이루어진 독일과 일본에서 경제적 역동성을 결과시킨 것은 명백히 공급측 조건들이었다”(pp.90-91).

3.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 비판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 분석은 매우 독창적이며 오늘 세계경제위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유용한 자료와 통찰을 제공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맑스의 공황론의 정당한 구체화라고 보기 힘들며, 따라서 오늘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응 방안을 브레너의 논의에서 도출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맑스의 공황론의 입장에 설 때 드러나는 브레너 논의의 주요한 문제점들을 간략히 살펴 보자.

(1) 실증의 문제

첫째, 브레너는 오늘 세계경제위기를 초래한 1965~1973년경부터 시작된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자본의 국제적 경쟁이 결과시킨 과잉설비 과잉생산에서 결과된 가격의 하방압력에서 찾는다. 그러나 브레너 자신이 제공하는 통계를 보면 세계시장에서 주요 제품 가격의 하락은 이윤율이 저하하기 시작한 1965~1973년 전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뒤인 1980년대 후반 특히 1990년대 들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과잉설비-과잉생산 및 가격의 저하 압력이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 아니라 반대로 그 결과임을 보여 준다. 실제로 미국에서 이윤율의 저하는 국제적 경쟁이 격화되기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샤이크(A.Shaikh)*주)가 지적했듯이 만약 국제적 경쟁이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라면 국제적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보호되어 있던 일본과 독일에서 왜 이윤율이 더 급속하게 저하했는지도 설명할 수 없으며, 세계화와 함께 국제적 경쟁이 격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이윤율이 왜 다시 상승하고 있는지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주) ■■A.Shaikh, “The Falling Rate of Profit and the Economic Crisis in the U.S.,” in R.Cherry et. al. eds., The Imperiled Economy, Book I, URPE, 1987.}}

둘째, 브레너는 자본의 가치구성의 상승에서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찾는 근본주의 공황론을 ‘신맬서스주의’라고 기각해 버리지만, 브레너 자신이 제시하는 통계는 이윤율 저하의 배후에 자본의 가치구성의 상승이 놓여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실제로 브레너는 자본의 가치구성의 역수의 대용변수라고 할 수 있는 ‘산출/자본 비율’의 저하가 이윤율 저하의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원료 비용의 증대를 별도로 하면, G-7 제국 총이윤율 저하는 전적으로 명목적 ‘산출/자본 비율’의 저하에 의해 결정되었다”(p.136). 실제로 샤이크와 토낙(A.Shaikh and E.A.Tonak)*주1), 모슬리(F. Moseley)*주2), 듀메닐과 레비(G. Dumenil and D. Levy)*주3)는 부르주아 통계의 엄밀한 맑스주의적 재구성을 통해 미국경제에서 이윤율의 저하를 확인하고 이것이 잉여가치율의 상승을 압도한 자본의 가치구성의 고도화에 기인한 것임을 입증했다.

*주1) ■■A.Shaikh and E.A.Tonak, Measuring the Wealth of Natiuo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주2) ■■F.Mosely, “The Rate of Profit and the Future of Capitalism,”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Vol.29, No.4, 1997.}}

*주3) ■■G.Dumenil and D.Levy, The Economics of the Profit Rate, Edward Elgar, 1993.}}

셋째, 브레너는 자본의 국제적 경쟁이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자본의 국제적 경쟁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제조업 부문을 비제조업 부문에서 분리하여 가격, 임금, 생산성, 단위노동비용, 및 이윤율 등의 지표를 계산한다. 하지만 제조업과 비제조업 부문의 구별은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상호침투가 본격화되고 있는 오늘 단지 통계상의 자의적 구별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에 기초한 분석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곤란하다. 또 브레너와 같은 제조업과 비제조업 부문의 이분법으로는 오늘 세계경제에서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정보화,’ ‘금융화,’ ‘소프트화’ 추세에 대한 정당한 분석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넷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및 초국적 금융자본의 운동과 세계경제위기의 관련에 대한 분석이 전적으로 누락되어 있는 것은 세계경제위기론으로서 중요한 결함이다. 신자유주의와 초국적 금융자본의 지배 그리고 세계화를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은 옳지만, 오늘 세계경제위기의 전개과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기 위해서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및 초국적 금융자본 등의 문제와 세계경제위기의 관련을 구체적으로 해명해야 했다.

다섯째, 브레너는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론 및 후진성의 이득론을 원용하여 일본과 독일의 미국 경제 추격이 전후 황금시대의 기본과정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진성의 이득론은 19세기말 독일, 러시아, 일본과 같은 후발자본주의 제국의 경제발전이나 2차세계대전 이후 신흥공업국의 출현배경을 설명할 수 있는 유력한 논리이지만, 패전후 독일과 일본의 경제부흥은 후진성의 이득보다는 전후 이들 나라에서 혁명적 노동자운동의 분쇄와 냉전체제의 성립 및 영구군비경제 (permanent war economy)의 효과에 기인한 측면이 많다.*주)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에서 구소련 동유럽 제국은 제3세계와 함께 마치 지구상에 존재도 하지 않은 것처럼 아무런 이론적 역할도 부여받고 있지 못하다. 또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론은 후진국에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아니라 영속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이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논증한 것이지, 자본주의 발전의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브레너는 불균등결합발전이 생산력의 발전만큼이나 사회적 모순의 중첩 심화를 결과시킨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주) ■■틱틴과 호브만은 냉전과 영구군비경제가 전후 자본주의의 장기호황의 도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고, 냉전의 종식에 따른 영구군비경제 효과의 소진이 오늘 세계경제위기의 주요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H.Ticktin, op.cit.; R.Hoveman, op.cit. 참조.■■

(2) 이론의 문제

첫째, 경쟁이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라는 브레너의 핵심 명제 자체가 맑스의 이론과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먼저 지적되어야 한다. 브레너는 이윤율을 결정하는 것은 경쟁, 구체적으로 국제경쟁력이라고 본다. 즉 국제경쟁력이 강화되면 이윤율이 상승하고 국제경쟁력이 약화되면 이윤율이 저하한다는 것이다. 브레너는 실제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조업 부문에서 저하하는 경쟁력과 저하하는 수익성간의 밀접한 상관관계는 전자가 후자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p.72). 그리고 국제경쟁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격경쟁력이며 이는 다시 달러화로 표시한 단위노동비용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환율과 임금수준에 의해서 좌우된다. 이러한 경쟁과 이윤율의 이해 방식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임금경쟁력이 국제경쟁력의 원천이라는 브레너의 주장은 결국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노동자는 임금인상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공세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브레너처럼 경쟁을 이윤율 저하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의 방법을 완전히 전도시킨 것이다. 맑스는 이윤율의 저하경향을 다수자본 (경쟁)을 사상한 자본일반의 추상수준에서 이미 논증했다. 맑스는 경쟁이 특정한 생산부문에서는 이윤율을 저하시킬 수 있지만, 일반적 이윤율은 자본의 가치구성이 상승할 때에만 저하한다고 보았다.

“경쟁은 상이한 생산영역에서 이윤을 균등화할 수는 있다. ... 그러나 경쟁은 일반적 이윤율을 저하시킬 수는 없다.”*주1) “경쟁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가치 이하로 판매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일반적 이윤율은 이러저러한 생산부문에서 저하할 수 있다. ... 그러나 일반적 이윤율은 이러한 방식으로는 저하할 수 없다. ... 경쟁은 일반적 수준 그 자체를 억압할 수 없으며, 단지 그러한 수준을 만들어 낼 뿐이다.”*주2)

*주1) ■■K.Marx, Theories of Surplus Value, Part II, Progress Publishers, p.438.}}

*주2) ■■K.Marx, Collected Works, Vol.28, International Publishers, 1986, pp. 363, 364.}}

경쟁은 과잉생산 가격저하란 메카니즘을 통해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것이 아니다. 경쟁은 오히려 신기술의 경쟁적 도입과정에서 필연적인 자본의 가치구성의 상승을 통해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것이며 그러한 이윤율 저하는 다시 자본간의 경쟁을 격화시키는 것이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본의 과잉생산에서 기인하는 경쟁이 이윤율의 저하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동일한 원인에서 발생하는 이윤율의 저하와 자본의 과잉생산 때문에 경쟁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 축적과 결부된 이윤율의 저하는 필연적으로 경쟁전을 야기한다. ... 그러므로 이윤율의 저하가 자본 사이의 경쟁전을 야기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주)

*주) ■■K.Marx, ■자본론■, 제3권, 비봉출판사, 1990, pp. 300, 305.}}

이윤율 저하 경향을 다수자본 (경쟁)의 추상수준으로까지 하향하여 구체화한다고 해서 경쟁을 이윤율 저하의 원인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맑스는 오히려 경쟁을 이윤율 저하의 주요 요인으로 간주했던 스미드를 리카아도를 빌어 비판했다. 즉 맑스는 점증하는 자본이 제한된 출구에 직면하면서 격화되는 자본간 경쟁이 가격을 저하시켜 이윤율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한 스미드에 대해 경쟁은 자본가들 상호간에 이윤을 재분배할 뿐이며 이윤율 수준 자체를 저하시킬 수는 없다는 리카아도의 비판을 수용했다.*주) 브레너는 세계경제위기론에서 경쟁이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이 자본주의 이행논쟁에서 ‘신스미드주의’라고 비판했던 유통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순의 근원은 브레너가 강조하고 있는 자본들간의 ‘수평적’ 경쟁이 아니라 맑스가 “직접생산자로부터 잉여가 추출되는 방식”이라고 묘사한 자본과 노동간의 ‘수직적’인 계급적 착취의 현실에 존재한다.

*주) ■■파인 등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스미드와는 달리 맑스와 리카아도는 경제 전체에서 격화된 (투자) 경쟁이 이윤율을 경향적으로 균등화시키는 메카니즘일 뿐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이해했다. 경쟁은 이윤율을 저하시킬 수 없다. 만약 시장가격이 저하한다면 한 무리의 자본가들은 다른 무리의 자본가들이 손실을 본 것만큼 이득을 본다.” B.Fine et.al., op.cit., p. 56.}}

또 브레너의 경쟁 개념은 대단히 협소하며 맑스의 경쟁 개념과 다르다. 브레너는 경쟁을 단순히 가격경쟁 (부문내 경쟁)으로 환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부문내 경쟁과 부문간 경쟁의 중층결정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부문간 경쟁에서는 자본운동과 이윤율의 균등화 과정에 대한 분석이 불가결한데, 브레너는 경쟁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부문간 자본 이동에 대한 분석을 누락시키고 있다.

둘째,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에 맬서스적 잔재가 남아있다는 브레너의 주장은 맑스를 잘못 읽은 것이다. 브레너는 신리카아도주의자들의 공황론을 배격하면서도 맑스의 공황론에 대한 오키시오(N.Okishio) 같은 신리카아도주의자들의 비판을 수용한다. 또 브레너는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자본의 가치구성의 고도화에서 찾는 맑스의 이윤율 저하 이론을 생산성위기론과 동일시하여 ‘신맬서스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맑스는 이윤율의 저하를 생산성 저하와 관련시키기는커녕 반대로 생산성 상승의 결과라고 보았으며, 바로 이 점에 맑스의 이윤율 저하 이론과 맬서스-리카아도의 이윤율 저하 이론의 차이가 있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반적 이윤율의 점진적인 저하경향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점진적 발달의 표현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특유한 표현 - 에 불과하다. ...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발달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진전에 따라, 한편에서는 이윤율의 점진적 저하 경향으로 표현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취득되는 잉여가치 (또는 이윤)의 절대량의 끊임없는 증대로 표현된다. ... 노동이 보다 덜 생산적으로 되기 때문에 이윤율이 저하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보다 더 생산적으로 되기 때문에 이윤율이 저하하는 것이다. 잉여가치율의 증가와 이윤율의 저하는 노동생산력의 증대를 자본주의적으로 표현하는 특수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주)

*주) ■■K.Marx, ■자본론■ 제3권, 비봉출판사, 1990, pp. 253, 265, 285.}}

셋째, 브레너는 신리카아도주의, 조절이론 및 사회적 축적구조 학파의 이윤압박설을 비판하지만, 그 이론구조는 임금상승-이윤압박설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신리카아도주의 등의 이윤압박설에서는 이윤압박의 원인이 아래로부터 치고 올라오는 임금 상승이라면, 브레너의 경우 이윤압박은 위에서 내려 누르는 가격 저하 압력이므로, 이윤압박의 방향만 다를 뿐, 문제설정의 구조는 동일하다. 게다가 신리카아도주의의 임금상승-이윤압박설도 브레너와 마찬가지로 국제적 경쟁의 요인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예컨대 그린(A.Glyn) 등은 자본가들이 임금상승을 가격인상으로 전가하여 이윤압박을 회피할 수 없는 까닭을 국제적 경쟁이라고 보고 있다.*주1) 브레너는 또 클린턴 시기 미국에서 이윤율이 상승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저임금경제’의 출현 즉 실질임금의 저하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향후 세계경제가 장기불황에서 장기불황으로 반전될 수 있을지의 여부도 이와 같은 ‘저임금경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의 여부, 즉 임금억압을 계속할 수 있을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주2) 결국 임금상승-이윤압박은 부정하지만, 임금억압-이윤증대는 인정하는 셈이며, 이는 브레너의 이론구조가 임금상승-이윤압박설의 문제설정과 동일함을 보여 준다.

*주1) ■■A.Glyn et.al.,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김수행 역, 동아출판사, 1993, p.269.}}

*주2) ■■그러나 말로이와 포스트는 브레너와는 달리 오늘 미국경제에서 이윤율의 상승과 호황이 저임금 노동의 착취가 아니라 1980년대 이후 자본의 구조조정과 산업구조 고도화에 기인한 측면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샤이크에 따라 오늘 미국경제의 호황은 1990년대 중반이후 시작된 세계적 장기호황의 한 국면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1968~1973년 시작된 세계자본주의의 장기불황이 1990년대 들어 장기호황 국면으로 반전되었으며, 1997~199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는 새로운 세계대공황의 징후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세계적 장기호황 국면의 한 에피소드로 간주한다. M.Malloy and C.Post, op.cit. 그러나 모슬리와 헨우드는 브레너를 지지하면서 미국의 이른바 ‘신경제’는 ‘세계사상 유례없는 장기호황’이기는커녕 실물적 기초가 결여된 거품 호황적 성격이 강하며, 투자가 아니라 부채에 기초한 소비가 주도하고 있는 호황이며, 이는 특히 세계의 불황 지역에서 미국으로 화폐자본이 집중된 결과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F.Mosely, “The United States Economy at the Turn of the Century: Entering a New Era of Prosperity,” Capital and Class, No. 67, 1999; D.Henwood, “Booming, Borrowing, and Consuning: The U.S. Economy in 1999,” Monthly Review July-August 참조.■■

넷째, 고정자본과 이윤율의 저하경향에 관한 브레너의 논의도 문제가 있다. 브레너는 경쟁 격화에 따라 저하한 이윤율이 평균 이하 생산성의 자본이 폐기되면서 다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저하하는 이유를 고정자본의 제약에서 찾는다. 고정자본의 제약 때문에 신기술의 도입은 이윤율의 상승이 아니라 저하를 결과시키고 또 이윤율의 저하가 상당 기간 계속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브레너는 고정자본에 대한 이윤율과 유동자본에 대한 이윤율을 구별한 다음 단기 혹은 중기에 있어 자본축적의 직접적 지표로 되는 것은 ‘유동자본에 대한 이윤율’이라고 한다. 브레너는 평균 이하 생산성의 자본도 고정자본 비용은 이미 지불되었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유동자본에 대해서 평균이윤율을 취득할 수 있는 한 계속 존속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동자본에 대한 이윤율이란 개념 자체가 분석적으로 의미있는 개념이 될 수 있을지가 의문시될 수 있다는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총자본이 평균 이하의 이윤율 밖에 수취하지 못하는 조건에서는 유동자본에 대한 이윤율도 중장기적으로 평균이윤율 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자본축적에 관건이 되는 것은 평균이윤율이라기 보다는 ‘양’(positive)의 이윤율이다. “중요한 것은 이윤율이 저하한다 하더라도 ‘양’이기만 하면 이윤이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이다.”*주1) 즉 이윤율이 ‘음’(negative)이 아니라 ‘양’인 한 자본축적은 계속될 수 있다. 신기술 저비용 기업의 진입에도 불구하고 유동자본에 대해 평균이윤율을 획득할 수 있는 한, 구기술 고비용 기업이 중장기까지 존속할 수 있다는 브레너의 주장은 기업의 부단한 흥망과 진입 퇴출이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경쟁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아니다. 신기술 저비용 기업의 진입에 따라 구기술 고비용 기업의 퇴출, 폐기가 이루어지는 속에서도, 기술적으로 차별화 계층화된 자본의 불균등발전은 이윤율의 저하경향을 필연적인 것으로 한다.*주2) 고정자본의 제약 때문에 이윤율이 저하하여 불황이 초래되기보다는, 거꾸로 불황기의 낮은 이윤율이 잔존기업의 경쟁을 격화시켜 낡은 고정자본의 폐기를 촉진한다고 보아야 한다.

*주1) ■■B.Fine et.al., op.cit., p. 56.}}

*주2) ■■이에 대한 논증으로는 G.Reuten, “Accumulation of Capital and the Foundation of the 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Fall,”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Vol.15, No.1, 1991 참조.■■

다섯째, 브레너는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으로 환율변동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 브레너는 ‘엔고,’ 마르크화의 가치상승이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일본과 독일 경제의 위기로 파급되고 나아가 세계경제위기를 결과시킨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파악한다. 즉 ‘엔고’와 마르크화의 가치상승이 일본과 독일 제품에 가한 가격 저하 압력으로부터 일본과 독일에서 이윤율 저하와 경제위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환율변동이 미국에서 시작된 이윤율 저하를 독일과 일본으로 확산시켜 세계경제위기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율은 본질적으로 가치의 국제적 이전 및 재분배기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가치생산의 모순에 기인한 공황의 원인을 환율변동에서 찾을 수는 없다. 1995년 이후 엔-달러화 환율의 역전 (‘엔저,’ ‘달러고’)에서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을 찾는 것도 지나치게 피상적인 분석이다.

(3) 방법의 문제

브레너는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범주들이 아니라 부르주아 경제학의 범주 및 통계들을 그대로 이용하여 세계경제위기를 분석하고 있다. 맑스의 노동가치론의 범주들은 찾아 볼 수 없다.*주) 외관상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의 주요 범주의 하나인 이윤율이 핵심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브레너의 이윤율은 맑스의 이윤율과 전혀 다르다. 예컨대 맑스의 이윤율의 결정요인은 자본의 가치구성, 잉여가치율, 및 가변자본의 회전수인데 반해, 브레너의 이윤율의 결정요인은 ‘이윤몫’과 ‘산출/자본 비율’이다(p.6). 브레너 논문에서 잉여가치라는 개념은 찾아 볼 수 없는 반면, 부르주아 경제학에 특유한 이데올로기적 개념인 ‘인적자본,’ ‘자본의 생산성’ 등의 개념은 무비판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 ■■“브레너의 접근이 취약한 것은 가치론의 결여 때문이다.” 왜냐하면 “가치론 없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정당한 계급분석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B.Fine et.al., op.cit., pp.81, 78.}}

브레너는 또 국제적 경쟁 격화에 따른 국제적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의 누적이 세계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는 결국 국민경제적 수준에서 보면 외인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각국 경제 위기의 근본원인이 각국 국민경제 내부가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경쟁과 과잉생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브레너는 1968~1973년 이후 세계경제위기는 미국경제의 불황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는 독일과 일본 상품의 미국시장 침투에서 초래되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제조업 부문 수익성 문제의 원인은 절대적 의미에서 비용의 증가율이 아니라 그들의 주요 경쟁국들에 의해 세계시장에 부과되는 가격에 비교한 비용의 증가율이다”(p.103). “비용 효율이 낮은 미국 생산자들이 경험한 수익성의 저하는 선진자본주의 경제 전체에서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의 증대의 표현이다”(p.111). 결국 브레너는 독일과 일본 및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수출지향적 공업화가 세계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셈인데, 이러한 공황 외인론은 맑스의 공황론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4. 맺음말

이상에서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이 맑스의 공황론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브레너의 논문에서 “맑스의 기획이 진정으로 계승자를 발견했다”든지 브레너의 이 논문이 노벨 경제학상 감이라는 『신좌익평론』의 편집자 블랙번(R.Blackburn)의 평가는 지나친 과찬이다. 필자가 보기에 브레너의 논문에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것은 맑스주의와 무관한 제도주의 개량주의의 정치이다.

브레너의 제도주의적 입장은 일본과 독일에서 그리고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에서 후진성의 이득이 구현될 수 있었던 이유를 계급모순이 아니라 이들 나라에 특유한 ‘발전주의 국가’에서 찾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브레너는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출현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가-기업-은행의 네트워크와 산업정책 등의 요인을 강조하는 암스덴과 웨이드의 제도주의적 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p.150). 브레너는 전에도 미국에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대립을 강조하면서 클린턴이 집권후 자신의 공약인 일본식 산업정책의 도입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던 이유를 금융자본의 헤게모니에 대한 굴복에서 찾고, 이를 안타까와 한 적이 있었다.*주)

*주) ■■R.Brenner, “The Politics of U.S. Decline,” Against the Current, No.56, 1995.}}

자본주의 이행 논쟁에서 브레너 자신이 제기했던 계급투쟁의 관점은 세계경제위기론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완전히 누락되어 있다. 브레너는 임금상승-이윤압박설의 비판에 주력한 나머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이 체제 자체에 대한 어떠한 위협도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주) 불황 국면에서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사수를 위한 경제투쟁조차도 체제 그 자체의 변혁을 위한 투쟁의 가교가 될 수 있다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이행기강령’ (Transitional Program)에 대한 문제의식은 브레너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주) ■■다음과 같은 브레너의 서술에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의의에 대한 불신과 비관주의마저 엿보인다. “경제투쟁에서 노동자들의 승리는 상대적으로 국지화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노동자의 힘의 성공적 행사로부터 결과되는 수익성의 저하 역시 국지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주들에게는 살아 남기 위해서는 평균이윤율을 취득해야 한다는 전반적인 체제 전체 규모적 압박이 가해진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이득이 그들의 고용주의 이윤율을 평균 이하로 저하시키는 한, 그것은 자본축적을 둔화시키게 되고, 그리하여 중기적으로는 노동자들이 이전에 쟁취한 이득을 소멸시키는 조건들을 만들어 낸다. 노동자들의 행동은 주어진 지역에서는 확실히 수익성을 감소시키지만, 일반적으로는 공황을 야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의 행동은 일반적으로 공간적으로 일반화된 (즉 체제 전체 규모의) 그리고 시간적으로 장기간의 수익성 저하를 초래할 수 없기 때문이다.”(p.21).}}

브레너는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좌파의 대안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위기의 원인을 금융부문이 아니라 생산 부문 즉 국제적 과잉생산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브레너의 경우 위기에 대한 좌파의 대안은 국제적 생산 통제 같은 것으로 될 것이다. 파인도 지적했듯이, “브레너의 접근은 순전히 (매우 소수의) 초거대 자본가들간의 조절의 실패 (coordination failure)를 문제 삼는 것”이며, “공황은 단지 자본가들의 투자계획이 시장을 통해서 어느 정도 조절되는가의 문제”*주1)이기 때문에, “브레너의 설명의 분명한 정책적 함축은 수요를 충분히 높은 수준으로 설정하여 고정자본의 갱신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국제적 케인즈주의 정책의 부재를 개탄하는 것이다.”*주2)

*주1) ■■B.Fine et.al., op.cit., p. 58.}}

*주2) ■■Ibid., p.83.}}

물론 브레너의 국제적 생산 통제 접근은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을 국제금융자본의 투기적 운동이라고 주장하면서 국제단기자본의 투기적 운동에 대한 통제 (‘토빈세’의 도입 등)를 주장하는 ‘개혁적’ 케인즈주의자들의 금융자본 통제론보다는 더 진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제적 생산통제 접근은 결국 국가자본주의 반혁명의 길로 판명된 ‘일국사회주의’로 되돌아 가는 것이며 맑스주의 정치, 즉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에 기초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와 같은 국제적 생산 통제는 세계적 조절을 통한 공황 회피 가능성을 인정하는 ‘개혁적’ 케인즈주의의 입장과 공명하는 것이다. 미국경제 위기의 원인을 독일과 일본 및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수출 공세에 찾는 브레너의 논의는 노동자계급 국제주의와는 무관한 사회애국주의로 경도되는 경향조차 보인다.*주)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이 맑스의 공황론을 기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자계급 국제주의까지 부정하는 정치적 함축을 갖는 것은 사실 브레너와 그가 속한 ‘연대’ 그룹의 ‘일국사회주의,’ 관료집산주의적 입장을 고려한다면 조금도 이상스러울 것이 없다. 요컨대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신자유주의 대 제도주의’의 쟁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동아시아 경제위기 이후의 지배적인 경제담론 구도를 깨고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과 대안의 마련을 위한 본격적인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의 방법과 정치를 부정한 결과, 제도주의와 ‘개혁적’ 케인즈주의 혹은 ‘일국사회주의’의 처방으로 수렴하여 결국 지배적 경제담론 구도의 한 요소로 기능하게 되고 말았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주) ■■따라서 다음과 같은 킬미스터의 비판은 정당하다. “브레너의 논문에서 도출될 수 있는 최상의 정치적 결론은 개량주의적인 것이다. 즉 미국과 유럽연합 및 일본은 잘 협력해서 생산을 조절하고 시장을 평등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따위의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정치적 결론은, 각국 경제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본성 자체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생산자들 때문이라는 반동적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브레너의 논의는 현재 경제위기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인 국제적 노동자계급의 연대의 형성을 방해하고 있다.” A.Kilmister, op.c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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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노동의 인간학과 맑스주의

* 진보평론 제 1호(2003. 2. 14)  / 노동의 인간학과 맑스주의

진보평론  제1호
이진경(서울대학교 강사)

1.머리말

인간이란 말에 스스로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니, 인간만이 존재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느니, 인간만이 사유할 수 있다느니 하는 생각은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특권적인 위상을 부여해준다. 그것은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났음에 기쁨을 주고 위안을 준다. 인간중심주의, 혹은 인간주의 내지 휴머니즘이라는 말에 대해 인간들이 애착을 갖고 옳다는 확신을 갖는 것은 이 점에서 충분히 이유가 있다 할 것이다.

‘인간’만큼이나 ‘노동’ 역시 우리의 관심사다. 그런데 여기서는 약간 다른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노동하는 사람이 노동이라는 말에 애착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이 모든 가치의 원천이라고 하는 생각,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며,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왔다는 생각, 나아가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생각은 노동자에게 특권적인 위상을 부여해준다. 이런 생각을 보통 ‘노동의 인간학’이라고 부른다. 그것이 노동자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이러한 생각을 지지하고 이 생각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것은 단지 노동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자와 대립 내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자본가들이 노동에 대해 갖는 애착과, 그것에 부여하는 특권은 노동자가 그렇게 하는 것 이상이다. 그들은 심지어 이러한 생각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자신들이 하는 모든 활동을 ‘노동’이라고 정의하려 한다. ‘위선’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진지하다.

실제로 이러한 노동의 인간학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만들어진 것은 부르주아 사상가들에 의해서였다. 예를 들면 노동을 모든 가치의 척도로 정의함으로써 정치경제학의 탄생을 알린 사람은 스미스(A. Smith)였고, 그것이 모든 가치를 생산하는 가치의 원천이라고 말한 사람은 리카르도(D. Ricardo)였다. 또 이러한 노동 개념을 확장하여 절대정신의 활동에까지 적용한 사람은 헤겔(G. Hegel)이었다. 그는 노예의 노동이야말로 세상의 문명을 만들어가고 지배하는 힘이며, 그것이 주인의 인정을 받는 진정한 주인이 되는 기초라고까지 말한다. 흔히들 말하듯이,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청년 맑스의 명제는 이러한 스미스나 리카르도, 헤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기 등장한 인물들은 맑스를 제외하고는, 비록 ‘혁명적’이라는 말이 따라붙기는 하지만, 부르주아 사상의 대표자들이다. 통상적인 평가대로 그들은 ‘노동의 인간학’에 기초를 마련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노동자에게 이론적 자선을 베푼 자비로운 사람들이었던 걸까? 아니면 맑스처럼 부르주아 사회에 분노하여 그것의 전복을 꿈꾸며 노동자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었을까? 잘 알다시피 모두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앞장서 기초를 닦았던 저 노동의 인간학이란 그들에게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이러한 의구심은 또 다른 의문을 낳는다. 즉 노동자가 노동의 인간학을 지지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중심주의를 지지하는 것처럼 당연한 것일까? 맑스주의, 혹은 모든 노동자계급의 사상이 노동의 인간학에 기초해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한 것일까? 이 노동의 인간학은 노동자들에게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2.노동의 인간학: 인식론적 배치

스미스가 정치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노동이라는 개념을 모든 부와 가치를 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하지만 노동이라는 말을 사용한 사람은 스미스 이전에도 있었다. 로크(Locke)는 노동이 소유와 관련된 개념이라고 보았고,*주1) 흄(Hume)은 노동을 통해서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려고 했다.*주2) 또 튀르고(Turgot)나 캉티용(Cantillon) 이후 노동의 양은 가치의 측정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경우 노동은 상대적인 것이었고,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환원가능한 척도였으며, 실질적으로 절대적 준거의 역할을 한 것은 의식주와 연관된 사용가치였다. “말하자면 가격의 척도는 식품이었으며, 이 점에서 농업생산과 밀과 토지에 절대적 특권이 부여되었던 것이다.”*주3)

*주1) ■■J. Locke, The Second Treatise of Government, 강정인/문지영 역, ■통치론: 시민정부의 참된 기원, 범위 및 그 목적에 관한 시론■, (까치, 1996), 35쪽 이하.■■

*주2) ■■H. Arendt, The Human Condition, 이진우·태정호 역, ■인간의 조건■, (한길사, 1996), 141쪽.■■

*주3) ■■M.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s, 이광래 역, ■말과 사물■, (민음사, 1987), 267쪽.■■

이들과 달리 스미스는 노동을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인 척도로서 간주한다. 그것은 부를 표상하는 여러 가지 척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부를 비교하고 평가하게 해주는 단일한 척도며, 주관적인 가치평가에 좌우되는 표상의 일종이 아니라 표상의 외부에 있는 객체적이고 불변적인 척도인 것이다.*주)

*주) ■■A. Smith,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김수행 역, ■국부론■, (상), (동아출판사, 1992), 36쪽 이하; M. Foucault, 앞의 책, 268쪽.■■

리카르도는 여기서 좀더 심층으로 밀고 들어간다. 즉 노동은 가치를 측정하는 절대적 단위일 뿐만 아니라, 모든 상품의 가치를 결정해주는 원천이다. 생산활동으로서 노동이 바로 모든 가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가치는 부를 표상하고 표시하는 기호가 아니라, 노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생산물이 되었다. 노동은 척도에서 기원과 생산의 차원으로 그 위상을 바꾼다. 노동은 ‘모든 가치의 기원’이며 생산자라는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제 분석의 중심은 교환에서 생산으로 이동한다. 그 결과 시장이나 교환을 다루는 유통이론에 앞서 가치의 생산을 다루는 생산이론이 일차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주)

*주) ■■스미스와의 이러한 차이는 보통 스미스의 ‘지배노동가치설’과 ‘투하노동가치설’이라는 말로 표시된다. 즉 리카르도는 스미스의 가치 개념이 어떤 생산물이 시장에서 지배할 수 있는 노동량이라고 보는 것을 비판하면서, 어떤 생산물에 투하된 노동량이 상품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함으로써 상품간의 상대적 비교관계에서 가치 개념을 독립시켜 절대화한다(D. Ricardo, 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정윤형 역,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비봉출판사, 1991), 76쪽).■■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환이 나타난다. 그것은 생산자로서 노동 개념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서, 희소성 개념과 관련된다. 이전에 희소성은 소유하지 않은 욕구의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배고픈 자에게는 곡식이 희소성을 가지며, 머물 곳이 없는 자에게는 집이 희소성을 가지고, 일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도구가 희소성을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희소성은 교환과 유통의 이유였다. 반면 리카르도 시대에 희소성은 근본적이고 기원적인 불충분함이다.*주) 즉 노동이나 경제활동이 이 세상이 나타난 것은 인간이 너무 많아져서 토지의 자연적 생산물로는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을 때였다. 맬더스(Malthus)의 인구법칙, 즉 곡식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식량의 부족은 본래적인 문제라는 명제는 이러한 생각을 명확하게 정식화해서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제 희소성은 경제활동 내지 경제학이 작동하게 되는 항상적인 전제조건이 된 것이다. 노동이란 이러한 희소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벌이는 가치생산활동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가치의 유일한 원천이요 기원일 수 있는 것이다.

*주) ■■M. Foucault, 앞의 책, 303쪽.■■

인간이 어떤 적극적인 활동성으로 정의될 수 있다면, 이는 노동의 개념을 통해 정의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사실 헤겔은 이러한 활동성을 ‘외화’(Entäußerung)라는 개념으로 확장하여 일반화하며, 이를 절대정신의 활동을 특징짓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즉 그가 보기에 노동이란 주체의 합목적적 활동이며,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정신’처럼, 주체가 인간이나 어떤 개체가 아니라 주체적 활동 그 자체라면, 노동이라는 개념은 합목적적 활동과정으로 바꾸어 정의해야 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헤겔은 합목적적 과정 자체를 주체로 정의하는 관점으로 발전한다.*주) 이러한 개념이 정신의 현상학에서 정신이 외화하여 자기발전하는 역사적 과정으로, 역사철학으로 이행할 수 있는 핵심적인 계기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 외화라는 개념이 정신현상학이나 논리학을 비롯한 헤겔의 체계 전체를 특징짓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청년 헤겔뿐만 아니라 헤겔 철학 전반을 특징짓는 개념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주) ■■G. Lukcs, Der junge Hegel, 이춘길 외 역, ■청년 헤겔■ 2, (동녘, 1987), 182쪽. 루카치는 이 책에서 청년 헤겔의 중요 저작인 ■정신현상학■의 중심 개념이 ‘외화’라고 하면서, 이러한 개념의 형성에 스미스 등의 경제학이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의 인간학을 가장 극적으로 발전시켰다고 하는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맑스는 이러한 점을 충분히 지적하고 있다. “헤겔은 노동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으며, 대상적 인간...을 그 자신의 노동의 결과로 파악하고 있다.”*주1) 이런 점에서 “헤겔은 근대 정치경제학자들의 관점에 서있다. 헤겔은 노동을 본질로서, 자기를 입증하는 인간의 본질로서 파악한다.”*주2) 그리고 보다시피 여기서 맑스는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고 하는, 노동의 인간학을 응집하는 명제를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주3)

*주1) ■■K. Marx, Ökonomische-philosophische Manuskripte, 김태경 역, ■경제학 철학 수고■, (이론과 실천, 1988), 126쪽.■■

*주2) ■■같은 책, 127쪽.■■

*주3) ■■하지만 알튀세르(L. Althusser)는 여기서 ‘인간’이나 인간의 본질을 정의하는 방식은 유적 존재(Gattungswesen)로 인간을 정의하는 포이에르바하(L. Feuerbach)의 인간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차라리 포이에르바하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L. Althusser, Pour Marx, 이종영 역, ■마르크스를 위하여■, (백의, 1996), 182쪽 이하, 269쪽 이하). 알다시피 이러한 명제는 ‘인간’이라는 말을 피하면서 “인간이란 사회적 관계의 집합”이라는 정의를 제시하는 1845년 이후에는 약화된다(■독일 이데올로기■;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하지만 ‘노동과정’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자본■의 한 부분에서 맑스는 인간과 거미, 혹은 인간과 벌을 대비시키면서 노동을 ‘합목적적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K. Marx, Das Kapital, 김영민 역, ■자본■, I-1, (이론과 실천, 1987), 214~215쪽).■■

헤겔적인 노동의 개념화는 노동과 노동자를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서 포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헤겔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이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인정투쟁에서 패배하여 노예가 된 자는 주인의 의지에 따라 노동을 해야 한다. 그러한 노동의 과정에서 노예는 금욕주의나 회의주의 혹은 불행한 의식에 빠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동을 통해 물질적 세계의 법칙을 파악하고 그것을 통제할 능력을 획득하며, 그것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켜가는 존재로서 자기의식을 획득하게 된다. 즉 자신이 세계의 실질적 주인임을 의식하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주인에게 자신을 노예가 아니라 자립적 의식으로서, 주인으로서 인정받는 것뿐이다. 그런 점에서 “자립적 의식의 진리는 결국 노예의식이다.”*주1) 그 결과 “사물과 자신 사이에 노예노동을 끼워놓은 주인은···그 스스로가 비생산적 위치로 전락하며, 세계사의 변증법에서 노예의식을 그 자신의 의식보다 우월한 위치로 고양시킨다.”*주2)

*주1) ■■G. Lukcs, 앞의 책, 128쪽.■■

*주2) ■■같은 책, 129~130쪽.■■

한편으로 자본의 축적이 가치적인 면에서 노동의 산물인 잉여가치의 축적이며, 소재적인 면에서 죽은 노동의 축적일 뿐이라는 맑스의 명제는, 축적으로 정의되는 자본의 역사, 자본주의의 역사가 노동의 역사고 노동이 실현되는 역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 그 역사는 동시에 노동하는 계급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전복되는 혁명으로 종결되는 역사기도 하다.*주) “자본주의의 조종이 울린다. 착취자가 착취당한다.” 어떤 면에서든 역사란 노동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런 노동과 문명화에 의해 진행되는 발전과 진보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주) ■■푸코는 혁명과 역사에 관한 이러한 관념이 근대의 인간학적 배치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가 보기에 축적으로서 역사란 인간의 유한성을 통해 노동과 축적, 역사를 정의하는 근대적 인간학의 인식론적 배치를 반복하는 것이다. 또한 혁명으로 종결되는 자본주의의 역사란, 이윤율의 저하로 인해 투자와 생산이 안정화되고 부동화(不動化)되는 리카르도의 비관주의에서 보이는, 역사적 유한성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M. Foucault, 앞의 책, 308~309쪽).■■

도식화의 위험이 따르지만, 요약해서 말하자면, 노동의 인간학은 노동이 모든 가치의 기원이고 원천이라는 명제,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명제, 그리고 역사는 노동의 본질을 실현하는 과정이라는 명제로 구성된다. 첫째 명제는 가치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명제로서, ‘가치=노동’이라는 등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노동가치론의 가장 기본적인 공리다. 둘째 명제는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명제로서 ‘인간=노동’이라는 등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노동의 철학의 출발점이다. 셋째 명제는 역사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것이다. 이 역시 ‘역사=노동’이라는 등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역사를 부의 증대, 문명의 진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의 증대로 보는 대부분의 역사철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주1) 또한 노동자계급의 존재 자체에서 혁명의 동력을 발견하고,*주2) 그 혁명에서 역사의 목적/종말을 보는 모든 역사철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주3)

*주1) ■■아도르노나 하이데거는 이러한 역사철학에 반하는 역사철학적 비판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Horkheimer/ Adorno, Dialektik der Aufklärung, 김유동 외 역, ■계몽의 변증법■, (문예출판사, 1995); M. Heidegger, Die Technik und die Kehre, 이기상 역, ■기술과 전향■, (서광사, 1993) 참조.■■

*주2) ■■예를 들면 G. Lukcs, Geschichte und Klassenbewußtsein, 박정호/조만영 역, ■역사와 계급의식■, (거름, 1986), 237쪽.■■

*주3) ■■하지만 노동가치론과 노동의 철학, 역사철학 역시 노동의 인간학의 일부를 이루는 한, 노동의 인간학을 구성하는 세 명제를 순환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의 인간학에서 ‘가치’와 ‘인간’과 ‘역사’는 노동이라는 단일한 개념으로 모이고 응축된다. 이런 점에서 노동의 인간학에서 중심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노동’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것이 노동의 인간학을 평범한 인간주의로 환원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해야할 것이다. 굳이 도식적 대비를 하자면 ‘인간중심주의’와 구분되는 ‘노동중심주의’라는 말을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동의 인간학이 노동자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유일 것이고, ‘인간중심주의’가 비과학의 이름으로 처단되고 난 이후에도*주) 노동의 인간학이 그대로 존속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며, 또한 이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사상과 이론이 노동의 인간학 안에 머무는 이유일 것이다.

*주) ■■L. Althusser, 앞의 책, 272쪽 이하.■■

그러나 노동의 인간학은 단지 노동에 관한 담론이나 이론이 아니라 노동과 다른 개념들이 계열화되는 양상을 특징짓는 것이다.*주) 따라서 중요한 것은 노동이라는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가치’나 ‘인간’, ‘역사’와 같은 핵심적인 개념들이 노동이란 개념과 계열화되는 양상이다. 예컨대 정치경제학은 가치와 노동을 연결하는 선 위에 있다기보다는 가치와 인간, 역사가 노동을 통해 정의되는 입체적 공간 안에 있는 것이다. 노동의 철학 역시 헤겔이나 청년 맑스가 보여주듯이 인간과 가치, 역사가 노동과 계열화되는 공간 안에서 작동된다. 그렇다면 노동의 인간학이란 노동을 정점으로 하여 가치와 인간, 혁명이 반복하여 계열화되는 일종의 인식론적 배치로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주) ■■이러한 계열화 개념에 관해서는 G. Deleuze, Logique du sens, (Minuit, 1969); 이진경, ■들뢰즈: ‘사건의 철학’과 역사유물론■, 서울사회과학연구소 편, ■탈주의 공간을 위하여■, (푸른숲, 1997) 참조.■■

3. 노동의 인간학: 욕망의 배치

이상에서 보듯이 노동의 인간학은 하나의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이론적이든 경험적이든 다양한 문제들을 언제나 노동과, 그리고 그와 결부된 다른 핵심적인 개념들과 관련하여 사고하고 판단하게 하는 포괄적인 인식론적 배치다. 정치경제학은 물론 사회학, 혹은 정치학, 혹은 역사학, 교육학 등 다양한 이론들이 그러한 배치 안에서 사유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선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노동의 인간학은 단지 이러한 인식론적 배치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에 관여하고 그것을 특정한 양상으로 방향 짓고, 사람들의 생각과 욕망, 행동을 특정한 양상으로 반복하게 하는 현실적인 조건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과 ‘가치’의 관계를 통해서, 또 노동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서, 노동과 ‘역사’의 관계를 통해서 작동한다. 여기서는 특히 앞의 두 문제에 집중해서 살펴보겠다.

첫째, 노동과 ‘가치’의 문제. 모든 가치의 본질은 노동이고, 노동은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활동은 노동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공원의 한 구석에서 음악에 맞추어 노래하거나 춤추는 아이들의 활동은 노동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치화되지 않기 때문이고, 가치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먹을 밥을 하거나 찢어진 옷을 꿰매는 활동은 노동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 가치 있는(valuable) 활동임이 분명하지만, 가치를 생산한다고 말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에게 팔기 위한, 교환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활동이 아닌 것이다.

가치란 다른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교환가치를 뜻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행동이 교환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행해진다면 그것은 노동이 된다. 아이들의 춤추는 활동이 가수의 노래를 치장하는 백댄스가 되면 그것은 노동이 된다. 사람들 앞에서 부르던 노래를 클럽이나 스튜디오에서 부르게 되면 교환가치를 생산하며, 따라서 노동이 된다. 밥을 짓는 활동은 식당에서 행해지면 노동이 되고, 바느질은 세탁소에서 하면 노동이 된다.*주)

*주) ■■물론 이러한 밥짓거나 바느질하는 노동이 자본가의 집에서 자본가를 위한 봉사로 행해지면 비생산적 노동이 되고, 상업적인 식당이나 공장, 세탁소 등에서처럼 자본의 가치를 증식시키는 활동으로 행해지면 생산적 노동이 된다. 이런 점에서 “직접적으로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즉 자본을 증식시키는 노동이 생산적이다.”(K. Marx, ■직접적 노동과정의 제결과■, 김호균 편, ■경제학 노트■, 107쪽)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개념에 관해서는 ■잉여가치학설사■, 1권, (아침, 1989), 165쪽 이하를 참조.■■

여기서 노동과 가치의 관계에 기묘한 전도(顚倒)가 발생한다. 즉 어떠한 활동도 가치화되지 못하면, 다시말해 가치로서 인정(recognition)받지 못하면 노동이 되지 못한다. 가치로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본가나 화폐소유자에 의해 구매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활동이 노동이 되기 위해서는 자본가나 화폐소유자에 의해 그것이 구매되어야 한다. 하나의 동일한 활동이 노동이 되게 하는 것은 활동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구매하려는 사람, 곧 자본가나 화폐소유자다.
결국 노동이 가치의 본질이며,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인 한,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합목적적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자본에 의해 구매되는 활동이고, 자본에 의해 결정되는 활동이다. 즉 노동을 노동으로서 정의하는 것은 자본가나 화폐소유자다. 이 경우 노동은 ‘노동력이란 상품의 사용가치’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산자인 노동자는 노동하지 않고선 살 수 없다. 다른 활동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래든, 춤이든, 공부든, 사랑이든 모든 종류의 활동이나 활동에 대한 욕망은, 노동을 통하지 않고선, 노동을 가치화함으로써 획득하는 화폐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 모든 활동과 욕망은 한편으로는 생존의 조건인 노동 이후로 미루어지고, 노동에 대한 잔여적인 영역으로, 일종의 ‘레저’로 밀려난다. 이를 위해서도 노동은 필수적인 조건이고 전제적인 욕망이다. 다른 한편 그 모든 활동을 어떻게든 가치화될 수 있게 하여 노동으로 변환시키고자 하게 된다. 이는 모든 욕망이 노동의 욕망으로, 가치화하려는 욕망으로 환원됨을 의미한다.

가치를 생산하고 싶다는 욕망,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가치 있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대신하고 대체한다. 그런데 그러한 욕망은 앞서 말했듯이 정확하게 자신의 활동을 판매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자본에 의해 구매되어 자본에 포섭되고 싶다는 욕망. 이런 점에서 ‘노동의 욕망’은 분명히 자본의 욕망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이러한 자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삼아야 한다. 자신의 생존, 가족의 생존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여기서 노동은 노동자 자신의 욕망이 된다.

한편 자본가는 말한다. 노동하지 않는 자, 다시 말해 자본 내지 화폐와 교환될 만한 활동을 하지 않는 자는 먹을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노동 무임금’을 외치는 자본가의 유명한 구호가 나온다. “노동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이는 노동력을 구매하여 잉여가치를 생산하고자 하는, 그것을 자신의 의지 아래 복속시켜 움직이게 함으로써 자본을 증식시키고자 하는 자본의 욕망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노동 없이는 먹고 살 수 없기에 노동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에 자신의 노동력과 노동의사를 판매하는 행위 없이는 먹고 살 수 없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조건이야말로 노동하지 않는 자는 먹을 수 없다는 태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란 것이다. 이른바 ‘본원적 축적’이라고 불리는 과정이, 토마스 모어가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표현했던 그 끔찍한 과정이, 요컨대 직접생산자를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해내는 과정이 이러한 욕망의 배치가 작동하게 되는 현실적 조건을 이룬다는 것은 잘 아는 바와 같다.*주)

*주) ■■하지만 이는 노동의 인간학 이전에 이미 진행되었던 과정이다. 즉 시간적으로 ‘본원적 축적’이 노동의 인간학에 선행한다. 다시 말해 ‘본원적 축적’이 모든 욕망을 노동의 욕망으로 환원하게 하는 현실적 조건이라면, 노동으로써 가치를 정의하고 노동의 욕망을 가치화하려는 욕망으로 정의하는 노동의 인간학은 그러한 조건을 표현하는 ‘표현형식’이라고 하겠다.■■

둘째, 노동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본질이 노동이라고 하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노동하는 자만이 인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인간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통해서만 자신의 인간다운 본질을 구현하는 보람찬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동하지 않는 자, 예컨대 실업자, 게으름뱅이, 부랑자, 구걸로 편안히(?) 돈을 벌려는 자, 가치화되지 않는 활동, 예컨대 노래나 춤, 그림, 게임 등등에 미쳐있는 자는 모두 ‘인간’이 아닌 것이다.

16~17세기, 혹은 이른바 ‘본원적 축적’이 시작되었던 그 이전 세기부터 인간에 속하지 않는 이 ‘사회적 해충’들을 교화하여 인간으로 만들려는 거대한 노력이 유럽 전역에서 행해진다. 부랑을 제한하고 그것을 처벌하는 이른바 ‘빈민법’은 그것 가운데 하나다. 빈민의 이름으로 불리던 그 법들은 그들을 ‘자유의지’에 의한 범죄자로 취급하였으며, 그들이 노동하지 않는 것을 그들의 의지의 결여에서 찾았다.*주1) 따라서 그들은 “짐차 뒤에 결박되어 몸에서 피가 흐르도록 매를 맞고 그 뒤에는 그들의 출생지나 그들이 최근 3년간 거주하던 곳으로 돌아가서 ‘노동에 종사’해야 했다... 그리고 부랑자로 다시 체포되면 태형에 처하고 귀를 절반 자르며, 세 번 체포되면 중죄인으로서 ‘공동체의 적’으로 규정되어 사형에 처해졌다.”*주2) 1547년 영국의 법에 따르면, ‘노동하는 것을 거절하는 자’는 그를 게으름뱅이라고 고발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했다.*주3)

*주1) ■■K. Marx, ■자본■, I~3, 824쪽.■■

*주2) ■■은 책, 824쪽.■■

*주3) ■■은 책, 824쪽.■■

또 파리 시민 100명 당 1명 꼴로 ‘종합병원’이라는 이름의 수용소에 가두었던 ‘거대한 감금’ 역시 이러한 ‘해충’들을 인간세계로부터 격리하여 인간으로 개조하거나 교화하려는 조치 가운데 하나였다.*주1) 그 수용소에서, 경제적으로는 실패였음이 판명난 노동을 그들에게 강제했던 것은,*주2) 그것이 그들을 인간으로 ‘구제’하기 위한 시설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감금과 더불어 강제노동은 인간과 노동의 등식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노동하는 자만이 인간이라는 원칙이 자본주의적 실천이성의 요청으로 확립된다. 그렇다면 노동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노동의 인간학의 공리적 명제는 이러한 요청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노동을 통해서 인간을 정의하고, 노동을 통해서만 인간으로 만들려는 자본의 욕망과 과연 무관한 것일까?

*주1) ■■M. Foucault, Madness and Civilization, (Tavstock, 1967), 38쪽 이하.■■

*주2) ■■같은 책, 232쪽.■■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자본은 축적과 함께 이러한 ‘비인간’을 스스로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즉 자본의 축적은 유기적 구성의 상승을 야기함으로써 산 노동을 끊임없이 죽은 노동으로 대체하며, 인간의 대열에 들어 노동하고 있던 사람들을 노동하지 않는 비인간의 세계로 끊임없이 몰아낸다.*주1) 과잉인구는 아직 취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 실업화하려는 압력을 일상적으로 행사한다. 이를 ‘실업화 압력’이라고 부르자. 그것은 자본에 대해 대항하거나, 자본에 복종하지 않는 자, 자본의 요구에 적절하지 않게 된 자를 ‘비인간’이 될 운명으로 내몰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노동자 전체로 하여금 죽음에 근접한 그 끔찍한 운명을 항상적으로 떠올리게 함으로써 자본에 대한 복종과 충성을 강요한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선 어떠한 형태의 노동에도 적응해야 하고, 갑작스런 업무나 배치의 변경에도 순응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자는 무능력하거나 불성실한 자로서 쫓겨날 각오를 해야 한다.*주2) 이로써 자본은 그 구체적인 물적 형태와 기술적 형태, 그에 요구되는 노동의 형태에 무관하게 노동력을 채취하여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한다. 노동하려는 자, 인간의 세계에 남아있기를 원하는 자는 어떠한 종류의 일이나, 어떤 고통스런 규율도 감수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주1) ■■K. Marx, ■자본■, I~3, 715쪽 이하.■■

*주2) ■■이에 대해 맑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실업화 압력은]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를 그 비열하고 가증스런 [자본의] 독재에 굴복시키고, 그의 전체 생활을 노동시간으로 전환시키며, 그의 처자를 저거노트의 수레바퀴(Juggernaut-Rad) 밑에 던져 넣는다...[그리하여]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을 언제나 축적의 규모 및 힘과 균형을 유지하게 하고 있는 그 법칙은 헤파이토스의 쐐기가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에 못박은 것보다 더 단단하게 노동자를 자본에 못박는다.”(같은 책, 729~730쪽)■■

과잉인구는 또 ‘인간’의 대열 안에 들어가기 위한, 혹은 그 안에 살아남기 위한 노동자들의 경쟁을 만들어낸다. 이 경쟁은 노동자들 사이에 적대적 거리를 만들어낸다. 다른 노동자는 모두 자신의 경쟁자요 적이다. 노동자로,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고용을 위한 노력은 그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신 스스로 선택한 것이요 자신의 욕망이 된다.*주) 예컨대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욕망, 컴퓨터를 잘하고 싶다는 욕망은 사실상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는 자본의 요구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에 의해 구매되고 가치화되는 한에서만 먹고살 수 있고, 그런 한에서만 활동할 수 있기에 그것은 노동자 자신의 능력이요 나 자신의 욕망이다. 반면 실업이나 실직은, 자본이 요구하는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을, 다시 말해 노동자 자신이 무능력함을 뜻하는 것이 된다.

*주) ■■맑스는 제임스 스튜어트를 인용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노예제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노예였기에 노동을 강요당했다. 지금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욕망의 노예기에 노동을 강요당한다.”(같은 책, 731쪽)■■

결국 노동하는 자만이 인간이라는 노동의 인간학의 명제는, 노동을 통해서만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조건 아래서, 노동자가 자본의 요구를 자신의 욕망으로 삼게 만드는 욕망의 배치를 작동시킨다. 우리는 이 욕망의 배치 안에서, 자본이 요구하는 능력과 자질을 자신의 신체에 새기게 된다. 취업하기 이전부터, 취업한 이후에도, 그리고 취업에 실패하거나 취업에서 탈락한 경우에도.

요컨대 욕망의 배치로서 노동의 인간학이란 자신의 활동을 가치화하고자 하는 욕망의 배치고, 자본이나 화폐소유자에게 자신의 능력을 팔고자 하는 욕망의 배치며, 이렇게 하여 정의되는 노동을 통해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의 배치다.

이리하여 노동의 인간학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두 개의 축에서, 노동중심주의의 인식론적 배치의 뒤편에서 우리는 자본의 욕망 내지 요구를 노동자가 자신의 욕망으로 삼게 하는 욕망의 배치를 발견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부르주아의 사상가들이 노동의 인간학을 구성하는데 진심으로(!) 몰두했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그들이 노동의 인간학에 몰두했던 것은 위선도 아니었고, 노동자에 대한 동정도 아니었으며, 순수 진리에 대한 욕구도 아니었다. 그것은 정확하게도 자본의 욕망이나 요구를 노동자 자신의 욕망으로 삼게 만드는 욕망의 배치를 구성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노동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는 인식론적 배치로서 노동의 인간학은, 가치화하는 한에서만 노동이 된다는 자본주의의 조건에서, 또 노동하는 자만이 인간일 수 있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조건에서 자본의 욕망을 노동의 욕망으로, 자본의 요구를 노동자의 욕망으로 대체하는 욕망의 배치로서 작동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만큼 인식론적 배치로서 그것이 보여주는 노동에 대한 애정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욕망의 배치로서 그것은 자본의 욕망에 따라 노동자의 삶을 포섭하는 양상 또한 그만큼 강렬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인식론적 배치로서 노동의 인간학이 보여주는 면모와 욕망의 배치로서 그것이 보여주는 면모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눈앞에서 보지만 결코 믿을 수 없다.” 특히나 인식론적 배치 안에서 노동이나 인간, 가치, 역사 등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사람에게, 그것이 작동시키는 욕망의 배치란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혹시 그것이 맑스가 노동의 인간학을 정립한 이래 수많은 맑스주의자들이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닌지?

그것은 아마도 노동자가 노동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간주하는 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배치일 것이다. 바로 그것이 그러한 욕망의 배치 아래서 자본의 요구를 자신의 욕망으로 삼고, 자본의 시선으로 자신의 신체를 보는 우리 자신의 습속을 형성했던 ‘초험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만큼 자본의 권력을 우리의 신체, 우리의 시선, 우리의 욕망에 대해 작용시키는 권력의 배치기도 하다. 그렇다면 자본의 지배를 폐기하고자 한다면, 자본의 권력을 전복시키고자 한다면, 이미 우리 자신의 욕망이 되어버린 그 자본의 욕망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자본의 욕망을 우리 자신의 욕망으로 만드는 저 노동의 인간학이라는 욕망의 배치를 변환시켜야 하는 것은 아닐까?

4. 노동의 인간학과 맑스주의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명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노동의 인간학을 통해 작동하고 있는, 그래서 그러한 이름으로 불렀던 욕망의 배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것과 인식론적 배치로서 노동의 인간학 사이에 있는 거리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했다. 먼저 앞의 두 명제로 잠시 되돌아가자.

먼저, 가치의 본질을 노동으로 환원하는 노동가치론의 공리적 명제가 자본주의라는 조건에서 모든 활동을 가치화하려고 하는 욕망, 노동의 욕망을 생산함을, 그리고 모든 욕망이 그 욕망으로 환원될 수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노동하지 않는 자,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부르주아지의 적대적 요구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았다.

그런데 노동가치론은 ‘무노동 무임금’을 주장하는 부르주아지의 이 주장을 근본적으로 반박할 수 있을까? 임금은 노동력 재생산비용이라는 논리만으로 그러한 반박에 충분할까? 예컨대 실업자들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그들에게 노동력 재생산 비용인 임금을 주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노동가치론의 저 공리적 명제를 전제하는 한, 그들은 노동하지 않는 자고, 따라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임금을 받는다면, 노동하는 사람은 대체 바보란 말인가?’ 이게 단지 부르주아지만의 생각일까?

우리는 노동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이 끔찍한 주장을 근본에서 뒤집어야 한다. 다시 말해 노동하지 않는 자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즉 노동을 하든 안 하든 먹고 살 수 있는 비용, 즉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사회적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물론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노동에 대해 별도의 임금을 추가로 지급하려 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 경우 최소한의 임금에 경제적으로 만족하면서 자기가 하고싶은 활동을 하고 살거나, 아니면 좀더 경제적으로 나은 생활을 위해 노동을 하거나 하는 판단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노동은 비로소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 될 것이다.

활동을 가치화해야 한다는 노동의 강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그것은 가치화를 통해서만 활동이 노동이 되는 현실적 조건을 돌파해야 함을 뜻한다. 바로 그런 만큼 그것은 가치화되는 활동만을 노동으로 정의하는 이론적 명제를 돌파해야 함을 뜻한다. 노동의 인간학이라는 인식론적 배치에서 벗어나는 것.

혹은 정반대의 길도 있다. 그것은 모든 활동이 노동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는 것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화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배우는 것도, 혹은 음악을 듣는 것도, 심지어 산소를 생산하는 나무들의 활동까지도 모두 가치화하는 것이다. 이는 그런 활동이 생산한 모든 ‘가치 있는 것’(the valuables)에 대해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현재의 노동가치론에 따르면 정치가나 국회의원들의 활동은 아무런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들의 행동이 어떻든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가사노동을 하는 주부나 공부하는 학생들, 창작을 위해 사색하는 예술가들의 활동도 이 사회가 존속하는데 긴요한 활동들이다. 나무들이 대기를 정화하고 물이 대지를 정화하는 활동 또한 다르지 않다. 따라서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활동을 하도록, 그 활동의 내용에 상관없이 최소한의 임금--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사회적으로 지급하는 것, 나무들의 생산활동에 대해서도 그 결과를 소비한 자들이 예컨대 산소세 형태로 나무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국회의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보다 결코 조금도 부당하지 않다. 이 길을 따르는 경우에는 노동과 가치의 등식을 해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가치를 오직 교환가치로 정의하는 또 다른 정의에 대해, 활동의 가치를 오직 상품성으로 평가하는 정의에 대해 근본적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두 번째로, 인간의 본질을 노동으로 환원하는 명제가, 노동하지 않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는 부르주아적 실천이성의 요청에 상응한다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비인간화의 위협과 동일한 실업화 압력을 통해서 자본의 요구를 노동자 자신의 욕망으로 삼게 만든다는 것을 보았다.

실업 이후 자신감을 잃거나 무력감에 빠지는 사람들, 혹은 자신의 무능력이나 ‘비-인간됨’을 보이는 듯해서 실직했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낮에 산을 오르는 사람들, 지금도 끔찍한 수용시설에 갇혀 ‘인간’이 되는 고통을 감수하며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속에서 노동하는 자만이 인간이라는 명제의 구체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반면 노동하지 않는, 따라서 가치를 생산하지 않고 임금도 받지 못하며, 그래서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이나 여성들의 모습에서 그 명제의 구체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노동을 통해서만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을 강제하는 현실적 조건을 돌파해야 한다. 다시 말해 노동의 중단이 ‘인간적’ 삶의 중단 혹은 삶 자체의 절단을 뜻하는 자본주의적 강제--경제적 강제--의 조건을 돌파해야 한다. 그리하여 노동 아닌 다른 모든 활동에서도 ‘인간’으로서 즐거움과 기쁨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실업에 대해 별다른 동요 없이 덤덤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만큼 취업이나 승진에 대해서도 충분히 덤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또한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이론적 등식을 돌파해야 하며, 그리하여 노동을 하든 않든 충분히 동등하게 인간일 수 있어야 한다. 노동하는 자 스스로 노동하는 자만이 인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고, 노동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하며, 인간이 되기 위해 노동을 하고자 하는 욕망의 배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상에서 우리가 주장한 것이 또 다른 종류의 인간주의를 개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노동과 비노동의 구별을 제거하자는 것이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제거하자는 것이며, ‘노동’과 ‘인간’의 강박에서 벗어나자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노동과 인간의 개념, 그런 욕망의 배치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나 가치, 역사를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환원하는,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위안으로서 노동중심주의를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것, 그리하여 노동의 인간학을 통해 작동하는 욕망의 배치를 변환시키는 것이다.

이는 맑스주의의 과거를 현재적 상황 속에서 검토하고, 그것을 통해 맑스주의의 미래를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하려는 하나의 문제설정 방식이다. 그것은 노동의 인간학에서 벗어나서 맑스주의를 새로이 재구성하고 변환시키고자 하는 문제설정이다. 하지만 이는 노동자계급에게 던지는 성급한 작별인사가 결코 아니고,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나 사소한 문제들 속으로 한없이 빠져 들어가는 맹목적 함몰도 아니며, 맑스나 맑스주의에게 던지는 냉정한 배신의 칼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노동에 관한 문제, 자본주의에 관한 문제, 혹은 맑스주의적 문제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하나의 변환을 시도하고자 함일 뿐이다.

중요한 개념들을 노동으로 환원하는 이론적 배치가 반드시 노동의 문제를 올바로 다루는 방법을 뜻하지는 않는다. 마치 모든 것을 인간이라는 개념으로 환원하는 이론적 배치가 인간의 문제를 올바로 제기하고 해결하는 방법은 아닌 것처럼. 마치 모든 것을 생명의 개념으로 환원하는 것이 생명과 관련된 문제를 올바로 제기하고 해결하는 방법은 아닌 것처럼. 여기서 제기된 노동의 인간학에 대한 비판이 정치경제학이나, 맑스주의 철학, 혹은 맑스주의 역사학을 모두 쓸모 없으니 던져 버리자는 것을 뜻하지는 않으며, 또 그것들의 기존 연구가 전적으로 무효하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그것은 노동과 인간, 가치라는 개념들로 짜여진 인식론적 배치 안에 머무는 한 그 성과들이 축소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며, 그 배치가 그 연구들에 대해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 한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고, 그 연구들이 나아갈 수 있는 풍부하고 다양한 방향들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개념이나 주제를 노동으로 환원하는 것, 혹은 노동을 모든 이론적 사유의 근거(Grund)로 삼는 것, 노동이라는 개념이 사유의 진보성과 혁명성을 보증해 주리라는 생각, 맑스주의의 정통성이나 통일성을 노동이라는 기초개념에서 확보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바로 여기서 벗어날 때, 우리는 맑스주의의 다양한 개념들이 하나의 말뚝에서 벗어나 새로운 계열화의 선을 그리며 새로운 이론적 사유의 지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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