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주최 동계 학술대회 (1999.2.23.)에서 발표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장상환 교수의 논평에 감사드린다.
1. 머리말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폭발했던 1968~1973년 시기는 공황론을 비롯한 맑스주의 이론이 ‘백화제방’한 시기이기도 했다. 근본주의, 신리카아도주의 같은 맑스의 공황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제출되었던 것도 이 시기이다. 그러나 1997~199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에서 시작된 세기말 세계경제위기는 지난 30년전 같은 맑스주의의 르네상스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 세기말 세계의 정치경제정세는 150년전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묘사한 세계와 닮은 꼴로 되돌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주) 1989~1991년 구소련 동유럽 제국의 붕괴후 득세한 ‘자본주의 외 대안 부재론’의 효과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세계경제위기와 관련되어 제기되는 논의들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특정한 조직형태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지와 반대를 중심으로 한 비맑스주의적 구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주) '공산당선언’의 현재적 의의에 대한 필자의 논의로는 정성진, 「1848년 공산주의 당 선언의 현재성」, 『역사비평』, 1998년 가을호를 참조할 수 있다.■■
사실 동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지배적인 경제담론 구도는 위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대 제도주의’의 쟁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최근 진보진영에서 ‘새로운 통념’으로 정착되고 있는 제도주의는 맑스주의와 아무런 공통점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암스덴 (A.Amsden), 웨이드 (R.Wade) 같은 대표적 제도주의자들 역시 신자유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도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제도주의자들은 위기가 임박할 때까지 동아시아 경제 ‘기적’의 설명을 신자유주의자들과 다투었을 뿐이었다. 사실 제도주의자들은 동아시아 경제위기 폭발 직전까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추세에 대해 근본적 비판을 제기하기는커녕 이를 새로운 대세로 추종하다가 위기 폭발 후 위기의 책임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묻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드러냈다. 이들은 경제에 대한 제도적 이해를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역사구조적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데, 이는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전개과정을 서술한 웨이드의 글*주)에서 위기의 전사가 공백으로 되어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이들은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청천벽력’ 식으로 묘사하면서 위기의 책임을 동아시아 경제 밖에 즉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묻고 위기에 대한 대안을 이른바 ‘국가 되찾기’ (Reclaiming the State)에서 찾고 있다.
*주) ■■R.Wade, “From ‘Miracle’ to ‘Cronyism’: Explaining the Great Asian Slump,”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Vol.22, 1998.}}
이러한 와중에 『신좌익평론』(New Left Review) 지가 1998년 5/6월호 (통권 229호) 한 권 전체를 할애하여 게재한 미국의 저명한 맑스주의 역사학자 브레너(R.Brenner)의 세계경제위기분석*주1)은, 그 평가는 별도로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대 제도주의’라는 오늘의 지배적 경제담론의 구도를 깨고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맑스주의적 논의의 부활을 위한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주2)
*주1) ■■R.Brenner, “Uneven Development and the Long Downturn: The Advanced Capitalist Economies from Boom to Stagnation, 1950~1998,” New Left Review, No.229, 1998. 이하 본문과 각주에서 면수만 표시한 인용은 모두 이 논문으로부터의 인용이다.■■
*주2) ■■1997~1998년 우리 나라 공황기 정세에 대한 필자의 개입으로는 정성진, 「경제위기 논쟁과 맑스주의 공황론」, 한국사회경제학회, 제41회 연구발표회, 『연구논문집』, 1998 참조.■■
캘리포니아 대학 (UCLA) 역사학과 교수인 브레너는 주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논쟁의 신전개를 주도한 역사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미국의 트로츠키주의 그룹인 ‘연대’ (Solidarity)그룹의 정력적인 활동가이기도 하며, 그 그룹의 기관지인 『시류를 거슬러』(Against the Current) 지에 현대 미국정치경제에 관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주1) 그리고 브레너가 1991년 『신좌익평론』지에 글릭 (M.Glick)과 공저한 조절이론 비판 논문은 우리 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다.*주2) 브레너는 그 논문에서 당시 진보진영에서 유행했던 조절이론이 현대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서술이 아니라고 비판하고, 경쟁론과 이윤율 저하 이론에 입각하여 현대자본주의의 역사가 다시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브레너는 그 논문에서 이미 임금상승이나 생산성 저하가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지만, 경쟁과 이윤율 저하를 명시적으로 연결시키거나 그것을 현대자본주의 위기의 분석으로 구체화하지는 않았다. 세계경제위기를 다룬 이번 논문에서는 바로 그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즉 경쟁론과 이윤율 저하 이론에 입각하여 제2차세계대전후 세기말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세계경제의 번영과 위기에 대한 총괄적 서술을 시도하고 있다.
*주1) ■■그러나 브레너와 그가 속한 미국 ‘연대’ 그룹의 트로츠키주의는 예컨대 구소련과 동유럽 제국의 사회성격을 ‘관료집산주의’로 규정하는 점에서 보듯이, 이를 ‘관료제로 타락한 노동자국가’로 규정하는 ‘제4인터너내셔날’이나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국제사회주의’ (IS) 경향의 트로츠키주의와는 명백히 구별된다.■■
*주2) ■■R.Brenner and M.Glick, 「조절접근: 이론과 역사」, 『사회경제평론』, 제5집, 1992 및 이에 대한 필자의 평주도 참조.■■
브레너는 자본주의 이행논쟁에서 봉건영주와 농민간의 계급투쟁의 효과를 중심으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설명할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브레너는 세계경제위기를 다룬 이 논문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수직적’(vertical) 계급투쟁이 아니라 자본과 자본간의 ‘수평적’(horizontal) 경쟁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위기를 해명할 것을 주장하며 노자간의 모순과 계급투쟁에 주목했던 기존의 공황론에 전면적 비판을 제기했다.*주1) 당연하게도 이 매우 야심적인 브레너의 논문은 즉각 활발한 논쟁을 야기했는데, 아직 진행중인 논쟁은 현재까지는 전적으로 맑스주의 이론 진영 내부에서 전개되고 있고,*주2) 대체로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을 맑스주의적 분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필자 역시 이 글에서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이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많은 유익한 통찰과 분석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으로는 실패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주1) ■■브레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기존의 공황론은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수직적’ (시장 및 사회정치적) 관계를 너무 배타적으로 강조했다. 그 결과 기존의 공황론은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적 근원을 이루는 기업들간의 ‘수평적’ 경쟁으로부터 유래하는 생산적 편익 뿐만 아니라 경제적 모순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의 출발점은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미증유의 정도로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자본주의는 그와 같은 생산력 발전을 자신의 무계획적이고 경쟁적인 성격 때문에 파괴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p.23.)}}
*주2) ■■현재까지 제출된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에 대한 비평 논문들로는 먼저 Against the Current지상에 게재된 R.Walker “Capital‘s Global Turbulence: An Introduction” (No.78, 1999); M.Malloy and C.Post, “Understanding the Unevenness of Capitalist Development” (No.79, 1999); H.Ticktin, “Accumulation and Control of Capital” (No.79, 1999); P.Camejo, “A Bubble or Technological Revolution?” (No.80, 1999); L.Goldner, “International Liquidity and the Crisis” (No.80, 1999)등이 있으며, Historical Materialism지 1999년 봄-여름호 (No.4)도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 관련 논쟁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A.Callinicos, G.Carchedi, S.Clarke, G.Dumenil, A.Freeman, C.Harman, M.Lebowitz, D.Levy, F.Moseley, A.Shaikh, J.Weeks 등 일급 맑스주의 이론가들의 비판과 이에 대한 브레너의 답변을 게재했다. 또 Monthly Review지 1999년 6월호는 브레너에 대한 독점자본주의론 입장에서의 비판인 J.B.Foster, “Is Overcompetition the Problem?”와 브레너를 지지하는 D.McNally, “Turbulence in the World Economy”를 나란히 게재했으며, Challenge지 1999년 5~6월호도 임금상승-이윤압박설 입장에서 브레너를 반박한 J.Crotty의 논문과 이에 대한 브레너의 답변을 게재했다. 브레너에 대한 그 밖의 비평 논문으로는 A.Callinicos, “World Capitalism at the Abyss,” International Socialism, No.81, 1998; D.Henwood, “Crisis Update,” Left Business Observer, No.85, 1998; A.Kilmister, “Simply Wrong,” Socialist Outlook, No. 20, http://www.labournet.org.uk/20brenner.html a>, 1998; R.Hoveman, “Brenner and Crisis: A Critique,” International Socialism, No.82, 1999; D.Laibman, “Global Turbulence and Capitalist Crisis,” Science and Society, Spring 1999; B.Fine et.al., “Addressing the World Economy: Two Steps Back,” Capital and Class, No.67, 1999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읽을꺼리』 제4호가 R.Brenner, “The Looming Crisis of World Capitalism: From Neoliberalism to Depression?” Against the Current, No.77, 1998과 R.Walker, op.cit를 번역 소개한 바 있다.■■
2.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의 의의
브레너는 전후 세계경제의 번영과 위기를 이윤율의 동향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브레너는 전후 황금시대는 1965~1973년을 경계로 종식되었는데 그 원인은 이윤율의 저하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이윤율 저하를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한다는 점에서 브레너의 논의는 과소소비설과 불비례설의 대립구도로 이루어진 기존의 전통적 맑스주의 공황론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러나 브레너는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자본의 가치구성의 상승에서 찾는 맑스주의 공황론을 ‘신맬서스주의’라고 비판한다. 또 그는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임금상승-이윤압박이나 생산성 둔화에서 찾는 신리카아도주의 공황론과 조절이론 및 사회적 축적구조론도 비판한다. 오히려 기존의 이윤율 저하 공황론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브레너 논문의 주요 목적중의 하나이다.
브레너의 이윤율 저하 공황론은 기존의 이윤율 저하 공황론과 마찬가지로 이윤율 저하를 공황의 원인으로 간주하지만,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자본간의 국제적 경쟁의 격화가 초래한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에 기인한 가격저하 압박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이들과 구별된다. 과잉생산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과소소비설과 유사하지만, 과잉생산의 원인으로 대중의 구매력 부족이 아니라 자본간의 국제적 경쟁을 강조하고, 또 공황의 원인을 과잉생산 자체가 아니라 과잉생산으로부터 연유한 가격저하 압박 및 이로부터 비롯된 이윤율 저하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전통적 과소소비설과 구별된다.
브레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윤은 노동자의 증대된 세력 행사로부터 결과된 비용에 대한 상방 압력의 증대가 아니라 제조업 제품 시장에서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결과시키는 격화된 국제적 경쟁을 반영하는 가격에 대한 증대된 하강 압력 때문에 압박되었다” (p.95). 다시 말해서, “제조업 부문 수익성이 저하한 것은 단지 생산자들이 그들의 기존 수익률을 유지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가격을 비용 이상으로 마크엎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65~1973년 미국의 이윤율 저하를 야기한 주된 요인은 가격에 대한 저하 압력이었다. 장기침체의 개시는 저비용의 일제 및 독일제 제품의 세계시장에의 갑작스런 대거 유입과 이것이 초래한 제조업 부문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에서 비롯된 것이다”(p.96). 즉, “명목임금 상승의 가속화나 생산성 상승의 둔화가 1970~1973년 제조업 부문에서 이윤 압박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제조업자들이 수익성 저하를 경험한 것은 그들이 과거처럼 비용 이상으로 마크엎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p.135).
제2차대전후 1965년경까지 지속된 장기호황은 주로 후진성의 이득에 기초한 일본과 독일의 수출주도적 투자주도적 불균등결합발전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의 수출 공세는 미국 제조업 제품에 대해 가격 저하 압력을 가중시켜 미국 제조업의 이윤율을 저하시킴으로써 미국에서 경제위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와 독일과 일본의 국제수지 흑자의 누적은 달러화의 가치저하와 마르크화와 엔화의 가치상승을 결과시켜 독일과 일본제품에 대한 가격저하 압력을 낳으면서 이윤율 저하와 경제위기가 독일과 일본으로 확산되었다.
이상에서 요약해 본 브레너의 논문은 후술될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점에서 현재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위기론을 지배해 온 스탈린주의 전반적 위기론과 조절이론을 동시에 비판하고 IMF 위기후 진보진영에 ‘새로운 통념’으로 정착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책임론’과 ‘개혁적’ 케인즈주의의 지평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브레너의 논의는 독점자본의 지배가 아니라 경쟁의 격화를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독점과 정체 경향의 연관을 핵심으로 하는, 한 동안 우리나라에서 정통적 맑스주의 공황론으로 통용되었던, 스탈린주의 전반적 위기론, 과소소비설 및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한 근원적인 내재적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스탈린주의 전반적 위기론은 데이(R.Day)*주1)가 주도면밀하게 입증했듯이,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이론과 주기적 산업순환론의 의의를 사실상 부정하고, 조야한 세계시장 축소론류의 과소소비설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맑스의 공황론으로부터 결정적으로 이탈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에서 스탈린주의 전반적 위기론은 정통 맑스주의 공황론과 부당하게 동일시되어 왔다. 브레너는 세계경제위기를 자본주의 발전 단계로부터 도출하거나 혹은 공황론을 자본주의 발전단계에 상응하여 구체화하는 전반적 위기론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론의 시도와 달리 자본주의 일반이론인 경쟁론과 이윤율의 저하 경향 이론에 기초하여 공황을 설명하며, 그렇게 이해된 공황론을 오늘 세계경제위기의 현상분석에 적용한다.*주2) 이 점에서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맑스주의 공황론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중요한 요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주1) ■■R.Day, The 'Crisis' and the 'Crash,' NLB, 1981; Cold War Capitalism, M.E.Sharpe, 1995.}}
*주2) ■■예컨대 브레너는 “‘독점자본,’ 및 ‘자본주의의 정체’라는 관념은 1950년대 미국경제의 매우 일시적이며 특수한 양상을 물신화한 것” (p.50)이라고 비판한다. 브레너는 이미 전게한 글릭과 공저한 조절이론 비판 논문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조절이론이 공유하고 있는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자본이동이 더 자유로와지고 경쟁이 더욱 격화되므로,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이 주장하는 독점이윤은 장기적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으며, 현대자본주의에서도 경쟁과 평균이윤율 범주의 현실성이 부정되지 않기 때문에 경쟁자본주의 단계와 구별되는 독점자본주의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R.Brenner and M.Glick, 앞의 글 참조.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으로는 D.Harvey ■자본의 한계■, 한울, 1995, 제5장도 참조할 수 있다.■■
둘째,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그 동안 순수이론적 차원에서 논의되거나 추상적 법칙의 실증 수준에서 논의되었던 맑스의 이윤율의 저하 이론을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세계경제위기의 현상분석으로 구체화한 중요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맑스의 이윤율의 저하 이론에 관한 기존의 논의는 맑스의 이론 자체가 논증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쟁이거나 또는 자본주의 경제의 거시경제통계자료를 이용한 맑스의 이론의 실증을 위주로 하여 전개되어 왔으며, 이 법칙을 특정한 자본주의 경제의 변동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전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그 성공 여부와는 별도로, 맑스의 이윤율의 저하 이론을 자본주의 경제의 현상분석을 위한 이론적 틀로 구체화한 중요한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셋째, 브레너의 논문은 구소련과 동유럽 제국의 몰락후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전반적 위기론의 신용이 땅에 떨어진 후 새로운 정치경제학적 현대자본주의론으로 정착되었던 조절이론, 사회적 축적구조론, 혹은 신리카아도주의 공황론에 대한 전면적 비판이기도 하다. 브레너는 신리카아도주의적 임금상승-이윤압박론이나 조절이론의 공황론에 대해 공황의 원인을 과소소비설처럼 수요측 요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공급측 요인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공급측 이론’ (supply-side theory)이라고 명명하고 그중 생산성 위기를 강조하는 견해는 ‘신맬서스주의’로 분류한다.
브레너는 ‘공급측 이론’이 전후 황금시대의 사회적 기초라고 주장하는 노자간의 타협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브레너는 전후의 이른바 ‘산업평화’ 혹은 ‘사회적 합의’란 전후 혁명적 노동자계급 운동의 철저한 패배의 기초 위에 선 것이었다고 본다. 브레너는 또 황금시대의 종언이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고양 때문에 초래되었다는 ‘공급측 이론’도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브레너는 노동자계급의 투쟁 때문에 이윤율이 저하한 것이 아니라 이윤율 저하를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 증대를 통해 상쇄하려는 자본의 시도가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격화시켰다고 본다. 즉 “노동자계급 저항의 증대는 수익성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p. 94)이며, “노동자 전투성의 증대와 소위 ‘임금 폭발’은 선행한 ‘이윤 폭발’에 대한 보상적 반작용”(p. 125)이라는 것이다. 브레너는 또 1980년대 이후 노동자계급 운동이 퇴조하고 실질임금의 저하가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위기가 계속되었다는 사실은 임금상승-이윤압박설을 논박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넷째,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금융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의 문제 즉 국제금융자본의 투기적 운동이 아니라 국제적 과잉생산의 문제에 주목하는 브레너의 논의는 그 자체로 IMF 위기후 진보진영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책임론’에 대한 강력한 논박이다. 브레너에 따르면, “금융자본과 신자유주의의 발흥은 - 비록 그것이 위기를 상당히 악화시켰다고 할지라도 - 국제적 경제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라고 보아야 함과 동시에, 자본의 금융으로의 전환은 적절한 수익률을 제공하지 못하는 실물경제 특히 제조업 부문의 무능의 결과”였으며, “1970년대말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케인즈주의적 유효수요 관리정책이 이윤율을 회복하고 자본축적을 재개할 수 없음이 판명된 후에야 진행되었다.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통화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적 적자지출이라는 첫번째 정책선택이 실패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주)
*주) ■■R.Brenner, “The Looming Crisis of World Capitalism: From Neoliberalism to Depression?” Against the Current, No.77. 1998.}}
다섯째, 브레너는 전후 황금시대가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에 힘입은 것이었다는 케인즈주의자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입증했는데, 이는 IMF 위기후 제도주의와 ‘신자유주의 책임론’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른바 ‘개혁적’ 케인즈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논거가 될 수 있다. 브레너에 따르면 케인즈주의적 유효수요 관리정책이 전후 황금시대를 지탱한 주요 지주의 하나라는 ‘상식’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브레너는 전후 황금시대를 가능하게 한 독일과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은 케인즈주의적 유효수요 관리정책이 아니라 국가-기업-은행 간의 네트워크와 같은 특유한 공급측 요인들에 결정적으로 힘입은 것이었으며, 미국에서도 케인즈주의적 유효수요 확대정책은 미국경제의 자본축적을 촉진한 것이 아니라 독일, 일본과 같은 경쟁국의 자본축적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 중반까지 일본 정부는 독일 정부처럼 항상 균형예산을 유지했으며 케인즈주의적 재정정책은 그 어느 종류의 것도 배척했다. 그리하여 국내수요를 실제로 억압했다”(p.88) “이 시기 미국, 일본, 및 독일 경제의 경험은 이같은 예외적인 성장의 분출이 복지국가, ‘노자협약’ 및 케인즈주의적 수요관리를 통한 유효수요의 지속적 증가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제도의 출현에 기인한다고 결론짓게 하는 어떤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다. ... 가장 급속한 성장이 이루어진 독일과 일본에서 경제적 역동성을 결과시킨 것은 명백히 공급측 조건들이었다”(pp.90-91).
3.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 비판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 분석은 매우 독창적이며 오늘 세계경제위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유용한 자료와 통찰을 제공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맑스의 공황론의 정당한 구체화라고 보기 힘들며, 따라서 오늘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응 방안을 브레너의 논의에서 도출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맑스의 공황론의 입장에 설 때 드러나는 브레너 논의의 주요한 문제점들을 간략히 살펴 보자.
(1) 실증의 문제
첫째, 브레너는 오늘 세계경제위기를 초래한 1965~1973년경부터 시작된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자본의 국제적 경쟁이 결과시킨 과잉설비 과잉생산에서 결과된 가격의 하방압력에서 찾는다. 그러나 브레너 자신이 제공하는 통계를 보면 세계시장에서 주요 제품 가격의 하락은 이윤율이 저하하기 시작한 1965~1973년 전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뒤인 1980년대 후반 특히 1990년대 들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과잉설비-과잉생산 및 가격의 저하 압력이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 아니라 반대로 그 결과임을 보여 준다. 실제로 미국에서 이윤율의 저하는 국제적 경쟁이 격화되기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샤이크(A.Shaikh)*주)가 지적했듯이 만약 국제적 경쟁이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라면 국제적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보호되어 있던 일본과 독일에서 왜 이윤율이 더 급속하게 저하했는지도 설명할 수 없으며, 세계화와 함께 국제적 경쟁이 격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이윤율이 왜 다시 상승하고 있는지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주) ■■A.Shaikh, “The Falling Rate of Profit and the Economic Crisis in the U.S.,” in R.Cherry et. al. eds., The Imperiled Economy, Book I, URPE, 1987.}}
둘째, 브레너는 자본의 가치구성의 상승에서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찾는 근본주의 공황론을 ‘신맬서스주의’라고 기각해 버리지만, 브레너 자신이 제시하는 통계는 이윤율 저하의 배후에 자본의 가치구성의 상승이 놓여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실제로 브레너는 자본의 가치구성의 역수의 대용변수라고 할 수 있는 ‘산출/자본 비율’의 저하가 이윤율 저하의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원료 비용의 증대를 별도로 하면, G-7 제국 총이윤율 저하는 전적으로 명목적 ‘산출/자본 비율’의 저하에 의해 결정되었다”(p.136). 실제로 샤이크와 토낙(A.Shaikh and E.A.Tonak)*주1), 모슬리(F. Moseley)*주2), 듀메닐과 레비(G. Dumenil and D. Levy)*주3)는 부르주아 통계의 엄밀한 맑스주의적 재구성을 통해 미국경제에서 이윤율의 저하를 확인하고 이것이 잉여가치율의 상승을 압도한 자본의 가치구성의 고도화에 기인한 것임을 입증했다.
*주1) ■■A.Shaikh and E.A.Tonak, Measuring the Wealth of Natiuo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주2) ■■F.Mosely, “The Rate of Profit and the Future of Capitalism,”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Vol.29, No.4, 1997.}}
*주3) ■■G.Dumenil and D.Levy, The Economics of the Profit Rate, Edward Elgar, 1993.}}
셋째, 브레너는 자본의 국제적 경쟁이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자본의 국제적 경쟁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제조업 부문을 비제조업 부문에서 분리하여 가격, 임금, 생산성, 단위노동비용, 및 이윤율 등의 지표를 계산한다. 하지만 제조업과 비제조업 부문의 구별은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상호침투가 본격화되고 있는 오늘 단지 통계상의 자의적 구별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에 기초한 분석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곤란하다. 또 브레너와 같은 제조업과 비제조업 부문의 이분법으로는 오늘 세계경제에서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정보화,’ ‘금융화,’ ‘소프트화’ 추세에 대한 정당한 분석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넷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및 초국적 금융자본의 운동과 세계경제위기의 관련에 대한 분석이 전적으로 누락되어 있는 것은 세계경제위기론으로서 중요한 결함이다. 신자유주의와 초국적 금융자본의 지배 그리고 세계화를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은 옳지만, 오늘 세계경제위기의 전개과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기 위해서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및 초국적 금융자본 등의 문제와 세계경제위기의 관련을 구체적으로 해명해야 했다.
다섯째, 브레너는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론 및 후진성의 이득론을 원용하여 일본과 독일의 미국 경제 추격이 전후 황금시대의 기본과정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진성의 이득론은 19세기말 독일, 러시아, 일본과 같은 후발자본주의 제국의 경제발전이나 2차세계대전 이후 신흥공업국의 출현배경을 설명할 수 있는 유력한 논리이지만, 패전후 독일과 일본의 경제부흥은 후진성의 이득보다는 전후 이들 나라에서 혁명적 노동자운동의 분쇄와 냉전체제의 성립 및 영구군비경제 (permanent war economy)의 효과에 기인한 측면이 많다.*주)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에서 구소련 동유럽 제국은 제3세계와 함께 마치 지구상에 존재도 하지 않은 것처럼 아무런 이론적 역할도 부여받고 있지 못하다. 또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론은 후진국에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아니라 영속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이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논증한 것이지, 자본주의 발전의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브레너는 불균등결합발전이 생산력의 발전만큼이나 사회적 모순의 중첩 심화를 결과시킨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주) ■■틱틴과 호브만은 냉전과 영구군비경제가 전후 자본주의의 장기호황의 도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고, 냉전의 종식에 따른 영구군비경제 효과의 소진이 오늘 세계경제위기의 주요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H.Ticktin, op.cit.; R.Hoveman, op.cit. 참조.■■
(2) 이론의 문제
첫째, 경쟁이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라는 브레너의 핵심 명제 자체가 맑스의 이론과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먼저 지적되어야 한다. 브레너는 이윤율을 결정하는 것은 경쟁, 구체적으로 국제경쟁력이라고 본다. 즉 국제경쟁력이 강화되면 이윤율이 상승하고 국제경쟁력이 약화되면 이윤율이 저하한다는 것이다. 브레너는 실제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조업 부문에서 저하하는 경쟁력과 저하하는 수익성간의 밀접한 상관관계는 전자가 후자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p.72). 그리고 국제경쟁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격경쟁력이며 이는 다시 달러화로 표시한 단위노동비용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환율과 임금수준에 의해서 좌우된다. 이러한 경쟁과 이윤율의 이해 방식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임금경쟁력이 국제경쟁력의 원천이라는 브레너의 주장은 결국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노동자는 임금인상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공세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브레너처럼 경쟁을 이윤율 저하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의 방법을 완전히 전도시킨 것이다. 맑스는 이윤율의 저하경향을 다수자본 (경쟁)을 사상한 자본일반의 추상수준에서 이미 논증했다. 맑스는 경쟁이 특정한 생산부문에서는 이윤율을 저하시킬 수 있지만, 일반적 이윤율은 자본의 가치구성이 상승할 때에만 저하한다고 보았다.
“경쟁은 상이한 생산영역에서 이윤을 균등화할 수는 있다. ... 그러나 경쟁은 일반적 이윤율을 저하시킬 수는 없다.”*주1) “경쟁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가치 이하로 판매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일반적 이윤율은 이러저러한 생산부문에서 저하할 수 있다. ... 그러나 일반적 이윤율은 이러한 방식으로는 저하할 수 없다. ... 경쟁은 일반적 수준 그 자체를 억압할 수 없으며, 단지 그러한 수준을 만들어 낼 뿐이다.”*주2)
*주1) ■■K.Marx, Theories of Surplus Value, Part II, Progress Publishers, p.438.}}
*주2) ■■K.Marx, Collected Works, Vol.28, International Publishers, 1986, pp. 363, 364.}}
경쟁은 과잉생산 가격저하란 메카니즘을 통해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것이 아니다. 경쟁은 오히려 신기술의 경쟁적 도입과정에서 필연적인 자본의 가치구성의 상승을 통해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것이며 그러한 이윤율 저하는 다시 자본간의 경쟁을 격화시키는 것이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본의 과잉생산에서 기인하는 경쟁이 이윤율의 저하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동일한 원인에서 발생하는 이윤율의 저하와 자본의 과잉생산 때문에 경쟁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 축적과 결부된 이윤율의 저하는 필연적으로 경쟁전을 야기한다. ... 그러므로 이윤율의 저하가 자본 사이의 경쟁전을 야기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주)
*주) ■■K.Marx, ■자본론■, 제3권, 비봉출판사, 1990, pp. 300, 305.}}
이윤율 저하 경향을 다수자본 (경쟁)의 추상수준으로까지 하향하여 구체화한다고 해서 경쟁을 이윤율 저하의 원인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맑스는 오히려 경쟁을 이윤율 저하의 주요 요인으로 간주했던 스미드를 리카아도를 빌어 비판했다. 즉 맑스는 점증하는 자본이 제한된 출구에 직면하면서 격화되는 자본간 경쟁이 가격을 저하시켜 이윤율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한 스미드에 대해 경쟁은 자본가들 상호간에 이윤을 재분배할 뿐이며 이윤율 수준 자체를 저하시킬 수는 없다는 리카아도의 비판을 수용했다.*주) 브레너는 세계경제위기론에서 경쟁이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이 자본주의 이행논쟁에서 ‘신스미드주의’라고 비판했던 유통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순의 근원은 브레너가 강조하고 있는 자본들간의 ‘수평적’ 경쟁이 아니라 맑스가 “직접생산자로부터 잉여가 추출되는 방식”이라고 묘사한 자본과 노동간의 ‘수직적’인 계급적 착취의 현실에 존재한다.
*주) ■■파인 등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스미드와는 달리 맑스와 리카아도는 경제 전체에서 격화된 (투자) 경쟁이 이윤율을 경향적으로 균등화시키는 메카니즘일 뿐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이해했다. 경쟁은 이윤율을 저하시킬 수 없다. 만약 시장가격이 저하한다면 한 무리의 자본가들은 다른 무리의 자본가들이 손실을 본 것만큼 이득을 본다.” B.Fine et.al., op.cit., p. 56.}}
또 브레너의 경쟁 개념은 대단히 협소하며 맑스의 경쟁 개념과 다르다. 브레너는 경쟁을 단순히 가격경쟁 (부문내 경쟁)으로 환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부문내 경쟁과 부문간 경쟁의 중층결정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부문간 경쟁에서는 자본운동과 이윤율의 균등화 과정에 대한 분석이 불가결한데, 브레너는 경쟁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부문간 자본 이동에 대한 분석을 누락시키고 있다.
둘째,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에 맬서스적 잔재가 남아있다는 브레너의 주장은 맑스를 잘못 읽은 것이다. 브레너는 신리카아도주의자들의 공황론을 배격하면서도 맑스의 공황론에 대한 오키시오(N.Okishio) 같은 신리카아도주의자들의 비판을 수용한다. 또 브레너는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자본의 가치구성의 고도화에서 찾는 맑스의 이윤율 저하 이론을 생산성위기론과 동일시하여 ‘신맬서스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맑스는 이윤율의 저하를 생산성 저하와 관련시키기는커녕 반대로 생산성 상승의 결과라고 보았으며, 바로 이 점에 맑스의 이윤율 저하 이론과 맬서스-리카아도의 이윤율 저하 이론의 차이가 있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반적 이윤율의 점진적인 저하경향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점진적 발달의 표현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특유한 표현 - 에 불과하다. ...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발달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진전에 따라, 한편에서는 이윤율의 점진적 저하 경향으로 표현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취득되는 잉여가치 (또는 이윤)의 절대량의 끊임없는 증대로 표현된다. ... 노동이 보다 덜 생산적으로 되기 때문에 이윤율이 저하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보다 더 생산적으로 되기 때문에 이윤율이 저하하는 것이다. 잉여가치율의 증가와 이윤율의 저하는 노동생산력의 증대를 자본주의적으로 표현하는 특수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주)
*주) ■■K.Marx, ■자본론■ 제3권, 비봉출판사, 1990, pp. 253, 265, 285.}}
셋째, 브레너는 신리카아도주의, 조절이론 및 사회적 축적구조 학파의 이윤압박설을 비판하지만, 그 이론구조는 임금상승-이윤압박설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신리카아도주의 등의 이윤압박설에서는 이윤압박의 원인이 아래로부터 치고 올라오는 임금 상승이라면, 브레너의 경우 이윤압박은 위에서 내려 누르는 가격 저하 압력이므로, 이윤압박의 방향만 다를 뿐, 문제설정의 구조는 동일하다. 게다가 신리카아도주의의 임금상승-이윤압박설도 브레너와 마찬가지로 국제적 경쟁의 요인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예컨대 그린(A.Glyn) 등은 자본가들이 임금상승을 가격인상으로 전가하여 이윤압박을 회피할 수 없는 까닭을 국제적 경쟁이라고 보고 있다.*주1) 브레너는 또 클린턴 시기 미국에서 이윤율이 상승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저임금경제’의 출현 즉 실질임금의 저하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향후 세계경제가 장기불황에서 장기불황으로 반전될 수 있을지의 여부도 이와 같은 ‘저임금경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의 여부, 즉 임금억압을 계속할 수 있을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주2) 결국 임금상승-이윤압박은 부정하지만, 임금억압-이윤증대는 인정하는 셈이며, 이는 브레너의 이론구조가 임금상승-이윤압박설의 문제설정과 동일함을 보여 준다.
*주1) ■■A.Glyn et.al.,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김수행 역, 동아출판사, 1993, p.269.}}
*주2) ■■그러나 말로이와 포스트는 브레너와는 달리 오늘 미국경제에서 이윤율의 상승과 호황이 저임금 노동의 착취가 아니라 1980년대 이후 자본의 구조조정과 산업구조 고도화에 기인한 측면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샤이크에 따라 오늘 미국경제의 호황은 1990년대 중반이후 시작된 세계적 장기호황의 한 국면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1968~1973년 시작된 세계자본주의의 장기불황이 1990년대 들어 장기호황 국면으로 반전되었으며, 1997~199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는 새로운 세계대공황의 징후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세계적 장기호황 국면의 한 에피소드로 간주한다. M.Malloy and C.Post, op.cit. 그러나 모슬리와 헨우드는 브레너를 지지하면서 미국의 이른바 ‘신경제’는 ‘세계사상 유례없는 장기호황’이기는커녕 실물적 기초가 결여된 거품 호황적 성격이 강하며, 투자가 아니라 부채에 기초한 소비가 주도하고 있는 호황이며, 이는 특히 세계의 불황 지역에서 미국으로 화폐자본이 집중된 결과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F.Mosely, “The United States Economy at the Turn of the Century: Entering a New Era of Prosperity,” Capital and Class, No. 67, 1999; D.Henwood, “Booming, Borrowing, and Consuning: The U.S. Economy in 1999,” Monthly Review July-August 참조.■■
넷째, 고정자본과 이윤율의 저하경향에 관한 브레너의 논의도 문제가 있다. 브레너는 경쟁 격화에 따라 저하한 이윤율이 평균 이하 생산성의 자본이 폐기되면서 다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저하하는 이유를 고정자본의 제약에서 찾는다. 고정자본의 제약 때문에 신기술의 도입은 이윤율의 상승이 아니라 저하를 결과시키고 또 이윤율의 저하가 상당 기간 계속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브레너는 고정자본에 대한 이윤율과 유동자본에 대한 이윤율을 구별한 다음 단기 혹은 중기에 있어 자본축적의 직접적 지표로 되는 것은 ‘유동자본에 대한 이윤율’이라고 한다. 브레너는 평균 이하 생산성의 자본도 고정자본 비용은 이미 지불되었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유동자본에 대해서 평균이윤율을 취득할 수 있는 한 계속 존속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동자본에 대한 이윤율이란 개념 자체가 분석적으로 의미있는 개념이 될 수 있을지가 의문시될 수 있다는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총자본이 평균 이하의 이윤율 밖에 수취하지 못하는 조건에서는 유동자본에 대한 이윤율도 중장기적으로 평균이윤율 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자본축적에 관건이 되는 것은 평균이윤율이라기 보다는 ‘양’(positive)의 이윤율이다. “중요한 것은 이윤율이 저하한다 하더라도 ‘양’이기만 하면 이윤이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이다.”*주1) 즉 이윤율이 ‘음’(negative)이 아니라 ‘양’인 한 자본축적은 계속될 수 있다. 신기술 저비용 기업의 진입에도 불구하고 유동자본에 대해 평균이윤율을 획득할 수 있는 한, 구기술 고비용 기업이 중장기까지 존속할 수 있다는 브레너의 주장은 기업의 부단한 흥망과 진입 퇴출이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경쟁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아니다. 신기술 저비용 기업의 진입에 따라 구기술 고비용 기업의 퇴출, 폐기가 이루어지는 속에서도, 기술적으로 차별화 계층화된 자본의 불균등발전은 이윤율의 저하경향을 필연적인 것으로 한다.*주2) 고정자본의 제약 때문에 이윤율이 저하하여 불황이 초래되기보다는, 거꾸로 불황기의 낮은 이윤율이 잔존기업의 경쟁을 격화시켜 낡은 고정자본의 폐기를 촉진한다고 보아야 한다.
*주1) ■■B.Fine et.al., op.cit., p. 56.}}
*주2) ■■이에 대한 논증으로는 G.Reuten, “Accumulation of Capital and the Foundation of the 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Fall,”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Vol.15, No.1, 1991 참조.■■
다섯째, 브레너는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으로 환율변동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 브레너는 ‘엔고,’ 마르크화의 가치상승이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일본과 독일 경제의 위기로 파급되고 나아가 세계경제위기를 결과시킨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파악한다. 즉 ‘엔고’와 마르크화의 가치상승이 일본과 독일 제품에 가한 가격 저하 압력으로부터 일본과 독일에서 이윤율 저하와 경제위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환율변동이 미국에서 시작된 이윤율 저하를 독일과 일본으로 확산시켜 세계경제위기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율은 본질적으로 가치의 국제적 이전 및 재분배기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가치생산의 모순에 기인한 공황의 원인을 환율변동에서 찾을 수는 없다. 1995년 이후 엔-달러화 환율의 역전 (‘엔저,’ ‘달러고’)에서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을 찾는 것도 지나치게 피상적인 분석이다.
(3) 방법의 문제
브레너는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범주들이 아니라 부르주아 경제학의 범주 및 통계들을 그대로 이용하여 세계경제위기를 분석하고 있다. 맑스의 노동가치론의 범주들은 찾아 볼 수 없다.*주) 외관상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의 주요 범주의 하나인 이윤율이 핵심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브레너의 이윤율은 맑스의 이윤율과 전혀 다르다. 예컨대 맑스의 이윤율의 결정요인은 자본의 가치구성, 잉여가치율, 및 가변자본의 회전수인데 반해, 브레너의 이윤율의 결정요인은 ‘이윤몫’과 ‘산출/자본 비율’이다(p.6). 브레너 논문에서 잉여가치라는 개념은 찾아 볼 수 없는 반면, 부르주아 경제학에 특유한 이데올로기적 개념인 ‘인적자본,’ ‘자본의 생산성’ 등의 개념은 무비판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 ■■“브레너의 접근이 취약한 것은 가치론의 결여 때문이다.” 왜냐하면 “가치론 없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정당한 계급분석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B.Fine et.al., op.cit., pp.81, 78.}}
브레너는 또 국제적 경쟁 격화에 따른 국제적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의 누적이 세계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는 결국 국민경제적 수준에서 보면 외인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각국 경제 위기의 근본원인이 각국 국민경제 내부가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경쟁과 과잉생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브레너는 1968~1973년 이후 세계경제위기는 미국경제의 불황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는 독일과 일본 상품의 미국시장 침투에서 초래되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제조업 부문 수익성 문제의 원인은 절대적 의미에서 비용의 증가율이 아니라 그들의 주요 경쟁국들에 의해 세계시장에 부과되는 가격에 비교한 비용의 증가율이다”(p.103). “비용 효율이 낮은 미국 생산자들이 경험한 수익성의 저하는 선진자본주의 경제 전체에서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의 증대의 표현이다”(p.111). 결국 브레너는 독일과 일본 및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수출지향적 공업화가 세계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셈인데, 이러한 공황 외인론은 맑스의 공황론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4. 맺음말
이상에서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이 맑스의 공황론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브레너의 논문에서 “맑스의 기획이 진정으로 계승자를 발견했다”든지 브레너의 이 논문이 노벨 경제학상 감이라는 『신좌익평론』의 편집자 블랙번(R.Blackburn)의 평가는 지나친 과찬이다. 필자가 보기에 브레너의 논문에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것은 맑스주의와 무관한 제도주의 개량주의의 정치이다.
브레너의 제도주의적 입장은 일본과 독일에서 그리고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에서 후진성의 이득이 구현될 수 있었던 이유를 계급모순이 아니라 이들 나라에 특유한 ‘발전주의 국가’에서 찾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브레너는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출현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가-기업-은행의 네트워크와 산업정책 등의 요인을 강조하는 암스덴과 웨이드의 제도주의적 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p.150). 브레너는 전에도 미국에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대립을 강조하면서 클린턴이 집권후 자신의 공약인 일본식 산업정책의 도입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던 이유를 금융자본의 헤게모니에 대한 굴복에서 찾고, 이를 안타까와 한 적이 있었다.*주)
*주) ■■R.Brenner, “The Politics of U.S. Decline,” Against the Current, No.56, 1995.}}
자본주의 이행 논쟁에서 브레너 자신이 제기했던 계급투쟁의 관점은 세계경제위기론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완전히 누락되어 있다. 브레너는 임금상승-이윤압박설의 비판에 주력한 나머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이 체제 자체에 대한 어떠한 위협도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주) 불황 국면에서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사수를 위한 경제투쟁조차도 체제 그 자체의 변혁을 위한 투쟁의 가교가 될 수 있다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이행기강령’ (Transitional Program)에 대한 문제의식은 브레너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주) ■■다음과 같은 브레너의 서술에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의의에 대한 불신과 비관주의마저 엿보인다. “경제투쟁에서 노동자들의 승리는 상대적으로 국지화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노동자의 힘의 성공적 행사로부터 결과되는 수익성의 저하 역시 국지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주들에게는 살아 남기 위해서는 평균이윤율을 취득해야 한다는 전반적인 체제 전체 규모적 압박이 가해진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이득이 그들의 고용주의 이윤율을 평균 이하로 저하시키는 한, 그것은 자본축적을 둔화시키게 되고, 그리하여 중기적으로는 노동자들이 이전에 쟁취한 이득을 소멸시키는 조건들을 만들어 낸다. 노동자들의 행동은 주어진 지역에서는 확실히 수익성을 감소시키지만, 일반적으로는 공황을 야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의 행동은 일반적으로 공간적으로 일반화된 (즉 체제 전체 규모의) 그리고 시간적으로 장기간의 수익성 저하를 초래할 수 없기 때문이다.”(p.21).}}
브레너는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좌파의 대안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위기의 원인을 금융부문이 아니라 생산 부문 즉 국제적 과잉생산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브레너의 경우 위기에 대한 좌파의 대안은 국제적 생산 통제 같은 것으로 될 것이다. 파인도 지적했듯이, “브레너의 접근은 순전히 (매우 소수의) 초거대 자본가들간의 조절의 실패 (coordination failure)를 문제 삼는 것”이며, “공황은 단지 자본가들의 투자계획이 시장을 통해서 어느 정도 조절되는가의 문제”*주1)이기 때문에, “브레너의 설명의 분명한 정책적 함축은 수요를 충분히 높은 수준으로 설정하여 고정자본의 갱신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국제적 케인즈주의 정책의 부재를 개탄하는 것이다.”*주2)
*주1) ■■B.Fine et.al., op.cit., p. 58.}}
*주2) ■■Ibid., p.83.}}
물론 브레너의 국제적 생산 통제 접근은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을 국제금융자본의 투기적 운동이라고 주장하면서 국제단기자본의 투기적 운동에 대한 통제 (‘토빈세’의 도입 등)를 주장하는 ‘개혁적’ 케인즈주의자들의 금융자본 통제론보다는 더 진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제적 생산통제 접근은 결국 국가자본주의 반혁명의 길로 판명된 ‘일국사회주의’로 되돌아 가는 것이며 맑스주의 정치, 즉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에 기초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와 같은 국제적 생산 통제는 세계적 조절을 통한 공황 회피 가능성을 인정하는 ‘개혁적’ 케인즈주의의 입장과 공명하는 것이다. 미국경제 위기의 원인을 독일과 일본 및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수출 공세에 찾는 브레너의 논의는 노동자계급 국제주의와는 무관한 사회애국주의로 경도되는 경향조차 보인다.*주)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이 맑스의 공황론을 기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자계급 국제주의까지 부정하는 정치적 함축을 갖는 것은 사실 브레너와 그가 속한 ‘연대’ 그룹의 ‘일국사회주의,’ 관료집산주의적 입장을 고려한다면 조금도 이상스러울 것이 없다. 요컨대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신자유주의 대 제도주의’의 쟁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동아시아 경제위기 이후의 지배적인 경제담론 구도를 깨고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과 대안의 마련을 위한 본격적인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의 방법과 정치를 부정한 결과, 제도주의와 ‘개혁적’ 케인즈주의 혹은 ‘일국사회주의’의 처방으로 수렴하여 결국 지배적 경제담론 구도의 한 요소로 기능하게 되고 말았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주) ■■따라서 다음과 같은 킬미스터의 비판은 정당하다. “브레너의 논문에서 도출될 수 있는 최상의 정치적 결론은 개량주의적인 것이다. 즉 미국과 유럽연합 및 일본은 잘 협력해서 생산을 조절하고 시장을 평등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따위의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정치적 결론은, 각국 경제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본성 자체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생산자들 때문이라는 반동적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브레너의 논의는 현재 경제위기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인 국제적 노동자계급의 연대의 형성을 방해하고 있다.” A.Kilmister, op.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