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 인터넷 서점 매출액 비교에 관한 소고

 1. 그림 위로 드러난 사실

   우리는  아래의 "주요 유통업체의 매출변화"에 관한 그래프 추이를 보면서 몇 가지 분석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1) 교보는 연 매출액이 3297억(온라인+오프라인)으로 오프라인의 매출액이 2448억으로, 온라인 매출액의 849억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다른 온라인 전문 서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라인 매출액이 뒤진다는 것을 증명한다(그래도 업계 2위인 알라딘보다 매출액이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보는 주요 유통업체의 매출액 1위를 자랑한다. 2) 예스 24는 온라인 서점의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06년 현재 매출액이 1650억으로 알라딘 매출액의 2배를 넘는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를 합한 영풍의 매출액보다 도 무려 500억 정도가 더 높다. 3) 영풍은 확실히 자신이 예전에 쌓았던 이미지가 붕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3년 동안의 매출액의 변화추이가 그다지 가파르지 않다는 것을 놓고 볼 때 이러한 이미지의 붕괴는 더욱 더 가속화될 것 같다. 4) 알라딘은 03년과 비교해 볼 때 매출액이 거의 2배가 뛰었지만 아직 예스 24에 견줄 수준은 아닌 것 같다. 특히 06년 매출액은 거의 2배 정도가 뒤져 있어 내 나름대로 약간 충격을 먹었다(나는 알라딘의 매출액이 예스 24와 거의 차이가 없을 것으로 알고 있었다).  

2. 그림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

    위의 그림은 한국 출판업계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를 모두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단순한 매출액의 비교라고 하지만 말이다. 1) 국내의 출판업계의 구조는 몇몇 온/오프라인의 과점체제로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수한 가치함의적 사실(fact)가 담겨져 있다.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출판 업계의 구조적 변동과 지식 시장의 구조적 변동 사이의 함수 관계, 출판 업계의 구조적 모순, 그리고 한국인들의 지식 생산, 유통, 소비에 대한 인식의 변화 등. 2) 역시 출판업계도 거대한 '자본'의 힘이 개입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실한 사실이다. 특히 업계 부동의 1위를 자랑하는 교보의 예는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자본의 역동적 권력관계 형성은 인터넷 서점들 사이의 과다한 출혈 경쟁을 내포하고 있다. 아래 목록의 '한기호' 소장의 언급은 이를 잘 드러내준다. 3) 이 권력의 역동적 관계형성은 기존의 한국 출판업계가 가진 2)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형성의 구조적 그물 망(罔)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거기엔 참 여러 가지 현상들과 사실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설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계와 모순이 노정된 사실들의 총체적 책임과 의무가 몇몇 과점적 인터넷 서점이나 독자들에게 귀속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구조의 최대의 피해자들은 바로 독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독자들이 이러한 문제의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면? 지금 문을 닫고 있는 중, 소매 규모의 도서 보급 서점들의 폐해를 우리가 모두 떠안아야 한다고 추궁을 받는다면? 5) 독자들은 지금 충분히, 아니 예전부터 충분히 비싼 대가를 치렀다. 오로지 출판 업계를 작동시키는 추악한 거대한 자본의 권력관계 때문에 말이다. 책 값은 비싸고 번역의 질은 낮고 그렇다고해서 독자들을 위한 뭔가 새롭고 참신한 서비스도 전혀 없다.  

 3. 알라딘은 그럼 어디로 가야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알라딘은 다른 인터넷 서점과는 달리 어떤 '정'(情)이 있다. 알라딘은 다른 온라인/오프라인 서점과 '같으면서도 다른' 어떤 특질들이 있다. 그 특질들은 바로 알라디너들이 온힘을 다해서 만들어가는 '정'(情)이 가득한 온라인 문화들에 다름아니다. 나의 사전적 조사가 맞다면 알라딘은 예스 24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최초의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했다. 물론 현재의 매출액만을 놓고 볼 때 알라딘은 규묘면에서 예스 24와 견줄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라딘은 예스 24와는 다른 그 뭔간가 있다는 것이다. 그 뭔가는 바로 앞에서 제시된 것이다. 내가 볼 때 알라딘은 단순히 이익(profit)만을 창출하는 인터넷 서점(기업)이 아닌 그 창출된 이익을 통해 다시 새로운 인터넷 문화를 창출하는 이중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핵심적 매개고리는 바로 '내 서재'이다. 때론 알라딘이 다른 인터넷 서점과 벌리는 과도한 출혈 경쟁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래서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라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어떤 것, 즉 정에 기반한 무한 접속을 만들어내는 문화가 있기에 그것은 금새 사라진다. 내가 볼 때 인터넷 환경의 본래적 속성으로서의 무한한 접속(들뢰즈-가타리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접속(connection)이다)과 알라딘의 정에 기반한 문화코드의 이중 분절(articulation)은 (알라딘의) 생명력을 끈덕지게 유지시키는 매우 강력한 무기로서 작용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알라딘과 알라디너 사이의 모종의 은밀한 협약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 은밀한 협약이 지금보다 더 높고 아름다운 것으로 변환되기 위해서는 양자 사이에 적극적 개입과 딴지걸기, 즉 긍정적 비판으로서의 딴지걸기가 있어야 한다. 이 긍정적 비판으로서의 딴지걸기를 통해 알라딘과 알라디너는 현재보다 더 괜찮은 인터넷 서점이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利)의 문제가 아니다. 이(利)를 너머서는, 아니 오히려 그것으로 더이상 환원되지 않는 '어떤 것'의 문제이다. 이것이 알라딘이 나아가야 할 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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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2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04-1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안 그래도 저도 그런 소리 들은 적 있는데.. ㅎ
과점시장이 된 것이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면이 분명 있을텐데, 출판시장도 FTA이후로 어떻게 판도가 변화할지 모르겠네요..
 

무엇을 할 것인가


진보평론  제28호
남구현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읽히고 논쟁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라고 볼 수 있다. 레닌이 글을 쓰던 시기는 짜르의 폭압적 전제정치가 힘을 발하며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 및 민주주의 운동을 탄압하던 때였다. 아래로부터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대중운동과 이에 대한 탄압, 혁명적 운동 조직의 영세성 및 수공업성이 레닌이 극복하고자 하던 대상이었다. 80년대의 우리나라 역시 군부 독재에 의한 정치적 탄압을 극복하고, 모순의 증대에 따라 노동자 민중이 대중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 시기로 레닌이 글을 쓰던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당시의 활동가들이 레닌의 테제들을 바로 받아들여 운동의 무기로 사용하려고 시도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레닌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쟁점이 되었던 것은 ‘경제주의’라는 문제였다. 레닌은 러시아에서 전제주의 타도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정세에서 노동자 대중의 즉자적이고 경제적인 요구에 운동을 묶어두려는 경제주의자들이 “혁명조직을 강고히 하고 정치 활동을 확대하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대신에, 노동조합주의 투쟁만을 하라고, 뒤로 가라고 요구”(45)하는 한편 “전제주의 타도를 대중적 노동운동의 첫째 과제로 내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과제를 눈앞의 정치적 요구를 (대중운동의 이름으로) 얻어내기 위한 투쟁이라는 임무로 격하시켰다”(59)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레닌의 경제주의 비판은 군부 독재에 대한 투쟁이 전사회적이고 전계급적으로 요구되던 80년대 초에 대중의 요구를 강조하며 투쟁을 방기하고 조합주의적 투쟁에 제한하려는 경향에 대한 비판으로서 우리나라의 현실에 적합하다고 받아들여졌으며, 소위 ‘사투(사상투쟁)’의 기본서로 활용되었다.


처음 소개되던 당시에는 공식 출판된 번역판이 아니라 노트에 수기로 번역한 복사판이 돌아다녔는데, 경제투쟁을 모두 경제주의로 오역하는 바람에 모든 경제투쟁 자체를 부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경제주의자들을 박멸한다고 경제투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투쟁을 가로막고 논쟁을 벌이는 해프닝까지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다행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독일어로 읽을 수 있었으며, 후배와 토론하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당시 돌아다니던 노트를 구해 대조하면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씁쓸한 남한 현실... 결국 누가 '원문'을 읽었느냐로 결정된다. 레닌은 20세기 초 러시아의 정치 사회적 조건 속에서 구체적인 투쟁 대상과 함께 논쟁하며 쓴 책인 것을...) 사실 경제투쟁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투쟁이 전사회적인 차원의 정치적 계급적인 투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가로막고 개별 사업장 또는 지역적 투쟁에 머무르게 하려는 경제주의적 경향을 문제 삼아야 한다. 경제투쟁은 보다 상승된 투쟁으로 발전해 나가는 싹으로서 더 성장해야하는 것으로, 경제투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그 싹을 밟고 뿌리를 뽑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요컨대 경제 ‘투쟁’이 아니라 경제 ‘주의’가 문제로, 정치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적 요구‘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입장, 결과적으로는 노동자 민중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체로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 경향이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적 요구에 대한 경제 선동만을 중시해서는 안 된다. “경찰의 폭압과 전제주의의 광폭함이 드러나는 모든 현상들, 온갖 사례들이 그 같은 (대중의) ‘끌어들이기’를 위해 부족함 없이 ‘널리 활용될 수 있는’ 수단이다. 결코 경제 투쟁과 관련된 현상들만이 그런 ‘활용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76-77) “경제 투쟁을 바탕으로 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생활과 정치 생활의 전반적인 모든 현상을 바탕으로 이 같은 요구를 정부에 제기하는 것”(82)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 계급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계급의 문제에 개입하여야만 하며, 심지어는 ‘자유주의적’ 또는 ‘민주주의적’ 문제에도 노동자 계급 정치적 관점에서 개입해야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레닌을 인용하자면, “노동자들이 전횡과 탄압, 폭력과 권력 남용이 행해지고 있는―그것이 어느 계급에 관계된 것이든―각종의 모든 사례들에 대응하는 법을 익히지 않는다면……노동자들이 구체적인, 게다가 항상 절박한 (당면한) 정치적 사건과 사례들을 통해 다른 사회 계급들의 지적·도덕적·정치적 생활이 표출되는 모든 현상에 걸쳐 그것들 각각을 관찰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그리고 모든 계급, 계층, 집단의 생활과 활동의 모든 측면에 대해 유물론적 분석과 유물론적 평가를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노동자 계급의 의식은 진정한 계급의식이 될 수 없다”(91). 심지어는 노동자 계급에게만 시야를 제한하려는 경제주의적 입장은 반동적이라고 쓰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주의, 관찰력, 의식을 배타적으로, 혹은 그렇지는 않더라도 우선적으로 노동자 계급에게로 돌리려는 자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 계급의 자기 인식은…… 현대 사회의 모든 계급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충분하고도 명료한 이해와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제 투쟁이 대중을 정치 운동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우리 ‘경제주의자들’의 설교는 그 실천적 중요성으로 볼 때 극히 유해하며, 극히 반동적이다”(91). 농노제 폐지, 지방 자치제 도입 요구, 자유주의자에 대한 탄압의 폭로 등 자유주의적 요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전개하여야 하는데, 이와 같은 자유주의적인 내용의 투쟁들을 하는 것을 “자유주의와 타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사회 민주주의 당을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 투쟁’으로 끌어가고 있으며, 또한 ‘자유주의적인’ 문제에 매번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사회 민주주의적 태도를 명확히 해야 하는 임무를 포기하고 자유주의 앞에 굴복하고 있기 때문”(123)이라는 것이다. 레닌은 나아가서 ‘모든’ 주민 계급 속으로 나아가는 과제야 말로 계급적 관점에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노동조합주의 정치를 노동자 계급정치로 발전시켜 나가는데 있어 핵심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07-114).


실제로 개별 사업장에서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재생산, 즉 자본관계의 재생산은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의 재생산을 전제로 하고 있고,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의 재생산은 전 사회적 수준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지배관계의 재생산이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개별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다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위한 투쟁은 물론 그것이 이윤과 자본의 축적조건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서 자본을 약화시키는 의미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서는 자본주의적 관계 자체를 지양할 수 없다. 아무리 삶의 질이 상승한다고 해도 고작해야 ‘황금의 족쇄’를 차고 있는 노예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 정치 역시 사회의 모든 계급에 대해 또한 모든 사안에 대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경제주의에 대한 오해와 함께 레닌의 ‘비판의 자유’에 대한 부분도 흔히 레닌주의의 이름으로 비판을 억압할 때 잘못 이용되고 있다. 레닌은 당시 베른슈타인류의 기회주의자들이 ‘비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경향과 논쟁하였다. 레닌에 따르면 “베른슈타인은 매우 정연하게 합의된 ‘새로운’ 논거와 사고들로 완전 무장하여 이 같은 정치적 요구를 내세웠다. 사회주의에 과학적 근거를 부여하고 역사의 유물론적 이해라는 관점에서 사회주의의 필연성과 불가피성을 입증할 가능성은 부정되었다. 점증하는 빈곤, 프롤레타리아트화, 자본주의적 모순의 심화 등의 사실은 부정되었다……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사상은……계급투쟁 이론은……부정되었다”(8). 요컨대 레닌은 여기에서 비판의 자유라는 겉포장 속에 숨어 있는 기회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비판 자체를 막는 것, 즉 하나의 올바른 입장이 전제되고, 그에 대한 비판을 ‘자유주의자’로 몰아가는 식으로 비판 자체를 부정하고 풍부한 토론을 막을 경우에 레닌이 원용되는 것은 레닌의 원래 의도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맑스는 애초에 ‘비판적(kritisch)’이며 ‘혁명적(revolutionär)’일 것을 요구했다. ‘혁명적’ 맑스주의를 표방하던 당대의 이론가들은 각기 노동자의 투쟁을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단지 착취의 조건을 약간 개선하는 데에서 그치게 하려는 경향들, 즉 라쌀레나 베른슈타인, 카우츠키류의 개량주의와 투쟁하였으며, 이러한 점에서는 레닌도 맑스 엥겔스, 그리고 그람시는 말할 것도 없고, 로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혁명적 맑스주의자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혁명적 맑스주의의 큰 방향성을 공유한다면, 그리고 오직 하나의 올바른 입장이 완전한 형태로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계급적 정치적이고 전사회적인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지양을 위한 노동자 운동의 전략 전술과 관련된 이견은 충분히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토론되어야 한다. 레닌 스스로도 󰡔제국주의론󰡕, 󰡔국가와 혁명󰡕, 󰡔무엇을 할 것인가󰡕 등의 저작들을 통해 개량주의/기회주의자들에게는 적대적이었으나, 논쟁 관계에 있었던 당대의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인 로자와 그람시, 나아가서는 멘셰비키였던 트로츠키와도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레닌을 절대화하고 독점한 후, 하나의 올바른 입장을 가지고 더 이상의 논의에 빗장을 지른 채 비판을 하지 못하게 하는 해석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중과 정치적 지도에 관해서도 레닌은 흔히 거꾸로 해석되고 있다. 올바른 정치적 지도와 이를 따르지 못하는 어리석고 환멸을 느끼게 하는 대중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거꾸로 모순이 첨예하게 발전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터져 나오는 대중 투쟁에도 불구하고 이를 따라 잡지 못하는 운동의 지도부가 오히려 문제였다. 요컨대 대중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지도부가 바로 레닌의 고민의 대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에 따르면 “대중이 자생적으로 고양되면 될 수록, 운동이 더욱 널리 퍼져 나가면 나갈수록,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정치적, 조직적 활동에서의 더 많은 의식성에 대한 요구는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속히 커진다.”(68). 그러나 “혁명가들은 ‘이론’에서도, 활동에서도 이러한 대중의 고양에 뒤처졌으며, 전체 운동을 지도할 수 있는, 중단되지 않고 계승되는 조직을 건설하지 못했다”(68)는 것이다. 요컨대, “대중의 혁명적 활동성을 과소평가”(102)한 채 “대중의 자생적 고양에 미치지 못하는 지도자들(‘이데올로그들’, 혁명가들, 사회 민주주의자들)의 후진성”(137)이야말로 레닌의 비판 대상이었다. 레닌이 대중의 자생성을 넘어서는 혁명적 의식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대중의 자생성을 무시한다든지, 잘못된 의식성을 정당화시키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 레닌주의 또는 정통의 이름으로 레닌의 의식성과 정치적 지도 구심에 대한 강조가 대중의 자생적 운동을 비판한 것으로 독해되어 오히려 대중 운동을 단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레닌이 마치 지도 중심과 의식성만을 강조하면서 대중의 자생성을 무시하는 듯이 해석되면서, 대중을 강조하는 입장을 대중 추수주의로 비난할 때 레닌의 경구가 활용되어온 것이다. 자신들이 지도 중심을 자처하면서 경제주의를 뛰어 넘지 못한 의식성을 가지고, “후위의 이론과 실천에다 ‘전위’라는 이름표를 달아매는 것”(117)만으로 오히려 대중운동의 혁명적 역동성을 재단할 때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빚을 수 있다. (*그럼에도 언급하고 있지 않은 것은, 레닌에게서 뜨거운 감자인,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의식성의 문제. 논자는 이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는 논란거리이다. 당대 러시아의 대중과 현대 남한의 대중 간의 격차. '대중'이란 무엇인가 등등...)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의 경제주의 비판의 핵심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적인 것을 넘어서 계급적, 정치적인 운동이 요구된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레닌의 경제주의 비판은 예나 지금이나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레닌의 경우에 짜르의 ‘전제주의적 폭압 정치의 종식’이라는 정치적인 과제를 전면에 제기하고 있으며, 이러한 면에서는 러시아적 특수성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 스스로 여러 곳에서 노동운동이 성숙하였고 민주주의가 발전한 독일과 같은 나라와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레닌의 테제들은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전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러시아의 특수성 속에서 레닌의 테제를 이해하는 사적 유물론적인 독해는 자생성/의식성, 나아가서는 대중/정치적 지도와 관련된 논의로 연장될 수 있다. 경제주의가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와 경제의 관계와 관련된 문제라면 자생성/의식성의 문제는 철학적인 문제이고, 대중/정치적 지도의 문제는 조직론적인 문제이지만 경제주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관계 속에 있다.


레닌과 논쟁 관계에 있었던 당대의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의 입장들 역시 우리는 그들이 활동하던 각 나라의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람시는 시민사회에서의 헤게모니적인 정치 전략을 강조하면서 서구 유럽의 특수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람시의 구상은 ‘현대의 군주’로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정치정당의 의식적인 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는 달리 당시 파시즘이 정치적인 억압 보다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문화 이데올로기적인 헤게모니 전략을 구사하면서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지배를 공고히 하는 것을 보면서, 이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서 기동전보다는 진지전을 강조하는 시민사회적인 헤게모니 전략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로자는 레닌이나 그람시가 정치정당의 지도, 즉 의식성을 강조한 것과 달리 대중 투쟁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비대하게 성장하여 관료화된 노동자 정당이 오히려 대중 투쟁의 역동성을 억누르고, 정치적 지도의 이름 아래 조율하려는 경향에 대한 비판이 주가 되고 있다. 잘못된 정치적 지도에 의해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진출이 억압되는 것을 돌파하기 위해 정치적 대중 파업이 주된 전술로서 제기된다. 이들은 각기 나라마다 형태를 달리 하며 존재하였던 노동조합주의 및 경제주의/기회주의와의 투쟁을 전개하면서,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노동자 운동과 자본주의의 지양을 위한 전략 전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올바른 전략 전술이 어떤 것인지를 논하기에 앞서, 여기서는 일단 사적 유물론적인 독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에서 그치고자 한다. 그러할 때, 그람시안, 정통 레닌주의, 로자주의 등 하나의 입장이 절대화되면서 다른 입장들을 적대시하는 식의 비생산적인 논쟁은 불식되고, 각각의 입장들은 새로운 전략 전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풍부한 재료로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레닌의 문제의식을 러시아적 특수성 속에서 독해하여 개량주의 비판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적용하려고 한다면, 최소한 변화된 지형 속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 전술을 발전시켜내지 못하고, 개량주의에 대한 비판이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으로 끝날 때 개량주의 비판은 현실성을 상실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민주화가 진행된 이후 변화된 지형 속에서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레닌의 정치적 쟁점에 대한 개입은 전제 군주인 짜르의 폭압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레닌 스스로 서구와 달리 의회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고 언론의 자유가 없으며 전국적인 노동자 정치조직의 활동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러시아에서는 비밀리에 움직이는 철의 조직이 전국적 정치 신문을 매개로 비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비합법활동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발전한 조건 아래에서는 다른 전술이 구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합법 공간에서의 공개적인 활동과 함께 선거주의 또는 기회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선거에 대한 대응이 가능한 전술이 제출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가 위기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듯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역시 항상 위기적이며 다시 파시즘적인 정치가 무대에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부르주아 정치의 부드러운 외피 속에는 고양이 발톱 같은 폭력성이 항시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네오콘, 네오 나찌, 신보수 우익의 등장에서 볼 수 있듯이 제국주의가 군사화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민주화에 따른 새로운 전략 전술의 개발뿐만 아니라 폭압적인 형태의 정치에 대한 대비 역시 언제라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의 지구화와 신자유주의 지배전략의 세계화에 따라 개별 국가를 막론하고 노동자 민중의 쥐어짜기가 진행되고,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 비정규직이 증대되는 지금, 경제주의의 문제를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것’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에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중요성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노동자의 경제적 이해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반대전선만이 강조되고, 정치적 전략의 부재 속에 여타의 정치적, 계급적 투쟁이 방기되는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전의 레닌주의자들이 경제주의를 잘못 해석하여 정치주의적 경향 속에 모든 경제투쟁을 부정하고 당물신주의에 빠졌었다면, 요즈음에는 거꾸로 노동자의 눈앞의 이해관계만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반대투쟁만을 강조하면서 여타의 정치적 사안에 대한 대응을 도외시하는 경제주의적 경향을 볼 수 있다. 경제주의는 정치주의의 반대물로서 두 가지 경우 모두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잘못 이해한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시기의 지구화는 전방위적이어서 노동만이 아니라 환경, 교육, 의료, 복지 등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이 맹목적인 자본 축적 욕구 아래 직접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편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지배전략 중의 하나에 불과해서 신자유주의 반대 그 자체 만으로서는 사회 안전망 확대를 중심으로 한 사회 자유주의적 해법, 또는 케인즈주의적 분배전략을 중심으로 한 사민주의적 해법으로 귀결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이 또 다른 하나의 자본의 지배 전략으로의 변화만을 끌어낼 뿐 자본 자체의 지양으로 발전해 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우리가 교훈을 끌어낸다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반신자유주의 전선이 경제주의적 투쟁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지양 전략 속에 배치되어 전사회적이고 지구적인 관점에서 정치적 계급적 투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계급 정치적 전망이 부재할 경우 결국 투쟁의 흐름은 경제주의적 투쟁을 넘어서지 못한 채, 정치적 맥락에서는 무능함을 보이거나 결국은 선거주의 정당에 귀의하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의 한미 FTA 반대 투쟁의 경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미 FTA는 지금의 형태로는 ‘가장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주의에 기초하여 노동 환경 규제 등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 막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고 있어서 미국과 한국 둘 다의 초국적 자본의 이해만을 반영하고 있으며, 굴욕적이고 투명하지 않은 졸속 협상에도 불구하고 자본 측에서는 한미 FTA를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협상 과정에서의 문제에 대한 ‘정치적’ 폭로는 의미가 있으며, 한미 FTA 반대는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반자본적 성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미 FTA는 반대하면서 미국이 아닌 중국 또는 인도 등 우리나라가 불리하지 않은 나라들과의 자유무역 협정은 지지한다든지, 또는 자유무역을 반대하고 보호주의로 가는 것이 해법은 아닐 것이다. 한미 FTA는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세계지배전략의 경제적 측면으로서, 정치 군사적 측면에서 전개되고 있는 평택으로의 미군기지 확장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 두 가지 모두의 경우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패권주의의 최전방에 배치되어 있는 전진기지이다. 한편 NAFTA 10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NAFTA의 수혜자는 각국의 (그중에서도 미국의) 자본이며, 피해자는 미국, 멕시코, 캐나다의 노동자, 농민을 중심으로 한 민중들이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한미 FTA 반대는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정치 군사적 측면까지 고려한 전방위적인 대응을 요구하며, 지구적인 수준에서의 연대를 바탕으로 한 자본/제국주의 모순의 지양이라는 관점에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결국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조금은 논자의 입장에 의해 선별된, 특히 대중의 문제에 있어서, 글이고, FTA문제에 대해서는 뻔한 대답만이 도출되었다. 구체적인 '사회구성체'에 대한 분석이 다시 시작되거나, 다른 용어로라도, 현재 남한사회, 나아가 세계사회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없으면 공허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만 도출될 뿐이다... 그래도 레닌에 대해 개설적으로 읽기에는 괜찮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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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지음, 최호정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2월
절판


우리가 지적인 노동자 및 지식인 출신의 정치투쟁 지도자들이 양성되도록 돕지 않는 한, 대중은 결코 정치 투쟁을 수행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러한 지도자들이 양성되는 것은, 우리의 정치 생활의 모든 측면, 다양한 계기로 벌어지는 다양한 계급의 갖가지 항의와 투쟁의 시도를 일상적이며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210쪽

삐사례프는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라는 문제를 두고 다음과 같이 썼다. "같은 괴리라 해도 천차만별이다. 나의 꿈은 사건의 자연스러운 진행을 앞지를 수도 있다. 또는 완전히 빗나가서 사건의 그 어떤 자연스러운 진행도 이를 수 없는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첫째 경우에 꿈은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일하는 사람의 정력을 지탱시키고 증대시킬 것이다. 그러한 꿈에는 노동력을 왜곡하거나 마비시킬 요소가 전혀 없다. 심지어 완전히 그 반대이다. 만일 사람이 이런 식으로 꿈꿀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다면, 종종 앞서 나가 자신의 손으로 이제 막 빚어지고 있는 창조물 자체를 완결된 통일적 상태로 정신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면, 그렇게 된다면 예술 과학 실천적 생활 등의 영역에서 광범위하고도 힘든 일을 인간이 계획하고 끝까지 추진할 수 없도록 만드는 각성제가 어떤 것이 있을지,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222-223쪽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꿈꾸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꿈을 진지하게 믿는다면, 삶을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자신이 관찰한 바를 자신의 공중누각과 비교해 본다면, 그러니까 자신의 공상을 실현하기 위해 성실히 활동한다면,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는다. 꿈과 삶 사이에 조금이라도 만나는 지점에 있다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다.

낭만적 리얼리즘. 혁명적 리얼리즘.

대중은 결코 정치투쟁을 수행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할 것이라는 레닌. 당대 러시아의 상황과, 현재 남한의 상황은 분명 매우 다르다. 그러나 얼만큼 어떻게 다르기에, 우리는 낙관할 수 있는가? 매스미디어의 지배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강력해졌고, 국가의 강제는 교묘하고 세련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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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지음, 최호정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2월
절판


대중이 운동에 자생적으로 이끌려 들어온다고 해서 투쟁을 조직할 필요성이 ㅇ벗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바로 그 때문에 조직이 더욱 필요해진다. 경찰이 어떤 파업과 집회라도 비밀스런 것으로 만드는 것을 우리 사회주의자들이 막지 못한다면(또 어떤 때는, 우리 스스로가 파업과 집회를 비밀리에 준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대중에 대한 직접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해낼 능력이 있다. 왜냐하면 자생적으로 깨어나고 있는 대중이 점점 더 많은 수의 "혁명 활동이 직업인 사람"을 자기 주변에서도 배출하게 될(우리가 어떤 방법으로든 노동자들에게 제자리뛰기를 권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것이기 때문이다.-144쪽

우리, 혁명 활동이 직업인 사람들은 그와 같은 "떠밀기"에 백 배나 더 많이 치중해야만 하며, 또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적어도 당신들만큼 미성숙한 노동자)가 자신에게 정치 지식과 혁명적 경험을 제공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신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는 꺼림칙한 단어, 즉 "외부로부터의 떠밀기"와 같은 말을 당신들이 선택한 순간, 바로 그 선택이 그러한 모든 사람들에게 본능적인 반발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들은 악질 선동가이며, 악질 선동가는 노동자 계급의 최악의 적이다.-159쪽

가능한 한 적은 수의 직업적 혁명가의 수중에 모든 보안 기능을 집중시킨다는 것이, 이 혁명가들이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생각하고" 대중은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함은 결코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이러한 직업적 혁명가들은 대중으로부터 점점 더 많이 배출될 것이다.-162쪽

대중 운동에 "봉사"하기 위해서는 사회 민주주의 활동에 전문적으로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사람들이 필요하며 그러한 사람들은 인내와 강인함으로 자신을 직업적 혁명가로 키워 내야 한다는 의식-164쪽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장래성 있는" 노동자 출신 선동가라면 공장에서 11시간씩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당이 그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도록, 그가 적기에 비합법 활동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또 활동 장소를 변경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더 많은 경험을 연마하고 시야를 넓힐 방법이 없으며, 헌병과의 투쟁에서 최소한 몇 년씩 버텨 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대중의 자생적 고양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질수록, 그들 중에서 출중한 선동가뿐만 아니라 뛰어난 조직가, 선전가, 그리고 좋은 의미의 "실천가들"(우리의 지식인들 중에 이런 사람들은 극히 적다. 우리의 지식인들은 대개 러시아식으로 천하태평하고 게으른 사람들이다)이 더 많이 나오게 된다.-173쪽

대중적, 자생적 노동 운동이 생겨나면 토지와 자유 같은 훌륭한 조직, 어디에도 비견되지 않을 만큼 훌륭한 혁명가 조직을 창건할 의무가 면제될 것이라는 생각은 맑스주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혹은 그것을 "스뜨루베주의"의 정신으로 이해한 결과)로만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정반대로 그러한 운동이야말로 우리에게 이 의무를 부여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생적 투쟁은 강력한 혁명가 조직의 지도를 받지 않는 한 진정한 "계급 투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175쪽

카우츠키는 리팅하우젠이 민주주의를 원시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에 단호히 반대하여,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인민의 신문은 인민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투쟁을 사회 민주주의적으로 지도하기 위해서는 직업적 언론인, 의원 등등이 필요함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인민의 직접 입법이 현대 사회에서는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파급 효과를 노려" 그것을 높이 격찬하고 있는 "무정부주의자와 글쟁이들의 사회주의"를 공격한다.-184쪽

레닌에게 있어서 노동자/대중/인민의 개념은 단순하지 않다. 노동자 속에서 직업적 혁명가와 활동가가 나오고, 노동자들이 자발적 투쟁을 일으킨다. 그런데 항상 당이라는 조직에 의해서 '노동자들'은 직업적 혁명가와 활동가가 될 수 있고, 자발적 투쟁이 비로소 계급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분명 당이라는 조직은 '처음'에는 지식인 위주로 구성되고, 지식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노동자에서부터 '혁명가와 활동가가' '배출'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맑스의 "공산당선언"과 대비해보면, 맑스에게 있어 '공산주의자'는 pt에 이해를 시간적으로 전취한 것일 따름이지만, 레닌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뚜렷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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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트로츠키주의 대 자율주의의 ‘반자본주의 대한 논쟁’

* 한겨레(2007. 3. 2) / ‘트로츠키주의’냐 ‘자율주의’냐
한겨레  고명섭 기자 
커버스토리 / 러시아 10월혁명 90돌 계기로 떠오른 ‘반자본주의 대한논쟁’

트로츠키주의냐, 자율주의냐? 스탈린주의적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이후 반자본주의 혁명 대안을 놓고 좌익 진영에서 심심찮게 제기되는 이분법적 질문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인터넷 매체 <레디앙>과 <프레시안>을 통해 트로츠키주의 문제가 몇 차례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21세기 사회주의 전망’ 이분논쟁

올해는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 90돌을 맞은 해다. 그 혁명의 주역 가운데 한사람인 레온 트로츠기(본명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스테인·1879~1940)의 혁명노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은 반자본주의 혁명 운동 안에서는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 됐다. 최근의 국내 논쟁을 촉발시킨 계기가 된 책은 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가 쓴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아카데미 펴냄)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광범위한 경제학적 주제를 다루는 전반부에 이어, 후반부에서 트로츠키 사상을 재평가하고 거기에 근거해 ‘21세기 사회주의’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논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그 뒤에 나온 <러시아 혁명과 레닌의 사상>은 트로츠키주의 논쟁을 ‘트로츠키주의 대 자율주의’라는 구도로 바꿈으로써 불씨를 키우는 구실을 하고 있다. 국내 트로츠키주의 단체 ‘다함께’의 운영위원인 최일붕씨가 쓴 이 책은 제1장에서 국내 자율주의 운동의 이론가인 조정환(갈무리 출판사 주간)씨를 실명으로 불러들여 대립지점을 명확히하고 있다.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가 1970년대 후반 아우토노미아(자율) 운동을 벌이면서 형성된 자율주의 운동은 혁명 주체, 혁명 전략, 혁명 전망에서 트로츠키주의와 뚜렷하게 대비되는 반자본주의 운동이다.

 

‘트로츠키주의’로 보면
볼셰비키 독재에 저항한 ‘크론스타트 봉기’
진압 안했다면 극우 독재에 자리 내줬을 것
10월혁명을 구하기 위한 ‘비극적 필요’였다.

트로츠키주의와 자율주의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1921년 러시아 크론스타트(크론슈타트) 수병 반란에 대한 평가다. 1917년 10월혁명 뒤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의 내전이 휩쓸고 간 러시아는 산업시설이 거의 다 붕괴된 황폐한 땅으로 변했다. 10월혁명의 주역인 볼셰비키와 그 지도자인 레닌·트로츠키·스탈린은 ‘전시 공산주의’ 상황에서 혁명의 유산을 막으려 가혹한 억압적 조처를 시행했다.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볼셰비키의 전위독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러시아 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상트페트르부르크 요새지역 크론스타트의 수병 부대원 1만5000명은 1921년 3월 1일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를 요구하며 임시혁명위원회를 결성했다. 빵과 자유, 민주주의를 달라는 요구를 볼셰비키는 무력으로 진압했다. 당시 트로츠기는 볼셰비키 정부의 군사인민위원(국방장관)이자 적군(붉은군대)의 총사령관이었다. 크론스타트 진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혁명을 구하기 위한 피할 길 없는 유혈사태였는가, 10월혁명 이상의 파국을 알리는 조종이었는가.

이 질문에 대해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그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그런 주장은 트로츠키 자신이 먼저 내놓았다. 뒷날 국외 망명 중이던 트로츠키는 이 반란 진압을 ‘비극적 필요’라고 불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전은 휴머니즘의 학교가 결코 아니다. 이상론자들과 평화주의자들은 언제나 혁명의 ‘극단성’을 비난한다. 그러나 ‘극단성’은 혁명의 본성 자체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혁명 자체는 역사의 ‘극단성’을 뿐이다.”

트로츠키주의자 최일붕씨는 <러시아 혁명과 레닌의 사상>에서 크론스타트 반란을 백군(반혁명군)이 개입한 반혁명적 봉기로 규정한다. “만약 크론스타트 반란이 성공했다면, 그리하여 안 그래도 약화된 볼셰비키 정부가 타도됐다면 그 즉시 혼란과 그걸 틈탄 공산주의자 학살, 국외로 도주한 백군의 귀향, 그리고 마침내는 극우 독재의 수립이 그 자리를 메웠을 것이다.”

네그리 ‘자율주의’ 관점으로 보면
‘크론스타트 봉기’야말로 프롤레타리아 혁명
노동계급의 공동체(코뮌) 평의회(소비에트)로
볼셰비키 독재 뚫고자 한 ‘혁명의 혁명’이었다

혁명 극단성 비난하지만 불가피

정성진 교수도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서 ‘진압의 불가피성’을 이해하는 쪽에 선다. “트로츠기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크론스타트 봉기의 진압을 트로츠키가 직접 지휘했다면서 트로츠키의 잔인성을 강조하지만, 이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트로츠키는 비극이지만 크론스타트 봉기를 불가피하게 진압해야 한다는 (볼셰비키당) 중앙위원회의 결의안에 찬성했을 뿐이다.” 트로츠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진압 당시 트로츠키가 현장에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비판자들은 5·18광주항쟁에서 전두환이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반박한다.

크론스타트 문제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질문은 자율주의 진영에서 나왔다. 자율주의 운동과 흐름을 같이하는 책 <무엇을 할 것인가?>(워너 본펠드·세르지오 티슐러 외 지음, 갈무리 펴냄)는 크론스타트 봉기를 러시아 볼셰비키 독재에 대항해 10월혁명의 이념을 실현하려 한 ‘제3의 혁명’으로 묘사한다. 이 책은 크론스타트 반란자들이 자신들의 신문에 쓴 글을 인용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노동계급은 10월 혁명에서 자신들의 자유를 쟁취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좀더 심한 억압이다. 볼셰비키 정부는, 정치 위원과 관료들의 편안한 삶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 국가의 유명한 상징인 망치와 낫을 총검과 감옥으로 바꾸었다.” 책의 지은이들은 트로츠키가 제시한 ‘영구혁명론’에 빗대어 “역사의 아이러니에 걸맞게, 영구혁명이론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존경받는 대표자인 트로츠키는 1917년 10월 이후로 혁명을 영구화하기 위한 가장 진지한 시도를 저지했다”고 트로츠키를 비판한다.

자율주의 진영에서 크론스타트 봉기가 중요한 것은, 볼셰비키 독재라는 전위 중심의 혁명이 아닌 노동자를 비롯한 피억압자 자신들의 자율적 혁명의 가능성을 봉기 참가자들이 보여주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볼셰비키가 아니라)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코뮨(공동체)으로써 그리고 자유롭게 선출된 자신들의 평의회(소비에트)로써,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노동자 권력의 원형을 제공했다.”

말하자면, 트로츠키주의와 자율주의는 전혀 다른 혁명의 공식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트로츠키주의는 볼셰비키 혁명과 볼셰비키 독재를 역사 발전의 불가피한 과정으로 인정한다. 트로츠키는 이 혁명 과정의 주역이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소련의 역사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뒷날의 소련을 혁명의 배반이자 탈취라고 보기 때문이다. 1924년 레닌 사망 이후 트로츠키는 스탈린 일파와 벌인 권력투쟁에서 밀려나고 볼셰비키당에서 제명당한 데 이어 국외로 추방당한 뒤로 스탈린의 소련을 ‘혁명을 배반한 국가자본주의 체제’라고 저주했다. 스탈린이 혁명을 배신했으며 권력을 강탈했다는 것이다. 트로츠키주의는 스탈린이 빼앗아 파멸시킨 혁명을 원점으로 되돌린 뒤 거기에서부터 혁명을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스탈린 폐해 트로츠키 안에 내재

반면에 자율주의는 스탈린주의의 폐해가 트로츠키 안에 벌써 내재해 있다고 본다. 러시아 10월혁명을 프롤레타리아의 자율적 혁명이 아니라 볼셰비키라는 전위들의 독자적 혁명이었다고 보는 데서 이들의 관점은 뚜렷이 드러난다. 10월혁명은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하나라고 볼 수는 있지만, 프롤레타리아가 주체가 된 혁명, 곧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크론스타트 봉기는 볼셰비키의 독재를 뚫고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 자기를 지배하겠다고 일어선 ‘혁명의 혁명’이었다.

트로츠키의 사상은 혁명정당이라는 전위를 중심으로 하여 혁명세력을 철저한 규율에 복속시키는 경향을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규율주의라고 할 만하다. 자율주의의 자율은 이렇게 외부에서 부과하는 규율, 다시 말해 타율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들은 그 타율이 근본적으로는 당이라는 조직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따라서 자율주의 운동은 어떤 형태의 당도 인정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그렇다면 ‘어떻게 혁명을 이룰 것인가’하는 문제가 불거진다. 전통적인 혁명 도식을 따르면, 혁명세력은 당을 중심으로 하여 뭉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주의자에게 자율주의는 관념적으로 보일 것이고, 자율주의자에게 트로츠키주의는 억압적으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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